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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04월19일 07시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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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고 담대하라!

어느 장례식에서 목사님이 교인의 관 앞에서 고인에 대한 추모 말씀을 했다. “고인은 생전에 항상 근면하고 성실하며 가정적이고 타의 모범이 되었으며 본 교회의 집사로써 신앙생활도 잘 했으며...” 목사님의 고인 칭찬은 한 참이나 계속됐다. 그러자 바람둥이 남편 때문에 평생 속을 썩었던 부인이 옆자리의 아들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얘야, 가서 관 속에 있는 분이 정말 네 아버지인지 확인하고 오너라”

고양이가 쥐를 쫓고 있었다. 쫓고 쫓기는 처절한 레이스를 벌이다가 고양이가 그만 쥐를 놓쳤다. 아슬아슬한 찰나에 쥐구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런데 쥐구멍 앞에 쪼그려 앉은 고양이가 갑자기 “멍멍, 멍멍멍!”하고 짖어댔다. ‘뭐야, 이거 바뀌었나?’ 쥐가 궁금하여 머리를 구멍 밖으로 내미는 순간, 번개처럼 빠른 고양이 발톱에 걸려들고 말았다. 의기양양해진 고양이가 쥐의 목을 한발로 누르고 하는 말, “요즘 먹고 살려면 2개 국어는 해야지”

‘관속의 아버지’는 구원의 확신도 없었던 사람과 이중삼중으로 문란하고 복잡한 생활을 했던 사람의 장례식에서 “어느 집사(장로, 목사) 천국환송예배”란 거창한 이름으로 장례식을 집례하는 현대교회목사님들을 꼬집은 유머였고, ‘멍멍, 고양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현대인들의 민첩하고 능수능란한 처세술을 고발한 해학유머였다.

모세는 창 7: 6, 11-12와  9: 28-29에서 저 옛날 인류를 멸망시킨 지구촌파멸대홍수가 노아 600세 때에 사건이었고, 노아는 홍수 후 350년을 더 살다가 향년 950세에 죽었다고 기록했는데, 계속된 창 11: 10-26까지 모세의 기록을 추산해보면 노아 600세부터 노아의 11세손 아브라함,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출생까지가 290년이니 아브라함은 노아 890세부터 950세까지 대략 60년을 노아와 같은 시대에 함께 산 것이 된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아브라함의 아비 데라는 갈대아 땅 하란에서 우상제조업으로 각종 우상을 만들어 파는 것이 생업이었고 자신도 우상을 숭배하면서 살았으니 이것은 아무리 혈통적인 조상의 신앙이 좋았어도 자신이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과 신앙이 없으면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짐을 시사한다.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신앙은 유전적인 것보다 개인적이며 경험적인 것이다. 5대, 4대, 3대 조상의 뛰어난 신앙이 후손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도움은 돼도 최종적으로 믿음은 자기 자신이 경험하고 받아드려야 한다.

            “강하고 담대(膽大)하라!”(Be strong and courageous)

