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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07월26일 15시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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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를 들어주시는 야훼


어떤 모임에서 ‘우리나라는 군사대국이 될 수 없는가?’라는 주제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갑론을박, 설왕설래 논쟁 끝에 대한민국이 군사대국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다섯 가지가 제시됐다. ① 밤낮없이 총알택시가 거리를 누빈다. ② 거리마다 대포집이 즐비하다 ③ 술집마다 폭탄주가 오간다. ④ 집집마다 핵가족으로 뭉쳐있다 ⑤ 식당마다 부대찌개가 있다. 군사대국(軍事大國)이란 해학유머이다.

어느 날 닭이 소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사람들은 참 나빠. 자기네는 계획적으로 아이를 낳으면서 우리에겐 무조건 알을 많이 낳으라고 하잖아. 심지어 내 친구들 중에는 밤과 낮으로 하루에 두 번씩 알을 낳는 친구들도 있다고!” 그러자 소가 말했다. “그건 아무 것도 아니다. 수많은 인간들이 내 젖을 먹으면서도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 놈은 하나도 없어!”

어느 학교 복사 실에 못생긴 여자가 들어왔다. 마침 먼저 와 있던 잘생긴 남자가 복사를 하다 말고 그녀를 바라보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바, 반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여자는 기쁘고 감격스러워 눈을 반짝이며 어찌할 줄 몰라 한다. 그러자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머지 절반도 금방 끝납니다.” 착각은 자유지만, 착각들이 현실이 된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

                       내 머리를 들어주시는 야훼

사람의 지체인 사지백체 오장육부 중에 하나라도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 중에도 제일 중요한 부위는 머리일 것이다. 사람의 머리에는 사물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시각(視覺)의 눈이 있고, 냄새를 분별하는 후각(嗅覺)의 코가 있으며, 공기의 파장을 통해 고막을 진동시켜서 소리를 듣게 하는 청각(聽覺)의 귀와 일평생 먹고 말하고 노래하고 즐길 수 있는 미각(味覺)의 입, 그리고 인간의 사고기능을 통제하여 지각 있고 지혜 있게 행동하도록 명령하고 지시해주는 대뇌소뇌(大腦小腦)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의 지체 중에서 가장 귀한 지체는 머리일 것이다.

그런데 만일 머리나 머리에 붙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을 보고 말하며 생각하는 오감각의 기능들이 등이나 넓적다리 같은 다른 지체에 붙어 있다면 인간은 얼마나 괴상하고 불균형한 모습이겠는가? 만일 그렇더라도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겠지만 사람은 개나 소 원숭이보다도 훨씬 볼품없는 추한 모습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 중앙 최정상에 머리를 만드셨고 그 머리 위에 눈 코 귀 입을 정교하게 배열해 놓으시므로 아무리 못생긴 사람일지라도 인간이 어떤 동물과 짐승보다 아름답고 뛰어나며 보기에 좋은 것은 하나님의 특별은혜라고 할 수 있다.
한번 생각해 보자. 하나님은 사람이 수십 년을 살다가 시력이 약해지면 콘택트렌즈를 해 넣을 수가 있고 또 보기 좋은 안경을 써서 더 세련돼 보이며 품위 있게 보일 수 있게 했다. 두 눈두덩 위에 굵은 눈썹을 만들어 빗방울이나 땀이 들어가지 않게 하셨고, 섬세하게 눈 안에 작은 눈썹까지 만들어 아름답게 하셨으며, 안경을 쓸 수 있게 두 눈의 간격도 적당하게 하셨고, 안경다리를 걸치도록 양쪽에 귀를 달아놓으셨으며 그것도 모자라 얼굴 중앙에 오뚝한 코까지 만들어서 얼굴 균형도 바로 잡고 안경도 쓰게 하셨다.

