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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03월10일 20시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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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첫 번째 만나준 여인, 하갈
최근, 가깝게 지내는 친구목사님이 한국에서 카톡으로 보내준 “만나야 할 10가지 사람들”을 소개한다. ① “카카오 톡 자료를 잘 보내는 사람”과 만나라. 그 사람은 항상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 ② “내일을 이야기하는 사람”과 만나라. 그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 ③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과 만나라 그 사람은 나를 치유해주는 사람이다. ④ “항상 확신에 찬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라. 그 사람은 기준 잡힌 인생을 사는 사람이다. ⑤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사람”을 만나라. 그 사람은 주위를 항상 따뜻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⑥ “아무리 작은 일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과 만나라. 그 사람은 작은 행복이 자주 일어나는 사람이다. ⑦ “생각만 해도 대단하다고 느끼는 사람”과 만나라. 그 사람은 시대를 이끌어 갈 사람이다 ⑧ “독서와 사색을 즐기는 사람”을 만나라. 그 사람에게는 항상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다. ⑨ “언제나 밝게 웃는 사람”과 만나라. 그 사람은 멀리 있는 복도 찾아오게 하는 사람이다 ⑩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과 만나라. 그 사람은 삶이 항상 풍요롭다...내게 유익이 되고 갈증을 풀어주는 청량제 같은 조언이어서 여러분께 소개했다.

예수께서 첫 번째 만나준 여인, 하갈

축구선수들이 어렵게 골을 넣거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가 일등을 하거나 테니스 선수가 접전 끝에 우승한 후, 첫 번째로 달려가는 사람은 대부분 감독이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 자기들을 선수로 선택해 키워주고 동고동락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했음을 감사하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의 어느 사람은 수많은 고통과 우여곡절 끝에 12년 만에 영주권을 받은 후, 제일 먼저 산타 모니카 해변으로 달려가 그리운 가족들이 있을 태평양 건너편을 바라보며, “여보, 나 영주권 받았어!”라고 외쳤다고 한다. 우리가 감격적인 일을 만났을 때, 제일 먼저 그 기쁨을 나누는 사람, 첫 번째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에겐 중요한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첫 번째로 하는 일은 모두 중요한 일이다.

38-9년 전, CA에서 고급차 캐딜락을 구입한 성도가 금식기도 끝내고 돌아오는 나에게 축복기도를 받고 나와 함께 시승(試乘)하려고 손도 안대고 일주일 동안 차고에 넣어두었던 기억이 새로운데, 그 성도뿐 아니라 지난 46년의 나의 목회에서 오늘까지 수많은 성도들이 큰 사업과 작은 사업을 개업할 때, 심지어 작은 식당이나 구멍가게를 시작할 때도 먼저 목사의 축복기도를 받고 시작하는 것은 자신들이 첫 번째로 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에 기록된 42번의 예수님의 기적 중에서 첫 번째 기적인 ‘물을 포도주로 만든 가나 혼인집 기적’과 42번의 모세의 기적 중에서 첫 번째 기적인 쓴물을 단물로 고친 ‘마라의 기적’(출 15: 22-25) 그리고 32번의 크고 작은 기적들을 행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 했던 엘리사가 첫 번째 기적으로 사람과 동물까지 자식을 낳지 못하게 하고 논밭전지의 토산(土産)까지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여리고의 죽은 물과 저주의 썩은 물(“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19하), 메솨 켈레트 ① “그 땅에는 소산이 없다” ② “주민이 아이를 낳지 못하다”)을 고친 기적’(왕하 2: 19-22) 등 예수님과 모세, 엘리사 세 사람의 첫 번째 기적이 모두 “물을 고친 기적”인 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교훈을 준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복음을 받아드리면 육체와 정신과 영혼의 질병이 고침을 받는다는 것이다. 사람의 몸은 70%가 물이다. 인간이 형성되는 최초시기인 자궁내수정란 때는 99%가 물이다. 막 태어났을 때는 90%, 완전히 성장하면 70%, 죽을 때는 약 50%정도가 된다. 그렇게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거의 물 상태로 살아간다. 그래서 물질적으로 볼 때 인간은 물이다. 따라서  질병은 몸속에 물이 썩고 병들었기 때문이며, 몸속의 물이 고침을 받아 육각수가 되고 청정수가 되면 병이 치료돼 없어지고 영적으로도 영혼 속에 출렁이고 있는 저주의 썩은 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하여 생수가 되면 모든 정신병과 영적인 질병들이 고침을 받는다.   
Open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대안의학을 전공한 에모토 마사루 박사는 “물은 답을 알고 있다”란 책을 통해 사람이 긍정적인 말을 하고 아름다운 생각을 품으며 좋은 음악을 들으면 몸속에 있는 더러운 물들이 고침을 받고 자동적으로 병도 고쳐진다는 학설을 주장했는데 그의 학설은 국제적인 반향을 일으켰고, 실제로 세계 도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청정(淸淨)육각수를 마시고 병을 치료받고 긍정적인 언어와 좋은 말을 사용하고 착하고 선한 마음을 갖고 좋은 음악을 들으므로 질병을 고침 받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음과 성령, 인간의 근본문제인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우리영혼을 희락으로 만족케 하며 마음을 즐겁게, 삶을 긍정적으로 살게 해주는 말씀과 성령의 역사는 ‘청정 육각수를 마시는 그 이상의 기적’으로 더러워진 우리 몸의 물들을 깨끗하게 고치고 육체의 질병들을 치료해 주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 이것이 모세, 엘리사,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의 교훈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당신 몸속의 물이 고침을 받고 육체의 질병들이 고침 받기를 축원한다.

