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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05월27일 17시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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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창 4: 1-12)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   창 4: 1-12      5. 25. 14
 
성도의 삶에 성공과 실패는 예배에 달려 있다. 예배에 성공하면 삶에 성공이 있고, 예배에 실패하면 삶이 실패한다. 아담의 두 아들인 가인과 아벨이 드렸던 제사예배에서 가인이 예배를 실패하므로 그의 삶이 처절하게 실패한 본문기록을 통해서 우리는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배우게 된다. 그래서 예배성공은 삶의 성공과 직결돼 있고, 예배실패는 삶의 실패, 사업의 실패, 자녀교육의 실패, 가정의 실패 그리고 인생실패로 직결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배(禮拜)라고 번역된 헬라어, 프로스큐네오는 “절 한다”, “꿇어 엎드리다”란 뜻으로, “하나님 앞에 인간의 전 인격이 꿇어 엎드려 경배하는 것”을 의미하고, 예배란 또 다른 헬라어 라트레이아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와 “삶의 모든 가치와 의미를 하나님께 두고 주님을 섬기는 삶”이란 의미가 있고, 그 외에도 “하나님을 만나는 행위”란 의미가 있다. 그래서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행위이고 우리들의 예배시간은 우리 각자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다.
 
우리가 삶이 힘들고 어렵고 고달플 때, 나와 함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부모를 만나거나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조언해주는 현명한 Mentor를 만나며, 내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 좋은 지도자나 전문가를 만나고 변호사를 만나 상담을 하듯 성도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난다. 그래서 예배는 연약하고 무능한 인간이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만나는 아주 중요한 시간이다.
 
구약시대엔 제사를 통해서 인간이 하나님을 만났고, 신약시대와 은혜시대인 지금은 예배를 통해 사람이 하나님을 만난다. 그래서 예배만큼 중요한 시간은 없다. 다윗의 찬양대장 아삽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착한 사람은 고난을 당하고 악인은 형통하는’ 이해하기 힘든 신학적 고민으로 번민하다가 “내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악인의 결국을 깨달았다”고 고백했고,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겠다”(시 73: 17, 28)며 고백했다. ‘내가 성전에 들어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므로 신학적 고민과 갈등과 문제들이 해결됐으니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예배가 내게 복이라’는 고백이다. 
 
아삽처럼 성전을 찾아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므로 풀리지 않았던 인생의 의문들이 풀어지고, 해결불가능의 문제들이 묶였던 매듭이 풀리듯 풀어지며, 막혔던 사업의 문제들이 해결되고, 난마처럼 얽힌 부부문제가 뜨거운 물에 얼음 녹듯 다 해결되는 역사들이 있기를 바라며, 예배성공을 통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만나므로 눈이 멀어 어두운 자, 절름발이, 중풍병자, 귀신 들려 각종 난치병과 불치병의 질병으로 고통 받는 자들과 육체와 정신과 영이 죽었던 자들이 살아나는 기적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오늘 우리 예배가 살아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 우리 위해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사 하늘로 승천하시고 장차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
 
   1. 가인과 아벨, 두 사람의 제사
 
본문 1-5절까지는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 사이에 태어난 많은 자손 중, 가인과 아벨에 대한 기록이다. 하와는 첫째 아들 가인을 낳고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I have gotten a man from the Lord; 1하)고 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의 문자적인 의미는 “여호와로부터”란 뜻으로 정확한 의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per Dominum; With the help of the Lord)이다. 이것은 하와가 첫째 아들 가인 낳은 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말이고, 가인을 낳기 전에  딸들을 낳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며(Daughters were perhaps born before this; hence, special  emphasis upon getting a man child this time: 창 6: 1) 가인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여자의 후손‘ (창 3: 15)에 대한 약속의 성취로 이해했었음을 나타내 준다. 
 
그리고 하와는 가인을 낳은 얼마 후, 둘째 아들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성장해서 양과 염소 등 가축을 돌보는 목축업자가 됐고, 가인은 농사를 짓는 자가 됐다. 그리고 상당한 시간이 흘러 세월이 많이 지난 후에(In process of time it came to pass) 두 사람이 하나님께 제물을 바쳐 제사를 드렸는데, 가인은 자기가 땅을 경작해 농사를 지은 땅의 소산을 제물로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사를 드렸다. 
 
