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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07월18일 18시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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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사갈의 셋째 아들, 야숩
한 남자가 새로 산 스포츠카를 타고 길을 달리고 있는데 놀랍게도 닭 한 마리가 엄청난 속도로 차를 추월해 달려간다. 남자가 속도를 높여 달렸더니 닭은 이 차를 따돌리고 사라져버렸다. 닭을 구입해 경주 닭을 만들면 떼돈을 벌 것 같은 생각이 들은 그가 동네를 수소문해 닭 주인을 찾아서 주인에게 말했다. “그 닭을 100만원에 파쇼!” 그러자 주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1,000만원에 파쇼!” 그래도 주인은 막무가내였다. “에이, 그까짓 닭 한 마리 가지고! 좋소, 3,000만원에 내 차까지 줄 테니 파쇼!” 그래도 주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은근히 화가 난 그가 ”도대체 안파는 이유가 뭐요?” 그러자 주인이 말했다. “닭이 잡혀야 팔지요”

외국으로 아들을 유학 보낸 목사님과 서울로 공부하러 보낸 목사님이 서로 얘기를 나눴다. 유학생의 아버지인 목사님이 말했다. “저는 아들의 편지를 받아볼 때마다 사전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자 아들을 서울로 보낸 목사님이 하는 말, “그래도 목사님은 약과입니다. 저는 아들 편지를 받아볼 때마다 은행에 가야 해요”

한 장로님이 제직들에게 자식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다. “우리 큰 아들은 미국 대학에서 교수로 있고, 둘째 아들은 캐나다에서 치과의사를 하고 있어요. 셋째 딸은 독일 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있고, 막내딸도 얼마 안 있으면 이탈리아로 성악 공부하러 갑니다” 그러자 듣고 있던 한 집사가 말했다. “장로님 자식들은 하나같이 장로님 곁을 멀리 떠나는 군요”

그렇다. 세상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가 좋으면 다른 하나가 나쁘고, 이것이 좋으면 저것은 나쁘다. 첫째 아들이 잘되면 둘째 아들이 어렵고, 둘째 딸이 잘 나가면 첫째 딸이 힘든 중에 있다. 그래서 사람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만 의지하고 그분을 통해 위로를 받아야 살 수 있는 존재다.

산이 아름답고 크면 골짜기도 깊고, 밑으로 내려간 계곡이 깊으면 오르는 산이 웅장하고 크듯, 하나님의 시련과 연단이 크면 그 사람이 받는 축복도 많고 크다.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과 시련, 하나님의 고된 연단과 축복은 정비례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남녀 4,000여명의 기라성 같은 성경인물 중에 시험과 시련이 제일 컸던 사람은 동방의 의인 욥이었고, 하나님의 축복이 제일 컸던 사람도 욥인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신구약 성경전체에서 욥(Job)의 이름은 총 59회 언급됐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Abraham)의 이름이 308회, 만승천자 다윗(David)의 이름이 1,085회나 언급된 것에 비하면 아주 적은 횟수에 불과하지만, 욥기가 주는 심오한 철학적 진리와 영적교훈, 고난과 축복의 사람 욥을 통해서 배우는 신앙적 삶의 교훈은 실로 측량불가의 고가(高價; 값이 비싼)의 교훈이고 어떤 책에서도 얻기 어려운 귀한 교훈이다.

여러 학설 중에, 욥의 사망이 대략 출애굽 15년 전쯤이고, 그가 시련당한 시기가 대략 주전 1843-1703년으로 보는 것 그리고 욥기저자가 누구인가를 확실하게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It is impossible to prove fully who the author of Job really was) 욥기를 쓴 사람이 욥 한 사람이거나 모세오경처럼 욥기도 모세가 성령의 감동으로 썼을 것, 또는 두 사람이 함께 쓴 책으로 보는 학설이 유력하다.

