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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05월16일 20시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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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보좌와 찬양과 경배

1991년 미 동부지역 50여명의 목사들과 함께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할 때였다. 버스에 몸을 싣고 데가볼리 지방을 지나던 중 낯익은 장소가 보여 나는 전기에 감전된 듯 충격을 받았는데 그것은 난생 처음 오는 장소였지만 그 당시 10여 년 전에 내가 꿈에 왔었던 장소와 사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버스에 동승한 동료 목사들에게 잠시 후면 어떤 길이 나오고 어떤 환경이 전개될 것이라 이야기 했는데 실제로 그런 상황을 만나므로 동료목사들과 내가 함께 놀라며 신기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 이후 미국과 한국 그리고 여러 나라 선교지역들을 다니면서 20년 30년 전에 꿈에 왔었던 여러 장소들을 보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주심을 감사한다. 그날 이후 새로운 나라나 장소를 여행할 때마다 은근히 그런 일들 기다려지는 것이 습관이 됐다. 

지난 5월 14일부터 24일까지 10박 11일 동안 프랑스 파리에서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스위스, 이태리와 로마교황청까지 일곱 나라, 5,000km 이상의 종교 개혁지 순례에서도 세 장소에서 그런 경험을 했는데 첫 번째는 여행 넷째 날, 지금은 식당으로 변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에서였다. 루터가 12주간 동안 머물면서 라틴어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다는 아이제나흐 식당에 도착했을 때,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고 머리털이 곤두서는 경험을 했는데 그곳은 수년 전에 내가 꿈에 왔었던 장소였기 때문이다. 나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그곳에서 동행들과 사진을 찍으면서 그리고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는 식당 앞 바위산에 올라가 세계 각국의 많은 여행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큰 소리로 하나님을 합창하면서 그리고 여행 내내 왜 하나님이 이곳을 방문케 했을까를 생각하면서 나의 사명을 다짐했었다. 두 번째는 스위스의 고산도시 Interlarken에서 만년설로 뒤 덮인 알프스의 절경들을 구경하고 호텔로 돌아오던 중 한 폭의 사생화 그림 같이 아름다운 초원의 알프스 산장을 보았을 때였고, 세 번째는 여행 여섯 째 날 새벽, 인공으로 도시 한 가운데를 물이 흐르는 강에 여의도처럼 호텔 앞뒤로 강물이 흐르다가 호텔과 여러 건물이 있는 작은 섬 도시 끝에서 물이 다시 만나는 스위스의 산장마을 Freienhof Thun(후라이엔호프 툰) 호텔에서였다. 그날 새벽에 일찍 일어난 나는 갑자기 산책을 하고 싶어서 읽던 성경을 덮어두고 혼자 강변을 따라 2-3마일을 걸었는데 호텔 앞뒤로 흐르던 강물이 하나가 되는 장소에 도착했을 때, 내가 7-8년 전 꿈에 와서 나무다리를 건넜던 똑같은 장소가 나타나므로 나는 나무다리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아침 안개에 뒤덮인 고요한 도시와 말없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흥분과 감격 속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두 손을 들고 “나의 꿈을 확인시키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렸다. 그리고 버스에서 주일예배(주님의 은혜와 동행들의 사랑으로 주일설교를 하다)를 드리고 이태리 밀라노를 향해 달리는 내내 그날 아침의 감격을 반추하고 만끽하며 여행했다.
김목사가 꿈을 통해 경험한 것처럼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꿈이나 환상이나 계시를 통해 그것을 미리 보든지 어떤 사물을 미리 보거나 미지의 장소를 미리 가보는 사전경험을 심리학에서는 Presignify(예시:豫示)라고 하는데 성경엔 의외로 그런 예지와 예언의 기록들이 많이 있다. 구약의 사대 선지자인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도 그런 경험을 많이 했고 호세아에서 말라기까지 12명의 소선지자들도 그런 경험들을 했으며 특히 밧모 섬에서 계시들을 기록한 사도 요한의 묵시록은 90%이상이 Presignify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성경에 14명(14 Dreamers)이 꾼 34개의 꿈(34 Dreams)의 기록에서, 들판의 양과 염소가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을 미리 보았던 야곱의 꿈(창 31: 10-13)과 처자식을 데리고 도망가는 야곱을 추격해 복수하려던 라반에게 모든 상황을 미리 보여주신 꿈(창 31; 24), 헤롯의 살수를 피해 마리아와 예수를 데리고 이집트로 미리 도피한 요셉의 꿈(마 2: 13), 예수 때문에 악몽에 시달렸던 빌라도의 아내, 클라우디아 프로큘라(Claudia Procula; 마 27:19)의 꿈, 유라굴로 풍랑에서 14일 동안 있었던 생명의 위험과 하나님의 보호를 미리 보았던 바울의 꿈(행 27: 23-24)들은 모두 Presignify(예시)였다.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자기 백성을 눈동자처럼 지키시는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이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 종들에게 꿈과 환상과 계시로, 말씀과 음성과 감동으로, 영감과 직감과 느낌으로 미리 보여주시고 알려주시며 깨닫게 함으로 당신의 살아계심을 경험케 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당신에게 그 축복이 구체적으로 역사되는 은혜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하나님의 보좌와 찬양과 경배

