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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05월08일 17시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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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기적치료의 삼대 비밀
          예수 기적치료의 삼대 비밀     마 9: 27-31      5. 4. 14
 
1961년 1월 19일, 성령을 받기 위해 여섯 시간 반 동안 부르짖으며 기도하다가 성령세례를 받은 후,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시작해 많은 은혜를 받고 여러 가지 신비체험을 하다가 신학생이 된 64년부터 설교전도사로 사역을 했고, 68년부터 개척교회를 시작해 지금까지 46년 동안 목회를 하는 동안에, 신약 700여독과 구약 600여독을 하게 하시고, 대략 10만 시간의 성경연구를 하게 하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며 성령님의 인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난 46년 동안에 2300여 번의 주일설교와 4000여 번의 수요, 금요설교를 하게 하셨고, 15000번 이상의 새벽설교까지 합쳐 대략 20000여 번 설교를 했는데, 설교준비를 통해서 나 같은 미말의 목사에게 수많은 감격적인 은혜체험과 영적인 신비체험을 하게 하심은 하나님의 긍휼이며 예수님의 사랑임을 고백한다.
 
40여 년 전, 에녹이 “그가 죽으면 쏟아지리라”는 이름의 아들, 므두셀라를 낳고 홍수심판을 생각하면서 야훼하나님 신앙을 시작하여 믿음으로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죽음을 보지 않고 산 채로 하늘로 들림 받아 휴거승천(창 5:21-24절)한 말씀에 붙잡혀 므두셀라를 연구하다가 기뻐서 일어나 서재를 이리저리 다니며 춤을 춘 적이 있었다.

성경대로 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았으니, 므두셀라 369세에 그의 손자 노아가 세상에 태어난 것이고, 노아 500세 때에 하나님이 노아에게 “앞으로 120년 후에 홍수로 세상을 심판할 것이니 너는 잣나무로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셨으니 그때가 므두셀라 800세 때였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한 노아가 심혈을 기울여 방주 짓기를 서두르자 100년이 되기 전에 거대한 방주가 끝났는데, 하나님은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월 10일 여덟 식구와 짐승들을 방주로 모두 들어가게 하고 방주 문을 걸어 잠그신 후, 일주일 후인 2월 17일부터 홍수심판을 시작하셨다.

그렇다면 심판 날을 120년에서 20년을 단축하신 것인데 놀랍게도 그해는 천지창조와 아담 창조 후 1656년이 되는 해로 므두셀라가 향년 969세로 그가 죽은 해였다는 것이다. 홍수심판이 20년이 감축되므로 므두셀라의 죽음과 홍수심판이 동시에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가 죽으면 쏟아지리라”는 하나님의 예고대로 므두셀라가 죽자마자 홍수심판이 시작된 것이니 므두셀라의 죽음은 노아 600세 되던 해, 1월 1일에서 2월 10일 사이였다.

그리고 자기보다 5년 전에 먼저 죽은 그의 아들 라멕은 므두셀라의 임종을 보지 못했고, 손자 노아에 의해서 장례가 치러졌는데, 노아는 므두셀라의 장례를 치르자마자 방주로 들어갔고 방주에 들어간 후 7일 만에 홍수가 시작됐다. 당시, 설교준비 중에 이것을 깨닫게 된 나는 너무 기쁘고 흥분이 돼 서재에서 일어나 춤을 추었었다. 
 
그날 이후에도 수십 년 동안 성경연구와 설교준비를 하면서 성령께서 오묘한 말씀의 비밀들을 많이 깨닫게 해주시고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해주실 때마다 방안에서 혼자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는 횟수가 많아졌었는데, 특히 고희(古稀)를 앞둔 요즘에도 말씀을 읽거나 연구하다가 우물 파는 사람이 굴착기로 땅을 파면서 돌가루먼지만 보다가 지하암반이 뚫리고 지하광천수가 솟아오르면 환호성을 발하듯, 하나님 말씀의 비밀들이 섬광처럼 나의 뇌리를 강타하고 새롭게 깨달아지는 은혜가 자주 임하여 그때마다 탄성을 지르고 기뻐하는 일이 자주 있고, 젊었을 때처럼 왕성한 의욕으로 설교준비를 할 수 있게 축복하심에 감사를 드린다.
 
