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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06월24일 22시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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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속전과 삼중 찬양


히브리 사람들에겐 자기 형제나 가까운 근족이 어려움이나 위기에 처했을 때, 그것을 책임지고 기업을 물어주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구속자의 법’이 있다. 이러한 책임을 가지고 기업을 물어주는 근족(近族, Closest Relative, 고알로 하카로브: “그의 가까운 구속자”)을 고엘(Redeemer, 구속자)이라고 부르는데 “고엘의 5대 의무”는 ① 가난한 근족이 팔았던 땅을 값을 지불하고 다시 사서 형제에게 돌려주어 구속(救贖)해 주어야 하고(레 25: 25-28) ② 근족이 노예가 됐을 경우, 돈을 지불하고 해방시켜 주어야 하며(례위 25: 47-49) ③ 근족이 자식이 없이 죽었을 경우엔 그 친족의 미망인과 결혼하여 대를 이어주어야 하고(신 25: 5-10, 마 22: 24) ④ 근족이 살해당했을 때엔 죽임당한 친족을 위해 복수할 책임을 지는 것이며(민 35: 9-28) ⑤ 그 친족이 죄를 저질렀을 때는 경우에 따라 친족의 죄 값을 대신 치르므로(민 5: 8, 9) 형제를 구속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움 당한 근족의 기업을 물어주고 형제를 구속(救贖)할 수 있는 고엘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엘의 자격”은 첫째, 피해자와 혈연관계가 있어야 하고(신 25: 5-7) 둘째, 자기에게 닥칠 어떤 불이익이나 손해도 감수할 마음이 있고 그것을 자원해야 하며(룻 3: 13) 셋째, 채무자의 많은 빚을 속전(贖錢)을 지불하고 무를 수 있는 고엘로서의 충분한 경제적인 능력을 구비했어야 한다(레위 25: 25) 세 가지 자격 중에 하나라도 부족하면 고엘이 될 수가 없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인류의 속전 제물로 드리신 ‘인류의 고엘’, ‘세상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지구촌에 오신 것이다. 만일 예수께서 하나님으로 세상에 오셨다면 지구촌의 기업 무를 자, 고엘이 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육신하셔서 우리와 똑같이 육신을 입은 사람으로 지구에 오셨다. 그리고 만일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자원하지 않았다면 ‘인류의 고엘’이 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No man takes it from Me, but I lay it down of Myself; 요 10: 17-18상)고 했다. 만일 예수께서 세상과 역사에 나타난 많은 성자나 성현, 위인들과 철학자들, 왕이나 종교가들과 똑같은 죄인으로 지구촌에 오셨다면 ‘기업 무를 자, 고엘’이 될 수가 없었다. 예수께서 무죄한 분으로 오셨기에 마귀에게 빚을 다 갚을 수 있는 기업 무를 자가 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인류의 유일한 참 길, 유일무이한 진리, 오직 하나이신 생명이다. 그러므로 예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 갈 길이 없다. 그래서 예수만이 지구촌의 기업 무를 자, 인류의 고엘이다. 저주받은 모압 여인 룻이 기업을 무를 수 있는 고엘, 보아스를 통해 축복받은 다윗의 증조모가 됐듯 ‘인류의 고엘’ 예수를 통해 지옥의 저주에서 축복의 하나님 자녀가 된 것을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그리스도의 속전과 삼중 찬양

