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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09월29일 15시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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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유 안의 구세주 예수
          구유 안의 구세주 예수       눅 2: 1-7  

“크리스마스이브에 생긴 일”(It happened on Christmas Eve)이란 실화(實話)간증이다. 1875년 크리스마스이브, 유명한 복음가수 아이라 생키(Ira D. Sanky)가 증기선을 타고 델라웨어 강을 여행하고 있었다. 그날은 유난히 고요하고 하늘은 별들로 가득 차 마치 수만 개의 보속이 일제히 빛을 반사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밤이었다. 생키는 갑판 위의 큰 굴뚝에 기대어 서서 조용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반짝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빛에 반사된 그의 눈이 아름답게 빛나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영혼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멜로디의 노래 소리가 배 전체와 고요한 바다로 퍼져나갔다. 배에 탄 승객들은 진한 감동에 젖어 숨소리조차도 감히 내지를 못했다. 잠시 후 노래가 끝나자 거칠고 햇볕에 검붉게 그을린 얼굴을 한 사람이 생키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혹시 당신은 남북전쟁에 참전하지 않았소?” “그렇소만...” “내 기억이 맞는다면, 당신은 1862년 봄, 오늘처럼 달빛이 환하던 날, 북군초소근무를 하고 있었지요?”“아니,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며 생키는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나도 역시 그날, 당신과는 적의 관계였던 남군초소근무를 하고 있었소. 그 당시 나는 그늘에 숨어있어서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당신은 달빛이 비춰져 멀리서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총을 조심스럽게 들고 당신을 향해 겨누었소. 그런데 그 순간 당신으로부터 아름다운 찬양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소. 지금처럼 눈은 하늘을 바라보고...너무도 아름다운, 형용할 수조차 없는 아름다운 노래에 나는 그만 모든 힘을 잃어버린 채 총을 떨어뜨리고 말았소.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날 당신이 부른 찬양은 바로 오늘 밤에 부른 그 노래였소. ‘한 밤에 양을 치는 자, 그 양을 지키듯, 나의 주님, 나의 모든 일을 두 팔로 보호하시네’나는 그 순간 목자가 자기의 양을 보호하듯 주님께서 크고 강력한 힘으로 죽음으로부터 당신을 지켜주고 계신 것을 느낄 수가 있었소”영혼으로부터 불렀던 찬양이 가져온 기적의 간증이다. 세계적인 부흥사 D. L. 무디와 함께 19세기를 뒤흔들며 사람들을 감동시켰던 복음가수 아이라 생키는 자신에게 총을 겨눴던 저격수에게서 13년 만에 이 간증을 들었다. 여러분의 진실하고 정직한 찬양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사람들의 영혼과 심금을 울리며 감동을 주는 찬양이 되길 축원한다.


                     구유 안의 구세주(救世主) 예수


   1. 예수님의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

신약에 기록된 예수 재림의 약속 318번과 구약에서의 많은 재림 약속의 60-70%는 죽은 성도들의 부활과 살아있는 성도의 휴거가 동시에 일어날 예수님의 공중 재림(살전 4: 13-18절)보다는 세상에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고, 교회 안에서 의인과 악인, 알곡과 쭉정이,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를 심판하신 후, 천년지복의 주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예수님의 지상 재림 약속(계 1; 7)이다. 이렇게 재림 약속 중에서 공중 재림약속보다 지상 재림약속이 많은 것 때문에 일부 학자들이 지상 재림에 Focus(초점)를 맞춰 가르치므로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의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을 혼동하거나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성경은 예수님의 공중 재림과 성도들의 공중 휴거가 있은 후 지상 재림이 있을 것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의 재림 중에서, 공중 재림과 휴거의 약속보다 지상 재림의 약속이 몇 배나 더 많은 것은 종말시대에 성도들 중에서 휴거될 성도보다 환난을 통과할 성도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특별배려에서 예수님의 지상 재림 약속을 다양한 방면에서 많고 다양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주님의 다시 오심이 가까운 이 종말의 때에 휴거의 구원이든, 환난통과의 구원이든 구원에서 낙오되는 성도가 우리 중에 한 사람이라고 없게 되기를 축원한다.