본문은 한 달 전인 지난 4월 8일(화), 뉴저지 에벤에셀 교회와 기도원 설립 부흥집회 중에 강사숙소에서 매일의 일과로 성경을 읽다가 수천 볼트 고압전기에 감전되듯 충격적인 은혜를 받고 두 주먹을 불끈 쥐게 했던 말씀이다.

사실 본문은 50여 년 동안에 내가 수백 번을 읽었던 평범한 말씀이다. 그런데 그날, 다된 죽이 밥솥 이쪽저쪽에서 끓는 물방울을 만들어 동그랗게 위로 솟았다가 터지고 다시 만들었다가 터지듯 그리고 아이들이 장난감 Button(누름단추, 장식)을 누르면 물건이 튀어나오듯, 성경에서 갑자기 본문말씀이 튀어나와 내 눈으로 빨려 들어오고 마음에서 “예수 기적치유의 삼대비밀”이란 제목으로 소용돌이를 치며 가슴에 자리를 잡고 떠나질 않아 여러 번을 되풀이 읽다가 나의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들었다.
 
                       예수의 기적치유 삼대비밀
 
두 소경이 고침 받아 눈을 뜬 본문 말씀 직전의 기록인 마 9: 18-26은 ‘열두 해 혈루 병 앓던 여인의 치료와 죽었던 열두 살 소녀의 다시 살아난 기적사건의 기록’이고, 본문 이후의 기록인 마 9: 32-34는 ‘말 못하는 벙어리의 기적적인 치유사건 기록’이다. 지금까지 나는 본문을 한 가지 사건으로만 깨닫고 은혜를 받아 설교했고 네 가지 사건을 하나씩 다루어 설교를 해왔었는데, 그날 나는 본문을 전후한 ‘예수님의 네 가지 연속적인 치료사건’을 읽고 묵상하다가 탄광굴에서 석탄을 채굴하던 광부가 예기치 않게 노다지 금맥을 발견하듯 “예수 질병치료의 삼대비밀”과 “성도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세 가지 비밀”의 노다지를 발견한 것이다. 
 
오늘 내가 당하고 있는 여러 가지 질병들, 십년 이십년 삼십년을 고생하는 고질병과 불치의 만성병, 아무리 약을 쓰고 병원을 찾아가도 차도가 없는 난치병,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나와 자식까지 대를 이어 가족을 괴롭히는 각종의 혈통적인 유전병, 의사마다 진단과 처방이 틀려 돈만 버리고 고생하는 원인불명의 모든 질병을 예수님을 통해서 치료받을 수 있는 세 가지 비밀, 그리고 예수님의 기적으로 끝이 안 보이는 고난의 터널 속에 갇힌 삶이 광명을 보고, 사업이 풀릴 듯 풀릴 듯 했다가 다시 난마처럼 얽히고 일이 될 듯 될 듯했다가 다시 실타래처럼 엉키는 불통의 삶이 완전하게 자유 함을 얻으며, 싸움과 미움이 떠날 날이 없는 부부갈등의 불행과 가정불화의 비극이 예수로 말미암아 기적적으로 치유되고 행복해지는 비밀은 무엇인가?

입신출세하고 성공해서 날마다 기름진 산해진미를 먹고 고급 옷을 입으며 삶의 환경이 좋아도 참 행복이 없는 무미건조한 무의미의 삶이 예수님 말씀의 기적으로 의미와 보람이 있는 삶이 될 수 있는 비밀은 무엇인가? 
 