1. 구약에서 첫 번째로 예수를 만난 여인, 하갈
구약과 신약에 등장하는 3,500-3,700명의 남자들과 4-500명의 여인들 그래서 대략 4,000여 명의 사람들 중에 첫 번째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본문의 주인공 하갈이다. 이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하갈이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갈을 찾아와서 만나주신 것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내가 백악관을 찾아가 오바마를 만나는 것과 미국의 대통령 오바마가 주기도문 교회를 찾아와 김목사를 만나는 것은 그 내용이나 격이나 Situation이 다르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갈을 찾아와 만나주신 것은 사건 중에서도 특종뉴스의 특별사건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하갈이 예수님을 만났는가?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던 신약시대도 아닌 구약시대에,  어떤 연유, 무슨 이유로 예수님이 하갈을 찾아가 만나주셨는가? 

⑴ 사람들에게 104번 나타난 천사들
성경에 294회나 언급된 천사(Angels)는 히브리어로 말라크, 헬라어로는 앙겔로스라고 부르는데, 히브리어 말라크는 “하나님을 대리하여 급하게 파견(파송)된 자”(To dispatch as a deputy)나 “통신 전달자”, “속달우편 배달자”(A messenger) 그리고 “대사”, “특사”, “사절”(Ambassador)이란 뜻이고, 헬라어 엥겔로스는 “소식이나 기별을 전하는 자”, “정보나 통지를 제공하는 자”(To bring tidings)와 “사자”, “전보배달원”(A messenger)이란 뜻이다. 천사(天使)란 이름의 의미대로, 성경엔 하나님과 예수님의 뜻을 전달한 천사들이 요한계시록에서 쉰 두 번(52번) 나타난 외에, 아브라함에게 세 번(창 18: 2, 22: 11, 15) 야곱에게 세 번(창 28: 12, 31; 11, 32: 1) 엘리야에게 네 번(왕상 19: 5-7, 왕하 1: 3, 15) 다니엘에게 다섯(5)번( 단 6: 22, 8: 16, 9: 21, 10: 5-21, 12: 5-7) 그리고 스가랴 선지자에게 일곱(7)번(슥 1: 8-19, 2: 3, 3: 1-6, 4: 1-5, 5; 5-10, 6: 4-5, 12: 8) 그리고 베드로와 바울과 사도요한에게 무려 104번이나 사람들에게 나타났다.

