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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04월14일 20시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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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거룩을 향한 몸부림, 주중에 한 번 더 성령으로 달궈져야

요즘 교계에 ‘특수’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부산 호산나교회 특별수요예배를 줄인 말이다. 호산나교회 특수는 작년 7월 홍민기 목사가 담임목사로 부임한 후 약 2개월 뒤인 9월부터 11월까지 3개월간 진행됐으며, 첫 주 3,300명 출석으로 시작해 마지막 주에는 청장년 주일 출석 성도의 80%에 육박하는 5,600여 명의 성도가 참석해 화제가 됐다. 홍 목사는 “새로운 담임목사에 대한 협조적인 분위기가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면서도 인터뷰 도중 여러 차례 담임목사가 새로 왔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한계를 넘었으며 “사람이 한 일이라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3월 6일 안양석수교회 특새 강사로 서울에 머물고 있는 홍 목사를 만나 호산나교회 특수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물었다. 홍 목사는 특수 관련 인터뷰 요청이 많이 있었으나 <목회와신학>의 인터뷰에 처음으로 응했다고 말했다.

담임목사 부임 전 800~900명이던 수요예배 출석 성도 수가 짧은 기간에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부임 후 교회 안팎으로 중요한 일이 많으셨을 텐데 특별히 수요예배에 집중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부 임해서 보니 교역자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해서 수요예배를 드리는 것 같은데 예배의 역동성이 보이지 않았어요. 뜨거운 기도회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문가의 특강도 아닌 정체가 분명하지 않은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퇴근하자마자 저녁도 못 먹고 헐레벌떡 달려 나와 앉아 있는 성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수요예배를 살려야겠다, 오시는 성도만이라고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또 다른 이유로는 성도들에게 기도할 시간을 주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저희 교회는 금요일에는 소그룹별로 다락방 모임을 갖기 때문에 주중 예배는 수요예배밖에 없습니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수요일밖에 없는 거죠.

예수 믿는 모든 성도들은 기도에 대한 갈급함이 있습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기도를 잘 하고 싶고, 기도 응답의 체험을 하고 싶고, 기도의 깊은 세계에 빠져들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주일예배 중에는 개인 기도 시간이 거의 없거나 있어도 1분이나 될까 싶을 정도로 짧습니다. 그렇다 보니 기도하고 싶은 성도들은 기도원을 찾아가 기도하는데, 기도원은 자칫 건강하지 못한 신앙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요예배는 설교도 중요하지만 기도, 성령의 임재, 성령의 체험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폭발적인 역사가 일어났어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예배를 갱신하고 성도들이 기도하게 해야겠다는 두 가지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했는데, 7시 30분에 시작하는 예배에 5시 30분부터 성도들이 오기 시작해 6시 30분이면 본당에 앉을 자리가 없어 부속실로 가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본당에 들어오지 못해 실망스러울 수도 있었겠지만 성도들은 수요예배에 이런 역사가 일어나는 것 자체에 은혜를 받는 것 같았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모든 성도는 예배 체험과 하나님 체험, 성령 체험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바쁘고 피곤하지만 주중에 한 번 더 주님께 나와서 성령으로 달궈지지 않으면 신앙인은 거룩과 거리가 먼 인생을 살 수밖에 없어요. 저는 ‘신앙은 거룩을 향한 몸부림’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거룩을 향해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거룩은 우리와 거리가 너무 멀고, 익숙하지 않아 평범하게 살아서는 거룩해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1년, 2년, 10년씩 신앙생활 하다보면 다 가면을 쓰고 교회를 다닙니다. 저는 이 가면을 ‘샬롬 가면’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한테 자주 ‘가면을 벗어야 된다’고 말합니다.

주일에 교회에 와서는 세상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라는 표현들을 쓰지만, 주중에는 철저하게 세상적으로 사는 이유 중 하나는 주중 예배에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일주일의 가운데 자리잡은 수요일에 다시 모여 예배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교회의 특수는 무슨 특별한 프로그램이라든지 특별한 목회 노하우라든지 조직, 시스템이 아니라 예배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는 믿음과 소신으로 시작된 사역입니다.

수요예배 설교 후에 갖는 기도회에서 성도들 사이를 다니며 안수 기도를 하고, 은사 받기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데, 제자훈련으로 다져진 장로교회에서는 보기 드문 일입니다. 이 같은 사역을 하시는 이유는 무엇이며, 성도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저는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정통 보수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반드시 성령으로 이어져야 된다고 봅니다. 21세기 교회론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성령’이 될 것입니다.

