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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09월09일 07시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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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의 예언 설교와 휴거
에녹의 예언 설교와 휴거   유 1: 14-16절

6천 년 인류역사에서 지구인으로 우주선을 타고 달에 착륙해 달 표면을 걸어본 사람은 지금까지 12명뿐이고, 그 중에 현재 살아있는 생존자는 8명뿐이다. 달 착륙경험자들의 고백을 담은 유명한 저서, Andrew Smith의 ‘Moon Dust’나 다치바나 다카시가 쓴 ‘우주로부터의 귀환’ 같은 책을 보면 그들이 특별선택 돼 우주인으로 달에 다녀온 뒤에는 대체로 그들의 생각과 삶이 바뀌었다. 암스트롱에 이어 두 번째로 달을 밟은 버즈 울드란은 달에 도착해 걷잡을 수 없는 흥분과 감격 중에도, 착륙선에서 달 표면으로 나가기 전에 지구에서 가져온 빵과 포도주로 혼자 성찬식을 했을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다. 그러나 지구 귀환 후 그는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극심한 우울증을 앓다가 한때 정신병원 신세까지 졌고, 반대로 신앙이 별로 없었던 제임스 어윈과 찰스 듀크(Charles Duke)는 열렬한 기독교신자로 변신했다. 

여섯 살 때 처음 비행기를 탔고, 자동차 운전면허보다 비행사 자격증을 먼저 딸 정도로 타고난 우주인, 한국전쟁에 참전해 78회나 출격한 노련한 비행조종사였던 닐 암스트롱이 1969년 7월 21일, 오전 11시 56분 20초, 서른여덟(38세) 살에 인류최초로 달에 착륙하여 우주선에서 내려 달을 밟으며, 우주원년을 시작하면서 떨리는 소리로 “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but one giant leap for mankind”(한 사람에겐 비록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를 외쳤던 그가 지구로 돌아와 극적인 심경변화를 일으켜 “다시는 달에 갈 계획이 없다”고 선언한다. 그 후 그는 교수, 기업체 대변인으로 평범한 삶을 보내면서 남들이 자신을 영웅시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 정계진출 유혹도 물리쳤고 1994년 이후 얼마 전 82세에 심장병으로 타계할 때까지 경매 돈벌이에 악용될 가능성 때문에 친필 사인조차 일절 사양하면서 평범하게 살았다. 이 예화들은 ‘행복하던 중산층가족이 아들 Jacob의 과실치사사건을 계기로 갈등과 불신, 고뇌에 빠져들자 갑자기 변한 상황에서 갈등하던 사춘기의 딸 Judith가 “그 사건 후 우리 가족은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고 독백하는 메릴 스트리프의 영화 Before and After(이전과 이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은 예화들’이다.

그러나 “이전과 이후”는 비단 지구인들이 ‘계수나무 한 그루와 토끼 한 마리가 산다’고 노래하던 신비의 우주로 생각했던 달나라를 밟았던 우주인들만의 이야기, 소수의 특별계층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막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서민층의 이야기고 전문직에 종사해 살아가는 중산층의 이야기며 세상사람 모두,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Before and After(이전과 이후)는 크게는 BC(Before Christ; 그리스도 이전)와 AD(Anno Domini; 그리스도 이후인 서력) 같은 역사적 사건에서, 작게는 우리의 결혼 전과 결혼 후, 내가 미국에 오기 전과 오고난 후, 사업을 하기 전과 하고난 후, 그 사람을 만나기 전과 만나고 난후, 우리가 교회를 출석하기 전과 출석한 후, 예수를 믿기 전과 믿고 난 후 등 우리가 어떤 일을 계기로 나머지 인생이 달라진 경험들을 의미한다.