특별히 3절에서 가인이 드렸던 제물(An offering)이란 히브리어 민하는 “선물로 삼았다”는 마나에서 파생된 말로 “고운 밀가루와 감람유, 유향을 제물로 삼아 드리는 소제”(레위 2: 1-16)를 가리키는데, 이러한 소제는 번제를 드릴 때마다 함께 드리는 제사로써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충성을 상징하는 제사를 가리킨다. 가인이 힘들게 땀을 흘려 농사를 짓고 거기서 거둔 땅의 소산물을 정성스럽게 준비해 소제(素祭)의 제사를 드렸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4절에선 아벨이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사를 드렸다고 했는데, 이것은 ① 아벨이 자기의 첫 번째 소산인 가장 귀한 것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쳤다는 의미와 ② 아벨이 양의 첫 새끼와 또 다른 양들 가운데서 가장 ‘살찌고 기름진 것’(창 45; 18)을 골라 하나님께 믿음으로 바쳤음(히 11: 4)을 의미하며 ③ 무엇보다 인간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산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豫表)하는 ‘희생의 제물’을 드렸음을 의미한다.
 
그다음, 4절 하반 절과 5절 상반 절을 보자.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悅納)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않으셨다”(The Lord had respect unto Abel and to his offering. But unto Cain and to his offering He had not respect) 4절의 ‘열납하다’와 5절의 ‘열납하지 않았다’(He had not respect)는 말에서 열납하다의 히브리어 솨아는 Respect(“존중하다, 중시하다, 관계하다, 염두에 두다”)는 뜻과 Regard(“응시하다, 주시하다, 관심을 갖다, 유심히 바라보다, 인정하다”)란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않았다는 말은 하나님이 아벨과 그의 제사는 “지대한 관심을 갖고 예의주시해 보신 후 존중하고 인정하셨다”는 말이고, 가인과 그의 제사는 “쳐다보지도 않으셨다, 관심조차 갖지 않으셨다”는 말씀이다. 바알 선지자들의 제물은 거들떠보지 않고, 엘리야의 제단에만 관심을 갖고 계시다가 엘리야의 기도가 끝남과 동시에 화염 같은 불이 임하여 제물을 모두 태웠듯(왕상 18: 37, 38) 아벨의 제물에 불로 임하셔서 모든 제물을 태웠지만 가인의 제물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말이다.
 
그렇다. 오늘 지구촌의 모든 예배는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예배가 있고, 하나님께서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쳐다보시지도 않는, 관심 없는 예배가 있다. 21세기에 우리들이 드리는 주일예배를 구약시대 예배로 형상화해본다면, 어느 교회는 하나님께서 예배를 열납하시므로 하늘의 불로 제물을 태워 제물이 불타는 연기들이 공장굴뚝의 연기처럼 하늘을 치솟는 교회가 있고, 어느 교회는 전혀 연기가 나지 않는 교회도 있으며, 같은 교회 안에서도 예배 때마다 어떤 성도의 제물과 예배는 성령의 불로 태워져 하나님께 열납되는 예배가 있지만 어느 교인의 예배는 하나님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예배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당신이 주일마다 드리는 예배와 제물은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예배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쳐다보시지도 않는 예배인가? 주기도문 교회예배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예배가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예배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2. 예배실패의 사람, 가인
 
하나님은 가인과 아벨, 두 사람이 들판에서 정성을 다해 쌓아올린 인류최초의 제사에서 아벨의 제물은 하늘의 불로 태워 열납하셨고, 가인의 제물은 그대로 방치해 내버려 두시므로 열납치 않으셨음을 보여주셨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가인과 그의 제물을 쳐다보지도 않으셨고 관심조차도 보이지 않으셨는가? 그리고 왜, 신약시대요 종말시대인 오늘, 하나님이 지구촌의 많은 예배들을 거들떠보지 않으시고 관심을 갖지 않으신 채 방치해 내버려 두시며 인간들끼리의 거창한 종교의식과 예배행사로만 남게 하시는가? 그다음 여러분이 교회에 발을 들여 놓은 후부터 지금까지 10년 20-30년 50년 동안 드렸던 수백 수천 번의 당신의 예배는 하나님이 열납하신 아벨의 제사였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관심을 끌지 못한 가인의 예배였는가? 그리고 앞으로 당신이 드릴 예배는 과연 아벨의 제사인가 아니면 가인의 예배이겠는가?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들이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아벨의 성공적인 예배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가인과 아벨, 두 사람 모두 정성을 다해 제물을 준비했다. 가인은 자기가 땀 흘려 지은 농산물을 선별해 제물로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제물로 드렸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고, 가인과 그 제물은 본척만척 거들떠보지도 않으시고 No thank you로 일언지하에 거절하셨다. 그렇다면 가인의 제사실패의 원인은 무엇이며 오늘 우리 예배가 거절당하는 예배실패이유는 무엇인가? 
 