⑵ 구약에서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한국어 성경엔 모두 천사로 기록됐지만 영어성경엔 천사가 An angel(일반 천사)과 The Angel(그 천사)로 구별돼 기록됐다. 그래서 An angel과 The Angel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An angel의 일반 천사는 하나님에 의해 피조된 영적인 존재로(시 148: 2) 구원받은 성도들을 섬기라고 보낸 하나님의 심부름꾼들(Ministering spirits)이지만(히 1: 14) 특별천사인 하나님의 사자, 여호와의 사자(The Angel of God, The Angel of the Lord)는 하나님과 똑같은 분이신 하나님과 동격으로 묘사됐고(출 3: 2-12), 계시를 받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하나님으로 인식시켰으며(창 16: 13, 28: 16-22) 하나님만이 베풀 수 있는 축복을 사람에게 주셨고(창 22: 16-18)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하나님처럼 받으셨으며(삿 6: 16-20) 하나님의 역사를 자신의 역사로 언급하였다(삿 2: 1-4) 이것들을 종합해보면 The Angel의 특별천사, 여호와의 사자,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께 시중들고 성도를 섬기도록 창조된 일반천사들과는 또 다른 신적인 존재, 성자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탄생하신 이후엔 성경 어디에도 여호와의 사자란 말씀이 없다.
삼손의 아비 마노아에게 여호와의 사자(The Angel of the Lord)가 나타났다. 마노아는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자기에게 나타난 The Angel(rm 천사)에게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What is Your name?)고 물었다. 그러자 천사는 “어찌하여 이것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奇妙)니라”(My name is Wonderful; 삿 13: 18)고 대답하는데, 수백 년 후, 선지자 이사야는 기묘(Wonderful, 필리: “이해를 초월한”, “신비한”, “놀라운”이란 의미)가 장차 성육신하여 세상에 오실 예수의 이름(사 9: 6)으로 예언을 한다. 그러므로 구약에 40번 이상 나타난 하나님의 사자, 여호와의 사자, The Angel은 성육신 전 Theophany(신의 출현, 신의 현현)로 이미 지구촌의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던 예수님이시다. 중요한 것은 구약에 나타나셨던 예수님이 첫 번째로 하갈에게, 그것도 두 번씩이나 하갈에게 나타나 그녀를 만나주셨다는 것이다.

⑶ 하갈을 만나주신 예수님
성경시대에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을 찾아가거나 어떤 사람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신 때는 단 한 번도 우연(偶然)이 없었다.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시고 거기서 마귀(魔鬼)를 만나신 것에서 시작해, 갈릴리 해변을 찾아가신 것(마 4: 18) 세 제자를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신 것, 사마리아 수가성우물가에서 여인을 기다리신 것, 죽은 청년을 공동묘지에 장사지내기 바로직전 절묘한 시간에 나인 성에 가신 것, 여리고에서 삭개오를 만나신 것, 죽어서 장사 지낸지 나흘이 지났을 때 나사로 무덤을 찾아가신 것 그리고 제자들과 최후만찬을 나누신 마가의 다락방을 찾아가신 것까지 예수님의 3년 반 공생애에서의 발걸음은 어느 하나라도 우연한 사건이 아니었다. 모두가 계획된 발걸음이었고 의도된 사건들이었다.

하갈이 예수님을 두 번 만났다. 아니 예수님은 하갈을 두 번이나 찾아가 만나주셨다. 김목사가 여러분 집을 심방하거나 직장을 찾아가거나 사업체를 방문할 때, 아무 목적 없이 찾아가는 일이 없거든 하물며 하늘과 땅의 주인이요, 오대양육대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종 하갈과 그 아들 이스마엘을 찾아 저 광활한 지구촌 넓은 땅 중에서 사람도 살지 않는 메마른 광야, 뜨거운 사막바람에 들풀마저 말라버린 황량하고 척박한 가데스 광야들판(창 16: 14) 브엘-라해-로이(Beer-lahai-roi)와 바란 광야 들판을 두 번씩이나 찾아가셨다면 그 방문목적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4,000여 년 전 구약시대에, 예수님이 하갈을 그리고 하갈과 이스마엘 모자(母子)를 찾아간 데는 놀라운 삶의 비밀과 영적교훈이 있다.

김목사가 구운 오리 Peking Duck을 좋아한다고, 이준 집사부부가 벼르고 별러서 Olney에 있는 중국식당 Hunan에 갔다고 하자. 식당주인과 종업원은 우리를 우연히 지나가는 손님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식당을 찾아간 우리는 목사와의 친교와 대화를 나누고 대접하면서 축복을 받으려는 특별한 의도가 있다. 그렇다. 오늘 예수님께서 783,137단어로 이뤄진 책, 31,102절과 1,189 Chapters(장)이나 되는 방대한 책,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김목사를 통해 예수님이 하갈을 찾으신 본문을 가지고 당신을 찾아오시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으로 주기도문교회를 방문하신 목적이 있었고 다음주일에도 말씀을 통해 당신을 찾아오시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광야로 자신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난 하갈처럼 오늘 말씀으로 테이프와 인터넷과 웹사이트를 통해 당신을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를 축원한다. 