    1. 일곱 인 봉한 책

하늘이 열리고 “이리로 올라오라”는 하나님의 음성과 동시에 휴거체험으로 하늘에 올라간 요한은 미래에 대한 여러 계시 중에서 제일 먼저 만물의 주인이시며 심판자이신 하나님께서 오른손에 일곱 인 봉한 책을 가지시고 보좌에 앉아 계신 것을 보았고, 두 번째는 어린양이신 예수님이 그 책을 하나님께 받으시는 계시였다. 일곱 인 봉한 그 책은 하나님의 오른손에 들려 있었는데 그것은 대행자들을 통해 성취될 것을 상징하고, 그 책은 안팎으로 써 있었으니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은 치밀하고 빈틈이 없음을 의미하며, 그 책이 일곱 인으로 인봉한 책이었음은 계시의 완전성과 중보자를 통하지 않고서는 깨달을 수 없도록 철저히 감추어진 비밀의 책인 것을 의미한다.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Sealed with seven seals: Sealed up with seven seals)에서 “봉하였다”(Sealed)는 헬라어 카테스프라기스메논은 “위 아래로 봉하였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인봉한 것을 아무나 뗄 수 없는 중요한 책이란 뜻이다. 그때 힘 있는 천사 하나가 큰 음성으로 “누가 이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Who is worthy to open the book and to break its seals?)고 외쳤으나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 어느 누구도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사람이 없었다. “합당하냐?”(Who is worthy to open the book?: "누가 책을 펼 자격이 있느냐?“)의 앜시오스는 능력이나 권리 보다는 선함이나 의로움과 같은 적합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인봉한 책을 열 수 있는 의로운 자격을 가진 자가 누구인가“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손에 들려져 있는 책을 천사들과 죽은 성도들이 거하는 ‘하늘 위에’와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들이 거하는 ‘땅 위’에와 그리고 악한 영들이 거하는 ‘음부’까지 전 우주와 모든 피조물을 포함해 상천하지에 아무도 열 사람이 없음을 알게 된 요한은 비통한 나머지 큰 소리로 통곡하며 울었다. ‘울었더니’(I wept: “내가 울었다”)란 에클라이온은 “비분강개하고 비참하여 계속 울었다”는 뜻이다. 요한이 이렇게 통곡하며 울었던 것은 ① 마땅히 보여줄 것을 약속받았음에도 불구하고(4: 1) 더 이상 볼 수 없음으로 두려워서 운 것이고 ② 계시내용가운데 구체적으로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알 수 없음으로 너무 안타깝고 답답하여 계시를 알고자 하는 열정으로 통곡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책이 얼마나 중요한 책이기에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 모든 피조물 중에서 그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사람이 없었는가? 보좌에서 하나님이 가지고 계셨던 그 책은
   ⑴ 그리스도의 속전의 책이다. 원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땅이었다. 땅과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을 아담에게 주셨기 때문에 지구와 삼라만상 모든 만물은 아담의 소유였었다. 그러나 아담하와가 마귀 유혹에 넘어가 불순종하고 범죄 해 마귀의 노예가 되므로 모든 소유권이 마귀에게 넘어갔다. 마귀의 소유권 주장을 보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For it has been handed over to me)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눅 4: 5-7) 광야시험에서 마귀는 ‘이 땅의 권세와 모든 영광은 아담이 자기에게 넘겨준 것이니 예수도 자기에게 한 번만 엎드려 절하면 그것을 줄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그래서 하나님의 정의의 법 앞에서 소유권을 보장받은 마귀는 자기 맘대로 수천 년 동안 세상을 유린하며 파괴하고 악행을 자행했다. 그러나 아담의 후손인 인간은 그 누구도 이 땅에 대해서 소유권을 주장할 권한과 능력이 없었기에 마귀의 종노릇만을 했다. 그러한 마귀의 만행과 종노릇은 예수께서 성육신하여 인류의 근족으로 계약서에 값을 지불하시기까지 계속됐다. 그렇다. 죄 없으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마귀와 아담이 맺은 매매계약서의 빚을 다 갚아 속전(贖錢)하시므로 인간은 비로써 빼앗긴 땅을 다시 찾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책이 바로 그 속전의 책이다.

   ⑵ 하나님의 심판의 책이다. 하나님 손에 들려진 책엔 예수의 속전으로 땅이 원래의 주인인 사람에게 되돌려지기 전에 먼저 인간이 마귀와 귀신에게 종노릇하며 지었던 죄로 더러워진 세상을 심판하여 파멸하시는 심판목록들이 낱낱이 기록돼 있다. 그래서 그 책은 심판의 책이다. 예수님이 일곱 인을 떼기 시작하면서 지구심판이 시작된 것은 바로 그 책이 심판의 책인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장차 성도들이 휴거되는 사건이 있자마자 지구촌엔 지구파멸의 심판과 재앙이 시작된다.

예수님이 일곱 인봉을 하나씩 뗄 때마다 지구촌엔 미증유(未曾有)의 처참하고 처절한 심판과 재앙이 임했는데 일곱 째 인을 뗄 때, 새로운 일곱 나팔재앙이 시작됐고, 하나의 나팔 재앙마다 가공할 경천동지의 새로운 심판저주가 하늘과 땅과 바다에 임했으며 일곱 째 나팔을 불 땐, 또다시 새로운 일곱 대접 재앙이 시작됐는데 하나의 대접 재앙마다 전대미문의 참혹한 심판저주가 임하면서 일곱 째 대접 재앙과 함께 지구의 종말이 올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오른손에 들려진 심판의 책 내용이다.

