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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03월02일 18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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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가성의 우물물과 예수님의 생수
얼마 전, ‘미세스 학위’(Mrs. Degree)란 말이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올라 흥미를 끈 적이 있었다. ‘미세스 디그리’란 말은 “대학 재학 중 남편감을 만나 결혼한 경우”를 가리키는데 대학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신랑감을 고르면 “대박 커플”이 되는 것으로 이것은 박사보다 더 소중한 학위라고 해서 이 같은 신조어가 생겨났다. Mrs. Degree란 말로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문을 게재해 갑론을박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사람은 수잔 패튼이란 할머니로 그 자신도 프린스턴 대학시절에 남편을 만나 캠퍼스 커플이 된 사람인데, 놀랍게도 현재 미국에서 ‘Mrs. Degree’가 화제가 되고 있는 대학들은 아이비리그를 비롯한 명문대학들이라는 것이다.

수잔 패튼은 “여성들이여, 제발 정신 차려라. 재학 중 ‘Mrs. Degree’를 따지 못하면 맘에 드는 남편감을 구하기 어렵다”며 돌직구를 날렸다. 그만큼 여자의 행복은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한국여성들의 전통적인 ‘뒤웅박 팔자론’과 유사한 주장이다. 뒤웅박은 속을 파낸 바가지로 부잣집에선 뒤웅박에 쌀을 담았고, 가난한 집에선 여물을 담아, 뒤웅박이 어떤 집에 있느냐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지듯, 여자팔자는 어떤 남자에게 시집을 가느냐에 좌우된다는 한국적인 여성팔자론이다. 패튼은 “명문대학을 나와 10년 동안 월스트리트에서 일했다고 치자. 그 때가 되면 이미 30대 중반의 골드 미스, 짝이 맞을 것 같은 남자들은 대부분 품절남이다”며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또래의 나이와 또래의 지성을 갖춘 남녀의 만남이 쉽지 않을 것이라 충고한다. 그래서 자기 딸도 프린스턴 동문으로 신입생 때부터 남편감 공략에 나서 꿈을 이루게 했을 정도로 그녀는 ‘Mrs. Degree’를 열렬히 주장하는 Mrs. Degree 전도사이다.

패튼은 여성들의 롤 모델은 자신과 같이 일찍이 캠퍼스 커플로 만나 가정을 꾸민 사람들이라고 자화자찬하면서, 예일대학 Law School에서 빌 클린턴을 만나 First Lady, 국무장관을 거쳐 이제는 차기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영(0) 순위로 거론되고 있는 힐러리도 ‘Mrs. Degree' 취득자며 ’뒤웅박 팔자‘의 여인임을 은근히 내세우면서 마지막으로 “만일 대학에서 ‘미세스 학위’를 따지 못했다면, 절망하지 말고 대학원에 진학해 ‘Mrs. Master, 미세스 석사를 따라’고 충고를 한다. 김 목사의 첫째 딸도 “Mrs. Master”로 결혼해 행복한 변호사부부로 살고 있지만 흥미로운 주장이며, 현대 젊은이들이 관심을 갖고 좋아할 실제적인 Fact 중에 하나라고 생각된다.

나는 오늘 대학 커플인 Mrs. Degree 보다 더 실제적이고 우리 삶에 성공확률이 훨씬 높은 ‘Mrs. Well’, ‘Mrs. Fountain’(‘우물 학위, 샘물 학위’)을 추천한다. 그것은 ‘우물가 부부’이다. 놀랍게도 성경엔 우물가에서 만난 부부가 많이 나온다.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Eliezer)은 하란 땅 우물가에서 처녀 리브가를 만나 그의 주인 아브라함의 며느리, 이삭의 아내가 되게 하였고(창 24: 20) 야곱은 형을 피해 도망하다가 밧단 아람 우물가에서 라헬을 만나 그녀를 아내로 맞게 됐으며(창 29: 2, 3, 8, 10) 모세도 살인자로 도망하는 망명길에 미디안 광야 우물가에서 십보라를 만나 아내를 삼게 됐다(출 2: 15) 그리고 오늘 본문의 주인공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은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나 그의 생애가 변화를 받는데 수가성의 우물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만나는 교회를 상징하니 “Mrs. Well”, “Mrs. Fountain”은 “교회 부부, 교회 커플”(Mrs. Church)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 커플, 대학 부부, 대학원 커플보다 교회 커플, 신앙부부는 인생 삶의 성공률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높다. 그래서 성경은 불신자와의 결혼보다 신앙인끼리의 결혼을 '최상의 이상적인 결혼법칙‘처럼 강조한 것이다. 여러분의 자녀들과 젊은이들이 Mrs. Degree보다 Mrs. Well과 Mrs. Fountain, Mrs. Church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수가성의 우물물과 예수님의 생수
1. 우물과 우물물의 종류

