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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10월31일 20시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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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교협, 이대로는 안 된다!
교계 안에서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야만 한다.
 
한 나라의 선거를 보면 그 나라의 민주주의의 정도를 알 수 있다하여 선거는 민주주의 “꽃” 혹은 “척도”라고 말한다. 국민의 정치의식과 준법 수준이 선거를 통해서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선거는 국민을 하나로 단결시키고 한 나라를 축제의 분위기로 만들 수도 있지만, 반대로 국민을 분열시키고 나라를 온통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교협의 선거는 교협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이다. 새 회기 회장단 선출을 위한 선거는 끝이 났다. 몇 년 전 선거처럼 고성이 오가고 경찰의 입회하에 선거를 하거나 사회 매스컴으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정도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크게 나아졌다고 할 수 없다. 편 가르기는 여전했고 선거장에서 불법적으로 투표를 하려다가 제지당하는 사례가 몇 건 있었다. 그리고 선거가 이미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거 전에 생겨났던 갈등들이 살아 있는 분위기이다. 

뉴욕 교회협의회는 뉴욕 교계를 대표하는 기관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뉴욕 교협에 대한 평가는 곧 교계에 대한 평가로 이어진다. 또 뉴욕 교협은 이 지역 한인 이민사회의 중요한 구심적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교협의 위상이 떨어지면 이민 사회 안에서 교협의 입지도 좁아지게 되고 나아가 전도에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제는 교계 안에서 뭔가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야만 한다. 개혁과 같은 바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교계는 갈등 속에서 또 한 해를 보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음 해 선거에도 똑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 이런 상황 가운데에서 누가 뉴욕 교협에 대해 희망을 기대하겠는가? 한인 사회는 물론이고 한인 교계의 많은 교회들까지도 교협에 대해 하나 둘씩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교협이 교계를 하나로 묶고 한인 이민사회를 선도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복음을 증거하고 세상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등대의 역할을 기대하는 분들, 진정 교협을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은 이제 가만히 앉아 있지만 말고 일어나서 개혁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준비를 해야만 한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1. 의식의 변화를 촉구한다!

 
민주정치의 선진국과 정치 후진국의 차이는 정치 제도가 아니라 정치의식 수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아무리 민주화 된 정치제도를 도입한다 해도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나 국민의 의식이 선진화 되지 못하면 결코 정치의 선진화를 이룰 수 없다.
 
교협의 불법 선거운동을 방지하기 위해 엄격한 선거세칙을 만들고 공정한 투표를 위해 법을 바꾼다 해도 교협을 섬겨보겠다고 나서는 출마자들이나 투표하는 유권자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제도 이전에 생각이 바뀌고 의식이 변해야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선거와 관련 해서 뉴욕 교계를 어지럽히는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목회자들의 파당이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목회자를 대할 때 어느 편이냐고부터 따지고 든다. 선거 때가 아니더라도 편 가르기가 만연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목회자들의 모임이 있을 때면 어느 편 사람들의 모임이냐고 묻는다.
 
편 가르기 세력에 의해 당선되겠다는 생각이 허망한 것임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회원 교회를 대표하는 유권자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편이나 당파가 아니라 교협을 섬기겠다는 후보자의 인품, 비전, 열정 등 능력을 보고 투표할 수 있는 단계의 의식 변화가 요구된다. 
 
유권자들의 의식이 그렇게 바뀌게 되면 자연히 후보자들은 사람들 만나 내편 만들려고 애쓰는 대신 교계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능력과 비전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회원교회의 요구가 무엇인지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고 교계의 문제를 찾아 바로잡을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의식을 바꾼다는 것이 쉽지 않다.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사람의 의식이 어느날 아침에 갑자기 바뀔 것으로 기대하면 그건 큰 오산이다. 특히 교계 모든 사람들의 집단적 의식의 변화는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의식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생겨나야 하고 그 목소리들이 조금씩 커져서 모두에게 들려져야한 한다.
 
 

2. 관행을 바로 잡아라!

 
그렇다면 의식의 변화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가? 잘 못된 습관을 고치고 불합리한 관행을 바꾸는데서부터 의식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교협의 부회장이 회장으로 당선되는 관행(?)을 예로 보자.
 
현 교협 정관에는 부회장이 회장으로 자동 추대되는 조항은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5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역대 회장들이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당선이 되었다. 그래서 회장을 꿈꾸는 사람들은 먼저 부회장에 출마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회장 선거는 뒷전이고 부회장 선거가 마치 회장선거나 되는 양 치열해져 왔다.
 
지금의 이 관행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간단하다. 부회장으로 지내는 1년 동안 교협의 실무 경험을 쌓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그 말이 사실인지, 부회장 신분으로 1년 동안 무슨 경험을 어떻게 쌓을 수 있는 지 살펴보자.
 
