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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03월20일 07시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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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라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Starbucks)는 짧은 기간에 크게 성공한 비즈니스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1971년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영어교사 제리 볼드윈과 역사교사 제브 시글, 작가 고든 바우어 세 사람이 동업하여 작은 구멍가게로 시작한 스타벅스 커피 점은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이 됐는데, 그중 스타벅스 코리아는 1999년 이대 앞에 1호점을 개점했고 2008년에는 250호점까지 개점했는데 한국에서만 연간매출액이 1,700억을 번다고 하니 세계적으로는 천문학적으로 돈을 버는 기업일 것이다.

스타벅스의 성공원인은 ‘4개의 S’에서 찾아볼 수 있다. ① Speciality(원두의 특수성)이다. 커피 구매담당자들은 특수한 원두를 확보하기 위해 위험을 무릎 쓰고 중남미의 오지를 찾아다니며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험산준령을 넘는다. ② Selection(메뉴의 다양성)이다. 커피 종류가 다양하다 ③ Service(주문방식)이다. 스타벅스의 주문 시스템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전형적인 ‘빨리 빨리’다. 나는 스타벅스 커피 중에서 카푸치노를 즐겨 마시는데 뽑는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는 커피인데도 손님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문하러 왔다가 지루해서 돌아가는 손님이 거의  없을 정도로 서비스를 잘 해준다. ④ 무엇보다도 Space(편안한 공간)이다. 최근 뉴욕의 어느 McDonald(햄버거가게)에서는 그 가게의 10년 이상 단골손님을 ‘너무 오래 앉아 있다’고 쫓아냈다가 수백만 불 벌금을 물게 됐는데, 스타벅스 Coffee-Shop은 손님들에게 눈치를 주지 않는 것이 장점이다. Shop 안에서  어떤 사람은 컴퓨터 켜 놓고 사무를 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책을 펴놓고 공부를 하는데도 손님들이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맘껏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해준다. 이렇게 스타벅스는 Speciality, Selection, Service, Space로 성공한 기업이 됐다. 주기도문교회가 설교와 예배의 특수성과 다양성, 우리 교회를 처음 찾거나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을 향한 서비스와 편안함을 주므로 은혜 안에서 성장하며, 여러분이 하고 있는 먹는 가게나 경영하는 사업 그리고 결혼생활도 음식의 맛과 다양성, 양질의 서비스와 서로에게 편안함을 주므로 번창하고 발전하며 행복이 증가하는 역사들이 일어나길 축원한다.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라!

사람들이 느끼는 인생의 절망과 비극 중에 하나는 살아남기 위하여 사막을 벗어나려고 있는 힘을 다해 밤새도록 걸었는데 아침에 보니 다시 제자리에 있는 것인 것처럼, 살아보려고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을 해도 아무 결과가 없는 헛수고일 때이다. ‘일은 죽도록 했는데 손에 남는 것이 없다, 일거리는 많아 열심히 일했는데 일이 끝나고 나면 은행잔고가 마이너스이다, 비싼 돈 들여 좋은 약을 복용했는데 병의 차도가 없다, 전문가를 만나 부부상담도 받고 노력도 많이 했는데 가정행복이 달라진 것이 없다, 돈은 많이 벌었는데 갚아야 할 빚은 눈덩이처럼 늘어만 간다...’ 이러한 헛수고는 인생을 절망케 하며 좌절케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헛수고의 최후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한다.

1917년 한강의 남북을 이어주는 한강대교가 처음으로 개통되고 장안의 명물로 자리를 잡자 서울시민의 즐거움은 대단했었다. 그러나 몇 년 후인 1920년대 초부터, 한강대교는 서울의 자랑거리가 아니라 투신자살자의 명소로 둔갑하므로 골칫거리가 돼버렸다. 그래서 1922년 용산경찰서는 자살자의 마음을 돌릴 표어를 현상공모 했는데, 그때 공모된 표어 중엔 “고진감래라니 죽지 말고 살아 있소”라는 읍소형부터 “명사십리 해당화는 명년 춘삼월 다시 피지만 인생 한번 죽어지면 다시 오지 못하리라”란 가사풍 까지 다양했다. 심지어 인도교 난간엔 “잠깐만 참으시오”라는 뜻의 일촌대기(一寸待機)란 팻말까지 붙여 놓았었고, 한강다리 위에 “인사상담소(人事相談所)”까지 설치했다. 서울시가 자살방지에 그토록 부심했지만 효과는 별로 없었다.

