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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01월20일 21시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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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부부 막 10: 1-12
어떤 세 사람이 천국 문을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때 문지기가 세 사람에게 말하기를, 무슨 소원이든 한 가지씩 들어줄 테니 말해보라고 했다. 첫 번째 사람은 돈 때문에 고생을 너무 많이 했던 사람이라,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문지기는 그가 원하는 대로 큰 부자가 되게 해주었다. 두 번째 사람은 권력에 한이 맺힌 사람이라, ‘권세를 갖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그렇게 해주었다. 세 번째 사람은 ‘여자를 구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문지기는 ‘여자도 여자 나름이지 어떤 여자를 구하느냐?’고 했다. 이 남자는 잠언 말씀을 꿰고 있는 사람이었다. “평생토록 남편에게 선을 행하는 착한 여자, 날이 새기 전에 일어나 음식을 준비하며, 밤이 늦도록 부지런히 일함으로 가정 경제를 일으키는 근면한 여자, 어려운 사람 도와주기를 즐기는 마음이 따뜻한 여자, 입을 열기만 하면 지혜의 말이 샘물처럼 술술 터져 나오는 지혜로운 여자, 내조를 잘하여 남편이 성공하도록 키워주는 능력 있는 여자, 자녀교육을 잘 시키는 교양이 있는 여자, 자신의 건강과 가족의 건강을 잘 돌보는 여자, 이런 여자를 구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천국 문지기가 말했다. “예끼, 이 사람아, 그런 여자가 있으면 자넬 주겠나? 나하고 살지!”

러시아 속담에, “아이를 낳을 때, 한번 기도해라. 아이를 전쟁터에 내보낼 때 두 번 기도해라. 아이를 결혼시킬 때, 세 번 기도하라”는 말이 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중요해 기도해야하고, 그 아이를 전쟁터에서 죽음의 위기를 겪어야 하는 군대를 보낼 때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도해야 하지만 아이를 결혼시키는 일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인륜지대사임을 알아서 기도하고 또 기도해서 결정하라는 교훈적인 격언이다. 그렇다. 결혼은 인생의 모든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인륜지사이다. 우리 인생 70-80년 삶의 반 이상인 30-40년, 또는 ⅔나 ⅘가 되는 40-50년, 60년 이상을 내가 선택한 사람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생활에 성공한 사람은 인생의 어떤 성공보다 최고의 성공을 한 사람이다. 돈을 많이 벌어 사업에 성공하고, 막강한 권세를 얻어 명예에 성공했어도 가정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 결혼생활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절름발이 인생을 산 사람처럼 비극의 사람, 실패의 사람이다. 결혼생활과 가정생활에 성공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부부(夫婦)

본문은 세 차례에 걸친 갈릴리 사역을 마치신 예수께서 구속사역의 마지막 장이 펼쳐질 고성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도중, 사마리아를 경유하는 지름길을 택하고자 했으나 사마리아인들의 배척으로(눅 9: 51-56) 동쪽 베레아 지방으로 발길을 돌리셨는데(막 10: 1, 요 10: 40-42) 그곳 베레아에서 바리새인들과 있었던 논쟁기록이다. 예루살렘 산헤드린 공회에서 파견한 바리새인들과 베레아에서 이혼 논쟁을 끝내신 예수님은 베레아에서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막 10: 46-52)를 지나 벳바게와 베다니(요 11: 1)를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최후를 맞이한다.

예루살렘 산헤드린공회에서 파견된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함정에 빠뜨릴 계획으로 “사람이 아내를 내어 버리는 것이 옳으냐?”(Is it lawful for a man to put away his wife?; 사람이 자기 아내를 버리고 이혼하는 것이 합법적인가?)라고 질문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모세는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며 직접적인 대답 대신 그들이 최종 권위로 생각하는 모세의 말을 인용해 율법적 판단을 요구하셨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내어버리기를 허락했다”고 대답한다. 바리새인들은 신 24: 1, 2절을 근거로 ‘여자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발견될 때엔(When he has found some uncleanness in her) 이혼증서를 써주어 이혼시키고 재혼할 수 있게 하라’했다고 대답하면서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한 것이다.