                       에녹의 예언 설교와 휴거

에녹은 성경에 등장하는 4,000여명 인물 중 여러 상황에서 이전과 이후(Before and After)를 극명하게 보여준 대예언자이다. 유다서 1: 14에서 예수의 친 동생 유다(막 6: 3)는, 예언자 에녹을 아담의 칠(7) 세손, 에녹(Enoch, in the seventh generation from Adam)이라고 소개했는데, ‘아담의 7세손 에녹’이란 말은 성경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표현이다. 창 5: 3-24절과 역대상 1: 1-3에 기록된 아담족보를 계산해보면 에녹이 아담의 칠세손이 되는 것이 맞지만, 유다는 구약보다는 당시 사도들과 교회의 인정을 받고 잘 알려졌던 위경인 에녹서(에녹서 60: 8, 93: 3) 훗날 교부 오리겐(Origen)과 터툴리안(Tertullian)까지도 인정했던 에녹서를 인용해서 에녹을 아담의 7세손이라고 한 것이다.

이제 천지창조와 인류조상 아담 탄생 622년에 ‘아담의 칠 세손’으로 세상에 태어난 에녹, 그의 65세 이전과 이후 그리고 그가 65세부터 300년 동안 외롭게 외치며 설교했던 ‘에녹의 대 예언들’을 알아본다. 그리고 ‘에녹의 365세 이전과 이후’를 통해 숨겨진 하나님의 비밀과 은혜도 함께 나눠본다.

   1. 에녹의 대 예언

아담의 7세손 에녹은 그의 나이 65세 때, “When he is dead, it(the deluge)shall come”(그가 죽는 날, 대홍수의 큰물이 쏟아질 것이다)는 의미의 아들 Methusela를 낳고 형식적 신앙에서 적극적인 믿음의 사람이 된다. 아들을 낳기 전, 하나님께서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로 지시해주시자 “아들이 죽는 날에 대홍수심판이 있을 것”이란 계시에 에녹은 거대한 충격을 받고 이제까지의 일상적인 삶에서 돌변해 경건하게 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그때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 에녹의 65세 이전과 이후의 극명한 삶의 변화이다. 그러자 시대를 초월하여 예외 없이 당신과 동행하는 자들에게 비밀계시를 주셨던 하나님께서 에녹에게도 미래에 있을 비밀계시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 비밀계시 중의 일부가 유다서 1: 14-15절의 에녹의 예언이다.

“아담의 칠 세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定罪)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에녹의 설교는 당대 사람들이 상상도 못할 충격적인 예언이었다. 6천 년 후에나 될 일을 계시로 보고 예언한 설교였으니, 6천 년이 지난 오늘날,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까지도 믿기 어려운 예언을 당대(에녹시대) 사람들이 에녹의 예언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에녹의 예언을 생각해 보기 전, 우선, 창세시대에 에녹의 심판예언 설교메시지를 들었던 사람들을 살펴본다. 창세기 5장의 아담 계보(The generations of Adam)를 살펴보면 에녹의 예언 설교는 아담부터 아담의 9대손 라멕까지 9대에 걸쳐서 수천수만 수십만이 들었을 것이라는 흥미로운 추산이 나온다.

젊어서 나은 가인과 아벨 이후, 아담은 130세에 셋을 낳고 800년을 더 살아 930세까지 향수하고, 셋은 105세에 에노스를 낳고 807년을 더 살며(912세까지) 에노스는 90세에 게난을 낳고 815년을 더 살고, 게난은 70세에 마할랄렐을 낳고 910살까지 840년을 더 살며, 마할랄렐은 65세에 야렛을 낳은 후 830년을 더 살며(895세) 야렛은 162세에 에녹을 낳고 962세까지 800년을 더 산다.