나에게 우물과 샘물에 대해 특별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서너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인 5-6세 때, 동네 꼬마친구들과 들판으로 고기잡이를 나갔을 때에 있었던 사건으로, 냇가에서 고기를 잡다가 물이 마시고 싶어서 시골 논과 밭 사이에 있는 우물로 몰려갔는데 친구들이 먼저 물을 마시고, 내 차례가 돼 무릎을 꿇고 물에 떠있는 먼지를 후후 불어 밀어내고 물을 마시는데 짓궂은 친구 하나가 장난으로 나를 우물에 떠밀어 넣었다. 순식간에 내가 우물 속으로 사라지자 겁을 먹은 친구들이 다 도망을 갔다. 그런데 그때 옆에 있는 밭에서 김을 매던 동네 어르신이 갑자기 목이 갈해 물을 마시러 우물에 왔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엎드려 먼지를 후후 불고 물을 마시려는데 갑자기 우물 속에서 사람이 떠올라 놀랬다가 허리춤에 있던 호미로 건져냈는데 그가 바로 나이다. 그래서 내 기억 속에 우물은 구사일생(九死一生)의 우물이다.

두 번째 우물 기억은 충북 단양 가곡면 가대리, 나의 목회초년병 시절인 전도사시절에 수요일저녁 교회건축을 준비하기 위해 예배를 마치고 성도들과 2-3마일 거리에 있는 강변에서 모래와 자갈을 여자들은 머리에 이고 남자들은 지게에 져서 나를 때의 있었던 사건이다. 모래를 이고 진 성도들이 교회에 도착한 후 마당에서 무릎을 꿇고 감사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직경 1m, 높이 6-7m의 하나님의 불기둥이 나타났다. 모두가 기이한 현상에 신기하고 놀라워 두려워하던 중 담대하게 그 불기둥을 끌어 앉고 기도를 했는데, 몇 달 후 교회우물을 팔 때 불기둥이 나타났던 장소를 우물장소로 정했다. 그때 나는 한 달 넘게 곡괭이와 삽으로 암반을 깨면서 우물을 팠는데(당시 나와 교회청년들은 매일 손바닥에 수십 군데나 피물집이 생겼고 깨지는 돌가루가 눈으로 들어가 고생을 많이 했다) 놀라운 일은 산 중턱에 판 우물인데도(산 아래 동네엔 가뭄으로 물이 마르기도 했지만) 내가 있었던 7년 동안 한 번도 우물물이 마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냉장고가 없던 가난한 시골교회여서 물이 차가운 우물 속에 사이다와 콜라, 참외 수박을 넣었다가 시원하게 마시고 먹던 기억은 하나의 낭만이기도 한데, 더 놀랍고 신기한 사실은 그 우물물을 마셨던 많은 사람이 여러 가지 질병에서 고침을 받았다는 것이다. 외상 내상의 질병, 심지어 위궤양과 정신병까지 무슨 병이든, 얼마나 오래된 병이든...희한하게 그 우물물을 마신 사람은 병이 치료됐다. 46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것을 불가사의의 우물, 기적의 샘물로 생각한다.

세 번째는 지난 10여 년 동안 선교해온 캄보디아 샘물과 우물물이다. 캄보디아의 다른 지역은 몰라도 내가 다녀온 ‘씨소폰’이나 ‘쁘레야 위히여’ 지역은 암반을 뚫고  깊이 파서 퍼 올리는 우물물이라도 수질이 석회석을 녹인 물처럼 석회수(石灰水)여서 마실 수가 없다. 그 물을 마시면 병이 생겨 수명이 짧아진다. 그래서 대부분의 우물물은 목욕이나 빨래를 하는데 사용하고, 마실 물은 생수를 사서 마시거나 빗물을 받아 모아 마신다. 집 처마 끝에 시멘트나 고무로 만든 큰 물통을 놓아두고 비 가오면 그 물을 받아두었다가 2-3일 후에 마시는데 그 물이 우물물보다 훨씬 순하고 좋단다. 그러나 일주일쯤 지나면 모기들이 물에 알을 까 장구벌레들이 헤엄쳐 다니는데 그래도 빗물을 우물물보다 더 좋아한다. 김 목사도 이번 캄보디아 선교에서 물통에 담아두었던 빗물을 끓여 마시고 시장에서 구입한 생수도 마셨는데, 떠나기 전날 4개월 만에 쏟아진 빗물을 생수처럼 기뻐하던 신학생들이 눈에 선하다. 이렇게 해마다 내가 다녔던 미얀마, 네팔, 필리핀 동남아 지역의 우물물과 샘물은 거의 식수가 불가능한 물들이다. 생수처럼 좋은 물을 맘껏 마실 수 있는 한국, 세계 각국의 좋은 물을 다 구할 수 있는 미국, 수돗물까지도 맘껏 마실 수 있는 미국에 살고 있음을 감사하기를 축원한다.