며칠 전, 할리우드의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멀쩡한 양쪽 가슴을 절제하는 수술을 하므로 세계인을 놀라게 했다. 세계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미녀배우가 갑자기 유방절제수술을 받은 것은 그녀의 외할머니가 암으로 죽었고 어머니도 유방암으로 10년 암투병 끝에 50대나이로 일찍 죽었는데 암에 대한 두려움으로 의사에게 유전자 검사를 받아보니 자기도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나 된다고 하므로 병에 걸려 6명의 아이들에게 암으로 고생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예방적 유방절제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의사진단결과 난소암 발병확률도 높기 때문에 얼마 후엔 예방차원에서 자궁절제수술도 받을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멀쩡한 유방을 절제하고 유방암 공포를 극복한 안젤리나 졸리의 유방절제수술은 현대여성들에게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유방암 공포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고, 그녀의 가슴은 지구촌 뭇 남성 관객들에게 섹스어필하는 에로틱한 가슴의 대명사였는데 이렇게 의미가 있었던 ‘관상용 가슴’을 자신과 아이들을 위해 잘라버린 것으로 통쾌함을 선사했다고 해서 일부에서는 ‘졸리의 담대한 메시지’라고 칭찬하고 옹호하기도 하지만 암전문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암 유전자를 갖고 있어도 유방암은 20-40%, 난소암은 60-80%는 암에 걸리지 않고, 좋은 식습관과 적절한 운동, 스트레스 해소 등 몸을 잘 관리하면 암에 걸리지 않을 수도 있는데 졸리의 선제적 유방절제수술은 두려움과 공포에 져버린 너무 성급한 처사였다’고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졸리의 선택을 놓고 ‘옳다 그르다, 맞다 틀렸다’ 재단(裁斷)하긴 어렵다. 그러나 그녀가 만약 현대의사들의 뇌종양, 방광암, 위암, 유방암 등 오진 사례가 많다는 사실과 불필요한 수술과 잘못된 항암치료로 면역체계가 악화돼 각종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공부했다면 졸리의 선택이 ‘오버’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여러분의 할아버지 아버지가 골수암이나 대장암으로 일찍 돌아가셨고, 할머니 어머니가 자궁암으로 일찍 돌아가셨다면 그리고 유전자 검사로 여러분 몸속에서 위험 유전자를 발견했다면 여러분도 예방차원에서 멀쩡한 신체부위를 잘라내고 항암치료를 받겠는가? 과연 그것이 질병을 선제적으로 예방하고 이기는 용기며 지혜인가, 아니면 마귀와 질병과 저주 앞에 무릎을 꾼 비겁과 두려움인가? 하나님과 예수님 안에서 강하고 담대함으로 삶에서 모든 두려움과 공포를 이기는 승리자가 되길 축원한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300번 이상을 “두려워 말라,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어떤 상황과 어떤 환경을 만나고 어떤 사람을 만나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말아야 한다. 시편 저자 다윗은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Be strong, and let your heart take courage. All you who hope in the Lord; 시 31; 24)고 선포했고,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For God has not given us the spirit of fear)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딤후 1: 7)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Therefore, cast not away(do not throw away) your confidence, which has a great reward; 히 10: 35)고 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을 들어가 그 땅을 정복해야할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약속한 것과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다 너희에게 주었노라.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으리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으리라. 그런데 이러한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본문 5절부터 9절까지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세 번이나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하셨다. 그 명령을 들은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면서(수 1; 8)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므로 지식과 지혜와 연륜과 전쟁경험과 통솔능력, 지도자의 자질 등 모든 면에서 모세와 비교가 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보다 더 큰 일인 가나안 정복의 대업을 이루게 된다. 그렇다.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했던 사람을 사용하셨다. 그리고 오늘도 하나님은 말씀 안에서 마음이 강하고 담대한 사람을 선택해 사용하신다. 마음이 강하고 담대한 사람을 정치 경제 과학 인문 군사 문화 종교의 큰 일군으로 사용하신다. 강하고 담대하므로 하나님이 픽업하셔서 복을 주시고 사용하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강하고 담대하라!(Be strong and courageous!)에서 ‘강(强)하라, 강하게 하라’(Be strong)란 히브리어, 하자크는 “손에 힘이 있는 상태가 되라, 어떤 상황에서도 손이 풀어지지 말라”는 의미이고, ‘담대하라, 담대히 하라’(Be courageous)란 아마츠는 “무릎에 힘이 있는 상태”란 뜻으로 “용기를 가지라”, “기도에 힘을 잃지 말라”는 의미이다. 그렇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마음이 강해지고 담대해지면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되고 불기둥 같은 용기가 솟아나 하늘을 뚫을 듯한 자신감이 충만해 진다. 그리고 무릎에 힘이 들어가고 기도의 힘까지 강해진다. 그러나 시험에 들어 약해지게 되면 손이 풀려 의기소침해지고 마음이 풀려 낙심에 빠지고 무릎까지 풀어져 기도할 마음을 잃게 된다.

그래서 솔로몬은 “게으른즉 서까래가 퇴락하고 손이 풀어지면 집이 샌다”(전 10: 18)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의 신앙성공, 사업성공, 자녀성공, 인생성공, 은혜성공은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게 하는 것에서 이뤄진다. 낙심하여 손이 풀어지거나 무릎의 힘이 빠져 있는 상태에서는 어떤 좋은 일도 어떤  성공도, 어떤 기적이나 하나님의 축복도 없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 어떤 때, 어떤 상황에서 ‘강하고 담대해야 하는가?’