2. 예수님을 두 번 만난 하갈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하갈을 아브라함이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사라 사건으로 바로 왕이 선물로 준 여러 노비들 중 한 사람으로 추측하는데 동의한다(창 12; 16) 따라서 하갈은 이집트 바로 왕이 직접 하사한 처녀였기에 인물은 말할 것도 없이 팔등신 미모였을 것이며 그녀가 받은 교육수준이나 교양도 출중(出衆)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 집에 있었던 수백 명 남자 종들과 수십 명 여자 종들 중에서 하갈은 단연 군계일학의 존재였다. 그랬기에 사라는 많은 여종들 중에서 하갈을 시녀처럼 최측근몸종으로 선택해 자기를 섬기게 했고 그녀를 총애했다.

아브라함이 75세, 그 아내 사라가 65세 때,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고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이주해온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하시고 부부에게 아들 주실 것을 약속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다가 사라가 일흔다섯 살(75세) 할머니가 됐어도 아들이 없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85세 자신은 75세...이제 내가 아들 낳는 것은 불가능이다...’ 여러 날 고민하던 사라는 마침내 아브라함에게 시녀 하갈을 씨받이로 삼아 아들을 낳자고 건의한다.

당시 족장이나 부호와 같은 상류계층에선 부부간에 자식이 없을 경우, 집안의 대를 잇게 하기 위해 아내가 자신의 여종을 남편에게 첩으로 주어 후사를 보게 하는 것이 고대근동의 관습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태어나는 아기는 여종의 아들이 아니라 아내의 아들이 됐었다. 따라서 사라의 행동은 당시 생활 습속으로는 자연스러운 행위였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이러한 아브라함과 사라의 조급한 행동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한 불신앙의 죄이며, 하갈의 인격과 생명을 도구화한 욕심과 횡포였다. 

⑴ 예수님을 첫 번째 만난 하갈
우여곡절 끝에 사라의 몸종 하갈은 아브라함의 첩이 되고 임신을 한다. 그리고 하갈은 아이를 임신하자마자 돌변한다. 하갈을 남편에게 첩으로 주기 전, 사라는 하갈에게 절대로 변심치 말아야 할 것을 수없이 다짐받았고 약속도 받았으며 맹세까지 받았다. 그러나 하갈은 임신한 것을 알자마자 몇 달 만에 변해 버렸다. 성경은 “하갈이 잉태하매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그 여주인을 멸시(蔑視)했다”(When she saw that she had conceived, her mistress was despised in her sight; 창 16: 4)고 했다. 원문직역은 “하갈은 잉태하자마자 자기 주인 사라를 하찮게 보았다”는 뜻이다. 당시, 여자가 잉태치 못하는 것은 자신이나 이웃들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생각했고 대단한 치욕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하갈은 임신하자마자 시녀몸종이었던 엊그제 자기 신분을 망각하고 사라를 저주받은 여인으로 치부하며 무시하고 멸시했다는 것이다. 사라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었다. 미치고 환장하고 까무러칠 노릇이다.

마침내 사라는 아브라함과 대판 부부싸움을 한다. “모두 당신 탓이다. 당신이 임신한 하갈을 편애하고 두둔하니 저년이 나를 이렇게 멸시한다. 내가 받는 이 수치와 모욕과 억울함을 당신이 받아야 한다. 당신과 나 사이에 하나님이 판단하시길 원한다. 저년 편을 들 거면 나와 이혼하자!”며 울고불고 소리치며 난리를 친다. 결국 두 여자사이에서 고민하던 아브라함은 사라의 편을 들어주었고, 사라는 당시관습대로 하갈을 첩에서 종으로 환원시키고 자기가 당한 것처럼 하갈을 학대한다. 그러자 사라의 학대를 견디지 못한 하갈은 임신한 몸을 이끌고 집을 떠나 야간도주하여 가데스 광야 브엘-라해-로이 샘물까지 도망쳐 간다.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 예수님이 그곳을 찾아가 하갈을 만나주신다. 이것이 구약에서 첫 번째로 예수님이 사람을 만난 기록이고 하갈이 첫 번째 예수님을 만난 기록이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오대양육대주 넓고 넓은 땅에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나 사라를 찾지 않으시고 보잘 것 없는 노비, 이름도 명예도 없는 무명초 같은 무명지인 하갈을 만나려고 광야까지 찾아가신 것인가?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服從)하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창 16: 9-10)