성경에서 샘물과 우물물은 여러 종류가 있다.
⑴ 지질학적인 우물, 지형적인 샘물이다.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이삭의 아내 될 리브가를 만난 하란 땅의 우물(창 24: 20)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었던 우물을 다시 판 이삭의 우물들(창 26: 20-22),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만났던 우물(창 29: 2, 3, 8, 10) 모세가 미디안 제사장의 딸 십보라를 만난 우물(출 2: 15-21)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고센을 떠나 라암셋을 거쳐 여덟 번째로 장막을 쳤던 엘림 샘물(출 15: 27) 이스라엘의 족장들과 귀인들이 홀과 지팡이로 판 브엘 우물(민 21: 18) 호렙산 차돌반석이 깨져 뚫리고 강물을 쏟아낸 므리바 맛사 우물(출 17: 6, 시 114: 8) 악사가 아버지 갈렙에게 결혼선물로 받은 위에 샘물과 아래 샘물(수 15: 19, 삿 1: 15) 요압이 아브넬을 질투해 살해하려고 잡아 데려온 시라 우물(삼하 3: 26) 압살롬 반란 때, 다윗의 첩자 요나단과 아히마아스가 여자첩자와 접선했다가 도피해 숨어 목숨을 건졌던 에느로겔 우물(삼하 17: 17-18) 블레셋 군대가 주둔해 있는 곳의 물을 사모하던 다윗에게 목숨을 걸고 우물물을 길어오므로 다윗과 이스라엘의 사기를 충천하게 해 전쟁을 이기게 했던 베들레헴 우물(삼하 23: 15) 그리고 사마리아 수가 성 여인이 예수님을 만난 야곱의 우물 등 성경에 기록된 지질학적인 우물과 지형적인 샘물은 많이 있고 이러한 지형적인 우물에서 일어난 사건들도 다양하다. ‘앵두나무 우물가의 동네처녀가 바람 낫네.’ 정도가 아니다. 우물가와 샘물가에서 일어난 사건은 많고 많은데 여러분도 오늘 배우게 될 영적 우물가에서 하나님의 많은 기적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⑵ 상징적인 우물과 샘물이다. ① 하갈의 통곡하며 울부짖는 기도를 응답해서 주신 브엘세바(Beer-sheba) 샘물(창 21: 16-19)과 나귀턱뼈로 1000명의 블레셋 군사를 쳐 죽이고 기력이 탈진한 삼손이 부르짖어 기도할 때, 땅을 터뜨려 물이 솟아나게 한 엔학고레 샘물(삿 15: 18-19)이다. 따라서 En-hakkore(엔학고레)가 “부르짖는 자의 샘”이란 의미인 것처럼 우리를 시원케 해주는 우물물과 샘물은 부르짖어 기도하는 자에게 응답하시는 기도응답의 상징이다. ② 주의 장막, 야훼하나님의 궁정과 주의 집인 성전에 거하는 자,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눈물골짜기’인 인생의 길을 ‘많은 샘의 곳’, ‘풍성한 축복의 땅’으로 만드는 축복이 있다(시 84: 1-6, 사 58: 11, 창 49: 22)고 했다. 그렇다. 샘물과 우물물은 풍성함과 넉넉함 그리고 평안함과 끊임없는 축복의 상징이다. ③ 좋은 아내, 행복하고 만족한 아내의 상징이다(잠 5: 15, 18, 아 4: 12) 솔로몬은 진정으로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를 뜨거운 여름날에 사람의 갈증을 해갈해주는 시원한 청량음료의 우물물, 샘, 샘물, 도랑물이라고 했고, 141번째 아내요 그 많은 여인 중에 가장 사랑했던 애처(아 6: 8), 술람미 여인을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라”(A garden inclosed is my sister, my spouse; a spring shut up, a fountain sealed)며 부부의 뜨거운 애정을 찬사(讚辭)했다. 그렇다. 샘물이요 우물물인 아내는 남편을 성공시키기도 하고 실패시키기도 한다. 우물가에서 아내를 만나 인생을 성공한 이삭, 야곱, 모세처럼 남편들을 성공시키는 우물물, 샘물이 되기를 축원한다. ④ 성경은 “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것은 우물의 흐리어짐과 샘의 더러워짐 같다”(A righteous man falling down before the wicked is as a trouble fountain, and a corrupt spring; 잠 25: 26)고 했으니, 샘물과 우물물은 의인의 지조(志操: “굳은 의지, 지키어 변함없는 정조”)와 신앙인의 정조(貞操: “여자의 깨끗한 절개, 이성 관계에 순결을 지킴”)를 상징한다. 왕을 사랑한 충신들은 생명을 다해 지조를 지켰고, 가정을 지키며 지아비를 사랑한 현모양처는 목숨을 바쳐 정조와 절개(節槪)를 지켰다. 오늘 우리들의 신앙은 선진들이 지킨 의인의 지조와 신앙의 정조 때문이었다. 우리도 의인의 지조와 믿음의 정조를 끝까지 지켜 후진들에게 신앙유산을 이어주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⑤ 사람의 심장과 호흡기관의 상징이다. 전도서기자는 사람이 늙어서 죽게 되는 것을 “은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어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어지는 것”(전 12: 6)으로 비유했다. 깊은 우물에서 줄로 두레박을 바퀴에 연결해 물을 길어 올리던 시절에 물 항아리가 샘물 곁에서 깨지고, 두레박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지듯 지금까지 신선한 생명력을 공급해 주던 신체기관인 심장의 박동과 호흡기관의 작동이 늙어서 약해지고 깨지는 것을 가리킨다. ⑥ 입에서 나오는 언어의 상징이다. 야고보는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물을 내겠느냐?(Does a fountain send out at the same place sweet water and bitter?; 약 3: 11)고 했다. 한 샘에서 단 물과 쓴 물이 동시에 나올 수 없듯, 거룩한 찬송이 나오는 거룩한 우리 입에서 저주가 나와서는 안 되고, 감사가 나오는 복된 입에서 불평이 나올 수 없으며, 사랑이 나오는 구별된 입에서 미움이나 증오가 나올 수 없다, 나와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The mouth of the righteous is a fountain of life; 잠 10: 11)이라고 했다. 당신의 입이 생명의 샘이 되어 당신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사람을 살리고, 희망을 주며, 은혜를 끼치는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길 축원한다.         

