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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05월12일 19시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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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로 올라오라(I: 휴거-묵강 10)
 

주전 593년, 바벨론 포로 5년차의 4월 5일, 30세의 젊은 제사장 에스겔은 그발 강 포로수용소에서 하늘이 열리면서 나타난 어마어마한 네 생물의 계시, 동서남북 사면의 면마다 네 개의 얼굴이 있는데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고 넷의 오른편은 사자의 얼굴, 넷의 왼편은 소의 얼굴,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을 한 하나님의 영광을 수종하고 보좌하는 네 생물의 계시를 본다. 에스겔이 계시에서 본 네 생물과 하나님의 영광은 마치 거대한 미확인비행물체처럼 생겼는데 그것의 움직임은 빛의 속도보다 더 빨랐다. 그러한 첫 번째 계시 후, 열네(14) 달이 지난 어느 날, 이번에는 성령이 에스겔의 머리털 한 모숨(A lock of my head: “헝클어진 머리, 머리타래”)을 움켜쥐고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그를 천지사이(Between earth and heaven: 땅과 하늘 사이)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싶었는데 그의 몸은 이미 2000리가 넘는 예루살렘 성전에 와 있었다.

에스겔은 그러한 신비체험 중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를 아무 제약 없이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비밀의 장막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계시들을 보고 기록했는데 그 첫 번째 경험이 1-7장의 기록이고, 두 번째가 8-19장이며, 세 번째가 20-23장, 네 번째는 24-25장이며, 다섯 번째는 29: 1-16, 30: 1-19, 여섯 번째가 26-28장 내용이며, 그 다음이 30: 20-26, 그 다음이 31장, 그 다음이 33장, 열 번째가 32; 1-16, 그 다음이 32; 17-32, 열두 번째가 40-48장이며 마지막 열세 번째 계시내용이 29: 17-21절이다. 이러한 Out of Body(육체이탈, 유체이탈) 영혼이 육체를 탈출 해나와 유영하는 영혼여행 신비체험은 영의 사람 다니엘도 경험하여 다니엘 7, 8, 10장에 기록해 놓았고, 바울도 그런 체험으로 셋째 하늘에 있는 낙원을 다녀왔으며(고후 12장) 기독교 2천년사의 많은 신령한 성도들이 그런 신비체험을 했다.

지상에서 쏘아올린 탄도미사일이 대기권에 진입해 궤도를 돌다가 목적지에 도달하듯 에스겔의 머리칼을 잡고 천지사이로 올렸다가 계시목적지로 옮겨갔던 신비한 영적체험은 사람마다 같은 방법은 아니더라도 여러 종들과 성도들의 간증을 통해서나 만삭되지 못한 미천한 김목사의 체험을 통해 볼 때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들에겐 다반사한 경험이리라 믿어지는데, 나는 입신과는 별개체험으로 마치 강력한 자석에 쇠붙이가 끌려가고 성능 좋은 Vacuum-cleaner(진공청소기)에 먼지들이 빨려 들어가며 블랙홀에 거대한 Planet(유성과 혹성)들이 빨려 들어가듯, 내 영혼이 불가항력의 거부할 수 없는 성령의 강한 힘에 강권적으로 끌려가는 경험을 한 적이 너 댓 번이 있다.

1970년대 초와 70년대 후반에 있었던 두 번의 경험은 거역할 수 없는 초능력의 힘에 빨려 들어가다가 너무 놀라서(가위에 눌리는 것으로 생각함) 발버둥 치다가 진땀을 흘리면서 간신히 깨어 일어난 체험인데 그것은 너무 낯설고 생소하며 오래전의 일이어서 기억이 거의 없고, 세 번째 경험이면서 첫 번째로 기억에 남는 것은 1987년 어느 날 꿈에 수많은 성도들과 함께 하늘로 들림 받는 휴거 체험이었다. 그날 나는 계시 중에 눈같이 흰 옷을 입은 수많은 성도들과 함께 어떤 거센 힘에 의해 빛의 속도로 하늘로 빨려 올라가는 경험을 하다가 깨어났는데 그때의 기쁨은 한 마디로 환희 그 자체였다. 그 황홀함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데 25년이 지난 지금도 그것을 상상하면 며칠 전의 사건처럼 눈앞에 그림처럼 기억이 새롭고 흥분이 될 정도이다. 그 경험이후 여러 날 동안 휴거의 환희와 황홀함 속에서 꿈을 꾸듯 들뜬 마음과 흥분으로 지냈다가 일상으로 돌아온 경험이 있다.