예수님 당시, 성경시대엔 이 조항을 근거로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혼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수치스러운 일이 무엇을 의미 하느냐’였다. 당시 이혼 문제에 대해 엄격했던 보수주의의 샴마이(Shammai)학파는 ‘수치스러운 일’을 “음행(淫行)과 같이 도덕적으로 수치(羞恥)되는 일”(Marital unfaithfulness)로 보았고, 진보주의와 자유주의의 힐렐(Hillel)학파는 아내의 음행 외에도,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하거나 심지어 아내가 남편의 음식을 태웠을 때도 이혼이 가능하다고 가르쳤다. 따라서 “아내에게서 남편이 좋아하지 않는 어떤 점이라도 발견되면 그것이 이혼에 합당한 사유가 된다”고 가르친 힐렐 학파를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본래(本來)는 여자 쪽에서 남편과의 이혼을 제기할 수 없게 되어 있지만,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거나 폭력을 휘두르거나 중병에 걸렸을 경우, 여자가 법정에 이혼을 청구해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가르치므로 자유주의 힐렐 학파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오늘날 금주금연을 주장하고, 우상숭배를 반대하는 보수주의 정통신앙이 배척을 받고, 술과 담배는 물론 조상숭배제사나 죽은 자를 위한 세례와 헌금과 기도도 유효하다고 가르치는 종교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는 것과 같은 현상이 성경시대 힐렐 학파의 인기였다.

예수님은 ‘모세도 이혼을 허용했다’는 바리새인의 말에,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모세가 이 명령을 기록했지만, 창조시(創造時)로부터(From the beginning of creation) 하나님이 사람을 남자(男子)와 여자(女子)로 만드셨으니 이러므로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Consequently they are no longer two but one flesh: “(따라서)그 결과, 그들이 더 이상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것이라”(What therefore God has joined together, let no man separate)고 하심으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말하고 이혼의 부당성을 논박하셨다. 본문을 중심해 ‘결혼에 관한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을 몇 가지 알아본다.

1.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결혼


남자와 여자가 만나 함께 사는 결혼이 무조건 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결혼일까? 물론 많은 결혼이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결혼이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가 함께 한  솥 밥을 먹고 한 이불을 덮고 자며 자녀를 낳고 살아도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결혼이 아닌 것도 있다. 그것을 한시적 동거, 합법적인 동거라고 한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결혼은 결코 이혼이 없지만 한시적 동거와 합법적인 동거는 헤어짐이 있다. 몇 달에서 1년, 5년 10년 그리고 20-30년 심지어 황혼이혼 때까지 남녀가 함께 살다가 갈라서는 것은 한시적 동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과 구라파, 한국 일본을 포함한 경제 선진국의 높은 이혼율은 결혼에서 오는 비극이 아니라 한시적인 동거에서 오는 비극이다.

심리학자 A. H. 마즈로 박사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5F'란 말로 설명했다. ’5F'란 영어 F자로 시작하는 다섯 가지 본능적 욕구란 말로 ① 성욕(性慾)의 Fucking ② 식욕(食慾)인 Feeding ③ 끼리끼리 뭉치고 살려는 집단의식 욕구인 Flocking ④ 이웃을 공격하고 정복하려는 욕구인 Fighting ⑤ 도피욕구인 Fleeing의 다섯 가지 본능적인 행동의 형태를 의미한다. 인간은 쾌감을 추구하며 사는 존재로 욕구를 충족시킬 때마다 쾌감시 충족되는 구조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교육과정에서 도덕적으로 이성적으로 인성을 교화시키고 있지만, 지나가는 여인의 아름다운 얼굴과 섹시한 몸매를 보고 황홀한 쾌감을 느끼는 원초적 본능을 잠재우지 못하고, 맛있는 음식을 보면 식욕이 일어나며, 집단의식 욕구로 내 편이 아닌 사람을 왕따 시키며, 공격하고 정복하려는 투쟁의 욕구와 현실을 도피하려는 도피욕구가 있다. 한시적(限時的) 동거, 합법적 동거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는 거룩한 결혼이 아니라 성욕(Fucking)을 비롯한 Feeding, Flocking, Fighting, Fleeing의 본능적인 욕구에서 서로 좋아하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살다가 욕구충족이 안될 때 피차 헤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결혼은 부부생활에 위기들을 만나지만 서로 헤어지지 않는다. 여러분의 결혼생활이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결혼이 되길 축원한다.