   1. 당신자신의 믿음이다
 
열두 해를 혈루병 앓던 여인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사경을 헤매고 있는 응급환자, 야이로의 딸을 고치러 가시는 예수님, 그래서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Urgent) 상황에서 수많은 군중에 휩싸여 발걸음이 늦어지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와 “저분의 옷자락만 만져도 내 병이 나을 것이다”란 믿음을 가지고 젖 먹던 기운을 다하고 사력을 다해 군중을 헤집고 예수님께 가까이 와서 그 옷을 만졌다가 병 고침의 기적을 체험했고, 그 혈루병여인을 고치는 사이에 사경을 헤매던 딸이 죽어서 낙심했던 야이로는 모든 것을 단념하고 포기하려고 할 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Be not afraid, only believe!-Don't be afraid any longer, only believe; 막 5: 36)는 예수님의 격려를 듣고 용기를 얻어 믿음을 찾았을 때, 죽었던 딸이 살아나는 축복의 기적을 체험했다.
 
이렇게 12년 동안 불치병인 혈루로 고생하던 여인이 기적적으로 병 고침을 받은 것은 그녀 자신의 믿음 때문이었고, 사경을 헤매다가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 영원세계로 갔었던 열두 살 소녀가 요단강을 되돌아와 다시 살아난 것은 그녀의 아비 회당장의 믿음 때문이었다. 오늘도 당신의 믿음은 기적을 만들어 낸다. 
 
성경시대에 예수님이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신 때는 ① 병자자신의 믿음 때문이었다(12년 혈루 병의 여인과 사마리아인 문둥이(눅 8: 48, 17: 19)등 다수의 병자들이 자신의 믿음으로 고침 받았다) ② 보호자의 믿음 때문이었다(중풍병자의 네 친구; 막 2: 1-12, 가나안 여인의 믿음; 막 7: 24-29, 벙어리 귀신들린 청년의 아비; 막 9: 17-28) ③ 안수자의 믿음 때문에(벳새다 소경의 치유사건; 막 8: 22-26) ④ 안수하는 자나 기도 받는 자가 믿음이 없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예수이름 때문에!(For His name's sake ; 요 9: 3, 시 23: 3, 겔 20: 9, 22) 그렇다. 오늘도 당신자신의 믿음, 당신을 위해 기도해주는 보호자의 믿음은 육신의 질병치료뿐 아니라 인생의 많은 문제를 해결해주는 기적을 가져온다. 자신의 믿음과 보호자의 믿음으로 기적적인 치유와 기적적인 축복사건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축원한다.
 
그러면 믿음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please Him)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For he who comes to God must believe that He is, and that He is a rewarder of them who diligently seek Him)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 6) 
 
그렇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기본적조건, 반드시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은 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계신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믿음은 사단마귀와 세상 모든 사람들도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약 2: 19) 그래서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것’은 구약시대에 선지자들을 통해 알려지신 하나님과 마지막 때에 아들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히 1: 1, 2) 하나님의 실존적 존재,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을 가리킨다. 교인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지 않고 교회를 다닌다면 그것은 일반인과 똑같은 종교생활을 하는 것이고 신자생활을 하는 것일 뿐 참 성도의 믿음생활은 아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믿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⑵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상(常)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 ‘찾는 자’의 헬라어 에크제투신은 Diligently seek God‘(“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하나님을 찾는 자”)란 뜻이지만 구체적으로는 ① “부지런히, 공들여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 Seek diligently; 6절) ② “예상치 못한 반대의 결과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낙심치 않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 Seek after; 행 15: 17, 롬 3: 11) ③ “애쓰고 공들여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 Seek careful; 히 12: 17) ④ “하나님을 열심히 알아보는 사람”; Inquire diligently; 벧전 1: 10) ⑤ “하나님께 자녀의 권리를 당당하게 요청하고 청구하는 사람”; Require; 눅 11: 50-51; 거지는 문 좀 열어달라고 구걸하지만 아들은 ’문 열라‘고 큰 소리치고 문을 두드린다)을 의미하니 하나님을 찾는 자는 “세상의 반대와 부정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열심히 구하고 찾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리고 ’상주시는 분‘(Rewarder, 미스다포도테스)은 “보상해주시는 분”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참 믿음이란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임을 믿고, 우리가 하나님께 나올 때마다 하나님이 상 주실 것을 기대하는 것을 가리킨다. 오늘 믿음으로 예배에 나온 당신에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질병들을 치료해주시는 상, 문제해결의 상, 기적을 체험하는 상, 기도응답의 상, 부부문제와 가정문제의 염려거리를 없애주는 상, 내가 바라고 꿈꾸며 기도하는 좋은 상들을 주실 줄 믿는다. 
 
