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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03월23일 22시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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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의 때를 면하는 성도(묵강 8)
         
석 달 전인 지난 1월 14부터 16일까지(3일 동안) 인도했던 뉴저지 베데스 기도원 부흥회에서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귀한 말씀의 은혜와 신령한 은사체험을 허락하셨는데 특별히 집회 이틀째인 15일에 성도들에게 허락하신 입신의 은사역사는 내게 귀한 도전과 위로를 주신 예배였다. 당시 기도원은 성도 28명이 21일 금식(그 중 2명 교역자는 40일 금식을 했다)중 15일째 금식을 하던 때였는데 금식기도하면서 받은 은혜였기에 더 값진 은사였다고 생각된다. 그날 설교를 마치고 통성기도시간에 안수기도를 하는 중 몇 사람이 성령의 인도로 입신체험을 했었는데 입신성도 중 한 사람의 간증이 나(김목사)에 대한 계시(나에게 도전과 위로를 주신 계시)이기에 조심스럽게 소개한다.

그는 천국에서 예수님을 만나(이전에도 몇 번 입신경험이 있어서 조금은 익숙해졌다) 주님의 인도로 자신과 다른 성도들에 관한 여러 계시들을 보았다. 그리고 이전 처럼 예수님과 헤어지려고 하는데, 예수님께서 “내가 네게 특별히 보여줄 것이 있다”며 자기를 이끌고 다른 곳으로 데려가시므로 호기심을 가지고 예수님 뒤를 따라갔는데 얼마 후 어느 화려하고 웅장한 다이아몬드로 된 저택 앞에서 발을 멈추신다. 그 저택은 세상에선 볼 수 없고 상상도 할 수없는 유리처럼 투명하고 찬란한 다이아몬드 저택인데 너무 아름답고 신기해 ‘이 집은 누구의 집이냐?“고 물었더니 “가까이 가서 문패를 보라”고 하셔서 달려가 문패를 보았는데 문패에 “김 엘리야 목사”라고 쓰여 있었다.

몇 달 전 입신경험 때에 유리처럼 맑은 정금으로 된 집을 보여주시고 ‘이것이 기도원 원장 목사의 집’이라고 해서 처음으로 개인의 집을 보는 때라 ‘천국의 집은 이런 것이구나’하고 놀라워하며 존경하는 목사님께 이런 집을 예비해 놓은 것이 한편 기쁘기도 하고 한편 부럽기도 해서 “나도 부지런히 하나님의 일을 해 천국에 좋은 집을 마련하리라”고 도전을 받았었는데(원장 목사 집 내실은 여러 개의 넓은 방들 벽마다 수백 수천의 사람들 사진이 빽빽하게 걸려 있어서 궁금했었는데, 예수님은 ‘이들은 원장 목사가 전도한 사람들이라’고 하심으로 궁금증이 풀렸다. 실제로 기도원 원장 목사는 기도로 사는 목사이면서 일 년 365일 노방전도에 전념하는 경건한 여 목사다) 이번에는 유리처럼 투명한 최상의 다이아몬드 저택을 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 호기심에 집안을 보여 달라고 했다.

예수님을 따라 집 안에 들어간 그는 희한한 Interior Decoration(실내장식)을 보고 놀란다. 아래 위층의 여러 개의 많고 큰 방들의 벽마다 수천 개의 성경구절로 실내장식이 돼 있었고 제일 Living Room(거실)벽 중앙엔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황금 검’이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희한하고 신기해서 ‘이것들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이것은 내 종이 많은 세월 동안 성경을 사랑하여 읽고 연구해서 내려주는 상급이다. 그리고 저 황금 검은 내가 내 종에게 준 것이다”라고 일러주신다. 그때 그는 “천국에서 하나님의 종들이나 성도들이 받는 상급은 세상에서 자기가 일한대로 받는 것‘을 깨닫고 부족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다이아몬드 저택을 보여주신 예수님은 그와 헤어지면서, “너는 돌아가서 내 종, 김 엘리야 목사에게 ‘너는 내가 세상종말에 사용하려고 준비해놓은 종이니 조금만 더 참아라. 네가 지금까지 성경을 많이 읽고 연구한 수고와 인내를 내가 다 알고 있으며 내가 그것을 기뻐한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특별히 계시록을 더 많이 읽되 정독을 하라. 그러면 이제까지 깨달은 비밀보다 훨씬 더 크고 많은 영적비밀을 알려 주겠다’고 전하라”고 하신 후 그를 보내셨다.

