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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07월19일 21시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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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에 관한 단상>


1. 말씀을 듣는 귀와 받는 귀

요즘 새벽 기도 시간에 출애굽에 관한 말씀을 묵상하고 있다. 어제는 실행에 옮기는 것의 필요성(move on)에 대한 메시지를 받았는데 오늘은 ‘마라의 쓴 물’을 통해 잊고 있었던 사명( obscure mission)을 고통스럽게 환기하게 되었다.

아주 오래전,5~6년전인가? –정확한 기억이 없다-일이다.

그 날도 여느 때처럼 정체성있는 크리스찬이 되기위해 일천번제 새벽 재단을 쌓는 중이었다.새벽 설교를 들은 후 기도를 하던 중 뜬금없이 노무현대통령을 전도하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언젠가는 정신과 의사에게 전도하라는 말씀을 주시더니 오늘은 또 대통령에게…나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일축하고 말았다. 후일담으로 어떤 친구에게 한담 삼아 한번 이야기하고 웃어넘긴 기억이 있다.

이때만 해도 나는 어떤 게 하나님의 음성인 지 분명히 파악하지 못할 때였고 이제 막 믿음의 문턱에 제대로 들어서고자 안간힘을하던 때였기에 이런 나에게 이 같은 과제는 터무니 없는 주문이어서 심상히 넘겼다. 간간히 그 음성이,뉴스에서 대통령을 볼 때라든지 어떤 환경에서 대통령을 떠올릴 때, 한 번씩 환기되긴했지만 나 하나의 신앙세우기도 벅찬 처지라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그런데 하루는축구 경기를 시청하다가 ‘특보’라며 spot news로 처리되는 작고 낮은 자막의 ‘대통령 서거’ 라는 활자를 보게 되었다. “뭐라고? 말도 안돼”. 눈을 크게 뜨고 다시 TV 가까이 가보았는데 여전히 뚜렷하게 노무현 대통령 서거의굵직한 글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머나, 세상에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그럼 어떻게…?’

“안돼!”


하는 외마다가 나오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엎드려 대성통곡을 했다. 대통령이 죽어슬픈 것보단 전도하라한 그 음성이 뒤통수를 잡아채면서 실행하지 못한 회개의 눈물을  비오듯 흘리게 되었다.


‘어떻하라고, 어쩌면 좋아. 하나님 잘못했어요.분변할 줄 모르는 제게 이런 거창한 음성을 주셔가지고’…


이때 나는 주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것의 중요성을 어렴풋이 체득하였다.


한참 후 나는 노무현과 관련된 크리스찬을 만날 기회가 생겨 그 에피소드를 말하니 그도 내 얘기에 별반 귀를 기울이지않았다. 나 역시 머쓱해져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고…


그런데 오늘 아침 환기된 말씀 속에서‘듣는 귀와 받는 귀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성경에는 “귀 있는자는 들을지어다”하는 말씀이 여러 번 나온다. 왜 주는 이 말씀을 여러 번 했을까? 혹여 나 같은 자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내게는 ‘듣는 귀’는 있었지만 그 말씀을 주의 말씀으로 제대로 ‘받는 귀’가 없었다. 그것은결국 제대로 듣는 귀가 없다는 것과 똑같은 결론이기에 성경 말씀의 ‘귀 있는 자’가 되지 못한 것이다.
 
믿음의 연륜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내 나름대로 가치판단을 하여 긴요하게 여기지 않은 탓이 크리라. 마치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리라는주의 말씀에 사라가 웃고 넘긴 것처럼.. 그러나 그들은 곧 다시 주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는 깨달음이 있었다.반면 내게는, 내 주변에는 그것을 믿음으로 끌어 안는 듣는 귀와 받는 귀의 소유자들이 별반 없었나 보다.  


아직도 나는 나의 믿음이 미덥지 못하다.‘겸허한 귀 기울임’없이 여전히 세상 잣대로 말씀을 재단할 때가 많음을 고백한다.인생 후반기에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려고 발버둥해 온 시간이 10 여년 흘렀지만 여전히나는 천국 복음에 대한 밝은 빛을 내다보지 못 한 채, 어두운 터널을 다 나서지 못하고 있다.

