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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09월03일 15시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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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안에 삶의 비밀


“세상에서”란 풍유고발적인 해학유머를 소개한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나의 단점을 알고 있는 사람이고, 가장 경계해야 할 사람은 두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이며, 가장 간사(奸詐)한 사람은 타인을 필요한 때만 이용해 먹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친구는 잘못한 때도 꾸짖지 않는 사람이고, 가장 해로운 사람은 잘못을 되풀이 하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사람은 약자 위에 군림하고 있는 사람이고, 가장 불쌍한 사람은 만족을 모르고 욕심만 부리는 사람이며, 가장 불행한 사람은 불행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은 많이 가지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가장 게으른 사람은 일을 뒤로 미루는 사람이며, 가장 가치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은 먹기 위해 사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우둔한 자는 배울 것이 없다고 자만하는 사람이고, 가장 큰 망언(妄言)자는 부모님께 불효하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정치가는 물러날 때를 모르는 사람이고, 가장 무서운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며, 가장 파렴치(破廉恥)한 사기꾼은 아는 사람을 사기 치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추잡한 사람은 양심을 팔아먹은 사람이고, 가장 큰 배신자는 마음을 훔치는 사람이며, 가장 나쁜 사람은 나쁜 일인 줄 알면서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이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아쉽게도 좋은 사람, 착한 사람, 품격 있고 교양이 있는 사람보다 이웃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 많다보니 이런 풍자적인 해학유머들이 생겨난 것 같은데 인생을 살다보니 실제로 이런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을 본다.

엊그제 한국어방송 tv뉴스를 통해 ‘작년 한 해 우리나라에서 결혼한 사람은 약 33만 쌍이고, 이혼한 사람은 11만 쌍이 된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는데, 한국에서 이혼율이 증가한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한 줄은 몰랐었다. 아울러 대법원이 발간한 ‘2013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작년에 접수된 11만 4316건의 이혼사건 중 결혼기간이 20년 이상인 부부가 3만 234건으로 전체의 26.4%를 차지했다고 한다. 황혼이혼이 증가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황혼이혼이 증가하는 첫째 이유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고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오래 살게 된 아내들이 더 이상 참지 않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재산분할제도의 영향 때문으로(2005년에는 아내에게 주는 재산분할이 불과 9.4%였는데 작년에는 무려 50%가 넘어섰다)-더 늙기 전에 남편의 재산을 많이 받아내 자신의 노후 삶을 보상 받으려는 이유이며, 세 번째는 아버지 재산을 욕심내는 자녀들이 더 많은 몫(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부모의 이혼을 부추기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이사할 때, 부인이 가마솥에 꼬리곰탕을 많이 끓여 놓거나 강아지를 안고 있으면 남편이 아내의 눈치 보며 두려워한다는 농담이 진담이 된 시대가 돼버렸다.

                         예수 안에서의 삶의 비밀

인간의 기본적인 행복,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행복은 가족 안에서 사는 것, 가족의 사랑이 있는 것이다. 남편이 아내의 사랑을 받고 살고 아내가 남편의 사랑을 누리고 사는 것이고, 자식이 부모 그늘에서 보호를 받고 살고 부모가 자녀의 효도와 사랑을 받고 사는 것이다. 남편이 아침에 일어나 혼자 빵 한 조각 먹고 커피 마시면서 직장에 나가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아내가 지친 몸으로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외롭게 밥술 떠먹고 설거지도 못한 채 쓰러져 잠자는 생활은 행복이 아니다.

급변해가는 세상풍조 따라 부부가 이혼하는 것도 행복은 아니고, 결혼도 하지 않고 남녀가 함께 동거하는 것도 참 행복은 아니며, 이 여자 저 남자와 살아보고 마음에 맞는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것도 진정한 행복은 아니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예수 안에서 사는 것, 예수 안에서 부부가 함께 사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 안에서의 삶’ 만큼 참 행복과 진정한 행복은 세상에 없다. 나는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 안에서의 삶의 비밀”을 여러분과 함께 나눠본다.

