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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01월18일 07시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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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쓰레기는 버리면 된다”

결국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문제가 됐다. 지난 17일 기독교회관에서 열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실행위원회에서는, 이른바 ‘WCC 총회 공동선언문’ 문제를 놓고 기나긴 논란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한 위원이 말했다. “이 선언문은 ‘쓰레기’다!” 내용으로 보나, 그것을 만든 의도로 보나, 맞는 말이다.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버리면 된다. 혹시 냄새라도 날까 걱정된다면 주변을 깨끗이 치우면 된다. 그리고 일단 버린 쓰레기에는 미련을 갖지 않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NCCK 실행위는 쓰레기를 마음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이유는 ‘단 한 번도 논의된 바 없었기 때문’이다. 협의체라는 교회협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이유다. 논의조차 되지 않은 것을 두고 옳다 그르다, 혹은 보류나 페기 등의 입장을 표명한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우습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분명히 쓰레기는 쓰레기인데 버리지도, 그렇다고 집안에 남겨 두지도 못하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왜 이런 상황이 왔을까? 일차적으로는, 이유야 어찌됐든, ‘말도 안되는’ 내용을 담은 선언문에 서명을 한 NCCK 김영주 총무의 잘못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상황이 꼭 김 총무의 ‘결정적인’ 서명만으로 인해 빚어진 것일까?

김영주 총무 말고 이 선언문에 서명을 한 다른 세 사람은 ‘삼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한다. “WCC 부산 총회가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총회로 축제 속에 치러지게 됐습니다. 참으로 잘 된 일입니다” 그런데 17일 실행위는 ‘눈물바다’였다. 잘못을 사과하는 김 총무도, 발언하는 실행위원들도, 그리고 회의를 지켜보던 NCCK 실무자도 울었다. 기자 역시 마음속으로 많은 눈물을 흘렸다. ‘잘된 일’에 왜 이리들 울어야만 했을까?

이제 문제의 본질로 돌아가자. 아니, 그 전에 먼저 이번 일이 ‘참으로 잘 된 일’이라고 말하는 세 사람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 그들이 말하는 ‘참으로 잘 된 일’이라는 것이 WCC 부산 총회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하고 싶은 ‘다른 일’인가? 또, 그 ‘잘 됐다는 일’이 한국교회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그들 자신을 위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WCC 총회’의 본질을 먼저 알아봐야 한다. 근본적으로 WCC 총회란 WCC와 거기에 참여하고 있는 회원 교회, 그리고 회원 단체들을 위한 것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총회가 한기총에 가입하지 않은 교단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인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WCC와 관련이 없는 교회나 단체들은 WCC 총회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할 자격이 없다. 물론 WCC 노선이나 신학이 자신들이 판단할 때 ‘잘못됐다’고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을 두고 WCC 총회에 대해 ‘이런저런 것들을 버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오만이요 월권이다. WCC의 노선이나 신학이 싫다면 초청장을 받는다 해도 가지 않으면 그만이다.

예를 들어 보자. 한기총이 총회를 하면서 ‘보수와 진보의 화합 차원에서’ 비회원 교단인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총회장을 초청했다고 치자. 여기까지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기장 총회장이 총회가 열리기도 전에 “한기총이 보수의 이념을 버리고 민주화 인권, 통일운동 등에 참여한다는 뜻을 분명히 하면서 이것을 공동선언으로 남겨야 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면, 과연 한기총은 뭐라고 했을까? 보나마나 “당신이 뭔데 남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느냐? 싫으면 오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며 발끈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일이 WCC 부산 총회를 둘러싸고 일어난 것이다. 그것도 WCC를 비롯한 에큐메니즘에 반대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WCC 부산 총회의 준비를 총괄한다는 한국 준비위원회 상임위원장까지 적극 가담해서 일을 밀어부쳤다. 이쯤 되면 이것은 진보와 보수의 어우러짐을 가장한 ‘야합’이거나, 아니면 한국 준비위원회 상임위원장이 WCC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다른 이유 때문에 그 일을 맡아서 ‘엉뚱한 일’을 꾸미하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밖에는 말하기 힘들다.

문제는 이런 ‘의혹’이 어제오늘 갑자기 제기된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CC 총회를 주도해 나가야 했던 국내 WCC 회원교회와 NCCK를 비롯한 유관기관들은 이에 대해 아무런 문제도 제기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이번 선언문 사태는 국내 에큐메니칼 운동권의 그런 ‘엉거주춤한’ 태도를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온 비수와도 같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17일 실행위원회에서 기장의 배태진 총무가 제기한 한국준비위원회와 상임위원장에 대한 문제는 칼에 찔리고 나서 왜 찔렀느냐고 되물어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비수는 상처만 남기고 뽑혀져 버린 것이 아니라 이제 쓰레기가 돼 에큐메니칼운동권이 노닐어야 할 마당에 쌓여 버렸다. 그렇지만 그동안 엉거주춤한 태도로 일관해 왔던 에큐메니칼운동권은 그 쓰레기를 치우지도, 그렇다고 그대로 두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NCCK 실행위원회에서 쏟아진 눈물은 이런 비참한 상황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눈물만 흘리고 있을 것인가.

눈물을 멈추고 생각해 보자. 쓰레기로 인해 본질이 썩어가고 파괴되고 있는 마당에, ‘협의회적 구조’라는 외형을 유지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겉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썩어들어가고 무너지는 본질은 방치해도 된다는 것인가. 그런 발상이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외형을 빌미로 에큐메니즘의 본질을 갉아먹는 몇몇 인사들의 발상과 무엇이 다른가?

간혹 쓰레기가 조금은 고마울 때도 있다. ‘치워버려야 할 것’과 ‘남겨 둬야 할 것’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온 집안에 쓰레기는 하나도 없고 온통 ‘쓸만한 것들’만 있다면, 그 쓸만한 것들‘ 하나하나가 지닌 소중함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버리지만 않으면 될 것들로 보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이제 할 일은 단 한가지이다. ‘쓰레기’의 실체가 드러난 만큼, 치울 것을 치우고 간직할 것은 간직하는 일이 그것이다. 그 쓰레기가 한 장의 문서이든, 아니면 그동안 암암리에 마음속에 품고 있던 ‘비에큐메니칼한 욕심’이건, 아니면 또 다른 실체이건,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그것이 WCC 부산 총회가 한국교회와 한국 에큐메니칼운동에 뭔가를 줄 수 있게 만드는 길이다.

한국의 에큐메니칼 운동권이여! 지금의 사태가 그대들을 아프고 눈물흘리게 하는가? 기자 역시 몹시 아프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러나 눈물은 아픔의 표현인 동시에 비장함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자도 지금의 사태를 보며 더 비장한 마음을 품는다. 이 기자수첩은 그 비장함의 표현이다. 그대들도 이 비장함을 함께 품고, 버릴 것은 버리고 간직할 것은 간직하자.

민성식 기자 (ecu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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