특 수를 시작하면서 성도들이 3가지씩 기도 제목을 가지고 참석하도록 했습니다. 성도들이 구체적인 일상생활과 관련된 기도제목부터 영적 은사를 간구하는 제목까지 다양한 기도 제목들을 가지고 나와 기도해 응답을 받고, 간증으로 이어졌습니다. 한 성도는 직장에서 매일 야근을 하는 바람에 수요예배에 참석할 수 없어서 ‘수요예배에 참석하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저도 은혜 받고 싶습니다’라고 기도했답니다. 그런데 사장이 매일 야근을 해서는 직원들 가정에 문제가 생기겠다며 매주 수요일에는 전 직원이 오후 4시에 퇴근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는 겁니다. 이처럼 구체적인 기도 응답이 있고, 이것들을 다락방에서 서로 나누면서 수요예배가 점점 역동적이 돼 가고, 성도들의 참여가 늘어난 것입니다.

저희 교회는 장로교회고, 원로목사님께서 24년 동안 제자훈련으로 다져 놓으신 교회기 때문에 성령 사역에 익숙하지는 않습니다. 이질감을 느끼는 사람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나이를 초월하고 신앙의 경륜을 초월해서 하나님을 더 체험하고 싶은 게 모든 성도들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든 성경을 공부하든 머리로 시작해서 마음으로 이어지기까지 여러 장애물들이 있는데, 그 장애물들을 뛰어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령을 체험하고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겁니다. 이것이 저의 예배에 대한 소신이고, 저의 목회적 판단입니다. 성도들이 원치 않았다 해도 실행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원로 목사님께서 워낙 탄탄하게 목회를 하셨고, 성령 사역에 대해 마음이 열려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성도들도 수용할 능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자훈련의 토대가 없었다면 아마 어려웠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더 깊은 터치를 위한 성령 사역을 계속 할 생각입니다.

목사님의 주일예배 모습과 수요예배 모습이 전혀 다릅니다. 주일에는 정장을 입고 강대상을 놓고 설교하지만, 수요일에는 넥타이도 안 매고, 강대상도 없이 마이크를 들고 단상 위를 걸어 다니며 말씀을 전하십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직 장에서 곧장 오시는 성도들이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예배드릴 수 있도록 돕고 싶었고, 청소년·청년들이 올 수 있는 수요예배가 되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기 편한 분위기,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드리고 싶어서 제 복장을 먼저 자유롭게 했고, 강대상도 놓지 않게 된 겁니다. 주일예배는 제가 부임한 이후 예배 순서 하나 바꾸지 않고 원로 목사님께서 하셨던 모습 그대로 하고 있으나 수요예배는 새로운 형식을 도입하면서 모든 것을 바꿨습니다.

아마 많은 독자들이 어떻게 성도들을 모았는지, 어떤 설교를 했는지, 어떤 특별 순서를 두었는지 등에 대해 궁금해할 것입니다. 목사님께서도 개인적으로 이와 같은 질문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습니다.

가 장 많이 듣는 이야기입니다. 선배 목사님들한테서 전화도 많이 옵니다. 수요예배 기획서를 보내달라는 분도 계시고, 자료를 보내달라는 분, 큐시트를 보내달라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죄송하게도 드릴 만한 자료가 없어요. 예배 순서는 찬양 20분, 설교 40분, 기도 40분으로 단출하고, 특별한 순서 없이 매주 똑같습니다. 참석을 독려하기 위한 시상 같은 것은 하지 않았고, 주일예배 시간에 광고하고, 교구 목사나 순장들을 통해 성도들에게 ‘수요예배 때 기도회를 할 것이며, 성령 체험을 할 것이다. 기도하고 싶은 분들은 오라’고 말한 것 밖에 없어요. 한 가지 홍보라면, 주일예배 때 수요예배 동영상 하이라이트를 보여 주었는데 아마 성도들이 많은 도전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뛰어난 강사를 초청하지도 않았고, 특별한 순서를 마련해 게스트를 모시지도 않았고, 꼼꼼한 큐시트를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사람을 어떻게 모으겠습니까, 그것이 어떻게 목사의 능력이겠습니까? 저희 교회 수요예배의 열매와 수요예배에 나타난 은혜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지 인간의 계획에 의한 일이 아닙니다. 사실 저는 특별수요예배를 시작하면서 평상시보다 한 1,000명 더해서 2,000명만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것도 조금씩 늘어서 마지막 주에 2,000명의 성도가 나와 기도하면 우리 교회 문화가 바뀌지 않겠는가 하는 소박한 꿈으로 시작했지, 지금 같은 역사는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다만 제가 다시 한 번 확인한 사실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들,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난 모든 호흡하는 인생들은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크고, 하나님을 체험하는 역사가 있는 곳을 사모한다는 사실입니다.

설교는 인물 중심의 시리즈 설교를 했습니다. 작년 수요예배 때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주제로 10주 시리즈 설교를 했고, 3월 7일부터 시작하는 올해 특수에서는 ‘예수님이 만난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12주 동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만나신 사람들을 한 명씩 조명할 예정입니다. 지금도 주일예배에서 ‘구별된 그리스도인’이라는 주제로 시리즈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시리즈 설교는 먼저 설교 전체의 아웃라인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준비 과정이 힘들긴 하지만 주제가 각인되기 때문에 지금 이 시대에 가장 맞는 설교라고 생각합니다. 제게도 가장 잘 맞는 설교 방식이고요.