두 번째 경험은 1992년 10월 어느 날, 꿈속에서 어떤 힘(성령으로 생각됨)에 이끌려 캘리포니아 Los Angeles에서 시작되는 미국에서 최고절경 중에 하나인 태평양서부연안 1번 도로(Pacific High-Way) 위를 날아서 미국과 캐나다를 지나 알라스카를 통과하고 알류산 열도와 쿠릴 열도를 지나 소련과 중국과 이북 땅을 통과해서 서울까지 날아가는 경험이었는데,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도로도 연결돼 있지 않고 도시도 개발돼 있지 않은 거친 산과 바위와 만년설과 얼음으로 뒤덮인 땅과 망망대해 바다로 길이 막혀있는 상태인데, 꿈속에선 캘리포니아에서 한국까지 잘 포장된 고속도로가 연결돼 있었고 거대한 도시들이 줄지어 개발돼 있었으며 심지어 알라스카와 소련의 넓은 베링(Bering)해 바다까지 도로가 연결돼 있어서 아무 어려움 없이 한국까지 날아간 환상이었다.

그런데 그 많은 도시들을 자세히 구경하며 날아가는데 그 속도는 내가 정신 차릴 수 없도록 빠른 속도였다는 것이다(나는 10년, 20-30년 전 꿈속에서 세계도처의 낯선 도시들을 보았는데 훗날 세계여행 중에 그 도시와 장소들을 실제로 가서 보므로 확인한 곳이 여러 장소였고 그런 일은 앞으로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 신비체험 후, 37년 미국생활 중에 미대륙을 동서로 왕복 여섯 번, 남북으로 두 번을 횡단할 정도로 자동차여행을 좋아 하는 나는 꿈에서처럼 도로가 연결된다면 가족들과 미국에서 한국까지, 한국에서 실크로드를 따라 유럽까지 그리고 유럽에서 러시아 대륙을 횡단해 미국까지 지구촌횡단을 도전해보고 싶다는 순진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세 번째는 2008년 11월 29일(토) 새벽3시의 경험이다. 주님께서 나를 품에 안고 천지사이로 이끌어 올리시고 까마득히 멀리 있는 지구를 보여주시는데 초록색의 아름다운 지구가 달보다 더 작은 유리구슬 정도로 보이는데 신기하게도 지구가 선명하게 보인다. 현기증을 느끼며 지구를 내려다보고 있는 나에게 ‘뒤를 보라’는 (주님의)음성이 들려 돌아보니 어둑 캄캄하고 광활한 우주공간에 나 혼자 떠 있을 뿐 아무 것도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무섭고 두려워 ‘아무 것도 안 보인다’고 말하자, ‘김목사야, 이것이(아무 것도 없는 것) 네가 지금까지 살아온 지나간 60여년 세월이다. 그러나 이제 이후에 네가 할 일을 보여주겠다’는 음성이 들리고, 잠시 후 주님께서 나를 데리고 지구로 내려오는데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초고속의 놀이기구를 탄 때처럼 현기증이 난다.

순식간에 주님의 인도로 지구로 날아 내려온 나는 어느 거대한 마천루 숲을 이룬 메가 도시에 10차선 이상 되는 넓은 도로 위를 주님과 함께 날아가는데 같은 방향 도로 위를 달려가는 자동차들(차들은 교회를 가는 자동차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이 Traffic Jam을 이루고 있다. 나는 빛의 속도로 차 위를 날아가면서 차 주인들에게 금반지를 하나씩 나눠주며 ‘할렐루야’를 외치는데 멀리 거대한 교회가 보인다. 그러자 주님께서 ‘저 교회가 앞으로 네가 목회할 교회’라는 음성을 들려주시고 주님과 함께 교회를 향해 날아가다가 신비체험에서 깨어났다. 신기한 환상이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세 번의 환상과 계시의 내용은 어느 정도 기억하고 이해하지만 그 계시와 환상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나 섭리는 솔직히 지금도 나는 모른다. 어쩌면 신비하고 특별한 꿈이나 환상 중의 하나일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겐 지난 45년 동안에 한 가지 사건에 관하여 700번 이상 꿈과 계시를 보여주셨지만 아직까지 성취되지 않은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너무도 신비한 영적체험이기에 주님의 뜻과 계획이 있지 않을까하여 조심스럽게 그것을 마음에 간직하고 인내하고 기도하며 기다려 볼 뿐이다.