모세처럼 믿음으로 부르짖는 기도를 할 줄 모르는 탓이라는 생각도 든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가리키시더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그들을 시험하실새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출15:25~26)


어쩌다 노무현을 떠올릴 때면 몇 날 며칠 내 마음은 착잡해진다. 그가 세상을 향해 청문회를 했듯이 나는 하나님 앞에서 단독 청문회를 받는 느낌이다.


 ‘어떤 형태로든 그에게 복음을 전했다면 지금쯤 그는 ….?’


하나님께 대한 부채를 지게 된 느낌을벗어버리기 위해서라도 예전에 내게 주어진 사명을 올려두고 이제라도 부르짖는 기도를 한번 해 보고 싶다. 



2. 대선과 관련하여-노.안 검증


 최근 대선과 관련하여 문재인을 보면서 노무현의잔영을 보게 된다. 그가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 해도 노무현의그림자를 지고 가는 그에게 나라를 맡기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짙다. 그의 슬픈 휑한 눈동자가 위태로워서만은아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부어야 하는 게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새롭게 자기 주변을 리뉴(renew)하고 리모델링(remoldeling)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시대는 그걸 원한다. 아니 강력히요구한다.


박근혜의 음흉한 신비주의는 여자인 나부터가 질색이다.그런 모호한 스타일은 우리 토양에서 나온 신토불이적 발상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투박한 막걸리 스타일은 그녀 부친인 박대통령에게는 있을지라도 공주로 자라, 잠시 영부인 행세를 한 그녀에겐 눈 씻고 찾아볼래야 볼 수가 없다.

즉 그녀에겐 우리나라를, 우리 국민을 걸머지게 할 이조 백자 같은 훈훈한 정서가 거의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국적이 모호한 그녀의 포즈는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청와대와 서강대의 짬뽕 속에서 배태됐는지는 몰라도, 여성 정치가라면 떠올릴 수 있는 영국의 대처 수상과는 참 다르게, 명료하지 못하다. 


안철수! 그의 특이한 이력으로 인해 나는 예부터 그를 주시해봤다. 인간을 치료해 주는 의사는 많기에 컴퓨터를 치료해주는 의사의 자리로 자신을 과감히 탈바꿈한 예술가적의학도! 백신 개발자로서 입지를 구축하자 자신의 ceo라는 위치에서스탠포드 학생의 자리로 서슴없이 자신을 기투한 지성!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우리의 관심을, 적어도 깨어 있는 지성이길 갈망하는 눈동자들에겐 반짝이는 섬광과도 같은 존재였다.

지나치게나 대지도 않으면서 쌈박하게 일처리를 잘 하는 그는 참 부러운 인물이었다. 생활 속에서 ‘미적 거리(aesthetic distance)’를 아주 잘 지켜내는 보기 드문 사람 중의 하나이기에…이런 그의 대선 행보는 조마조마하게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해방 이후부터 우리나라에는 그 시대에 걸맞는 민족 지도자를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했다. 사무엘 베겟이 고도를 기다리듯이 우리는 그 시대의 인물을 기다리고 고대하고 앙망하였다.

그러나 적절한 인물이 쉽게 산생되는게 아닌데 우리나라의, 우리 민족의 비극이 있었다. 왜곡된 일제 강점기의 얼룩진 역사가 있었기에 그 얼룩의 잔해로부터 완전히 드라이클리닝되기가 쉽지 않았다.


도토리 키재기식의 티격태격 속에서 젊은세대들이 앞장서 정치의 한복판으로 몰아 세운 인재가 노무현이었다.그러나 결국 그는 자신을 몰각함으로써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때,우리의 허탈한 심정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알리라. 제왕은 하늘이 내야하는 것임을..그러나 자연스럽게 순산하지 못할 때는 제왕절개를 해서라도 제왕을 앞당겨 끄집어 내야하는 데 우리의 고뇌가 있는 것이다.