마치 불꽃놀이의 폭죽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공중에서 한 번 터진 후, 그 중의 불꽃 하나가 더 높이 솟아오르면서 일곱 개의 폭죽을 다시 한 번 터뜨리고, 다시 그 중의 하나가 더 높이 솟구쳐 올라가 높은 곳에서 일곱 개의 불꽃폭죽을 터뜨리듯, 일곱 인 재앙은 일곱 나팔재앙으로 계속되고, 일곱 나팔재앙은 다시 일곱 대접재앙으로 연결되면서 7년 동안에 지구촌을 파멸하게 될 것을 기록한 심판의 책이다. 그런 것이 기록된 심판의 책이건만 아무도 그 책을 펴거나 보거나 읽을 사람이 없으니 요한의 마음이 괴롭고 답답해 흐느끼며 통곡한 것이다.     

그때 보좌에 앉아있던 스물네 장로 중 하나가 절망 중에 오열하며 통곡하는 요한에게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고 했다. 하나님의 인봉된 책, 비밀에 감추어진 책, 아무나 열 수 없는 책을 열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이긴 자요 메시야이신 그리스도라는 말씀이다. 5절에서 ‘이기었으니’(Has prevailed: Has overcome)의 헬라어 이두 에두케센은 “보라”는 의미의 감탄사 이두와 “단회적으로 이겼다”는 에니케센이 합쳐서 “보라, (그가) 단번에 결정적인 승리를 쟁취했다”는 뜻이다. 유대 지파의 사자(The Lion of the tribe of Juda)요, 다윗의 뿌리(The Root of David)이신 예수는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승리를 약속하셨고, 최후에 인봉한 두루마리 인을 떼기에 합당한 자시며 온전한 승리를 성취하실 자란 의미이다. 그렇다. 하늘 위 천군천사들도, 땅 위의 어떤 사람도, 땅 아래의 어떤 흑암세력도 인봉한 하나님의 책을 펴거나 보거나 읽을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책의 인봉을 떼고 펴서 읽을 권세가 있다. 영광스런 하나님 보좌 우편 보좌에 앉아계신 이긴 자요, 이길 자이신 예수님이 우리 구주이심을 감사하며 예수님을 세세토록 높여드리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노예와 아내와 토지의 속전 등 세 가지 속전을 말씀하셨다. ⑴ 종과 노예의 속전이다. 어떤 사람이 빚을 갚을 수 없을 때, 채권자를 6년 동안 종이나 노예로 섬겨야 하고 6년이 끝나야 자유를 얻는데 중도에 충분한 배상금과 뜻이 있는 근속이 그 빚을 갚아주면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노예의 속전이다. ⑵ 남편이 자식이 없이 죽으면 형제가 형수와 결혼해 혈통을 이어주어야 한다. 계대결혼으로 자식을 낳음으로 아내는 자유를 얻는데 이것이 아내의 속전이다. ⑶ 사람이 땅을 팔았을 경우 50년 주기의 희년을 기다려서 그 땅을 돌려받는 토지의 속전이다. 그러나 희년 전이라도 땅 판 사람이 충분한 돈이 생기면 언제라도 땅값을 지불하고 되찾을 수 있지만 이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고, 그다음 돈 많은 근족이 채무자를 도울 마음이 생겼을 때, 빚을 갚아주고 땅을 다시 사서 본주에게 돌려주는 ‘토지 무르기’의 토지속전이다.