먼 옛날, 일단(一團)의 천사무리들이 떼를 지어 하늘에서 자기들이 지켜야 할 지위를 지키지 않고 자기 처소를 떠나 지상으로 내려와 사람의 딸들인 여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 맘에 드는 여자들과 자유결혼으로 동거함으로 자식들을 낳았는데 그들이 네피림(Nephilim: Bully, Tyrant, Giant) 거인(巨人)들이다. 천사들은 성욕에 굶주린 짐승처럼 닥치는 대로 여자들을 탐닉했고, 여자들도 남자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기골이 장대하고 준수하며 섹시하게 잘 생긴 천사들에게 빠져 성적으로 몰입하므로 타락의 극치를 이루었으며 그들을 통해 태어난 네피림들은 하나같이 기골이 장대한 거인 용사들이었다.

성령의 감동으로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모세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다”(창 6: 2)고 했고, 베드로는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않으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다”(벧후 2: 4-5)고 하면서, 그들을 홍수로 심판하시는 중에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의 여덟 식구만 보존하셨다고 했으며, 예수의 동생, 유다는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자기 처소를 떠나 범죄한 천사들을 결박하여 무저갱에 가두셨는데, 훗날 소돔과 고모라도 그 천사들처럼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Going after strange flesh: 다른 색(色)의 헤테로스는 “별종의 다른 색”(Another of a different kind: Men with men and angels with women, all living contrary to nature. Also women with women is referred to in Rom. 1: 24-32)이란 뜻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한 천사들이나 소돔과 고모라가 자연법칙을 거슬린 동성연애나 레즈비언 같은 별종의 음란죄를 저질렀다는 뜻)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았다고 했고(유 1: 6-7) 사도 요한은 지구촌을 성적으로 타락시킨 그 천사들의 우두머리 천사의 이름을 아바돈 천사였다(계 9: 11)고 했다. 이렇게 천사들(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들(The sons of God)은 욥 1: 6, 2: 1, 38: 9대로 천사들을 의미한다)과 인간의 성적타락으로 인류는 아담 이후 1656년 만에 노아홍수심판으로 멸망을 당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지 않은 자유결혼과 호모섹스와 레즈비언(Homosexuality and Lesbianism)의 도덕적 타락, 성의 자유는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온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짝지어 주시는 결혼은 어떤 결혼인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결혼을 주선해주신 하나님(창 2; 21-25)은 “내가 네게 장가들어(I will betroth you to Me: “장가들어”의 히브리어 아라스는 단순한 재혼이 아니라 처녀와의 결혼처럼 새로운 시작의 결혼을 의미한다) 영원(永遠)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호 2; 19-20)고 하셨다. 이 말씀은 수세기에 걸쳐 하나님을 거역하고 범죄한 이스라엘이 칠년 대환난에서 지구촌 유대인 ⅔가 대학살을 당하고 ⅓만 남게 되자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겨 그들과의 언약을 지켜서 천년왕국을 시작으로 그들과 영원토록 함께 사실 것을 ‘이스라엘과 결혼’이란 표현으로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이스라엘에게 장가드시는 결혼을 통해 하나님이 짝지어 주시는 결혼의 표본이 어떤 결혼인가를 말씀하셨다.