그날 그의 간증을 듣고 나는 엄청난 위로와 충격과 새로운 도전을 받았다. 우선 ‘나 같은 죄인에게 그 같은 큰 축복을 천국에 예비하셨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경악했고, 그 다음엔 ‘나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르는 그가 그러한 계시를 본 것’에 신뢰가 가서 놀랐다. 특히 벽에 걸려있었다는 ‘황금 검’은 나만이 간직했던 40년의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저지에서 워싱턴 집으로 돌아오는 4시간의 새벽운전은 주체할 수 없도록 강물처럼 흐르는 눈물의 흥분과 설렘의 운전이었다.
                 

되돌아보면, 1961년 1월 19일 성령세례를 받은 후 앞만 보고 달려온 반세기 나의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 특별히 고등학교 1, 2, 3학년 동안에 97번의 신약통독에서, 신학교와 전도사 생활 12-3년에 200여 번의 성경통독, 그리고 미국 생활 37년 동안 수많은 시간을 성경 읽고 연구하여 500여 번 이상을 통독하며 10만여 시간을 바쳐 성경을 연구하게 하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다.

1969년과 70년에 세 번에 걸쳐 계시 중에 하나님께 받은 ‘황금 검’...이제 나는 까마득히 거의 다 잊고 살았는데...주님은 아직도 기억하시고 천국 집에 그것을 보관하고 계시다니...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고 한 것도 아니고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지만 그 많은 시련과 연단과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말씀에 붙잡혀 말씀만을 사랑하고 읽으며 위로받게 하신 주님께 감사는 하면서도, 한편으론 남들처럼 예수 통한 목회성공과 출세와 꿈을 이루겠다는 야심을 모두 접게 하시고 평신도뿐 아니라 목회자들까지도 계륵시하는 계시록과 종말론을 깨닫게 하사 그것을 전하게 하시는 주님께 서운한 마음이 한쪽 구석에 있었는데 그의 간증은 모든 것을 여지없이 깨뜨리고 나를 일깨운 은혜였다.

그날의 충격과 도전 이후 매일 구약 100페이지 신약 30페이지를 읽던 생활에서  매일 계시록 1독을 첨가하는 것이 나의 하루 일과가 됐고 오늘이 계시록 100독의 날인데 신기한 것은 계시록을 서른(30) 번째 정독하면서부터 주님의 약속대로 지금까지 깨달았던 말씀의 은혜보다 훨씬 크고 오묘한 비밀을 많이 깨닫는 복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김 목사의 간절한 소원은 천국의 다이아몬드 저택과 황금 검의 미래 계시에 만족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미래사는 차치하고, 현실적으로 백성들의 무관심에 낙심했던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돌아가므로 하나님의 대변자(God's Spokesman)가 된 것처럼(렘 15: 19-21) 사람들이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 주님의 진실하고 충성스런 대변인과 역사와 시대의 파수꾼이 되는 것이다.

                        시험의 때를 면하는 성도

사데에서 동남쪽으로 약 30마일(48km) 떨어진 작은 도시로 코가무스(Cogamus) 계곡에서 벗어난 필라델피아는 주전 189년 버가모 왕, 앗달루스 2세 필라델프스(Attalus II Philadelphus)가 자기 형 유메네스(Eumenes)를 사랑하여 그에게 주려고 건설한 도시로 처음엔 ‘필라델보’(헬라어 ‘필레오’(“형제”)와 ‘아델포스’(“사랑”)의 합성어로 “형제의 사랑”이란 뜻)라고 불렀었다. 필라델피아 근처 메안델(Maeander)강부터 트몰루스(Tmolus)산 아래 넓은 골짜기엔 헬무스(Hermus)계곡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교역통상로가 있어서 필라델피아는 고대 헬라문명 중심부로 고대사회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주후 17년에 소아시아를 강타한 지진으로 필라델피아는 초토화됐다가 티베리우스 카이저가 도시를 재건하고 이름을 ‘네로 카이저’로 바꿔 불렀지만 얼마 후 다시 필라델피아로 바뀐다. 필라델피아는 포도 명산지로 포도주가 많아서 술의 신 디오니소스(Dionysus)를 섬겼고 상업의 중심지여서 헬라문명과 로마문명을 동시에 받아들였다.