   1. 하나님의 응답이 늦어질 때(롬 4: 18-22)

하나님이 사람을 축복하는 과정은 먼저 하나님이 사람을 부르시고 그에게 축복을 약속하신다. 그다음 그에게 축복을 담아 주기위해 그릇 준비의 시련기간을 주신다. 마지막으로 그가 시련과 연단을 견뎌내고 합격할 때 축복을 주신다. 이 Blessing Routine(축복과정, 축복절차)는 예외가 없다. 믿음의 선구자(先驅者) 아벨 에녹 노아가 그랬고, 믿음의 중흥시조(中興始祖)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 그랬으며, 믿음의 영웅(英雄) 아므람 모세 여호수아에서 다윗 엘리야 엘리사 예레미야 다니엘까지 모두 그 과정을 통과했다. 그리고 그 축복의 과정과 절차, Blessing Routine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바울은 아브라함이 축복을 받기 전 마지막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아브라함이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 4: 19-21)

아브라함이 자기 나이 100세, 아내 사라가 90세로 자신은 이미 고개 숙인 남자가 된지 수년 차요, 아내 사라도 단경한지 수년차가 됐으므로 두 사람 모두 싹을 낼 수 없는 고목처럼 자녀생산이 물 건너간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추호도 의심치 않고 오히려 그 약속을 강하고 담대히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하므로 그것을 그들의 의로 인정받았다는 말씀이다. 바울은 히 11: 11에서 계속해서 “믿음으로 두 사람이 잉태하는 힘을 얻었다”고 했는데. ‘잉태(孕胎)하는 힘을 얻었다’(Received ability to conceive)에서 ‘잉태하는 힘’(에이스 카타볼렌 스페르마토스)이란 “남성의 정액을 생산하는 기능과 여성의 난자를 생산하는 기능”을 가리킨다. 그렇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늙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녀생산의 가능성과 가망성이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늙어버렸던 두 사람이 왕성한 젊음을 되찾았다, 강하고 담대한 믿음이 두 사람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생산이 가능한 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기도응답을 받게 했다.

오늘 개인적인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후 10년 20년 30년 40년 동안을 기다린 성도 여러분, 강하고 담대하라. 인생이 아니신 하나님, 인자가 아니신 하나님은 사람처럼 조령모개하거나 변덕을 부리거나 식언치 않으시고 반드시 약속을 지키신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말고 강하고 담대하게 끝까지 그 약속들을 붙잡고 영광을 돌리므로 응답과 축복을 받는 역사들이 일어나길 축원한다.

   2. 죄를 회개하고 우상을 버릴 때(에스라 10: 1-44)

아사 왕은 선지자 오뎃의 예언을 듣고 강하고 담대하게 나라에서 우상들과 가증한 물건을 없애고 여호와의 제단을 쌓는 일에 앞장섰고(대하 15: 8) 학사요 제사장이며 총독이었던 에스라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 중에 제사장과 레위인과 유력한 지도자들 114명 이 이방여인들과 결혼하여 자식까지 낳은 것을 알고 백성들의 죄 용서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해 반대자들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하고 담대하게 죄를 청산하도록 이방여인들을 쫓아 보냈다(에스라 10: 1-44, 15) 우리도 죄를 버리고 회개할 때, 술이나 담배를 끊거나 마약이나 노름을 끊을 때, 나쁜 습관들을 끊고 버릴 때, 강하고 담대하게 실행해야 한다(금연을 성공한 사람들의 경험담에 의하면 하루 세 갑에서 두 갑, 한 갑, 열 개비, 다섯 개비...담배를 줄이는 점진적 금연은 70-80% 실패하고, 강하고 담대하게 한 순간에 절연하면 100% 성공한다고 한다) 