그런데 우리 믿음은 시대와 나라, 환경과 직업 그리고 신분과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른 믿음이 될 수 있다. 그만큼 믿음은 다양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아벨이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듯, 다른 사람보다 더 낫게 예배드리는 것을 자신의 믿음으로 정한 성도도 있고, 므두셀라의 홍수심판을 생각하면서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자신의 믿음으로 삼는 성도도 있으며, 야훼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심판경고와 방주제조 명령을 순종했던 노아처럼 하나님약속을 믿고 두려움으로 경외하는 것이 자기믿음인 성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 말씀을 듣는 즉시 순종하는 것과 상급을 위한 시험을 받을 때마다 감사하는 것을 자기믿음으로 정한 성도, 사라처럼 어떤 불행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미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으로 자신의 생각을 고정시킨 믿음의 성도, 이삭과 야곱과 요셉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언어, 생산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믿음의 성도, 바로의 명령을 무서워 않았던 아므람과 요게벳 부부처럼 최악의 위험한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 모세처럼(히 11: 24-29) ① 달콤한 세상유혹을 과감하게 거절하는 믿음 ② 상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수와 복음과 교회를 위해 당하는 고난을 기뻐하는 믿음 ③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같이 하여 참고 인내하는 믿음 ④ 이해가 안 되지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구원계시를 믿고 유월절과 피 뿌리는 결례를 정한 믿음 ⑤ 말씀을 믿고 사람의 계산을 떠나 바다로 들어가므로 홍해를 건넌 모세의 믿음 같은 믿음, 하나님의 말씀대로 여리고 성을 돌던 여호수아처럼 약속만을 믿는 믿음, 목숨을 걸고 정탐꾼 살몬을 영접하고 순종하므로 가족을 구원시킨 라합처럼 평생 동안 주의 종들을 섬기는 것을 자기믿음으로 지키는 성도도 있고,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의 믿음(히 11: 32)을 자신의 믿음으로 정하고 사는 성도도 있다. 
 
그 외에도 히 11: 33-38절의 말씀처럼 여호수아에서 사사시대와 다윗에 이르기까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겨’(카테고니산토: “정복하다”) 이집트에서 유프라테스 강까지 영토를 확장했듯 정복자의 믿음을 가진 성도, 믿음으로 ‘의를 행했던’ 의로운 사사들과 왕들처럼 나라를 의롭고 바르게 통치하는 것을 자기믿음으로 삼은 정치인, 사자들의 입을 막고 살아난 다니엘과 사자를 죽인 다윗과 브나야 같은 담대한 믿음(단 6: 17-22, 삼상 17: 34-37, 대상 11: 22)의 성도, 왕의 우상숭배 명령보다 풀무 불을 선택했다가 ‘불의 세력을 멸하고 살아났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같은 용맹한 믿음’(34, 단 3: 19-23)의 성도, 이세벨의 칼날을 피한 엘리야(왕상 19: 2)와 이세벨의 아들 여호람의 칼날을 피한 엘리사(왕하 6: 31)와 여호야김의 칼날을 피했던 예레미야(렘 36: 19, 26)처럼 죽음과 위험의 칼날까지 이기고 피할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의 성도, 기드온(삿 6: 31)과 삼손(삿 16: 28-31)과 히스기야(왕하 20장, 사 38장)와 에스더(Clement 1서 55: 3)처럼 연약한 가운데서 믿음으로 강하게 돼 민족과 나라를 구원하는 성도와 전쟁에서 원수들의 진을 물리치는 용맹한 믿음의 장군들, 사르밧 과부(왕상 17: 17-24)와 수넴 여자(왕하 4: 18-37)와 나인 성 과부(눅 7: 11-14)와 마르다와 마리아(요 11장) 도르가(행 9: 36, 41) 그리고 부족하지만 1978년에 아들이 죽었다가 살아나게 한 김목사처럼 믿음으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은 믿음의 성도도 있다.
 