⑴ 믿음이 없는 제사였다. 바울은 히 11: 4에서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다”고 했다. 70인 역에서는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거절하신 이유를 가인이 제물을 드릴 때 제물을 나누는 법대로 바르게 제물을 나눠 놓지 않은 제사 절차상의 이유를 말했고, 신학자 필로는 아벨의 제물은 생명이 있는 동물이었고 가인의 제물은 생명이 없는 식물이었기 때문이라고 했으며, 역사가요 신학자인 요세푸스는 가인의 행동에 도덕적인 결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성경은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다”고 했다. 그렇다. 가인은 믿음 없이 제물을 드렸다. 그래서 그 예배가 여의도 광장 집회와 베드로 성당 앞 광장 미사처럼 수백만이 구름떼처럼 운집(雲集)하는 거대하고 장엄한 세기적인 예배이고 전 세계를 통치하는 권력자들과 중요인물이 다 모이는 성대하고 웅장한 예배라도 믿음이 없는 예배는 하나님이 관심을 두지 않는 예배이지만 10명, 20명, 100명이 모이는 작은 모임의 예배라도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드리는 믿음의 예배’는 하나님이 중시하시고 열납하시는 예배이다. 지금 드리는 우리 예배와 앞으로 드릴 우리들의 예배가 믿음의 예배로 하나님의 관심이 집중되는 예배, 하나님이 눈여겨보시고 기쁘게 열납하시는 예배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⑵ 잘못된 예배순서였다. 아담하와의 범죄 이후 인간이 하나님께 나가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은 먼저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드리는 다섯 가지 제사에서 첫 번째 제사를 소나 염소나 양을 잡아드려 죄 용서를 받는 번제를 명령하셨고, 두 번째 제사를 고운 밀가루와 감람유와 유향에 소금을 친 소제로 명령하셨다(레 1, 2장) 그러므로 믿음으로 제사를 드린 아벨의 제사는 죄 용서를 위한 제사였고 감사의 제사였기에 열납이 됐고 가인의 제사는 죄 용서 없는 감사 제사였기에 열납이 안 된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예배가 열납되는 예배가 되려면, 예배 기도에 ‘회개하기를 원하오니, 죄 용서 받기를 원하오니’가 아니라 ‘지은 죄를 회개하오니 용서해 주옵소서’가 돼야 한다. 
 
벧엘로 돌아가라는 말씀을 불순종하고 숙곳에 장막을 친 후, 거기서 단을 쌓고 ‘엘 엘로헤 이스라엘’, “강하신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창 33: 17-20)을 찬양하며 ‘아멘, 할렐루야’를 노래하던 야곱은 딸 디나가 강간당하는 사건과 아들 레위와 시므온이 살인을 저지르는 끔찍한 사건을 통해 처절한 실패를 경험한 후, 자기의 불순종을 회개하고 벧엘로 돌아가므로 문제가 해결됐다(창 34장) 오늘 당신이 감사와 찬양을 드리기 전에, 먼저 회개가 있어야 예배가 열납 된다. 회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리되고 감사와 찬양과 예배가 드려지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죄를 회개치 않고 마음에 숨겨둔 채, 감사예물을 드리며 ‘아멘 할렐루야’를 외쳐봐야 하나님은 눈길 한번 주시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웃을 용서치 않고 미워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여 하나님을 멀리했던 죄를 회개하며, 아내와 남편을 속인 죄와 자기 양심과 하나님까지 속이려 한 죄, ‘바쁘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예배를 멀리하고 교회를 멀리한 죄, 게으름으로 축복의 기회를 놓친 죄들을 회개하며, 무엇보다도 자신과 가족을 위하고 교회와 주의 종과 하나님을 위한 새벽기도 작정기도 금식기도 철야기도의 ‘기도하기를 쉬었던 죄’를 회개할 것이다.
 