성령의 감동으로 에서버 두사빌라(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필라델피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게 편지를 써 보내라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듣고 주님께서 계시해 주시는 대로 계시록 1장과 2, 3장의 일곱 편지를 다 기록하자 요한에게 ‘하늘에 열린 문’이 보이는 동시에 “이리로 올라오라(Come up here!) 이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I will show you things which must take place after these things)는 나팔소리 같은 우렁찬 음성이 다시 들리면서 요한은 눈 깜짝 할 순간에 하늘로 올라갔는데 이것은 장차 성도들이 휴거할 것의 예표로 요한이 경험한 사전 휴거경험이었다.

하늘이 열린 것은 구약에서 야곱(창 28: 12-17)과 욥(욥 1; 6-12, 2; 1-6), 미가야(왕상 22: 19)와 이사야(사 6: 1-3)와 에스겔(겔 1: 1)이 보았고, 신약에선 나다나엘(요 1: 51)과 스데반(행 7: 56)과 베드로(행 10: 11)가 보았는데 그들은 지상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하늘이 열린 상태에서 하늘의 계시와 환상을 보았지만 계시록에서 요한은 하늘이 열린 후 “이리로 올라오라”는 주님의 음성과 함께 사람이 열린 대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가듯 직접 하늘에 올라가서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와 네 생물과 24장로들과 천사들 그리고 14만 4천의 유대인 전도자들을 보았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께서 보여주시는 많은 계시들을 보았다.

그래서 계시록 4장부터 22장까지는 휴거체험으로 하늘에 올라간 요한이 하늘에서 전개될 사건들과 칠년 동안에 땅에서 일어나게 될 사건들 그리고 영원한 천국인 새 하늘 새 땅에서 일어날 사건들을 직접 보고 들은 내용인데(계시록 16장과 19장에서만 “내가 들으니”로 시작되고 나머지는 모두 “내가 보니”로 시작된 것은 4장 이후 22장까지의 내용은 요한이 직접 보고 들은 계시란 의미이다) 이것은 장차 대환난이 있기 전 성도들이 공중으로 들림 받아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간 후, 하늘들의 하늘인 셋째 하늘, 삼위일체 하나님과 성도들과 천사들이 있는 저 천국하늘에서, 하늘에서 전개될 여러 가지 사건들과 지상에서 일어나게 될 많은 사건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부활 승천한 성도들과 휴거된 성도들이 하늘나라천국에서 칠년 동안, 하늘에서와 지상에서 일어날 사건들을 모두 보고 들을 것도 가리킨다. 그렇다. 새 예루살렘으로 들림 받은 부활 성도와 휴거성도는 요한처럼 하늘에서 펼쳐지는 모든 영광스런 사건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 들을 것이며 동시에 지상에서 있게 될 칠년 대환난의 참담하고 처참한 사건들을 낱낱이 보고 들게 될 것이다.

계시록은 성경대로 “반드시 속히 될 일”(계 1: 1), “장차 될 일”(1: 19), “이 후에 마땅히 될 일”(4: 1), “결코 속히 될 일”(22: 6)을 하나님께서 예수께, 예수께서 천사에게, 천사가 요한에게, 요한이 아시아의 일곱 교회와 전 세계성도들에게 전해 준 말씀이다. 그렇다. 예수의 신부로 준비된 성도들이 찰나적인 순간에 들림 받아 하늘로 휴거하는 전대미문의 사람 증발사건과 지구가 심판의 불에 타서 파멸되는 칠년 대환난과 예수님이 지상으로 재림하셔서 천년왕국을 이루시는 역사의 Spectacle한 파노라마는 The things which shall take place(장차 될 일)인데 그것은 ‘반드시’, ‘마땅히’, ‘결코’, 그리고 “속히 될 일”(The things which must shortly come to pass)이다. 이것은 어떤 이들의 조롱과 비난처럼 사람이 만들어 낸 황당무계한 이야기도 아니고, 이미 지나간 이야기도 아니며, 주연과 조연의 사정 따라 영화 내용이 바뀌듯 인간들의 계획이나 의지에 의해 변경될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모든 계획이 ‘반드시, 속히, 결코, 마땅히’ 이루어지는 주의 날이 가까이 왔음을 깨달아 예수 신부로 준비하여 영광스럽게 들림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1. 예수님의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

성도 휴거의 예표로 요한이 하늘에 올라갔던 휴거체험은 예수님의 재림이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 두 가지 재림이 있음을 증명하고 시사한다. 그런데 일부 신학자들과 성도들이 예수의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을 “일회 재림으로”, 또는 “동일사건”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은 전혀 다른 별개사건으로 기록하고 있다. 예수의 공중 재림은 성도들을 휴거시키기 위해서, 성도들을 위해서 공중으로 오시는 사건이고, 지상 재림은 성도들과 함께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세상에 오시는 사건이다(살전 3: 13, 4: 14-17, 유 1: 14-15, 단 7: 10)