성경대로 에녹이 65세에 예언사역을 시작했으니 그때 아담의 나이는 687세였다. 따라서 아담은 930세에 죽는 날까지 243년 동안을 에녹의 예언 설교를 들었을 것이고, 그 아들 셋은 557세부터 300년 이상 에녹의 심판 설교를 들었으며, 아담의 손자 에노스는 452세부터 300년 동안 에녹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그의 설교를 들은 후 153년을 더 살았으며, 그다음 아담의 4대손 게난은 300년 동안 에녹의 설교를 듣고 에녹이 휴거승천한 후에도 60년을 더 살았고, 에녹의 할아버지 마할랄렐은 손자의 휴거 10년 전까지 무려 290년 간 에녹의 설교를 들었으며, 에녹의 아비 야렛은 227세 때부터 300년 동안 아들의 심판예언 설교를 듣다가 에녹이 승천한 후에도 435년을 더 살고 962세에 죽었다.

그다음, 에녹의 아들 므두셀라는 어렸을 때부터 한 집에서 함께 사는 아버지로부터 홍수심판 예언과 예수님의 지상 재림 예언 설교를 들었고, 아버지 에녹이 승천한 후에도 665년을 더 살다가 969세를 향수하고 죽는데, 놀랍게도 므두셀라 969세는 천지창조와 아담창조 후 1656년이 되는 해로, 노아 600년 대홍수심판과 같은 시기이다. 따라서 노아 600세 되던 해 2월 10일에 노아가족이 방주로 들어갔고 17일부터 대홍수가 시작됐으니 인류 최장수기록자인 므두셀라가 죽은 것은 아담창조 1656년 그해 1월 1일에서 2월 10일 사이에 사건이 된다. 하나님이 에녹에게 주셨던 계시대로 므두셀라가 죽자마자(When he is dead) 대홍수가 시작된 것이다.

에녹의 예수 지상 재림과 심판예언 메시지는 그 아들 므두셀라와 손자 라멕까지 들었는데 이 말은 인류의 조상 아담부터 아담의 9대손까지 에녹의 예언을 모두 들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에녹의 예언활동은 300년 동안이었지만 그의 예언과 예수 재림의 심판경고 설교를 들은 사람은 아담부터 9대에 걸친 수십 수백만이나 된다.

창세기 5장의 아담 계보대로, 에녹이 65세에 낳은 아들 므두셀라가 187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았다고 했으니 이것은 ① 에녹의 손자 라멕은 최소한 113년을 에녹과 함께 살면서 그의 설교를 들었음을 의미이고 ② 에녹의 휴거승천 69년 후에 에녹의 4대손, 라멕의 아들로 태어난 노아는 평생에 한 번도 에녹의 설교를 듣지 못했음을 의미이며 ③ 777세를 향수하고 죽은 라멕은 최소한 113년을 에녹과 함께 살며 그의 설교를 들었고 노아 대홍수 5년 전(182+600=782(노아홍수의 해)-777(라멕 사망의 해)=5년(대홍수 전 5년)에 죽었다는 결론이다.
 
이 아담족보의 역사기록에서 발견하는 놀라운 사실은 에녹의 설교를 100년 200년 300년 동안 들었던 수십 수백만의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구원은 받았겠지만 에녹 같은 걸출한 거룩한 의인,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배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에녹의 휴거 69년 후에 태어나, 단 한 번도 에녹을 보거나 그의 설교를 듣지 못했던 노아(Noah)는 야훼하나님께 은혜를 입어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돼(창 6: 8-9) 첫 번째 지구 종말에 Remnant(남은 자)가 되므로, 인류의 새로운 문명을 창설하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축복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라 읽고 듣고 배운 말씀을 지키는 자이다. 지금 우리에겐 노아처럼 듣고 배울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하나님은 오늘도 지구촌에서 에녹과 노아처럼 말씀을 지키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우리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며 그 말씀을 지키므로 축복의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를 축원한다.