   3. 전쟁의 위험 때에

유다의 성군 여호사밧 왕은 모압과 암몬과 마온이 연합군을 편성해 유다를 침공해  위기에 몰렸을 때,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자신도 하나님께 금식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다가 레위 사람 야하시엘을 통해 전쟁승리 예언을 듣자마자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버리고 강하고 담대하게 특별군대 대신 찬양대를 선봉대로 세워 전쟁을 치름으로 불가능한 전쟁을 이겼고(대하 20; 14-23) 앗수르의 정예군 18만 5천의 공격으로 예루살렘이 포위되고 유다가 풍전등화의 위기를 당했을 때, 그리고 적장 산헤립의 위협과 공갈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주눅 들지 않고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선지자 이사야와 함께 기도했던 히스기야도 전쟁승리의 축복을 받았다(대하 32: 1-8) 그렇다. 나라가 전쟁의 위기 때에, 개인이 각종질병과의 전쟁 때에, 사업이 불황과의 전쟁 때에, 그리고 우리가 고난과의 전쟁 때에 강하고 담대할 것이다. 강하고 담대한 사람만이 축복을 쟁취할 수 있다. 두려워하는 자, 무서워하는 자, 불안에 잡혀있는 자는 결코 축복도 건강도 행복도 찾아오지 않는다.

암면역전문의사인 황성주박사는 ‘암과의 전쟁에서 지는 7가지 패인’을 이렇게 말했다. ‘암은 사람을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들어 암세포가 공격하기 전에 스스로 자신의 면역체계를 무너뜨려서 죽게 되는데, 많은 암환자가 싸우기도 전에 이미 암에게 몸을 내줘 암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있다’ ‘암과의 전쟁에서 패배하는 7가지 원인’
① 자포자기와 절망감이다 ② 무지-암에 대해 몰라서 죽는다. 암에 걸렸다고 무조건 죽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암에 걸리면 무조건 죽는다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 암에 걸렸다가 살아남을 확률은 50%가 넘는다. ③ 면역력저하다. 암환자는 암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감염으로 더 많이 죽는다. 면역력이 떨어져 폐렴과 패혈증에 걸리기 쉽기 때문이다. 암이 아니라 다른 세균에 의해 죽는 것이다 ④ 상실감 ⑤ 영양실조다. 암에 걸렸더라도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생각으로 기뻐하며 음식을 잘 먹으면 건강을 얻을 수 있다 ⑥ 스트레스와 압박감이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마음속에 있는 상한 감정, 응어리 때문에 암이 발생한다. ⑦ 무의미다. 이러한 패배원인을 잘 살펴보면, 반대로 이 원인들이 암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되는데, 무엇보다도 강하고 담대하게 자포자기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암을 이길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면 된다.           

어떤 사람이 대장암 수술을 받았는데 가족과 의료진의 철통보안으로 환자는 자신의 상태가 초기 대장암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고 한다. 그래서 환자는 수술의 부담감을 느끼기보다 초기수술이라서 쉽게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수술 후 환자는 급속도로 회복이 돼 정상적으로 출근도 하면서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는 수준으로 건강을 회복했다고 한다. 그렇게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환자는 우연히 자신이 말기 암환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놀랍게도 환자는 그날로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했고 입원한지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가짐은 중요하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잠 18: 14)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여 말씀 안에서 강하고 담대함으로 건강하게, 행복하게, 축복되게 살 수 있기를 축원한다.

   4. 성전을 건축할 때에

하나님께서 “너는 군인이라 전쟁을 통해 피를 많이 흘렸으므로 나의 성전을 지을 수 없지만 네 아들 솔로몬은 평강의 사람이므로 그가 성전을 지을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다윗은 솔로몬에게 “너는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하여 성전을 건축하라. 네가 성전건축을 마치기까지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하실 것이며 너를 떠나지 않으실 것이라”고 격려했다(대상 22: 13-14, 28: 1-10) 다윗의 격려를 받은 솔로몬은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7년 6개월에 걸친 전무후무한 성전건축의 대역사를 해냈다. 그리고 학사요 제사장이며 총독이었던 에스라도 70년 만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스룹바벨과 함께 성전건축을 시작했다가 페르시아 관원들과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공작으로 성전건축을 중단했었지만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의 설교를 듣고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하여 건축을 재개하여 20년 만에 성전건축을 끝낸다.

