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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10월14일 12시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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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자, 김진수 장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2012년 10월 11일(목) 저녁 뉴저지 리지우드 장로교회에서는 뉴저지 기독실업인회 주최로  단아한 초청 강연회(“뉴저지 CBMC 초청 강연”, 연사: 김진수 장로, 주제: 성공과 나눔)가 있었다.

1부는 식사 및 교제로 2부는 초청연사 강연을 중심으로 두어 시간 이상 진행되었다. 다소 늦은 밤의 귀가가 예상되었지만 어느 누구하나 선뜻 자리를 뜨려하지 않았다. 잔잔하게 그러나 온 몸으로 하나님을 증거한 김진수 장로의 아우라(aura) 때문일까? 사뭇 또 다른 분위기의 마가의 다락방을 연상케 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쥬 정신을 실천한 소탈한 사회사업가 김진수 장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자.
 
* 학력
- 스티븐슨 공과대학 기술경영학 석사
- 스티븐슨 공과대학 컴퓨터 공학 석사
- 인하대학 전기공학 석사

 * 경력
- 프린스턴 신학대 이사(현)
- Siloam Biosciences, Inc 사장(현)
- Gitx Mushroom, Inc. 설립자(캐나다 원주민 자립을 위한 기업)
- Grace Charity Foundation, Inc. eovy(현)
- Image Solutions, Inc 창립자.
- 뉴저지 새빛 교회 장로(현)

* 수상 및 특이 사항
- Earnst & Young 기업인 상 수상(2008년)
- Outstanding 50 Asian Americans in Business 상 수상(2008년)
- 재미 한인 과학기술자 협회로부터 올해의 기업인 상 수상(2008년)
- 최초로 종이 문서 대신 PDF 파일로 구성된 전자문서를 이용한 신약 신청을 FDA에 함. 그 신약신청은 1998년 Smithsonian Institution으로부터 Innovation Collection에 선택됨
 
<온 몸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자, 김진수 장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JOB 23:10)
 
 
1. 열등감을 자신감으로 바꿔주신 나의 아버지, 하나님- 멘토의 중요성
 
김 장로는 강원도 삼척, 두메산골에서 빈농의 3남 1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큰 형은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부담감을 벗어나지 못한 탓(슬하에 6녀 1남을 둠)이었는지 일찌기 알콜 중독자가 되어 40대 중반에 죽었고, 둘째 형은 20대 한창 나이에 군복무 중 자살을 하였다.

누나는 여자라는 이유로 초등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당시 성행하던 야학을 통해 겨우 한글을 익힌 정도였다. 이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동네 이장을 지내셨던 그의 아버지는 막내만은 어떡하든지 중학교까지는 보내고 싶어서 그를 읍 면소재지에 살고 있는 삼촌집으로 전학을 보냈다.

당시 일을 김 장로는 그의 책 <인생은 불확실하나 하나님은 확실합니다>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아버지는 내가 6학년 때, 작은삼촌이 사시는 근덕이라는 면소재지에 있는 초등학교로 나를 전학시키셨다. 나는 1년동안 삼촌댁에서 지내며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정겨운 집과 호롱불로 밤을 밝히던 방, 사과나무 한그루와 마구간이 있던 마당을 뒤로 하고 새로운 환경이 펼쳐졌다.

초등학교에 있던 벚나무에서 버찌를 따먹던 일, 뒷동산의 소나무 숲에서 송이를 따던 일, 논두렁에서 개구리와 메뚜기를 잡던 일, 친구들과 함께 소꿉장난하고 자치기를 하던 일 등은 고향집에서의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고향집까지의 거리가 멀어 자주갈 수는 없었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토요일에 수업을 마치고 출발해서 40리 되는 거리를 4시간 이상 산길을 걸어 집에 가곤 했다.

당시에는 중학교에 진학하려면 입학시험을 치러야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친구들 대부분은 가까운 근덕 중학교로 지원했다. 반에서 공부를 아주 잘하고 가정형편이 넉넉한 학생들만 조금 큰 도시에 있는 학교로 진학하는 분위기였다.
 
“아버지! 우리집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도 않고 저도 썩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니 근덕 중학교에 지원할까 합니다.” 나의 말에 아버지는 버럭 화를 내셨다. “사내대장부가 시도해보지도 않고 못한다고 해서 되겠냐?  삼척중학교로 지원해라.”