                            이리로 올라오라(I)

밧모섬 동굴에서 혼자 주일예배를 드리다가 성령의 감동으로 부활하사 지금 지구촌 교회들을 돌보고 계신 예수, 그리고 장차 세상에 다시 오실 예수님이 나팔소리 같은 음성으로 ‘네가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서.버. 두.사.빌.라(일곱 교회)에 보내라’고 하시는 예수님을 만나서 계시록 1, 2, 3장을 기록한 요한은 다시 새로운 영적체험을 한다. 그것은 4: 1에 “이 일 후에”(After this)의 사건으로써, 요한 앞에 하늘에 열린 문이 보이는데 계시록 1장에서 2장과 3장을 기록하라는 나팔소리 같은 예수의 음성이 이번에는 “이리로 올라오라(Come up here!)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고 다시 우렁차게 들리면서 눈 깜짝할 순간에 요한이 하늘로 올라간 것이고 하늘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하늘보좌를 보게 된 사건이다. 

마치 꿈에서 또 다른 꿈을 꾸듯 성령의 감동 상태에 있던 요한은 몸이 하늘에 올라간 상태에서 또다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자기 앞에 나타난 보좌에 벽옥(Jasper: 로마 박물학자 플리니에 의하면 벽옥을 Semi-transparent(반투명 녹보석)이라고 부르는데 아마도 오늘날 Plasma(녹록옥수)로 부르는 The Green Chalcedony(녹옥수)일 것이다)과 홍보석(Sardine Stone: 홍옥수)같이 찬란한 하나님이 좌정해 계시고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는 녹보석(Emerald: 선록색의 에메랄드) 같은 무지개가 둘러있는 것을 보았다. 요한이 하늘에 올라가 보았던 하나님의 모습이나 그분이 좌정하신 보좌는 인간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보석들의 찬란함과 영광의 극치였다.

   1. 이리로 올라오라!

계시록 1: 19절 말씀대로 계시록은 ‘네가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로 구성됐는데 ‘네(요한)가 본 것’은 계시록 1장의 “인자에 대한 환상”이고, ‘이제 있는 일’은 계시록 2장과 3장에 있는 아시아 일곱 교회에 관한 계시이며, ‘장차 될 일’은 계시록 4장부터 22장까지의 앞으로 전개될 계시들을 가리킨다. 그래서 계시록 1; 19절의 “그러므로 네 본 것(The things which you have seen)과 이제 있는 일(The things which you are)과 장차 될 일(The things which shall take place after these things)을 기록하라”는 말씀은 계시록을 푸는 열쇠다.

계시록 1장에서 3장에서는 시간적으로 과거와 현재에 당면한 일들이 다뤄졌고 공간적으로는 주로 땅의 사건들이 다뤄졌다. 그러나 4장부터 22장까지는 미래에 되어 질 우주적이고 초공간적인 사건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리고 본장인 4장은 미래에 되어 질 사건(4-22장)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과 그 주위의 묘사로 꾸며져 있으며 그 모든 끝 날에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을 계시해 주고 있다. 그래서 지상에 일어날 대변동들과 대환난이 있을 동안(6-19장) 천국에 있을 성도들의 환희와 안전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기록된 것이 계시록 4장이다.
 
먼저,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1상)의 해석이다. ⑴ “이 일 후에”(After these things), 메타 타우타란 “After writing the things concerning the churches of Rev. 2-3”(“계시록 2-3장에 교회에 관하여 기록한 후에”)를 가리키니 이것은 요한이 이미 본 것(1장)과 이제 있는 일(2-3장)이 다 지나간 다음이란 말로 “교회시대가 끝난 다음인 휴거의 상태”를 알려주고 암시하는 말씀이다.

