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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09월13일 20시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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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증인, 에녹과 엘리야(묵강 20)
계시록 7장과 14장의 14만 4천과 계시록 11장의 두 증인, 두 감람나무는 교회시대 2,000년에서 가장 많은 이단을 만들어낸 난해구절이다.

교회사 2,000년과 한국교회 100년사에서 여러 시대와 장소마다 혜성처럼 나타난 이단들은 하나같이 자기들이 14만 4천이고, 자기들이 그리스도의 두 증인인 두 감람나무라고 주장했다.
 
미국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이단이 된 Allen G. White의 제 칠일 안식일교회와 찰스 T. 럿셀의 여호와증인(안식교회와 여호와증인은 영원한 지옥과 사후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영혼멸절”설을 믿는다.

의인은 부활해 영생하지만 악인은 부활해 불에 타 소멸되기 때문에 ‘지옥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제 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 기본교리, op.cit.,0. 27, 340-341)과 Joseph Smith(요셉 스미스)의 몰몬교회(전 세계 900만 교인과 몰몬 교회 안에 160개 교파가 있다)는 자기들만 구원받을 14만 4천이라 주장하고 있고, 한국산이단인 교주 노영구의 동방교(기독교대한 개혁장로회), 유재열의 장막성전, 안상홍의 증인회(자칭 하나님의 교회), 이유성의 새일교회, 조희성의 영생교, 정명석의 애천교회, 박태선의 전도관 그리고 오늘 광언망설로 한국교회들을 사분오열 파괴시키며 가정들을 파괴해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종교잡배 이만희의 신천지 이단들은 모두 14만 4천으로 출발했다.

14만 4천만큼 폭발력을 가지고 성도들을 미혹하는 또 다른 이단은 무엇보다도 ‘두 증인, 두 감람나무’다. 34년 전인 1978년 11월 18일, 남미 가이아나 밀림에서 교주 짐 존스의 사주에 따라 914명이 독약을 마시고 한 사람씩 피를 토하며 몰사해 세계를 놀라게 했던 ‘인민사원 집단자살사건’은 일회성사건으로 끝나므로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져버렸지만 1954년 5월 1일 시작된 ‘재림주’ 문선명의 통일교와 1957년 6월 9일에 ‘감람나무’로 등장한 박태선의 천부교 이단은 반세기가 지난 오늘, 그리고 박태선이 1990년 2월 7일 77세에 죽고, 문선명이 지난(2012년) 9월 3일 92세에 죽었어도 여전히 남아있고 그 추종세력이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다.

1957년 4월 30일 하늘의 권세를 받았다고 선언한 박태선은 그해 6월 9일 자신을 ‘감람나무’로, 10월 23일엔 “동방의 의인”으로 선언했으며 이틀 후엔 ‘기성교회는 마귀의 전당이니 구원이 없고 전도관에만 구원이 있다’고 외친 후 33년 동안 전도관이단괴수로 살았다.

그러다가 1980년 1월 전도관을 천부교로 바꾸고 신년축복집회를 하면서 박태선은 자기가 30년 이상 믿어온 예수를 “개 새끼요, 마귀대장의 아들”이라고 규탄하고 “성경은 98%가 거짓말이고 2%만 진실이며, 자신은 13번이나 40일 금식기도를 했지만 예수는 한 번밖에 못했으니 그런 예수가 육신을 입은 마리아에게서 났으니 예수는 99%가 죄 덩어리요 음란마귀의 아들이라”고 비난하면서 “너희가 믿은 하나님은 내가 철장 속에 가둬버렸다.

그래서 이 땅에 새 하나님이 와야 하는데 그분이 바로 나다. 내 나이가 금년에 5,798세다”라고 폭탄선언을 했다. 그 후 박태선은 자기 나이가 1조 5천억 세라며 정신착란자적인 엽기발언을 하고 예수를 욕하면서 성경을 불태우라고 강요하다가 90년 2월 7일 폐결핵, 당뇨, 신장염, 고혈압, 정신착란 합병증으로 77세에 죽는다.

그의 죽음과 함께 많은 신자들이 신앙촌 전도관을 떠났는데 놀라운 것은 수많은 추종자들이 기왕 30년 이상을 따랐으니 끝장을 보자며 지금도 천부교 이단을 맹종하고 있다는 것이다.

집단폭행, 살인, 횡령, 혼음, 사기로 신앙촌 집단을 이끌었던 박태선과 동시대에 시작돼 나중에는 태풍처럼 전 세계를 강타한 통일교의 황탄무계한 피 가름 교리와 혼음교리는 차라리 기독교이단보다는 섹스교에 가까운 황음무도의 황당한 궤변과 교리라고 할 수 있다(이단종합연구, 이대복, 793-825 p.)

