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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01월01일 10시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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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 샹주, 웨이 지디안
1650년에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가 쓴 소설 돈키호테는 에스파냐 라만차 지방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로 시골마을의 늙은 귀족 라만차가 기사 모험에 푹 빠져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쉴 새 없이 엉뚱한 일을 저지르는 내용의 소설이고, 문호 섹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은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 자기 아버지를 독살하고 자신의 생모와 결혼해 왕위까지 찬탈한 숙부 클로디아스에 대해 복수를 꿈꾸지만 끊임없이 고민만 하고 실행치 못하다가 우연한 사건으로 큰일을 저지르는 내용이다. 그래서 돈키호테형 인간은 끊임없이 일을 저지르는 모험적인 사람의 대명사고, 햄릿형 인간은 고민만하다가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의 대명사다.

러시아의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는 1860년 ‘햄릿과 돈키호테’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어떤 일을 고민만하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햄릿형 인간’과 엉뚱하지만 고집스럽게 목표를 추구하며 계속해서 일을 만들고 저지르는 ‘돈키호테형 인간’을 극명하게 대비시킨 후 자기는 끊임없이 일을 저지르는 사람 편이라며 돈키호테의 손을 들어줬다. 놀랍게도 사람이 만든 크고 작은 모든 일은 엉뚱할 정도로 무모하게 일을 저지른 사람들이 만들어 냈고 지금도 그런 사람들로 세상은 급속도로 변화해 간다.

한때 세계여자테니스계의 챔피언이자 철녀(鐵女)로 불리던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는 ‘돈키호테형’ 여인이다. 1956년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난 그녀가 73년, 17살에 프로로 전향하고, 2년 뒤 공산체제의 조국 체코를 떠나 미국으로 망명했을 때, 세계가 다 그녀의 ‘일 저지름’에 놀랬다. 그러나 그 후 그녀는 윔블던 대회에서 통산 20여 회의 우승을 거머쥐면서 세계여자테니스의 최강자로 군림한다. 전성기 때는 무려 331주 연속 세계랭킹 1위를 고수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38살인 94년 말 테니스계를 은퇴했다가 7년만인 2,000년에 ‘코트 복귀’를 선언한다. 그녀의 ‘두 번째 일 저지름’이다. 테니스 선수로선 환갑 진갑 다 지난 44살의 할머니가 코트로 돌아온다고 했을 때 세상은 모두 그녀를 미쳤다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시도하지 않는 것 자체가 실패”라며 사람들의 비웃음을 일축했다. 그러나 체력의 한계로 힘든 몇 년을 보냈을 때, 사람들이 여전히 그녀를 조롱했지만 마침내 2,003년 나브라틸로바는 46살에 윔블던 혼합복식 우승을 거머쥐면서 이 대회 최고령 우승기록을 세운다. 그리고 49세인 2,006년 전미(US) 오픈 혼합복식에서 우승하면서 저지름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전 세계에 과시했다.

그녀의 ‘세 번째 일 저지름’은 얼마 전에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인 해발 5,895m의 킬리만자로 산을 등정한 것인데 그것도 유방암 진단이 내려진 뒤 열(10) 달 만에 저지른 일이었다. 나브라틸로바는 미국 ABC 방송의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해 유방암 진단이 내려지던 날 “눈물을 펑펑 쏟았다”며 “그날이 개인적으로는 9.11테러를 당한 날이었다”고 털어놓았었는데 그런 와중에 킬리만자로를 등정했다가 폐에 물이 차오는 고지성 폐부종 증상으로 하산해 병원에 입원한 것이다. 어쩌면 건강이 좋아지면 철녀는 다시 일을 저지를 것이다.

나브라틸로바 뿐 아니라 이 세상 정치, 경제, 군사, 문화, 과학, 체육, 예술, 종교 모든 분야에서 큰일을 해 낸 사람은 하나같이 모두 저지름의 사람들이었다. 현상유지를 원하고 무사안일을 추구한 사람은 아무 일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물론 일을 저지른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래세상은 을을 저지른 사람들이 차지한다. 저지름 없이 세상은 바뀌지 않고 변화하지도 않으며 나아지지 않는다. 이렇게 세상 모든 것은 일을 저지른 사람들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이렇게 저지름이 새로움을 낳고 미래를 열며 위대함을 만든다. ‘2012년이 믿음으로 일을 저지르는 해가 되자!’ 그러나 저지름은 단지 몸부림이 아니고 생존에의 사투, 죽음을 내놓은 싸움인 것도 각오해야 한다. 믿음으로 일을 저지르는 자들에게 축복과 하나님 도움의 기적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위상주, 위기순(爲上主, 爲基甸: 웨이 상쥬, 웨이 지디안)

본문은 하나님의 약속 하나만을 믿고 무모하게 큰일을 저질렀던 기드온의 전쟁승리 기록이다. 본문은 우리에게 몇 가지 영적교훈을 준다.