그렇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시는 결혼은 ① 두 사람이 영원히 사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도 영원히, 저 천국에서도 영원히 사는 것이다(벧전 3: 7에선 부부(夫婦)를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라고 했다) ②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결혼하는 것이다. 의(義, 체데크)는 주관적이며 내적인 공의를 말하고, 공변됨(미쉬파트)는 객관적이고 정의로운 판단을 가리키며, 은총(恩寵, 헤세드)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하나님의 친절과 사랑으로 계약의 의무들을 신실하게 지키는 충성을 가리키고, 긍휼(矜恤, 라하밈)은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부드러운 자비와 동정심을 가리킨다. 인간이 하나님처럼 완전한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을 가질 순 없어도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부부는 하나님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부부의 삶을 살아야 한다. ③ 서로 진실함으로 결혼하는 것이다. 진실함(Faithfulness, 에무나)은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불변하는 성실과 충성”이란 뜻으로 서로를 믿고 신뢰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④ 서로가 100%를 아는 것이다. 안다(Know, 야다)는 것은 객관적인 인식 이상의 것으로 “주관적이고 경험적인 이해”를 가리킨다. 부부는 인격적인 관계에서 서로를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장가드실 하나님은 그들을 100% 아시지만 이스라엘은 과연 얼마나 하나님을 알 수 있을까? 천년왕국 이후 영원한 천국에서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이다(고전 13:12) 마찬가지로 부부가 함께 살면서 서로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10년 된 부부는 10%, 30년 부부는 30% 50년 부부는 50%...정도일까? 어쩌면 죽을 때까지 서로를 다 알지 못할 수도 있다. 100%는 아니더라도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부부는 서로를 더 많이 아는 사람들이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결혼’처럼 우리의 결혼이 완전할 수 없다. 그러나 모범적인 하나님의 결혼은 닮아야 한다. 하나님처럼은 못 되더라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성도로써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부부로 행복하게 사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2. 한 몸의 비밀

결혼은 남자와 여자, 한 인격과 다른 인격, 양성과 음성의 만남이다. 성과 성의 만남, 남자와 여자의 성적(性的)인 만남을 통해서 한 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남성과 남성의 만남인 Homosexuality와 여성과 여성의 만남인 Lesbianism은 하나님의 창조법칙에 따른 한 몸이 될 수 없다. 자석은 양극과 음극만이 서로 달라붙고 양극과 양극, 음극과 음극은 서로 밀어내듯 양성과 음성, 남자와 여자만이 한 몸이 될 수 있다.

전부인과 전남편을 통해 낳은 아이들이 두 남자를 놓고 한 사람을 아버지로 다른 남자를 어머니로 불러야 하는 비극, 한 여자를 엄마로 다른 여자를 아버지라 부르는 비극은 짐승의 세계에서도 없는 인간세계에만 있는 해괴망측한 일이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들이)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롬 1: 21-27)

바울은 오늘날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는 의사, 변호사, 대학교수, 정치인들과 돈 많은 부자 사업가들과 연예인들, 권세 있는 자들이 호모섹스와 레즈비언이 되고, 나라마다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비극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거역한 죄의 결과라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 건전한 부부가 되는 일에서 부정한 관계로 남자와 여자가 만나 몸을 섞는 일, 그리고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가 육체를 섞는 일을 “한 몸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결혼(結婚)의 비밀이며 한 몸의 비밀이다.        