통일교 초창기, 문선명은 자칭 섹스 구세주로 복잡한 여성편력들이 문제가 되고 추종자들의 혈대교환이란 릴레이 혼음사건이 사회문제가 되자 혼음교리를 수면 아래로 숨기고 대신 사람들의 관심을 끌 여러 가지 사회사업과 방만한 회사운영의 CEO로 변신한 후, 막대한 돈을 들여 후진양성, 반공사업, 합창단 세계일주, 국내와 외국 언론 장악, 수천수만 쌍의 합동 국제결혼식 등으로 세계의 이목을 끌다가 마침내 자신이 세상을 구원할 “재림 주”, “인류의 참 부모”, “하나님과 문선명과 한학자를 삼위일체”로 선포한다.

그러나 영원히 살아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자칭 재림주’는 천문학적인 재산과 막강한 명예 때문에 자식들이 싸워야하는 ‘왕자들의 난’을 뒤로한 채 속절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재림주이고 메시아였다면 영원히 죽지 말았어야 하는데 그가 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종자들이 통일교에 남아 있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그리스도의 두 증인, 에녹과 엘리야

1955년 3월 26일부터 4월 5일까지, 열흘 동안의 남산 천막집회를 피크로 박태선의 부흥집회는 가는 곳마다 한국교회 사상 전무후무한 대성황을 이뤘는데(이전까지는 나운몽 장로가 인도하는 부흥회에서 북을 치던 집사였다가 나장로의 수원 부흥회 철야예배 때 안수기도로 앉은뱅이를 고쳤다는 소문(실제론 못 고침)이 나자 장로교단에서 그를 장로로 세웠다-나운몽목사의 증언) 급기야는 ‘자칭 감람나무’, ‘동방의 의인’으로 이단이 됐다.

마귀유혹으로 자칭 ‘감람나무’가 된 박태선은 처음에 문선명과 나운몽 목사를 찾아가 함께 ‘두 증인, 두 감람나무가 되자’고 권유했다가 거절당하자 ‘홀로 감람나무’ 이단으로 살다가 비참한 생애를 끝냈고, 문선명은 자칭 ‘재림주 메시아’로 살다가 삶을 끝냈다.

이렇게 적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멸망케 할 이단이 된 자들은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며, 자기도 호색과 음행과 혼음에 빠지고 추종자들도 더러운 음란에 빠지게 하는데 이러한 이단의 결말은 파멸과 지옥이다(벧후 2: 1-2, 요일 4; 3)

그러나 그들이 유황불지옥에 가기 전, 이 세상에서 먹고 죽을 쥐약이 단 것처럼 잠간 동안 마귀가 주는 영광과 성공과 찰나적인 달콤한 기쁨을 누릴 것이지만 저들의 결국은 파멸과 멸망일 뿐이다. 말세가 될수록 이단의 유혹들을 멀리하는 지혜의 성도와 거룩한 믿음의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1.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한 요한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11: 1-2)

힘센 천사로 하늘에서 구름을 입고 지구로 내려오신 예수님, 머리 위에 찬란한 원형무지개가 둘려있고 얼굴은 광채 나는 태양 같으며 발은 거대한 불기둥 같은 웅장한 모습으로 내려와 오른발은 바다, 왼발은 육지를 밟고 선 예수님께 작은 책을 받아먹은 요한은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해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자기의 사명을 새롭게 다짐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예수님이 요한에게 갈대지팡이를 주면서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Rise, and measure the temple of God, and the altar, and those who worship in it) 성전 밖 마당은 이방인들이 짓밟도록 그들에게 주었으니 척량하지 말고 그냥두라”고 하신다.