어디 그뿐인가? 만일 사람의 코가 뒤통수에 달렸다면 잠잘 때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그리고 코가 밑으로 향하지 않고 위로 향했다면 그것 또한 얼마나 괴상한 모습일 것이며, 괴로운 일이겠는가? 비가 올 때마다 빗물이 들어가지 않게 막고 다녀야하며, 감기로 콧물이 옹달샘처럼 고일 땐 또 어찌하는가?

멋있는 콧수염도 기를 수가 없을 것이고 안경도 걸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머리에 달린 코의 위치 하나까지도 감사의 조건이 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흙냄새 맡고 우주에 가득 찬 맑은 정기와 좋은 공기 흡입해 건강하게 살라고 만들어 놓은 코를 연기를 내뿜는 굴뚝으로 사용해서 호흡기관을 독한 니코틴으로 채우므로 후두암, 구강암, 폐암으로 속절없이 죽어가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눈 코 귀 입 뇌의 머리뿐 아니라 사람의 지체는 하나하나가 너무나 신비하고 아름답게 지음을 받았다. 겉으로 보이는 외부구조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부조직까지 모두 위대한 하나님의 작품이다. 그래서 우리도 다윗처럼 “내가 주께 감사 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神妙莫測)하심이라”(I will give thanks to Thee, for I am fearfully and wonderfully made: 내가 주께 감사하는 것은 내가 두렵고 놀라울 정도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시 139: 14)를 노래하고 찬양하며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다. 우리 중에 신묘막측하게 지음 받은 자신의 몸에 자부심을 갖지 못하고, 자긍하지 못할 사람이 누구며 감사치 못할 사람이 누구겠는가?

그런데 오늘날, 세계최고의 일류화가가 그려 놓은 그림에 서툰 솜씨로 손을 대 그림을 망쳐 놓는 사람처럼 하나님의 완전한 작품,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작품에 칼과 철침으로 난도질하여 훌륭한 작품을 망치는 사람들이 세계도처에서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자기 몸에 문신(Tattoo)하는 사람들이다. 10년, 20년 전만 하더라도 조폭의 상징이거나 몇몇 운동선수들의 전유물이던 Tattoo가 이젠 세계적인 추세가 될 정도로 동서양 구별 없이 남녀노소가 머리끝에서 발가락 끝에까지 특정장소 없이 무차별로 온 몸에 문신을 새기고 있다. 개중에는 구역질이 날 정도의 문신들도 많이 있는데 Tattoo는 “죽은 자를 위하여 너희는 살을 베지 말며 몸에 무늬를 놓지 말라”(You shall not make any tattoo marks on yourselves)는 레 19: 28대로 성경이 철저하게 금하는 일이다.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의 완전한 작품을 저질의 생채기로 작품을 파괴하고 작품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Ink-master와 Tattooer를 찾지 말고 은혜로 하나님의 성전인 자신의 몸을 잘 지키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오늘 본문은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나라를 탈취하고 아버지 다윗을 죽이려고 대적할 때, 절망과 비애 중에서 작시한 ‘다윗의 탄식 시’이다. ‘탄식의 시’는 주로 시편저자가 커다란 재난에 빠져 하나님 외에는 하소연할 곳이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울부짖는 시를 가리키는데, 다윗은 자기가 사랑했던 많은 사람이 압살롬 반란군에 편입하고 자기의 오른팔처럼 믿고 의뢰했던 모사 아히도벨까지 반역에 가담하여 자기를 대적하자, 허탈과 절망에 빠진 채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통분하여 울면서 맨발로 도피하는 치욕스런 고통에서 본시를 쓴 것이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My glory, O Lord, You are the One who lifts my head!; 1-3절)

O Lord, how my adversaries have increased!(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Many are rising up against me(일어나 나를 치고 대적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Many are saying of my soul(많은 사람이 내 영혼에게 말합니다)...‘많다, 많다, 많다’...는 고백을 보자.  다윗은 자기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기를 대적하는 원수들이 이렇게 많은 것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평소엔 자기를 왕으로 섬기고 모두가 다 고개를 숙여 ‘Yes, King'을 외쳤는데, 반란의 뚜껑을 열고 보니 자기에게 칼을 겨누는 자들이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오늘 본문에서 다윗의 고백대로 하나님은 다윗의 머리를 들어주시는 야훼였다. 얼마 후, 압살롬 반란은 진압되고 나라는 다윗에게로 돌아왔으며 모든 원수는 파멸됐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머리를 들어주시므로 당신의 삶의 현장에 다윗의 축복이 임하기를 축원한다.

