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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02월07일 22시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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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에 성공, ‘나눔의 집’ 떠나는 윤태석 씨, 희망의 끈을 잡다


아메리카드림을 안고 온 미국, 계속되는 시련을 만나다
 
뉴욕 나눔의 집(대표 박성원 목사)에서 생활한 지 2년 만에 재활에 성공한 윤태석(54세)씨. 
 
그는 얼마 전 새롭게 펼쳐질 미래를 꿈꾸며 힘차게 한국 행 비행기에 올랐다. 윤 씨가 미국 하와이에 첫 발을 디딘 것은 1984년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아메리카드림을 꿈꾸며 하와이에 정착해서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하와이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고 하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하자 윤 씨는 1994년 뉴욕으로 이주를 계획했다. 뉴욕에 터를 잡은 윤 씨는 여행사를 운영하며 점차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느 날 그에게 또 한번의 시련이 닥쳤다. 바로 1997년 IMF 경제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 여파로 인해 하던 사업이 문을 닫게 되자 그는 택시 운전, 식당 일 등을 하며 어렵게 생계를 꾸려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는 심장에 심한 이상을 느끼며 쓰러졌고 그 길로 심장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그의 건강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대충 몸을 추스리고 다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지만 계속되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결국 가족과도 떨어져 살게 되고 그는 노숙인의 생활로 접어들게 된다. 
 
우연한 만남 나눔의 집…그리고 마약의 늪
 
그러던 중 태풍 샌디가 찾아왔을 때 그는 우연히 나눔의 집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 거처를 두고 새로운 직장을 찾아 다녔지만 일이 뜻대로 풀리지는 않았다. 돈도 잃고 가족들과 떨어져 생활하는 것도 힘든데, 무엇보다 그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목적 없는 삶이었다. 도무지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 할 때, 또 하나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바로 마약의 유혹이었다. 
 
사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마약의 늪에 빠져서 끊었다 피웠다를 반복하며 어려운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2002년 마약을 거래하다 체포되어 4년 간 감옥에서 복역하기도 했으나 그 당시는 직접 마약에 손을 대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출소 후 마음을 잡지 못하고 결국 마약을 시작하게 되었고 돈을 버는 대로 약을 사는데 사용하게 되었다. 마음으로는 수백 번, 수천 번을 끊으려고 했으나 삶이 어려워질수록 더욱 그것에 의지하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 역시 그의 마약문제로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마약이 가정을 파괴하고, 윤 씨 자신도 조금씩 파괴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 나눔의 집 생활을 하면서도 마약의 늪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목사님과 동료들의 눈치가 보였으나 새로운 일을 찾아 돈을 벌면 자신도 모르게 약을 샀으며 그렇게 그는 하루하루 지쳐갔다. 
 
새로운 출발, 고국으로 돌아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되는 박성원 목사의 상담과 권면, 그리고 어려운 중에도 일어서려고 애쓰는 동료들을 보면서 그의 마음에도 조금씩 삶에 대한 갈망이 생겨나게 되었다. 

“더 이상 이렇게 살면 나는 죽을 것이다. 이젠 정말 나를 갉아먹는 마약의 늪에서 빠져 나오고 싶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날마다 결심했고, 그렇게 조금씩 삶의 목적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려웠겠지만, 나눔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자립을 위해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았기에 윤 씨는 조금씩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던 그의 마음에 서서히 하나님의 도우심이 느껴졌고 이제는 잘못된 삶을 청산하고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러면서 그의 마음 속에 아내가 살고 있는 한국에 돌아가 새롭게 출발하고 싶다는 소원이 생기게 되었다.

한국 행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윤 씨는 용기를 내어 박성원 목사에게 마음 속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너무나 신기하게도 박 목사도 같은 생각을 하였고, 주변 지인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2주 만에 한국에 갈 수 있는 길이 마련되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이것을 하나님의 도우심이라고 고백한다. 작년 4월에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다가 한국으로 돌아가 아파트 관리원으로 열심히 살고 있는 김만수 씨 이후 두 번째 일이었다.
 
이제 이곳에서의 모든 미련을 버리고 앞만 보고 떠난다는 그는, “그동안 힘들고 지쳐서 목사님께 화도 많이 냈지만, 그때마다 사랑으로 감싸주신 것이 너무 감사하고, 나에게 제 2의 인생을 살게 해 준 나눔의 집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살면서 느낀 이곳은 전혀 영리적이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모든 일을 투명하게 처리했고 우리들에게 늘 헌신적이었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제 제게 남은 것은 희망 뿐입니다.”
 
윤태석 씨는 2월 6일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선택이지만,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동안 그를 괴롭히던 경제적인 어려움도, 혼자라는 외로움도, 마약의 그림자도 이제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었다. 나눔의 집에서 얻은 사랑과 용기와 희망만이 그와 함께 할 뿐이다.

한국에서 얼른 자리를 잡고 나눔의 집 후원인이 되고 싶다는 그는, “나와 같이 정말 도움이 필요한 노숙인들이 많습니다. 내가 무서운 중독의 사슬을 끊고 일어선 것처럼 나와 같은 어려움에 처한 분들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현재 나눔의 집은 제대로 된 건물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일회성 후원이 아니라, 적은 돈이라도 꾸준히 후원하는 분들이 많아진다면 재활의 기회를 얻는 사람이 더 늘어날 것입니다.” 라며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노숙인들의 쉘터, 나눔의 집
 
현재 나눔의 집은 한인 노숙인들을 위해 의,식,주는 물론 상담과 말씀 등 실제적인 필요를 제공하며 그들의 재활에 힘쓰고 있다. 특히 도박이나, 마약 등 중독자들을 위한 회복 모임을 갖고 있으며 노숙자들이 사회로 나갈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임시 처소로 사용되고 있는 현재의 장소는 커머셜 건물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어려운 점이 많다. 인원 수용에도 한계가 있고, 잠을 자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 바자회, 일일찻집, 자선 음악회 등을 통해 후원모금에 힘쓰고 있지만 새로운 주택을 마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나눔의 집 대표 박성원 목사는 “이곳은 한인사회의 비영리 기관으로 노숙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돕고 있다. 소망이 있다면, 앞으로 단독주택을 두 채 정도 마련하여 더 많은 분들이 머물 수 있었으면 좋겠고, 차후 농장 등을 구입하여 나이 드신 분들도 공동체 생활을 통해 자립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일을 위해 많은 분들의 기도와 후원을 부탁 드린다.”고 말했다.
 
‘나눔의 집’에서는 떠나는 사람들도, 남겨진 사람들도 희망의 끈을 잡고 싶어한다. 더 많은 관심과 후원이 지속된다면 그들의 소박한 꿈들은 곧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뉴욕나눔의집
148-01 34th Ave., Flushing, NY 11354
Tel. 718-683-8884

<한제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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