⑶ 영적인 샘물이다. 영적인 샘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의 샘물이다(요 4:14)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다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Living Water)를 네게 주었으리라”(요 4: 10)고 했다. 그렇다. 샘물과 우물물의 영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선물인 생수(The Living Water)다. 생수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물, 살아서 움직이는 물, 사람의 육신과 정신과 영혼을 살리는 물, 우리를 영원토록 죽지 않고 살게 하는 물이다.

⑷ 종말론적이며 예언적인 우물과 샘물이다. 종말론적인 샘물은 천년왕국의 생수를 의미하고 예언적인 생수의 물은 신천신지의 생명수다. 천년왕국의 생수는 예루살렘 천년왕국 성전에서 발원하여 잉크 한 방울이 퍼져 대야 물을 파랗게 물들이듯 칠년대환난에서 전쟁과 각종재해로 파멸된 지구, 오염이 돼 살아남은 인간들이 잠시라도 살 수 없는 지구촌 오대양육대주에 퍼져 파멸되고 오염된 지구를 생명으로 살리고 새롭게 만들어 에덴동산처럼 만들므로 지구촌에 다시는 질병이나 불구자가 없고 미움이나 저주가 없이 사람마다 건강하게 천년을 살 수 있게 만들어줄 신비의 생명수 강물이고(겔 47: 1-12, 욜 3: 18, 슥 13: 1-2, 14: 8) 새 하늘 새 땅의 생수, 신천신지의 생명수는 문자 그대로 신천신지의 수도 새 예루살렘의 어린양 보좌로부터 흘러나와 동서남북으로 흐르며 천국백성을 영원토록 살도록 생명을 주는 샘물이다. 천년왕국의 생수는 천년의 축복을 보장하지만 새 예루살렘의 생수는 영원한 생명, 영생의 축복을 보장한다. 오늘 예배에 참석한 우리 중에 천년왕국에서 생수를 마시고 천년 동안 사는 성도들이 나올 수 있기를 바라고, 우리 모두가 신천신지 새 예루살렘의 생명수를 마시며 영생복락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우물과 샘물은 표상학적으로 우주적인 교회의 모형이다. 지구상의 모든 교회들이 물을 길어 올리는 우물이며 나그네의 갈한 목을 적셔주는 샘물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어떤 우물가에 서 있는가? 어떤 교회를 출석하고 있는가?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이삭의 아내를 만나고 야곱과 모세가 우물가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얻었듯 좋은 아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남편을 찾기 위해 교회를 다니는가? 아니면 요나단과 아히마아스가 귀중한 정보를 첩자에게 주고받은 에느로겔 우물처럼, 사업정보, 출세정보, 성공정보, 교제정보를 얻기 위해 교회를 다니는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 수준에서 교회를 다니고 있다. 전에 캘리포니아와 조지아에서 어느 교인이 네 교회, 다섯 교회에 적을 두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주일마다 출석하는 교회 헌금 봉투에 어느 부동산의 누구, 어느 보험회사의 누구로 이름을 써서 헌금을 내고, 목사가 헌금봉헌자 이름을 부르며 기도해 주는 것을 이용해 자기 PR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뿐 아니라 오늘날 부자들과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큰 교회로 사람이 몰려가는데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신앙들이다.