“척량(尺量)하라”(Measure it), 미트레손은 “측량하라”(測量: “물건의 크기와 위치와 방향을 수학적으로 재라”)는 뜻이다. 구약에서 어떤 것을 척량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① 긍정적인 의미는 “재건이나 보존”을 의미했고(렘 31: 39, 슥 1; 16, 2: 1-5) ② 부정적인 의미는 “파괴”를 의미했다(삼하 8: 2, 왕하 21: 13, 사 28: 17, 34: 11, 애 2: 8, 암 7: 7-9) 본절에서 예수님이 요한에게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라고 하신 것은 대환난 때에 지구촌이 적그리스도에게 넘어가 무차별로 박해당할 때,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실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적그리스도의 대환난 때, 휴거하지 못한 성도들 중에서 특별사명이 있어 지상에 남겨둔 성도들을 보호하고 지켜주시는데 ⑴ 하나님의 성전(The temple of God)이다. 성전(聖殿, Temple, 나온)은 성전의 마당과 행각을 포함한 성전 전체를 가리키는 히에론과는 달리 제사장들만 들어가는 거룩한 성소를 가리킨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의 성경적 의미는 배교와 타락과 온갖 범죄들이 판을 치는 환난 때에 목숨을 걸고 거룩한 신앙을 지키는 성도를 의미하는데 그들은 ① 철저하게 주일을 성수하는 성도(사 58: 13-14, 56: 6-8) ② 성경을 따라 금식기도를 하는 성도(사 58: 8-12) ③ 의를 행하고 악을 멀리하는 성도(사 33: 15-16) ④ 고난과 박해에서 눈물과 탄식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성도(시 12: 5, 욜 2: 32) 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성도(습 2: 3, 3: 12-13) ⑥ 주께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은 진실한 성도(계 17: 14) ⑦ 정직하게 행하고 공의를 일삼으며 진실을 말하고 참소치 않으며 이웃에게 행악치 않고 이웃을 훼방치 않으며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지키고 뇌물을 받고 사람을 해치 않는 성도(시 15: 1-5, 24: 1-6) ⑧ 견고한 심지로 흔들림이 없이 주를 의뢰하는 성도(사 26: 1-3, 20) ⑨ 사렙다 과부(왕상 17장)와 수넴 여인(왕하 4: 8-37, 8: 1-6)처럼 정성을 다해 주의 종들을 공궤하는 성도들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이런 성도를 대환난에서 눈동자처럼 보호하시고 지켜주실 것이다.

⑵ 제단(祭壇, Altar, 두시아스테리온)이다. 제단은 성소에서 제사를 드리는 자들과 연결된 것으로 향단을 가리키는데 제단과 향단의 신약적인 의미는 기도를 의미한다.

그렇다. 환난 날에 하나님이 지키고 보호하실 성도, 이방인과 적그리스도와 원수들이 손대지 못하도록 불 성곽으로 보호하고 지킬 성도는 기도하는 성도들이다. ⑶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Those who worship in it)이다.

그렇다. 저 대환난의 날에 하나님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풀무불 같은 위험과 위기에서 보호하시고, 다니엘처럼 죽음의 사자굴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 지켜줄 성도는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섬기는 성도들이다.

오늘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 모두가 환난을 보지 않는 휴거 성도가 되되 만에 하나 휴거에 실패하여 이 땅에 남겨진다면,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을 떠나지 않고(눈에 보이는 성전일 수도 있고, 하나님이 예비하시는 특별장소-주의 종들에게 보여주실 특별장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생명 바쳐 하나님을 경배하며 섬기므로 하나님의 보호와 지킴을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Leave out the court which is outside the temple, and do not measure it)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성경시대 헤롯 성전의 뜰은 성전 안 뜰과 성전 밖의 뜰, 두 부분으로 나뉘었다. 성전 안에 있는 뜰은 제사장의 뜰, 남자의 뜰, 이스라엘의 뜰, 여자의 뜰이라고 불렀고, 성전 밖의 뜰은 이방인의 뜰이라 불렀는데 성전 안의 뜰과 성전 밖의 뜰은 엄격하게 구분돼 있어서 이방인이 이방인의 뜰을 넘어서면 죽임을 당했다.

본문에서 ‘성전 밖 마당’(The court which is without the temple: 성전이 없는 뜰)은 “이방인의 뜰”을 가리키는 것으로 영적으로는 교회는 다니나 Born-again의 거듭남이 없는 교인,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닌 교인들을 가리킨다. 이런 사람들은 환난시대에 하나님의 보호와 지키심의 척량(尺量, measuring)에서 제외된 파멸의 사람들이다.

“이방인에게 주었은즉”(For it is given to the Gentiles) 성전 밖 마당, 이방인의 뜰뿐 아니라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제외한 모든 세상을 이방인에게 주었다는 말씀이다.

이방인(Gentiles, 에드네신)은 문자적으로 “민족들‘이란 뜻으로 이교도들이나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받지 못한 모든 세상 사람들을 가리킨다(18절, 2: 26, 19: 15, 20: 3, 21; 24, 26, 22: 2) 그리고 “주었은즉”(It is given, 에도데)은 부정과거 수동태로 이방인이 스스로 성전 밖 마당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의해서 짓밟을 것이란 뜻이다.