안타깝게도 교협에서 부회장의 실질적 업무는 없다. 고작 주소록출판 위원장을 맡는 것이 전부이다. 그나마도 최근 몇 회기는 그것까지도 없었다. 그리고 부회장이 회장이 되려면 나서지 말고 뒤에 숨어서 있는 듯 없는 듯, 보일 듯 말듯,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는 것이 현명한 처신인 줄 알고 그렇게 지내온 것이 관행처럼 되었다. 이런 상황을 아는 사람이라면 부회장 1년이 실무를 익히는 데 결코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교협의 서기나 총무 아니면 관례에 따라 신년하례 준비위원장과 할렐루야 준비위원장을 맡아 온 목회분과위원장과 선교분과위원장의 경험이 오히려 부회장 1년의 경험보다는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부회장이 회장이 되는 관행의 문제는 무엇인가? 
 
우선, 회장이 되기까지 두 번의 선거와 2년의 기간이 개인과 교계를 망친다. 회장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부회장 선거를 준비한다. 어떤 분은 부회장 선거에 나가기 위해 1년 이상 선거운동(?)을 하게 된다. 차기 교협을 이끌어갈 회장도 아니고 회장을 보좌하는 부회장에 출마하면서 보여줄 정책과 비전이 무엇이겠는가? 부회장 후보로서는 어떤 공약이나 약속을 내 세울 수 없다. 차차기에 회장이 되면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은 부회장 후보로서는 주제넘은 언행일 뿐이다. 
 
그러므로 부회장으로 출마하겠다는 사람이 선거운동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계파에 줄서기나 개인적 친분관계를 엮어가는 수 밖에 없다. 그러자니 여러 목회자들을 만나서 자주 차도 마시고 밥도 사줘야 한다. 또 회원 교회의 행사나 목회자 개인의 경조사도 소홀이 할 수 없다. 표를 의식할 때 교계의 수 많은 행사와 모임에도 얼굴을 내밀고 후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부회장 후보로 나가서 당선된 분들은 1년간 많은 돈과 시간과 정열을 낭비(?)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부회장에 당선이 되고 나면 끝인가? 아니다. 회장이 되기까지 부회장 신분으로 있는 1년도 상황은 비슷하다. 부회장이 자동 회장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잡음 없이 무난하게 당선되려면 1년 동안 관계를 잘 유지해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부회장은 개 교회나 목회자의 경조사는 물론 교계의 각종 행사와 모임에도 참석하고 후원을 해야만 한다. 회장은 교협을 대표하기 때문에 행사에 참석을 해서 후원을 할 경우에 교협이 하게 되고 단체장이기 때문에 사례까지 받기도 한다.
 
하지만 부회장은 다르다. 회장을 대신해서 교협의 대표 자격으로 참석할 때는 모르지만 그렇지 않고 부회장 개인의 자격으로 참석할 때는 개인 주머니에서 후원금이 나가야 한다. 그러다 보니 부회장으로 지내는 1년 동안 많은 경제적, 시간적 투자(?)를 지속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교협 회장이 되기 위해 겪는 2년은 악몽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후보 개인의 가정과 교회가 그 짐을 고스란히 떠 안게 된다.
 
그러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부회장이 회장이 되는 지금의 관행을 버리고 회장을 뽑는 선거를 하는 것이다. 
 
그 한 마리 토끼는 교계에 만연해 있는 편 가르기를 희석시키는 효과이다. 부회장 선거에서는 상식상 정책 대결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개인의 친분이나 편 가르기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회장선거는 교협을 이끌어갈 비전이나 공약 등 자신의 능력과 리더쉽을 가지고 어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편 가르기가 아닌 정책 대결로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표 얻기 위해 사람 만나 밥 사주는 대신 회원교회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정책이나 운영방안을 찾으려 노력하게 될 것이다.

또 편 가르기가 아닌 자신의 비전이나 능력에 의해서 당선 된 경우에는 아무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소신을 가지고 교협을 위해서 일할 수 있지만, 편 가르기에 의해서 당선된 사람은 외압(?)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말은 교협을 위해서 소신껏 일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두 번째 토끼는 후보자를 악몽에서 건져주는 것이다. 최소한 2년의 악몽을 1년으로 줄여 준다. 선거 전 6개월부터 혹은 3개월 전부터 선거에 나서게 된다면 그 악몽 같은 시간을 단 몇 개월로도 줄일 수 있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연중 선거 분위기가 멈추지 않는다. 부회장에 당선 된 후 부회장이 회장 선거를 염두에 두고 1년을 보내는 동안 다른 부회장 후보가 이어서 부회장 선거에 나서기 위해 선거운동을 하게 되는 그야말로 사시사철 끊임없이 교계 안에서는 선거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것이다.
 