   2. 에녹의 예언 내용(유 1: 14-15)

에녹의 예언은 수천 년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비밀계시이고, 그의 예언은 하나님이 그에게만 허락해 보여주신 경천동지할 천기누설의 계시였다. 에녹의 예언은

   ⑴ 주께서 수만의 성도들과 함께 임하셨다

“아담의 칠 세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豫言)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14절)

이 말씀은 장차 공중에 재림하시는 예수님께서 저 하늘 새 예루살렘에서 칠년 공중 혼인잔치를 마치고, 지상으로 재림하실 때, 부활하여 승천한 성도들과 산 채로 휴거 승천한 성도들을 데리시고 지상으로 재림하신다는 스가랴 14; 5, 계시록 19: 14절을 반영한 말씀이다. 장차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실 예수님은 눈처럼 흰 설총마를 타시고 선두기수가 되시고, 뒤따르는 수만의 성도들과 천사들까지도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히신 후 머리부터 꼬리까지 모든 털들이 백옥과 눈처럼 흰 설총마를 태워서 지상으로 데려오실 것이다(계 19: 11-16) 마치 거대하고 웅장한 흰 구름이 땅으로 휘몰아쳐 내려오듯 한, 거대하고 장엄한 백마부대의 지상 도래다.

에녹은 이미 수십 세기 전(수천 년)에 이것을 계시로 보았다. 아니 하나님께서 이것을 계시로 보여주면서 “주께서 수만의 성도들과 함께 지상으로 강림할 것”을 예언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에녹의 이 예언은 아직까지 미성취 예언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성경대로 어느 날, 지상에서 수만의 성도들과 수억의 지구인들이 하늘로 휴거된 후, 새 예루살렘에서 있을 칠년 동안의 공중혼인잔치에서 자기들의 공력을 따라 상급들을 받고 천국에 예비 된 각 사람 맨션에 입주하는 환희를 누린 다음, 예수님과 함께 흰 옷을 입고, 흰 말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오는 영광의 날이 올 것이다. 하늘과 땅에서 그 영광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⑵ 경건치 않은 자들을 심판하신다.

예수님이 지상으로 재림하시는 목적은 경건치 못한 자들을 심판하시는 것이다. 경건치 않은 자들을 심판하시되 ① 그들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일을 심판하시고 ② 그들이 주님을 향해 거슬려 했던 강퍅한 모든 말들을 심판하시며 ③ 말과 행동이 경건치 않은 자들을 정죄할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지상에 재림하셔서 경건치 않은 자들, 언어절제가 없이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않고 제멋대로, ‘칼 나간다, 총  나간다’로 혀를 사용한 사람과 자기 마음을 속이고 자기를 지키지 못하여 세속에 물이든 경건훈련을 하지 않은 자들과 고아와 과부를 환난에서 돌아보지 않은 자들(약 1: 26-27) 그리고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기도해야할 때 기도하지 않은 자들(시 32: 6)을 심판하실 것이다.

   ⑶ 유다가 지적한 심판받을 자들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이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16절)

예수님의 동생 유다는 위경 에녹서를 계속해 인용하면서, 예수께서 성도들을 데리고 지상으로 다시 오실 때, 세상에 있을 칠년대환난 때에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알곡 성도가 되지 못한 자들, 불에 던져 태워질 곡식밭에 쭉정이처럼(마 13: 41-42, 47-50) 주께 심판 받아 멸망당할 자, 천년왕국에 들어가지 못할 경건치 못한 자들을 ⒈ 원망하는 자(These are murmurers)이다. 이런 자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지 않고 사사건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고 트집 잡으며 거역하다가 멸망당한 이스라엘백성처럼 감사치 않고 원망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민 14: 2, 27, 29, 36, 신 1; 27, 시 106: 25, 고전 10: 20)이다. ⒉ 불만을 토하는 자(Complainers)들이다. 이런 자들은 감사하기 보다는 자기 몫에 대해 늘 불만족하여 습관적으로 비판하고 불평하면서 교회생활을 한 사람들이다. ⒊ 정욕대로 행하는 자(Walking after their own lust)들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보다는 자기 뜻대로 살고, 자아를 죽이지 못하고 본능의 욕구를 따라 정욕과 탐욕을 좇아 사는 자들이다. ⒋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는 자(Their mouth speaks great swelling words)들이다. ‘자랑하는’의 헬라어 훼페롱카는 문자적으로 “거대한”이란 뜻이다. 이것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가  성전을 더럽히고 비상한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훼방한 것(단 11: 36)과 장차 나타날 적그리스도(계 13: 5)가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참람한 말을 할 것을 의미하는데 ‘자랑하는 말을 할 자들’은 대환난 때 살아남기 위해 신앙을 배반하고 적그리스도에게 빌붙어 그가 시키는 대로 불신앙을 말하며 따를 자들을 가리킨다.