신앙이 어린아이는 기도를 쉬는 기도중단이 죄가 아닐 수 있어도 신앙이 장성하고 은혜 받은 성도에게 기도중단은 큰 죄이다. 이 모든 죄들은 회개를 통해서만 용서가 되고, 회개의 열매를 맺을 때에 비로써 예배가 열납될 것이다. 마음을 찢고 통회하는 회개가 있는 예배, 지은 죄를 죄송해하는 상한 심령으로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기쁘게 열납하시는 예배와 예배 자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3. 예배실패의 결과
 
인류최초로 예배 실패자가 된 가인이 걸어간 삶의 발자취를 보자. 예배를 실패한 가인은 ⑴ 안색이 변하는 분노의 사람이 됐다. 5하를 보면,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고 했다. ‘안색이 변했다’는 히브리어 이플루 파나우는 “얼굴을 강타(强打)했다”는 뜻으로 “극심한 분노나 불만에 의해 안면근육이 경직된 것”(욥 29: 24, 렘 3: 12)을 의미한다(영어성경엔 His countenance fell: “그의 얼굴 표정(안색)이 급하게 추락했다”고 번역했다) 동생 아벨의 제단에 화염 같은 불이 번갯불처럼 쏟아져내려와 제물을 불태우고, 자기제단의 제물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는 순간 가인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경직되면서 분노했다는 말이다. 예배에 실패하면 예배를 드리고도 시험에 드는데, 어떤 사람은 분노하여 시험에 들어 교회를 떠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다른 교회를 가기도 하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신앙을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예배는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⑵ 죄와 사단이 그 사람 앞에 엎드린다. 하나님은 분노하여 안색이 변한 가인에게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얼굴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에 엎드린다’(Sin lies at the door-Sin is couching at the door: “죄가 문 앞에 매복해 있다”; 7중)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하셨다. ‘엎드린다’의 히브리어 라바츠는 “잠복하다”, “쭈그리다”는 뜻으로 “먹이를 단숨에 낚아채기 위해 숨을 죽이고 웅크리고 있는 짐승처럼 숨어서 매복해 있다”는 의미이다. 여러분이 오늘 예배를 실패하고, 하나님이 당신의 예배를 열납치 않으신다면, 굶주린 사자나 표범이 사슴이나 들소를 물어뜯어 잡아먹기 위해 매복하여 웅크리고 있듯, 사단마귀가 교회 문 앞에서 죄를 짓게 하기위해 당신을 매복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예배를 성공하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삶이 성공하지만 예배를 실패하는 자는 마귀의 종이 돼 죄들을 짓게 되므로 삶이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반드시 예배에 성공한다!” 
 
⑶ 살인자가 된다(8절) 가인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경고하신 말씀을 아벨에게 낱낱이 이야기 한다. 그리고 자기의 죄를 회개하는 대신, 분노를 숨기고 아벨에게 ‘들로 가자’며 유혹해 들판으로 꾀어낸 후,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아벨을 죽인다. 인류최초의 살인사건이다. 훗날 사도요한은 이 살인사건을 “가인이 악한 마귀에게 속하여 아벨을 죽였다”(요일 3: 12)고 기술했으니 하나님말씀대로 사단마귀가 가인을 기다렸다가 살인죄를 짓게 한 것이다. 살인(殺人)은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에서, 폭력이나 인권유린을 통한 인격살인, 뱃속의 아이를 칼과 가위와 주사바늘로 잔인하게 죽이는 영아살인 그리고 남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정신적 살인까지 다양하다. 예배에 실패하면 교회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마귀에게 코가 꿰여서 마귀 종으로 전락하여 직접살인과 간접살인의 살인을 저지르는 불행한 교인이 된다. 예배를 성공하므로 마귀를 다스리는 축복의 성도가 되길 축원한다.
 