그렇다. 성전건축은 강하고 담대할 때만이 가능하다. 나의 45년의 짧은 목회 중에 다섯 번의 성전건축은 솔직히 충분한 돈과 성도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거의 맨손이었지만 나와 성도들의 두려움과 불안을 뛰어넘은 강하고 담대한 믿음에서 그런 축복을 받았다. 나뿐아니라 다른 교회와 주의 종들과 성도들의 성전건축도 70-80%이상이 돈이나 사람보다 강하고 담대한 믿음에서 성전건축이 이뤄졌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성전건축과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성전과 영적인 성전건축이 강하고 담대함으로 이뤄질 수 있기를 축원한다.

   5. 큰 시련과 큰 시험, 환난을 당할 때

하루아침에 칠천 마리 양과 삼천 마리의 약대와 천 마리의 소, 오백 마리의 암나귀가 약탈당하고 불에 타 죽으며, 그리고 그 짐승들을 키우고 돌보던 수백 명의 종들이 몰살당하고, 일곱 아들과 세 딸마저 집이 무너져 압사당하는 비극에 설상가상으로 온 몸이 동양성 문둥병으로 썩어 문드러지는 병을 얻게 되자 수십 년을 살을 맛 대고 행복을 나누며 함께 살았던 아내마저 욥을 저주하며 집을 떠나 버린 비극의 사람 욥, 그래도 신앙 좋은 친구들만은 자기편이 돼 자기를 위로해 주리라 믿었지만 문병왔던 그들마저도 욥을 죄인으로 정죄하는 비극을 당했던 욥, 그래서 하늘 아래 그 누구도 욥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언제 그 비극이 끝날지 알 수 없는 칠흑 같은 절망과 비극의 터널 속에 갇혀있던 욥이었지만 욥은 강하고 담대했다. 이렇게 알아주는 사람 없이 죽는다하더라도 “죽기 전엔 나의 순전함을 버리지 않겠다” 고백했다(욥 27: 5) 욥은 큰 시험, 큰 시련을 당했을 때 강하고 담대했다.

다윗도 환난의 날에 강하고 담대했고(시 27: 5-14) 추종자들이 반기를 들고 다윗을 죽이려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만났을 때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강하고 담대했으며(삼상 30: 6) 모르드개와 에스더도 민족이 전멸당할 백척간두의 위기를 당했을 때, 강하고 담대했다(에스더 3: 4, 4: 16) 이렇게 시련을 만나고 환난을 당하며 위기를 당할 때 강하고 담대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절망이 소망으로, 파멸의 위기가 축복의 기회로, 저주의 환경이 축복의 환경으로 반전되는 축복을 체험했다. 큰 시험과 시련을 당할 때, 두려워 떨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므로 복을 받는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1943년 1-3월까지 3개월 동안에 수용소에서 살해된 유대인은 무려 10만 5000명이나 되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해된 유대인은 대략 200만에서 400만 명이 된다. 600만 유대인 학살 중에서 반 이상이 아우슈비츠에서 학살당했다. 특히 1940년에서 1945년까지 5년 동안에 아우슈비츠에서 살해된 사람은 110만 명이나 되는데 놀랍게도 그 동안에 용기를 가지고 철통같은 감시망을 뚫고 목숨을 걸고 수용소 탈출을 시도했던 사람이 무려 802명이나 되고 그 중에 144명이 탈출에 성공했고 현재까지 행방을 알 수 없는 사람은 331명에 이른다고 한다.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탈출한 포로는 폴란드 정치범이었던 카지미에쉬 피초프스키(Kazimierz Piechowiski)와 세 명의 친구들이다. 소년단 출신에 독일어를 잘 구사하던 당시 23살의 피초프스키는 힘이 좋고 체격도 건장했으며 세 명의 친구들도 독일어 구사가 가능해 수용소에서 모두 중요한 일들을 하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우크라이나 출신의 에우게니우스 벤데라였는데 벤데라는 자동차기술자로 독일군 차량을 정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가 어느 날 우연하게 독일군 파일을 통해 자신이 곧 사형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죽음을 함께 맹세한 4명의 친구들은 아우슈비츠강제수용소 탈출을 계획한다.