   1) ‘성도들을 위해’, ‘휴거를 위해’ 오시는 공중 재림

성경은 확실하게 ‘공중으로 재림하실 주님’은 수억 개의 별들이 떠있는 저 광활한 우주공간 그 건너편인 하늘 공중(Heaven), 새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을 만나시기 위해 ‘성도들을 공중으로 끌어 올려가겠다’고 말씀했다(① 눅 21: 34-36 ② 요 14; 1-3③ 고전 15; 51-58 ④ 엡 5; 25-27 ⑤ 빌 3: 11, 20-21 ⑥ 골 3; 4 ⑦ 살전 4: 13-18 ⑧ 살후 2; 1, 7-8 ⑨ 약 5; 7-8) 그리고 저 공중은 막연한 우주공간이 아니라 계시록(21; 2, 10)에서 ‘예수의 신부’로 설명된 거대한 Planet(유성) 신천신지의 수도 새 예루살렘이다.

   2) ‘성도들과 함께’,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 오시는 지상 재림

구약의 선지자들과 예수님과 사도들은 예수께서 부활한 성도들과 휴거한 성도들을 지상으로 다시 데리고 올 것을 여러 차례 말씀하셨는데(① 단 7: 13-14 ② 슥 14: 1-5, 9, 16-21 ③ 마 24; 29-31 ④ 마 25; 31-46 ⑤ 살후 1; 7-10, 2; 7-8 ⑥ 유 1; 14-15 ⑦ 계 1; 7) 이것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한 주님의 현현이다.

성경대로 예수님의 공중 재림(고전 15: 51-52, 살전 4: 16)은 “주님의 호령”(A shout)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The trumpet of God)로 오시고, 구름 타고 흰 말 탄 기마부대와 함께 능력과 큰 영광중에 오시는 지상 재림(마 24: 30-31)도 “큰 나팔소리”(A Great Trumpet)와 함께 오신다. 그래서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은 모두 큰 나팔소리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공중 재림의 나팔소리는 경천동지할 우렁찬 소리이지만 모든 사람이 다 알아듣지 못할 큰 나팔소리(출 20: 18-19, 히 12; 18-21, 26)일 것이고 지상 재림의 나팔소리는 지구촌 모든 사람이 똑똑하게 들을 수 있는 두려움과 공포의 나팔소리일 것이다. 이렇게 공중 재림의 휴거 나팔소리는 죽어 무덤 속에서 잠자는 성도와 휴거가 준비된 살아있는 성도에게는 부활과 휴거의 신호나팔이 될 것이고 휴거 준비가 안 된 사람들에겐 지축을 흔드는 거대한 뇌성벽력이나 경천동지할 굉음(요 12: 27-39)으로만 들릴 것이다. 그래서 공중 재림 나팔소리는 두 사람이 잠자리에 누워있고, 두 여자가 맷돌을 갈고 있으며, 두 사람이 밭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는 ‘사람 증발사건’이 일어나도 사람들이 그것을 깨닫거나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느 날 지구촌에 주님의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질 때 그 나팔소리를 듣고 Trumpet 소리와 함께 영광의 부활체로 변하여 하늘로 들림 받아 올라가는 축복의 휴거성도가 되길 축원한다. 
    