세계적인 주경학자였던 F. J. Dake 박사는 역사적배경과 사회적 배경 그리고 문학적 배경과 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욥과 모세가 같은 시대에 광대하고 드넓은 사막에서 함께 산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니(No doubt Job and Moses lived at the same time in the vast wilderness section of the country), 모세의 미디안 광야 40년 생활, 모세가 아라비아-페트라에서 페르시아 만까지(From Arabia-Petra to the Persian Gulf)의 유목민 생활을 할 때, 두 사람이 서로 만나 많은 시간을 함께 생활하며 대화하면서(These men could have spent much time together) 욥기를 기록했을 것이라고 보았고, 욥기를 다 쓴 후 모세는 출애굽의 역사를 위해 바로를 찾아 이집트로 갔을 것으로 보았다. 희한하게 유대전통에서도 이구동성으로 욥기는 모세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한 책이라고 말한다(Tradition says that the book was written by Moses)

욥은 자기의 자서전 격인 욥기 1: 3에서 자신을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This man was the greatest of all the men of the east)고 기록했고, 대선지자 에스겔은 욥을 노아와 다니엘과 함께 구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삼대 의인 중 한 사람으로 네 번이나 강조해 기록했으며(겔 14: 12-20),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성경의 모든 인물 중에서 욥을 ‘인내의 표본’, ‘인내의 결정자’로 칭송했다(약 5: 11)

그렇다. 동방의 의인 욥은 하나님께도 인정을 받은 사람이었고,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은 모범적인 의인이었다. 욥은 하나님의 관심을 끌었던 의인이었을 뿐 아니라 사단마귀도 관심의 대상으로 점찍었던 의인이었다. 그리고 욥은 7남 3녀를 둔 다복한 가장이었고, 7천 마리 양과 삼(3)천 마리 약대, 천 마리 소, 500마리의 암나귀를 소유했던 거부에 수백 명 하인을 거느린 CEO(Chief Executive Officer; 최고경영 책임자)이면서, 신앙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경건하고 거룩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이제 동방에서 가장 큰 사람, 욥을 통해서 “잇사갈의 셋째 아들, 야숩”을 알아본다.

                        잇사갈의 셋째 아들, 야숩
창 46장은 이집트제국의 총리 요셉의 초청으로 아버지 야곱이 열한 아들과 모든 식솔 일흔(70)명을 데리고 애굽으로 이민을 떠나는 기록내용이다. 그 중에 13절을 보면, “잇사갈의 아들 곧 돌라와 부와와 욥(Job)과 시므론”이란 말이 나오는데, 네 사람은 야곱의 손자며 잇사갈의 네 아들이면서 총리 요셉의 조카들이다. 그런데 본문 1절에서는 “잇사갈의 아들들은 돌라와 부아와 야숩(Jashub)과 시므론 네 사람이라”고 하므로 창세기에 기록된 욥을 야숩이라고 했는데, 민수기 26: 23-24에서도 욥을 야숩이라고 했다. 따라서 잇사갈의 셋째 아들 욥(Job)과 야숩(Jashub)은 같은 사람을 다른 이름으로 부른 동인이명(同人異名)의 사람이다.

이제 역대기에 기록된 야곱의 다섯째 아들인 잇사갈, 잇사갈의 셋째 아들인 욥과 야숩의 축복을 욥기를 통해서 알아본다. 욥은 어떻게 해서 동방의 일인자가 됐는가? 야숩은 어떻게 해서 혈족들이 애굽에서 죽음을 넘나드는 노예생활의 고통을 겪을 때, 우스 땅의 의인, 동방제일의 의인,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축복의 의인이 됐는가? 욥과 야숩이 ‘성경의 삼대 의인 중 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비결, ‘동방의 의인’이 될 수 있었던 축복의 비밀은 무엇이며 나는 어떻게 해야 야숩과 같은 축복의 사람이 될 수 있는가? 큰 축복의 사람 야숩과 욥 같이 큰 축복의 사람이 되는 성경적 비밀은 무엇인가?

   1. 새로운 운명에 도전하라!