나는 자신이 없었지만 아버지 말씀대로 삼척중학교에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떨어질지 모른다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중학교 입학성적이 상위 20% 안에 들어서 나는 여섯반 중 두번째 특수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
 
척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자식농사에 헌신하는 부모님 덕분에 중학교까지는 무난히 졸업한 김진수, 그러나 일반 고등학교는 꿈도 꿀 수 없어 직업을 가질 수 있는 5년제 삼척공업고등전문학교 전기과로 입학을 하였다.

이곳에서 열심히 하면 당시 선망의 직업인 ‘한국전력’에는 무난히 입사해야겠다는 막연한 꿈을 갖고 학교 생활을 하던 중 뜻하지 않게 인생 최대의 전환점을 안겨 준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 크리스찬이 되기에 이른다.  
 
삼척공전 2학년때, 나는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신앙생활을 시작함으로써 기독교인으로 거듭난 것이다. 기독교에 대해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삼척공전에 입학한 첫 해였다. 각 동아리마다 소개를 하는데, 그 중 하나가 기독교학생회였다.

매일아침 수업 시작 전에, 기독교학생회 소속학생들은 교실을 방문해서 동아리모임에 참석하기를 권하곤 했다. 그런데 당시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나는 그들이 올 시간에 맞춰 일부러 학교옥상으로 피해있곤 했다.

그러다가 다음해 여름, 중학교친구가 다니는 성당에 들르게 되었고, 그 때를 계기로 내 안에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친구의 성당에 다니기에는 그 위치가 집에서 너무 멀었다. 그래서 같은 반 친구를 따라 집에서 가까운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그 친구는 반에서 모범적이고 성실하여 나는 그 친구가 믿는 하나님이 솔직히 궁금했다.

“나도 너와 함께 교회에 가고 싶어.”

내성적이던 내가 먼저 그 친구에게 교회에 가겠다고 말했던 것을 보면, 하나님이 먼저 부족한 나를 불러주신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삼척제일감리교회에서 첫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좋은신앙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주일학교 교사를 맡아 초등학생들에게 성경의 진리를 가르치기도 했다. 당시에 나는 가정형편상 대학진학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내 안에는 꿈과 희망이 솟아나고 있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면 그분은 나를 도와주실거야. 그러면 나도 뭐든지 할 수 있어. 대학도 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대학편입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공전학교 4학년때였다. 대학편입의 뜻을 아버지께 말씀드렸을 때, 아버지께서는 단호하셨다.

“안된다. 우리집 형편을 너도 잘 알지 않느냐? 들어간다 해도 비싼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할거냐?”

“아버지! 첫 번 입학금만 도와주세요. 이후부터는 스스로 학비를 벌어서 대학을 졸업할게요. 번데기장사라도 할 자신있어요.”

초등학교 전학, 중학교 입학, 고등학교 진학 등 학업의 진로에서 늘 아버지의 뜻을 따랐던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와 진로 문제로 갈등하게 되었다. 그만큼 내게는 편입의 꿈이 간절했다. 
 
체육 시간(초등6)에 교실에 혼자 남아있을 만치 소심하고 썩 공부를 잘 하지도 못했던(20%선에서 들락날락) 김진수는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되면서 어느덧 담대한 용기와 열정의 비저너리가 되어 열심히 공부(하루 10시간씩 영어 공부)한 결과 15:1이라는 경쟁을 뚫고 인하대 전기과 3년으로 당당히 편입하게 된다.

이 무렵 한국전력에도 합격(1차시험)해 놓은 터라 곧 그는 주경야독을 시작하며 대학공부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대학원 진학의 꿈을 꾸게 된다. 
 
대학에서 나는 김종원 교수님의 가르침에 감명을 받았다. 그 분은 내용을 매우 깊이 알고 계셨고 정확하고 열심히 가르치셨다. 또한 학생들에게 존경을 받는 교수님이셨다. 다른사람에게 아는 것을 설명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그분과 같은 실력있는 교수가 되고 싶었다.