예수님의 지상 재림보다 먼저 있을 공중 재림과 성도의 휴거를 예언한 말씀들을 몇 구절 소개해 본다.

⑴ 성도의 휴거와 환난 통과의 대표적 예표는 에녹의 휴거(창 5: 21-24, 히 11: 5)     와 노아의 환난통과 방주의 기록(창 7: 6-12)이다. 에녹과 노아는 똑같이 하나     님과 동행한 의인이었지만 에녹은 산 채로 휴거돼 구원을 받았고, 노아는 홍수     심판을 통과해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말세성도들 중엔 휴거 성도가 있고 환난     을 통과할 성도가 있을 것의 예표이고, 에녹은 한 사람이었고 노아는 여덟 식구     였듯이 휴거 성도보다 환난을 통과할 성도들이 훨씬 많을 것을 표상한다.

⑵ 시 12: 1절은 성도의 휴거를 예언한 노래의 말씀이고, 2-7절은 대환난에 관한      예언적인 노래의 시로, 특히 5절은 대환난에서 적그리스도의 박해와 핍박의 극     한 상황에서 성도들이 가련하고 궁핍한 중에 하나님께 구원을 부르짖을 때에       ‘안전지대’(In safety)로 도피케 하여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을 약속한 말씀이다.     다윗은 성령의 영감으로 이렇게 휴거와 대환난을 구분하여 노래했다.
  
⑶ 시 50편은 성도의 휴거를 예언한 시(詩)고(특별히 4절과 5절에서 “그 백성을 판단     하시려고(He may judge His people) 하늘과 땅에 반포하여 이르시되 ‘나의 성도를 모     으라’(Gather My saints together to Me)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고 한 말씀에서     “나의 성도를 판단하시려고”는 선악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휴거된 성도들에게 상급을     주기위한 심판을 의미한다) 시 52편, 53편은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고, 혀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처럼 간사를 행하며, 선보다 악을 사랑하고 의를 말     하는 것보다 거짓을 사랑하는 ‘강포한자, 간사한 자, 어리석은 자’인 적그리스도     의 죄악적인 만행과 성도를 박해하는 적그리스도가 예언돼 있다. 따라서 시편의     기록 순서로 보아서도 적그리스도의 대환난 전에 성도의 휴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⑷ 이사야 57: 1의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 자들이 취     하여 감을 입을지라도 그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 줄을 깨닫는     자가 없도다”에서 의인이 ‘죽는 것’, 아바드와 자비한 자가 ‘취하여 감을 입는      것’, 네에사핌은 모두 대환난 전에 성도의 휴거를 예언한 말씀이다. 그들이 화액     (禍厄)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The righteous is taken away from the evil      to come; “다가올 악으로부터 취하여진 것”)은 일차적으론 사방도처에 만연한     도덕적 악행으로부터 또는 이방군대의 침입으로 나타날 민족적 죄악에 대한 징     벌로부터 취함을 당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궁극적인 의미는 성도들이 적그리스도     의 박해와 대환난에 있을 각종 재난과 저주들을 당하기 전에 미리 데려감을 입     는 휴거를 의미한다.

   화액(禍厄, The evil)이란 히브리어 라아의 문자적인 의미는 “쓸모없게 하다”,      “산산조각 내다”라는 뜻이니 이것은 칠년 대환난 때, 지구촌이 일곱 인 재앙, 일     곱 나팔재앙, 일곱 대접재앙을 통한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로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 파멸될 것을 가리킨다. 그런 일이 지구촌에 있기 전에 성도들을 공중으로 들     림 받는 휴거로 구원하신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이사야 57: 3-12절은 지상에 남아 있는 악한 자들, 적그리스도와 그 추     종자들이 지을 20가지 죄를 열거한 말씀이고, 13-19절까지는 대환난 때에 의인     들이 받을 10가지 축복, 20-21절은 악인들에겐 결코 평강이 없다(There is no     peace to the wicked)는 경고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휴거는 칠년 대환     난의 화액 전에 있을 것이다.
 