그 다음 세상을 심판하고 천년왕국을 세우시기 위해 지구촌에 다시 오시는 예수님의 지상 재림 나팔소리는 지구촌 모든 사람이 듣게 될 것인데 이것을 확실하게 증거한 사람들은 구약에 21명, 신약에 9명이 있으니 먼저, 구약의 21명은 ⑴ 에녹(유 1: 14-16) 에녹은 지상 재림할 예수께서 경건치 않은 자들의 불경건한 모든 언행을 심판하시는데 그들은 동성연애를 포함한 모든 도덕적 타락자들과 권위를 업신여기는 자들, 영광을 훼방하는 자들, 짐승처럼 본능의 욕구만을 추구하는 육체를 더럽히는 자들이다(유 1: 8-10) ⑵ 야곱(창 49: 10) ⑶발람(민 24: 7, 17-18) ⑷ 모세(신 4: 27-31, 30: 1-11, 31; 29) ⑸ 욥(욥 19: 25-27) ⑹ 다윗(시 22: 26-31, 72: 1-17) ⑺ 에단: 여두둔(시 89: 1-37) ⑻ 작자 미상의 시인(시 102; 16) ⑼ 이사야(사 9: 6-7) ⑽ 예레미야(렘 3: 14-25, 23: 5-6) ⑾ 에스겔(겔 38: 19-23, 39: 21, 43: 7) ⑿ 다니엘(단 2; 44-48, 7: 10, 13)⒀ 호세아(호 3: 4-5, 5: 16, 11:9, 13: 10) ⒁ 요엘(욜 2: 1-11, 3: 1-21) ⒂ 아모스(암 1; 2, 9: 11-15) ⒃ 오바댜(옵 1; 16-21) ⒄ 미가(미 1: 3-4, 4; 1-7) ⒅스바냐(습 1: 7-8, 14-18, 3: 8-20) ⒆ 학개(학 2: 6-9, 21-23) ⒇ 스가랴(슥 2: 10-11, 8: 3-8, 23, 12: 1-14, 13: 8-9, 14: 1-21) (21) 말라기(말 3: 2-5, 4: 1-8)이고, 그다음 신약의 9명은 ⑴ 예수님 자신(마 16: 27, 19: 28, 23; 38-39, 24; 1-25: 48, 26: 64, 눅 21장, 막 13장 등) ⑵ 베드로(행 3: 20-21, 벧전 1; 7, 13, 벧후 1; 16, 3: 3-4) ⑶ 예수의 동생이며 예루살렘 교회 감독인 야고보(행 15: 13-18) ⑷ 바울(롬 11: 25-27, 살전 1; 7-10, 살후 2: 1, 8-12, 딤전 6: 14, 딤후 4: 1, 8, 딛 2; 13, 히 9: 28) ⑸ 사도 요한(요 14; 28, 계 1; 7, 11: 15, 16: 15, 19: 11-21, 22: 20) ⑹ 천사들(행 1; 11, 눅 1; 32-33) ⑺ 성찬식(고전 11; 26) ⑻주기도문(마 6: 10) ⑼ 예수의 동생 유다(유 1; 14-25) 등이다.

이렇게 성경은 예수님의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을 전혀 다른 별개사건으로 말했다. 그래서 계시록 4장의 사건은 ‘성도의 휴거 사건’이다. 만일 그것이 휴거사건이 아니라면 계 19장에서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예수와 함께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는 성도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언제 하늘로 올라갔는가? 하늘로 올라간 적이 없던 사람들이 어떻게 하늘에서 내려올 수 있는가? 대환란에서 순교 당했다가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간 성도의 기록(계 6: 9-11,7: 13-14, 15; 2-3절)이 부분적으로 있긴 하지만(그것은 대대적인 휴거는 아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고 사도들이 기록한 “시험의 때를 면하고 휴거한 성도”(계 3: 10)와 “장차 올 모든 일인 대환난을 피하고 인자 앞에 선 휴거 성도”(눅 21; 36)와 “불법의 비밀인 적그리스도가 활동하기 전에 하늘로 옮겨진 성도”(살후 2: 7), “대환난의 노하심에서 구원받은 성도”(살전 5: 9)의 기록”(눅 21: 36)은 계시록 어디에 있는가? 이 사실을 계시록 4장만큼 확실하게 보여준 말씀은 없다. 따라서 계 4장은 성도의 휴거에 대한 말씀이다.

   2.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싸고 있는 일곱 가지(2-11)

하늘에 올라간 요한은 먼저 보좌를 보았고 보좌 위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았다(2-3절) 이것은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우주의 모든 섭리와 통치는 하늘천국 중심부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에 의해 이뤄지고 있으며 그 통치는 완전한 것임을 의미한다. 이제 하늘에 올라간 요한이 하늘에서 본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싸고 있는 일곱 가지’를 알아본다.

   ⑴ 보좌 ⑵ 보좌에 좌정하신 하나님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Behold, a throne was set in heaven)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and One sat on the throne)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2중-3)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5상)
And out of the throne proceeded lightnings and thunderings and voices.

하늘에 올라간 요한은 먼저 하늘 중앙에 원형 무지개가 둘려있는 하나님의 녹보석  보좌를 보았는데 그 보좌에서는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있었다. 번개와 뇌성과 음성은 하나님의 심판의 상징이니(계 6: 12, 8: 5, 10: 3-4, 11: 13, 19, 16: 18-21) 이것은 하나님 보좌로부터 심각하고 엄중한 심판이 내려지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천둥과 번개는 폭풍과 폭우가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경고이고 기관차가 출발하기 직전 출발 준비완료표시로 연기와 김이 솟아나고 기적소리를 내듯 대환난의 심판이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나오는데 그 심판이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 지구촌에서 수많은 성도들이 공중으로 들림 받는 휴거사건이 있자마자 오대양육대주는 지구파멸의 처참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될 것이다.

그다음 요한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았는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았다고 했다. 모양(模樣, like, 호라세이)의 문자적 의미는 “보이는 것”이란 뜻으로 하나님을 물질적인 것으로 오해하여 “하나님이 이렇게 보였다”는 의미로 해석하기 쉬운데 본문에서 하나님의 모양이란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보여주시는 것”을 가리킨다.