그다음, ⑵ “하늘에 열린 문”(A door was opened in heaven 또는 A door standing open in heaven)은 구약에서 야곱에게(창 28: 12-17), 욥에게(욥 1: 6-12, 2: 1-6), 선지자 미가야(왕상 22: 19)와 이사야(사 6: 1-3)와 에스겔에게(겔 1: 1) 그리고 신약에서 나다나엘에게(요 1; 51) 스데반에게(행 7: 56), 베드로에게(행 10: 11), 사도 요한에게(계 4: 1), 예수님께(마 3: 16) 열렸던 하늘을 의미한다. '열린 문‘(A door was opened, 뒤라 에네오그메네)은 완료분사 형으로 직역하면 “이미 열려 있는 문”이란 뜻이니 요한에게 보여줄 하나님의 계시가 이미 준비가 돼 있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하늘에 감춰져 있다. 그 감추어져 있는 비밀은 아무에게나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을 찾으실 때 하늘의 문을 여시고 계시하여 그 비밀을 보여주시는데 바로 사도 요한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적임자였다는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학생일 때, 이름 석 자만 알고 편지 쓰실 정도는 안 됐던 가방끈 짧았던 모친은 군에 입대한 아들 같은 막내 시동생이 편지를 보내오면 나에게 그 편지를 읽어달라고 하시고, 답장은 당신 입으로 불러주시면서 나에게 쓰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계 1: 19에서 예수님은 요한에게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고 말씀하신 후 에.서.버. 두.사.빌.라. 아시아 일곱 교회에게 보낼 편지내용을 자세히 알려주시고 요한은 그대로 편지를 쓴다. 요한이 계시록 2-3장의 편지쓰기를 마치자마자 요한 앞에 하늘에 열린 문이 나타나면서 하늘에서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는 나팔소리 같은 예수님의 우렁찬 음성이 들림과 동시, 눈 깜짝할 순간에 요한은 하늘로 올라간다. 그리고 하늘에서 눈앞에 펼쳐진 찬란한 보좌와 선록색 에메랄드 무지개에 둘러싸인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을 보게 되는데 그렇다면 “이리로 올라오라”(Come up here!)는 예수의 말씀과 함께 하늘로 올라갔던 요한의 체험은 어떤 것인가?

요한이 하늘에 올라간 본문은 해석하기가 어려운 계시록의 난해구절 중 하나인데 요한의 승천체험이 ‘휴거사건이냐?’ 아니면 ‘일시적인 환상이나 입신체험이냐?’는 환난 전 휴거와 환난 후 휴거 학설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중대한 해석이기에 학자들마다 조심스럽게 다루는 말씀이기도 하다. 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한다.

먼저, 국내학자들의 견해로 ① 대환난 이전에 하나님의 교회가 들림 받을 것(휴거): 박조준(pp. 146-147), 조용기(pp.100-105) ② 성령의 감동으로 황홀경에 있는 상황: 김재준(p. 145), 이광복(p. 57) ③ 정신이 똑똑한 자주의식을 가지고 성령의 감동으로 황홀한 영계에 옮겨짐: 박윤선(pp. 52-53, 115-116) ④ 영적 황홀상태에서 몸은 땅 위에 있으면서 영감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바라본 것: 이상근(p. 97) 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계시를 받은 요한이 성화의 깊은 은총을 입은 지경에서 이루어진 사건: 석원태(pp. 196-203)가 있다.
 
그다음, 외국학자들의 견해로 ① 성령의 감동으로 환상을 본 것: 핸드릭센(William Hendricksen, pp. 96-97), 랜스키(Lenski, pp. 142-143), 죠지 레드(Ladd, pp. 90-92) ② 시간적으로는 장차 될 일이 아닌 일곱 교회의 일 후에 주께서 보여주신 일어날 일들을 환상(幻想) 중에 본 것: 벵겔(Bengel, pp. 1-5-106) ③ 환상의 연속성을 의미하는 것이지 시간의 연속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비더울프(Biederwolf, pp. 332-333) ④ 영적으론 하늘에 오른 것 같은 상태에 있었고 현실에선 들려 올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바클레이(Barclay, pp. 230-232) ⑤ 성도들의 휴거를 의미한다: 로이스 토마슨(Royce Thomason, p. 76-77), 데이크(Dakes, pp. 651- 652, 729-730), 팀 리하이(Tim Lahaye, pp. 150-151)의 학설이 있다.