그다음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They will tread under foot the holy city for forty-two months)에서 '거룩한 성’(The holy city)은 유대인과 교회를 가리킨다. 혈통적 유대인(Jewish)인 이스라엘과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가 하나님의 허락 안에서 적그리스도에게 마흔두 달 동안 핍박을 받게 될 것이란 말씀이다.

“마흔두 달”(Forty-two months)은 다니엘 7장과 9장을 반영한 것으로 ‘일천이백육십 일’(3절, 12: 6)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12: 14, 단 7: 25, 9: 27, 12: 7, 마카비 하 8: 2)와 동일한 기간이며, 계시록에서는 11; 2절의 ‘거룩한 성에 대한 박해’, ‘두 증인이 예언하는 기간‘(11; 3) ‘여자를 광야에서 보호하시는 기간‘(계 12; 6, 14) ‘짐승이 자신의 권세를 행하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기간’(13; 5)과 같은 기간이다. 그러므로 마흔두 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교회를 박해하는 기간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특별히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는 기간이다.

이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는 어떤 고난과 박해 중에서도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시는 특별보호와 성도들이 죽임을 당하면서도 신앙을 지키도록 끝까지 지켜주시는 순교적인 보호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순교적인 보호로 신앙을 끝까지 지키다가 복음과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를 당하는 환난성도는 순교와 함께 부활 승천하여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축복을 받고, 마지막까지 환난에서 보호받아 살아남는 성도는 지상에 재림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천년왕국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니 주기도문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로 하나님이 계산하시는 척량 안에 들어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2. 그리스도의 두 증인(3-13절)

하늘에서 구름을 입고 지구로 내려와 거대한 불기둥 같은 두 발 중 오른발은 바다를 왼발은 땅을 밟고 서서 요한에게 “작은 책을 받아먹고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라”고 명령하는 예수님은 두 증인(The two witnesses)인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The two olive trees and the two candlesticks)를 가리켜 ‘나의 두 증인’(My two witnesses)이라고 했다. 그렇다. 두 감람나무는 마흔두 달 동안 하나님의 일을 할 예수님의 두 증인이다. 이제 시대마다 가짜 두 촛대, 두 증인, 두 감람나무 이단들이 나오게 했던 본문을 통해 성경적인 감람나무를 알아본다.

   ⑴ 두 증인, 두 감람나무의 정체(正體)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를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豫言)하리라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3-4절)

장차 칠년 대환난의 전 삼년 반에, 예수님께 권세를 받아 지구촌을 다니면서 1260일 동안 예언하게 될 두 증인, 두 촛대는 과연 누구인가? 두 감람나무의 정체는 무엇인가?

두 감람나무, 그리스도의 두 증인에 대한 국내신학자들과 외국학자들의 견해를 알아본다. ⒜ 국내학자들의 견해는 ① 박윤선박사는 교회의 종들(p. 221) ②이상근박사는 모세와 엘리야의 정신을 계승한 자들(p. 148) ③ 석원태목사는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그 사자들 ④ 김재준목사는 하나님의 종들(p. 209) ⑤ 이광복목사는 종말에 추수의 종들인 두 증인(p. 76) ⑥ 조용기목사는 모세와 엘리야(pp. 201-205)로 보았고 ⑦ 김 엘리야목사는 에녹과 엘리야로 본다. ⒝ 외국학자들의 견해는 ① 핸드릭센(William Hendricksen, p 155)은 전 세대를 걸쳐 성직자들이나 선교사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며 세상과 싸우는 교회들로 보았고② 바클리(W. Barclay. pp. 137-139)는 모세와 엘리야로 보았으며 ③ 벵겔(J. A. Bengel, p. 150)은 스가랴시대에 여호수아와 스룹바벨과 닮은 뚜렷한 두 사람, 모세와 엘리야 ④ 죠지 래드(G. E, Ladd, p. 197)은 이스라엘을 회심케 하기 위하여 파견될 종말론적인 실제 역사적 인물 ⑤ 주경신학자 Finnis J. Dakes, p 306)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한 에녹과 엘리야로 보았고 ⑥ 비델볼프(W. E. Biederwolf, pp. 405- 406)는 모세와 엘리야 ⑦ 렌스키(R. C. Lensky, pp. 269-270)는 종말에 복음을 증거할 법정적인 증인을 상징한다고 해석했다. 그래서 두 증인, 두 감람나무의 여러 견해를 모으면 크게 나누어 ⑴ 모세와 엘리야 설 ⑵ 교회 설 ⑶ 말세에 추수의 두 증인 설 ⑷ 에녹과 엘리야 설 등 네 가지 학설로 구분된다.