⑸ 이사야 26: 19-20, 27: 1의 예언이다. 먼저 26: 19의 “주의 죽은 자들은 살       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로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     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는 예수님이     공중에서 호령을 발하시고,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면     서 공중, 저 새 예루살렘으로 재림하실 때, 구약 4000년과 신약 2000년 동안에     죽어서 땅과 티끌 무덤에 묻혔던 모든 성도들이 먼저 부활하고 땅에 살아있는      성도들이 산 채로 휴거될 것의 예언이다.

   그다음, 20절의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간 숨을지어다”는 대환난 때 성도들 중에서 천년왕국을 위한 특별     사명의 사역자들을 양식과 물이 공급되고 안전한 지하밀실로 옮겨서 보호하실      것을 예언한 말씀이고, 27: 1의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     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는 예수께서 지상에 재림하시면서 용과 마귀 사단의 세력을 결박해     무저갱에 1000년 동안 가두실 것에 대한 예언이다.

   이사야는 이렇게 단 세 구절의 말씀으로 성도들의 부활과 휴거, 칠년대환난, 마     귀의 천년 결박과 천년왕국을 순서적으로 예언하므로 모든 성도들이 휴거와 지     상 재림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게 했다.

⑹ 미가 선지자의 예언이다. 미가 7: 2 상반 절의 “이와 같이 선인이 세상에서 끊     쳤고 정직자가 인간에 없도다”(The good man is perished out of the earth,      and there is none upright among men)는 선하고 정직한 성도들이 휴거돼 사     라져 버리므로 세상에 남아 있지 않음을 의미하고, 하반 절의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며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하고”와 3절에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도다. 그 군장과 재판자는 뇌물을 구하며 대인은 마음의 악한 사     욕을 발하며 서로 연락을 취하니”는 뇌물이 횡행하며 판을 치는 적그리스도의      시대를 암시한다(단 11: 30) 그 다음 4절의 “그들의 가장 선한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도다...”도 악이 가득한 적그리스도 통     치하의 인간사회를 가리킨다.

   그리고 5, 6절의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지어다. 아들이 아비를 멸시하며 딸이 어미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미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 집안사람 이리     로다”는 서로 믿지 못하는 극도의 불신상태, 밀고(密告)가 난무하고 서로를 감시     하는 사회가 될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아비가 자식을, 자식이 아비를 밀고하는     살벌한 북한사회처럼 장차 다가올 적그리스도 시대, 칠년대환난 때엔 모든 사람     의 사랑이 식어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시대, 언제 누구에게 밀고를 당해 죽임     을 당할지, 어디서 어떻게 감시를 당할지 알 수 없는 공포의 시대가 될 것이다.

⑺ 눅 21: 36절의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신약성경에서 성도들이     대환난(20-28절)을 피해 휴거한다는 최초의 명백한 언급이다. 휴거 없이 성도들     이 장차 지구촌에 올 대환난을 피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따라서 예수님의 공중 휴거와 성도의 휴거는 대환난과 예수 지상 재림 전에 있     을 전대미문의 미증유사건이다.

⑻ 데살로니가 전서 5: 9의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     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는 말씀     과 데살로니가 후서 2; 7-8의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     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그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     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는     말씀이다.

   데살로니가 전서 5: 9의 말씀은 “하나님은 성도들을 환난이나 멸망을 통과하도     록 예정하지 않으셨다”는 말씀이고(계 6: 1-19: 20, 마 24: 15-21) 데살로니가     후서 2: 7-8절은 “성도들을 지상에서 옮길 때까지(Until he is taken out of the     way), 성도들이 휴거하여 들림 받기까지 불법의 비밀, 적그리스도의 역사가 세     상에 나타나지 못할 것”이란 말씀이고, 불법의 사람,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세상     에서 활동할 때, 예수께서 지상 재림하여 그를 죽일 것이란 말씀이다. 따라서 예     수님의 공중 재림과 성도의 휴거는 순서적으로 예수님의 지상 재림 전에 있게      된다는 말씀이다.