요한은 자기가 본 하나님의 모양을 벽옥(Jasper)과 홍보석(Sardine Stone)과 같았다고 했다. 벽옥이나 홍보석은 어떤 종류의 보석인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푸른색을 발하는 옥’, ‘모든 보석 중에 가장 빛나는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벽옥(碧玉, Jasper: 로마의 박물학자며 저술가인 Pliny는 벽옥을 Semi-transparent(반투명한 옥)이라 불렀고 다른 이들은 반투명한 초록색 옥이라 불렀는데 오늘날 농록옥수(Plasma)라 부르는 The green chalcedony(초록색 옥수)일 것으로 추정한다)은 “하나님의 위엄과 거룩함”, “하나님의 순결과 청결”을 상징하고, ‘붉은 색을 발산하는 루비’인 홍보석(Sardine stone; 홍옥수)은 “심판과 진노”, “준엄한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한다.

모세와 아론과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 그리고 이스라엘 70장로들이 맹렬한 불길에 휩싸인 시내산에 강림하셨던 하나님을 보았을 때, 하나님은 그 발아래는 청옥(靑玉, Sapphire stone: 투명하고 보랏빛을 띤 강옥, 짙은 청색의 사파이어)을 편 듯했고 하늘같이 청명하여(출 24: 9-10) 감히 하나님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고, 선지자 에스겔도 계시 중에 얼음 같이 투명한 수정 같은 궁창 위에 남보석 같은 보좌와 그 위에 사람의 모양처럼 하나님이 앉아 계신 것을 보았는데 허리 이상의 모양은 단 쇠 같아서 그 속과 주위가 불 같았고 그 허리 이하의 모양도 불 같아서 사면으로 광채가 나는데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무지개 같았다고 하면서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했다.(겔 1: 22-28) 이렇게 하나님은 죄인인 인간이 가까이 할 수 없는 두려움과 위엄과 영광으로 충만한 존재이시다.

하늘에 올라간 요한도 보좌에 앉으신 벽옥과 홍보석 같은 하나님의 모양을 보자마자 누구도 가까이 할 수 없는 위엄과 순결, 무한한 신성과 거룩함을 느꼈고, 죄인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추상같은 정의의 심판과 엄중하게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느꼈다. 그래서 요한은 간장이 녹아 내리는 두려움과 공포, 무서움과 겁에 질려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요한 뿐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위엄과 두려움에 찬 하나님 앞에 설 자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요한은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 진치고 있는 녹보석 같은 원형 무지개를 보고 나서야 비로써 그 마음이 안도됐다.(“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And there was a rainbow round about the throne)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in sight like unto an emerald: 3하) 그 이유는 무지개가 주는 영적교훈의 오묘함을 알기 때문이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은 그의 제사를 받으시고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며 무지개를 보여 주셨으니(창 9: 13) 요한이 본 선록색의 원형 무지개는 예수께서 인류의 죄를 사하고자 십자가에서 죽으신 희생 제사를 하나님이 받으시고 용서해 주신 약속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하나님 보좌 주위를 감돌고 있는 에메랄드 원형 무지개가 없었다면 요한은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과 내가 장차 천국에서 하나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보좌가 약속의 에메랄드 원형 무지개로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 보좌에 앉으신 심판과 두려움의 하나님, 위엄과 진노의 하나님은 어느 누구도 가까이 하거나 범접할 수 없는 거룩한 하나님이시지만 감사하게도 예수의 보혈을 믿고 죄 사함 받은 자는 용서하시고 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의 에메랄드 원형 무지개에 둘러 싸여 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이기고 보좌 앞에 나갈 수 있게 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세세토록 감사하며 찬양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⑶ 보좌우편에 앉은 어린양 예수(계 5: 6, 막 16: 19, 눅 24: 50-51, 행 7: 55)

요한은 하나님 보좌 우편 또 다른 보좌에 예수님이 앉아 계신 것을 보았다. 그때 요한의 감격과 기쁨과 흥분은 어땠을까? 생전에 예수님을 인생의 Mentor로, 선생으로, 주님으로 섬기고자 직업도 포기하고 젊음을 다 바쳐 희생하면서 예수께서 로마를 정복하면 정치적인 출세를 고대했었는데 어이없게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닭 쫓던 개처럼 모든 꿈이 물거품이 됐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그 분이 영광스런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아 계시니 요한의 충격이 얼마나 컸겠는가? 그렇다. 예수님은 주의 권능의 날에 하나님이 허락하여 지상에 오시기까지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아 계실 것이다(시 110: 1-7)  

   ⑷ 하나님의 일곱 영이신 성령(5하)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5하)

요한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하나님의 일곱 영이신 성령을 보았다. 성경은 성령을 ‘하나님의 일곱 등불’(Seven lamps of fire burning), ‘어린양의 일곱 눈’(Seven eyes of the Lamb) 그리고 ‘하나님의 일곱 영’(The seven Spirits of God)이라고 불렀는데(계 1; 4, 3; 1, 4; 5, 5: 6) 이것은 성령이 일곱 분이란 뜻이 아니다. 성경대로 성령은 한분이다(엡 4: 4-6, 고전 12: 11) 그러나 성령의 속성과 권능이 완전하고 거룩하기 때문에 완전수인 일곱 영이라고 호칭한 것이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 호칭과 출처(근원)에서의 일곱 영