한강대교가 하나였을 때도 투신자살을 막지 못했지만 다리들이 많아질수록 투신자살이 점점 더 늘어간다고 하는데 그래서 2006년 이후 24개의 다리들로 증가된 한강대교에서 발생한 투신 사고는 무려 2475건이 된다고 한다. 하루 평균 1. 45건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다. 한강에서의 투신 사고뿐 아니라 해마다 한국에서 자살하는 사람의 수는 증가해 최근에는 26분에 한 사람 꼴로 가히 세계제일이다.

1920년대 자살원인은 생활고와 염세(厭世), 실연(失戀)이었는데 90년이 지난 오늘날의 자살원인도 살아가기가 힘이 든 생활고(生活苦)와 삶이 덧없다고 느끼며 세상을 비관하는 염세(厭世),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버림 받음에 상처받아 삶을 포기하는 실연(失戀), 그리고 심지어는 평소 자기가 연모하던 사람이나 존경하던 사람이 자살했을 때에 그 죽음을 동경해 동반 자살하는 베르테르 신드롬까지 자살원인도 점점 다양해지지고 있다. 더 심각하고 충격적인 것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해 구원받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고 말하는 주일학교교사와 찬양대원 집사 권사 장로 심지어 목사까지 자살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3년 3월 6일, 캘리포니아에서 활발하게 목회를 잘하던 목사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서머나 교회는 목사가 사망했음에도 후임목사를 청빙하지 않은 채, 1년 가까이 목사의 생전 설교영상을 틀어놓고 ‘동영상 예배’를 드리므로 교계의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소속교단은 동영상예배를 중단하고 담임목사를 청빙하라고 종용했지만 교회는 LA의 본 교회 뿐 아니라 김성수목사가 지교회로 세운 산타 바버라, 뉴저지, 서울 반포의 서머나 교회 등 각 지역에서 여전히 죽은 목사의 설교영상을 틀고 교회를 운영하면서 “김 목사의 사인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데려가시는 방법은 많다”며 버텼다. 이것을 이상히 여긴 신문과 방송이 몇 개월 동안 심층조사를 한 결과 ‘서머나 교회 김성수목사의 사인은 심장마비가 아니라 목을 매 죽은 자살(自殺)인 것’으로 판명이 났다. 이것이 지난 21일 발표되자 현재 LA교계는 큰 충격을 받고 있다.

1988년, 서울대 재학시절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복음성가 가수로 활동하다가 신학을 졸업하고 목사가 된 후, 성공적인 목회자로 이름을 날리면서 탄탄대로를 달리며 잘 나가던 중견 목사가 ‘헛수고와 허무의 우울증’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까지 하는 세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헛수고의 절망과 무의미의 절망’은 자살한 목사만의 절망이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 모두의 절망이다.

신학자 폴 틸리히의 말대로 “인간이 예수를 통해 구원을 받지 못하면 인류의 삼대절망인 죄책감의 절망, 무의미에 대한 절망, 죽음에 대한 절망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없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困苦)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그러므로 수고로 저희 마음을 낮추셨으니 저희가 엎드려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Therefore He brought down their heart with labor, they fell down, and there was none to help; 시 107: 10-12)고 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지존자의 뜻을 거역하기 때문에 하는 일마다 헛수고며 손대는 것마다 헛수고며 도움을 받는 것마다 헛수고란 말이며 내가 비참하게 엎드러져도 돕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헛수고의 절망’을 운명으로 받아드리고 그 절망을 가슴에 안고 살아야만 하는 연약한 존재며 버림받은 존재인가? 우리에게 ‘헛수고의 좌절과 절망’을 이길 길은 없는가? 그렇지 않다. 본문은 우리에게 그 문제의 해답을 제시한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고기를 잡으려고 밤을 새고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이 되도록 그물을 던져 투망질을 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여 ‘헛수고의 좌절’에 빠져있던 일곱 제자들에게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Cast the net on the right-hand side of the boat; 6상)고 하셨다. 그래서 베드로를 비롯한 일곱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졌는데 그물이 물속으로 빠져 들어감과 동시에 고기가 많이 잡혀 그물을 들어 올릴 수 없을 정도가 되므로 제자들이 육지에 정박해 있는 다른 배들을 끌고 와서 고기그물을 육지로 끌어올려 잡힌 고기를 세어보니 팔뚝만한 월척활어(越尺活魚) 베드로고기(Peter Fish)가 일백 쉰 세(153) 마리나 됐다.