   1. 그 안에서!(In Jesus Christ; 6-7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바울은 전도자 에바브라의 복음 선포를 통해 예수를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해 중생한 골로새 교인들을 향해 ‘그 안에서’, ‘예수 안에서 행하라’(Walk in Him)고 권면했다. ‘행하라’는 헬라어 페리파테이테는 어떤 특별한 행위 보다는 일상생활을 가리킨다. 중생한 성도는 일상생활을 예수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권면이다. 그리고 성도들이 예수 안에서 사는 일상생활의 삶의 원리를 네 가지로 설명했다.

   ⑴ 그 안에 뿌리를 박아라!(Rooted in Him;  7상)

"뿌리를 박으며“의 헬라어 에르리조메노이는 “이미 뿌리를 박은 식물”로 완료형을 썼는데,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뿌리를 내리는 것은 단번에 그리고 영구적으로 된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가 처음 예수를 영접할 때 이미 예수 안에 뿌리를 박은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어떤 믿음으로 시작했는지 어떤 교리로 믿음을 출발했는지가 중요하다.

한번 깊이 뿌리가 박힌 나무는 뽑기도 힘들고 다른 곳으로 옮겨 심는 것도 어렵듯 예수님을 믿을 때의 처음 신앙, 처음 믿음은 일평생 신앙성장과 신앙생활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시작할 때(예수를 처음 믿을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히 3: 14)고 했다. 그래서 많은 목회자들이 목회경험을 통해서 신앙의 시작은 성령이 충만한 순복음(오순절)에서 출발하고 나중은 말씀이 충만한 장로교에서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데 내 경험으로 봐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어찌하든 신앙성공, 인생성공은 “예수 안에서 뿌리를 박는 것”이다. 예수 안에 뿌리를 박지 못하면 신앙승리가 없고, 인생승리도 없다. 예수 안에 뿌리를 박는 방법 중에 하나는 본 교회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타주나 먼 곳으로 이사를 해 교회출석이 불가능한 경우가 아니라면 2시간 3시간 운전 거리는 본 교회를 지키는 것이 좋다. 그것이 모두 예수 안에 뿌리를 박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주 이웃 교회 창립 20주년과 권사 취임예배에 참석했다가 취임 받은 네 명의 권사 모두가 20년 17년 15년 근속교인들이고 교인 중에 10년 이상 근속한 성도들도 많은 것을 보고 ‘예수 안에 뿌리박은 성도들’을 통해 은혜를 받았고 동료목사로써 기쁘고 흐뭇했다. 주기도문 교회도 80%이상이 ‘예수 안에 뿌리를 박은’ 10년 15년 근속성도임에 감사하고 우리 모두가 예수 안에 뿌리를 박아 주님의 날에 모두 구원의 성도들이 되길 축원한다.     
 
   ⑵ 그 안에 세움을 입으라(Being build up in Him;  7중)

‘세움을 입어’의 헬라어 에포이코도무메노이는 “터 위에 건물을 지어 올라가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가 ‘예수 안에서 행하는 구체적 삶’은 예수님 위에 인생의 집을 지어 올라가는 것이다. 오늘 당신의 집은 얼마나 든든히, 얼마나 크게, 얼마나 높이, 얼마나 아름답게 지어져 가고 있는가? 오늘 당신의 집터는 예수 그리스도인가?

오늘날 세계 각국은 건축 붐으로 빌딩과 아파트와 집들을 많이 짓는다. 동남아의 가난한 나라 필리핀 미얀마 캄보디아 네팔도 도시마다 동리마다 건물 짓는 일이 한창이고 선진국 한국 중국 일본도 건물을 짓는 손길들이 더 분주하다. 그래서 몇 달  혹은 일 년에 한번만 가도 길과 도시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건물과 아파트 빌딩들이 빈 공터를 채우고 있다. 그런데 빌딩들이 늘어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간혹 건물을 짓다가 중단돼 철근뼈대만 앙상하게 세워진 채 흉물스럽게 남아 있는 빌딩이나 건축물들도 볼 수 있다.
그렇다. 오늘 당신의 신앙의 집은 골조공사에서 내부공사와 Interior Decoration까지 든든하고 아름답게 지어져 가고 있는가? 아니면 믿음의 집이 철근뼈대로 앙상하게 골조공사는 해놓고 공사가 중단돼 쇠 녹물만 흘러내리는 흉물로 남아 있지는 않는가?