필라델피아는 현재 “하나님의 도시”란 뜻의 알라 셀(Allah Shehr)이란 도시로 남아 있고 지금도 그곳엔 교회와 많은 성도들이 남아있는데 놀라운 것은 2000년 전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 예수께 칭찬만 들었던 서머나와 필라델피아만 도시와 교회들이 아직까지 건재해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기독교를 반대하는 이슬람국가가 되어 국가정책으로 기독교를 탄압하고 복음전파를 억제하는 터키에서 인구 20만의 서머나에 기독교인이 7만 여명이 있고 필라델피아도 많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의 기록대로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에서 서머나 교회와 필라델피아 교회만 예수님의 칭찬을 들었다. 당시 두 교회는 다른 교회들에 비해 모두 작은 교회였고 약한 교회였으며 교인도 많지 않았고 사회적 지위나 재정능력도 빈약한 교회였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는 박해로 인한 극심한 환난과 궁핍에서도 시험들을 참고 이김으로 주님의 칭찬을 들었고, 필라델피아 교회는 보잘 것 없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인내함으로 말씀을 지키고 예수이름을 배반치 않음으로 주님의 칭찬을 들었는데 그 칭찬의 축복이 2000년을 계속하리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 예수님의 칭찬은 말로만의 칭찬이 아니다. 주님의 칭찬엔 반드시 보상이 뒤따른다. 땅의 축복과 하늘의 축복이 있고, 현재의 축복과 미래의 축복이 있으며 영원한 축복이 있다. 서머나 교회의 칭찬과 필라델피아 교회의 칭찬이 주기도문 교회의 칭찬이 되고 그들의 축복이 우리의 축복이 되기를 축원한다.

   1. 예수님의 두 가지 칭찬(8절)

“볼지어다. 네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背反)치 아니하였도다”

   ⑴ 말씀을 지킨 교회

필라델피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진 교회였다(They have a little strength-a little power) 적은 능력(A little strength, 미크란 에케이스 뒤나민)은 “능력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필라델피아에서 교인들의 신분이나 위치나 외적능력이 변변치 못했다는 말씀이다. 다른 교회처럼 이름난 연방과 주 상하의원이나 유명한 군인 장성도, 입김 센 국회의원이나 시의원, 권세 있는 판사 검사 변호사, 이름 있는 박사, 유명한 의사 대학교수, 돈 많은 CEO사업가도 없었다. 주일 날 교회 주차장에 최신형 롤스로이스 링컨 콘티넨탈 캐딜락 피아트 재규어 벤츠 BMW의 고급차 보다는 구형 현대 쏘나타, 토요다 캠리, 닛산과 깡통 밴, 낡은 픽업트럭이 더 많던 가난한 교회였다. 한 마디로 보잘 것 없는 교회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칭찬을 들은 교회였다.

예수님은 필라델피아교회에게 You have kept My word!(“네가 나의 말을 지켰다”), 
“너희는 말씀을 지킨 교회”라고 칭찬하셨다. 교회건물도 작았고 교인수도 많지 않았으며 교회형편도 자랑할 것이 없는 미약한 교회였지만 그들은 하나님 말씀대로 주일성수를 잘했고, 철저하게 십일조 생활을 했으며 기도생활과 금식과 구제사업도 열심히 했고, 말씀을 사랑하여 항상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연구했으며, 주의 사자를 보필해 일사불란하게 주님과 교회를 섬겼다. 그것이 예수님의 칭찬이다. 그렇다. 지상 교회를 향하신 주님의 관심과 칭찬은 교회 사업을 많이 벌인 것, 구제를 많이 하여 교회를 많이 알리는 것, 교육 시스템을 잘 만든 것, 축복을 많이 받고 사업이 잘 돼 헌금을 많이 낸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지키며(Kept, 카이 에테레사스)란 반의적인 강조표현으로 문자적인 의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켰다”란 뜻이다. 이것은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의 모함과 유대인들이 괴롭히는 수많은 박해와 핍박과 시련과 온갖 유혹 가운데서도 필라델피아교회가 진리 편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았음을 가리킨다. 바로 그것이 예수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이다.

당시 필라델피아교회가 당한 시련과 시험은 다른 교회들이 당면했던 황제숭배나 핍박이 아니었고 다른 교회 안에 침투했던 이세벨 주의나 발람의 교훈, 니골라 당의 유혹 같은 부도덕한 혼합주의 이단이 아니었다. 당시 필라에 살던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의 메시아 되심을 부정하고 예수를 따르는 성도들을 집요하게 핍박하는 박해였다. 유대인들은 혈통적으로 자기들만 하나님께 선택된 선민이고 하나님나라를 소유한 여호와의 총회(민 14: 27, 35)라고 주장하므로 예수의 메시아 되심을 부정하고 예수 믿는 성도들을 대적하고 핍박했다. 그래서 서머나 교회를 박해하고 훼방하던 유대인들이 사탄을 추종하는 ‘사탄의 회’(The Synagogue of Satan)라고 정죄 받았듯(계 2: 9) 필라델피아 유대인들도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교회와 복음을 방해하며 성도들을 핍박하므로 예수님은 그들을 ‘사탄의 자식’이며 ‘사탄의 회’라고 정죄하셨다. 필라델피아교회가 그러한 사탄과 마귀의 핍박의 소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므로 예수님의 칭찬을 받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므로 칭찬 듣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⑵ 예수이름을 부인하지 않은 교회