그다음 고통과 절망에서 하갈과 삼손처럼 통곡과 부르짖음의 기도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 교회를 찾는 사람들도 있고, 수가 성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여인처럼 영생을 사모하여 교회를 찾는 사람도 있으며, 말세지말 인 종말시대를 바른 신앙으로 살아 구원의 사람이 되기 위해 교회를 찾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오늘 당신은 어떤 우물가를 배회하고 있는가? 지금 당신이 나가는 교회는 과연 어떤 샘물을 주는 교회인가? 당신이 앉아있는 교회 강단은 어떤 우물이며 어떤 샘물이 흘러나오고 있는가? 교회를 바르게 선택하고, 바른 목사, 양들을 위해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선한 목자를 만나는 축복들이 있기를 진심으로 축원한다.

2. 예수님만 주실 수 있는 생명의 샘물

본문은 예수님이 “Give Me to drink”(“내게 마실 물 좀 달라”)라는 내용으로 하신 205마디의 말씀(205 words of Jesus)과 “Why do You ask me?”(“왜 내게 그것을 요구하십니까?”)라는 134마디(134 words of the woman)의 수가 성 여인의 짧은 대화이다. 이 짧은 대화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영적 교훈을 알아본다.

⑴ 생수(生水)는 죄 문제해결에서 주어진다.
제자들이 먹을 음식을 사러 동네로 들어간 정오대낮(제 육시; The sixth hour: 정오), 예수님은 수가 성 야곱의 우물가로 가셨다. 원래 팔레스타인 지역은 더운 지역이라 대낮엔 여자들이 물을 길러 오지 않는다. 그러나 정오대낮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우물물을 길러 온 여자가 있었다. 예수님은 자연스럽게 그 여자에게 “물 좀 달라”(Give Me a drink)고 대화를 시작했고, 여자는 “당신은 유대인인데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내게 물을 달라느냐?”며 대답한다(당시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은 철천지원수의 견원지간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요구는 파격적이었다) 예수님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고 하는 사람이 누군 줄 알았다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물을 구했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대답하셨다. 그러자 여인은 “물 길어 올릴 두레박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그 생수를 얻겠습니까?” 반문 한다. 두 사람의 대화가 무르익어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말라 다시 우물을 찾아와야 하지만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 그 물은 사람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될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자, 여자가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이곳으로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해 달라”며 간청하게 된다. 그러자 예수께서 “Go call your husband, and come here”(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셨다.

수가 성 여자는 다섯 명 남자와 결혼했다가 이혼을 했든지 동시에 다섯 남자를 상대했었고 지금 또 다른 남자와 동거 중인 탕녀 중에 탕녀였다. 그만큼 육신의 정욕과 욕정에 목이 갈해 남자들을 갈아치웠던 뜨거운 탕녀였고 생활이 문란한 여자였다. 그래서 여자들이 물을 길러 몰려오는 아침시간이나 저녁시간에 우물로 오지 않고 대낮에 물을 길러 왔다가 뜻하지 않게 예수님을 만나게 돼 이런 질문을 받게 된 것이다. 이제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 비로써 여인은 예수님이 범상치 않은 사람임을 깨닫고 조심스럽게,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고 대답하는데,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 듯 “네 말이 맞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You have had five husbands: Five husbands, one at a time)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다”라고 하신다. 그러자 여자가 외친다. “주여, 내가 보니 당신은 선지자십니다.”(Sir, I perceive that You are a prophet!)