어느 성도가 죽어서 천국에 갔다가 천사들이 성도들의 집을 짓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천사들이 집을 짓는데 건축자재는 성도들이 드리는 헌물들이더란다. 지상에서 성도들이 헌금과 헌신과 충성을 드리면 끊임없이 건축자재가 공급돼 하늘나라에서 천사들이 집 건축을 계속하는데 헌금과 봉사가 중단된 사람은 건축이 중단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당신이 드리는 십일조 감사 주일헌금 선교헌금 일천번제 건축헌금, 당신이 바치는 새벽기도 철야기도 금식기도, 선교와 구제들은 하늘나라의 당신 집을 짓는 재료값이다. 날마다 예수 안에 세움을 입는 성도, 예수님 위에 지상의 집과 천상의 집을 지어가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⑶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라
     (Stablished in your faith, just as you have been taught: 7하)

당신이 배운 교훈 따라 믿음에 굳게 서라는 말씀이다. 교훈이란 에바브라가 전해준 말씀, 가르친 말씀을 가리킨다. 그렇다. 여러분은 김목사가 기도하고 성령의 영감을 받아 준비해서 가르치는 말씀의 교훈을 받는 대로 믿음에 굳게 서야한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 22)고 했다. 듣고 배우는 만큼 믿음에 굳게 설 것이다.

감히 미관말직의 목사로써 말하건대 주기도문의 여러분들은 다른 곳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말씀을 매주일 듣는다. 이것은 결코 나의 교만이나 나의 자랑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짧지 않은 45년간의 목회를 해오면서 수백 번의 성경통독을 통해 깨달은 심오한 비밀의 말씀을 내가 나를 위해 준비한 설교들이기 때문이다. 김목사의 간절한 바람은 이 말씀들을 들으면서 여러분들이 당나귀 귀처럼 귀만 커져 남을 비판하는 교만에 빠지지 않고, 항상 먹어서 비싸고 귀한 음식의 가치를 모르고 밥투정하는 사람들처럼 그런 성도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고, 내가 가르치는 설교말씀처럼 믿음에 굳게 서는 성도가 되는 것이다. 김목사가 깨닫고 준비해 가르치는 오묘한 은혜의 말씀에서 비밀에 싸인 예언의 말씀까지를 잘 듣고 잘 소화시켜 믿음에 굳게 서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⑷ 감사함이 넘치게 하라(Abounding therein with thanksgiving; 7하)

‘넘치게 하라’의 헬라어 페릿슈온테스는 현재시상으로 “지금 강물이 제방을 넘쳐흐르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물로 강물이 흘러 넘치듯 감사가 마음에서 흘러 넘치는 성도가 되라는 말씀이다.

지난여름 지구촌 세계도처에서 홍수로 물난리를 겪었다.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집과 사람과 짐승이 떠내려가고 차들이 휩쓸려 떠내려가며 산이 무너져 내리고 도로가 붕괴돼 물 천지의 아수라장이 됐다. 이렇게 물이 넘치면 무엇이든 다 삼켜버린다. 그렇다. 감사가 넘치면 원망 불평 짜증 스트레스 불안 공포 질병 저주 모두 사라져 버린다. 남편에 대한 원망, 아내에 대한 불만, 일에 대한 분노, 교회에 대한 불신, 이웃에 대한 미움과 분노... 모두 다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예수 안의 삶이다. 그래서 예수 안에 삶은 인생승리이다.

예수 밖에선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다. 예수 안에서만 이런 승리가 있다. 예수 안에서 뿌리를 박고, 세움을 입으며,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축원한다.

   2. 예수(그) 안에 있는 것들(8-15절)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예수 안에 살라’고 권면한 후, 왜 그들이 예수 안에서 살아야 하는지, 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 안에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가르쳤다. 그것은 “예수 안에 있는 것들” 때문이다. 예수 안에 있는 것들은

   ⑴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함(8-9)

For in Him dwells all the fullness of the Godhead, bodily(그 안에는 충만한 신성과 신격(Divinity)이 육체 안에 거하고 있다) 신성(神性, 테스 데오테토스)은 “고양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본질”로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의 본질적이고 적절한 형상이시다”란 뜻이다. 육체를 입고 지구촌에 오신 예수는 생물학적으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요셉과 마리아의 혈통을 이어받아 태어났지만 그 육체 안에는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인 의와 지혜와 권능과 축복, 하나님만이 부여하실 수 있는 은혜의 충만함, 하나님의 온전하신 본성의 모든 것을 다 소유하신 분이란 말씀이다.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란 말씀이다.