⑷ 저주의 사람이 된다(11-15절) 아벨을 죽인 가인은 세 가지 저주를 받는다. 하나님이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라”(Now you are cursed from the earth; 11하)며 가인을 저주하신 세 가지 저주는 ①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않을 것”(12상)이란 토양의 생산력 제어 저주였다. 정당한 노동의 소출을 거두지 못하는 저주, 일을 뼈가 부숴 지도록 많이 했지만 일한 만큼의 소득이 없는 저주이다. 품삯을 받지 못하거나 남에게 사기 당하거나 다른 일이 생겨 돈을 날려버려 은행잔고가 마이너스가 되는 것, 이것이 예배실패의 결과이다 
 
②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12하)는 말씀처럼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는 저주이다. ‘피하며 유리하는 자’의 히브리어 나 와나드는 가인이 “죄 의식에 사로잡혀 계속해서 사람들을 피해 도망치며 쫓기는 삶을 살고,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며 나그네처럼 방황하는 자가 됐다”는 말이다. 예배에 실패하면 생활도 떠돌아다니는 삶이 되고, 영적으로도 안주하지 못하고 이 교회 저 교회를 기웃거리는 방랑자가 된다. 
 
③ 죄벌을 감당할 힘이 없다. 13절에서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다”고 고백한 것은 하나님의 죄벌을 받아들이거나 감당할 능력도 없고, 인내에도 역부족이라는 고백이다. 그만큼 가인은 정신적으로도 나약해졌고 버텨 낼 의지력이나 강인한 체력도 없어졌다는 고백이다. 예배 실패는 이렇게 우리 삶을 패배와 좌절과 절망으로 몰아넣는다. 그래서 어찌하든 예배에 성공하는 성도들이 돼야 한다.
 
⑸ 하나님을 피해 사는 자가 된다. 16-24절까지는 가인의 족보기록으로써 가인이 하나님을 피해 인간이 주인과 주역이 되는 ‘하나님 없는 자기만의 세계’를 꿈꾸며 척박한 땅으로 나아가 거기서 인간의 문명과 문화를 건설해 나간 기록이다. 가인과 그 후손이 ‘하나님 없는’ 인간문명을 건설한 것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① 혈통적인 문화의 저주다. 하나님을 배척한 가인과 그 후예들이 건설한 문화는 인간의 힘과 무력(라멕은 “힘센 자”란 뜻; 18, 23-24절)과 지혜(아다는 “꾸민 자”란 뜻; 19절)와 감정(씰라는 “딸랑거리는 자”란 뜻; 19하)을 바탕으로 한 물질적 풍요와 세속적인 아름다움과 쾌락(유발은 수금과 퉁소를 잡는 자의 조상이 됨; 21절)과 힘의 논리(두발가인은 동철로 무기 만드는 자가 됨; 22절)가 지배하는 물신주의(物神主義) 사회였다. 예배실패는 교회를 물질적 풍요와 세속적인 아름다움과 쾌락, 타락한 사탄음악과 교세를 자랑하는 힘의 논리만 앞세우는 타락한 교회를 만든다. 
 
② 영적으로 타락한 사이비유사종교를 만든다. 가인의 혈통을 보면 가인은 에녹을 낳았고, 에녹은 이랏을 낳았으며, 이랏은 므후야엘, 므후사엘은 므후사엘, 므후사엘은 라멕을 낳는다. 그리고 라멕은 두 아내 아다와 씰라를 얻었고 첫째 아내 아다를 통해 야발과 유발을 낳고, 둘째 아내 씰라를 통해서는 두발가인을 낳으므로 아담에서 8대손까지의 족보가 나온다. 그다음, 창 5장엔 아담이 아벨 대신 낳은 의로운 아들 셋에서 노아까지 아담의 10대손의 족보가 나온다. 그런데 가인의 족보와 셋의 혈통에서 순서는 약간 달라도 에녹과 라멕은 동명이인으로 두 족보에 기록됐고, 이랏과 야렛은 비슷한 이름으로 기록됐으며 므후야엘과 므후사엘은 마할랄렐과 므두셀라와 이름이 비슷하다. 이것은 영적으로 예배에 실패한 사람들은 이단적인 타락한 사이비유사종교를 만든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렇게 예배를 실패하면 인생도 실패하고 신앙도 실패한다. 오늘 예배에서 앞으로 드리는 모든 예배를 성공하는 축복의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4. 예배를 성공하려면?
 