독일군 복장과 승용차로 정문을 통한 탈출을 계획한 그들은 거사의 날을 정하고 행동에 옮긴다. 그들이 탈출에 사용하려 점찍어 놓은 차는 수용소 총책임자 루돌프 회스(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새로 만든 교수대에서 1947년 4월 16일 교수형에 취해진다)의 승용차 ‘Steyr 220'였다. Steyr 220은 당시 아우슈비츠수용소에 있는 차 중에 가장 빠른 승용차였다. 만일을 대비해 독일군의 추격을 따돌리려면 최고 속도의 승용차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1942년 6월 20일 토요일, 기다리던 거사의 날이 밝았다. 2층 창고에 몰래 들어간 4명은 독일친위대 장교복 등 군복으로 갈아입고 무장한다. 차량정비공 벤데라는 복사된 키를 가지고 차고에서 승용차를 가져온다. 그들이 정문을 통과할 때는 조마조마했지만 회스의 Steyr 220 승용차를 본 보초병이 손을 쳐들며 먼저 ‘하이 히틀러’를 외치자 네 명은 내색하지 못하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정문을 통과했다.

승용차는 수용소 정문을 지나 달리고 있지만 아직 저 앞에 마지막 바리케이드가 남아있다. 이곳에선 친위대 보초병이 패스를 보여 달라고 할 수 있기에 4명은 긴장한다. 80m 앞까지 왔지만 바리케이드 차단봉은 그대로 내려져 있다. 60m에도 차단봉은 올라갈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40m, 25m에도 그대로였다.

이때 뒷좌석에 앉아있던 죠세프 램파트(Jozef Lempart)가 친위대 장교복 차림의 피초프스키의 등을 치며 “뭐라고 말 좀 해봐!”라고 소리쳤다. 그 말에 정신이 번쩍난 피초프스키는 그때서야 차문을 열고 보초병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야, 이 새끼야, 빨리 차단봉을 올리지 못해! 너 죽고 싶어 환장했어!” 그러자 급히 차단봉은 즉시 열렸고 4명의 친구는 수용소를 완전히 탈출할 수 있었다. 이 탈출사건이 있은 지 한 달 후, 아우슈비츠에 수감된 포로들은 모두 죄수번호 문신을 팔뚝에 새겨야 했고 그들은 차례대로 공동 샤워실에서 ‘치클론B' 독가스에 죽어가야 했다.

60년 후, 네 사람의 수용소탈출기는 다큐멘터리영화로 제작됐으며 92세의 피초프스키는 70년이 지난 지금도 정정하게 살아서 수용소의 참상을 증거하고 있다. 그렇다. 위기와 시련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수백만의 사람들은 치클론B 독가스를 마시고 자기의 삶을 다 살지 못하고 죽음의 밥이 돼고 북망산의 불귀객이 돼 한줌의 흙으로 돌아갔지만 큰 시련, 큰 시험에 강하고 담대하게 도전했던 144명의 사람들은 오늘도 역사의 승리자로 남아 있다.

욥과 다윗, 모르드개와 에스더처럼 패배와 저주와 죽음과 절망이 아니라 당신의 역사를 승리와 축복으로 기록해 놓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6. 축복이 훼방을 당할 때(막 5: 36)

사경을 헤매는 딸의 질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을 모시고 가던 야이로는 도중에 열두 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길을 막는 바람에 어이없게 딸이 죽는다. 딸이 죽기 전에 예수님께 안수기도를 받으면 치료받을 줄 알았는데, 그래서 서둘렀는데 예수님이 여인 때문에 지체하시는 바람에 딸이 죽은 것이다. 당시 야이로는 그 여인이 얼마나 밉고 원망스러웠을까? ‘여 여인만 아니었으면 내 딸이 살았을 텐데...’ 그런데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여구앙정(如狗仰頂)의 심정으로 실망과 한숨에 빠져있던 야이로에게 예수님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두려워 말고 강하고 담대하게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시며 절망으로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야이로를 데리고 그의 집으로 가셨다. 그리고 죽은 야이로 딸을 다시 살려주셨다.