그다음 장차 있을 부활의 날에 더 좋은 부활을 얻기 위해 믿음으로 악형과 고문을 당하고(35하) 희롱과 채찍질을 당하는 성도, 믿음으로 결박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는 시험을 받는 성도도 있으며, 예레미야(Tertullian, Scorpion Antidote 8; Jerome, Against Jovinian 2. 37)와 스가랴(대하 24: 21, 눅 11: 51)처럼 돌에 맞아 죽는 시험을 당하는 성도, 이사야처럼 톱에 썰려 죽는 성도, 예언자 우리야(렘 26: 23)와 야고보(행 12: 2)처럼 장렬하게 칼날에 죽임을 당하는 믿음의 성도도 있고, 더 좋은 부활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는 검소한 생활의 성도,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며 핍박과 박해를 묵묵히 참고 사는 성도도 있다. 
 
이렇게 지구촌 성도들의 믿음은 화려함과 승리에서 초라함의 극치까지, 죽음의 칼날을 피함에서 칼날에 죽임 당하기까지, 혁혁한 전쟁의 이김에서 내일이 없는 방황까지 천태만상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믿음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는 믿음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열두 해 혈루 병 여인의 병 고침과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기적과 축복이 그들의 믿음으로 받았듯 당신의 믿음으로 병 고침과 문제해결의 기적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2. 예수께 불쌍히 여김 받는 자가 되라
 
27-31에 기록된 두 사람 소경이 눈을 뜬 두 번째 기적은 ‘예수님이 불쌍히 여겼을 때 나타난 기적이다. 그렇다. 우리를 괴롭히는 각종 질병들이 고침 받고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며 난마(亂麻)처럼 얽힌 문제투성이의 부부문제와 사업의 문제, 법적인 문제들이 해결 받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을 때이다.

내가 십년 동안 모아도 갚지 못할 빚, 부자가 한번 봐주면 한순간에 해결되듯 만유의 주이신 예수님이 한번만 불쌍히 여기면 질병문제에서 죽음의 문제까지, 물질의 문제에서 정신과 영적인 문제까지, 형이상학의 문제에서 형이하학문제까지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예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성경시대에 예수님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신 때는 네 가지 상황에서였다. ⑴ 슬퍼서 애통할 때였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하시고”(눅 7: 13) 한국 사람들은 상여가 나갈 때, 호상차지(護喪次知)가 향두가(香頭歌)의 ‘북망산 멀다더니 냇물 건너가 북망산(北邙山)이로다’라고 선창을 부르면 상여꾼들이 ‘에여, 에여’를 후창하며 공동묘지로 가지만, 예수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부자는 돈을 주고 울음꾼들을 사서 대신 울게 했고, 가난한 사람은 가족들이 울었는데 나인성 과부는 가난해 아들의 시체를 따라가며 통곡을 했다. 
 
슬퍼서 우는 눈물이라고 다 똑같은 눈물이 아니다. 눈에서 일직선으로 조용하게 흐르는 눈물을 체(涕)라 하고, 얼굴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고 양쪽으로 갈라져 흐르는 눈물은 사(泗), 쉴 새 없이 펑펑 쏟아내는 눈물은 누(淚), 콧물과 눈물이 범벅이 돼 흐르는 눈물을 이(痍)라고 한다. 
 