지난 8월 13일(화), 점심을 먹으며 SBS, 'Good Morning'(좋은 아침) 프로를 시청하다가 오랜만에 신선한 충격과 도전을 받았다. 목포에서 쾌속선 뱃길로 4시간 반,서해와 남해가 만나는 우리나라 최 서남단의 외로운 섬 가거도(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에서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술에 절어 살던 아버지에게 매를 맞아가며 중학까지 나온 후, 서울로 올라와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고, 배고픔을 해결하려고 프로복서로 활약하다가 실패한 후, 27살에 맨손으로 이태리로 유학을 떠나 ‘동양의 파바로티’가 돼서 28번의 콩쿠르 우승과 세계각국을 다니며 300번 이상을 오페라를 공연하고 있는 ‘살아있는 전설’ 테너 조용갑씨의 일대기를 시청하면서였다.

아버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술에 취해 살았고, 술주정으로 매일 도망 다녀야 했다. 붙잡히면 밤새도록 노래를 시켜 매를 맞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간신히 중학을 졸업한 후, ‘절대 포기하지 말라’며 어머니가 해주는 차비만 가지고 꿈을 안고 무작정 서울에 올라와 공장잡부에서 판매원(버스와 기차에서)으로, 월급도 없는 공장 심부름꾼으로 전전한다. 공장선배들이 나무나 쇠뭉치로 때리며 구박하면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공장 화장실에 가서 울고, 하루 4시간 잠을 자며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입대한다(군대는 잠잘 곳이 있고 먹을 것을 주니 최고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제대 후 먹고 살기 위해 프로복서가 됐지만 패배하여 포기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노래를 새벽마다 산에 올라가 혼자 연습했는데 어느 날, 새벽 운동을 나왔던 약수터 아줌마들이 ‘노래 잘한다’며 칭찬하는 소리를 듣고, 용기를 내 무작정 교회를 찾아가 ‘특송 요청’을 했다. 특송을 들은 목사님과 성도들이 성악전공을 권유해, 노점상에서 노래 테이프CD를 구했는데 유명한 파바로티의 노래였다. 그때부터 파바로티의 노래를 흉내(외국어를 몰라 들리는 대로 한글로 적어서 노래함)내며 새벽마다 산에 올라가 노래를 불렀다.

그의 특기를 살려 유학을 보내기 위해 목사님이 주선(모금까지)해주어 비행기 표만 가지고 맨손으로 이태리 유학을 떠난다. 외국어 한마디 못하지만 파바로티 노래 중에서 어려운 것만 반복해 연습을 하고 갔는데, 다행히 이태리 산타 체칠리아 음악학교 입학시험에 자기가 연습한 것을 시켜 무사히 합격한다.

학교생활도 배짱 하나로 했다. 현지인들과 소통하는데 영어나 이태리 말을 몰라 아무나 붙잡고 한국말로 말을 했더니 처음엔 알아듣지 못해 어리둥절하다가 나중엔 그들이 이해를 하더란다(배짱으로 언어소통) 심지어 기숙사에서 된장찌개를 끓였더니 고약한 냄새 때문에 학생들이 난리가 났다. 거기에 주눅 들지 않고 ‘그럼 이번엔 청국장이다!’며 청국장을 끓였더니 기숙사가 발칵 뒤집혔다. 그래도 배짱으로 견디면서 며칠 동안 청국장을 끓였더니, 나중에는 지독한 청국장냄새에 굴복한 학교에서 ‘처음 것(된장국)은 되는데 나중 것(청국장)은 제발 하지 말아 달라’며 문제가 해결돼 친구들을 초청해 된장국 파티까지 했다.