이렇게 요한이 하늘에 올라간 본문의 사건을 해석하는 국내학자들과 외국학자들의 견해는 크게 나누어 성령의 감동을 받은 입신상태라는 해석과 성도의 휴거를 의미한다는 해석의 양대 학설이 있는데 김(엘리야) 목사는 몇 가지의 성경적인 이유로 휴거설을 지지하고 믿는다. ⑴ 4장 1절 하반절에서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여주리라”(I will show you things which must be hereafter)는 말씀은 1절 상반절의 “이 일 후에”(After these things)인 계 2장, 3장의 교회에 있을 사건들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이 교회들(2-3장)후에 하늘로 올라갔고, 그가 하늘로 올라간 후에 성취될 일들을 보여주신 것이 4: 1절 하반절에서 22장까지이니 ‘이 일 후에-교회들 후에’는 “교회가 휴거한 후”를 의미한다. 그래서 요한이 하늘에 올라간 것은 단순히 성령의 감동이나 입신체험 중에 하늘세계를 본 것이 아니라 그에게 휴거를 경험케 하여 장차 성도들이 휴거될 것에 대한 확신을 주시기 위한 휴거의 사전경험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교회(성도)는 ‘이제 있는 일’(계 2, 3장)과 ‘이후에 반드시 일어날 일들’(계 4-22장)인 교회 후의 사건(4-22장) 사이인 4:1에서 휴거한다.

⑵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둘려있는 스물네(24) 보좌에 앉은 24장로는 구약과 신약성도의 대표이며, 부활성도와 휴거성도의 예표인데 그들은 계 4: 4절 이후 계속해서 하늘에서 보이고 있으니 계 4장은 성도의 휴거를 가리킨다. ⑶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눅 21: 36)고 하신 말씀대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 모든 일(All these things: 눅 21: 20-28의 대환난을 의미함)을 피하고 인자 앞에 설 수 있는 가치가 있는 자로 계산에 넣어진 약속의 자녀들이다. 그러나 지구촌에서 요 14; 1-3과 살전 4; 13-18 같은 휴거가 없이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다. ⑷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살전 5: 9)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를 계 6-19장에 기록된 대환난이란 진노(震怒)에 처하지 않게 하시려고 예수를 통해 구원을 얻게 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셨다. 만일 성도들이 가진 유일한 소망이 장차 올 하나님의 진노인 대환란 뿐이라면 본문(살전 5; 11)과 살전 4: 16-17, 딛 2: 13에 진술했듯이 어떻게, 무슨 말로 성도들이 서로를 권면하고 위로할 수 있겠는가?

⑸ 살후 2: 6-8에서는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전에 성도들을 하늘로 옮기시겠다고 약속했으니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계 6: 2, 11: 7, 13: 1-18, 14; 9-12전에 성도의 휴거가 있어야 할 것이니 그래서 계 4장 1절은 성도의 휴거이다. ⑹ 하나님의 두 증인이며 두 감람나무인 에녹과 엘리야가 하늘에서 내려와 삼년반 동안 복음사역을 한 다음, 적그리스도에게 죽임을 당하고 삼일 반 만에 부활하여 하늘에서 “이리로 올라오라” (Come up here: 계 11: 12)는 음성을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승천 휴거하게 되니 두 증인이 하늘로 올라가듯 계 4: 1의 “이리로 올라오라”도 황홀상태나 성령의 감동 상태가 아니라 실제로 하늘에 올라간 휴거로 보아야 한다.