      Ⓐ 하나님의 성령(마 3: 16, 요 8: 34, 롬 8: 9, 14,고전 2: 10, 12, 14, 3:        16, 요일 4: 2; 여호와의 신: 삿 3: 10, 6: 34, 11; 29, 13; 25, 14; 9, 19,        15: 14, 삼상 10: 6, 16: 13, 삼하 23; 2, 대하 20: 4, 욥 26: 13, 시 143;         10, 사 40: 13, 63: 14, 겔 11: 5, 37: 1등) Ⓑ 아버지의 성령(마 10: 20) Ⓒ        주의 성령(눅 4; 18, 행 8: 39, 5; 9, 고후 3: 18, 시 104: 30; 주의 신: 겔        8: 3, 14, 11: 19, 36: 27, 37: 14, 39: 29등) Ⓓ 예수의 영( 행 16: 7) Ⓔ         하나님께로 온 영(고전 2: 12, 벧전 1: 12, 나의 신: 욜 2: 28, 29, 학 2; 5,        슥 4: 6) Ⓕ 그 아들의 영(갈 4: 6) Ⓖ 그리스도의 영(벧전 1: 11)이다. 성령        은 출처와 근본이 하나님과 그리스도로부터 온 완전한 영이다.

   ⒝ 성육신(초림)과 재림 예수와 함께 하는 일곱 영(사 11: 1-16)

      Ⓐ 여호와의 신 Ⓑ 지혜(호크마: 외적 분별력)의 신 Ⓒ 총명(비나: 내적            통찰력)의 신 Ⓓ 모략(예차: 정책수립과 입안, 전쟁계획 작성 등 포괄적인          전략구상의 힘)의 신 Ⓔ 재능(게부라: 군대를 거닐고 나가 싸울 수 있는 영웅        적인 힘)의 신 Ⓕ 지식(다아트: 하나님의 뜻에 대한 깊은 이해)의 신 Ⓖ 여호        와 경외(이르아트: 경배의 대상인 하나님께 절대적인 두려움의 복종)의 신
      초림 예수와 함께 하셨던 성령과 장차 재림 예수와 함께 하실 하나님의 일곱        영이신 성령의 역사다.

    ⒞ 은사적인 일곱 영
     
      Ⓐ 계시의 은사(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영분별의 은사: 고전 12; 8, 10         중) Ⓑ 발성의 은사(각종 방언, 방언통역, 예언의 은사: 고전 12: 10) Ⓒ 권        능의 은사(믿음, 병 고침, 능력 행함의 은사: 고전 12; 9-10상) Ⓓ 진리의 영        (요 14; 17, 요일 4: 6) Ⓔ 은혜의 성령(히 9: 29) Ⓕ 성역을 감당하는 지혜        의 영(출 28: 3, 31: 1-11) Ⓖ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불로 응답하는         신(왕상 24, 38-40)이시다.

    ⒟ 사역적인 일곱 영

      Ⓐ 심판과 소멸의 영(사 4: 4); 성도들의 더러움과 피를 씻어내고 정결케 하        심 Ⓑ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 해주는 양자의 영(롬 8: 15) Ⓒ 예수를 알게        해주고 증거하는 진리의 성령(요 15: 26) Ⓓ 보혜사(The Comforter; The          Helper: 파라클레토스: “우리를 돕기 위하여 우리 곁에 와 있는 변호사” 성        령(요 14: 26) Ⓔ 대언의 영(The Spirit of prophecy; 계 19: 10) Ⓕ 예수 이        름 때문에 핍박받는 성도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어 모든 고통과 아픔을 이        기게 하는 영광의 영(벧전 4; 13-14) Ⓖ 성도들에게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키고 주의 일을 자원하는 마음을 주시는 정직한 영(시 51; 10-12, 행        13: 1-3)으로 완전한 성령이시다.
   ⒠ 직능적인 일곱 영

      Ⓐ 예수와 성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케 하는 성결의 영(롬 1; 4, 8:          11) Ⓑ 우리를 모든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케 하는 생명의 성령(롬 8: 1)        Ⓒ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지키며 살도록 인도하는 은혜의 성령(히 10: 29)         Ⓓ 우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        는 영원하신 성령(히 9: 14) Ⓔ 하나님의 말씀을 영과 생명으로 깨닫고 전하        게 하여 영혼들을 살게 하는 살리는 영(요 6: 63) Ⓕ 육체의 더러운 일과 소        욕들을 죽이고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하        는 열매의 성령(갈 5; 16-24) Ⓖ 우리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케 하는 약속        의 성령(벧후 1: 4-11, 눅 24; 49, 행 2: 33)이시다.