예수님은 생수, 인간의 모든 갈증을 해갈시켜주는 생명의 샘물, 생수를 요구하는 여인에게 “네 남편을 불러오라”는 말씀으로 여자가 갈등하고 고민하는 죄의 문제, 그 여인이 지금까지 모든 사람에게 숨기며 살아온 여인의 급소를 찔렀다. 그렇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생명수가 솟아날 수 있는 것은 죄 문제가 해결될 때이다. 그래서 세례요한의 첫 번째 설교와 예수님의 공생애 첫 번째 설교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Repent, for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마 3: 2, 4: 17)였고, 성령 받은 베드로가 솔로몬 행각에서 외쳤던 첫 번째 설교도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 생수의 강이 맘속에서 솟아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라”(행 3: 19)고 했다.

그렇다. 인간의 마음이 유쾌하게 되고 우리 맘속에서 생수가 영원토록 솟아나는 일은 수가 성 여인이 욕망이 타오를 때마다 남자들을 갈아치우듯 끓어오르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여자를 갈아치우고 남자를 바꾸는 일도 아니고, 사업을 확장시키는 일도 아니며, 권불십년 황금만능처럼 돈을 많이 소유하는 것도, 최고의 권세를 갖고 그것을 누리며 천하를 호령하는 것도, 그리고 공부를 많이 해 지식의 욕구를 채우는 것도 아니다. 죄의 문제 해결이 최우선이다. 죄 문제가 해결될 때, 마음속에서 생수의 샘물이 터져 솟아난다. 죄가 용서받을 때 예수께로부터 유쾌함과 상쾌함, 자유함과 기쁨이 임한다. 그리고 죄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그분께 지은 죄를 고백할 때 해결된다.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리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분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므로 죄 용서를 받고 마음속에 영원한 생수를 소유할 수 있기를 축원한다.             

⑵ 죄 문제 해결은 예배를 통해서 있다.
예수님을 선지자로 고백한 여인은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라며 갑자기 ‘남편이야기’에서 ‘예배장소 이야기’로 대화를 바꾼다. 수가 성 여인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거룩한 산, 축복의 산으로 생각해, BC 322년에 건축한 그리심 산 성전에서의 예배를 예루살렘 성전예배로 바꾸어야 되는지를 물은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리심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라. 예배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God is a Spirit)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Those who worship Him must worship Him in spirit and in truth.”고 하셨다. 인간이 죄의 문제를 해결 받고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통해서 뿐이고 그 예배는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예배하는 자들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한다”는 말씀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자!”

① 신령으로 예배를 드리자(Worship Him in spirit!)
‘신령으로’(In spirit)란 헬라어 엔 프뉴마티는 성령으로란 뜻이 아니다. 신령(神靈)으로 예배하는 것은 “영이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인간의 가장 높고 깊은 부분”으로 With the whole soul, mind, feelings, emotions, and desires not bodily fatigue in journeying to some temple(성지순례나 유명한 성전을 여행하므로 육체를 피곤하게 하는 고역이나 육체노동이 아니라, 온 영혼의 열정과 마음, 감각(느낌)과 촉각, 그리고 모든 감정과 욕망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배에 육체와 마음, 감정과 열정과 욕망까지 다 바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가 드리는 한 시간 예배에 목숨을 걸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23절에서 하나님은 그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For the Father seeks such to worship Him)고 했다. 오늘 주일마다 하나님의 성전을 찾는 지구촌 23억의 교인들 중에서 이렇게, 신령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도들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다른 사람 이야기하고 책망하기 전에 먼저, 이런 예배를 드리지 못한 김목사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한다. 내가 드렸던 예배마다 하나님이 ‘그건 아니다’라고 하셨을 예배들을 생각하니 몸 둘 바를 알지 못할 송구함을 고백한다. 그래서 이제 이후에 예배만이라고 신령한 예배를 드릴 것을 다짐한다. 신령한 예배를 회복하자! 주기도문 성도들이 나와 함께 이 말씀에 아멘하고 신령한 예배를 드리는데 동참해 주기를 부탁한다. 앞으로의 주기도문 교회 예배가 신령한 예배들이 돼, 하나님께 발견되는 예배와 성도들이 되고, 그래서 예배마다 하나님을 만나는 역사들이 일어나길 축원한다.