⑺ 무엇보다도 계 4: 1을 휴거로 해석해야할 가장 강력한 근거는 계 19: 11-16의 예수님과 성도들의 지상 재림 때문이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심판주로 지상에 재림하실 때, 흰 말을 타고 오시며(계 19: 11), 구름을 타고 오시며(계 1: 7, 행 1: 11), 백마 탄 천군천사를 거느리고 오시며(계 19: 14)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탄 부활한 성도들과 휴거한 성도들을 데리고 오신다(단 7: 18, 22, 슥 14: 5, 살전 3; 13, 4: 14, 유 1: 14-15, 계 19: 14) 만일 계 4: 1이 성도의 휴거가 아니라면 예수님의 지상 재림 때에 하늘에서 데리고 오는 수백만의 흰 옷 입고 백마 탄 성도들은 누구며 그들은 언제 하늘로 올라간 것인가? 계 7장과 14장의 유대인 전도자 14만 4천을 제외하고 계시록 어디에도 성도의 휴거가 기록된 곳이 없다. 그렇다면 계 4; 1은 성도의 휴거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수백만의 성도들이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이 설명된다.

그렇다. 하늘의 문이 열리고 “이리로 올라오라”는 음성과 함께 요한이 하늘에 올라간 것은 요한의 휴거 사전경험이며 성도의 휴거 예표다. 그리고 하늘에 올라간 요한이 지상에서 일곱 인 재앙, 일곱 나팔 재앙, 일곱 대접 재앙이 칠년에 걸쳐 계속되면서 지구촌이 차례대로 파멸당하는 것을 본 것은 장차 성도들이 휴거한 후 지구촌 오대양육대주에 있게 될 7년 대환난의 예고다.

성도들이 어느 날, 지상에서 증발해 공중으로 휴거된 후, 지구촌은 하나님이 보호하실 특별 사명자들을 제외하고 대륙과 대륙, 나라와 나라, 대도시와 중소도시와 시골, 남녀노소 빈부귀천은 물론 산과 바다와 공중,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까지 그리고 휴거에 낙오된 교인들까지 하나님의 심판의 불로 파멸을 당할 것이다. 그런데 그 날이 아주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이다. 지구를 물바다로 만든 노아 홍수는 물의 심판이었지만 오대양 육대주를 심판할 7년 대환난은 불의 심판이다. 그 불 심판이 오기 전에 예수 재림을 준비한 성도들은 저 공중으로 휴거되는 것이다. 그것이 계 4: 1절의 비밀이다. 그 날에 주기도문 교회 성도들이 모두 휴거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2. 휴거의 의미와 목적

성도들의 휴거에 대해 사용하고 있는 성경구절 중 가장 중심이 되는 말씀은 데살로니가 전서 4: 13-18이다. 그 중에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라는 17절은 휴거를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말씀이다. “끌어 올린다”(Shall be caught up)의 헬라어 할파조는 “채가다, 급히 붙잡다, 불시에 잡아채다, 잡아 완전히 지배하다, 약탈하다”는 뜻으로 값진 물건을 날치기 도적이 잽싸게 채가듯, 독수리가 먹이를 번개처럼 채가듯 빠른 속도로 잡아 채가는 것을 의미한다. 휴거(Rapture)란 말은 라틴어 랍투스에서 온 말로 “강제로 잡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자신의 피 값으로 산 당신의 보물인 성도들을 하늘로 데려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휴거는 바울의 말대로 순식간(In the twinkling of an eye, 아토모: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한의 시간”; 고전 15; 51)에 지구촌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에서 동시에 홀연히 일어날 사건, 순간적 사건, 눈 깜짝할 찰나적 사건이다. 그렇다면 왜 휴거가 있는가? 휴거의 목적은 무엇인가? 지상의 성도들로 7년 대환난을 겪지 않고 하늘의 새 예루살렘으로 데려가시는 목적이 무엇인가?