갈릴리 디베랴바다에서 있었던 “일백 쉰 세 마리 기적 사건”의 본문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셔서 12번이나 부활의 몸을 보이신 사건 중, 일곱 번째 현현으로 제자들에겐 세 번째로 보여주신 사건이다(그리스도의 12번 현현(顯現): 12 appearances of Christ); ① 막달라 마리아에게(Mary Magdalene; 막 16: 9, 요 20: 15-16) ② 무덤에서 여인들에게(Women at the tomb; 마 28: 9) ③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에게(Two disciples on the road to Emmaus; 눅 24: 13-31) ④ 베드로에게(Peter; 눅 24: 34, 고전 15: 5) ⑤ 도마를 제외한 열 제자에게(The ten; 요 20: 19) ⑥ 도마를 포함한 열한 제자에게(The eleven; 요 20: 26) ⑦ 일곱 제자에게(The seven; 요 21: 1-22) This was after second Sunday ⑧ 갈릴리의 어떤 산에서 열한 제자에게(The eleven on a certain mountain in Galilee; 마 28: 16) ⑨ 신임 사도로 선출된 맛디아를 포함한 열두 제자에게(The twelve, including Mathias; 고전 15: 5, 행 1: 26) ⑩ 500여 형제들에게(500 brethren; 고전 15: 6) ⑪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에게(James, the Lord's brother; 고전 15: 7, 갈 1: 19) ⑫ 모든 사도들에게(All the apostles; 고전 15: 7, 막 16: 19-20, 눅 24: 50-53, 행 1: 3-12, 26) 예수님은 부활 후 승천하시기까지 40일 동안에 대략 570명에게 영광스런 부활의 몸을 보여주셨다)

이렇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몸을 보여주신 것은 부활을 통하여 인간의 물질문제와 경제적인 문제, 정신적인 문제에서 영적인 문제 그리고 죄의 문제에서 죽음의 문제까지 인류의 모든 문제해결이 예수 안에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본문 1절의 ‘나타내셨으니’(Showed), 파네루는 “밝히다, 증명하다, 분명하게 하다”란 의미로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자신의 권능과 영광을 만천하에 분명하게 증명했다”(Manifested His power and glory after His resurrection)는 뜻이다. 인류의 마지막 원수인 죽음을 정복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바다에서 고기를 못 잡은 헛수고로 실의에 빠져있던 제자들에게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고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진 제자들이 월척활어 153마리를 잡아 올린 것은 바로 부활의 주, 살아계신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렇다. 우리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는 것이다. 당신의 그물을 당신의 배 오른편에 던지라. 지금까지 살아온 ‘헛수고 사업의 그물’에서 실패만을 거듭해온 운명의 그물까지, 그리고 허울 좋은 종교생활의 껍데기만 움켜쥐고 있는 신앙의 그물에서 영적체험도 없이 빈털터리로 신앙생활을 한 영혼의 그물까지, 그리고 형식적으로만 전도사 목사 선교사로 사명자인 체하며 외식과 가면의 탈을 쓰고 이웃과 자신을 속이면서 살고 있는 텅텅 비어있는 사명의 그물까지...그 모든 그물을 당신의 배 오른편에 던지라!

오늘 예배가 디베랴 바닷가의 일곱 제자들처럼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므로 문제해결을 받는 예배가 되기를 축원한다. 그렇다면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진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그물을 오른편에 던지는 것인가?

1. 우매(愚妹)자, 미련한 자,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
지상최고 지혜의 왕이었고 철인이요 대저술가며 사상가였던 솔로몬은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편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편에 있다”(A wise man's heart is at his right hand, but a fool's heart at his left; 전 10: 2)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오른편, 오른쪽, The right, The right side’는 “의(義), 능력, 보호”등을 상징적으로 암시했고(시 16: 8, 110: 5, 121: 5, 사 41: 13, 마 25: 31-46) ‘왼편, 왼쪽, The left, The left side’는 “불의와 연약함” 등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그래서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편에 있고, 우매하고 어리석은 자의 마음이 왼편에 있다”면,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는 말은 ‘인생 삶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의 사람이 되라! 반대로 우매한 자, 미련한 자,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래야 당신 인생이 빈 그물의 헛수고로 끝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리석은 자, 우매한 자, 미련한 사람은 죽는 날까지 평생 동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빈 그물의 헛수고’로 비참한 일생을 살다가 끝날 사람이다.