   1. 머리를 숙인 사람들

사람은 죄 지은 것이 들춰지거나 실수가 드러날 때, 숨겨야 하는 것을 들키거나 어떤 일을 실패했을 때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숙인다. Court(법정)에 가보면 죄를 지은 사람은 대부분 머리를 숙이고 있다. 남의 물건(돈)을 훔친 사람, 집안 식구 몰래 바람을 피운 남자나 여자, 남을 속이고 사기를 친 사람은 예외 없이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숙이고 있다, 운동선수들도 중요한 게임에 지고나면 아무리 90분, 120분 동안 죽기 살기로 운동장을 부지런히 뛰어다녔어도 국민들 볼 면목이 없어 고개를 숙인 채 쓸쓸하게 운동장을 빠져나간다. 사업가도 사업에 실패하면 죄를 지은 것도 아니면서 얼굴 들고 다니기를 부끄러워하고 사람 만나기를 피해 숨어 다니며 고개 숙인 남자가 된다. 심지어 목사님도 많은 기도와 설교준비를 했는데 주일설교에 성도들이 은혜를 받지 못하면 죄 지은 사람처럼 얼굴을 들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에스라는 70년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낮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스 9: 6)라며 조상들의 죄 때문에 치욕스런 70년 바벨론 포로생활이 있었음을  고백했고, 욥도 ”...내가 의로울 지라도 머리를 들지 못할 것은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내 환난을 목도함이라“(욥 10: 15)고 외쳤으며, 삿 8: 28과 슥 1: 21에서는 ‘원수 앞에 패망하므로 절망 중에 빠져 있는 사람을 갈대 같이 그 머리를 숙인 사람’이라고 했다.

솔로몬이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핀다”(The spirit of man is the lamp of the Lord. Searching all the innermost parts of his being; 잠 20: 27)고 선언한 말처럼, 사람 개개인의 영혼은 야훼하나님의 등불로서 자기 자신의 속을 살피기 때문에, 대부분은 사람마다 약간씩의 차이(신앙과 인격의 차이)는 있지만 잘한 사람은 양심이 떳떳해 머리를 들고, 잘못한 사람은 양심의 가책으로 고개를 숙인다. 그 중에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들고 다니는 뻔뻔한 사람은 양심이 화인을 맞아 아무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철면피이다.

수년 전, 23일 동안에 메릴랜드와 버지니아 일대에서 여러 사람을 죽여 DC 일대를 공포의 도가니를 만들었던 Sniper(저격범) 재판이 며칠 전에 있었다. Sniper 사건은 워싱턴 뿐 아니라 미국을 놀라게 했던 사건인데, ‘23일의 공포’의 주인공범인은 재판 법정에서 얼굴을 들고 판사를 향해 무죄를 주장했다. 사람들은 그가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할 줄 알았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죄며, 통곡하며 용서를 빌어도 정상참작이 될 수 없는 범인이 무죄를 주장하니 그날의 재판은 사형으로 구형됐지만 이렇게 양심에 화인 맞으면 양심이 무뎌지고 없어진다. 이런 사람은 집에서 기르는 잡종 (똥)개보다도 못한 사람이다.

집에서 기르는 잡종 개는 비록 족보가 없는 개로, 때가 되면 사철탕의 먹이로 죽게 되지만 주인 몰래 닭을 잡아먹거나 밥을 훔쳐 먹거나 사고를 쳤을 때, 주인이 부르면 슬슬 눈치 보면서 도망을 가 마루 밑으로 숨든지, 주인에게 오면서 오줌을 지리든지 꼬리를 내리고 쩔쩔맨다. 주인과 얼굴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다. 한갓 미물의 똥개 잡견도 이처럼 수치를 알고 미안한 것을 아는데 양심에 화인 맞은 인간들은 부끄러움도, 죄송함도, 양심의 가책도 느끼질 못한다.