그의 콩쿠르 도전기이다. 콩쿠르 시합 장소에 4-5일 먼저 도착한 그는 밥통에 고추장과 김치, 소시지를 가득 담고 가서 끼니때마다 그것으로 배를 채우고, 목욕은 화장실에서 하면서 시합 날짜를 기다렸는데...2-3일이 지난 후 생각해보니 ‘안 될 것(실패할 것)만 준비한 자신’이 부끄럽더란다. 이태리는 호텔이나 음식이 모두 후불제라, 그래서 우승하면 호텔비와 음식 값을 치루겠다는 배짱으로...‘이길 것이라’는 우승을 확신하고 제일 좋은 호텔방을 얻고 밥도 최고급음식으로 잘 먹었다(콩쿠르에서 입상을 못하면 사기꾼으로 잡혀 경찰서로 끌려가고 강제추방을 당하는데 그때 비행기 표는 이태리정부가 지불해주니 한국으로 추방당할 각오로 호텔에 투숙하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움으로 수백 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첫 번째 콩쿠르에서 기적적으로 우승했다. 그때 그가 배운 교훈은 “도전하지 않으면 승리가 없다. 실패를 두려워 말고 운명에 도전하라”였다.

그날 이후 기회를 기다리지 않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회의 문을 두드렸던 그는 국제 콩쿠르에서 28회나 우승을 했고, ‘동양의 파바로니 조용갑’이란 명성을 얻어 지금까지 전 세계를 다니며 300번 이상 오페라공연을 하는 경력의 소유자가 됐다. 세상의 모진 풍파가 모든 것을 그에게서 송두리 채 빼앗아 갔어도, 꿈이 있었기에 주저앉을 수 없었던 섬 소년 조용갑이 오늘 세계가 인정하는 테너가수로 우뚝 선 것은 그의 도전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어떤 시인의 고백대로, ‘대추 하나가 그대로 열렸겠는가? 저 안에 폭풍 몇 개, 저 안에 찬 이슬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있었기에 대추가 열려 있는 것’이다. 그렇다. 여기 있는 김목사의 당당한 오늘은 지난 날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과감하게 나의 운명을 던져서 도전했던 결과이다. 지금의 이장로, 김권사, 지집사는 성공확률 10%도 안 되는 일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위험과 위기에 용감하게 도전했던 결과이다. 내일의 김장로, 박권사, 서집사의 찬란한 미래는 내게 다가오는 폭풍과 찬 이슬과 번개를 피하지 않고 묵묵히 도전할 때, 맞을 수 있는 축복이다. 미래를 도전하라!

본문의 주인공 야숩(Jashub)은 미래를 도전한 사람이었다. 잇사갈의 셋째 아들 욥은 오늘의 안일과 평안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도전한 사람이었다. 삼촌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로 최고의 막강한 권세를 가지고 있었고, 애굽의 모든 땅과 짐승까지 소유했었으며, 애굽의 정치, 군사, 문화,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최고실권자로 요셉에게 부탁만 하면 무슨 자리든, 어떤 땅이든, 어떤 권세든 쉽게 소유해 부족한 것이 없게 살 수 있었다. 실제로 다른 삼촌들과 사촌들은 요셉 삼촌을 통해 좋은 자리를 얻어 성공하며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야숩은 눈앞에 보이는 현실보다는 찬란한 미래를 향해 도전하여 멀고도 험한 광야사막을 따라 가나안 동쪽 우스 땅으로 옮겨 갔다. 그것이 욥이 동방의 의인이 된 비밀이다.

그렇다. 찬란한 미래는 도전하는 사람의 것이다. 편안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척박한 광야와 위험한 사막을 뛰어넘으면서 도전하는 사람의 것이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For by Thee I can run upon a troop)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And  by my God I can leap over a wall; 시 18:29)”라고 고백했던 다윗처럼 불확실한 미래, 성공보장도 없는 미래, 실패하여 알거지가 될 수도 있는 미래, 남들이 망해 손 털고 나간 가게여서 나도 망할 수 있는 가게이지만 살아계신 하나님, 지금도 기적을 만드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고, 적군 속을 달음질 하듯 미래를 도전하여 욥처럼, 야숩처럼 축복을 받는 당신이 되기를 축원한다.

   2. 인성과 영성이 뛰어난 사람이 되라!

“그 사람은 순전(純全)하고 정직(正直)하여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욥 1: 2)
욥이 언제부터 이런 성품을 가졌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애굽에서 우스 땅으로 와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부터 그는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난 삶을 살았다. 그렇다. 당신이 미국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 당신이 가게를 새로 시작할 때, 당신이 결혼과 함께 새로운 삶을 도전할 때, 당신의 새로운 도전을 야숩처럼 깨끗한 인성과 경건한 영성으로 시작할 것이다.

