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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01월21일 08시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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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때문에
매일 지하철로 출근을 하는 대학교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늘 지하철에서 읽기 위해 신문 가판대에서 신문을 사곤 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동료 교수와 함께 지하철을 타게 되었습니다.

그 교수는 신문가판대 앞에 가서 신문을 고른 뒤 점원에게 신문대금을 주고 거스름돈을 받으며, “God bless you" 하며 공손히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그 점원은 험한 얼굴로 침을 탁 뱉으며, 재수 없다는 듯 돌아섰습니다. 그러나 정작 대학교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꾸도 없이 지하철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곁에서 지켜보던 동료교수가 오히려 화가 나서 ”아니, 당신은 어떻게 그런 대접을 받고도 참을 수 있지요. 난 차라리 신문을 보지 않든가 지하철을 타지 않겠습니다.” 라며 싸울 듯이 격분했습니다.

그러자 그 대학교수는 “그 점원이 오늘 아침 좋지 않은 일이 있었나 봅니다. 나는 매일 아침 신문가판대에서 신문을 사야하고, 지하철을 타고 다녀야 하는데, 그 사람이 오늘 아침 내게 대하는 태도 때문에 내 일상이 불편을 겪을 순 없지요.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한 것이고, 그 사람은 그 사람의 몫을 한 것입니다.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책임은 각자에게 있지요.”

우리는 앞에서의 예문처럼, 살면서 어처구니없는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부당하게 대접받기도 하고, 오해를 받기도 하며, 불행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이 생기면 자신이 베푼 선의가 땅바닥에 뒹굴고 있다는 모욕감 때문에 격분합니다. 이에 대한 복수심으로 그동안 숨겨둔 방어기제가 자신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발동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강박적으로 반응하고 복수하는 대신, 상대의 상황을 이해하면서, 격분하기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자주 격분하는 것은 자신이 좌절상황에 많이 노출되어 있었던 경험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만약 이런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면, 그 원인은 다른 누구의 잘못이나 불쾌한 사건 때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거기다가 같은 문제로 유난히 잘 격분한다면, 자신 스스로가 더 큰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이 그 문제의 뿌리를 발견하고 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의 무관심이나 무성의로 인해 애정이 결핍된 채 자랐다면, 결핍으로 인해 생긴 정서적 혼란은 평생을 살아가면서 자기방어 체계를 확립하고, 보상받을 방법을 찾아 길을 나서게 됩니다. 이는 불안정한 애착으로 인해 인간의 발달단계에 따라오는 가치관에 맞추어 자라지 못하고 이전에 결핍을 지각했던 수준에 고착되어 자신을 묶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정서적 고착은 하나의 체계로 굳어져서 사건이 생길 때마다 자신의 사고, 감정, 반응, 행동들을 주관하고 미성숙한 판단을 하게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불행이나 고통이 다른 사람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스스로 판단하고, “그 사람만 없으면, 혹은 그 일만 아니었다면 난 달라질 수 있을 텐데...” 하며, 그 사람이나 그 일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해버립니다. 그리고 다시 감정의 폭풍을 만날 때마다 계속 되풀이 합니다.

우리가 격분하는 것은 대개의 경우 좌절을 경험했거나 “누군가 나에게 못되게 굴면 나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고, 나를 무시하는 처사이다.” 라는 자신이 가진 고정적인 가치체계 때문입니다. 무의식에 있는 가치체계가 너무 강해서 상황과 사실을 올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적절한 반응을 하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터득해가는 지혜는 어떤 사람이 어처구니없게 행동한다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마치 뚜껑이 열린 듯 격분하고, 분에 못 이겨 자신의 가슴을 탕탕 쳐야 한다는 원칙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자신이 옳지 못한 대접을 받았을  때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 감정을 오래 끌고 간다면, 그래서 다른 일에 영향을 미친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보면, 우리를 고통에 빠트리는 바로 그 사람이 자신 안에 있는 나쁜 것을 끄집어내게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문제를 알게 하시려고 붙여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통찰로 인해 자신의 정서적 문제가 해결되면 똑같은 상황이 재연되어도 격분하지 않게 됩니다. “그 사람 때문에” 우리는 좀 더 성숙해지며, 하나님을 좀 더 닮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치는 다른 사람의 태도 여하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누군가 자신에게 못되게 굴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가치로운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삼아주시고, 가치롭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박효숙
가정사역전문가/ 목회학 박사
뉴저지 청암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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