“예배를 성공하자!”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예배를 드리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예배에 성공하며, 어떤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시고 기쁨으로 그 예배를 열납하시는가? 예배의 기본은 찬송과 기도와 말씀과 감사이다. 그래서 예배를 성공하려면, ⑴ 찬송에 성공해야 한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찬양을 드려야 한다. 성경엔 수많은 찬양의 방법이 기술돼 있지만, 여덟 번째 찬양시편(Eighth Psalm of Praise)인 시편 98편에서는 성도들이 무엇보다도 즐겁게, 큰 소리로(Joyful noise and loud noise; 시 98: 4, 6, 8), 박수를 치면서, 모든 악기를 다 동원하여 찬송을 부를 것이라고 했다. 성군 히스기야는 음부가 주께 사례하지 못하고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오직 산 자(The living) 살아있는 자만이 주께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다고 했고(사 38: 18-19) 시편저자도 “내 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讚頌)하리이다”(시 119: 175)고 했다. 그렇다. 즐겁게 큰 소리로 박수치면서 힘 있게 찬송하는 것은 영적으로 살아있는 사람만 할 수 있다. 영적으로 죽은 자는 그렇게 찬송 부르지 못한다. 그래서 죽은 사람의 찬양은 하나님이 거들떠보지도 않으신다. 우리의 찬양이 하나님께 열납되는 찬양이 되기를 축원한다. 
 
⑵ 기도에 성공해야 한다. Pray, Prayed, Prayer(기도하다, 기도했다, 기도)등 기도란 단어를 444번이나 기록하고 대표적인 기도를 221개나 소개한 성경은 하나님이 열납하실 기도, 기도에 성공하는 방법, 응답되는 기도의 비밀을 아홉 가지로 기록했다(9 conditions of answered prayer) 
 
① 하나님을 믿으라(Have the faith of God; 롬 4: 17, 히 11: 3) ② 기도에 확신 없는 말이나 명확치 않은 표현을 사용치 말라 (Pray: say in no uncertain terms what you want; 막 11: 23-24, 마 17: 20, 21; 21-22, 요 15: 7) 기도제목이 정확하고 확실하게 하라 ③ 당신이 소원하는 것에 하나님의 뜻의 한계나 기도응답 자격의 제한을 두지 않는 믿음을 가져라(Have limited faith without qualifying and limiting God's will or what you want; 막 11; 23-24, 9: 23) ④ 마음에 의심을 거부하라(Refuse to doubt in the heart(막 11: 23, 마 17: 20, 약 1: 5-8) ⑤ 내가 구한 것을 이미 주신 것으로 믿어라(Believe that whatever is asked will be given; 마 7: 7-11, 17: 20, 히 11: 6) ⑥ 구한 것은 이미 이뤄주셨음을 믿어라(Believe that whatever is asked is already granted; 마 17: 20, 막 11: 24, 요일 5: 14-15) ⑦ 구하는 것이 이뤄지기를 권세를 가지고 명령하라(Be authoritative and command to come to pass what is asked; 막 11: 23-24, 마 17: 20, 막 9: 23) ⑧ 내가 소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믿어라(Believe that what you want is God's will; 막 11: 24, 요 15: 7) ⑨ 일상생활에서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 마음을 깨끗하게 하라(Have a clean heart and life with God and man; 막 11: 25, 요일 3: 22-23) 당신의 기도가 죽은 신 앞에 주문을 외우는 헛된 기도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기도로 기도하는 것마다 예수이름으로 응답받는 역사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⑶ 말씀에 성공해야 한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에발 산과 그리심 산 계곡이 흔들릴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함성을 지르며 아멘을 했다(신 27: 11-26)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수문 앞 광장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두 손을 높이 들고 아멘, 아멘을 외쳐서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야훼하나님을 경배했다(느 8: 1-6) 히 4: 2절에서 바울은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치 아니함이라”고 함으로 출애굽한 사람 중에 가나안 입국을 실패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을 화합치 않았기 때문이며, 장차 천국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도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을 화합치 않는 자들이라고 경고했다. 그렇다. 하나님말씀을 들을 때, 믿음을 화합하여 ‘아멘’으로 화답하는 성도가 말씀에 성공하는 성도이다. 설교를 들으면서 잡담하거나 딴 생각을 하거나 졸거나 편지를 쓰거나 손톱을 깎거나 문자 보내는 것은 말씀 실패다. 설교를 들으면서 아멘 한 마디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것도 말씀 실패다. 말씀에 성공하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⑷ 감사에 성공해야 한다. 입술의 감사도 성공하고 물질감사, 예물감사, 헌금감사에도 성공해야 한다. 무엇보다 헌금은 정성 없이 급하게 예배시간에 이 주머니 저 주머니 저울질해 드리지 말고 미리미리 준비할 것이다. 그리고 부득이한 사정으로 전 주일 빠진 사람은 전주일과 금주의 주일헌금 십일조 감사 선교헌금들을 함께 드려야 하고, 일천번제도 빠진 주일을 합산해서 정성껏 드릴 것이다. 어찌하든 당신의 헌금을 하나님이 열납하시도록 드려야 한다. 만에 하나, 당신의 헌금이 주보엔 기록돼도 하나님이 외면하신 헌금이라면 당신은 헌금에 실패한 감사실패의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은 밭에 죽은 씨를 뿌린 사람처럼 거둘 축복이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헌금감사에 성공하여 물질이 필요할 때마다 하늘 창고, 복의 문을 열어 마음껏 축복을 누리며 사는 역사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⑸ 무엇보다도 예배성공은 주일성수와 시간엄수에 있다. 예배의 날인 주일을 철저히 지키는 것과 예배시간을 철저하게 엄수하는 것이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눈먼 것, 저는 것, 병든 것을 제물로 바친 것을 책망하며 ‘그것을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이런 자들은 저주를 받으리라(Cursed be the deceiver; Cursed be the swindler; 말 1: 8, 14)고 질책했다. 그렇다. 주일은 지켜도 되고 빠져도 되는 날이 아니다. 예배시간은 늦어도 되는 시간이 아니다. 
 