그 외에도, 남편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남자들, 아내 역할을 잘 못하는 여자들, 부모 노릇을 못하거나 자녀의 위치를 제대로 지키지 못할 때 얼굴을 들지 못하고, 환란에 얽매인 괴로운 사람, 대추나무 연 걸리듯 온갖 문제들이 얽혀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 그리고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은 에덴동산의 아담처럼 그 머리를 들지 못한다. 따라서 머리를 들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사람은 에덴의 아담하와 부부와 에스라 욥 다윗만이 아니다. 저 옛날 죄를 지었던 이스라엘, 원수들에게 처참하게 짓밟혔던 이스라엘만도 아니다. 그리고 사업에 실패해 사람들을 피해 다니며 살고 있는 뉴욕이나 Los Angeles의 사람들만이 아니다. 사실은 여러분과 나, 오늘 삶의 현장에서 패배하고 실패하여 절망 중에 빠져 땅이 꺼져라 한숨 쉬는 당신과 내가 바로 머리를 숙인, 고개 숙인 사람들이다. 사면초가의 원수들 속에서 머리를 들어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다윗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축원한다.

   2. 머리를 들어주심의 의미

한국에서 해마다 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 중 ⅓은 놀랍게도 재수 삼수 사수의 실패와 절망을 딛고 일어선 학생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낙방의 고배를 마신다음, 절치부심하여 열심히 공부하므로 대학을 들어가는데 학생들은 재수 삼수 사수까지 도서관을 찾고 학원을 다니며 공부하면서 견딜 수 없는 좌절과 절망과 우울증과 초조함에 시달린다. 근심이 떠날 날이 없다. 그때마다 그들의 어머니들은 밤잠을 못자고 자녀들을 격려했고 아이들의 피곤한 얼굴을 드려다 보면서 함께 울고 함께 노력했다. 이렇게 한국의 고삼 어머니들과 대학준비생 어머니들은 너나없이 입시지옥의 세월을 보낸다. 그래서 자녀들이 대학생이 돼 당당하게 진리의 상아탑으로 걸어가도록 그들의 머리를 들게 해준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한 학생 자신보다도 그들의 어머니들이라고 할 수 있다.

대회 때마다 입상을 못해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던 선수라도 한번만 PGA(Professional Golfer's Association) 챔피언이 되고 나면 VIP 대접을 받고 당당하게 머리를 들고 다닐 수 있고, 몇 년 동안 무명의 가수, 이름 없는 연예인으로 있을 때는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머리를 숙이고 땅을 기어 다녀야 하지만 한번만 입상하면 당당히 머리를 들고 다닐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머리를 들어주시면 그날로 당신의 삶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 인생의 환경이 달라진다. 슬픔이 변해 기쁨이 되고, 눈물이 변해 웃음이 되며, 탄식이 변해 찬송이 되고,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며, 실패는 성공으로, 어둠은 빛으로, 질병은 건강으로 변한다. 말 그대로 모든 환경이 다 변한다.

하나님이 그 머리를 들게 했던 여호야긴의 역사를 기록한 왕하 25: 27-30, 렘 52: 31-34절을 본다.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의 즉위한 원년 십이월 이십칠 일에 유다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끌어내어 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선히 말하고 그 위를 바벨론에 저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위보다 높이고 그 죄수의 의복을 바꾸게 하고 그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고 저의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정수가 있어서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 하였더라”

여호야긴은 18세 Teenager 십대소년으로 유대의 22대 왕이 됐다. 그러나 그는 불운하게도 왕이 된지 3개월 만에 느부갓네살에게 멸망당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다음 선지자 에스겔과 함께 포로수용소 감옥에 갇혔다. 여호야긴이 포로로 잡혀간 이후 유대는 걷잡을 수 없는 파멸과 죽음과 고통이 시작된다.