히브리 사람들은 형편이 어렵게 돼 땅을 팔 경우가 되면, 제사장이나 장로 두 사람이상의 증인 앞에서 두 개의 양피지 두루마리 책에 똑같은 항목의 계약서 두 개를 기록한다. 첫 번째 두루마리에 기록한 계약서 원본은 계약조항을 기록할 때마다 도장을 찍어 돌돌 말아서 일곱 인을 쳐서 봉한 후 성전문서 창고에 안전하게 보관해 두고, 두 번째 계약서인 계약서사본은 누구라도 계약서를 뜯어 계약조항을 위조하지 못하도록 펼쳐진 채 성전 서류심사대에 놓아 공적인 기록으로 여러 사람이 읽을 수 있게 한다. 만일 토지주인의 친족이 토지를 무르고 싶을 때는 먼저 성전에 찾아가 성전 서류심사대에 펼쳐진 계약서 사본의 계약조항들을 자세히 읽고 제사장에게로 가서 계약서 원본인 인봉한 책을 가져오도록 요구한다. 그리고 현재 땅주인에게 토지 무르기를 정식으로 요청한다. 그때 토지속전을 요구한 근족은 몇 사람의 유력한 증인 앞에서 자기가 옛 주인의 친족인 증거를 보여야 하고 제사장과 장로들이 보는 앞에서 현 주인에게 계약조건에 따라 은을 달아주므로 친족의 빚을 갚아주고 계약서 원본 두루마리의 인봉을 하나씩 뗀다. 일곱 개 인봉을 다 뗄 때까지 하나씩 계약조항이 이루어졌는가를 당사자들과 증인들 앞에서 확인한 다음 마지막 계약조항이 다 이뤄졌을 때 대 제사장은 “다 이루었다”(It is finished; 텔레오: “다 지불했다”)고 선언하는데 제사장의 이 선언과 함께 현주인과 옛 주인과의 매매계약은 해약이 되어 무효가 되며 토지주인이 다시 바뀌어 진 것을 제사장이 선언함과 동시에 그 계약서 두루마리는 불태워 버린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It is finished; 텔레오:"다 지불했다“)고 선포하신 것처럼 히브리인의 세 가지 속전 중 아내의 속전은 예수님의 신부인 신약성도들이 휴거하므로(계 4: 1) 해결됐고, 노예의 속전은 하나님의 자녀들(롬 6: 22)이 부활하여 영생을 얻음으로 모든 억압에서 자유를 얻었기에 해결됐다. 이제 마지막 남은 속전은 토지의 속전인데 이것은 예수님이 일곱 인봉한 책을 떼시는 7년 대환난, 일곱 인 재앙에서 일곱 나팔재앙, 일곱 대접재앙이 끝남과 동시에 해결된다. 대제사장이 ”다 이루었다“고 선언함과 동시에 매매계약서 두루마리를 불태우고 토지주인이 바뀌듯이 일곱 인 재앙의 마지막인 일곱 대접재앙이 끝남과 동시에 지구촌의 주인이 바뀌는데 그것이 천년왕국이다. 토지의 속전과 함께 천년왕국의 주인들이 되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2. 책을 받으신 어린양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어린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6-7절)

하나님의 손에 있는 속전의 책과 심판의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자격 있는 자가  하늘 위, 땅 위, 땅 아래 어느 곳에도 없음을 깨닫고 안타깝게 통곡하던 요한이 “유대 지파의 사자요 다윗의 뿌리인 하나님의 어린양이 그 책과 일곱 인을 떼실 것이라”는 장로의 말을 듣고 용기를 얻어 얼굴을 들어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스물네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좌 우편 당신의 보좌에서 일어서서 계시는데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바로 그 예수님이다. 그리고 잠시 후 예수님은 가운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 손에서 그 책을 취하셨는데 그때 어린양 예수님의 머리에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었다. 이것은 예수께서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지신 괴물이란 뜻이 아니다. 성경에서 뿔은 힘을 상징하고 일곱은 완전을 상징하니 어린양의 일곱 뿔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사 세상에 다시 오실 예수님은 완전무결하신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분이란 뜻이며, 일곱 눈은 예수의 초림과 공생애에 하나님의 일곱 영으로 함께하셨고 예수의 지상 재림에 함께 하실 완전하신 성령(사 11: 1-2)을 가리킨다. 

그다음 “책을 취하시니라”(He came and took the book out of the right hand of Him who sat upon the throne:“그가 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였다”)에서 ‘취하시니라’, 에일레펜은 기업의 증권을 받듯 “권위와 권한을 당당하게 받는 것”을 의미하니 예수께서 세상을 심판하는 권세(요 5: 27)와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성취시킬 권세를 부여 받는 것을 가리킨다. 이제부터 지상에 있게 될 칠년 대환난의 심판과 천년왕국과 새 하늘 새 땅의 영원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예수께서 주관할 것이란 의미이다. 이런 특권, 이런 권세는 유사이래(有史以來) 하늘 위에 어떤 영적인 존재도, 땅 위에 어떤 인간에게도, 땅 아래의 어떤 존재에게도 부여된 일이 없는 유일무이한 일이다. 오직 그 몸으로 세상 죄를 지고 죽으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만 주신 특권인 것이다.