그렇다면 어리석고 미련하며 우매한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인가? 시편 14편을 중심해서 성경에 207번이나 언급된 어리석은 사람(Fool, Foolishly, Foolish) 우매하고 미련한 사람의 20가지 특성(20 Traits-characteristics-of fools)을 알아본다.

①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存在)를 부인한다(Deny the existence of God; 시 14; 1) 이런 사람은 자기를 낳아준 생명의 출처인 부모의 존재를 부인하는 자들과 같은 자들이다 ② 부패(腐敗)하고 오염된 타락의 삶을 산다(Live corrupt lives; 1중) ③ 그들의 소행이 구역질나며 혐오스럽도록 가증하다(Do abominable works; 1하) ④ 지각이 없이 짐승처럼 산다(Are without understanding; 2절) ⑤ 하나님을 무시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살며(Ignore God-do not seek Him(2절) 자기 길을 굽게 한다(잠 19: 3) ⑥ 죄의 욕망만을 추구할 뿐 선을 행하지 않는다(Are not good, not one; 1, 3절, 시 69: 5의 우매(愚昧), 이웰레트는 “도덕적 결함”, “죄의 욕구”를 가리킨다) ⑦ 하나님을 떠나 치우쳐 정도(正道)에서 벗어나 길을 잃은 채 산다(Have all gone astray from God; 3절) ⑧ 생활에서 악인과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Have become filthy in life; 3절) 개가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같이 미련한 짓을 거듭거듭 행한다(잠 26: 11) ⑨ 야훼하나님께 대해 무지(無知: 지혜가 없다)함으로 산다(Live in ignorance of God; 4절, 신 32: 6, 시 49: 13) ⑩ 하나님의 백성을 망하게(먹으며 산다) 한다(Destroy God's people; 4절) ⑪ 결코 하나님께 기도나 간구를 하지 않는다(Never pray; 4절) 대신 우상 앞에 절하며 길흉을 묻고 죽은 신에게 기도를 한다 ⑫ 가난한 자를 억압하고 탐학(貪虐: “탐욕이 많고 포악함”)과 뇌물을 좋아한다(Oppress the poor; 5절, 전 7: 7) ⑬ 교만하여 자기스스로 높은 체 한다(Exalting himself; 잠 30: 32) ⑭ 그 마음속에 분노와 시기로 채워진 채 산다(Vexation and anger; 욥 5: 2) ⑮ “우매자는 손을 거두고 자기 살을 먹느니라”(전 4: 5) 이것은 게을러서 손 놀리기를 멈추고 빈둥거림으로 그 결과 스스로 파멸한다는 뜻이다. ⑯ 그들의 삶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연락(宴樂)과 쾌락만을 추구한다(전 7: 4) ⑰ 선지자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하나님께 받은 계시나 음성이 없이 자신의 인기를 끌고 영광을 받으려고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선지자는 우매한 선지자들’이라(The foolish prophet who are following their own spirit and have seen nothing; 겔 13: 3, 렘 14:14-16, 23: 16, 29: 21)고 지적했는데, 오늘 유명한 목사나 기도원원장 부흥사들 중 이런 사람들이 많은 것은 조심할 것이다 ⑱ 동방의 의인 욥은 ‘고통스런 시련과 시험 중에서 감사치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욥 1; 22, 2; 10)을 신앙인의 어리석음과 미련함이라고 했다 ⑲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과 약속을 더디 믿는 것’(눅 24: 25)을 미련함이라고 책망했다 ⑳ 적그리스도의 칠년대환난 박해를 통과하지 못하므로 지상 재림하실 예수님의 혼인 잔치연회(피로연)에 참석치 못하는 자들(마 25; 2, 3, 8, 계 19: 9)이 미련한 자들이다.