나인성과부의 통곡눈물은 세월호 비극으로 자녀들을 먼저 보낸 부모들의 누(淚)와 이(痍)의 “쓰라린 상처로 콧물눈물이 범벅이 돼 흐르는 눈물”이었을 것이다. 나인성과부의 누(淚)와 이(痍)의 피눈물을 보시고 불쌍히 여겨 죽은 아들을 살려주신 예수께서 당신의 눈물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역사가 일어나길 축원한다. 눈물 없는 고난보다 나의 눈물로 문제해결이 된다면, 눈물을 아끼지 말라. 당신의 눈물은 예수기적의 기폭제며 문제해결의 윤활제다. ‘우는 것이 어떤가?’ 
 
⑵ 예수를 가까이 찾아갔을 때다(마 14: 13-14, 15: 29-32) 놀라운 사실은 오병이어로 장정 5천명을 먹인 물질의 기적과 칠병이어로 4천명을 먹인 물질축복의 기적은 모두 사람들이 벳새다 빈들과 갈릴리해변 산으로, 예수님이 계신 곳을 찾아서 예수님께 가까이 갔을 때 일어났다.

그렇다. 오늘도 예수의 치료기적, 예수의 물질축복의 기적은 예수님을 찾아서 성전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가까이 하며, 예배를 가까이 하는 사람에게 일어난다. 예수님을 가까이 하고 교회를 가까이 하며 말씀을 가까이 하므로 물질축복의 기적, 사업이 잘되는 축복, 막혔던 것이 뚫리고 풀리는 기적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⑶ 내가 이웃을 불쌍히 여길 때이다. 예수님은 마 5: 7에서 “긍휼(矜恤)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 (Blessed are the merciful, for they shall receive mercy)고 했다. 이웃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만이 예수님의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 
 
⑷ 불쌍히 여김을 간구할 때이다. 예수님은 병든 사람들이,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Son of David, Have mercy on us; 마 9: 27, 20: 30, 31, 막 10: 47, 눅 18: 38, 39) “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O Lord, Son of David, Have mercy on me; 마 15: 22)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Lord, Have mercy on my son; 마 17: 15)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God, Be merciful to me, the sinner; 눅 18: 13)를 부르짖어 기도했을 때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병을 고쳐주셨다. 
 
성경시대에 병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소리를 지르며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며 부르짖어 기도했는데 왜 우리 시대엔 기도소리가 모기소리처럼 작은가? 물에 빠져 살기위해 허우적대는 사람이 체면 차려서 얌전하고 교양 있게 “여보세요, 나 좀 살려 주세요” 하는가? 배고픈 아이가 품위 있게 “사랑과 자비가 많은 나의 어머니여, 내게 젖을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하는가?

살아계신 하나님과 치료자 예수님께 불쌍히 여겨주심을 목소리를 높여 부르짖어 기도하므로 육체의 질병고침의 기적, 상처투성이인 마음과 삶이 치료받는 기적, 지긋지긋한 부부싸움과 미움들이 해결되는 기적들이 나타나기를 축원한다.
 
   3. 귀신을 축사(逐邪)하라 
 
오늘 본문은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가 예수님께 고침 받은 기록이다. 마태는 예수께서 벙어리 귀신을 쫓아내므로 병이 고침을 받아 벙어리가 말을 하게 됐다고 했고, 의사 누가는 예수께서 귀신들려 앓다가 꼽추가 된 여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자 그녀가 고침을 받고 허리를 폈다(눅 13: 10-13)고 했다.

그렇다. 세 번째 질병치유 기적의 비밀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다. 물론 사람의 병은 모두가 다 귀신의 역사는 아니다. 나이가 들어 노쇠현상 때문에 자연적으로 생기는 병에서 몸 관리를 잘못해서 생기는 병, 병균이 침입하거나 자연발생하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옮겨서 생기는 병, 유전이나 실수로 생기는 병 등 병의 원인은 다양하다.