1980년에 대학을 졸업한 후 나는 대학교수의 꿈을 안고 대학원에 진학하고자 공부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퇴근하면 독서실이라는 사설공부방에서 대학원 진학준비에 전력을 쏟으며 취침도 그곳에서 해결했다. 취침시에는 침낭을 이용했고 다리를 책상 밑으로 뻗어야만 겨우 잘 수 있는 비좁은 공간이었는데, 그곳에서 5~10명 정도가 함께 공부하며 지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지내다 보니 제일 큰 문제는 몸이 아프면 편히 쉴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느날은 심한 감기몸살에 걸렸는데 땀을 푹 내고 쉴만한 곳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여관방 신세를 져야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생활의 불편함까지 감수하며 잠을 줄이면서 일과공부를 병행했던 노력도 오간데 없이 KAIST에 응시했다가 낙방의 고배를 마셨고, 3 년간 서울대 대학원에 응시해 봤지만 결과는 허사였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 때의 실패는 실패만은 아니었다. 이 실패를 통해 나는 전기공학에서 컴퓨터공학으로 전공을 바꾸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에는 미처 몰랐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더 나은 다른 미래를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김진수 장로의 어제’는 한마디로 하나님이라는 큰 멘토의 후광아래 삼척고등공민학교 시절 만났던 친구와 목사님(신앙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심어준 임홍재 목사님, 삼척공전 4년 때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목으로 전근 가셨지만 이후 서울에서 만났을 때 친자식처럼 돌봐주심)이 있었기에, 따뜻한 신심을 소유한 인생의 동반자, 아내가 있었기에, 대학시절 김 교수님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꿈을 꾸고 그 꿈을 구체화 시키기 위해 열정적으로 달려갈 수 있었던 것이다.

누구를 만나느냐? 그 만남을 통해 인생의 방향을 어떻게 잡고 매진하느냐? 우리는 이 문제를 다시 한번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2.    역설의 하나님을 ‘깨닫는’ 은사와 ‘집중’의 은혜-고난의 축복, 철저한 실천
 
그는 실패를 통해 늘 깨닫고 배우고 적용해 본다. 일단 시도하면 무서운 집중력으로 일로 매진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하면 실망하고 좌절하고 급기야는 극단적 생각까지 하게 되는데 비해서 그는 역으로, 실패와 맞닥뜨려 그 실패를 응시하고, 따져보고 도전한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사람인 그는 실패를 응시하는 남다른 통찰력, 즉 깨달음의 은사가 있는 것이다. 상당히 논리적인 판단력을 바탕으로 거울 들여다 보듯 실패를 들여다 보며 어제보다 나은 내일에의 꿈과 소망을 안고 무서운 집중력과 추진력을 갖고 모든 불안을 기도에 맡기며 앞만 보고 달려간 점이  ‘김진수 장로의 오늘’을 있게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을 함께 들여다 보자.
 
새로운 일에 첫 발을 내디딘 나는 컴퓨터에 깊이 매료되었다. 하루종일 어셈블러 (assembler, 어셈블리 언어로 쓰여진 프로그램에서 기계어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번역)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분석해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작업은 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인생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 일에 몰두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그러한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렇다고 지난 9년동안 내가 전기공학도의 길을 걸었던 것을 결코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지않는다. 그 속에는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 나를 더 집중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의 기술 연수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나에게는 한 단계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하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기술연수를 받는 동안 컴퓨터분야를 더 깊이 공부하고 싶다는 꿈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에 미국에서 정착하고 계시던 장모님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장모님은 나의 포부를 물으셨다.

“미국으로 유학와서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

2년의 고생 끝에 마침내 미국의 뉴저지주에 위치한 스티븐스 공과대학으로부터 입학허가를 따내는데 성공했다. 다른 대학들도 지망했지만 토플시험의 성적이 신통치 않아 입학이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미국유학을 가기 전에, 그동안 습득했던 모든기술과 노하우를 한국전력과 금성통신 실무자에게전수했다. (…)

서른살의 유학길 내 나이서른살 되던 해인 1986년 8월 15일, 나는 아내와 다섯살 된 아들 현구를 데리고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유학의 길에 올랐다. 뉴욕의 존 에프 캐네디 공항에 도착하면서 나는 우리 앞에 펼쳐진 새로운 삶에 대해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나의 유학생활은 시작부터 순탄하지 못했고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았다(…)

아내는 생선가게에서 열두시간씩 힘든 일을 해야 했고, 나는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와 씨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유치원을 다니던 어린아들은 엄마를 기다리다 지쳐 잠에 빠지기가 일쑤였다. 가족간의 대화시간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바쁘고 지친 삶은 가족 모두에게 시련의 시간이요, 인내로 감내해야 할 고통의 시간이었다.