필라델피아 교회는 달란트 비유(마 25: 14-30)에서 주인이 종들의 재능 따라 나눠준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나 두 달란트 받은 종이 아닌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적은 능력’(A little strength)을 받은 교회였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시험과 시련 속에서도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않은 교회였다(They have not denied My name; 8하) 그렇다. 그들은 예수이름을 배반치 않았다. 주의 이름을 배반치 않았다는 말씀의 성경적인 의미는 ‘예수이름을 인정했다, 예수이름의 권세를 의심치 않고 믿고 사용했다, 예수이름을 높였다, 예수이름을 끝까지 붙잡았다’는 뜻이다. 필라델피아 교회는 작고 보잘 것 없는 교회였지만 유대인들의 끊임없는 유혹과 회유, 핍박과 박해, 방해와 훼방을 당하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주님의 이름을 신뢰하고 붙잡았으며, 주의 이름을 배반치 않았다.

성경은 예수이름을 배반치 않고 주의 이름을 붙잡고 의지하며 예수이름으로 행하고 예수이름을 믿고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① 모든 죄 용서와 영혼구원의 축복(마 1; 21, 눅 24: 47, 행 2: 38, 4; 12, 10: 43, 요일 2: 12) ②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마 1: 23) ③ 모든 귀신들을 쫓아내는 축사의 능력(마 7: 22, 막 9: 38, 16: 17, 눅 9: 49, 10: 17, 행 16: 18) ④ 어린아이 영접을 주님 영접으로 인정하심(마 18: 5, 막 9: 37, 눅 9: 48) ⑤ 주 이름으로 두 세 사람이 기도해도 그들 중에 함께하는 기적(마 18: 20) ⑥ 예수이름 위해 포기하면 여러 배 배상의 축복과 영생을 받는 축복(마 19: 29) ⑦ 능한 일(기적)을 행함(Do a miracle in Jesus name; 막 9: 39, 행 4; 30) ⑧ 각종 귀신들이 항복하는 역사(눅 10: 17, 행 16; 18) ⑨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요 1: 12) ⑩ 죄의 심판을 모면함과 영생 얻음(요 3; 18, 20: 31) ⑪ 모든 기도응답의 축복(요 14: 13-14, 15; 16, 21, 16: 23) ⑫ 성령을 받는 축복(요 14; 26) ⑬ 각종 질병치료의 기적(막 16: 18, 행 3; 6, 16, 4: 10) ⑭ 예수이름 위하여 박해받음과 천국영광의 축복(행 21; 13, 벧전 4; 14, 16) ⑮ 예수이름으로 범죄 교인을 사탄에게 내주는 출교의 권세(고전 5; 4) ⑯ 새 방언을 하는 표적(막 16: 17) ⑰ 뱀을 집을 수 있는 표적(막 16: 18, 행 28; 1-6) ⑱ 말과 행동을 예수이름으로 하고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할 특권(엡 5; 20, 골 3; 17) ⑲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 표적(막 16: 18) ⑳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섬길 수 있는 특권(빌 2; 9-10)을 주셨다고 했다.

그렇다. 예수 이름 안에 구원이 있고 표적과 기사가 있으며 기도응답과 놀라운 권세가 있고 모든 축복의 비밀이 있다. 필라델피아 교인들은 그 비밀을 알았고 그 특권을 믿었기에 고난과 박해 중에 예수이름으로 기도하며 즐거움으로 견뎠고, 병들었을 때에 예수이름으로 기도해 고침을 받았으며, 환난과 어려움 중에 기뻐하며 신앙생활을 했던 것이다. 필라델피아 교인들처럼 어떤 환경에서도 예수이름을 배반치 않는 존귀한 성도, 예수이름을 끝까지 붙잡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2. 필라델피아교회가 받은 축복들

이렇게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의 말씀을 지키고 주의 이름을 배반치 않던 필라델피아교회였기에 예수님은 당신의 모습을 ① ‘거룩하신 분으로’ 보여주셨다. 거룩하신 분(He who is holy, 호 하기오스)은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자”란 뜻으로 구약에선 하나님의 칭호로 사용됐고(사 1: 4, 5: 19, 24, 10: 17, 20, 12: 6, 렘 51: 5, 겔 39: 7, 호 11: 9, 합 3; 3) 신약에선 그리스도의 신성과 메시야성에 적용해 사용했는데(막 1: 24, 요 6: 39, 행 2: 27, 13: 35, 히 7: 26) 필라델피아교회가 세상과 구별해 거룩하게 사는 것을 기뻐하려 그렇게 자신을 보여주신 것이다.