그렇다.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경외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라, 미련한 자가 되지 말라, 우매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말라‘는 말씀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은혜시대에서 장차 지구촌에 다가올 미증유의 대환난 시대까지에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2. 자기 죄를 회개하고 거룩한 신앙고백의 사람이 되라

어떤 노목사가 병원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그는 교회의 집사인 변호사와 의사 두 사람에게 병원으로 와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두 집사가 병원에 도착하자 즉시 노목사의 병실로 안내됐다. 그들이 병실에 들어갔을 때, 목사는 두 손을 내밀면서 침대의 양쪽으로 각각 앉으라고 청한다. 그리고 노목사는 두 사람의 손을 꼭 쥐면서 숨을 내쉰다. 그리고 만족한 듯이 천정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한 동안 세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변호사와 의사는 담임목사가 그의 마지막 임종에 자기들을 불러준 것에 대해 감동돼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궁금했다. 왜냐하면 목사는 오랜 기간 동안 교회에서 두 사람을 좋아하는 기색을 한 번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변호사와 의사는 가끔 교회를 갈 때마다 노목사가 자기들을 향해서 했던 지루하고 모독적인 설교를 기억하고 있다. 노(老)목사는 설교를 통해서 탐욕과 이기심에 대해서 설교하면서 변호사와 의사를 심판받을 죄인 취급을 했고 자기들 스스로를 벌레같이 느끼게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평소 목사님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는데 임종시에 자기들을 불러서 의아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변호사 집사가 물었다. “목사님, 왜 우리 두 사람을 불렀지요?” 그러자 임종이 다가오는 노목사는 숨을 몰아쉬면서 없는 힘을 다하여 허약하게 말했다. “예수님도 두 강도 사이에서 죽었어요. 그래서 나도 예수님처럼 천국으로 가고 싶었기 때문이지요”라고 말한 후 임종했다. 그날 십자가 좌우에 두 강도 취급을 받은 변호사 의사 집사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복음서에는 예수님의 골고다 십자가 처형장면이 모두 기록됐다(마 27: 38, 막 15: 27, 눅 23: 33, 39-43, 요 19: 18) 특히 누가는 예수님이 두 강도 사이에서 돌아가신 기록을 통해서 한 강도의 구원기적을 부각시킴으로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외경 도마복음에 의하면 이때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왼편에 달린 강도 이름은 게스타이였고, 오른편에 달린 강도의 이름은 데스마이였다고 하는데 오른편 강도 데스마이는 마지막 구원의 기회를 선용함으로 영생의 축복을 받았고 왼편 강도 게스타이는 끝까지 자기고집을 세우다가 지옥심판의 자리에 머물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Augustine)은 눅 23: 39-43을 설명하면서 “이 십자가는 최후의 심판의 자리를 예견한 것으로, 인류는 예외 없이 그리스도 앞에서 좌편이든 우편이든, 왼편이든 오른편이든 어느 한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음을 가르친다”고 주석했다.

오른편 강도 데스마이는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에게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Are You not the Christ? Save Yourself and us(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39절)며 비방하는 왼편 강도, 게스타이를 꾸짖으며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당연하지만 이분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며 자기들의 십자가처형은 당연한 죄의 값이라며 지은 죄를 통렬히 회개했고, 하나님이 인격적 존재이심을 믿고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거룩한 고백을 했으며, 마지막으로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Jesus, remember me when You come in Your kingdom; 42절)라며 예수님의 나라가 이 세상나라가 아니라 천국이며, 예수님만이 사람을 천국으로 데려갈 수 있는 구주이심을 고백하면서 자기의 영혼을 부탁하는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예수님은 우편 강도 데스마이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Today you shall be with Me in Paradise; 43절)고 하시며 그 영혼을 낙원으로 데려가셨다.

그러므로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은 자기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자기 영혼을 예수님께 부탁하던 우편 강도, 데스마이가 있는 그 오른쪽에 당신 인생의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이다.

그렇다. ‘빈 그물의 헛수고’가 진정한 축복으로 채워지려면, 지금 내가 당하는 고난들이 더 큰 축복을 위한 시련이기도 하지만 나의 죄 때문인 것을 깨달아 회개하고, 주일 성수 제대로 못한 죄, 십일조 도적질한 죄, 기도하기를 게을리 한 죄, 남을 미워한 죄, 성전을 가까이 하지 못한 죄, 말씀을 등한히 여기고 멀리한 죄, 불의와 타협한 죄...죄들을 회개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며 거룩한 신앙의 고백을 하라는 말씀이다. 그리할 때 ‘수고로 마음을 낮추시고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음을 절규하던 시편저자’가 그 근심 중에서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 얽은 줄들을 끊어주셨다고 고백한 것처럼 승리와 구원과 축복의 고백이 있을 것이다.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므로 새로운 고백들이 당신에게 있기를 축원한다.