   휴거의 열 가지(10 대) 목적

① 주께서 2000년 동안 설계하고 준비하신 하늘 처소(Mansions, 모노; Abiding place)로 성도들을 데려가시기 위해서(요 14: 1-3, 엡 5; 27, 살후 2: 1) ② 죽은 구약성도와 신약성도들을 죽음에서 부활시키기 위해서(고전 15: 21-23, 51-58, 살전 4; 13-17, 빌 3: 11, 20-21, 계 20: 4-6) ③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성도들을 초청하여 그리스도의 보좌 앞에서 심판하여 행위대로 상을 주시기 위해서(요 14: 1-3, 고후 5; 10. 골 3: 4, 살전 3: 13, 계 19: 1-11) ④ 썩고 부패하는 우리 육신을 영원한 것으로 바꾸기 위해서(고전 15: 21-23, 살전 3: 13, 5: 23) ⑤ (결혼할 상대를 부모에게 보이듯)아버지 하나님 앞에 성도들을 보여주고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지내게 하려고(살전 3: 13, 5: 23) ⑥ 성도들의 육신과 혼과 영을 완전케 하시려고(살전 5; 23) ⑦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열매를 거둬 천국으로 받아 드리려고(약 5: 7) ⑧ 의로운 성도들로 지상에 있을 모든 일들, 대환난을 피하고 안전하게 인자 앞에 서게 하려고(눅 21; 34-36, 살전 5: 9-10, 살후 2; 7-8, 계 4: 1) ⑨ 불법자요 멸망의 가증한 것인 적그리스도의 박해를 피하게 하려고(살후 2: 1-8) ⑩ 적그리스도의 비밀과 계시를 허용하기 위해서(살후 2: 1-8)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휴거는 반드시 대환난 전에 있어야 하며 그 휴거의 사건은 계 4: 1이 되는 것이다.

   3. 휴거의 자격

다윗 당시 이스라엘의 인구는 대략 500만 명이었다. 하나님이 그 많은 사람 중에서 다윗을 만나보시고 ‘내 마음에 합한 사람(A Man After My Heart)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고 했다. 다윗은 500만 중에 한 사람으로 픽업된 것이다. 바울 당시 지구촌 인구는 대략 2억 정도였는데 바울은 2억의 사람 중에 예수께 발견되기 위해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다 해로 여겼을 뿐 아니라 모든 것을 해로 여겼고(He counts all things to be loss) 예수 아는 지식을 가장 고상한 것으로 알아 그 예수를 위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것을 배설물로 여겼는데 그것이 바울이 예수께 발견돼 선택된 동기다. 지금 당신은 70억 지구인 중에 한 사람을 당신의 아내와 남편으로 선택해 살고 있다. 그런데 내가 한 여자의 남편으로, 한 남자의 아내로 선택된 것은 길가에 널려있는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듯 쉽게 된 것이 아니라 70억의 경쟁률을 뚫고 된 일이기에 당신 가정이 귀한 것이다.

그리고 70년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이스라엘 본토 귀환백성 70여만 명 중에서 예루살렘 거주자는 제비를 뽑아 10분의 일 정도만 살 수 있었다(느 11: 1-2) 그렇다면 거룩하신 예수님이 당신의 신부로 맞을 사람, 저 영원한 천국인 새 하늘 새 땅의 수도, 새 예루살렘에 살 사람으로 예수께 선택받는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 휴거 성도의 자격이 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에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끝까지 인내로 말씀을 지킨 성도, 예수이름을 배반치 않은 성도, 자기 면류관을 아무나에게 빼앗기지 않는 필라델피아 교회성도’만 “시험의 때를 면하는 휴거 성도”의 약속을 받았듯 오늘날 오대양육대주 지구촌의 수백만 교회와 수억의 교인 중에서 휴거될 성도의 자격은    

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Born-Again(거듭난)한 새로운 피조물이 돼야 한다(요 3; 3-6, 고후 5: 17-18, 살전 4: 14-16) 영주권과 시민권이 있는 사람만 미국에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듯 천국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② 예수께서 공중으로 재림하실 때 예수께 붙어있는 성도(Those who are Christ's at His coming; 고전 15; 23)가 돼야 한다. 예수께 붙어 있는 성도란 예수에게서 떠나 있지 않는 사람으로 주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자와 예수 말씀 안에 거하는 성도를 가리킨다(신 4; 4-5, 요 15: 4-7) ③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는 성도(히 12: 14, 롬 14: 15, 살전 3: 13, 4: 3-7)이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는 성도이다. 특별히 결혼생활에 거룩함을 지키는 성도들이다. ④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시험에 들지 않게 항상 기도하여 깨어있는 성도가 될 것(눅 21; 34-36)이다. ⑤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는 성도(고후 7: 1, 요일 3: 3)가 될 것이다. ⑥ 어떤 종류의 죄와도 상관치 않고 다시 오실 주님만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성도(히 9: 28)이다. ⑦ 점과 티와 주름 잡힌 것(Wrinkle, 호르티스: “주름살, 나이 든 티”)이 없는 거룩하고 흠이 없는 성도가 돼야 한다(Having no spot or wrinkle or any such thing; 엡 5: 27)