이렇게 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오신 근본과 출처에서 완전한 일곱 영이신 성령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에서도 완전하신 일곱 영으로 역사하셨고 앞으로도 역사하실 것이며, 성도들의 각양은사와 주를 위한 사역에서도 완전한 영이시며 그가 하시는 모든 직능에서도 완전한 일곱 영이시다. 그 성령은 장차 천국에서 하나님의 일곱 등불로 천국을 환히 밝힐 것이며 어린양 예수님의 일곱 눈으로 천상과 천하를 두루 살필 것이며 하나님의 일곱 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실 것이다.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환영하고 모셔 들이며 찬양하고 경배하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⑸ 스물네(24) 보좌에 앉은 24장로(4절)

하늘에 올라간 요한이 다섯 번째로 본 것은 녹보석 같은 원형 무지개가 둘려있는 하나님의 보좌를 중심으로 스물네 보좌들이 둘려있고 그 보좌 위에 스물네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새 예루살렘 성곽을 둘러싼 열두 문에 열두 지파 이름이 있고, 새 예루살렘 성 열두 기초석에 열두 사도의 이름이 기록된 것(계 21; 9-14)은 새 예루살렘에 구약성도와 신약성도가 다 들어가 살 것을 상징하듯, 하늘에 있는 24(스물네) 보좌와 스물네 장로는 부활 성도와 휴거 성도의 대표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가리키며,  24장로는 장차 천국에 구약성도와 신약성도가 모두 들어가 살 것의 예표와 상징이다. 그렇다. 천국은 구원받은 구약성도와 신약성도가 모두 들어가 살 낙원이다.

그런데 보좌에 앉은 스물네 장로들은 흰 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있었다. 흰 옷(White garment)은 예수의 보혈로 죄 사함 받은 성도들이 입는 옷(계 7: 14)과 죄악의 더러운 행위들을 예수의 피로 용서받아 의롭다함을 받은 성도들이 입는 옳은 행실의  옷(계 19: 8)을 의미한다. 그렇다. 천국은 예수 피로 죄 사함 받아 흰 옷을 입은 자들만 들어간다. 인간의 노력과 종교적 수양과 자신의 도덕을 의지하는 걸레 같은 누더기 옷을 입은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스물네 장로들은 금 면류관을 쓰고 있었다. 금 면류관(Golden crown, 스테파누스 크뤼수스)은 단순한 왕관이 아니라 이기는 자들이 받아쓰는 승리의 관을 가리킨다. 그렇다. 신앙의 영적싸움에서 이기는 자만이 천국에서 금 면류관을 받아쓸 자격이 있다. 주께서 저 공중으로 오실 때, 첫사랑을 회복한 이기는 자가 되고, 환난과 핍박 중에서 죽도록 충성하는 이기는 자가 되며, 모든 이단의 유혹을 물리치고 이기는 자, 육적인 간음과 영적간음을 멀리하고 주의 일을 끝까지 지켜 이기는 자, 날마다 죄를 회개하여 흰 옷을 지키는 이기는 자, 주의 인내의 말씀을 지키며 주의 이름을 배반치 않는 이기는 자, 영적인 자기부족을 깨닫고 열심을 내어 회개하여 이기는 자가 되므로 그날에 금 면류관을 받아쓰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⑹ 수정 같은 유리 바다(6상)

여섯 번째로 요한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수정 같은 유리 바다가 있는 것을 보았다(Before the throne there was a sea of glass like crystal; The actual floor of the throne room: 왕상 7: 23-26, 대하 4; 2-15) 솔로몬 성전 안에 제사장들이 몸을 씻도록 물을 저장하는 물탱크 놋 바다가 있었듯 하나님의 보좌 앞에는 그 크기와 넓이를 알 수 없는 망망대해의 유리 바다가 있었는데 이 고요 잔잔한 유리 바다는 인간의 모든 죄와 고통과 저주, 근심과 슬픔이 끝났음을 알려주는 바다이다.

수정(Crystal, 크리스탈로)은 “얼음”이란 뜻으로 투명한 결정체를 의미하고, 유리(Glass, 휘알리네)는 “빗방울”이란 뜻이니 ‘수정 같은 유리 바다’는 “얼음처럼 투명하고 맑디맑은 유리 바다”를 의미한다. 유리 거울은 BC 2,500년에 이집트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고 히브리인들은 그보다 먼저 광을 낸 주석거울을 만들었는데 요한 때에 거울은 희미하고 칙칙한 것이었다. 그래서 ‘수정 같이 맑은 유리 바다’를 본 요한은 놀랐다. 보좌 앞에 펼쳐진 유리 바다는 더 이상의 세상적인 아픔이나 고통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장차 보좌 앞에 서게 될 부활 성도와 휴거 성도들은 세상의 모든 괴로움을 잊게 될 축복의 성도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유리 바다, 세상의 모든 아픔과 고통, 눈물과 근심과 슬픔이 없는 수정 같은 유리 바다 위에 서게 될 소망으로 종말시대를 은혜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⑺ 네 생물(Four Living Creatures: 6하-7)

