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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01월27일 07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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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관식에서 나는 혼자 노래를 불렀다

고등학교 동창생의 모친상 전갈을 받고 얼른 강화에 가서 조문을 하고 볼 일을 볼 생각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자동차 시동을 걸고 한 5분 정도 가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세요. 황 목사님? 나야. 반 목사~"

"아이구, 어쩐 일이시오?"

"다른 게 아니고. 우리 교회 교인 집에 초상이 났는데 장례식장이 강화야. 근데 내가 내일 아침 일찍 수술 일정이 잡혀서 오늘 입관까지만 하고 내일은 못 가게 됐어. 황 목사님이 그 쪽이 고향이니까 내 대신 하관식 집례 좀 해줘요."

"뭐이? 그렇지 않아도 나 지금 강화 장례식장에 조문 가는 길인데~"

"그럼 잘 됐네. 가서 나 만나고 거기 모텔 잡아 드릴 테니까 주무시고 내일 하관식 좀 부탁하오. 하관식이 오전 9시부터 11시 사이에 한답디다."

"가만 있자~ 그럼 나 집에 다시 가서 자고 낼 가겠소. 어차피 내일 새벽 기도도 인도해야 하고 그러니 말이유."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밤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럼, 발인은 어떻게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밤에 카톡을 날렸습니다.

"발인도 내가 하는 거요? 나 내일 오전 9시 전에 도착할 겁니다."

"발인은 오전 830분입니다. 근데 며느리만 교회를 다녀서 목사님이 혼자 다해야 돼요. 찬송할 사람이 없어요."

이 문자 받은 시각이 오후 1035분이었습니다. 순간 '아니, 이런 '대략 난감' 한 장례식을 나한테 맡기다니'라는 생각과 '그러니까 친구지~' 하는 두 가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일찍 알았더라면 우리 교인이라도 몇 대동할 건데 이미 늦은 시간이고 '에라 모르겠다, 그냥 자자' 하고 취침에 들어갔습니다.

하루 자고 오전 430분 기상하여 우리교회 새벽기도 인도하고 바로 준비해서 강화로 출발했습니다. 자동차를 노상에 주차했더니 유리에 성에가 잔뜩 꼈습니다. 그걸 벗겨내니 유리가 안개 낀 것처럼 흐려 시야가 몹시 어둡습니다. 조심히 달리다 보니 유리가 깨끗해집니다. 가면서 오늘 장례식이 좀 부담스러워서 기도하면서 갔습니다. 거의 다 갔는데 전화가 옵니다.

"여보세요. 목사님이세요? 오늘 여기 하관식 집례하시기로 하신 목사님 맞죠?

"."

"아유, 목사님 연락이 안돼서 우리 지금 똥줄이 탑니다. 시신을 로비에 모셔놓고 목사님 기다리느라 목이 다 빠졌습니다. 얼른 오세요."

내가 발인식까지 해야 하는 건데 반 목사는 당신 수술하는 거에 마음이 분주해서 그랬나 내가 가야 할 시각을 정확히 알려주지 못했던 같았습니다. 그래도 난 고지한 시간보다도 빠른 오전 830분 도착했는데 발인은 8시 넘으면 바로 할 모양이었던 것입니다. 난 그것도 일찍 간다고 간 것인데 진짜 오전 9시까지 갔다가는 큰일 날 뻔했습니다. 황급히 약식으로 발인예식을 해주고 운구토록 했습니다.

장례버스에 올라
20여 분 정도 가니 고인의 고향 동네인 것 같았습니다. 차를 세우더니 동네 어귀에서 이를테면 노제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동네 사람들이 강화 사투리를 쓰는 걸 보고 혼자 속으로 웃었습니다. 아침 기온이 차가운데 나는 밖에서 잠시 기다렸고 그것이 끝나니 고인의 선산으로 다시 이동했습니다. 산에는 눈이 쌓여 운구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장지에 도착하여 어느 정도 시신안장이 되니 종교의식 시간이 됐습니다
.

", 지금부터 고 OOO 성도 하관식을 거행하겠습니다.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여러분 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찬송가를 부르려고 하는데 집안 어른 쯤 되어 보이는 분이 '여기 돼지띠 되는 분들하고 여자 상주들은 하관식에 내려오지 마세요'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며느리 한 사람 예수 믿는다는데 그분마저 못 오게 하면 결국 찬송은 나 혼자 하게 생겼습니다. 그래도 뭐 노래 경연대회 나온 것도 아니니 예정대로 찬송가 493'하늘가는 밝은 길이'를 찬송했습니다.

내가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이렇게 찬송가를 부르는데 단 한 사람도 따라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단지 '과연 저 목사가 저 노래를 제대로 하려나~" 하고 쳐다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일단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내가 어디 가서 독창할 실력은 못되지만 전혀 위축됨 없이 찬송가를 은혜로 혼자 특송 하듯 불렀습니다. 기분은 묘했지만 그냥 나의 영적인 기운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노래 솜씨는 별로 없지만 독창을 한 것입니다. 노래를 하다가 슬쩍 보니 유족들이 고개를 푹 숙이고 손주는 약간의 흐느낌이 있었습니다. 숙연한 분위기였습니다. 소위 불신자들이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찬송을 끝내고 잠깐 말씀을 전했습니다. 10여 명의 유족은 관을 둘러섰고 50여 명의 동네 주민들은 먼발치에서 술 한 잔씩 하고 담배를 피우면서 예배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524절 말씀을 본문으로 해서 영생과 심판에 관한 말씀을 모든 이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도록 신경 써서 전했더니 마치 전도 설교를 한 느낌이었습니다. 아래와 같은 취지로 말씀을 이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에 달려 있다. 예수 믿고 바르게 살다 죽으면 영생복락이지만 믿지 않고 죄만 짓다 죽으면 음부에 떨어진다. 다행히 고인은 하나님을 섬기시다 돌아가셨으니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셨다.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가셨다. 앞으로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날에 고인은 죽음에서 일어날 것이다. 유족들은 말씀에 위로를 받고 고인의 유지를 따라 예수 잘 믿고 복 받기를 바란다."

축도하고 취토하므로 나한테 맡겨진 임무는 모두 끝났습니다. 그래도 기독교 신자가 아닌 유족들과 동네 주민들이 기독교식 장례에 예의를 지키며 협조해줘서 무난하게 책임을 완수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상조회 직원이 바로 '목사님 수고하셨습니다, 어서 가시죠, 저희 리무진으로 모시겠습니다" 하고 나를 장례식장에 다시 태워다 주었습니다.

오는 동안 어떤 분은 내게 '목사님은 혼자 노래하시는데도 잘 하시네요'라고 합니다. 오늘 나는 지난해 장례지도사 국가자격증을 받은 입장에서 유심히 장례 광경을 지켜봤습니다. 장례 절차가 참으로 끝까지 인간의 존엄을 지켜주며 시종일관 정성스럽게 진행하는 걸 보고 참 좋게 생각했습니다. 추운 겨울이지만 그래도 따듯한 날 양지바른 곳에 영면함이 좋아보였습니다. 마치고 오면서 나는 무거운 숙제를 하나 해낸 기분이었습니다.

다시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서 고교 동창생 모친상 문상을 하고 입관식에 오신 목사님 팀과 합류해 식사를 하고 담소를 나누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약간 졸음이 와서 뺨을 스스로 때리면서 안전하게 귀가했습니다. 내 평생에 예수 믿는 사람 한 명도 없이 불신자만 세워놓고 예배 인도해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황화진 목사(강은교회/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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