② ‘진실하신 분’으로 보이셨다. ‘진실하신 분’(He who is true, 호 알레디노스)은 “가짜에 대한 진짜”라는 뜻으로 Ⓐ 예수님은 온전한 충성으로 메시아 직무를 수행하신 분으로 “온전하며 충성된 자”를 가리키고 Ⓑ 예수께서 참된 메시아로 “당신의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신 분”을 가리킨다. 그렇다. 지구상 수억의 신과 메시야들이 있지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 외엔 모두 가짜다.

③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He who has the key of David)으로 보이셨다. ‘다윗의 열쇠’는 다윗의 집인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로써 하나님나라의 특징인 영생의 수여권을 가리킨다. 인류 억조창생 중에 예수만이 하나님나라를 다스리고 관리하는 열쇠 소유자로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자와 들어갈 수 없는 자를 결정할 수 있는 분이라는 뜻이다.

④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분’으로 보이셨다. 당시 자기들만 하나님께 선택받은 선민이라 자칭하던 필라델피아 유대인들의 선민의식을 정면으로 대적하고 필라델피아교인들을 위로하신 말씀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적은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주의 말씀을 지키고 주의 이름을 배반치 않은 필라델피아교회에게 네 가지를 축복하셨는데 ⑴ “그들 앞에 열린 문을 두었다”(I have set before you an open door!) ‘열린 문’(An open door)은 궁극적으로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의 문”을 의미하지만 성경은 주의 말씀을 지키고 주의 이름을 배반치 않는 성도들에게 영생을 얻는 구원의 문 말고도,

① 하나님의 집과 성전의 문인 시온의 문(삼상 3; 15, 대하 28: 24, 29: 3, 시 9: 14, 87: 2) ② 장차 건설될 천년왕국의 영원한 성소의 문(시 24; 7) ③ 의인들만 들어가는 의의 문(시 118: 19-20, 잠 14: 19) ④ 생수의 강이 흘러내릴 천년왕국의 문(겔 47: 1) ⑤ 제한 없이 물질 축복을 내려주는 하늘 문(말 3: 10) ⑥ 기도가 응답되는 기도의 문(마 6: 6) ⑦ 지상에서 있게 될 그리스도의 혼인잔치 집의 문(마 25: 10) ⑧ 영혼구원의 문(눅 13: 25) ⑨ 하나님과 교통하며 신령한 만나를 얻게 하는 하늘의 문(창 28: 17, 신 31; 15, 시 78: 23) ⑩ 구원을 얻고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는 양의 문(요 10: 1, 9) ⑪ 복음을 듣고 전할 수 있는 믿음의 문(행 14: 27) ⑫ 대환난의 분노가 지나기까지 피할 수 있는 은신처 밀실의 문(사 26: 2, 20) ⑬ 예수의 신부성도들이 들어갈 신천신지의 수도 새 예루살렘의 열두 문(계 21; 9-12, 22: 14)들이 있다. 그러므로 주의 말씀을 지키고 주의 이름을 배반치 않는 성도가 받을 축복은 하늘과 땅, 현재와 미래, 물질과 건강과 영혼의 전천후축복이다. 이런 축복이 당신에게 있기를 축원한다.

⑵ ‘사탄의 회’를 굴복시키는 축복이다(9절) 본문은 필라델피아교회를 유혹하고 박해하던 유대인들을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자랑하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음을 밝히니 오해가 없기를 바라면서)모든 것이 부족한 죄인 중에 괴수(魁首)인 목사임에도 말씀을 지키려고 애를 쓰며 주의 이름을 배반치 않으려는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지금까지 나를 대적했던 사람들의 길을 막아 여러 가지 고통을 주는 것을 보고, 또 어떤 사람은 이 지역을 떠나게 하셨고 어떤 사람은 젊은 나이에 데려가기도 하신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해 주심에 감사하면서 한편으로는 두려워 할 뿐이다.

⑶ ‘주께서 지켜주시는 축복(祝福)’이다(Because you have kept the word of My patience, I also will keep you from the hour of temptation; 10상) 필라델피아교회가 주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으므로 주님도 그들을 지키겠다는 약속이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주님은 나의 삶을 지키신다.

⑷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시는 축복’이다(10중) 필라델피아교회는 ‘주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는데(They have kept the word of Lord's patience) '인내의 말씀‘이란 ① 인내함으로 그리스도의 마지막 재림을 기다리라는 명령 ② 인내하라고 가르치신 그리스도의 말씀 ③ 인내로 죄 많은 세상의 모순을 극복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인내하라는 말씀으로 해석한다. 모두 맞는 해석이다. 필라델피아교회는 유대인들의 모든 오해와 박해를 인내로 이겼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시험의 때를 면하는 축복‘을 약속하시면서 그 시험은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고 하셨다.