⑧ 음행과 더러움과 게으름, 우상숭배의 탐심과 남을 미워하는 어둠에 속하지 않고 빛에 거하는 성도가 되라(엡 5: 8-9, 살전 5: 5-8, 요일 2: 9-11) ⑨ 성령을 따라 삶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될 것(고후 5: 1-10, 갈 5: 19-21)이다. ⑩ 각종 이단의 유혹을 물리치고 바른 복음 안에서 주를 향한 진실함과 깨끗함을 지켜서 부패하지 않는 성도가 되는 것(고후 11“ 1-4) ⑪ 하나님의 말씀을 인내로써 지키며 예수이름을 배반치 않고 끝까지 붙잡는 성도(계 3: 10) ⑫ 음란과 부정(不淨)과 사욕(邪慾)과 악한 정욕과 탐심의 땅에 속한 지체를 죽이고 위엣 것을 생각하는 성도(골 3: 1-5) ⑬ 예수 위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며 포기하는 성도(빌 3: 7) ⑭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성도(계 21: 27, 3: 5) ⑮ 마지막으로, 날마다의 삶 속에서 에녹처럼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으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창 5: 21-24, 히 11: 5-6)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휴거 성도의 15가지 자격이다.

아무리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우고 학문을 익혔어도 자격증이 없으면 합법적인 수술의사나 간호사가 될 수 없고, 판검사 변호사의 자격증이 없으면 법리적인 일로 남을 도울 수가 없으며, 자동차 운전을 아무리 잘 해도 운전면허가 없으면 운전이 불법이듯이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니고 중요한 교회직분을 맡아 충성봉사를 많이 하며, 목사 선교사 부흥사로 주의 일을 많이 한다더라도 휴거의 자격을 갖추지 않으면 그날에 많은 성도들이 산 채로 들림 받아 저 하늘 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휴거에서 낙오될 것이다.

휴거는 인류역사 최대사건이고 말세성도에겐 최상최대의 축복사건이다. 예수께서 공중으로 재림하실 때, 수천 년 수백 년 수십 년 동안 누워있던 무덤의 뚜껑을 열고 부활하는 성도와 살아있는 몸이 부활체로 변해 하늘로 휴거하는 성도는 6천년 역사에서 최상의 축복을 받는 성도들이다. 그러나 누워있던 침상에서 아내나 남편이나 자식들은 입었던 옷과 안경과 금이빨을 남겨두고 떠났는데 자기만 남겨진 사람, 일터와 직장에서 떠난 사람을 보고 후회하며 통곡할 교인들, 성도의 휴거로 지구촌에 일어날 비행기 추락, 기차의 탈선, 수억대의 자동차 충돌사고로 아수라장의 현장을 목격해야 할 교인들은 절망의 현장에서 비통과 좌절과 충격 속에서 통곡할 것이다. 그 동안 잘하지 못했던 신앙생활을 후회하며 가슴을 칠 것이다.

그 날이 온다. 그날은 해가 져버린 초저녁에 어둠의 박모(薄暮: 땅거미, 황혼) 땅거미가 온 누리를 덮어가듯 21세기 지구촌을 서서히 덮어오고 있다. 당신은 이 사실을 아는가 모르는가? 주님의 다시 오심을 예비하고 휴거를 준비하여 “이리로 올라오라”(Come up here!)는 주의 음성과 함께 하늘로 올라갔었던 요한처럼 “이리로 올라오라”는 주님의 음성과 천사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교회에서 집에서 직장에서, 자동차 안에서 비행기 안에서 버스 안에서, 병원에서 공원에서 식당에서, 새벽이든 낮이든 저녁이든 한밤이든, 그리고 혼자든 둘이든 셋이든 당신의 몸이 영광스런 부활의 몸으로 변하여 하늘로 들림 받는 휴거의 축복들이 모두에게 있기를 축원한다.



김엘리야 목사(워싱톤주기도문교회 담임)    
www.Kido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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