⑼ 계시록 3: 10절이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     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비록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에 가장 작은 교회, 가장 힘이 약한      교회이지만 빌라델피아교회가 주님의 인내의 말씀을 지키고, 인내로써 주의 말     씀을 지켰기 때문에 “나도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주겠다”(I also     will keep you from the hour of temptation)는 말씀이다.

   “면하게 해주겠다”(Will keep, 테레소 에크)는 ① “환난 가운데서 보호를 해준      다” ② “환난에서 떠나 보호를 받는다”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본문의 내용과      다음 절(11절)의 문장을 연결해 볼 때 지구촌에 임하는 칠년 대환난의 시험이      오기 전에 성도들을 환난에서 떠나 보호를 받는 휴거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예수님의 다시 오심은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의 순서로 진행될 것이다. 

⑽ 계시록 4: 1과 그 이후가 주는 교훈이다. 계 4: 1은 지상의 성도들을 대표한 사     도요한의 휴거 경험이고, 4: 2-5; 14절까지는 장차 천상에서 휴거성도들이 보게     될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님의 영광스런 보좌와 24장로들과 네 생물 그리고 천군     천사와 성도들의 찬양 사건들이며, 6-19장까지는 칠년 대환난 동안에 지상에      있을 사건을 요한이 천상에서 본 기록들이다. 그리고 20장은 예수님의 지상 재     림과 1000년 동안의 사단마귀의 무저갱 투옥과 천년왕국의 기록이다. 따라서 계     시록도 성도의 휴거(예수의 공중 재림으로 있게 될 휴거)와 지상 재림이 순서적     으로 기록됐다.

이 외에도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Second Coming)이 공중 재림과 성도들의 휴거, 휴거 성도를 지상으로 데리고 오시는 예수님의 지상 재림의 순서로 진행되는 것을 성경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가 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구원의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2. 카이저 아구스도의 호적(戶籍) 명령과 666표

2000년 전, 유대 땅 베들레헴의 여인숙 말구유에서 육신을 입으시고 어린아이로 세상에 태어나신 예수님의 초림은 종말시대에 하나님의 아들로, 심판의 주로 다시 오실 예수님과 여러 가지로 유사하다. 특히 예수님의 초림 시의 시대적 역사적배경과 예수 재림의 역사적 상황 면에서 닮은 점이 많다. 그 중에 초림 시, 가이사 아구스도(Caesar Augustus) 로마 황제의 호적 포고령은 재림 직전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의 666 짐승의 표, Veri-Chip과 Positive-ID 카드를 예표(豫表)하는 사건이다. 로마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당시 세계지도에서 로마의 통치권역 내에 있는 아프리카에서 아시아 유럽의 모든 나라와 민족과 방언과 족속 심지어 부족과 씨족까지 세금 징수 목적으로 호적을 하라고 황제의 이름으로 법령을 포고했듯, 장차 옛 로마제국 판도 안에서 나타날 적그리스도는 자기의 통치권역과 음녀바벨론 가톨릭과 연합한 지구촌의 모든 나라와 민족과 방언과 족속에게 666 짐승의 표를 받게 할 것이다.