여호야긴의 뒤를 이어 삼촌 시드기야가 왕이 됐지만 바벨론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은 붕괴됐고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가고 죽임을 당했으며 모든 보물과 귀중품들은 바벨론으로 옮겨가므로 유대 땅은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된다. 그런 중에도 시드기야는 11년 동안 유대를 통치하면서 최후수단으로 군사대국 애굽과 군사동맹을 맺어 바벨론을 배반했는데 느부갓네살의 재차 공격으로 멸망 받아 시드기야는 두 눈을 뽑히고 쇠사슬에 묶인 채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그 아들들은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모두 죽임을 당했다. 그날 이후 유대는 70년 동안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여호야긴은 무려 37년 동안 적국의 왕으로, 죄수로, 포로로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온갖 학대와 고통과 배고픔과 강제노동을 당한다. 그 생애에 가장 좋은 시기를 이렇게 자유를 뺏기고 처절한 죄수의 포로생활을 보낸 것이다.

세월이 바뀌고 느부갓네살 2세가 죽고 그 아들 에윌므로닥이 대 바벨론제국의 왕이 됐다. 놀라운 일은, 에윌므로닥은 왕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유다왕 여호야긴, 포로수용소에서 죽음의 날만을 기다리고 있던 종신무기수, 여호야긴에게 특사를 내린 후 과거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고 그를 바벨론의 모든 왕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려 주었다. 그것을 예레미야는 ‘에윌므로닥이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어 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한 것’(렘 52: 31-34)이라고 했다.

그다음, 창 40: 13절에서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는 요셉은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Within three more days Pharaoh will lift up your head) 당신의 전직을 회복할 것이라”고 했는데 요셉의 꿈 해몽대로 술 맡은 관원장은 사흘 후, 바로의 생일에 특사로 사면되고 전직을 다시 회복하며 옛날의 권세를 다시 찾게 됐다.

그렇다. 머리를 드는 것, 하나님께서 우리 머리를 들어주시는 것은 축복의 회복을 의미한다. 모든 절망적인 환경을 희망의 환경으로 바꿔주시는 것이다. 잃었던 지위, 뺏겼던 자리, 억울했던 환경, 불안했던 자리, 놓쳤던 기회,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간 자신을 다시 얻게 하시는 축복이다. 죽음의 날만 기다리던 쇠창살 안의 삶이 조롱을 떠난 새처럼 자유의 창공을 나는 환경이 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머리를 들어주시므로 잃었던 권세 있는 성도의 자리, 잃었던 아빠 엄마의 자리, 잃었던 당신의 사회적 위치, 교회 안에서의 영적권위, 잃어버렸던 기도의 능력과 직업, 잃었던 행복과 기쁨들을 다시 찾게 되는 주일예배가 되길 축원한다.

   3. 하나님이 머리를 들어주는 사람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머리를 들어주시는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의욕상실로 고개 숙인 나의 머리를 들어주실까? 사람의 머리를 들어주실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 욥 11: 14-15와 22: 23-26을 보자.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If iniquity is in your hand, put it far away.
불의로 네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하라
Do not let wickedness dwell in your tents.
그리하면 네가 정녕 흠(欠)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라”
Then indeed, you shall lift up your face without moral defect.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고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면
다시 흥하리라. 네 보배를 진토에 버리고 오빌의 금을 강가의 돌에 버리라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시며 네게 귀한 은이 되시리니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것이라”
For then you will delight in the Almighty. And lift up your face to God.