원래 한 몸은 남녀 두 육체(肉體)가 한 몸이 되고, 두 사람의 혼(魂)이 하나의 혼이 되며, 두 사람의 영(靈)이 한 영이 되는 것, 그래서 육체와 정신과 영혼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상적인 결혼으로 한 몸이 되기도 하지만 불륜의 관계로 한 몸이 되기도 하고, 동성끼리의 연합으로 한 몸이 되기도 한다. 불륜의 관계로 한 몸이 되는 것은 이미 자기 남편과 아내와 한 몸이 된 사람 속에 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이다. 그리고 의처증(疑妻症)과 의부증(疑夫症)은 자신 속에 있는 아내와 또 다른 여자들이 피터지게 싸우는 병이고, 자신 속에 있는 남편과 다른 남자가 죽기 살기로 싸우는 질병이다. 자신 속에서 두 여자가 싸우고 두 남자가 싸운다. 자기 아내와 다른 여자가 싸우고, 자기 남편과 또 다른 남자가 자신 속에서 피투성이로 아귀다툼의 싸움을 하니 불륜의 사람과 의처증 의부증의 사람들은 마음이 편할 시간이 없다. 그렇게 이전투구의 싸움이 계속되므로 육체가 지쳐버리고 마음은 날카로워지며 영혼은 핍절되고 고갈되므로 고혈압으로 쓰러지거나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기도 하며 간경화와 암으로 쓰러지며 마지막은 자살까지 하게 된다. 이것이 한 몸의 비밀이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사람이 불륜의 죄를 짓거나 여러 사람을 사랑하거나 하나님을 불신하며 거역하는 사람과 결혼해 한 몸이 되면 그때부터 그 사람 속에서 영적전투가 벌어진다. 아히노암(Ahinoam: 삼상 14: 50)에서 아비삭(Abishag; 왕상 1: 3, 15, 2: 17, 21-22)까지 아홉 명의 부인과 많은 첩을 두었던 다윗 속에서는 많은 여인들이 세력 다툼을 했고 그 아들들이 왕위찬탈의 싸움을 했다. 다행히도 다윗은 애처 밧세바를 한 몸의 주인으로 교통정리를 하므로 밧세바의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를 넘겨줄 수 있었다. 그러나 정실부인 후비(Wives) 700명과 300명의 첩, 빈장(Concubines)을 두었던 솔로몬은 교통정리를 못하므로 여자들 싸움에 져서 한 때 하나님을 떠나는 일까지 있었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만남으로 한 몸이 되는 비밀은 여러 사람과의 불륜관계 뿐 아니라 믿음 있는 사람과 믿음 없는 사람과의 정상적인 결혼(結婚)에서도 싸움과 투쟁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믿음이 좋았던 청년남녀들이 믿음이 없는 사람들과 결혼한 후, 그들을 전도해 믿음의 가정을 만드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믿음이 없는 사람 따라 솔로몬처럼 신앙을 떠나는 사람도 있고 신앙생활이 살얼음판 위를 걷듯 위태위태한 사람도 있다. 신앙의 가정을 만드는 사람은 신앙내공이 강한 자들이고, 신앙이 기우뚱거리는 사람은 신앙내공이 약한 자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누누이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사람과 결혼을 해야 된다고 경고하며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중에 남편 때문에 믿음을 시작했든지, 아내 때문에 믿음생활이 시작된 성도가 있다면 신앙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여 한 몸의 비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비밀의 축복들이 넘칠 수 있기를 축원한다.

3. 다윗과 밧세바 그리고 나단과 솔로몬


우리는 지금 지구촌의 모든 문화와 종교가 뒤섞이고 모든 문명이 혼합된 다문화시대와 다문명시대(Multi-Culture Age)에 살고 있다. 그래서 현대는 만남과 헤어짐, 결혼과 이혼이 너무 쉽게 이뤄지고 이혼은 감기몸살 앓는 정도로 쉽게 생각되는 시대이다. 교회 안에도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거룩한 결혼생활의 부부보다는 이혼의 아픔을 가슴에 안고 사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이다. 좋든 싫든, 원하든 원치 않던 이혼은 거역할 수 없는 대세며 받아드릴 수밖에 없는 추세이다.

성경은 분명히 이혼은 죄라고 말씀했다. 하나님은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는 자를 미워한다고 했으며(말 2; 16) 그런 일로 다른 사람에게 눈물과 울음과 탄식을 주는 사람의 헌물과 기도와 예물을 돌아보지 않겠다고 까지 하셨다. 그럼에도 교회 안에 이혼과 헤어짐으로 혼자가 된 Single Mom과 Single Life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많이 있다. 이런 일로 가해자가 된 사람은 먼저 하나님께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일로 피해자가 된 사람은 가해자를 용서해야 자신도 치료를 받는다.