나는 이미 미국에 있었고 영주권도 없는 상태여서 귀국할 수도 없어서 회사의 제안을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절반으로 줄어든 퇴직금을 받았다. 미지의 세계에 도전할 때 생길 수 있는 위기는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안정을 고려해 지나치게 소심하게 행동하면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영어실력이 없을 경우 상대방이 자기를 격하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른 언어를 배울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장벽을 허무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는 인격을 나타내는 수단이다. 인격이 있으면 수단의 기술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반드시 전달되게 되어있다. 중요한 것은 언어능력보다 열정이다.
 
어떤 문제는 너무 근접해서 보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지만 한 발치 떨어져 여유있는 시각으로 바라보면 뜻밖에도 쉽게 문제를 풀 실마리가 잡힌다. 이때 나는 기도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에게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그 문제를 하나님께 알려야 한다.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평안을 누리게 되며, 이리저리 꼬여있는 복잡한 문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해결되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동안 저축해 둔 약간의 돈이 바닥났고 더 이상 의지할 곳도 없었다. 나는 당시 재물을 위해 기도하는것은 성숙한 기독교인의 모습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할 뿐이고 하나님께 거저 공짜를 바라는 것은 옳지않아.’

내 노력으로 필요한 것을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주위에서 돈을 잘 벌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사람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았을거야’ 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가 나타나지 않은 상황 에 봉착하고서야 나는 비로소 내가 너무 편협한 사고에서 다른 사람들을 평가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문제가 아니구나.’(…)

이 사건으로 인해 나는 하나님께서 물질에 관한 기도도 들어주심을 깨닫게되었다. 물론 노력은 하지않고 기도만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일이 노력으로만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김 장로의 오늘은 몰두, 자신감, 도전, 꿈, 노하우 전수, 고통 감수, 편견 버리기, 열정(인격, 진정성) 등의 단어로 집약될 수 있다. 이들 중에 어떤 부분은 ‘성령의 소욕’이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한 것도 있을 수 있다. 일례로 ‘자신감’은 교만과 겸손의 경계선상에 있는 용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매 순간 하나님께 의지하며 묻고, 깨닫고, 수정해 나간 것이기에 성령의 열매로 자신감을 승화시킬 수 있었다고 본다. 이 점이 바로 우리 크리스찬들이 되집어 봐야 할 문제라고 여긴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그의 후배들을 향한 ‘노하우 전수’다.
 
즉 그는 자기가 애써 일궈놔서 남주기 아까운 것조차 서슴지 않고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깊고 넓음을 간직한 융숭한 그릇이었다는 점이다. 이런 인격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의 불우한 어린시절이라고 본다. 자신의 가난하고 피폐한 이웃을 내 안으로 끌어당겨 싸매줄 수 있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양심은 그의 죽은 형들을 통해 깨닫게 된 예수의 교훈이 아니겠는가?
 
3.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 이해하기- 성경 묵상, 포용력
 
교수의 꿈을 포기하고 서른 다섯의 나이에, 잘 다니던 회사를 심사숙고 끝에 그만두고, 과감히 1인 창업을 하게 된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미래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어떤 일의 시작은 때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던 그는 장모님께 2만 불을 빌려, 살고 있던 집 2층에서 사업을 벌이게 된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는 처음부터 곤경에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확실한 은혜의 축복만을 믿고 그는 모든 노력을 기울인 결과 전화위복의 반전을 꾀하여 많은 직원을 거느리는 거대 회사로 키우게 된다. 그러나 굽이굽이마다 복병은 도사리고 있었다. 그 때마다 그는 성경을 바로미터로 삼고 고난의 행간 읽기(기도)를 계속해 나간다. 이것이 김진수 장로의 내일을 열어가는 방식이라고 본다. 
 