그 중에서 ① 두 사람이 행했던 임무와 사역들이 계시록의 예언과 적합하고 ② 두 사람이 변화산에서 구약시대의 대표적인 인물로 나타나 예수님을 모셔 섬겼으며(마 17: 1-5, 눅 9: 28-31) ③ 두 사람이 재앙을 내리는 초능력의 권세를 하나님께 받았었고(출 7: 20, 8: 12와 왕상 17: 1, 왕하 1; 10, 약 5: 17-18) ④ 모세는 모세오경과 율법을 대표하고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가장 뛰어난 선지자로 모든 예언서를 대표하므로(눅 16: 27-29) 두 증인, 두 감람나무는 모세와 엘리야라는 학설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나(김엘리야목사)는 몇 가지 성경적인 이유 때문에 Dakes 박사와 함께 에녹과 엘리야 설을 지지해 믿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① 성경은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히 9: 27)이라고 했는데 두 증인, 두 감람나무는 이전에 한 번도 죽지 않았던 사람들로 장차 적그리스도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했고 놀랍게도 에녹과 엘리야는 한 번도 죽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창 5: 21-24, 왕하 2장, 히 11; 5)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공중 재림 때에 부활성도와 함께 죽음을 보지 않고 산채로 휴거하는 성도들과 칠년 대환난을 통과하고 천년왕국을 통과해 산 채로 영원한 새 하늘 새 땅에 들어가는 성도(사 66: 22-24)는 에녹과 엘리야의 축복을 뛰어넘는 축복 중에 축복을 받을 자들이니 그런 축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한다. ② 모세는 120세에 이미 모압 땅에서 죽었는데(신 34: 5-6) 모세가 현재 하늘나라에 있다(마 17:3, 막 9: 4, 눅 9: 30)는 것은 그가 부활의 몸으로 하늘에 있음을 의미한다(모세의 부활기록은 성경 어디에도 없지만...(마 27: 52?) 부활체가 아니고는 죽은 시체로 하늘에 승천할 수는 없는 일이니 그가 하늘에 있음은 그의 부활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성경대로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는 사람은 영원히 다시 죽을 수가 없는데 두 증인, 두 감람나무는 적그리스도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니(계 12: 7) 그래서 ‘모세와 엘리야’보다는 ‘에녹과 엘리야 설’이 더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③ 에녹과 엘리야는 모두 심판을 예언한 자들이었다(왕상 17, 18장, 말 4: 5-6, 유 1; 14-15) ④ 두 증인들이 행할 초자연적인 권세권능의 기적들, 입에서 불이 나와 원수들을 소멸하고 하늘을 닫아 비 오지 못하게 하며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해 피가 되게 하며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는 기적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전혀 문제가 안 된다. 그러므로 두 증인, 두 감람나무, 두 촛대는 에녹과 엘리야로 봐야한다.

   ⑵ 두 증인의 사역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5-6절)

모세가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집트의 모든 하수와 강물과 연못, 호수의 물을 피가 되게 하는 기적에서 사람의 장자와 짐승의 첫 새끼를 죽이는 기적까지, 열 가지 재앙으로 파라오의 이집트제국을 공포로 떨게 했던 기적들(출 7-12장)과 아하시야 왕이 엘리야를 대적하여 보냈던 두 명의 오십 부장과 그들의 군대 100명을 하늘의 불로 태워 죽인 엘리야의 기적(왕하 1: 9-12)을 연상케 하는 말씀이다.

그렇다. 장차 세상에 나타날 두 증인, 두 감람나무, 에녹과 엘리야는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그들을 대적하는 원수들을 태워 죽일 것이고, 그들을 위해하려는 자들을 죽일 것이며, 초능력의 권세로 하늘을 닫아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물을 변해 피가 되게 하며, 아무 때든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재앙들을 내릴 것이다.

그래서 두 증인의 등장은 휴거에 실패하고 지구촌에 남겨진 성도들에게 자기들의 죄와 게으름과 불신앙과 불순종을 회개하며 참 신앙으로 돌아오는 전무후무한 회개운동과 영적 부흥의 기회가 될 것이고, 특별사명자로 남겨진 주의 종들에겐 더 분발해 자기 사명들을 감당하는 기회가 될 것이며,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세계의 사람들에겐 공포와 불안의 대상이 되고 처처에서 두 증인을 미워하고 증오하며 그들을 죽이려 할 것이다.