3. 정결(淨潔)하라 그리고 거룩하게 헌신(獻身)하라

구약에선 문둥병자가 고침을 받거나 정결케 되거나 죄를 지은 사람들이 죄 사함을 받고 정결케 되기 위해서는 수양을 제물로 드린 후, 제사장은 수양을 잡아 그 피를 정결함을 받을 사람의 우편 귓부리와 우편 손 엄지가락과 우편 발 엄지가락에 발라야 했고(레위 14: 14, 17, 25, 28) 이미 피를 바른 오른편 귓부리,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에 수양의 기름을 또 발라야 했다. 그리고 대제사장 아론과 그 자손들이 제사장으로 임직 받을 때도 위임식제물로 수양을 잡고 수양의 피를 아론과 그 아들들의 오른 귓부리와 오른손 엄지와 오른 발 엄지에 발라야 했다. 이것이 문둥병에서 깨끗함을 얻는 마지막 예식이었고, 제사장 임직의 정결예식이었다.

그러므로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는 말은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 그리고 거룩하게 헌신하라”는 말씀이다. 하박국 선지자는 “주는 눈이 정결하사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신다”(합 1: 13)고 했고, 다윗은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시 51: 7) 고백하므로 자신의 죄를 씻겨서 정결케 해달라고 울부짖으며 기도했으며, 찬양대장 아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신다”(시 73: 1) 고백했다. 그리고 동방의 의인 욥은 “내 손에는 포학이 없고 나의 기도는 정결하다”(My prayer is pure; 욥 16: 17)고 자기신앙을 고백했고, 선지자 이사야는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 성전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은 마땅히 스스로 정결케 해야 한다”(사 52: 11)고 경고했으며, 바울은 “내가 너희를 신랑이신 그리스도께 정결한 처녀로 중매했다”(고후 11: 2)하므로 마지막까지 신앙이 변질되지 말아야 할 것을 권고했고, “무엇에든지 정결하라”(빌 4: 8)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Keep yourself free from sin; 딤전 5: 22)며 “마음이 깨끗하고 정결해야 할 것”을 권면했다. 예수님의 마음이 신부인 교회를 향해 정결하신 것처럼 우리 마음이 신랑, 예수님을 향해 점도 없고 티도 없는 정결한 마음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그리고 정결한 마음에서 거룩한 헌신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도 물질도 몸도 마음도 영혼도 거룩하게 드릴 것이다. 시간 때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주일이기 때문에 예배에 참석하는 것도 아니다. 집사 권사 장로여서 체면 때문에 예배참석하고 헌금 드리며 마지못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다.

거룩한 헌신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님의 언약을 지키는 거룩한 헌신을 위해 부모와 형제와 자녀들까지 잊을 정도의 거룩한 헌신이다. 레위 지파는 이러한 헌신으로 238년의 저주 고리를 끊고 12지파 중에서 dbn일하게 태산처럼 축복의 자리에 우뚝 올라섰고(야곱 사망에서 요셉 사망까지 54년(창 37: 2, 41: 46, 47: 27, 50: 22)과 요셉 사망에서 출애굽까지 14년(출 13: 40, 갈 3: 14-17)과 광야 40년(신 1: 3, 33: 8-11)을 합치면 238년이 된다) 20년 가나안 학정을 당하던 이스라엘이 해방되고 40년 태평성세를 누린 축복도 ‘이스라엘의 즐거운 헌신“(삿 5: 2, 9, 31)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당신의 배가 빈 배가 안 되고, 당신의 그물이 빈 그물이 되지 않으려면,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야 한다. 배 왼편에만 던지던 헛된 그물질을 중단해야 한다. “스스로 정결해지고 전심을 다하는 거룩한 헌신”으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는 삶”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한다.