노무현 그는 이 시대의 희생양이었다. 한국 근대화의 배면을 지탱해온 정경유착의 고리를 그는 과감히 흔들었다. 아무도 흔들면 안 되는불문율같은 그 고리에 겁도 없이 그는 양손을 들이민 것이다. 그 대가가 그의 넋을 산화케 한 것이다.


한국의 민주화, 자본화는 동전 앞뒤면이다. 지금은 바야흐로 인터넷 세상이 되어 이웃 나라에서 하는 일뿐만 아니라저 먼 지구 반대편 나라의 소식도 손쉽게 눈깜짝할 사이에 접하게 된다. 더 이상 비밀도 신비도 무의미한 시대에우리는 내몰려있다. 원컨 원치 않건 간에 우리는 지구촌 시대에 살고 있기에 서로가 서로를 잘 알아야 할 의무가있는 것이다. 네 이웃을 사랑하기가 너무 쉽고도 어렵게 된 현실에 처한 오늘날, 우리는 네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전제로 내 자신을 먼저 되돌아 봐야 할 시점에 놓여있다.


이제 그동안 쉬쉬하던 정경유착의 비밀도 어둔 과거도 굳이 누설할 가치가 없게 된 이 시대에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그런 어둔 과거에 연루된 적 없는 새 인물을 만날 차비를 해야 하는것이다. 그 일번 타자가 안철수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원컨 아니건간에 이 시대는 그것을 원한다. 아니 강력히 요구한다.


문제는 정치는 나 홀로 하는 게 아니라는데 또 한가지 걸림돌이 있다. 지금까지 그가 어떤 일을 거침없이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몸이 자유로운 영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치는 시작하는 순간부터 거의 혼자 놔두지 않는 속성을 지닌 것이다.

그는 IT ceo 답게 어디서든 자기 스스로 거침없이 일을 꾸려나갈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사람이다.이 시대에 걸맞는 대통령다운 자질도 갖추고 있다. 밑에서 조금만 잘 보좌해 준다면우리나라가 한층 업그레이드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런데 위태위태한 것은 그의 손발이 될 만큼 그의 생각을뒤받쳐 줄 인재가 얼마나 있느냐는 것이다. 정치가는 바뀔지라도 정치 풍토는 쉽사리 바뀌는 게 아닌데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이를 어찌해야 하나.


우리나라가 도덕적 자질이 있는 선진국의 대열로 들어서려는 기로에 놓여 있다.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가 떠오른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후회는 있기 마련이나 이왕이면 후회가 적으면서도 참신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리라.


특히 미주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예전의 정치 역학에 길들은 세대가 많기에 그의 가치를 잘 모르는 분이 많은 듯하다. 게다가 통념과 상식이 강건하게 버팀목이 되어 있는 미주 공간이기에 그에 대한 생각 또한 그런 연장선상에서 있는 것 같다. 그 어느 선거보다이번 대통령 선거가 주시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체질개선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이제 우리나라는 환골탈태가 필요한 시기이다.그는 그런 역할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대표적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 시대에 걸맞는 인물로 이미 빚어져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하늘이 낸 인물이다.

통섭의 시대에 그는 위아래 세대와 소통하고 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몸이 자유로운 인물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그의 종교적 배면이 기독교가 아니라고 배격할 이유도 없다. 우리 하나님은 포용의 하나님이고, 신 중의 신이시다.예수 또한 성인 중의 성인이 아니던가.


 지난 국회의원 선거 때는 나는 귀찮아 재외국민 투표를 신청하지 않았지만 이번 대선만큼은 미리미리 신청해서 거룩한 한 표를 행사해야 겠다. 실행의 발걸음을 성큼 옮기는 것(moveon)이야말로 애매한 사명을 뚜렷하게 실천할 수 있는 첫 발자욱이기에 이 아침에 출애굽기를 통해 받은 말씀의 편린을 깊이되새겨 보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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