그러나 의외로 귀신이 주는 병도 많다. 심지어 예수님 시대엔 귀신들려 벙어리 되거나 귀신들려 귀머거리가 된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사람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도적놈 귀신’(요 10: 10)이 주는 질병은 성경시대보다 훨씬 많고 다양할 것이다. 
 
성경시대에 공생애 3년 반 동안에 42번 이상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의 기적 중에서 반 이상이 귀신을 쫓아내 병을 고친 이적이었다. 예수님은 요 14: 12에서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일도 할 것이라”고 하셨고, 12사도와 70문도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고 하셨으며(마 10: 1, 눅 9: 1)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These signs shall follow them who believes)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In My name they shall cast out demons) 새 방언을 말하며(They shall speak with new tongues) 뱀을 집으며(They shall take up(pick up) serpents)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으며(If they  drink any deadly poison(thing), it shall not hurt them)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They shall lay hands on the sick, and they shall recover; 막 16: 17-18)고 하셨다. 그래서 주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믿는 나와 여러분은 ‘귀신들을 쫓아내는 특별 권세’를 받은 사람들이다. “나는 예수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귀신을 쫓아내는가? “예수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내는 ‘축사(逐邪)방법과 축귀(逐鬼)방법’은 무엇인가?

⑴ 야고보는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를 피하리라”(Resist the devil and he will flee from you; dir 4: 7)고 했고, 사도베드로는 “믿음을 굳게 하여 마귀를 대적하라”(Resist the devil, stedfast in the faith; 벧전 5: 9)고 했다. 그렇다. 우리 믿음을 굳게 하고, 강하게 해서 예수이름으로 마귀와 귀신을 대적해야 마귀들이 우리에게서 줄행랑치고 도망간다. 유대의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처럼(행전 19: 13-16) 약한 믿음이나 농담으로 귀신을 대적하면 대책 없이 벌집 건드린 사람처럼 큰 봉변과 낭패를 당한다. ⑵ 기도와 금식으로 영권(靈權)이 무장돼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간질과 벙어리 합병 환자를 고치지 못한 원인을 묻는 제자들에게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종류의 귀신(鬼神)은 나가지 않는다”(This kind does not go out except by prayer and fasting; 마 17: 21, 막 9: 29)고 하셨다. 군인이 총을 쏴 대적을 사살할 수 있도록 총에 실탄을 장전해 놓듯 귀신 쫓는 성도는 영적권능으로 무장돼 있어야 한다. ⑶ 예수님도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By the Spirit of God) 귀신을 축귀(逐鬼)하셨듯(마 12: 28, 눅 11: 20) 항상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가 돼야 한다. 성령이 충만한 능력의 성도만이 예수이름으로 귀신의 능력을 이기고 쫓아낼 수 있다. ⑷ “제자들이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었듯” 먼저 사람들의 죄를 회개케 한 후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쳐줄(막 6: 12- 13)것이다 
 
⑸ 이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당신의 언어인 말로 귀신을 쫓아내라”는 것이다. 마태는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자들을 다 고치셨다”(Jesus cast out the spirits(demons) with His word and healed all who were sick; 마 8: 16)고 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구약에 기록된 말씀들을 외우면서 귀신들을 쫓아내거나 병자들을 고쳤다는 말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당신의 말, 당신의 언어”로 귀신을 축귀하고 병자들을 치료하셨다는 말씀이다. 우리도 예수이름으로 우리의 말로 귀신들을 쫓아내고 병들을 몰아낼 수 있다.
 
천지와 우주만물 창조의 기록인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열 번이나 ‘가라사대’ (God said,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로 창조역사를 나타내셨다. “빛이 있으라, 빛이 존재하라”(Let there be light), “물과 물이 나눠져라”(Let it separate the waters from the waters)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마른 땅이 드러나라”(Let the waters below the heavens be gather into one place, and let the dry land appear)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 the earth and subdue it)...
 
