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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04월17일 17시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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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 장애 극복한 오은별 양의 희망이야기
“장애는 제게 불행이 아니에요, 단지 조금 불편할 뿐이죠.”
 
맨해튼 스타이브슨트 고등학교 12학년에 재학 중인 오은별(19세)양이 뇌성마비 장애를 극복하고 권위 있는 뉴욕타임스(NYT) 장학생으로 선발되며, 콜럼비아 대학에 합격하여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인큐베이터 사고 후 ‘장애아’라는 이름을 얻다
 
오은별 양은 7개월이 조금 넘은 미숙아로 태어났다. 그런데 인큐베이터에 옮겨져 치료를 받던 중에 저산소증으로 인한 뇌의 손상을 입게 되었다. 두 돌이 지나도록 제대로 기어 다니지도, 걷지도 못하자 부모님은 오 양을 데리고 큰 병원을 찾았다. 신체 오른쪽 부분이 마비되었던 오 양은 의사로부터 뇌성마비 장애 2급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장애아’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성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오 양과 그녀의 가족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오 양은 철없는 친구들의 놀림을 묵묵히 감수해야 했고, 누구에게도 편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그녀를 거북이라고 놀리며 절룩거리는 걸음걸이를 흉내 내곤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담임선생님께서 왼손잡이인 학생들을 오른손잡이가 되도록 체벌하며 훈련을 시켰는데, 오른손이 불편하여 왼손으로 글씨를 쓰던 그녀에게도 똑같이 체벌을 했었다. 그 후 오 양의 상황을 자세히 알게 된 교사는 그녀를 배려했지만, 특별대우를 받는다는 이유로 친구들의 따돌림은 더욱 심해졌다. 외로움과 따돌림, 아이들의 놀림 이 어린 그녀에게 점점 깊은 상처로 자리 잡아 갔다.
 
새로운 도전…뉴욕
 
불편한 시선과 괴롭힘으로 힘들어하던 오 양은 얼른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교사였던 부모님은 딸의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워하셨고, 그녀를 고쳐주고 싶어하셨다. 그러나 오 양에게 가장 간절했던 것은, 수술적인 치료보다도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는 것이었다. 결국 그녀는 간신히 부모를 설득하여 아홉 살이 되던 해, 미국에 있는 이모 김용경 씨 곁으로 가게 되었다.
 
그녀의 미국 생활은 매우 새로웠다. 먼저 오 양을 가장 힘들게 했던 동정어린 시선이 없었고, 학교 친구들은 자발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누구도 그녀를 장애인이라 놀리지 않았고, 흉내내지도 않았다. 또한 학교에서도 전문적인 도움을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남들보다 약한 체력과 느린 손놀림, 불편한 걸음으로 두 배, 세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행복했다. 원래 책 읽기와 글쓰기, 언어능력에 두각을 나타냈던 터라 공부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무던히 애써야만 했다.
 
그렇게 4년 간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던 그녀는, 가족들이 떨어져 지내는 것을 반대하던 부모님의 뜻에 따라 7학년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를 다시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돌아간 한국은 여전히 그녀에게 냉랭했다. 누구도 그녀와 어울리기를 원치 않았고, 그저 부담스런 눈길로 쳐다볼 뿐이었다. 
 
오 양은 “누구든지 도움을 구걸하지 않고, 정당하게 바라고 손 내밀 수 있는 그런 사회이길 바랬지만, 다시 돌아간 학교에서 여전히 저는 이방인이었습니다.” 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오 양은 2011년, 다시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교육자였던 이모의 보살핌과 도움으로 오 양은 스타이브슨트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선생님들의 사랑과 친구들의 격려로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매사에 적극적인 오 양을 눈여겨보던 영어 교사 캐서린 플레처가, 역경을 딛고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을 위한 뉴욕타임스의 장학금 프로그램을 소개했고, 그녀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당하게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이로 인해 대학 진학 시 연간 최고 7500달러의 장학금과 부상으로 노트북이 주어진다.
 
가장 가까이에서 오 양을 돌보았던 이모 김용경 씨는 이 모든 일을 겪으면서, “은별이를 보면 하나님의 특별한 손길을 느낀다. 마음이 아플 때도 있지만 이 모든 환경이 주님이 은별이에게 주신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한다.
 
평안으로 벗은 장애의 굴레
 
모태신앙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그녀였지만, 한창 사춘기 시절을 보낼 때는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었다. ‘왜 나는 이런 모습으로 살아야 하나? 더 이상 나아질 수는 없는 걸까?’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 그녀가 겪었던 고통은 말할 수 없이 컸다. 부모님 역시 힘든 대수술을 감행하면서까지 그녀의 육체를 되돌리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과정 중에 늘 함께하시며 나보다 더 마음 아파하시는 주님을 경험하면서 그녀의 마음에 평안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내게 뜻하신 바가 있으며 나에게 이미 좋은 것들을 많이 주셨다는 고백이, 더 이상 뇌성마비 장애인이 아닌 오은별로 당당히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
 
약한 사람들을 돕는 변호사가 되고 싶어요
 
오은별 양은 콜럼비아 대학에서 정치 외교학을 공부할 예정이다. 한국에서 장애인이란 이름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열심히 공부하여 사회적 약자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변호사가 꿈인 그녀는 절망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한다. 아직도 헤쳐 나가야 할 어려움이 많이 있겠지만, 이제 그녀는 희망을 꿈꾼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그것으로 차별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 혼자가 아닌 주님과 함께 펼쳐나갈 미래가, 바로 그녀가 꿈꾸는 행복한 희망이다.
 

 
<한제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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