그렇다. 지구를 첫 번째로 찾아오신 예수님이 지구촌 그 넓은 땅에서 팔레스타인의 이름 없는 불모지사막 가데스 광야까지 하갈을 찾아가신 이유는 ① ‘네 과거를 알고 겸손(謙遜)하라’는 교훈과 ② ‘정도를 따라서 권위에 복종할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하갈과 이스마엘 모자가 번성하고 잘되며 형통하는 큰 축복의 길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비극은 자기과거를 잊는 것에서 시작된다. 하갈이 사라의 시녀몸종이었던 자기과거를 알았다면 사라를 멸시하다가 집에서 쫓겨나는 오늘의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2차 대전의 패전국 독일과 일본을 보자. 독일은 1차,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잿더미에서 출발했지만 20여 년 전에 동서독의 통일을 이루었고 지금은 유럽에서 가장 탄탄한 경제대국을 건설해 유럽연합의 선두주자가 됐다. 독일의 속담 모음집엔 약 25만 개의 속담이 수록돼 있는데 그 속담들은 주로 근면, 정직, 노력, 인내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최근 독일인들의 속담 애용빈도 50개를 골랐는데 그 중 가장 많이 애용되는 속담 1위는 ‘아침시간은 입에 황금을 가져다준다!’였고, 2위는 ‘남을 해치려고 함정을 파면 자신이 빠진다!’였다.

독일은 지리적으로 북위 50도에 걸쳐 있어서 겨울은 길고 추우며 낮이 짧아서 아침 9시가 돼야 밝아지고 오후 4시쯤엔 어두워져 하루의 일과는 일찍 시작하고 서둘러야 한다. 연중 맑은 날은 평균 40일을 넘지 못하고 흐린 날과 비, 눈 오는 날씨가 대부분이다. 이런 환경 탓에 그들에겐 유머나 웃음의 여유가 없었다. 또 오랜 기간 주변 나라들이나 지방끼리 크고 작은 전쟁이 잦아서 생계를 위해서 물자를 항상 비축해야만 했기에 절약정신이 몸에 뱄다. 그래서 자동차나 기관차, 선박, 가전제품 심지어 부엌용품까지 물건을 만들 때에도 내구성이 강하고 오래 사용할 수 있게 검증된 재료를 사용해 정해진 제조수칙과 방법, 시간, 생산량을 지켜 제작하므로 세계최고의 상품을 만들어 낸다.      
     
독일인들은 전통이나 역사를 잘 보존하며 명예를 중시한다. 그래서 전쟁으로 폐허가 된 건물을 재건할 때에도 다 부수어 없애고 다시 짓지 않고 반드시 건물 한 부분에 폐허의 흔적을 남겨둔다. 사람들에게 과거의 전쟁의 상처를 기억하게 하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다. 이러한 근면, 정직, 절약, 노력, 인내의 국민성이 오늘의 선진독일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독일인들의 위대한 것은 그들이 전쟁에서 진패전역사의 치욕을 기억할 뿐 아니라 자신들이 여러 나라에 잘못을 저질렀던 역사도 기억하여 세계 앞에 잘못을 사죄하고 그들의 아픔을 보상하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어떤가? 히로시마 평화 기념관 위령비(慰靈碑)엔 ‘편히 잠드시라.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테니까’란 사이가 다다요시가 쓴 비문이 있다. 그 위령비 옆에 비치된 영문해설에는 We shall not repeat the evil(우리는 두 번 다시 과오의 악행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번역됐는데, 다다요시는 그 과오(過誤)를 ‘히로시마시민이자 세계시민인 우리 모두의 잘못’으로 단언하므로 일본이 2차 대전의 전범인 것을 세계역사 앞에 고백하고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죄악을 뉘우친다고 고백한 것이다. 이것이 일본역사가들의 고백이고 일본의 양심적인 지성인들의 고백이다.