욥의 사대 품성(4fold character of Job), 야숩의 사대 덕성(德性)을 알아보자. ⑴ 욥은 순전했다. 순전(Perfect)은 히브리어로 탐이란 말로, “완성하다”(31: 40), “끝내다”(왕상 6: 22), “소진하다”(창 47: 15, 렘 37: 21) 등을 의미하는 동사 타맘에서 유래하여 “온전한”, “정직한”, Undefiled(“더러워지지 않은”, “오염되지 않은”, “깨끗하고 청순한”)란 뜻을 갖는다. 욥기에서 이 말은 “도덕적, 윤리적 측면에서 완전한 것과 허물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8: 20, 9: 20-22) 욥은 부자와 권세자여서 사업상 많은 사람을 접촉하며 살았지만 더러워지거나 오염되지 않은 채, 깨끗하고 청순한 삶을 살았다. ⑵ 정직한 사람이었다. 정직하다(Upright; 올바른, 정직한, 청렴결백한, 고결한)의 야솰은 “올곧다” “평탄하다”, “곧은길을 행하다”란 의미이다. 욥이 실제생활에서 흠이 없이 살고 올곧게 살며 곧은길로만 살려고 노력했음을 가리킨다. 욥은 대기업의 총수로 많은 고관들을 만나며 살아야 했고, 많은 사업가들을 상대했어야 했으며, 사업상 많은 부하직원을 관리했어야 했는데, 그런 생활에서 곧은길로만 정직하게 살았다는 것은 욥이 얼마나 경건훈련이 잘 됐었음을 말해준다. 순전과 정직이 견실한 도덕가로서의 욥의 착한 인성을 묘사한 것이라면, 하나님을 경외함과 악을 떠남은 신앙인으로서의 욥의 경건한 자세를 가리킨다.

⑶ 욥은 하나님을 경외(Feared God)한 사람이다. 경외란 히브리어 야레는 ① “깊이 경애하다”, “우러러 받들다”, “존경하다”(To revere)의 뜻과 ② “두려워하다”, “걱정하다”, “염려하다”(Be afraid of) ③ “깊이 존경하는 마음을 갖다”, “중시하는 편애의 마음을 갖다”, “높이 평가하여 경의를 표하다”(To have deep respect for)란 의미이다. 어떤 환경, 어떤 상황에서도 욥은 하나님을 편애할 정도로 하나님 제일주의, 하나님을 먼저 걱정하고 존중하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말씀하기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For those who honour Me I will honour, and those who despise Me will be highly esteemed; 삼상 2; 30)하셨다. 야숩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하나님이 존중히 여기는 축복을 받기를 축원한다.

⑷ 욥은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다(Job was eschewed evil: 악을 피한 사람이었다) ‘떠났다, 피했다’란 히브리어 술은 “어디에서 떠나다”(Depart from), “갈라서다, 옆길로 들어서다”(To turn off), “망함과 몰락에서 떠나다”(Leave undone), “어떤 것에 대해서 반항하다”(Rebel against), “어떤 것을 불쾌하게 여기다”, “어떤 것을 싫어하다”(Be sour against), “물러나다”, (모임 따위에서) 탈퇴하다“(Withdraw)란 뜻이니 욥은 모든 악에서 떠난 사람, 악을 저항한 사람, 악을 싫어한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욥기 31장을 보라.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 욥의 세 친구가 욥이 당한 모든 재앙과 저주는 ‘욥의 죄 값이라’는 논리로 압박하자, 욥은 12가지로 조목조목 열거해가며 자기의 무죄를 선언한다.