‘시험의 때’란 ① 현재적 의미로, 필라델피아교회가 그 지역에서 당면했던 여러 가지 문제들로 개인과 교회가 겪은 고통을 가리키고 ② 예언적으로는 예수 재림 때에 비(非)그리스도인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킨다. 그리고 ‘면하게 한다’(I will keep you, 테레소 에크)의 에크는 “...중에서 밖으로”란 뜻으로 “시험 중에서 밖으로”란 의미이니 ① 필라델피아교회가 “환난을 떠나 보호를 받을 것“을 가리키고 ② 이것을 그 시험이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그리스도를 부인하고 교회를 대적한 불신자를 지칭한다; 계 6: 10, 8: 13, 11: 10, 13: 8, 14, 17: 8)들을 시험할 때”라고 한 말씀과 연결해 보면, 본문의 궁극적인 의미는 예수님의 인내의 말씀을 지키고 예수이름을 배반치 않는 종말성도들은 장차 전 지구촌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의 때’인 칠년 대환난에서 떠나 그 시험을 당하지 않을 것, 환난 전에 휴거할 것이란 약속이다. 주님의 인내의 말씀을 참고 인내함으로 지키고 예수이름을 배반치 않으므로 지구촌 파멸의 날들인 대환난에 남지 않고 휴거 승천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3. 예수님의 권면과 약속(11-12절)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⑴ 세 가지 권면

예수님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실망하거나 낙심치 않고 인내함으로 주의 말씀을 지키며 예수이름을 끝까지 붙잡고 배반치 않는” 그래서 책망할 것이 없는 필라델피아교회에게 세 가지를 권면한다.

① “내가 속히 오리라”(Behold, I come quickly; Behold, I am coming quickly: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보라, 내가 서둘러서 빨리 오리라”) 예수님이 서둘러서, 지체하지 않고, 빨리 오시겠다는 말씀은 계시록의 중심사상이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 심판의 측면이다. 악한 자들을 공의로 심판하기 위한 재림이다(마 24: 48-51, 살후 1; 7-9)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 교회(계 2; 5)와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 이단을 회개치 않았던 버가모 교회(계 2: 16)와 살았다 하나 실상은 죽은 신앙의 사데 교회(계 3: 3)에게 도적같이 오실 것과 속히 오셔서(계 2: 5, 16의 I will come to you quickly, 엘코마이 소이는 “위협과 화난으로 오심”을 의미한다)검으로 그들과 싸우시겠다는 경고의 말씀과 같은 말씀이다. ⓑ 축복의 측면이다. 필라델피아교회에게 “내가 속히 임하리라”(I come quickly, 엘코마이 타쿠: “위로와 축복으로 오심”) 하신 것은 ‘내가 속히 와서 너희를 공중으로 데려 가겠다’란 축복의 재림 약속이었다. 지구멸망의 대환난을 당하지 않게 하고 산 채로 하늘나라에 데려가시는 일이 축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보다 더 큰 축복과 영광이 어디 있는가?

②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Hold fast what you have) "굳게 잡으라“(크라테이)는 현재 명령형 시제로 ”네가 지금까지 지켜온 믿음을 더욱 계속해서 공고히 하라“는 말씀이다. 지금까지 네가 말씀을 지켜온 것과 예수이름을 배반하지 않은 것을 계속해서 지키라는 말씀이다.

③ “아무나 네 면류관을 뺏지 못하게 하라” 하만이 모르드개에게 권좌를 빼앗기고, 가룟 유다가 맛디아에게 면류관을 빼앗겼으며(마 19: 28, 행 1; 16-26), 악하고 게으른 종이 한 달란트를 빼앗겨 열 달란트 종에게 주었듯(마 25: 26-30) 당신도 의의 면류관, 기쁨의 면류관, 썩지 않는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다른 사람에게 뺏길 수 있으니 마지막까지 조심할 것이다. 면류관(Crown, 스테파노스)은 운동 경기에서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승리의 관’을 가리킨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약물복용이나 부정이 발각되면 금메달을 박탈당하고 무관의 사람이 되듯 주님의 날, 주 앞에서 당신의 공력이 불에 타 없어질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판결되면 면류관이 박탈당한다. 당신의 공력이 금과 은과 보석으로 불에 타 없어지지 않는 공력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⑵ 세 가지 약속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예수님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인내로 말씀을 지키고 예수이름을 배반치 않으며 주의 재림까지 그 믿음을 굳게 잡아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면류관을 뺏기지 않는 1세기 초대 필라델피아교회와 21세기 종말시대에 필라델피아교회 신앙을 가진 성도들에게 세 가지를 약속하셨다.