그래서 에녹과 엘리야가 가는 나라와 장소마다 회개운동과 영적인 부흥운동이 있을 것이고, 반대로 두 증인을 죽이기 위해 각종 테러와 자객과 살해시도가 있을 것이다. 성경예언과 세상징조들을 볼 때, 여러 면에서 우리 시대에 그런 상황을 보는 날이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그런 날을 당할 때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⑶ 두 증인의 죽음과 부활승천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生氣)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7-13절)

   Ⓐ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When they have finished their testimony)

“마칠 때”(Finished, 텔레소신)는 부정과거시상으로 “두 증인이 소기의 목적을 온전히 성취하거나 자기 사명을 마치거나 증거하기를 마치는 것”을 가리킨다. 그렇다. 두 증인은 자기 사명을 마치는 날이 온다. 예수께서 두 증인이 마흔두 달 동안 예언할 것이라고 한 대로 삼년 육 개월, 마흔두 달, 1260일 동안의 자기들의 사명인 예언사역을 마치는 때를 의미한다. 에녹과 엘리야 두 증인 사역기간은 정확하게 삼년 반, 마흔두 달, 1260일이었다.

그러므로 에녹과 엘리야는 성도들의 휴거와 함께 지상에 나타나 유대인 전도자 14만 4천과 환난 날의 특별 사명자들과 함께 예언사역을 시작해 삼년 반 동안 지구촌에 전무후무한 부흥운동을 일으킨 후 장렬하게 순교의 제물이 된다. 어떤 이단처럼 30년 40-50년씩 감람나무로 살지 않는다.

   Ⓑ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과의 전쟁(7상)

“짐승”(The beast, 토 테리온)에 관사 토가 붙어서 “그 짐승”이란 의미로, 짐승이 적그리스도임을 가리킨다. 짐승이 무저갱에서 올라왔다는 것은 적그리스도가 지하 불구덩이 무저갱에서 올라왔다는 말이 아니라 적그리스도 짐승의 근원이 사단이며, 적그리스도가 하는 일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로부터 돌아서게 하며 멸망으로 인도하는 존재임을 시사한다.

그리고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이 두 증인과 전쟁을 벌여 그들을 죽이는 사건은 적그리스도의 화려한 등장을 예고하는데 이 사건으로 적그리스도는 일약 지구촌영웅으로 역사에 등장하게 된다.

   Ⓒ 소돔과 애굽과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8절)

두 증인이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Where their Lord was crucified)인 예루살렘에서 적그리스도에게 피살돼 그들의 시체가 장례를 치루지 못한 채 큰 성(The great city: 계시록에서 ‘큰 성’은 바벨론을 지칭하기도 했으니(계 19, 17: 18, 18: 10, 16, 18, 19, 21) 큰 성은 예루살렘 외에도 적그리스도적인 큰 도시일 수도 있는데 다수의 학자들은 예루살렘으로 해석한다) 길에 방치돼 세계인들에게 구경거리가 될 것인데 그 성은 영적으로 (Which spiritually is called) 소돔과 애굽이라 부른다고 했다.
 
‘영적으로 하면’의 Spiritually, 프뉴마티코스는 “예언의 언어로 말하면” 또는 “영적이해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불려 진다면”(Is called by those with spiritual understanding)이란 뜻이다. 그렇다. 장차 두 증인이 죽임 당할 장소가 예루살렘이 돼 든, 당시 적그리스도의 도시가 될 수 있는 로마나 파리, 뉴욕, 워싱턴 DC. 쌍파울루 이든지 그 큰 성은 영적으로 소돔과 애굽이다. ① 소돔은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을 부인하고 배척한 도시였고(창 19: 4-11) ② 애굽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노예로 만든 도시로 두 도시가 모두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당했듯이 두 증인을 죽이고 핍박한 큰 성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 지구촌 불신자들의 크리스마스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9-10절)

고대사회에서 사람의 시체를 장사 지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당시 적에게서 당할 수 있는 최대의 모욕과 수치였다(왕상 21: 24, 렘 8: 1, 2, 14: 16) 장례를 치루지 못한 두 증인의 시체는 사흘 반 동안, 전 지구촌에 TV로, U-Tube 인터넷으로, 인공위성 Satellite 생중계로 보여주며 모욕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적그리스도와 손을 잡은 전 세계는 두 증인의 죽음을 축하하면서 ‘악마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서로 주고받으며 즐거워 할 것이다. 암흑가에서도 Rival이 죽으면 싸움을 중단하고 문상을 해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상식인데 이 상상을 초월하는 희귀한 현상, 사람의 죽음을 기뻐하며 선물을 주고받는 해괴한 악마의 크리스마스가 지구촌을 놀라게 하는 날이 올 것이다.

