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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04월09일 15시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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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이 부활되어야 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절)

해 마다 이맘 때면 요한복음 11장의 사건이 재현됩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나사로가 죽은 줄 아시고 다시 살리려 오셨으나 마르다와 마리아는 살아 있을 때 주님이 오셨으면 그들의 오빠의 병을 고쳐 죽지 않게 했을 텐데 이제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돌 무덤 속에 들어 갔으니 끝이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네 오빠가 다시 살리라' 하는 말씀도 오해를 합니다. 예, 마지막 부활 때, 그 때에 다시 살 것입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아냐 내가 부활과 생명이니 죽은 자에게는 부활로 다시 살리고 살아 있는 자에게는 생명으로 영원히 살게 할 것이야 해도 막무가내의 신앙 고백을 반복합니다.

예 잘 알지요 주는 그리스도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래 놓곤 그들 앞에 있는 예수님이 병든 자는 치료할 수 있고 기도하면 무엇인가 얻는 분이긴 하지만 죽음 앞에는 별볼일 없는 분인지라 그들의 오빠의 무덤 앞에 가서 엉엉 웁니다. 살아 있는 말씀에 대한 무지와 불신앙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마르다와 나사로만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내게 대한 자책입니다. 가라사대 한 말씀으로 천지 창조가 이루어지는데 그 가라사대 이신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심에도 우린 그 만큼 그 분을 대접하지 않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신앙고백 이상 넘어가질 않습니다.

신비주의가 무서워 신비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믿지도 못합니다. 예수의 부활에 포인트를 맞춰 설교를 하고, 찬양의 축제를 하며 축 예수부활이라고 현수막을 써 붙이는 울지도 웃지도 못할 해프닝이 해 마다 이루어지니 이거 보통 일이 아닙니다. 태초 안에 계시던 말씀이신 그 분이 육신을 입고 오셔서 무덤에 들어갔다가 다시 사시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문제는 그 분이 부활과 생명이시라고 선언한 후에 그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문젭니다. 그 말씀이 부활이라면 부활이 되며 생명이라면 생명이 되십니다.

현재 부활과 생명의 그리스도를 만나 대면하지 못한 사람이 예수의 동선을 따라 골고다를 뒤돌아 보고 빈무덤을 찾는 일은 그야말로 성지순례 수준입니다. '주님이 지금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실 주님이 부활 승천하셨으니 마지막 날 나도 부활시켜 천국에 데려가실 것이다' 그러나 그 주님이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그 주님이 바로 부활이시며 생명이십니다. 언제나 자신이 부활했고 영원한 생명을 가졌음을 축하하십시오. 그런 다음 그 분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늘 celebrate하십시오. 그건 바로 부활과 생명의 믿음을 부활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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