그렇다. 인간이 실패와 좌절로 숙였던 머리를 당당하게 들 수 있는 것, 하나님이 우리 머리를 들어주시는 비밀은 우리에게 있는 죄와 불의를 멀리 버리는 것, 금과 은의 돈을 하나님처럼 따르며 섬기던 것을 버리는 것, 우리의 죄를 회개할 때이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남매가 방학을 맞아 시골 외할머니 집에 갔다. 며칠 동안 과외공부에서 자유를 얻은 남매는 할머니가 주시는 참외 수박 옥수수...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신나게 논다. 어느 날, 외할머니가 몇 시간 동안 집을 비우고 시장을 다녀올테니 집을 잘 보라며 출타했다. 외할머니 집엔 거위 한 마리가 있었는데, 며칠 동안 잘 놀았던 남매가 놀이거리가 없어 심심하던 차에 손자가 가지고 간 고무총이 생각나 고무총으로 거위를 쏘았는데 그만 거미가 죽어버렸다.

동생은 누나에게 거위 죽인 것을 할머니에게 이르지 않으면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하겠다 약속을 한다. 그날부터 동생은 누나가 시키는 대로 설거지를 하고 부엌일도 하며 심지어 할머니가 누나에게 시키는 심부름까지 다 한다. 누나는 밥만 먹고 방에 들어가 TV만 보고 아무 일도 안하며 맛있는 것도 저만 먹는다. 동생이 힘들어 도와 달라는 눈치를 보이면 ‘죽은 거위’로 겁을 주어 그때마다 동생은 무서워서 찍소리 못하고 일을 했다. 할머니가 자기를 부르면 누나가 이른 줄 알고 겁이 덜컥 나고 밤에도 잠을 편하게 못 잔다.

서울 집으로 돌아가기 일주일 전, 아이는 더 이상 괴로움을 견딜 수가 없어서 외할머니에게 ‘거위 이야기’를 울면서 고백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며 용서를 해 주셨다. 그날 밤 잠을 편히 잔 아이는 아침식사가 끝난 후 누나에게 설거지를 하라고 했다. 그러자 아무 것도 모르는 누나가 다시 ‘죽은 거위’로 겁을 주며 동생에게 일을 시키고 자기 방으로 가려 한다. 그때 할머니가 두 아이에게 거위 이야기를 하면서 손자가 어제 밤에 다 용서받았으니 더 이상 누나에게 종노릇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렇다. 당신이 지금까지 지은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얼굴을 들어주신다. 죄인처럼 고개 숙이며 살아온 당신의 머리를 들게 하신다. 이 예배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머리를 들어주는 예배가 되길 축원한다.

그다음, 두 번째는 야훼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이다. 본문 4절을 본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I was crying to the Lord with my voice. And He answered me from His holy mountain) 다윗은 많은 신하와 군사들이 압살롬 반역에 가담해 자기에게 칼과 창 뿌리를 겨누는 황당한 사건을 만났을 때, 처음엔 당황했고 어이가 없었으며 분했지만, 이런 황당한 사건이 충신 장군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부인 밧세바를 뺏은 죄의 결과며, 압살롬이 자기 형 암논을 죽였을 때 그 죄를 엄하게 다스리지 못하므로 이런 결과가 온 것임을 회개한 후, 야훼하나님께 부르짖어 간구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O Lord, You are a shield for me, my glory, and the One who lifts my head) 야훼하나님이여, 나의 머리를 들어주소서. 야훼하나님이여, 저 많은 원수들을 파멸하시고 나의 위치를 회복시키소서. 예루살렘으로 나를 돌아가게 하소서. 야훼하나님이여, 내 머리를 들어주소서!

이렇게 다윗이 소리 내어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동안, 전쟁터에서는 압살롬의 반란군과 요압, 아비새, 잇대, 다윗의 세 사령관의 군대와 일진일퇴의 치열한 전쟁을 치루고 있었다. 그러다가 압살롬 반란군 이만 명이 요압의 군대에게 전멸당하고 후퇴하게 됐는데 패잔병을 이끌고 정신없이 도주하던 압살롬이 상수리나무 밑을 달리다가 흩날리는 무성한 머리털이 상수리나무에 걸려 압살롬은 공중에 달리고 말은 도망가 버리므로 요압이 그를 쳐 죽이므로 압살롬 반란은 끝난다(삼하 18: 1-15)