요한이 본 네 생물은 동서남북 네 방향에 한쪽은 사자의 얼굴, 다른 한쪽은 송아지의 얼굴, 다른 쪽은 사람의 얼굴, 다른 쪽은 독수리 얼굴을 가졌는데 각 생물마다 여섯 날개가 달렸고 그 안과 주위와 앞뒤에 눈이 가득한 생물이었다. 그 모양이 숯불과 횃불 모양 같고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서 번개 불이 번쩍이고(겔 1: 13) “그들의 왕래가 빛의 속도로 번개같이 빠른"(겔 1; 14) 네 생물은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양 가까이 있으면서(6절) 밤낮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일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8, 5: 8, 7: 11, 19: 4)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전달하는 역할도 했다(6: 1)

그리고 네 생물의 전후좌우와 안과 밖에 눈들이 가득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무한한 지식에 감명을 받은 지혜로운 존재로써 생명과 지능이 완전하여 쉬지 않고 관찰하며 끊임없이 경성하고 부단히 통찰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사역에 봉사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다는 것은 무한한 기동성과 민첩성, 재빠른 신속성으로 하나님을 봉사하고 보좌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사면의 얼굴이 사자와 송아지와 사람과 독수리 같은 것은 네 생물이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면서 예수님의 네 성품인 사자는 왕으로서의 예수, 송아지는 여호와의 종으로서의 예수,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예수, 독수리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의 사역을 순종하고 시행하는 존재임을 가리킨다. 따라서 네 생물은 성부성자성령의 사역을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순종하는 초능력 존재라고 할 수 있다.

   3. 네 생물과 24장로의 찬양(8-11절)

요한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 앞에서 네 생물과 스물네 장로들의 영광과 감동으로 가득찬 경배와 찬양이었는데 이것은 하늘의 존재와 땅의 존재가 함께 찬양하는 것으로 오늘날 지상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해야 하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표이다.

   ⑴ 찬양하는 자세

   ① 밤낮으로 쉬지 않고 찬양하라(8상)

Day and night they do not cease to say "Holy, Holy, Holy, is the Lord God, The Almighty" 찬양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지 자신의 감정이나 기분의 표현이 아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불변하시며 우리를 향하신 구속의 근거가 되시며 모든 것을 베풀어주시는 분이기에 우리의 찬양은 밤낮 쉬지 않고 드려야 한다.

   ② 절대복종의 자세로 찬양하라

스물네 장로는 겸손하고 경건하며 외경하는 태도, 절대복종의 태도로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그들의 찬양은 바로 자기들 앞 보좌에 좌정하신 거룩하고 위대하신 하나님,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고 그분의 은혜로 생명을 얻은 그래서 모든 것이 그분의 소유인 피조물이 드리는 영광이요 찬양이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들의 찬양의 태도는 하늘에서나 땅에서 모두 절대복종의 겸손이어야 한다.

   ③ 모든 영광을 다 하나님께 돌려라

스물네 장로들은 자기들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찬양했다(고대엔 한 왕이 승복을 표시할 때 자신의 모자를 승자의 발 앞에 던지는 관습이 있었다) 하나님과 예수님께 승복하는 자세다. 보좌 앞에 던지는 장로들의 면류관은 이긴 자들이 받아서 쓰는 면류관(스테파누스)으로 자기들이 평생 동안 수고하고 충성한 보상으로 하나님께 받은 면류관이다. 면류관까지도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표시며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던 것도 예수님의 은혜니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에 던지며 찬양하는 것이다. 당신의 찬양도 축복과 은혜와 감사를 모두 하나님과 예수님의 보좌에 바치는 찬양이 되기를 축원한다.

   ⑵ 찬양의 내용(11절)

스물네 장로와 네 생물의 찬양 내용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영원하심이었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퀴리오스 호 데오스 호 판토크라토르) 도미티안 황제가 자신을 ‘우리 주와 하나님’으로 찬양하라는 칭호를 대항하는 찬양이다. 24장로와 네 생물은 로마황제나 지상의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이 아니며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성부성자성령 하나님만이 “주 하나님”이시고 그분만이 황제뿐 아니라 세상의 군왕들을 심판하실 분이심을 찬양했다. 그렇다. 우리도 전능하신 하나님, 살아계신 예수님, 영원하신 성령님께만 찬양을 드릴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찬양은 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만 “우리 주”이심을 고백할 것이며 ② 하나님이 만물의 보호자이심을 찬양할 것이며 ③ 하나님이 만물의 최후의 원인이심을 찬양할 것이다.

이제부터 당신의 찬양을 바꾸라. 찬양의 시선을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께 고정시켜라. 우리 찬양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다. 교인들도 아니다. 목사와 장로들도 아니다.
만물을 지으시고 보호하시며 나를 구원하사 천국에 들어가게 하신 예수님과 세세토록 영광을 받으실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들의 찬양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 앞에서 감사와 기쁨으로 찬양하는 스물네 장로와 네 생물의 찬양 같은 찬양이 되기를 축원한다.   



김엘리야 목사(워싱톤주기도문교회 담임)

www.Kido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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