①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처녀나 여자에게 눈을 준적이 없다(I was not guilty of lust for women; 1-4절) ② 나는 남을 속이는 허탄과 궤휼의 죄를 결단코 범치 않았다(Not guilty of deceit or vanity: 5-6절) ③ 나는 부정직하거나 부정행위로 사기를 친 적이 없었다(Of dishonesty; 7-8절) ④ 나는 여인에게 마음을 뺏긴 적이 없었다(Of adultery; 9-12절) ⑤ 나는 부정과 불공평으로 남의 권리를 침해한 적이 없었다(Of injustice; 13-15절) ⑥ 나는 결코 가난한 자나 과부에게 몰인정하거나 잔혹한 행위를 한 적이 없었다(Of inhumanity; 16-23절)

⑦ 나는 탐심이나 탐욕에 이끌린 적도 없었다(Of covetousness; 24-25절) ⑧ 나는 우상숭배의 죄를 진적도 없었다(Of idolatry; 26-28절) ⑨ 나는 내가 미워하는 자를 증오하거나 그가 망하기를 바란 적이 없었다(Of malignity(29-31절) ⑩ 나는 나그네와 행인을 푸대접하거나 냉대한 적도 없었다(Of inhospitality; 32절) ⑪ 나는 결코 죄를 숨겨 위장하거나 거짓으로 겉치레(특히 위선)한 적이 없다(Of hypocrisy; 33-37절) ⑫ 나는 결단코 남을 속이거나 기만하지 않았으며 허위의 협잡꾼도 된 적이 없으며 사기를 친 야바위꾼이 된 적이 없었다(Of fraud; 38-40절)

이 시대에 욥처럼 이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그래서 욥은 하나님께로부터 ‘동방의 의인’으로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우리도 욥처럼 하나님을 믿는 성도답게 순전함과 정직의 착한 인성을 갖고 살며, 야숩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모든 악에서 떠난, 악을 버린 거룩한 영성의 사람이 되자. 우리 중에서도 욥과 같은 의인, 야숩과 같은 의로운 성도들이 많이 나올 수 있기를 축원한다.

   3. 자기를 지키는 자가 되라!

욥은 무엇보다 자기를 지킨 사람이었다. 항공모함이 침몰해 바다 속에 가라앉듯 거대한 기업이 하루아침에 망하여 알거지가 돼 길거리에 앉게 됐을 때, 7남 3녀 자녀들이 대풍에 집이 무너져 압사했을 때, 그리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기 온 몸이 썩어 문드러지고 고름과 진물이 나는 궤양성 피부병인 상피병이 들었을 때도, 설상가상으로 일생을 함께 살았던 아내가 “당신이 이 지경이 됐어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냐? 바보 천치야,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라”(You fool! Curse God and die)며 자기 곁을 떠날 때에도 묵묵히 욥은 자기를 지켰다. 그리고 세 친구,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북괴가 다연발 미사일로 연평도를 포격하듯 욥의 재앙과 저주는 욥의 죄 값이라며 무차별 공격을 할 때도 욥은 움직이지 않는 태산처럼 자기를 끝까지 지켰다. 그 때에 욥의 고백을 들어보자. “나는 단정코 너희를 옳다하지 않겠고 죽기 전에는 나의 순전함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Till I die, I will not remove(put away) my integrity from me; 욥 27: 5)

그렇다. 순전함을 끝까지 지킨 것이 욥을 동방의 의인으로 세웠다. 죽기까지 순전함을 버리지 않을 것이란 그의 결심과 행동이 야숩을 동양최고의 의인으로 세웠다. 오늘 이 땅에 얼마나 많은 기업가와 재벌, 유명 정치인과 법조인, 권력가와 유명한 연예인들 그리고 명성을 날리던 종교지도자들이 토네이도에 거목이 쓰러지고 대궐 같은 집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 아주 작은 일에 무너져 내리고 쉽게 목숨을 끊어서 삶을 포기하며 줄줄이 쇠고랑을 차고 영창으로 끌려가는가?