하나님의 입에서 한 문장의 언어가 발설될 때마다 무질서한 광대무변한 우주에 질서들이 정돈됐고, 아무 것도 없던 무의 세상이 하나씩 존재하는 유의 세상으로 변했다. 언어의 권세, 말의 능력이다. 그런데 예수님도 말로 귀신들을 쫓아내셨고 말로 병자들을 고쳐주셨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말로 귀신들을 축귀하고 병들을 고치며 문제들을 해결하는 권세를 주셨다. 할렐루야!
 
예수님과 사도들이 귀신들을 쫓아내고 질병들을 고치며 기적들을 나타낼 때, 사용했던 언어는 하나같이 ‘꾸짖음의 명령’이었다. 예수님은 ① 바다를 꾸짖어 잠잠케 하셨다(마 8: 26, 막 4: 39, 눅 8: 24) ② 질병귀신을 꾸짖어 쫓아내셨다(마 17: 18, 막 1: 25, 9: 25, 눅 4: 35, 9: 42) ③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꾸짖어 고쳐주셨고(눅 4: 39) 죽은 나사로시체를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요 11:43) 명령하므로 살리셨다 ④ 베드로(행전 9: 34, 40)도 죽음을 꾸짖고 명령해서 살렸고, 병자를 고쳤으며. 바울(행전 16: 18)도 귀신들을 꾸짖고 명령하여 쫓아냈다. “꾸짖고 명령하여 귀신을 쫓아내자!” “꾸짖고 명령하여 병들을 고치자” 
 
“꾸짖다”(Rebuke), 에피티마오는 문자적으로는 “절대적이며 무제한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내리는 권위의 명령”(A command of authority and absolute confidence in God)이란 뜻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모욕하고 퍼붓는 저주명령”을 의미한다. 귀신과 질병을 똥처럼 여기고, 염병처럼 미워하고 암처럼 치를 떨며 증오하면서 귀신을 꾸짖고 명령하여 쫓아냈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낼 때,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내가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I command to you, come out of him and do not enter him again; 막 9: 25)고 하셨다. 
 
아무리 착한 작가라도 더러운 똥을 주제로 고상한 시를 쓰거나 노래가사를 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 당신을 괴롭히는 질병과 저주의 귀신을 똥처럼 더럽게 생각하고 예수이름으로 대적해 꾸짖어야 귀신이 당신과 당신가정과 사업에서 떠난다. 귀신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한 귀신은 절대로 안 떠난다. 병이 고침을 받고 문제가 해결되길 원하는 성도는
 
‘나와 우리 가정을 질병과 가난으로 괴롭히는 귀신아, 예수이름으로 떠나갈 지어다!, 나에게 미운 마음을 주는 귀신아, 떠나가라! 나를 피곤케 하는 더러운 귀신아, 나를 게으르게 하는 더러운 귀신아, 예수이름으로 내게서 떠나갈 지어다! 나의 급한 서류를 해결하지 못하게 하는 방해 귀신아, 예수이름으로 떠나갈 지어다!...를 살아계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권세 있게 꾸짖고 명령하라. 
 
여러분의 권세 있는 말이 공기의 파장을 뚫고 날아가 떨어지는 곳마다, 예수이름으로 명령하는 여러분의 말이 부딪히는 곳마다, 예수이름으로 선언되는 내 입술의 말들이 화살처럼 꽂히고 박히는 곳마다, 한 길로 들어왔던 귀신들이 등을 보이고 소리를 지르며 일곱 길로 쫓겨나가고 각종질병들이 고침을 받으며, 뜨거운 물에 얼음 녹듯이 문제들이 해결되며, 썰물이 밀려나가듯 저주들이 가정과 가문과 사업에서 밀려나가는 기적들이 일어나길 축원한다.        

김엘리야 목사(워싱톤 주기도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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