주전 27년부터 주후 14년까지 로마황제로 재위한 가이사 아구스도의 본명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Gaius Octavius)였는데 후에 외증조부 율리우스 시저의 이름을 따라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저(Gaius Julius Caesar)로 이름을 바꿨다. 그는 BC. 27년에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위대하고 고귀하며 지극히 숭배 받는’이란 뜻의 아우구스투스란 칭호를 부여 받으면서 카이저 아우구스투스 황제로 최고 권력을 행사했는데, 그는 탁월한 통치능력과 현명하고 훌륭한 정치력과 행정능력을 발휘해 점령지들의 지방자치를 허용하고 문화와 종교, 생활풍습을 인정해 주었으며, 심지어 로마법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점령지의 법률까지도 인정해 주므로 로마제국이 오랜 세월 동안 강구연월(康衢煙月)의 평화가 지속되게 하므로 ‘자비로운 정치가’, ‘로마의 대부(代父)’로까지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교만하게도 최고 승원장(Pontifex Maximus), 대제사장(Highest Priest)이란 칭호를 받아들여 모든 종교의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피살된 외증조부 율리우스 시저를 신격화하여 그를 기념하는 사원을 건립하고 그를 신으로 받들도록 명령하기도 했다. 이렇게 그는 훌륭한 정치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많은 죄를 지었다. 그리고 탁월한 정치지도자며 행정가였던 그는 점령지 나라들이 무질서하다는 것을 알고 인구조사를 실시하도록 황제포고령을 선포했는데, 그 인구조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 5: 2)는 미가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는데 일익을 담당하는 사건이 된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 과학 종교를 통해서 여러분의 삶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뤄주시는 축복이 되기를 축원한다.

   3. 구유 안의 구세주 예수

가이사 아구스도의 호적포고령에 따라 요셉과 마리아도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베들레헴으로 출발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7.2km 떨어졌고, 나사렛에서는 약 144km 떨어진 먼 곳인데, 마리아가 해산을 앞둔 만삭의 몸으로 그렇게 먼 길을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산모와 태아에 치명적인 위험을 줄 수 있는 일이다.  당시 로마법엔 여자도 호적의 의무가 있었지만 자신이 직접 고향에 가서 호적할 필요는 없었다.

마리아가 만삭의 몸을 이끌고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여인숙 객실마다 만원이었다. 방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가 숙소로 얻은 장소는 소와 말이 잠자는 외양간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마리아는 거기서 갓난아이 예수를 낳았다. 우주의 주인이신 예수,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저 수 조억 개의 별들까지 소유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마구간에서 태어나 밤하늘을 향해 고고지성을 울리신 것이다. 그리고 마리아의 손을 통해 강보에 싸인 채 마소의 먹이를 담아주는 나무 여물통, 구유에 눕혀지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지구촌의 첫 날 밤, 첫 번째 성탄절 밤이다.

물론 요셉과 마리아는 여관 주인에게 차별대우를 받은 것은 아니다. 누가의 기록  대로 여인숙사관에 유숙할 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There is no room for them in the inn; 7절) 그래서 마소의 외양간에서 태어나셨고, 짐승의 밥통, 구유에서 첫 번째로 지구촌의 온도를 체감하셨다. 이것은 인류의 구세주요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비천한 신분으로 보잘것없이 너무나 초라하게 이 세상에 오셨음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말구유, 소 여물통이 예수님을 모신 거룩한 곳이 된 것처럼 오늘도 예수님은 사람들이 외면한 곳, 가난으로 멸시와 천대를 받는 곳,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곳에서 말구유처럼 자기 사명을 다하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으시며 그 사람을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이다.

요단 계곡에 세 나무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세 나무는 각자 자기 희망을 이야기 했다. 첫 번째 나무가 말했다. “나는 자라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서 성전 제단이 됐으면 좋겠어. 하나님께 헌신도 하고 전 세계에서 성전을 찾아오는 많은 사람을 보는 행복으로 살고 싶어” 두 번째 나무가 말했다. “내 꿈은 사람들을 섬기는 거야. 나는 지중해의 해변으로 가서 커다란 범선이 돼 검푸른 지중해를 가로지르며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배가 되고 싶어” 그러자 세 번째 나무가 말했다. “나는 혼자 여기에 남고 싶어. 그래서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나를 쳐다보는 사람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찬양하게 하고 싶어. 그리고 뜨거운 여름철에는 피곤한 길손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고 싶어”

세월이 흘러 세 나무가 재목으로 쓸 만큼 큰 나무가 된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벌목꾼들이 몰려와 도끼를 들고 나무를 베기 시작했다. 첫 번째 나무는 드디어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이 되려는 자기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찬란한 꿈은 무참하게 깨어지고 베들레헴 시골 어느 집의 작은 말구유가 됐다. 첫 번째 나무는 심한 수치감에 몸을 떨었다. “내 꿈은 어디로 사라지고 겨우 말먹이나 담는 여물통이 되다니...”