그렇다. 지구촌 변두리 작은 나라에서 비록 짧은 3년 반의 공생애로 사역을 마치시고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삶을 끝내셨지만 예수님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 하나님의 모든 본질이 그 육체 속에 있었다. 그래서 죽은 지 사흘 만에 스스로 지하음부의 문을 열고 부활의 몸으로 나오셨고, 사십일 동안 12번이나 당신의 부활을 온 천하에 보이셨으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내가 너희를 위해 하늘에서 처소를 다 예비하면 다시 구름을 타고 세상에 오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라”고 설파했다.

6000년 지구역사상 예수 외에 그 육체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 하나님의 모든 충만을 가졌던, 하나님과 동등한,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같았던 사람이 누군가? 저 나사렛 예수 이전 4000년의 BC시대에도 없었고, 예수 Incarnation(성육신)이후 2000년 동안의 AD시대에도 없었으며, 우리 앞으로도 없다. 장차 지구 종말에 나타나 잠간 동안 예수를 흉내 내다가 세상을 파멸케 할 적그리스도가 있지만 그는 Antichrist(적그리스도)일 뿐 ‘하나님의 그리스도’는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한 사람의 탁월한 철학자나 성현으로 혁명가나 뛰어난 스승으로 만드는 일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 초등학문을 좇는 수준으로 약간의 유익을 줄뿐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인간으로 끌어내려 성인(聖人)으로 추대하는 망령된 일은 허사이다. 예수님은 초월적인 성자 중 한 사람도 아니며 많은 구원의 길 중 하나가 아니다. 인류의 유일무이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신성이 그 육체 안에 거하는 하나님자신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안에서 살아야 한다. 물을 떠난 고기가 잠시는 살아도 오래 살 수 없고, 공기 없이 인간이 오래 살 수 없듯 성도는 예수 없이 살 수 없다. 예수 안에서 사는 성도가 되길 축원한다.
   

   ⑵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10절)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본문에서 바울은 성도들이 예수를 믿고 그분 안에 거함으로 하나님의 신성의 충만함에 참여하고 있음을 말했다. 우리처럼 미말의 인간, 죄를 지어 버림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저주를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지옥 불구덩이에 떨어져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의 신성의 충만함에 참여하는 축복의 사람이 된 것이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정사(政事)와 권세의 머리시다(Jesus is the head of all principality and power) 정사(Principality, 알카스)란 하나님을 대적하는 네 가지 영적존재인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엡 6: 12)들 중에서 최상위급의 존재로 사단왕국의 우두머리 통치자(Chief ruler) 또는 사단왕국 최고위 계급들(Beings of the highest rank and order in Satan's kingdom)이고, 권세(權勢Powers, 엑수시아스)는 정사들에게 권세를 받아 정사의 계획들을 실행하는 자들(Authorities, those who derive their power from and execute the will of the chief rulers)이다. 바울 당시 골로새 교회 안에는 천사숭배 사상이 있었고 정사와 권세들을 숭배하는 잘못된 사상이 있었는데 바울은 예수님은 선한 천사들뿐 아니라 악한 영인 정사와 권세의 머리도 되신다고 선언하므로 천사숭배를 경계한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모든 천사들의 머리시며 사단마귀와 정사와 권세들까지도 통치하시는 분이시다. 사람이 만들어낸 허구와 궤변으로 꽉 들어찬 신화나 전설 외에는 지구상 어떤 문헌에도 인간이 사차원세계인 천사들의 머리며 천사들을 통치했다는 말이 없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께서 구약시대에 이미 44번이나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 천사들을 동원해 사람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셨고, 60번 이상 천사들을 사역자와 종으로 부리신 기록들이 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칼로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자르자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한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營, 레기온: 한 영은 당시 로마 군대의 보병 6000명과 말 726필에 해당하는 군대) 더되는 천사(7만 2천 명이 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마 26: 53)하시므로 하늘에 있는 천사들을 마음대로 통치할 수 있는 분임을 말씀했다.