삼년 반 동안 육대주의 성도들에겐 불 성곽 같은 의지가 됐고 구름 기둥 불기둥 같은 거대한 의지가 됐었지만 불신앙의 이방인들에겐 공포의 대상, 위협적인 존재, 눈에 가시 같은 존재, 지구촌의 암적인 골치 덩어리였던 두 증인이 죽었으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각 나라에서 두 증인을 죽이려고 테러로, 군사작전으로, 정치깡패로, 암살단으로 공격을 했고, 고육지책과 미인계와 거짓 화해전략으로 살해시도를 했지만 그때마다 불에 타 죽거나 물이 변해 피가 되거나 벌 떼가 나타나 쏘거나 회오리 돌풍이 불어 작전을 실패케 했었는데 그들이 죽었으니 앓던 이 빠진 것보다 더 기뻤을 것이다. 그래서 세계가 두 증인의 죽음을 기뻐하는 것이다.
    
     
   Ⓔ 이리로 올라오라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11-12절)

두 증인이 살해돼 그 시체가 예루살렘 성 거리에 방치 된지 사흘 반이 지난 때,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두 증인 속에 들어가면서 두 사람이 살아나 땅에서 일어서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놀라며 두려워한다. 두 증인 부활사건은 순식간에 전 세계에 토픽뉴스로 퍼진다.

예수님은 밤낮 사흘인 72시간 만에 부활하셨지만 두 증인은 사흘 반 만인 84시간 만에 부활하는데 두 증인 부활사건은 그들의 피살사건보다 더 세상을 놀라게 하는 충격사건이다. 생각해 보라.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외에 죽었다가 영생의 사람으로 다시 부활한 사람이 또 어디 있는가? 임상학적으로 죽었다가 며칠 만에 살아났다가 다시 죽은 사람은 있어도 두 증인처럼 죽었다가 영생체로 부활한 사람은 없다. 그러기에 두 증인의 부활사건은 지구촌이 깜짝 놀라는 토픽 중에 토픽사건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건은 두 증인의 승천사건이다. 두 증인이 죽었다가 살아서 일어나자 시체를 구경하며 사건을 취재하던 전 세계 언론들이 긴급뉴스로, 해외토픽으로, 호외뉴스로 신문사와 라디오, 텔레비전 방송국으로 타전을 하는데, 그때 하늘에서 큰 음성이 들려온다. “이리로 올라오라”(Come up here! 아나바테 오데: “이곳으로 올라오라”, “여기로 올라와라”) 그러자 순식간에 두 증인의 몸이 두둥실 공중으로 떠오르고 찬란한 구름이 저들을 감싸면서 구름을 타고 두 증인이 하늘로 올라간다.

계시록에 두 번 기록된 “이리로 올라오라, Come up here! 아나바테 오데”는 말씀은 요한이 휴거를 체험할 때 들었던 음성(계 4: 1)이고 두 증인이 하늘로 승천할 때 들린 음성이다(따라서 계 4: 1의 “이리로 올라오라”는 성도의 휴거를 의미한다) 이렇게 두 증인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승천했다.

성경에서 구름은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와 영광을 의미한다. 예수 부활승천 때 구름 속으로 올라가셨고(행 1; 9-11) 세상에 다시 오실 때도 구름을 타고 오시는데(마 24: 30, 계 1: 7) 두 증인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승천한 것은 그들이 삼년 반 동안 땅에서 행한 모든 일들을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받아드린다는 표시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와 영광이 함께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Their enemies beheld them, 12하)란 말씀은 두 증인의 승천의 공개성을 시사한다. 두 증인 승천은 숨길 수 있거나 감출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공개적사건이란 의미이다.
   
   ⑷ 두 증인 부활승천의 결과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13절)

두 증인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사라져 가는 사건으로 전 세계가 충격을 받을 때, 이번엔 또 다른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갑자기 예루살렘(로마, 뉴욕, 파리...?)이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고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도시의 십분 지 일(1/10)이 땅속으로 꺼져버린다.