⒌ 이익을 위해 아첨하는 자들(Flattering people for the sake of gaining an advantage)이라고 했다. “아첨(阿諂)한다”는 헬라어 다우마존테스 프로소파는 “사람을 편견으로 대하거나 뇌물을 줌으로 정의를 왜곡되게 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발람이 교묘하게 발락의 요구를 들어 주어 이스라엘백성을 음란과 우상숭배에 빠지게 하고 자기 이익을 채운 것처럼, 장차 대환난 때 교회 안에도 교활하게 ‘더러운 이익을 위해 적그리스도에게 아첨하는 교사범(敎唆犯)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들이 주의 심판을 받는다. 이것이 예수님의 동생, 속사도 유다가 소개한 에녹의 예언이다.

유다가 지적한 마지막 날에 주님께 심판받을 자들은 감사하지 않고 원망하는 자, 불만을 토하는 자, 자기의 정욕대로 사는 자,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토해내는 자, 자기 이익을 위해 아첨하는 자들이다. 한 마디로 감사하지 않는 자들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예수님의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하는 자, 이웃의 사랑과 보살핌과 도움들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자들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 감사하는 사람은 원망하지 않는다. 감사하는 사람은 불평불만하지도 않는다. 감사하는 사람은 자기 정욕대로 살지 않는다. 감사하는 사람은 자랑하지 않는다. 감사하는 사람은 불의한 이익을 탐내지 않기에 아첨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감사는 어떻게 하는가? 인간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다섯 가지 방법이다. ① 말과 노래와 찬양(讚揚)으로 감사한다(느 11: 17, 시 26: 7, 69: 30, 95: 2 시 100편, 렘 30: 19, 단 6: 10, 욘 2; 9, 엡 5: 4, 골 3; 16) ② 예물(禮物)로 감사한다(대하 29: 31, 시 16: 17, 50: 14, 23, 56: 12, 렘 33: 11, 겔 45: 15, 눅 2: 38, 고후 4; 15, 9: 11, 12, 살전 3: 9) 예물로 감사하되 ⒜ 하나님이 내게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As he is able, according to the blessing of the Lord your God which He has given you; 신 16: 17) 내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고 느껴지는 만큼,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만큼 감사할 것이다 ⒝ 하나님이 내게 복 주실 것을 믿으면서 예물을 드릴 것이다(신 16: 15) 우리가 해마다 추수감사절에 하루를 1불로 계산해 ‘365감사’를 드리는 것이 한 해 동안 하나님이 주신 복을 따라, 하나님이 내년에도 내게 복을 주실 것을 믿고 드리는 예물감사가 되길 축원한다.

③ 마음으로 감사, 전심(全心)으로 감사한다(시 9: 1, 골 3: 17, 딤후 1: 3) ④ 기도(祈禱)로 감사하되 응답 주실 줄 믿으며 감사한다(마 11: 25, 요 11: 41, 빌 4: 6, 골 2; 7, 4: 2, 딤전 2; 1) ⑤ 모든 악기(樂器)로 감사한다(시 33: 2-3, 150: 1-6)
 
“감사(感謝)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 23)

약속하신대로, 나의 모든 감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께서 구원을 보이시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3. 에녹의 휴거승천

창세기에서 모세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않았다”(창 5: 24)고 했고, 히브리서에서 바울은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By faith Enoch was taken up so that he should not see death)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않았다”(And he was not found because God took him up; 히 11: 5)고 하므로 모세와 바울은 에녹의 휴거승천을 확실하고 담대하게 증거 했다. 그만큼 에녹의 휴거는 하나님이  모세와 바울에게 계시와 영감으로 직접 알려줄 정도로 확실한 것이다. 