② 진정으로 예배하자(Worship Him in truth)
진정으로(In truth)의 헬라어, 카이 알레데이아는 성실이나 정직이란 뜻이 아니다. “진정으로”란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에 부합되는 것으로써 “예수 안에 계시된 진리”를 의미한다. In harmony with full revealed and attested truth, not in fallacies, controversies, ceremonies, rituals and offerings(믿을 수 없거나 논쟁적인 것이 아니고, 격식을 차리는 예식이나 종교적인 의식도 아니며, 드리는 헌금이 아니라 완벽하고 충분하게 계시되고 입증된 진리의 조화이다) 예배에서 목사가 전하는 설교가 자신도 믿을 수 없어서 반신반의하는 내용이 아니고 논쟁적인 것도 아니어야 하며, 예배가 거창한 프로그램의 예식이나 종교의식이어서도 안 되며, 주일헌금에서 십일조 감사 선교 구제헌금의 헌금행사여도 안 된다는 말씀이다. 목사의 설교가 “예수 안에서 계시된 진리”가 전해지는 예배, “하나님의 비밀이 선포되는 예배”가 돼야 한다는 말씀이다. 과연 우리의 예배는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인가?

그렇다. 하나님이 찾고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는 예수 안에서 충분하게 계시되고 입증된 바른 진리가 전해지는 예배라는 말씀이다. 진리가 전해지는 예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해지는 예배, 말씀의 비밀이 선포되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이다. 예수 안에서 계시된 진리가 전해지지 않는 예배, 하나님과 예수님의 계시가 없는 예배는 참 예배가 아니다. 성경에 기록된 로고스말씀이 지식의 전달이나 인간의 교훈으로만 전해지는 것은 참 예배가 아니며, 살아있는 말씀이 계시된 진리와 레마가 없는 예배는 진정한 예배가 아니다. 계시된 진리 대신 예배행사나 의식, 종교예식이나 헌금 드리는 것으로만 예배가 끝난다면 그것은 참 예배가 아니며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예배행사일 뿐이며 하나님의 원수 마귀가 좋아하는 예식일 뿐이다. 김목사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게 하셔서 모든 예배에서 말씀을 전할 때마다 말씀의 비밀, 하늘의 비밀이 전해지는 “진정의 예배”가 될 수 있도록 나를 위해 기도해 주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축원한다.
   
⑶ 메시야를 영접하고 입으로 고백하며 전도하라
참 예배는 그리심 산 예배도 아니요, 예루살렘 예배도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라는 사실을 알면서 예배문제가 해결되자 수가 성 여자는 “그리스도라 하는 메시야가 오시면 그가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포하실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지금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때 음식을 사러갔던 제자들이 음식을 싸들고 우물가로 왔다가 예수께서 창녀 같은 바람둥이 여인과 대화하시는 것을 보고 놀라 어안이 벙벙해 “주여, 무엇을 원하십니까? 어째서 저런 여자와 대화를 하십니까?”며 감히 묻는 자가 없었다.

그러자 여인은 물동이를 우물가에 버려두고 동네로 달려가 만나는 사람들을 붙잡고 “부끄러운 나의 과거를 내게 말해준 사람을 와보라”(Come see a man, who told me all the things that I have done, this is not the Christ, is it?; 29절) 이 사람이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말한다. 이 여인의 과거와 현재를 알고 있는 수가 성 사람들이 우물가로 달려와 예수님을 만나고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면서 수가 성 우물가는 순식간에 부흥회장소가 됐다.

구약에서 야곱은 수가 성 우물가에서 라헬을 만나 열두 아들을 낳는 이스라엘의 중흥시조가 됐지만 신약의 사마리아 여인은 수가 성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나 그 속에서 생수가 솟아나는 기적이 있었다. 오늘 우리 교회가, 당신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므로 지형적인 우물에서 기도응답의 브엘세바 우물, 엔학고레의 우물, 행복과 만족 풍성함과 평안함의 우물, 행복한 아내와 즐거운 남편의 우물, 의인과 신앙인의 올곧은 절개와 정조의 우물, 거룩한 입술의 우물, 영생의 샘물, 천년왕국의 생수와 신천신지의 생명수 우물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이런 축복은 신령과 진정의 예배에서 시작된다. 나의 짧은 46년 목회에서, 설교 도중에 성도들이 입신하여 계시들을 받고 130명 성도가 모두 입신을 해 설교를 중단해야 했던 예배와 꼽추가 고침 받아 허리를 펴고, 벙어리가 말을 하며, 수많은 병자들이 치료를 받던 예배, 300여명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하여 진동을 하다가 교회 마루가 주저앉았던 예배, 각종 귀신들이 소리를 지르고 떠나가던 예배, 몇 십 명이 동시에 성령을 받아 방언을 하며 예언을 하던 예배, 설교 중에 교인들의 모골이 송연해지고 몸에 소름이 돋으며 솜털까지 일어서던 예배, 내가 성령에 이끌려 천국 하나님의 보좌 앞까지 인도되던 기도, 수많은 계시가 임해 성도들에게 장래를 예언해주던 예배는 하나같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렸던 예배에서였다.