그렇다. 모두 자기를 지키지 않아서이다. 자기를 지키지 않아 뇌물을 받았다가 은팔찌 끼고 큰 집을 간다. 자기를 지키지 않았다가 한 순간의 탈선으로 가정이 깨지고 행복이 산산조각이 난다. 자기를 지키지 않았다가 사업을 말아 먹는다. 자기를 지키지 않았다가 남의 것 탐내다가 악을 저지른다. 자기를 지키지 않았다가 절벽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듯 목사 장로 권사 집사들이 타락의 시궁창으로 곤두박질한다. 그래서 잠 4; 23에서는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켜라(Watch over your heart with all diligence)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고 했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He who rules his spirit, than he who captures a city; 잠 16: 32하)고 했으며 성도의 진정한 경건은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약 1: 27)고 했다. 그 어떤 것보다 자기를 지키는 자가 위대한 사람이다. 자기를 신앙을 지킨 욥처럼, 자기의 순전을 끝까지 지켰던 야숩처럼 자기를 지키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성경이 자기를 지키는 성도들에게 지시하고 명령한 ‘지켜야 할 몇 가지’를 알아본다. ① 자기 마음이다(잠 4; 23) ② 자기의 순전이다(욥 2; 3) ③ 자기의 입과 혀이다(잠 13: 3, 21: 23, 시 141: 3) 언어를 절제하라는 말이다. ④ 자기가 맡은 책임과 성전의 직분이다(민 18: 7, 수 22: 3, 겔 44: 15, 48: 11) ⑤ 자기의 발이다(삼상 2; 3) ⑥ 자기의 지위이다(유 1: 6) ⑦ 자기의 옷(행위)이다(계 16: 15) ⑧ 자기 믿음이다(딤후 4: 7) ⑨ 하나님의 계명이다(고전 7: 19) ⑩ 성전을 지킬 것이다(대상 9: 26, 33) ⑪ 야훼의 절기, 하나님이 은혜 베푸신 날을 지킬 것이다(출 12: 17, 민 9: 2, 신 16: 10) ⑫ 주님의 날을 거룩하게 지킬 것이다(출 31: 13-14, 레 19: 3, 30, 23: 32, 신 5: 15, 사 56: 2) 이런 것들을 지키므로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4. 글을 쓰는 사람이 되라

사람에게 역사를 기록하는, 글 쓰는 일은 중요하다. 독일과 이태리가 세계 앞에 2차 대전의 잘못을 고백하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데 반해, 일본은 줄기차게 실재했던 역사를 무시하고 없애려 하므로 지구촌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위안부 사죄와 보상은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위안부역사 자체를 인정치 않아 비난을 받고 있고, 끊임없는 독도망언으로 한일관계를 가깝고도 먼 나라를 만들고 있으며, 아베와 국회의원들의 야스쿠니 참배는 또 하나의 세계의 비웃음거리가 됐다. 이런 불치병 같은 추태와 치사한 일의 반복은 역사를 망각한 무지에서 온다.

사람이 글을 쓰거나 자기의 역사를 기록하면 거울을 보고 몸맵시, 옷맵시를 고치듯 자기의 글과 기록을 통해 자기를 개선하고,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다. 욥은 10,102단어를 사용해, 총 42장에 1,070개 구절로 된 욥기를 기록했지만 욥기가 주는 교훈은 성경 어느 책에도 뒤떨어지지 않으며, 그 값은 고귀한 금은보화의 가치보다 더 높고 더 넓으며 더 깊고 더 비싸다.

그래서 욥기를 읽으면 신령한 영적세계가 눈이 떠지고, 심오한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되며, 사람이 당하는 모든 고난의 문제들이 해결되고, 어떻게 사는 것이 겸손한 삶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사는 길이며 야숩처럼, 욥처럼 인생을 크게 사는 길인가를 배우게 된다. 고난과 절망의 늪에서 아무도 도와주는 손길이 없다고 괴로워  한다면 욥기를 읽어보라.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리며 마음이 넓어질 것이다.