에녹의 휴거승천은 장차 있을 성도 휴거의 표상(表象)이다.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산 채로 들림 받아 하늘로 올라갔듯이 장차 지상의 성도들도 예수님의 공중 재림과 동시에 예수님의 신부로 하늘로 들림 받아 새 예루살렘(요한은 새 예루살렘을 어린양의 아내라고 했다; 계 21: 2, 9-10)으로 올라갈 것이다. 그런데 에녹이 휴거 승천할 수 있었던 유일한 조건이 ‘하나님과의 동행’(Walking with God; 창 5: 24)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종말 성도들 중에 휴거될 성도는 Walking with God이다. (본인의 계시록강해에서 가르친 ‘휴거성도의 14가지 자격’도 ‘Walking with God’(하나님과의 동행)으로 함축된다) 성도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경적 방법은 ⑴ 인간(나)의 뜻과 계획을 모두 포기하고 하나님과 의합(意合)하는 것(암 3: 3)이다. ⑵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어야 한다(잠 13: 20, 22: 24; 잠언에선 동행과 사귐을 동의어로 기록했는데, 동행(홀레오크 에트)이란 단순히 “함께하는 것”보다는 “깊은 교감 속에서 교제를 나누는 것”으로 전인격인 만남과 교제를 의미하고, 사귐(라아)은 “관심을 갖고 주의 깊게 살피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사귐의 구체적인 방법은 ① 하나님과 전인격적인 만남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것 ② 형제를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 ⑶ 사람을 돌이켜서 죄악에서 떠나게 하는 것(말 2; 5-6) ⑷ 하나님의 백성들과 고난을 함께 당하는 것(민 10: 29) ⑸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눅 24; 15)으로 구체적인 방법은 ① 부단(不斷)한 진실한 기도생활이다(신 4:7, 시 145: 18) ② 말씀을 가까이 하는 생활(전 5: 1) ③ 마귀를 대적하는 생활(야 4: 8-9)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에녹처럼 휴거 축복에 동참하기를 축원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똑같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고, 똑같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두 사람, 에녹과 노아(창 6: 8-9) 중에서, 에녹은 아담 창조 987년에 죽음을 보지 않고 휴거된 것이고, 노아는 아담 창조 1656년에 홍수심판에서 방주를 통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노아홍수전에 에녹의 휴거가 있었듯, 지구촌에 임할 대환난 전에 성도의 휴거가 있을 것의 모형이고, 말세성도들 중엔 대홍수를 통과한 노아처럼 대환난을 통과할 성도도 있을 것의 표상이다.      