요한은 지금 하나님의 보좌 우편 보좌에 앉았다가 보좌에서 일어서서 하나님께 책을 받고 있는 그 어린양 예수님을 보고 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인류의 중보자임을 보이고 계신 예수님, 당신의 보혈로 인류를 구원하심을 중보하시는 예수님, 죽으셨다가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하신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그 그리스도에게 하나님이 일곱 인봉한 책을 넘겨주시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마치 부왕이 왕자에게 왕권을 양도하고 왕위를 계승해주는 대관식(戴冠式)장면과 흡사한 광경이다. 이렇게 인봉한 책을 넘겨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예수님께 세상을 심판하는 전권을 넘겨주심을 의미한다. 

어린양(Lamb, 아르니온)은 계시록에서 29번 언급된 단어로 “갓 난 새끼어린양, 갓 난 귀염둥이 어린양”이란 뜻으로 속죄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히브리인들이 430년 만에 이집트에서 나오던 날 저녁,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 죽인 후 그 피를 문인방과 문설주에 바르고 양의 고기를 먹었는데 그 어린양이 바로 ‘귀염둥이 어린양’인 것이다. 그들은 어린양을 우리에서 끌어다가 당장에 잡지 않았다. 전승에 의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귀염둥이 어린양을 끌어다가 사흘 동안 집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먹고 자게 했다. 새끼 짐승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사흘 동안 어린양과 놀고먹으면서 친숙해졌고 정이 들었다. 입을 맞추고 밥을 먹여주며 끌어안고 함께 자기도 하면서 한 가족처럼 지냈다. 그런데 사흘 만에 그 양을 죽여야 한다. 아이들과 어른들은 아쉬워하며 울면서 그 양을 죽인다. 그래서 귀염둥이 어린양의 죽음은 하나님의 심정을 우리에게 체험케 해주는 표상이다.
독생자 예수님은 하나님께 하나밖에 없는 귀염둥이 어린양이셨다. 하나님과 그 영광과 존귀와 권세와 능력이 동등하신 아들이시며, 천지창조 사역에서부터 함께 일하신 하나님의 외아들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아들을 우리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으니 그때의 하나님 심정이 얼마나 쓰라리고 아프셨을까?

유월절에 귀염둥이 어린양의 죽음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출애굽의 역사가 있었듯이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류는 죄에서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유일한 인류구원의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러기에 Post-Modernism, 종교다원주의, New-Age Movement, 세계 교회협의회(WCC: World Council of Churches)는 천부당만부당하다. 이러한 운동과 사상은 죄 용서와 구원과 영생과는 상관이 없다. 하나님의 어린양만 구주로 믿고 경배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3. 삼중찬양

하나님께서 어린양 예수님께 인봉한 책을 넘겨주시면서 세상의 구속과 심판을 위한 왕권을 위임하자 하늘에서는 어린양을 향한 우주적인 찬양과 경배가 시작됐다. 첫 번째로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경배한 것은 피조물의 대표인 네 생물과 구속받은 구약성도와 신약성도의 대표인 스물네(24) 장로들이었다.

   ⑴ 네 생물과 스물네 장로의 찬양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네 생물과 스물네 장로들은 겸손과 최상의 감사표시로 거문고로 예수님을 찬양하고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드리면서 예수님을 찬양했다. 저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전통적인 악기 거문고를 뜯으며 찬양했고, 하나님께서 기도를 제사의 향기로 인정하셨듯(창 8: 21, 신 33: 10, 시 141: 2) 향이 가득한 기도의 금 대접을 드리며 새 노래로 예수님을 찬양했다. 그러므로 네 생물과 스물네 장로들이 거문고 찬양과 금 대접의 향을 드린 것처럼 장차 구원받은 성도들이 천국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경배할 수 있는 것은 찬양과 기도이다.