두 번째 나무도 베어졌다. 나무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배를 만드는 공장으로 보내졌다. 가는 길 내내 두 번째 나무는 콧노래를 부르며 말구유가 되어 사라진 첫 번째 나무를 비웃었다. 그러나 얼마 후 그의 꿈도 허무하게 깨지고 말았다. 큰 범선이 되겠다는 꿈은 간 곳 없고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는 비린내 나는 조그만 어선이 됐기 때문이다. 두 번째 나무는 자신이 그렇게 보잘 것 없고 무명한 존재가 되고 만 사실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세 번째 나무도 벌목공에게 잘려서 예루살렘으로 가게 됐다. 그 자리에 오랫동안 남아서 사람들에게 안식과 자연의 정취를 남겨주려던 꿈은 벌목공을 보는 순간에 포기했지만 설마 자기가 목수들의 손에 의해 토막토막 잘려져 죄인을 처형하는 세 개의 나무 십자가 형틀이 될 줄은 정말 몰랐던 것이다. 십자가 형틀로 창고로 옮겨진 세 번째 나무는 마치 자신이 천하에 다시없는 죄인이 된 것만 같아서 절망하고 말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다. 보잘 것 없는 말구유가 된 것을 불평했던 첫 번째 나무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사건을 만난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아 눕히는 말구유가 돼 메시야의 제단이 되는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지상에 어느 성전제단도 이와 같은 명예를 얻지 못한 사건이다. 두 번째 나무에게도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거대한 범선이 돼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려던 꿈이 무너지고 비록 갈릴리바다에 작은 어선이 됐지만 베드로의 고기잡이배가 되므로 어느 날 예수님이 타시고 배 위에서 설교도 하심으로 어느 범선보다도 더 큰 영광을 얻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나무는 비록 죄인을 처형하는 십자가가 됐지만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온 지구촌 인류를 살리시고,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나무를 본 따서 십자가를 만들고 보고 사랑하게 됐으니 얼마나 큰 영광인가? 이렇게 세 나무는 처음에 소망하던 자신의 꿈들이 산산이 부서진 것 같았으나 하나님은 더 위대하고 존귀하게 쓰임 받도록 인도하셨던 것이다.

평생에 모든 꿈 허물어져 세상의 친구 다 떠날 때
어둠에 앉아서 울지만 말고 예수님 품으로 나오시오.
예수님은 나의 생명 믿음 소망 사랑이시니
십자가 보혈 자비의 손길로 상처 입은 너를 고치시리.

베들레헴 여인숙들이 만원임을 감사하자. 하루 밤 유숙할 방이 없어도 감사하자. 당신의 삶이 말구유 소여물통으로 외양간에 버림 받은 것처럼 되었어도 감사하자. 당신 속에 주님이 찾아오시는 집이라면, 주님이 사용하시는 도구라면, 주님이 빌려 쓰시는 참 종이라면 그것으로 감사하자. 그 사람에게 땅의 축복과 하늘의 영광이 있을 것이다.

당신이 세상적으로 성공하지 못해 당신 교회가 호화판 호텔이 못되더라도, 별 다섯(오성) 호텔은 못됐다하더라도, 주님이 계시지 않는 교회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할지라도 말과 소, 양들의 똥오줌 냄새나는 마구간 같은 교회라도 주님이 계신 곳이 진정한 교회요, 말구유와 소여물통 같이 누추한 곳이라도 주님이 계신 곳이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요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하는 교회이다.

지금, 삶이 내 꿈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낙심하거나 한숨 쉬지 말자. 우리가 주 안에 있는 한, 하나님은 내 꿈보다 더 아름다운 것으로 채워주실 것이며, 더 존귀한 것으로 축복해 주실 것이다. 말구유 소여물통이라도 주님이 사용해 주심을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김엘리야 목사(워싱톤주기도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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