당신의 성공과 실패, 자신과 가정과 자녀와 사업 그리고 신앙의 성공과 실패는 예배성공과 실패에 달렸다. 오늘까지의 나의 예배는 아벨의 제사처럼 성공한 예배인가, 아니면 가인의 제사처럼 실패한 예배인가? 예배실패는 지난 날로 족하다. 더 이상의 실패는 안 된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도, 자녀들을 위해서도, 가정과 사업을 위해서도, 그리고 당신의 경건한 신앙생활과 수준 높은 삶을 위해서도 예배는 성공해야 한다. 주일성수와 예배시간 엄수에서 출발해 예배에서 찬송과 기도와 말씀과 감사에 성공하여 우리의 의로움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얼마 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한 홈리스 할머니가 사망하자 큰 뉴스가 됐었다. 당시 신문과 TV 매스컴은 ‘100세가 넘는 나이에 사망했으니 장수한 할머니다, 집 없는 홈리스로 거지생활을 했는데도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 자녀나 친척이 없어 시청에서 장례를 맡게 됐다’는 할머니의 죽음보다는 ‘이 할머니가 홈리스로 살았지만, 실제로는 4채의 집과 많은 현금과 보석을 갖고 있던 부자 할머니였다’는 것이 뉴스의 초점이었다. 이 할머니는 이처럼 많은 재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길거리에서 무시를 받아가며 구걸을 했고 쓰레기통을 뒤져 연명을 했었다. 
 
이 할머니에게 가까운 친구가 있었는데, 이 할머니가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친구는 여러 번 ‘제발 그렇게 살지 말라’고 조언을 했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돈은 좀 더 어려울 때를 대비해서 모아 두어야 한다”며 “할 수 있을 때가지 자기는 홈리스 생활을 하겠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홈리스 부자 할머니가 죽음을 맞은 것이다. 그렇게 되자 아무 연고가 없던 홈리스 할머니의 엄청난 재산은 국고로 귀속돼 버렸다. 평생 홈리스로 살며 구걸생활을 하면서 힘들게 모은 돈을 한 푼도 써보지 못하고, 그리고 누구에게 물려주거나 종교단체나 사회단체에 기부도 못한 채 몽땅 국고로 귀속된 것이다. 
 
오늘, ‘앞으로 다가올 어려운 때를 대비해서 돈을 모았던’ 홈리스 할머니처럼 ‘앞으로 어느 날, 언젠가는 예배에 성공하겠다’며 여기까지, 한주 두주, 1년 5년 10년을 마귀에게 속아 예배실패로 ‘가인의 실패의 삶’을 살아온 성도 여러분, 더 이상 마귀에게 속지 말자. 오늘 예배부터 성공하는 예배를 드리자. 예배실패에 인생성공과 하나님 축복은 없다. 예배성공만이 인생성공 신앙성공이다. 오늘 이후 당신이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의 모든 주일예배들이 아벨의 제사처럼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예배가 돼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며 육체가 강건해지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기독뉴스(www.KidokNews.net)


김엘리야 목사 (워싱턴주기도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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