그런 예배로 우리 예배를 회복하자. 신령의 예배, 엔 프뉴마티의 예배를 드리자. 온 영혼의 열정과 마음을 다하고 나의 감각과 촉각까지 집중하며 우리의 감정과 욕망까지 모두 바치는 그런 예배를 드리자. 우리 온 영혼의 열정과 마음, 감각과 촉각, 감정과 욕망을 다해 찬송을 부르며 기도를 드리고 헌금을 드리며 말씀을 듣는 예배를 드리자. 찬송에 몰입하고 기도에 미치며 말씀에 도취하는 예배,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감사하고 주실 축복을 감사하며 기쁨으로 드리는 헌금의 예배...이런 예배가 신령의 예배이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느슨하게 그로서리 시장 보러가듯, 잠이 덜 깨어 머리산발한 채 미장원에 가듯 억지로 마지못해서 참여하는 그런 예배, 예배시간에 늦어도 미안함을 못 느끼거나 괜찮은 그런 예배, 사단마귀가 좋아하는 그런 예배드리지 말라. 열정을 가지고 예배에 일찍 참석하여 준비하고 감정과 욕망을 다해 찬송을 부르며 감각과 촉각까지 동원해 말씀을 듣고 온 맘과 정성을 다해 헌금을 바치는 그런 예배를 드리자. 예배성공을 위해 주일 아침 금식을 하며 참여해보라. 예배성공을 위해 주일아침 30분, 한 시간 먼저 와서 기도해보라. 당신의 예배가 달라질 것이다. 당신과 당신의 가족이 받는 은혜와 축복이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 안에 계시된 진리와 숨겨진 말씀의 비밀을 듣는 진정한 예배, 카이 알레데이아 예배를 위해 주의 종 목사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진정한 예배는 교회 안에서 오직 목사만 할 수 있는 사명이다. 성도들이 아무리 신령한 예배를 잘 준비했어도, 주일예배에서 목사를 통해 성령 충만한 설교, 말씀의 비밀이 없다면 그 예배는 실패이다. 성경은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무익하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 삶의 교훈으로만 가르치는 목사의 설교는 영적으로 영혼을 깊이 잠들게 하는 자장가일 뿐이며 성도들로 하나님을 헛되게 섬기게 하고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패역적(悖逆的)인 교훈일 뿐이라”(사 29: 10-14, 마 15: 7-9)고 했다.

그래서 기도의 사도 바울, 성경에서 기도를 가장 많이 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인 바울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할 수 있도록 나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엡 6: 19)고 기도를 부탁했던 것이다. 이것은 바울이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한 일곱 가지 기도제목(① 롬 15: 30-31상 ② 롬 15: 31하 ③ 빌 1:19, 몬 1: 22 ④ 고후 1: 10-11 ⑤ 골 4: 3 ⑥ 엡 6; 19, 살후 3: 1-2 ⑦ 히 13: 18-19) 중 하나이다. “진정의 예배”, 말씀의 비밀을 깨닫고 전하는 것은 그만큼 주의 종 자신의 기도도 필요하지만 성도들의 기도도 필요하다는 말씀이다.
 
오늘 김목사도 감히 여러분께 기도를 부탁한다.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말씀의 비밀, 구원론에서 종말론까지의 말씀의 비밀, 불원간 지구촌에 찾아올 휴거를 통한 대구원의 비밀에서 대환난과 지구 종말의 비밀, 예수님의 지상 재림과 천년왕국의 비밀,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의 비밀 그리고 영원한 천국의 비밀을 가감 없이 확실히 담대하게 전하는 목사가 되도록 기도를 부탁한다. 할 수 있다면 주일설교를 위해 금식기도라도, 아니면 예배 전 한 시간, 30분이라도 기도해 달라. 김목사와 주기도문교회가 지구촌을 살리는 우물물이 되도록 기도하는 성도되기를 축원한다.   

김엘리야 목사 (워싱턴주기도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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