다윗은 충성된 신하를 죽인 천인공노할 가해자며 정부(情婦) 밧세바는 사랑하는 남편을 속이고 불륜의 죄를 지은 여자며 남편을 간접적으로 죽인 죄의 공범자이다. 하여 두 사람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들이다. 그러나 다윗과 밧세바는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고 용서 받은 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성군과 왕비국모가 된다. 그렇다. 그들은 하나님께 자신들의 죄를 철저히 회개했다. 자기들이 흘린 회개의 눈물이 강물이 되고 침대가 눈물의 강에 떠다닐 정도로 가슴을 찢는 회개를 했다.

하나님은 그들의 회개를 보시고 죄의 값을 치르게 하셨지만 나단과 솔로몬이라는 예수 족보의 양대산맥을 낳는 축복을 주셨다(삼하 5: 14, 대상 3: 5, 눅 3: 31) 오늘 그 사람을 버릴 수밖에 없었고, 그 사람과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성도는 그 죄를 회개하고, 그 사람에게 버림을 당해 심장 속에 원한의 칼이 박혀 있고 저주의 칼을 품고 있는 성도도 원수 같은 그 사람을 용서하는 은혜가 있길 바란다. 회개와 용서가 없이는 하나님의 어떤 축복도 없다. 그러나 회개와 용서가 있는 성도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시는 새 만남과 새로운 삶의 축복, 새 인생의 축복, 새 은혜의 축복이 있다.

1982년 어느 금요일 철야예배에 미국인 성도 한 사람이 우리 예배에 참석했다가 설교 후 통성기도 때에 나의 안수기도를 받고 성령세례를 받고 방언기도를 하게 됐다. 그리고 사흘 후 주일예배에 그가 참석을 했는데, 차에 책 몇 권과 베개를 싣고 교회를 왔다. 그가 말하기를 “지난 35년 동안, 거의 매일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면 아내와 함께 춤을 추러 다녔는데, 금요철야예배에서 성령세례를 받은 후, 자신의 헛되게 살아온 지난날을 후회하며 부인에게 ‘더 이상 춤추러 다니지 않겠다’고 말했더니 이혼하자며 자기를 집에서 쫓아내 책 몇 권과 베개를 싸들고 교회를 왔다는 것”이다.

그는 35년 전에, 신학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 고등학교 선생과 중앙정보부에서 요직을 맡아 안정된 삶을 살면서 아내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밤마다 춤을 추러 다녔는데, 6개월 전부터 허리 디스크로 고생을 하는 중에 정부건물에 있는 Convenience Market에서 일하는 성도의 전도를 받고 금요일 철야예배에 왔다가 목사님의 안수를 받으면서 성령세례를 받고 허리 디스크까지 고침을 받아 너무 좋아서 부인에게 그렇게 말했다가 집에서 쫓겨났다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매일 새벽기도를 나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우리 집에서 함께 살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는데...오도 갈데없는 그로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때부터 약 10개월 동안 새벽기도와 성경읽기 훈련을 받았다(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하고, 하루 종일 직장생활을 하며 한국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일은 그에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새벽기도를 4개월쯤 했을 때, 미네소타에 있는 친구 목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교인 중에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핍박을 당하다가 이혼을 당해 아들 하나 데리고 방문비자로 미국에 온 성도가 있는데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하라”는 연락이었다. 나는 며칠 동안 기도한 후, 교회에서 중고등부 교사로 수고하는 Paul Bellino에게 ‘미네소타 성도’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함께 하나님이 짝지어 주시기를 6개월가량 기도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두 사람을 결혼시켰는데, 지금 그들 부부는 조지아 주 아틀란타에서 미국인 교회를 목회하고 있다. 하나님은 두 사람의 이혼의 아픔을 그렇게 위로하시고 태평양을 건넌 짝지어 주심으로 축복하셨다.