그렇다. 다윗이 자기 음성으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동안에 전쟁이 끝났다. 당신의 음성, 자신의 목소리이다. 다른 사람이 부르짖는 기도를 듣고 있을 때가 아니라 자기 목소리로(With his voice) 부르짖어 기도할 때이다. 다윗이 밤의 적막을 깨뜨리며 자기 음성으로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이 모든 원수들을 격멸시키고 다윗의 머리를 들어주셨다. 오늘 당신의 부르짖는 기도를 응답하시므로 당신을 괴롭히던 모든 원수들이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등을 보이고 도망가며, 당신의 머리를 들어주시는 기적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4. 머리 든 사람이 받을 축복

반역의 쿠데타가 종결되고 모든 원수들이 전쟁터 에브라임 수풀에서 몰사하므로 평안히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된 다윗이 고백한다, 본문 5-8절까지에서 하나님이 그 머리를 들어주심을 고백했던 다윗의 고백은 오늘 하나님이 머리를 들어주시는 성도들이 받을 복을 말해 주고 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 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⑴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야훼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야훼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심을 고백한 말씀이다. 하나님이 머리를 들어주는 사람은 삶의 모든 환경에서 하나님이 붙잡아주시는 보호가 있다. 내 삶이 좌우로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주시는 보호,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주시는 보호, 무너지지 않게 보호해주시는 야훼의 보호가 있다.
   ⑵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둘러친다”의 쉬트는 군사적인 용어로 “포위(包圍)한다”는 의미이다. 수많은 원수들이 겹겹이 나를 포위해도 하나님이 지켜주시므로 나는 두려움 없이 살아 갈 수 있다는 고백이다. 야훼하나님이 머리를 들어주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의 고백이다.

   ⑶ 여호와의 임재와 보복활동(7-8절)

하나님께 부르짖는 다윗에게 임재 하셔서 활동해 주신다는 고백이다. 성경에서 사람의 ‘뺨을 친다’(Smitten)는 표현은 “그에게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부끄러운 형벌을 내린다”는 의미이다(왕상 22: 24, 욥 16: 10, 애 3: 30) 그렇다. 당신이 하나님이 머리를 들어주시는 사람이 되면, 당신을 대적하는 모든 원수들이 수치스러운 형벌을 당하고 부끄러운 형벌을 당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악인의 이를 꺾는다’(Thou hast broken the teeth of the ungodly)에서 꺾는 것은 솨바르란 말로 “으스러뜨리다”란 의미이다.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부수어버림을 표현한 말이다. 그렇다. 하나님이 머리를 들어주시는 성도가 되면, 그 사람을 대적하는 원수는 회복불가능의 치명적인 파멸이 온다. 비록 처음엔 압살롬의 반역처럼 악인의 입이 날카로워도 얼마 가지 않아서 사나운 야수와 같이 의인을 괴롭히던 악인의 야비한 행위나 말로써 의인을 조롱하고 훼방한 악인의 입은 철저하게 망하게 된다는 약속이다.

이런 의미에서 “야훼하나님은 나의 머리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이란 다윗의 고백은 놀라운 신앙고백이다. 그렇다. 우리 하나님은 다윗의 머리를 들어주신 하나님이셨다. 하루아침에 내가 낳은 아들이 총 뿌리를 겨누는 원수가 되고, 충신이 반역에 가담하며, 온 나라가 등을 돌려 외면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하나님이 다윗의 머리를 들어주시는 분이 되자마자 상황이 역전됐다.

오늘 하나님이 당신의 머리를 들어주시는 분이 되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어둠이 변해 밝음의 빛이 되고, 절망의 삶이 소망과 희망의 삶이 되며, 먹구름이 걷히고 광명한 태양이 내려 쪼이며, 죽음의 상황이 생명의 현실이 된다. 다윗처럼 지은 죄와 실수를 회개하고, 나의 목소리로 부르짖어 간구하므로 전능하신 야훼하나님이 당신의 머리를 들어주시는 거룩한 주일예배가 되기를 축원한다. 

김엘리야 목사(워싱톤주기도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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