에녹의 승천은 눈 깜짝할 사이(고전 15: 51)에 일어난 찰나지간의 사건이다. 에녹의 휴거가 밤에 있었다면, 그의 아내나 아들 므두셀라도 친척이나 친구들도 몰랐을 것이고, 그가 설교도중에 휴거했다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순간에 그가 사라지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시신 없는 에녹의 장례식엔 구름떼처럼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것이고, 장례위원장의 한마디 한마디는 무리들에게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그날 사람들의 충격은 거대한 태풍과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충격 이상이었을 것이며,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꿈꾸는 것 같은 공황상태(恐惶狀態)가 됐을 것이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사람들은 2대 시조, 아담의 아들 셋을 중심하여 장로회의를 열고 ‘에녹의 예언’을 토론했을 것이다. 아담은 57년 전에 서거했으니 당시 최고령자인 857세의 셋이 의장이 돼 ‘에녹의 휴거와 그의 예언인 예수님의 지상 재림과 심판’을 여러 날 동안 논의 했겠지만 별 소득을 얻지 못한 채 회의는 끝났고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에녹이 휴거한 후 713년 만에 노아홍수로 인류는 속절없이 멸망을 당한다(에녹이 휴거할 때, 그의 손자 라멕은 69세였고, 그는 113년 후인 182세에 노아를 낳았으며, 노아 600세에 홍수가 있었으니, 113+600=713년이 된다) 에녹의 아들 므두셀라와 노아가 홍수경고를 했지만 아무도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사람들의 관심은 오직 먹고 마시며, 놀고 즐기며, 집 짓고 장사해 돈 벌며,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만 집중됐을 뿐이다. 므두셀라가 죽고 노아 가족이 방주로 들어간 후 하늘에서 홍수가 쏟아지고 땅에서 물 샘이 터져 솟아날 때까지 그렇게 세상 역사는 흘렀다.
2013년 11월 24일, 오늘도 성도의 휴거와 예수 재림 세상종말의 외로운 ‘에녹 설교’는 세계도처에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귀담아 듣는 사람들은 적다. 그러나 그날이 오면 어김없이 휴거는 있을 것이고, 대환난과 성도를 데려오는 예수 지상 재림도 있을 것이다. 에녹처럼 환희와 축복의 종결인 휴거에 동참하는 성도가 되라. 그렇지 않으면 노아처럼 환난을 통과하고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축복의 성도라도 되라. 김목사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오늘 교회 안에 눈에 띄는 휴거 성도들이 적어보여서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7년의 전도사시절, 신구약 성경을 200여 번 읽을 때, 머리를 식히고 젊은 날의 꿈을 멋있게 그리고자 많은 이들이 애독하는 대하소설 삼국지를 7번을 읽었다. 밤이 맞도록 읽고 또 읽어도 지루하지 않고 청년의 마음을 들뜨게 했던 삼국지였다. 훗날 총회나 노회에서 동료교역자들이 삼국지를 부탁하면 거미줄 뽑아내듯 열변을 토하며 조조 유비 손권에서 제갈량 관우 장비 조자룡...을 얘기하던 젊은 날들이 벌써 40년이 훌쩍 지나버린 아련한 과거가 됐다(삼국지에서 초한지, 수호지...,만주, 칭기즈칸, 도꾸가와 이예야스 등의 동남아의 대하소설을 섭렵하며 지평을 넓혔다)

삼국지의 세월을 뛰어 넘는 인기비결은 무엇인가? 유비 관우 장비의 생명을 함께하는 의리의 도원결의인가? ‘삼고초려’ 제갈공명의 신출귀몰한 전략인가? ‘적벽대전’의 주인공 조조의 거침없는 질주인가? 어떤 사람은 여포와 초선의 사랑이야기에서 항우와 우희의 슬픈 결말을 떠올리고, 어떤 이는 장판교에서 장팔사모를 움켜쥐고 조조의 군대를 맨 몸으로 막아낸 장비와 유비의 아들 아두를 품에 안고 조조의 백만대군을 짓밟는 조자룡에게서 아드레날린의 분출을 느끼며, 어떤 사람은 조조에게 많은 선물을 받고 심지어 수염주머니까지 선물 받아 미염공 소리를 듣고도 주군을 찾아가는 관우에게서 우직하고 애중한 의리를 배우고, 다른 사람은 젊은 나이에 꿈도 못 이루고 요절한 주유와 방통에서 못다 핀 아쉬움을 토로한다. 이렇게 삼국지는 무엇보다도 1233명의 등장인물과 그들이 빚어내는 흥망성쇠가 박진감 넘치는 ‘대하드라마’의 흥행요소일 것이다.