주일예배 설교와 수요예배 설교는 성격이 다릅니다. 주일예배는 신앙의 초신자부터 시작해서 오래된 신자까지 보편적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말씀들이 선포되는 시간인 데 반해 수요예배는 목회 철학과 소신, 교회의 문화, 교회의 비전 선포와 같은 구체적인 내용을 전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시간도 비교적 넉넉하고요. 그래서 1년 열두 달은 어려워도 봄과 가을에 집중해서 할 생각입니다. 봄·가을에는 제가 예배 인도에서부터 설교, 기도회까지 전체를 감당하고, 여름과 겨울에는 부목사님들이 돌아가면서 그렇게 할 계획입니다.

한국 교회에는 다양한 형태의 예배가 있습니다. 전통적인 예배, 열린예배, 구도자예배, 시간대별로 특성화한 예배 등 예배의 의미를 살리면서도 참석하는 성도들의 눈높이에 맞춘 예배들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목사님께서는 한국 교회 예배 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 는 다양한 형태의 예배가 있는 것도 좋고, 한 가지 형태로만 예배를 드려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목회자의 소신이라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목회자를 세우신 이유 중 하나는 목회자의 달란트와 성격, 받은 은혜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목회,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한국 교회의 예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성도와 교역자들의 삶에 있습니다. 우리 교역자들이 성도들에게 존경받지 못하고, 성도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그런 삶에 대한 회개가 없이 예배에 참석합니다. 제가 볼 때 문제의 핵심은 ‘회개 없는 예배’입니다. 저는 아직 목회를 잘 모르고, 한국 교회에 대해 말할 자격이 전혀 없습니다만 개인적인 소견을 묻는다면, 한국 교회에는 예배 갱신이 아니라 회개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배 형식, 예배 철학, 예배 순서에 변화를 주는 일은 이미 한국 교회가, 또 세계 교회가 거의 다 해봤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변화의 중심에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서 있지 않으면 모든 변화는 다 울리는 꽹과리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볼 때 한국 교회에는 예배의 갱신보다는 회개 운동과 처절한 눈물과 하나님께 나아가는 무릎이 있어야 합니다. 찬송가를 부르든 CCM을 부르든 회개하는 자의 찬양에 역사가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예배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청소년 사역자로서 청소년 예배를 살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 과제는 무엇인지 말씀해주십시오.

청소년 예배를 살리려면 청소년 전문 사역자를 세워야 합니다. 1, 2년 사역하다가 사역지를 옮기는 교육전도사가 아니라 정말로 청소년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사역자로 세우고, 그가 사역할 수 있도록 교회가 투자해야 합니다.

청 소년 사역에서 사역자가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청소년들은 보이는 사람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장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때문에 보이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지만, 청소년들은 절대적으로 보이는 사람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따라서 청소년에게는 ‘들어야 되는’ 설교가 아니라 ‘들리는’ 설교를 해야 합니다. 들리는 설교를 하는 방법은 딱 한 가지 밖에 없어요. 그들과 놀아야 돼요. 같이 놀고, 같이 뒹굴고, 떡볶이 먹고, 같이 다니며 청소년들과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관계가 형성되면 청소년들은 장소, 시간, 어떠한 장벽도 상관없이 모입니다. 청소년들은 그런 특성이 있어요. 산꼭대기라도 갑니다. 자기를 기다려주는 사람, 자기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갑니다.

그런데 청소년과의 관계는 시간과 돈으로 만들어집니다. 비용이 드는 사역인데, 청소년 사역자에게 무슨 돈이 있습니까? 그런데 전국적으로 청소년 사역자에게 사역비를 제공하는 교회는 거의 없습니다. 제가 청소년 사역을 할 때도 그랬고요. 청소년 사역자에게 투자해야 합니다.

지금은 청소년 사역이 제일 잘될 수 있는 시기입니다. 지금이 교회학교의 가장 큰 위기라고 하는데, 아닙니다. 지금이 가장 잘될 수 있는 시기입니다. 왜냐하면, 청소년들은 어른들을 바라보고 어른들 안에서 멘토를 찾는데, 공교육이 무너졌기 때문에 학교 선생님들과의 관계에서는 기대할 게 별로 없고, 부모와의 관계도 가깝지 않습니다. 그러니 교회학교 선생답게, 교회학교 전도사, 목사답게만 하면 애들이 교회로 몰릴 수밖에 없어요. 한국 교회의 청소년 사역은 이 철학을 깨달아야 회복됩니다.

글 김보경 기자·사진 정화영 기자(두란노 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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