4. 어떤 상황에도 동요(動搖)치 말라

시성 다윗은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右便)에 계시므로, 야훼하나님이 내 오른편에 계시므로(Because He is at my right hand)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시 16: 8)고 노래했다. 들판의 목동시절부터 70세에 왕으로 죽는 날까지 흔들릴 일들이 많았던 다윗, 삶의 굽이굽이마다 검산도곡을 통과해야하는 전쟁터의 군인처럼, 수많은 경쟁자들과 먹고 먹히는 싸움을 해야 하는 사업가들처럼, 다윗의 생애는 그를 요동치게 할, 그를 흔들리게 할 일들이 많았다. 그러나 다윗은 고백하기를 “내가 야훼하나님을 내 앞에 모셨기에 그가 내 오른편에 계셔서 내가 요동치 않았다”고 했다. 사울이 21번이나 죽이려고 시도했을 때도, 압살롬이 반역하여 충실한 신하들이 배반하여 떠났을 때도, 아들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형제끼리 죽이고 죽는 난리 속에서도, 측근들의 반란과 배신 중에서도 ‘하나님이 오른편에 계시므로’ 다윗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것이 다윗을 만승천자 성군으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그렇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치 않는 사람, 어떤 문제 앞에서도 요동치 않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의 그물은 항상 활어월척 물고기로 출렁거린다.
요즘 한국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여주인공 전지현의 뛰어난 인기로 ‘천송이 신드롬’이 생겨 대유행이다. 천송이로 분한 전지연이 “눈 오는 날엔 ‘치맥’인데...”라는 대사 한 마디로 중국대륙에 ‘치맥’을 유행시키고, 남산 N타워를 연인들의 명소로 만들었으며, 그녀가 걸치고 입고 타고 쓰고 먹고 마시는 것마다 모두 유행으로 만들어 낸 힘이 ‘천송이 신드롬’의 실체다. 이것을 스타마케팅이라고도 부르는데, 전지현의 브랜드 가치만 3000억 원이고, 경제효과는 몇 조원이 된다고 하더니 급기야 ‘천송이노믹스’란 용어까지 등장시켰다.
     
전지현이 배우로 성공해 ‘천송이 신드롬’을 만들고 ‘천송이 노믹스’까지 만들어낸 것은 그녀의 ‘15년 발 연기’다. 전지현은 1999년 광고모델 데뷔 후 15년을 ‘발 연기’ 꼬리표를 달고 살았다. 그 꼬리표를 떼려고 그녀는 영화 ‘도둑들’에서 대역 없이 5층에서 뛰어내리고, 와이어에 매달린 채 건물을 탔다. 그리고 마침내 주사(酒邪)와 욕설, 능청맞은 무식과 천연덕스러운 내숭까지를 신드롬으로 바꿔낸 것이다.

‘15년 발 연기’는 말콤 글래드웰이 말한 ‘1만 시간의 법칙’과 통한다. 뭔가 잘하고 성공하려면 최소한 1만 시간 이상 한 우물을 파야한다는 법칙이다. 연예가에서 타고난 연기천재는 없고, 사업계에서도 타고난 사업천재는 없으며, 목사세계에서도 타고난 천재목사는 많지 않다. 뛰어난 연기자도, 탁월한 사업가나 정치가 예술가도 그리고 풍성한 영성과 황금의 입술로 영혼을 움직이는 설교를 하는 목사도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연예인의 15년 발 연기’나 ‘성공의 1만 시간 법칙’은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아직도 많은 것이 부족한 목사이지만, 김목사가 광대무변한 성경을 펼쳐서 방대한 망원경식 관조(觀照)와 조밀(稠密)한 현미경식 주해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은 50여 년 동안에 10만 시간 이상 성경을 연구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10년 미만의 목회와 100독미만의 성경을 읽은 목사들이 자신만만하게 설교하고 특히 계시록을 말하거나 가르칠 때는 조심스럽고 두려운 생각까지 들 때가 있다.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는 것은 크고 작은 일에 동요하지 말라, 어떤 상황에서도 요동하지 말라, ‘1만 시간의 법칙’과 ‘15년 발 연기’를 참조하라, 요셉과 다윗의 13년 훈련과 모세의 40년 훈련을 생각하라는 말씀이다. 장사가 잘 안 된다고 작은 시험에 쉽게 동요하고, 손님이 없는 작은 바람에 쉽게 흔들리며, 기도응답이 속히 없는 작은 어려움에 잠 못 이루며 쉽게 요동치 말고, 큰 바람에도 동요치 않는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5. 내 주님의 자리, 하나님의 우편(右便)을 생각하라

성령으로 감동된 다윗은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Sit at My right hand) 하셨다”(시 110: 1)고 했는데 그 예언 후, 예수님은 성육신으로 세상에 오셨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하신 다음, 실제로 지금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 앉아계시다(막 16: 19, 눅 22: 69, 24: 51, 행 2; 25, 35, 7: 55-56, 롬 8: 34, 골 3: 1, 히 1: 3, 13, 8: 1, 10: 12, 12; 2, 벧전 3: 22, 계 5: 6-8 등)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은 장차 휴거 성도를 하나님께 드리시고, 하나님의 일곱 인봉한 책의 일곱 인을 떼시면서 지상에 있을 칠년대환난을 주도하시고 휴거 성도를 데리시고 지상으로 강림하셔서 적그리스도와 악의 무리를 심판하신 후, 천년왕국을 세우신다.