삼국지 등장인물 중 닮거나 배우고 싶은 캐릭터는 독자마다 다 다를 것이다. 인생을 정도(正道)로 살아가길 고집하는 나는 유비를 닮기 원했지만 어떤 이는 출사표의 제갈공명, 난세의 간웅 조조, 오관참장 관운장, 백전백승 조자룡 그리고 어떤 이는 자기 취향 따라 조조 앞에서 웃통 벗고 북을 두드리는 이형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중에 역사(歷史)가 평가절하한 사람이 있다. 사마의이다. 그는 천재적인 전략가이면서도 제갈량의 꾀에 번번이 당하는 캐릭터이다. 성을 텅 비우고 유유자적 거문고 타는 제갈량의 공성계에 당하고, 호로곡에서 매복에 걸렸다가 소나기 때문에 살아나지만, 자기 꾀에 넘어가 죽은 제갈량에게 쫓겨 달아나기도 한다. 그래서 삼국지엔 사마의를 마치 제갈량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등장시킨 조연인물정도로만 보였다. 그렇다면 정말로 사마의는 그 정도의 인물인가? 그 이상은 아닌가?

삼국지의 마지막 장면은 위진 남북조시대의 첫 장면이다. 후한을 멸망시킨 조조의 위(魏)를 거쳐 진(晋) 나라의 기틀을 세운 사람이 사마의다. 1233명의 등장인물들이 하나둘 혜성처럼 자취를 감추면서 삼국 쟁패의 소용돌이를 끝내고 천하통일을 이룬 인물, 평범한 서생에서 새 왕조의 선제(宣帝)가 된 만만찮은 인물, 그가 바로 사마의다. 요즘 말로 말하면, 샐러리맨에서 재벌의 신화를 쓴 사람이다.

중국의 관리학자 자오위핑은 삼국지의 사마의를 끝까지 자기를 들어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 자기통제의 승부사로 정리한다. 맞대결 전투에서 제갈량에게 번번이 졌지만 전쟁에선 끝까지 살아남은 승리자란 말이다. 사마의는 맞붙어 싸우지 않고, 상대가 지칠 때까지 기다리는 전략으로, 출사표를 던진 전략의 천재 제갈량도 어쩔 수 없이 풍운의 생을 마감케 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사마소(AD. 211-265)를 서진(西晋)의 초대황제로 만든다.

750년 전, 3세기에 지구서반구 유럽에서 로마황제들이 바통을 이어가며 기독교를 박해하고 죽이므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성도들이 산으로 들로 동굴로 지하카타콤으로 숨어 들어가는 때, 지구동반구 중국에선 이런 역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누가 승리자고 이긴 자인가? 그렇다.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자가 승리자다. 마지막에 승리의 월계관을 쓴 자가 역사의 승리자였다.

그러나 신출귀몰의 천재전략가 제갈공명과 맞서서 자기를 숨기고 참고 기다려서 나라를 쟁취했던 사마의는 한 세기 100여년, 아버지와 아들 두 세대 100년의 승리자였지만, 마지막 종말시대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칠년대환난을 이기고 끝까지 살아남는 성도들은 시공간을 뛰어넘는 세세만년의 영원한 승리자가 될 것이다. 거기서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다. 대환난에서 살아남는 자가 이기는 자이다.

오늘 주기도문교회의 여러분과 인터넷을 통해 이 말씀을 나누는 성도 여러분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에녹의 신앙을 가지고 휴거로 살아남고,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며 묵묵히 견뎌낸 ‘므두셀라’의 인내의 신앙과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경고에 순종해 100년 동안 방주를 지었던 노아의 순종하는 신앙을 가지고 대환난에서도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성도, 그래서 예수께서 지상에 재림하셔서 적그리스도의 박해를 끝까지 견뎌낸 여러분의 손을 붙잡고 천년왕국으로 들어가는 축복, 그리고 천년왕국에서 마지막까지 신앙지조를 잘 지키므로 살아남아, 영원한 새 하늘 새 땅에까지 들어가는 최후승리자, 영생을 쟁취하는 마지막 승리자가 되기를 축원한다.   
 

               
김엘리야 목사(워싱톤주기도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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