하늘에서 네 생물과 스물네 장로들이 새 노래로 주님을 찬양했듯 장차 우리가 부활성도와 휴거성도로 하늘에서 찬양할 노래는 새 노래인데 새 노래(A New Song)란 “질적으로 새로운 노래”(시 33: 3, 40: 3, 96: 1, 98: 1)를 말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사역으로 성취된 구원완성에 대한 새로운 노래이다. 그래서 계 4장에서 네 생물과 스물네 장로의 하나님 찬양이 하나님의 창조역사를 찬양한 것이라면, 본 구절에 저들의 어린양 찬양은 그리스도의 구속역사를 찬양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구속역사를 찬양하는 하늘의 대찬양제, 새 노래 합창제에 참여하는 복된 날이 모두에게 있기를 축원한다.

네 생물과 스물네 장로와 수백만 성도들이 거문고에 맞춰 불렀던 새 노래찬양은
   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 떼기에 합당하신 분이다’였다
“합당하시도다”(You are worthy!), 악시오스는 “충분한 자격이 된다”는 뜻으로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십자가 사역은 책의 인봉을 떼기에 충분한 조건이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 일찍이 역사 가운데 죽으신 그리스도의 죽음은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는 선언과 함께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영원한 조건을 갖추었다. 그래서 우리의 영원한 찬양, 땅에서의 찬양과 천상에서의 찬양제목은 ‘예수의 보혈’뿐이다.

   ② ‘그리스도의 구원은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 된다’였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9)는 특정한 인종적, 언어적, 집단적인 의미가 아니라 전 세계의 보편적인 인류를 구원하셨음을 의미한다. “피로 사서”의 에고라사스...엔 토 하이마티는 “자기 피를 대가로 지불하여 시장에서 물건을 사듯 우리를 샀다”는 뜻이다. 그렇다. 사람들이 자기 피를 팔아 음식을 사서 굶고 있는 자식들을 먹여 살리고, 자기 피를 팔아 그 돈으로 착한 일을 하듯, 예수님은 자신의 희생과 죽음을 지불하고 지구촌 모든 인류를 단번에, 결정적으로 샀는데 그 이유는 누구든지 예수 믿어 멸망치 않고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다.
 
   ③ ‘구원받은 성도들을 하나님께 드리심’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나와 당신을 구속하신 목적은 우리들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하나님께 돌아와 그의 백성이 되게 하고 그에게 순종하게 하심이다.

   ④ ‘성도들을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 삼으신 것’이다. “나라”(kings)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아 예수와 함께 왕 노릇할 집합적인 그리스도의 공동체(계 1: 6, 20: 6)를 의미하고, “제사장 삼으신 것”은 구약에서 선택된 제사장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갈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이제 신약성도들이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개인이 직접 하나님께 담대히 나가며 섬기고 찬양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⑤ ‘성도들에게 왕적권세를 주신 것’이다.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10하)는 예수의 속전을 믿고 받아드림으로 성도들은 현세에서 마귀와 죄와 세상과 자신과 물질을 왕적권세로 통치하며 살 수 있고, 그리스도의 천년왕국 때에 왕 노릇하며 살 수 있으며, 영원 천국에서도 왕권을 가지고 살 수 있게 됨을 가리킨다. 이것이 네 생물과 스물네 장로의 찬양이었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천국에서 부를 찬양이다.

      
   ⑵ 천군천사의 찬양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11-12)

두 번째로 보좌를 둘러서서 에워싼 채 하나님의 책을 받으시는 그리스도의 왕권위임을 찬양한 무리는 천군천사들이었는데 그들의 수는 만만(萬萬)이요 천천(千千)이었다(The number of them was myriads of myriads and chiliads of chiliads; ten thousand times ten thousand and thousands of thousands) '만만과 천천'은 “셀 수 없는 수”(Countless numbers: 히 12: 22, 단 7: 10)라는 Hebraism(헤브라이적 어법) 표현이다. 예수께서 부활성도와 휴거성도를 하늘로 끌어올려 하나님 앞에 서시는 날, 하나님께서 속전의 책과 심판의 책을 예수께 주시며 왕권위임을 하시는데 그때 Myriads of myriads, Chiliads of chiliads(수로 셀 수 없는, 불가승수의 수만, 수십만)의 천사들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를 옹위하고 하늘나라가 흔들리도록 우렁차게 찬양할 것이다.