그런데 오늘 날 일본은 아베 총리를 중심해 많은 정치인들과 일반인들까지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것이 과오가 아니라 전쟁에 진 것이 과오라고 통탄하며 일본의 재무장을 외치는 군국주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저들은 ‘일왕에게 충성을 다하며 신민의 혼을 불사른다’는 야마토다마시(大和魂)를 입에 달고 산다. 칼로 자기 배를 가르고 누군가 뒤에서 목을 쳐주는 하라키리, 엽기적인 할복자살을 내세우며 군국주의 부활을 외치고 있다.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은 자살 공격직전 일본도로 자신의 배를 가른 다음 전투기를 몰아 연합군 군함으로 돌진하여 꽃이 지고 꽃잎들이 바람에 날려 흩어져 버리듯 자기 몸을 산화(散花)했다. 세계를 놀라게 한 일본군의 만용이었다. 이 가미카제 특공대를 창설하고 3843명의 어린 청소년들을 희생자로 끌어드린 해군중장 오오니시 다키지로는 종전직후 할복자살했고 그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할복자살을 하고 있는데, 자기 혼자 죽지 않고 누군가를 죽음의 동반자나 희생자로 함께 물고 들어가는 동반자살. 신주우(心中)는 일본의 망령 중 하나이다.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료는 러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의 다이쇼(大正)시대와 쇼와(昭和)시대를 “일본에서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악한 죽음의 혼, 귀태(鬼胎)라고 불렀는데 그 귀태의 망령이 지금 일본에서 살아나고 있는 것이 측은할 뿐이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안에 낡은 회중시계가 전시돼 있다. 시계가 멈춰선 시간은 8시 15분, 원자폭탄이 떨어진 1945년 8월 6일 아침 바로 그 시각이다. 요즘 아베와 몰각한 일부 정치인들이 하는 망언과 식민지배와 위안부 비행을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까지 부정하려는 여론, 독도를 자기 땅이라 떼를 쓰고, 한국 중국 필리핀 동남아를 침공해 수백만을 죽인 전쟁역사와 생체실험으로 수천 명을 산 채로 죽인 731부대의 역사까지 바꿔서 책을 만드는 귀태들을 보면서 일본 집권세력의 의식도 그때에 멈춰있는 것 같아 그들을 찾아오실 인류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할 때, 그들이 측은해 진다.   

모세는 40년 광야생활을 끝내고 가나안에 들어가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라바 광야에서 했던 세 번의 설교에서, ① 너희가 애굽에서 종살이 했던 것을 기억해 안식일을 지켜라(신 5; 15) ② 출애굽 때에 바로와 온 애굽에 행하신 하나님을 기억하여 가나안 원주민을 두려워 말라(7: 18) ③ 하나님께서 40년 동안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고 겸손하라(8: 2) ④ 너희가 광야에서 하나님을 격노케 하던 일을 기억해 전철을 밟지 말라(9: 7) ⑤ 너희가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과거를 기억하라(15: 15) ⑥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하라(16: 3) ⑦ 모세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문둥병에 걸렸던 미리암을 기억하라(24: 9) ⑧ 너희 원수 아말렉을 기억하라(25: 17) ⑨ 옛날을 기억하라(Remember the days of old; 32: 7)고 신명기에서만 아홉 번이나 설교하므로 우리의 옛날, 영주권이 없어서 숨죽이며 살던 때, 예배당이 없어서 이 교회 저 교회를 빌려 쓰던 과거, 병이 들어 두려움에 맘 졸이던 과거, 남의 집 일군으로 힘들게 일하던 과거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을 체험했던 과거를 기억하라고 했다. 이것이 오늘 본문으로 당신을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비밀이다.

그리고 “정도를 따라 권위에 복종하라”는 교훈이다. 예수님은 하갈에게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그러면 너와 네 자손이 큰 복을 받을 것이라”(창 16: 9-10)고 했다. 그렇다. 하나님의 축복은 자기본연의 자리를 지키고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다. 루시퍼는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교만하게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다가 타락하여 마귀가 됐고(사 14: 12-15, 겔 28: 11-17) 천사장 아바돈도 하늘의 자기처소를 이탈해 죄를 짓다가 지노의 심판으로 무저갱으로 던져졌다(벧후 2: 4,  유 1: 6)

인간의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 난 것이다(롬 13: 1-7) 그래서 위계질서는 우리가 지켜야 할 정도이면서 하나님의 법이다. 종업원은 주인에게 순복해야 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순복해야 하며, 집사 권사 장로는 목사에게 순복해야 하고. 총회의 노회장들은 총회장에게 순복해야 하며, 학교의 교수와 학부장(Dean)과 학장들은 Chancellor(대학총장)에게 순복해야 한다. 그것이 정도이고 위계질서의 순리이다. 예수님은 하갈에게 ‘여주인 사라에게 순복하라’며 그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유다의 11대 왕 “요담이 여호와 앞에서 정도를 행하였으므로 점점 강해졌던 것”(대하 27: 6)처럼 하나님 앞에서 정도(正道)를 행하고 질서를 지키며 권위에 순복하므로 점점 강성해지는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축원한다.