자신을 제거하려는 원로원의 소환장을 받아들고 고뇌하던 그가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외친다. 그리고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군해 숙적 폼페이우스와 그 일파를 제거한 후,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고 외친다. 그리고 친아들처럼 여겨 후계자로 생각했었던 심복 브루투스와 14명의 원로원 의원들에게 칼에 찔려 죽으며, ‘브루투스, 너마저도!’를 외치며 56세 젊은 나이로 죽음을 맞는다. 독일에서는 ‘카이저’로, 러시아에선 ‘차르’로, 이태리에서는 카이사르로 불리는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 BC. 100-BC. 44)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훗날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칭호 대명사가 된 카이사르는 몰라도 ‘주사위는 던져졌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므루투스, 너 마저도!’는 그의 말들은 기억한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15권이나 되는 방대한 저작이다. 그중 4권과 5권은 시저라 불리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관한 것일 정도로 로마역사에서 그는 걸출하고 중요한 인물이었다. 카이사르는 로마제국의 기틀을 완성한 정치가며 탁월한 장군으로 웅변가였고 법률가였으며 건축가, 수학자로도 명성을 떨쳤으며, 지성과 끈기, 설득력과 자제력을 고루 갖춘 불세출의 리더였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글을 쓰는 지도자’였다. 더 놀라운 것은 카이사르의 이런 천재성이 타고난 것이 아니라 각고의 노력 끝에 나이 40이 넘어 뒤늦게 발휘됐다는 것이다.

그는 8년에 걸친 갈리아 정복과정을 ‘갈리아 전쟁기’라는 책으로 남겼는데 이 책은 2000여 년 전의 유럽을 알려주는 소중한 자료일 뿐 아니라 지금도 라틴어 공부의 고전으로 활용될 만큼 뛰어난 문장을 자랑한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그의 글이 고상하면서도 질박하고 명료하면서도 힘이 넘친다고 평한다. 전쟁을 치루면서 글을 썼다는 것이 그의 위대함을 증명해 주는데 오늘도 큰 사람이 되려는 사람은 글 쓰는 일과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잘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세계적 리더의 산실인 하버드대학의 리처드 라이트 교수는 ‘하버드 수재 1,600명의 공부법’ 이라는 책에서 “하버드 학생들이 4년 동안 가장 신경 쓰는 분야는 글쓰기다. 자기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은 학교생활 뿐 아니라 사회생활에서도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이다”라고 강조했다.

집이나 자동차나 교회에서 내 옆에는 항상 펜과 종이가 준비돼 있다. 기도 중에나 묵상 중에나 대화중에 떠오르는 영감을 적기 위해서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이나 내 생각에 깨달음으로 오는 영감은 베데스다 연못처럼 물이 동할 때, 영감이 올 때 적어 놓아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이미 꼬리를 감추고 떠나간 영감을 다시 잡아오는 일은 이미 떠난 버스처럼 찾아오기가 쉽지 않다(나의 밧모섬 묵시(계시록강해집)와 수천 개의 설교들은 모두 이렇게 해서 태어난 작품들이다).

욥이 혼자 썼든, 모세와 같이 썼든, 42장의 욥기는 하루아침에 모두 기록한 책이 아니다. 욥은 앉아있기도 힘들고, 숨 쉬기도 힘든 처절한 고통과 고난 중에서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나무껍질이나 짐승가죽이나 돌에 조금씩 메모를 했다가 나중에 그것을 모아서 욥기를 기록했을 것이다. 그래서 한절 한절이 소중하고 은혜가 되는 말씀이다.

잇사갈의 셋째 아들 야숩, 요셉의 조카 욥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노트에 기록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록하며, 하나님의 영감, 목사님을 통해 깨닫는 말씀, 성경을 일다가 깨닫는 말씀을 기록하라. 그것이 내게 힘이 되고 영의 양식이 되며 시험을 이기는 증거가 된다. 오늘 우리 중에서 미래를 도전하는 성도들이 나오고, 인성과 영성이 뛰어난 성도들이 나오며, 자기를 지키는 성도들과 글을 쓰는 성도들이 많이 나와 동방의 의인 야숩, 성경의 의인 욥과 같은 위인들이 많이 나올 수 있기를 축원한다.           

김엘리야 목사(워싱톤주기도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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