①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라”
   (I will make a pillar in the temple of My God)
 
당시 필라델피아는 잦은 지진으로 건물들이 폐허가 되었으나 파괴된 건물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신전의 돌기둥뿐이었다. 도시 여러 곳에 지진과 폐허가운데 유일하게 남아있는 신전기둥들을 보면서 살던 필라델피아 교인들에게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하나님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신다는 약속은 이기는 자들이 하나님나라에서 중요하고 요동치 않는 위치를 차지하게 될 축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실감케 했다(렘 1; 18, 딤전 3; 15)

신약과 외경에는 기둥을 비유적으로 기술했는데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기둥이라고 했고(갈 2: 9) 외경에서는 베드로와 바울을 교회의 기둥이라고 했으며(Clement, Rom. 5: 2) 아브라함도 세상의 기둥이라고 했다. 기둥이란 전체건물이 존재하는 한 제거될 수 없는 부분이며 건물이 다 무너져도 마지막까지 남는 부분이다. 이렇게 기둥은 중요성과 부동성과 아름다움을 가리킨다. 그래서 성도들이 교회의 중요한 인물, 반드시 필요한 일군들을 기둥집사, 기둥장로, 기둥권사라고 부른다.

집의 대들보 기둥은 힘들다고 집을 떠날 수 없고, 있는 자리에서 움직여도 안 되며, 흔들려도 안 되고 그리고 썩거나 부패해서도 안 되며, 끝까지 집의 무거운 짐을 지고 견뎌야 하듯 교회의 기둥들은 쉽게 움직이거나 흔들리거나 썩어도 벌레가 먹어도 안 된다. 이렇게 기둥집사 기둥권사 기둥장로는 신앙이나 인격이 중요하다. 예수님은 이기는 자에게 성전기둥이 되게 할 것이라 하셨으니 헌금을 많이 내서 기둥이 되는 것이 아니요 기도를 유창하게 해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신앙경력이 화려해서 교회기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인내로 말씀을 지키는 성도, 예수이름을 어떤 환경에서도 부인하지 않는 성도, 신앙을 끝까지 지켜 자기 면류관을 남에게 뺏기지 않는 성도가 교회의 기둥이 되는 것이다.
교회의 기둥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지상 교회의 기둥만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천상교회의 기둥도 의미한다. 하늘에 있는 장자들의 총회의 교회(The general assembly and church of the firstborn; 히 12; 22-23)에서의 기둥이다. 지상 교회에 기둥들이 있듯 장차 성도들이 들어갈 천국에도 천상교회 기둥들이 있다. 주기도문 성도들이 지상교회에서도 교회기둥들로 존귀하게 쓰임 받고 그 사명을 감당하는 축복을 받으며, 저 천국에서도 천상교회 기둥들이 되는 축복 받기를 축원한다.

② “그가 결코 나가지 않으리라”(He shall go no more out)

그가 구원(救援)받은 성도들과 영원토록 함께 있게 된다(He will be among the redeemed forever)는 말씀이다. 그가 이기는 성도가 되는 한, 그가 인내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예수이름을 배반치 않으며 자기 면류관을 뺏기지 않게 믿음을 지키고 믿음으로 사는 한 결코 그는 영원토록 구원받은 성도들과 함께 영원히 거할 것이다. 영원한 천국, 영생복락을 보장하신다는 약속이다.

③ “그 사람 위에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성,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예수님의 새 이름을 기록하리라”

“기록하리라”(I will write, 그랍포)는 “내가 기록하리라”는 뜻이니 예수님이 그것을 직접 기록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성경에서 어떤 것에 이름을 기록하는 것은 “그것이 이름 쓴 사람에게 속하는 것, 그것이 이름 쓴 사람의 소유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돈을 지불하고 책을 산 후 책에 나의 사인을 해서 책꽂이에 넣어두면 내 소유가 되고, 집이나 차를 산 후 계약서에 내 이름을 사인하면 내 소유가 되듯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소유, 새 예루살렘의 소유, 예수님의 소유가 된다’는 말씀이다.

