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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07월31일 08시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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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진보와 보수는 어떻게 나뉘게 됐나?


해방 전후 한국 교회사를 살펴보는 ‘교회와 민족’ 특별강좌 여섯 번째 강의가 열렸다. 이날 강의에서는 한국교회의 진보와 보수 측이 사회와 민족과 함께 변화해가는 과정과 그 신학적 배경을 살펴봤다.

진보, 한국 상황적 복음 해석에 대한 논쟁 ‘과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 김영주 목사) 화해통일위원회(위원장 조헌정 목사)가 주관하는 ‘교회와 민족’ 여섯 번째 강의가 31일 서울 연지동 기독교회관에서 진행됐다. 이날 강의는 ‘새로운 신학의 수용과 진보·보수’를 주제로 열렸다.

이만열 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이날, 1960년대 들어와 한국적 상황에서 기독교 복음을 해석하고자 했던 ‘토착화 신학’에 대해 언급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이 교수는 “비교적 자유로웠던 감리교에서 윤성범, 유동식 등 우리나라 토착화 신학의 물꼬를 튼 인물들이 나왔다”며 “이들 감리교 신학자들은 동양인의 복음 이해를 위해서 ‘도(道)’의 개념 도입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들이 제시한 '토착화 신학'은 신학자들 사이의 논쟁을 촉발시켰다.

유동식은 ‘복음의 토착화와 한국에서의 선교적 과제’라는 글을 발표해 ‘토착화를 초월적(보편적) 진리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일정한 역사적 상황 속에 적응되도록 자기를 변화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렸지만, 이에 한국신학대학의 전경연의 반론이 제기되면서 논쟁이 시작되었다. 여기에 윤성범이 ‘단군신화의 삼신사상이 동방교회의 삼위일체론의 영향’이라는 과감한 주장을 내세우며 여러 학자들의 강력한 반론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윤성범은 ‘성서만이 기독교 계시의 유일한 원천’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주장에 “예비 작업 일뿐”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이 교수는 “이후 한국 신학계에서 종교 다원주의를 정죄하는 분위기가 퍼지며 토착화 신학의 기반은 점점 협소해졌다”고 전했다.

그 후 1970년대에는 진보 측이 인권운동 및 민주화운동 전개 과정에서 한국의 상황을 더 정교한 이론 형태로 신학화한 ‘민중신학’이 등장했다. 이는 성서신학자 안병무가 강연을 통해 ‘민중’과 ‘민족’의 차이를 강조하고, 민중이 민족보다 더 근원적 존재라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지배계급이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민중을 수탈하던 당시, 안병무의 주장은 그간 예수 사건의 주변부에 있어 주목받지 못했던 민중을 예수사건의 조연이 아닌 주역으로 재조명한 주장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신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교수는 “이후 민중 신학은 1990년대 접어들면서 급격히 쇠퇴했지만 한국 기독교인이 한국적 상황 속에 주어진 고뇌를 창조적으로 신학화했다는 점에서 한국 기독교사 및 세계 기독교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전했다.

한계 부딪힌 보수주의, 신칼빈주의로 돌파구 마련

이날 강의에서 이만열 교수는 한국교회의 보수 신학이 새로운 사조를 받아들이며 전개된 과정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 교수는 “1950년대 한국 보수교회는 근본주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해 교회 자체의 성장 외에 자기 혁신을 하지 못하고 민주화에 동참하지 못한 채 급변하는 사회로부터 소외당하는 등의 한계에 당면했다”며 “이는 신앙과 사회를 함께 고민하던 교인들에게 적절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상황에 빠져있던 보수교회는 유럽 내에 등장한 신칼빈주의가 국내에 유입, 발전되면서 한국 보수교회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으로 발전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맞이했다.

신칼빈주의는 ‘전통적 기독교 교리에 충실하면서도 사회 참여를 모색한다’는 주장으로 종래의 보수주의보다 진보적인 이론이다. 이는 그동안 개인의 영혼 구원에 초점을 맞춰왔던 것을 개인의 삶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성경적 가치관이 실현되도록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기독인들의 적극적 역할 요구로의 전환이었다.

이에 대해 이만열 교수는 “이러한 가치를 기반으로 발족한 복음주의 사회참여 동맹이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복음전파와 사회참여를 모두 그리스도인의 의무’로 규정한 로잔언약을 채결하며 전통적 신학과 가치관을 유지하는 동시에 변화하는 세계 요구에 부응하려는 노력이 시작됐다”고 덧붙였다.

총 7회 강의로 열린 ‘교회와 민족’ 강좌는 8월 7일을 끝으로 마무리 된다. 오는 8월 14일에는 그동안 진행된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토론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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