오늘 이혼을 해야 했던 아픔, 이혼을 당한 아픔, 이혼의 쓰라린 상처를 가슴에 안고 있는 성도 여러분, 어찌했건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라. 내게 아픔을 준 사람을 용서하라. 그러면 다윗과 밧세바의 축복이 당신에게 찾아온다. 나단과 솔로몬 같은 축복이든, 영적인 축복이든, 물질의 축복이든, 사명의 축복이든 반드시 당신에게 삶이 행복한 축복이 있다. 이혼과 헤어짐이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라 시냇물을 건너는 디딤돌이 되어 새로운 역사의 삶이 있게 되기를 축원한다.

4. 하나님이 짝지어준 사람을 지키는 자가 받을 축복

최근 모슬렘 국가에서 있었던 감동적인 간증이다. 어느 젊은 부인이 다섯 살과 세 살 된 두 아이와 함께 복음을 듣고 기독교로 개종했다. 모슬렘 국가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일은 목숨을 거는 모험이다. 여인은 남편과 가문의 박해가 극심했지만(이혼까지 위협하며) 끝까지 신앙과 가정을 지키겠다고 하자 어느 날 남편이 이 자매를 몽둥이로 때려죽인 후 땅 속에 묻으면서 두 아이도 함께 산채로 생매장했다. 그리고 15일이 지났다.

그 동네에 무슬림청년 한 사람이 죽어서 동네 사람들이 그를 묻으려고 땅을 팠는데 하필, 15일 전에 예수 믿다가 매 맞아 죽은 여인을 묻은 자리였다. 사람들이 땅을 팠다가 놀랐는데 죽은 여인과 함께 생매장했던 아이 둘이 그때까지 땅 속에 그대로 살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살아난 아이들에게 땅 속에서 아무 것도 없이 15일을 어떻게 살았느냐고 물었더니 “흰 옷을 입은 예수라는 사람이 매일 맛있는 우유와 빵을 가져다주어 그것을 먹고 살았다”고 대답하였다. 현재 이 간증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퍼지고 있다. 신앙과 가정을 지키려다 순교 당한 여인의 믿음이 생매장 당했던 두 아이를 살렸고, 그 일을 통해 복음이 전 세계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성경 데살로니가 전서 4: 3-8에서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아내나 남편을 버리고 이혼하는 것은 “사람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요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아내를 취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처럼 색욕을 좇지 말며, 분수를 넘어서 남의 아내나 남편을 해롭게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아내나 남편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너희의 거룩함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도 했다. 그리고 본문 11-12절에선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하는 것이요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가면 간음이라”고 했다. 간음을 회개하는 사람에겐 다윗과 밧세바처럼 용서와 축복이 있지만 간음을 회개치 않는 자에겐 지옥의 형벌만이 있을 뿐이다.

그다음, 하나님이 짝지어 준 아내나 남편을 끝까지 지켜 가정을 잘 지킨 부부에게 주시는 네 가지 축복은 ①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최고의 분복을 누리는 사람, 남들이 경험할 수 없는 행복한 부부만이 누리는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했고(전 9: 9) ② 부부가 천국에서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는 축복(벧전 3; 7상)이 있으며 ③ 기도가 막히지 않는 축복(벧전 3: 7하)이 있고 ④ 경건한 자손을 얻는 축복(말 3: 15)이 있다고 했다.

오늘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부부의 인연을 지금까지 지키신 성도 여러분, 끝까지 그 축복을 지키시라. 오늘 헤어짐과 버림 당함의 아픔을 가슴에 안고 있는 성도 여러분, 미워했던 과거를 회개하고 증오스런 원수까지 용서하라. 그리고 하나님이 더 좋은 길을 예비하셨음을 믿고 감사로 승리하라. 부부가 행복하게 살라.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이고 맛있게 보이며,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는 것 같이 보여도, 그 떡과 물은 먹어서도 마셔서도 안 된다. 그것은 당신을 죽이는 독약이며 음부 지옥으로 유인하는 함정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떡을 먹다가 멸망당했고 그 물을 마시다가 음부의 나락으로 떨어졌는가?

세상은 지뢰밭이다. 처처에 유혹의 지뢰들이 묻혀 있다. 유혹들을 잘 이기고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아내와 남편을 감사하면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들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김엘리야 목사 (워싱톤주기도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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