그들의 찬양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Worthy is the Lamb that was slain to receive power, and riches, and wisdom, and strength, and honour, and glory, and blessing: 12절)였다. 죽음을 자원하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어린양 예수님은 만물을 다스릴 능력과 세상을 심판할 권세, 부요함과 지혜, 악과 대적을 멸망시킬 힘과 존귀, 영광과 찬송의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자격자라는 찬양이다. 범죄로 타락하여 마귀에게 구속(拘束: 자유를 억제함)당했다가 그리스도의 피로 속전(贖錢)받은 성도들과 천지만물의 대표인 네 생물과 스물네 장로들의 찬양(9-10)에는 값을 지불하고 사람들을 사신 예수의 피(His blood)가 있었고 보혈공로로 나라와 제사장과 왕 노릇하게 된 감격과 감사가 있었지만 타락 경험이 없는 천사들에겐 그런 감격의 찬양보다는 영광의 찬양만이 있었다. 그래서 네 생물과 스물네 장로들은 어린양의 보좌 앞에 엎드려 찬양했고 천군천사들은 보좌 주위에 서서 하나님과 어린양을 찬양했다. 불원간 천국에서 그런 영광의 장면들이 당신 앞에서 펼쳐질 수 있길 축원한다.

성경 66권에 나타난 ‘천사들의 찬양’을 본다. 성경에 기록된 천사들의 찬양은 ①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욥 38: 7)였고 ② 구주 예수께서 육신의 몸으로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눅 2: 13)였으며 ③ 하늘에서 하나님이 인류의 구속을 완성하신 어린양 예수께 속전과 심판의 책을 전해주실 때(계 5: 11-12) ④ 대환난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보좌 앞에서 구원의 감격을 찬양할 때(계 7: 11-12) ⑤ 예수께서 세상을 심판하고 천년왕국을 세우기 위해 지상에 재림하실 때(계 19: 6-9)등 아주 중요하고 특별한 때였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하나님께 인봉한 책을 받으시는 사건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가 큰 사건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 예수께서 하나님께 인봉한 책을 받는 것은 마귀유혹으로 범죄 타락한 인류와 지구를 심판하고 파멸할 권세위임의 대관식 표시이고, 처음 지구촌과 에덴동산이 아담의 소유였던 것처럼 구속받은 성도들이 예수께서 새롭게 만드실 지구촌의 주인이 돼 예수와 함께 천년왕국을 통치할 표징이기에 천군천사들이 함성으로 그것을 찬양하는 것이다.
 
   ⑶ 만물의 찬양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하니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13-14절)

네 생물과 스물네 장로들의 찬양과 천군천사들의 합창에 이어 세 번째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찬양을 드린 무리는 하늘 위, 땅 위, 땅 아래, 바다 위에 있는 모든 만물이었다. 삼라만상의 피조물들은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만물이 속한 전우주의 구속을 성취하신 어린양과 창조주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다. 이제까지 굴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허무한데 굴복하며 탄식하며 고통하던 만물(롬 8: 20-22)이 예수님의 속전의 은혜를 찬양하는 것이다. 그날에 비로써 시 148, 149, 150편에서 작자미상의 시편작자들이 “하늘의 하늘들과 하늘나라의 천사들과 저 공중의 해와 달과 별, 바다와 용들과 어족들, 불과 우박과 눈과 안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는 광풍(Stormy wind)까지, 산과 나무와 짐승과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들, 그리고 세상의 왕들과 백성과 방백과 사사들, 청년 남자와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까지...호흡이 있는 자마다(Everything that has breath)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외쳤던 기도의 소원들이 성취될 것이다.

하늘 위와 저 공중, 땅과 바다와 삼라만상 모든 피조만물의 찬양이다. 보좌 위에 앉으신 하나님과 앉으셨던 당신 보좌에서 일어나 하나님께 일곱 인 봉한 책을 받으시는 어린양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 만물의 찬양이 있자 먼저 찬양을 드렸던 네 생물은 아멘으로 화답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는 것으로 장엄한 어린양의 대관식(戴冠式)은 끝난다.

왕의 대관식이 끝난 후 예수님은 세상의 심판자로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계시록 6장부터 시작되는 7년 대환난이다.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다”(시 110: 1)고 예언한대로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는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고 ‘원수들을 발등상 되게 하는 심판사역’이 시작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자원하셔서 인자가 되신 것(요 5: 27)과 십자가 죽음을 자청하신 것(요 10: 18)의 보상이다. 주의 십자가 은혜에 감사하여 자원하여 충성 헌신하는 성도들에게도 주님의 보상이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밤, 필라델피아의 작은 삼류 호텔에 노부부가 들어왔다. 그들은 매우 피곤해 보였다. 노신사가 젊은 호텔지배인에게 호소하듯 말했다. “젊은이, 제발 방이 없다고 말하지 마세요. 내 아내와 나는 머물 곳을 찾기 위해 이 도시를 온 종일 헤매고 다녔답니다. 우리는 이 도시에서 이렇게 큰 집회가 열리고 있는 줄은 몰랐어요. 평소에 투숙했던 호텔들은 만원입니다. 우리 부부는 지쳐서 더 이상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너무 늦었습니다. 제발 우리에게 줄 방이 없다고 말하지 마세요”