당신의 축복이 다른 사람에게 훼방 받을 때, 내 축복을 이웃이 가로채 갈 때, 내가 받을 축복과 은혜를 다른 사람이 가로채거나 훼방할 때, 원망하거나 분노하지 말고 미워하거나 낙심하지도 말라. 오직 강하고 담대하라. 우리의 모든 것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 최고의 좋은 선물로 갚아주실 것이다.   

   7. 새 일을 시작할 때, 큰 일이 맡겨질 때
     
그렇다. 당신이 새 일을 시작할 때, 강하고 담대할 것이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새 사업을 시작할 때, 강하고 담대할 것이다. 그리고 큰 일이 내게 맡겨질 때, 강하고 담대할 것이다. 하나님은 두려움과 불안 중에서 새 일을 맡는 여호수아에게, 큰일을 맡게 되는 여호수아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강하고 담대했던 여호수아의 30년 역사는 모세의 40년 역사에 못지않은 위대한 역사였다. 거인장수들이 살고 있던 그 넓고 위험한 가나안 땅을 모두 정복하고 그 땅을 12지파에게 나누어주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국가로 만드는 위대한 역사의 사람이 된 것이다. 강하고 담대한 사람이 받은 축복이다.

히틀러와 나치 체제에 단호하게 반대했던 독일의 귀족장군 쿠르트 폰 함머슈타인-에크보르트(1878-1843년)는 독일군장교를 네 그룹으로 파악한 사람으로 유명한데 이것은 군대뿐 아니라 모든 조직에 통용될 수 있는 분류이기 때문이다. ① 머리 좋고 부지런한 장교. 이런 사람은 군단이나 사단 등 상급부대의 참모로 적합하다. ②어리석고 게으른 사람이다. 군대(회사나 단체, 교회) 내에서 90%를 차지하는 이들에겐 기계적이고 틀에 박힌 일을 시키면 된다 ③ 머리 좋고 게으른 사람은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데 필수적인 지적 명징성(明徵性: 명백하게 증명하는 성격)과 침착함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최고위 지휘관 임무에 적합하다. ④ 어리석고 부지런한 사람은 매사를 재앙으로 몰고 가기 때문에 어떤 일도 맡겨선 안 된다.

직장이나 사회단체나 교회 안에도 강하고 담대한 사람 중에서 머리 좋고 부지런한 일군과 머리 좋고 게으른 일군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모세를 도와 이스라엘을 인도할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패장들을 세우게 하실 때, “각 지파에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유명한 사람”을 선택하라고 했다(신 1: 9-18)

믿음은 유전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노아와 90년 이상을 같은 시대에 살면서 11대 선조 노아를 만나 보았을 수도 있었고, 홍수심판 이야기를 들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는 개인적 경험이 있기까지 아브라함에겐 그 어떤 믿음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오늘 당신의 강하고 담대한 믿음은 결코 유전적으로 당신혈통 속에 DNA로 남지 않는다. 강하고 담대한 믿음은 ①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말씀들을 지켜 행할 때(수 1: 8) 말씀을 통해 얻어지며 ② 시 27: 14의 다윗이 한 고백처럼 스스로 강하고 담대해지려고 힘쓸 때 얻어진다(“강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너의 마음을 강하게 하시리라-강해지려고 힘쓰면 하나님의 도움으로 그렇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이 강하고 담대해지는 축복을 받게 되기를 축원한다.

안젤라 졸리의 예방적 수술대로라면 암으로 세상을 떠난 장인과 암으로 두 사람 모두 49세로 단명한 장모와 처형을 둔 나의 아내도 암으로 50전에 세상을 떠났거나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하거나 예방차원에서 지체의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 나는 지체불구의 환자와 살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졸리처럼 예방적 수술을 받는 것이 강하고 담대하며 용감한 일이라면 오늘 우리 중에 정상적인 몸을 가지고 있을 성도는 몇 사람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 아내는 건강하고 여러분도 건강하다. 그렇다. 질병을 이기는 당신의 마음(잠 18: 14)이 강하고 담대하면 질병의 유전자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갈 것이다. 실패와 파멸과 죽음의 그림자가 안개처럼 몰려왔다가도 등을 보이고 달아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강하고 담대함으로 인생을 승리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김엘리야 목사(워싱톤주기도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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