 

3. 제도를 개선하라!

 
자동차 사고 다발 지역이 있다. 거기에는 분명 도로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 경우 도로를 고치지 않고서는 사고를 줄이기 어렵다. 회장 선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정관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관행을 바꾸면 된다. 그러나 교협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제도를 바꿔야 할 부분이 있다면 이를 주저해서는 안 될 것이다.
 
 

1) 부회장을 런닝 메이트로 출마시켜라.

 
회장을 선출하는 선거로 전환되면 부회장에게 어드밴테이지가 적용 되지 않는다. 따라서 부회장 자리는 그다지 매력이 없을 것이다. 이 경우 부회장이 어떤 역할을 하게 하려면 부회장에게도 할 수 있는 역할을 부여해 주고 회장과 부회장이 런닝 메이트로 출마해서 회장과 부회장이 팀웍을 이루어 교협을 운영해 간다면 많은 이점이 있을 것이다. 
 
성경에도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이긴다고 기록되어 있다. (전 4:12) 회장과 부회장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주고 장점을 살려서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생기는 경제적 부담도 회장과 부회장이 나누어 질 수 있을 것이고, 당선 된 후에도 회장으로서 져야할 경제적 부담을 부회장과 나누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단, 런닝 메이트로 출마할 경우, 부회장이 일 할 수 있는 역할을 분명이 정해 주어야 한다. 가령, 회장은 교협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대외 관계를 맡는다면 부회장은 실제적인 내부의 일을 맡게 하는 것이다. 신년하례, 부활절연합예배, 할렐루야대회와 같은 모든 행사의 책임을 부회장에게 맡기는 것이다.
 
런닝 메이트로 부회장을 역임한 사람은 다음 회기에 다른 런닝 메이트과 함께 회장에 출마하게 될 경우, 부회장으로서의 실무 경험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회장과 부회장의 런닝 메이트제도를 시행하려면 정관을 바꾸어야 한다.
 
 

2) 증경회장을 원로로 대우해 주라!

 
증경회장 분들을 교계의 자문과 정신적 지주가 될 수 있는 원로의 자리에 세워야 한다. 원로의 자리는 참모의 자리가 아니다. 특정 후보의 참모가 아니라 공정한 선거, 유권자들이 후보의 능력과 자질을 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선거를 관리, 감독하는 위치에 서게 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교협은 증경회장들을 선거의 감독자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서 선거 운동이나 해주는 참모의 자리에 앉혀 놓았다. 뉴욕 교계의 편 가르기의 중심에 몇 몇 증경회장의 이름이 거론 되는 것도 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결과적으로 증경회장의 격을 낮추어 놓고 말았다는 얘기다.
 
증경회장 분들이 교협의 관리, 감독, 자문을 위한 원로의 자리에 앉고 싶다면 총회의 투표권이 주어지는 총대를 포기해야만 한다. 증경회장의 손에 표가 있으면 후보들은 표를 얻기 위해 증경회장들에게 향응을 베풀고 싶은 유혹이 생기게 된다. 또 손에 표가 있으면 증경회장들 역시 그 표로써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입김을 불어 넣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증경회장의 표가 어디로 쏠리느냐에 따라서 선거의 판세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협 선거가 혼탁해진 그 흙탕물의 발원지가 증경회장들이라고까지 하는 말이 흘러 다닌다. 
 
선거를 관리, 감독하는 자리에 앉은 사람은 공정한 선거를 위해서는 특정 후보로부터 향응을 제공 받아서도 안 되고 어느 후보를 지지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증경회장들이 선거를 감독하는 자리에 앉으려면 손에 표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협의 회원은 교회이고 교회의 대표 두 사람이 총대로 나와서 총회에서 중요한 안건 처리나 선거에 투표를 하게 된다. 그런데 회원 교회를 대표하지 않는 분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한다는 것이 사리에 맞지 않다. 증경회장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교협을 위해 얼마든지 자문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증경회장이라 할지라도 현재 목회를 하고 있고 교회를 섬기고 있다면 총대로서 얼마든지 투표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증경회장의 자격이 아니라 회원교회를 대표하는 총대로서 투표하는 것이다.
 
요컨대, 손에 투표권을 쥐어주는 것이 증경회장을 대우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증경회장들이 총회에서 투표용지 들고 줄레줄레 서서 투표하는 것은 존경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앞 단상에 앉아서 투표를 감독하는 편이 훨씬 더 품격 있어 보인다. 증경회장 분들을 총대로, 참모로 품격을 끌어내리지 말고 이제는 원로로 대우해 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증경회장에게 투표권이 자동 부여되는 정관을 수정해야 한다.
 
<임병남 목사/기독뉴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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