그러므로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에 영적인 의미는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께 우리 삶을 All In(“전부를 포함하라”)하라는 말씀이다. 그 이유는 우리 육체는 십자가에서 죽었고, 우리 생명이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춰져 있기 때문이며, 우리 생명이신 예수님이 공중, 새 예루살렘으로 강림하실 때 우리도 예수와 함께 공중으로 휴거되어 들림 받은 후, 지상으로 재림하실 때 영광중에 함께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All-In하여 위엣 것을 찾는 삶, 하늘의 것을 생각하는 삶이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는 삶이다, 지상에서 이것만큼 확실한 투자는 없다. 우리 중에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므로 그날에 산 채로 들림 받는 휴거의 성도들이 많이 나올 수 있기를 축원한다.

6. 오른편, 양(羊)의 민족(民族)이 되라

마 25: 31-46은 ‘양과 염소의 민족 심판“ 기록이다. 예수님이 지상에 재림하실 때, 지구촌의 220여 나라와 전 세계 13548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과 부족을 양의 민족과 염소의 민족으로 나누어 심판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오른편에 있는 양의 민족에게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자들이여,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해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다“고 하셨고, 왼편에 있는 염소 민족에게는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저주를 내리셨다. 그리고 상황판단을 못하는 양과 염소의 민족들 모두에게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장차 성도들이 휴거한 다음, 지상에 있을 칠년대환난 때, 지구촌에 전쟁과 기근과 지진과 환산폭발의 자연재해와 산과 섬들이 없어지는 지각변동과 육지가 바다 속으로 사라지고 바다에서 대륙이 솟아오르는 지축변동의 대재앙들이 있으며, 하늘에서 추방돼 지상으로 내려오는 용과 사단마귀에게 권세를 받은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만행을 부리고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과 예수 믿는 기독교인들을 박멸하기 위해 핍박할 때, 2차 대전 때에 독일의 부자 쉰들러와 세계 도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들여 유태인들을 숨겨주고 살려냈던 것처럼, 대환난 때에 유태인들과 성도들을 숨겨주거나 살려주는 사람들을 양의 민족이라고 하신 것이다.

민족 심판에서 예수님이 구별하여 오른편으로 모이게 하실 양의 민족처럼, 대환난의 날에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인류 종말에 있을 비밀에 쌓인 하나님의 마지막 구원계획이다.

노아가 방주로 들어가기 전 “네 가족이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Take for yourself some of all food which is edible, and gather it to yourself; 창 6: 22)고 하심으로 방주에 머물던 377일(창 7: 10-11, 8: 13-14)과 홍수 후에 농사를 지어 곡식을 거둘 때까지의 먹을 양식을 준비했던 노아처럼, 지금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피난처가 될 요르단의 페트라 성, 암석동굴에 수백 만 명이 먹을 양식과 침구와 각종 의약품을 준비하고 있고, 세계 도처에서 유대인들과 성도들이 장차 일어날 환난을 대비하고 있으며,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들도 불원간에 다가올 환난 날을 예비하고 있다. 성도들의 휴거와 대환난은 피할 수 없는 성경의 예언이다.

2000년 전 디베랴 바다에서 새벽공기를 가르고 말씀하신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는 예수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 없는 우매(愚昧)자 미련한 자 어리석은 자의 삶을 살지 말고 범사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의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고,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거룩한 신앙고백의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며, ‘스스로 정결하라 그리고 거룩하게 헌신하라’는 메시지이고, ‘어떤 일에도 동요치 말라’는 메시지며, ‘내 주님의 자리, 하늘에 하나님 우편을 생각하며 살라’는 교훈이며, ‘환난의 날에 오른편, 양의 민족이 되라’는 메시지이다.

지금 당신의 그물은 고기가 가득 찬 그물인가, 텅텅 빈 헛수고의 그물인가? 언제까지 헛수고의 삶을 살 것인가? 언제까지 아무 유익 없는 왼편에만 그물 던지는 삶을 살겠는가? 오늘 이후 우리의 삶이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는 지혜로운 삶이 되어 나도 살고 이웃도 살리는 은혜와 축복들이 넘치기를 축원한다.
   
김엘리야 목사 (워싱턴주기도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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