그렇다. 예수님은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다. 사차원 하늘나라의 천사들도 맘대로 통치하고 부릴 수 있는 하나님이다. 예수님은 천사들을 보내 감옥에 갇혔던 사도들을 옥문을 열고 출옥케 하셨고(행 5: 17-21) 천사를 보내 사형직전에 베드로를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꺼내주셨다(행 12: 6-10) 요한에게 천사를 보내 인류역사의 마지막  파노라마를 쓰게 하여 말세에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아 지구촌에 전해야 할 특별사명의 종들에게 천기누설을 해 주셨다. 그리고 장차 임할 칠년 대환난 날에 천사들을 보내 성도들을 위험과 위기에서 보호해주시고 인도해주실 것이다. 정사와 권세의 머리이신 예수 안에 거할 수 있기를 축원한다.          

   ⑶ 육적 몸을 벗는 영적 할례(11절)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99세에 할례를 받은 이후, 모세율법 이전부터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표시로 할례를 받았다. 히브리사람이 남자아이로 태어나면 난지 8일 만에 사내아이를 제사장에게 데려가 생식기 귀부부분의 표피를 잘라내는 할례를 받으므로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사람이 됐다. 혈통적으로 생물학적인 유대인이라도 할례 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택한 선민, 이스라엘사람이 될 수 없었다. 이방인까지도 선민이 되려면 할례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할례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이라는 자기 몸의 징표였다. 이스라엘 사람으로 무할례자(Uncircumcised man)는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한 자로 백성 중에서 끊어질 저주의 사람이었다(창 17: 14)

바울은 11절에서, 우리가 예수를 믿으므로 ‘그 안에서’(In Him)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 육적 몸을 벗는 영적할례(靈的割禮),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다고 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므로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선택한 선민인 영적 이스라엘이 됐다는 말이니 이것은 예수 안에 영적할례가 있다는 말이다. 영적할례, 그리스도 예수의 할례,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는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 예 본성, 우리의 옛 사람을 벗어버림을 의미한다(골 3: 9, 롬 6: 6, 7: 24, 갈 3: 27) 그렇다. 우리가 지옥으로 떨어질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천국에 들어갈 새사람을 입는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되거나 교육으로 되거나 금과 은으로 사는 것으로 되지 않고 ‘예수 안에서’, ‘예수를 믿으므로’만 된다. 예수 안에서 영적할례로 하나님의 백성, 천국백성 된 것을 감사하는 성도가 되자.

   ⑷ 부활(12절)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You are risen with Him)

그렇다. 예수 안에 천천 만년, 억만년 아니 영원토록 생명 안에서 살 수 있는 생명의 부활이 있다. 죽었다가 예수님의 공중 재림 때에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는 생명의 부활도 있고, 산 채로 부활의 몸이 돼 하늘로 들림 받는 휴거도 있으며, 대환난 때 적그리스도의 박해로 죽임을 당해도 다시 살아나 영생하는 부활도 있고, 대환난을 통과해 살아남는 성도 중에는 천년왕국에서 천년을 주와 함께 살다가 영원히 죽지 않고 육체를 가지고 새 하늘 새 땅에서 영원토록 살게 되는 성도도 있다(사 66: 22-24) 그래서 요 11: 25-26절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산 채로 휴거되는 성도들과 환난을 통과한 천년왕국 성도들은 영원토록 죽음을 경험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활에는 사망의 부활도 있다. 하나님의 최후심판과 지옥의 저주를 받기 위해 살아나는 부활이다. 이 부활은 ‘예수 밖에서의 부활’, ‘예수 없는 부활’이다. 사망의 부활은 구약시대에 하나님을 믿지 않고 죽은 자들과 신약시대와 은혜시대에 구원의 복음이 지구촌에 전해질 때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치 않고 거절한 자들과 적그리스도의 칠년대환난 때에 적그리스도를 무서워해 짐승의 표 666, Very-Chip와 Positive-ID를 받은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 행음자들과 술객들,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계 21: 8)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영원토록 유황불지옥에서 고통당하며 살게 될 부활이다.

예수님이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사 하늘에 올라가신 것처럼 예수 안에서 생명의 부활을 얻게 된 것을 찬양한다. 예수를 믿으므로 예수 안에 부활을 얻은 당신이 예수 안에서 ‘더 좋은 부활’(히 11: 35, 고전 15: 40하-44)을 얻는 축복들이 계시길 축원한다.    