직원 모두 동참하고 기꺼이 희생한 결과, 회사운영은 점차 회복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회사의 급성장에는 많은 위험이 뒤따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련 끝에 얻게 된 젖과 꿀이흐르는 땅 가나안을 떠올렸다. 내가 회사 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과정 속에서 나는 하나님이 나를 단련시키고 성숙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사업의 승패는 내 손에만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잘 감당한 후에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가짐이 바로 하나님께 서원하시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무도 고난을 반길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고난은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낮추어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모든 성공한 사람들은 고난을 잘 통과한 사람들이다. 고난은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이 있다. 살다보면 우리앞에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고난과 시련이 닥쳐오지만 거기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하나님의 깊은 뜻과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1986년 미국으로 이민온 후 7년 만에 홀로 회사를 창업해 450명이 넘는기업으로 성장해오면서 그동안 느꼈던 성공의 조건에 대해 내 의견을 나누고자 한다. 성공의 각 조건들은 서로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다. 한 가지를 잘하게 되면 다른 것도 연관되어 쉽게 이루어진다.
 
일반인이 생각하는 성공의 조건은 흔히 자본, 인맥, 지도력이나 사업에 대한 지식이다. 물론 이런 조건들이 성공의 요소일 수 있지만, 나의경우에비추어 볼 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다.

나는 자본이 없어 2만달러를 빌려서 사업을 시작했다. 두메산골 농촌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기에 애초부터 제대로 된 인맥형성이 존재할 리 없었다. 더구나 낯선 땅 미국에서 시작한 사업이었기에 학연의 도움이 있을 리도 만무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원까지 반장 한 번 해보지 못한 내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리더십은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전형적인 공학도 출신이라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기초지식 조차 갖추지 못한 내 입장에서, 창업이란 생각하기 어려운일이었다.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성공의 조건 열 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자기가 하는 일을 좋아해야 한다
둘째, 열심히 일해야 한다
셋째, 주인의식이 있어야 한다
넷째,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다섯째,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
여섯째,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한다
일곱째, 겸손해야 한다
여덟째, 고난을 잘 통과해야 한다
아홉째,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열째, 성공은 소프트웨어이다

나는 성공하는데 필요한 요소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속하는 두가지 요소로 크게 분리된다고 본다. 유형의 외부적 요건을 하드웨어라고 정의한다면, 무형의 내부적 요건을 소프트웨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사업에 필요한 자본이나 상속받은 재산, 다양한 인맥, IQ (지능지수) 등이 이 하드웨어에 해당한다면, 성공하고자 하는 열정, EQ(감성지수)는소프트웨어에 해당한다.
 
모든 사람은 축복된 삶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하지만 그리 잘 되지는 않는다.

성경은 우리에게 축복을 계속하여 받을 수 있는 비법을 말해주고 있다. 그 비법은 신명기 17장에 나온다. 왕과 그 자손이 대대로 장구할 수 있는 비결은 “평생에 율법서 성경을 읽는 것이다.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게 되고, 실천하게 되며, 그렇게 하면 우리가 교만해서 우리의 이웃을 업신여기는 일이 없게 되며, 우리가 가는 길에서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게 된다.” 고 했다.

성공을 하면 교만해지기 쉽다. 그러므로 그 성공이 나의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된 것임을 알기 위해서는 끝없이 성경말씀과 가까이 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우리는 신념이나 신앙심이 강하면 강할수록 상대가 내 의견과 다르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와 다름을 틀렸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 남과 다를 수 있고 내 의견이 상대의 의견과 같지 않다는 것을 기꺼이 수용하는 포용력이 바로 진정한 강자가 가져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김진수 장로는 성공 조건의 열 개의 항목에서 과감히 선언한다. 성공은 소프트 웨어라고. 하드 웨어는 이미 주어진 것이기에 어찌할 수 없지만 소프트 웨어는 우리가 맘 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개발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성공의 조건 열 가지 중 반 이상이 소프트 웨어에 해당하는 부분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그 소프트 웨어의 중심에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영혼의 양식을 공급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지 않은가.

김진수 장로처럼 하나님이라는 무형의 자산을 철저히 활용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창조주의 일개 피조물로서 온 몸으로 창조주를 증언한 김 장로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은 <인생은 불확실하나, 하나님은 확실하다>는 표어 같은 그의 책 제목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이다. 

<인턴기자 이주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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