⑵ 예수님을 두 번째 만난 하갈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은지 17-8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에 사라도 하나님의 약속대로 90세에 아들을 낳았고 아들 이삭(Issac)이 세 살이 됐을 때다. 당시 문화권에서는 세 살 정도에 아이의 젖을 뗐는데(삼상 1: 22-24) 이때 히브리사람들은 종교의식과 더불어 이웃과 함께 큰 잔치를 베푸는 것이 관례였다. 족장 아브라함은 거부답게 큰 연회를 베풀고 여러 부족의 원로들과 귀인들을 초대하여 며칠 동안 성대하게 잔치를 치른다. 그런데 흥겹게 연회잔치가 무르익어갈 무렵 돌발사건이 생긴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사건이다.

한국말의 “희롱(戱弄)했다”(Mocking)는 말은 “장난삼아 놀리는 것”을 의미하지만 히브리어의 메차헤크는 “멸시하다”, “비웃다”는 뜻 외에 “핍박하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 아브라함의 장자로 재산상속을 기대했던 이스마엘은 적자(嫡子) 이삭이 출생함으로 상속권을 상실하게 되자 자신의 존재가치에 불만을 품고 고의적으로 눈엣 가시처럼 생각했던 이복동생 이삭을 멸시하고 핍박했던 것이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한 그날의 사건은 잔칫집을 초상집으로 만들었고 이스마엘과 하갈에겐 비극의 날이 돼 버렸다. 사라는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남편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당장 내쫓으라. 하갈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 일로 며칠 동안 고민하던 아브라함은 마침내 용단을 내리고 하갈과 이스마엘 두 사람이 며칠 동안 먹고 마실 음식과 입을 옷과 여비를 주어 집을 떠나게 한다.

아브라함의 집을 떠난 두 사람은 브엘세바 사막들판을 헤매다가 먹을 양식도 떨어지고 가죽부대에 담았던 마실 물이 다하자 삶을 포기한다. 배고픔과 갈증으로 죽어가는 아들 이스마엘을 떨기나무 그늘에 앉게 하고, 하갈은 화살이 날아갈 수 있는 300m 정도거리에 떨어져서 속수무책인 상태에서 아들을 바라보며 ‘참아 자식이 죽는 것을 볼 수 없다’며 애처롭게 목을 놓아 방성대곡한다(She lift up her voice and wept; 창 21: 16) 애간장을 태우는 한 여인의 통곡소리만 브엘세바 사막으로 울려 퍼져나갈 뿐, 아무도 불쌍한 여인 하갈을 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저 하늘 우주공간의 벽을 뚫고 브엘세바 사막으로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날아오는 천사가 있었으니 그분은 바로 하나님의 사자, The Angel 예수님이었다. 예수님은 “하갈아, 무슨 일이냐?(What's the matter with you, Hagar?)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리라; 17-18절)고 말씀하신 후, 하갈의 눈을 밝혀 샘물을 발견하게 하사 두 사람을 살려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스마엘과 함께 하사 그 앞길을 인도해 주셨다.

그렇다. 예수님이 하갈을 두 번째 만나주신 것은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하갈이 통곡하며 기도했을 때였다. 하갈이 ‘될 대로 되라’며 쳐져 앉아서 포기하거나 낙담했다면 예수님은 그에게 오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하갈과 이스마엘은 브엘세바 사막에 한줌의 흙과 뼈 가루로 남았을 것이다. 지금도 예수님은 근심 중에서 통곡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늘을 찢고 기도응답을 갖고 날아오신다.