   ⑸ 모든 죄를 사하심(13-14중)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Having forgiven us all our transgressions)
우리를 거슬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예수 안에는 “나의 모든 범죄(犯罪), 과거에 지은 죄와 현재 짓고 있는 죄와 미래에 지을 죄까지의 용서가 있고, 무할례로 영적으로 죽었던 나를 예수와 함께 살려주심이 있으며, 우리를 거슬리고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심과 제하여 버리심”이 있다. 예수 안에는 죄의 용서와 예수부활이 나의 부활되심과 양심을 충동질하는 죄책감으로 나를 고발하고 괴롭히는 율법을 무효화시킴이 있다는 말씀이다.

‘도말하시고’(Blotting out, 엑살레이프사스)는 문자적으로 “문질러서 지운다”란 의미로 증서에 기록된 내용들을 모두 지우고 새롭게 출발함을 가리키고, ‘제하여 버리 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Took it out of the way, nailing it to His cross)의 헬라어 에르켄 에크 투 메수 프로셀로사스 아우토 토 스타우로는 문자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으사 제하여버렸다”는 의미로 예수 안에 있는 성도는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으며 율법의 제약이나 율법의 고발에 제한받지 않게 됐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완전한 죄의 용서와 자유가 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 안에 있어야 할 이유이다.

   ⑹ 정사와 권세의 무장해제(武裝解除)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十字架)로 승리(勝利)하셨느니라”(15절)
마지막으로 성도들이 예수 안에서 살아야 할 이유, 예수 안에 뿌리를 박고, 예수 안에 세움을 입으며, 예수 안에서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해야 할 이유는 무엇보다도 ‘예수 안에 완전한 승리’가 있기 때문이다.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Having spoiled principalities and powers)에서 ‘벗어버렸다’(Spoiled, 아페크두오마이)는 “다른 사람의 옷을 벗겨 벌거벗게 했다”(To strip off clothes of another. Here it means Satan and his forces were stripped of their power to condemn and kill the race)는 의미로 사단마귀와 정사와 권세를 무장해제(武裝解除)시켰다는 뜻이다. 그렇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마귀사단과 정사와 권세, 이 어둠의 세상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의 모든 공격무기의 무장, 성도들을 정죄하고 죽이는 무장을 해제시켰다.

전두환의 군사 쿠데타로 정승화 장군이 무장해제 됐다. 그러자 하루아침에 수십 년 동안 전군을 호령하던 절대 권력의 상징인 장군 어깨의 별들은 외출 나갔고 그 위에 초라한 이등병 계급장이 붙었으며 두 손엔 죄수의 수갑이 채워진 채 감옥에 투옥됐다. 명예가 회복되기까지 그는 더 이상 장군이 아니었다. 군 통솔의 권세는 화중지병이 됐고 수의 번호가 그의 이름이 됐다. 무장해제는 이렇게 처절한 아픔의 비극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죄 없이 십자가에서 억울하게 죽으셨지만 그의 죽으심과 부활로 사단마귀는 무장해제의 철퇴를 맞았다. 이제 사단마귀는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그리고 내가 죄에 빠져 있지 않는 한 더 이상 나를 괴롭힐 수 없다. 십자가의 예수 승리는 나의 승리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안에’ 있어야 한다.

예수 밖에서 당신의 능력은 사단의 적수가 못 된다. 갓난아이가 청년의 적수가 될 수 없고, 3차원이 4차원을 이길 수 없듯 당신은 인생과 신앙의 싸움에서 마귀에게 백전백패일 뿐이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당신은 사단을 정복하고 정사와 권세,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의 악령들을 격파하는 승리자가 될 수 있다.

예수 안에서 행하라(Walk in Him) 예수 안에 뿌리를 깊이 박고, 예수 안에서 인생의 집을 세우며,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예수 안에서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라. 이것만이 당신이 인생을 승리하는 길, 신앙을 승리하는 길, 현세와 내세에서 축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길이다. 예수 안에서 날마다의 삶이 승리와 축복의 삶이되기를 축원한다.               

  
 
김엘리야 목사(워싱톤주기도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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