젊은 지배인은 노부부를 한 참 바라보다가 “글쎄요. 제 방을 제외하고는 여기도 빈방이 없습니다. 저는 낮에 자고 밤에 일합니다. 제 방이 다른 방들처럼 훌륭하진 않지만 깨끗하긴 한데...어떠세요. 오늘 밤 제 손님이 돼 주신다면 기쁘겠습니다만  ...”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노신사의 아내가 감사에 넘친 얼굴로 “God bless you. Young man!(“하나님이 축복하길 바랍니다. 젊은 양반”)

다음날 아침, 식당에 나온 노부부는 웨이터를 젊은 지배인에게 보내 ‘매우 중요한 일로 만나보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노부부를 알아본 젊은이는 ‘지난 밤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노부부는 매우 정중하게 감사를 표시했다. 그리고 나서 노신사는 젊은 지배인이 놀랄 정도의 제안을 했다. “당신은 이런 삼류호텔에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사람입니다. 나를 위해 뉴욕에다 크고, 아름답고, 호화로운 호텔을 지어 그 호텔 총지배인이 돼주지 않겠습니까?” 젊은 지배인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지난 밤 잠자리가 불편해 노부부의 정신에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이상이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의 감정을 자극시키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젊은 지배인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것 참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그러자 노신사는 매우 만족스러워하며 명함을 주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내 이름은  존 야곱 아스톨(John Jacob Astor)입니다” 노신사는 당대에 세계적인 갑부였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왈도르프 아스토리아 호텔(Waldorf Astoria Hotel)이 지어지게 됐고 ‘자기 방을 내주었던’ 그 삼류호텔의 젊은 지배인은 일약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 경영인이 되었다. 1976년, 뉴욕의 47층짜리 왈도르프 아스토리아 호텔은 객실 1,900개에 연간 75만 명 손님을 수용하는 세계적인 호텔로 지어진 후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예수님께 당신의 방을 빌려드려라. 하나님께 속전의 책과 심판의 책을 받으실 예수께 당신의 가장 중요한 것을 헌신하라. 바울은 말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 58)

그렇다. 주 안에서 힘써서 하는 당신들의 수고는 어떤 하찮은 일도 결코 헛된 일이 아니다. 내가 수고한 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과 우리 주님의 보상이 있다. 그러므로 “견고하며”(Be steadfast; 헤드라이오스: Be seated, settled, and firm in the truth of the resurrection and of victory in Christ: “그리스도 안에서의 승리와 부활의 진리 안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움직이지 않도록 마음을 잡으며 변하지 말라”), “흔들리지 말며”(Unmoveable; 아메타키네토스: Let nothing shake your faith or move you away from the hope of the gospel: “너를 복음의 소망에서 멀리 떠나게 하거나 흔들리게 할 것이 없게 하라”),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라”(Always abound in the work of the Lord, knowing that what you do will be rewarded: “당신이 하는 일에 상급이 있음을 알고 주의 일에 충만해 있으라”)

그래서 바울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남들보다 감옥에 갇히기를 더 많이 했으며 매도 수없이 맞았고 여러 번 죽을 고비를 겪었으며 예수와 복음을 위한 수많은 위험들을 피하지 않았고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수고하며 애쓰고 자지 못하고 목마르며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기까지 했던 것(고후 11: 23-28)이다.

주 안에서 하는 당신의 수고와 헌신은 크고 작은 것 모두에 상급이 있다. 주일마다 음식을 만들어 봉사하고, 꽃을 드려 헌신하며, 찬양으로 악기로 물질로, 몸으로 시간으로 수고하는 모든 것과 전도하여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수고하는 것까지 헛된 일이 아니다. 주께서 일한대로 갚으시는 그날, 많은 상급과 축복이 있게 되기를 축원한다.   




김엘리야 목사(워싱톤주기도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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