하나님은 야훼하나님께 기도하며 통곡하던 한나의 기도를 응답하셨고(삼상 1: 10) 죽을병에 걸렸던 히스기야가 통곡하며 기도할 때 병을 고쳐주셨으며(왕하 20: 5) 살인죄와 간음죄를 회개하며 통곡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던 다윗을 용서해주셨고(시 6: 6) 죄로 멸망한 시온을 바라보고 통곡하던 이스라엘을 70년 만에 본토로 돌아오게 하셨으며(시 137: 1) 닭 울음소리를 듣고 통곡하던 베드로를 다시 불러 사도로 세우셨다(마 26: 75, 눅 22: 62) 그래서 성경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라”고 했고(시 126: 5) 심판의 날이 예고된 이스라엘에게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욜 2: 12)고 하셨다. 그렇다. 눈물의 기도, 통곡의 부르짖음은 닫힌 하늘을 갈라놓는 위력이 있다,
1960년대에서 70년대까지 한국교회가 가난하고 힘들어서 하나님의 도움만을 간구하여 산마다 기도원마다 교회마다 제단마다 울부짖으며 통곡하는 성도들의 기도가 하늘을 찔렀다. 그래서 하나님은 80-90년대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교회성장과 국가의 경제성장과 물질축복을 주셨다. 그러다가 90년대 중반에 넘치는 축복으로 배부르고 등 따뜻해지면서 한국교회가 교만해지고 기도소리가 적어지며  5일제로 토요일과 주일을 즐기는 일로 세속화되면서 예배드리는 날이 줄어들며, 많은 목사들이 타락의 길로 접어들자 1997년 IMF로 하나님의 몽둥이를 맞는다. 기업들은 줄줄이 문을 닫고 교회들도 문들을 닫으며 성도들도 경제적 고통으로 아우성을 쳤다. 그러자 다시 기도원과 교회들이 회개하면서 밤새도록 통곡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를 시작했다. 1960-70년대 이후 IMF 때가 가장 철야기도회와 기도원을 찾는 성도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한 번 한국교회에 부흥을 주셨다. 한국역사상 해외선교사들이 가장 많이 배출된 시기이다.

그러나 지금 등 따뜻해지고 배불러진 한국교회는 살만해지고 여유가 생기자 또다시 하나님을 멀리하기 시작해 교회는 자리가 비워져가고 성도들의 기도소리는 작아져가며 예배모임도 점점 줄어간다. 예전엔 서울 어디서 동서남북을 바라봐도 150에서 200개의 십자가 네온사인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절반수준이고 1,200만 기독교인이 700만 수준이다. 선교사들이 선교비지원이 중단돼 고통 속에서 선교를 하거나 선교를 포기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대형교회 목사들이 줄줄이 고목 쓰러지듯 타락하여 쓰러지고 개척교회는 살아남기가 힘이 든다. 한국교회의 총체적 타락이다. 기도가 없어졌고 울부짖는 소리가 없어졌으며 눈물샘이 말라 버렸으니 나만이라도 새벽제단을 지켜야 하고 나만이라도 통곡의 기도를 드려야할 때이다. 

저의 46년 짧은 목회에서, 눈물의 기도, 통곡의 부르짖음, 심장이 조이고 피를 말리며 뼈가 오그라들고 숨이 멎을 정도로 부르짖고 기도한 때는 1968년부터 1975년 초까지의 개척교회 7년과 1998년부터 2006-7년까지 대략 10여년의 워싱턴 목회였다. 특히 워싱턴 10년은 더했다. 물론 그 전에도 몇 달에서 1-2년의 부르짖는 기도로 기적을 체험한 경우도 많이 있었지만 충북 단양과 워싱턴 목회는 고난의 긴 터널을 통과한 날들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지상으로 나를 찾아와 주시고 나를 하늘로 데려가시기까지 하며, 하나님의 말씀들을 깨닫고 특히 계시록과 종말복음의 비밀들을 깨닫는 축복을 많이 받은 것은 워싱턴 10년 고난의 때였다. 고통의 대가가 큰 만큼 축복도 컸다고 할 수 있다. 오늘 나의 예배가 4000여 년 전, 브엘-라해-로이 광야사막에서 하갈을 만나 “나의 과거를 기억하는 예배, 위계질서를 정돈하는 예배”가 되고, 허허벌판 브엘세바에서 통곡하던 하갈과 이스마엘을 만나주신 것처럼 우리들의 통곡기도로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의 예배가 되기를 축원한다.               
   
김엘리야 목사 (워싱턴주기도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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