   ⒜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한다.(I will write upon him the name of My God)

랍비문학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의로운 자에게(사 43: 7), 메시아에게(렘 23: 6) 그리고 예루살렘에만 응용된다고 했고 구약 외경인 이사야 승천기 1; 7에서는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의 숨어 있는 이름이 있어 미카엘에게 알게 하고 그것으로 마귀를 쫓는다”고 했는데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한다는 말씀은 필라델피아교회에서 이기는 성도는 ‘하나님의 소유’인 의인으로 인정하시고 마귀를 쫓는 권세자로 인정해 준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그 이기는 사람 위에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함으로 “너는 이제부터 하나님의 소유다”라고 인 치시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You are Mine!)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贖良物)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하시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 하나님의 성,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기록한다.
     (I will write upon him the name of the city of My God which is New           Jerusalem which comes down out of heaven from My God)

새 예루살렘은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새 하늘과 새 땅인 신천신지로 내려올 오차원적인 초문화의 Mega City로 장차 신천신지의 수도가 될 성이다. 마태는 이 성을 “거룩한 성”(마 4: 5)이라고 했고, 바울은 “위에 있는 예루살렘”(히 12: 22),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 하늘의 예루살렘”(히 12: 22)이라고 했으며,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계 21: 2), 하늘에서 내려오는 어린양의 신부 예루살렘”(계 21: 9-10)이라고 했다. 새 예루살렘을 ‘어린양의 신부’라고 한 것은 장차 예수께서 공중으로 재림하실 때, 성도들이 휴거로 들림 받아 들어갈 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기는 성도 위에 새 예루살렘 이름을 기록하겠다는 것은 이기는 성도를 휴거 성도가 되게 하겠다는 말씀이다.

   ⒞ 예수님의 새 이름을 기록한다(I will write upon him My new name)

‘새(New, 카이노스) 이름’이란 “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이름”이다. 하나님과 함께 새 하늘 새 땅의 주인 되실 예수님이 7천년 인류역사에 이제까지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았고 당신만 아시는 비밀스런 새 이름(계 19: 12)을 이기는 성도 위에 기록하신다는 말씀이다. 천상천하의 모든 권세들을 지배하고 다스릴 절대 권력과 인격의 상징인 예수님의 새 이름을,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인내함으로 말씀을 지키는 성도, 예수이름으로 모든 것을 참아내며 이기는 성도, 예수이름을 끝까지 배반치 않는 성도, 주님의 다시 오심(재림)을 기다리며 자기의 가진 것을 굳게 잡고 누구에게도 자신의 면류관을 뺏기지 않는 성도 위에 기록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이기는 성도로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예수님의 새 이름이 당신 위에 기록되는 영광스런 축복들이 계시길 축원한다. 이기는 성도가 되자. 지는 사람에겐 영광도 축복도 없다.

   4. 예언적인 적용

필라델피아(Philadelphia, 필라델페이아)란 Brotherly Love(“형제의 사랑”, “형제와 같은 사랑”)란 뜻이다. 교회사적으로 필라델피아 교회는 형제 사랑의 뜨거운 마음으로 잃어버린 영혼들을 전도하고 선교한 근세 외국선교기의 시작인 1821년부터 성도들의 공중휴거까지의 교회시대를 가리킨다.

필라델피아교회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의 말씀을 지켰던 것처럼 근세 외국선교 시대 교회들은 미약한 중에도 선교 사업을 활발하게 펼쳤다. 영국에서 일어난 선교운동은 중국대륙 깊은 곳까지 복음을 전했고, 학생자원운동은 많은 젊은 학생들이 복음 전파를 위해 헌신하게 했으며, 요한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 윌리암 부드의 구세군 운동, 그리고 성결운동과 화이트 필드의 성령운동에 에드워드, 찰스 피니, 스펄존, 디엘 무디, 아도니람 저스틴, 데이빗 리빙스턴, 요나단 에드워드 등 기라성 같은 복음의 일군들이 일어났다.

1905년부터 약속한 것처럼 동시다발로 스코틀랜드, 스칸디나비아, 미국, 영국, 한국, 중국, 인도, 남미 여러 나라 등 세계 각국에서 일어난 성령운동은 또 하나의 거대한 복음의 쓰나미가 되어 세계선교에 박차를 가하는 기회가 됐다. 그리고 지금도 성령운동이 일어나는 곳마다 세계선교의 기치를 들고 복음전파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모든 선교운동은 지금이 역사적으로 필라델피아교회시대임을 입증해 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린 문을 주셨다는 증거다. 그래서 중국에 1억 5천만의 기독교인이 생겼고 소련에 수천수만 개 교회와 신학교들이 세워졌으며 아시아 여러 나라와 아프리카 오지와 남미 여러 나라에 교회들이 우후죽순처럼 세워지고 선교사들이 태풍과 비구름처럼 몰려가고 있으며 오랫동안 굳게 닫혔던 가톨릭과 모슬렘 국가에도 복음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원간,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구원받고 나면(롬 11: 25) 이 문들은 닫힐 것이다. 그때까지, 복음이 온 천하만국에 전해져 주께서 다시 오시기까지 형제의 사랑으로 이 복음을 전하고 복음의 일군들을 후원하는 은혜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김엘리야 목사(워싱톤주기도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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