이 초대형 강진으로 고층건물과 크고 작은 집들이 무너져 내리고, 고가도로가 붕괴되며, 도로를 달리던 차들이 길을 이탈해 추돌사고를 일으켜 아수라장이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매몰돼 사라진다. 두 증인이 죽은 지 84시간 만에 부활하고 하늘에서 들리는 음성과 함께 두 사람이 구름을 타고 승천하는 사건에 이어 거의 같은 시간에 일어난 충격적인 재해사건이다. 유엔은 즉시 예루살렘을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하고 세계 각국은 구호품을 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편 많은 사람들이 두 증인 사건을 생각하고 두려움에 떨며 하나님께 돌아와 예수를 믿게 되고 하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들이 살았을 때에 죽인 자들보다 더 많았듯’(삿 16: 30) 두 증인의 죽음과 부활승천사건은 그들이 살았을 때 전도한 것만큼 큰 영광을 돌리는 전도의 기회가 된 것이다.

종말에 나타날 예수님의 두 증인, 두 감람나무, 두 촛대는 우리처럼 1940, 1970년 경기도 광명시 옥길동 352번지에서 태어나 어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 대학원을 나오고 미국 유학을 해 박사학위를 받고 40일 금식을 몇 번 해서 은사와 권능을 받는 세속적인 과정을 밟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이 땅의 주 앞에 서있는 두 감람나무, 두 촛대”(These are the two olive trees, and the two candlesticks standing before the God of the earth; 4절)이다.

스가랴 시대에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백성을 인도할 두 감람나무로 장차 나타날 두 감람나무의 표상이었듯(슥 4: 11-14,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은 계시록의 두 감람나무 표상이었다) 장차 대환난 때에 지구촌에 나타날 두 감람나무는 “지금 하늘에서 온 땅의 하나님 앞에 서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때가 될 때, 홀연히 하늘에서 지구촌으로 보내질 종들로 현재의 지구 사람은 아니다.

두 증인은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혜성처럼 나타나고, 삼년 반 후,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죽어 같은 시간에 부활하고 동시에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박태선 같이 독불장군으로 수십 년 동안 외발자전거 타는 감람나무도 아니고 땅에서 태어난 두 발 자전거를 타는 두 증인도 아니다. 그들이 하늘에서 세상으로 보냄을 받을 때는 지구촌에 인류역사에 없었던 전대미문의 칠년 대환난이 시작되는 때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만 척량해 특별보호를 받는 때’이다. 그 하나님의 보호와 지키심에 선택되는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칭찬할 축복의 성도가 되길 축원한다.

칭찬은 해주는 사람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친구의 칭찬보다 부모나 스승의 칭찬이 더 영예롭고 하나님이 해주시는 칭찬과 인정은 최상최고가치가 있다. 어느 젊은 피아니스트가 있었다. 그는 고된 훈련 끝에 드디어 대중 앞에서 자기 실력을 보일 기회를 얻었다.

무대에 올라간 그는 지금까지 연습한 곡을 정성으로 치기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의 움직임과 함께 그의 온 몸도 음악을 말했고 이 모습을 청중들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지켜보며 열심히 감상했다. 드디어 연주가 끝나자  연주자 음악에 매료됐던 청중은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고 앙코르를 요구하는 박수소리가 계속됐다.

그런데 유독 맨 앞줄에 앉아있는 어느 할아버지는 박수도 보내지 않고 일어서지도 않았다. 이를 본 젊은 피아니스트는 고개를 푹 숙이고 힘을 잃은 채 천천히 무대를 떠나갔다. 무대 밖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무대감독이 피아니스트의 어깨를 두드리며 정말 훌륭한 연주였다고 아낌없이 칭찬을 했다.

그러나 젊은 피아니스트는 “아닙니다. 오늘 전 실패했다”라고 침통하게 말했다. 이 대답에 놀란 무대감독이 물었다. “아니, 왜 그렇게 생각하나? 맨 앞줄의 노인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이 열광하며 찬사를 보내지 않았는가?” “그렇습니다. 바로 그 노인이 저를 지도하신 스승님입니다” 젊은이는 누구보다도 스승의 칭찬을 원했던 것이다.

우리는 가끔 주위 사람들에게 훌륭하고 경건한 성도란 칭찬을 듣는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의 칭찬에 만족해선 안 된다. 주님께서 ‘잘했다, 충성된 종아’ 하는 칭찬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주님께 칭찬 듣는 성도만이 환난의 날에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로 척량’돼 하나님의 특별보호를 받을 것이다. 주기도문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이 인정하고 예수님이 칭찬하는 성도되길 축원한다.
     
김엘리야 목사(워싱톤주기도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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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heavy stone (2017-04-28 13:57:02)     6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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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6일 저녁 8:40 에 ‘웬디’ 자매가 받은 메세지입니다. 두 증인의 정체에 관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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