   1. 미디안 손에 붙여진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역사는 주변 국가들로부터 끊임없이 침략과 도전, 압제를 받는 질곡(桎梏)의 역사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사사시대는 그런 일이 더 심각했는데 본문에서도 이스라엘은 미디안의 압제로 칠년 동안이나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변 적대국들인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와 사해 동쪽의 모압, 욥바에서 가사 남쪽으로 붙어있는 블레셋, 아라비아 북서쪽의 미디안, 요단강과 사해 동쪽의 암몬, 요단 동편과 팔레스틴 북동쪽의 나라 아람, 지중해 연안의 시돈 등의 적대국들에게 패전하거나 원수들에게 학대를 당한 것은 언제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을 때였듯이 오늘날도 성도들이 영적, 육적, 환경적으로 대적들에게 고난과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죄 때문이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본래 거민이 많아 왕성했고 열국 중에 크던 자, 열방 중에 공주였던 예루살렘이 파멸당하여 원수에게 조공(朝貢)드리는 자가 되고 밤새도록 통곡하고 눈물을 흘려도 위로하는 자가 없으며 친구까지도 배반하여 원수가 되며, 시온의 도로가 처량하고 절기에 나아가는 자가 없으며 모든 성문이 황적하고 제사장과 처녀들이 탄식하고 근심하며 곤고를 당하고, 저의 원수와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저의 원수(怨讐)가 형통하는 것은 저의 죄가 많으므로(For the multitude of her transgression) 여호와께서 곤고케 하셨음이라”(렘애 1: 1-5)고 절규했고, 시편저자도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그러므로 수고로 저희 마음을 낮추셨으니 저희가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다”(They stumbled and there was none to help; 시 107: 10-12) 탄식했던 것이다. 기드온 사건의 출발인 사사기 6: 1-2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The hand of Midian prevailed against Israel고 했다.

그렇다. 여선지자며 사사였던 드보라의 활약으로 40년 동안 태평성대를 누리던 이스라엘이 강한 나라도 아닌 미디안 군대에게 맥없이 지고 7년 동안이나 그들에게 학대와 억압을 받은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우상숭배의 악을 행하고 죄를 지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미디안에게 붙이시자 이스라엘은 미디안의 속국이 됐고 유목민 미디안은 아말렉과 동방 야만인들을 대동하고 곡식이 한창 자랄 때에 시도 때도 없이 가축들을 몰고 와서 이스라엘의 곡식을 뜯게 했고 추수 때가 되면 강제로 곡식을 강탈해 양식이 없게 했으며 소나 양이나 나귀까지 닥치는 대로 모두 탈취해 갔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미약함이 극심하게 되자 마침내 하나님께 회개하며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를 부르짖으며 기도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반역과 우상숭배 죄는 사사시대로 끝나지 않고 왕정시대도 계속돼 북 왕조 이스라엘은 주전 721년에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남 유다는 주전 605년, 597년, 586년, 582년 네 차례에 걸쳐 바벨론의 침공으로 파멸 당한다. 그래서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애가를 통해 선지자들의 죄와 제사장들의 죄악이 이러한 파멸을 가져왔다고 했고 ‘우리 열조는 범죄하고 없어졌고 우리는 그 죄악을 담당하였다“고 탄식하며 통곡을 한다.(렘애 4: 12-13, 5: 7)

그런데 그러한 이스라엘의 범죄와 하나님의 심판, 선지자는 거짓을 예언하고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백성들은 그것을 좋게 여기는 이 총체적인 죄들(렘 5: 30-31)인 ‘기괴하고 놀라운 일’(A wonderful and horrible thing)은 종말시대에 교회와 성도들을 통해 지구촌에 다시 나타난다. 그래서 세상보다 먼저 교회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진노를 당하는데(벧전 4: 17-18, 렘 25: 29, 겔 9: 6, 말 3: 1-5) 그것이 바로 칠년 대환난 때에 적그리스도가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극단상황을 만나게 되는 것이고(계 13: 7, 단 7: 21) 교회와 성도들이 적그리스도에게 붙여져서 가공할 핍박 앞에서 교회와 성도들이 다 부숴지고 깨어지기까지, 패배하고 다 소멸돼가는 최악의 극한 상황(He shall have accomplished to scatter the power of the holy people: 단 12; 7)까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이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야만인들에게 처절하게 학대당한 역사적 사실을 통해 미래에 지구촌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의 전대미문의 핍박과 박해와 대학살을 생각하고 그러한 심판과 재앙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의 사사 기드온을 세우신 것처럼 대환난에서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많은 사람을 옳은 대로 돌아오게 하고 구원하는 축복의 성도, 지혜로운 성도들을 세우실 것을 기억하여 기드온 같은 ‘믿음의 큰 용사’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2. 일을 저지르는 기드온

원래 밀 타작은 마당이나 넓은 들판에서 타작기계나 황소가 곡식을 밟는 발굽을 이용해 한다. 그러나 미디안과 동방의 야만인들의 행패가 극심했기 때문에 기드온은 미디안 족의 눈을 피해 몰래 숨어서 좁은 포도주 틀에서 타작을 했다. 그때 여호와의 사자인 예수께서 기드온에게 나타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The Lord is with you. You mighty man of valor: 삿 6: 12)라고 하신다. 그러자 기드온이,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어찌하여 이런 비극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버려 미디안에게 붙였다”고 대답한다. 그때 예수님은 “너는 내가 주는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에서 구원하라”는 사명을 주셨는데 기드온은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라”고 대답한다.

기드온은 당시 열두 지파에서 별 볼일 없이 약해진 므낫세 지파에서도 약한 가문이었고 자기 집에서도 가장 작은 자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한 사람이기에 강하고 용맹한 Warrior(용사)인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Mighty Man이요 Valiant Warrior요 큰 용사다. 만일 당신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당신은 용사다. 당신은 유능한 사람, 실력 있는 사람, 강한 사람,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말씀을 듣고 ‘내가 드리는 제물을 직접 하나님의 불로 태워 주시면 그것을 믿겠다’며 표징을 구했다가 응답을 받은 기드온은 용기를 내어 일을 저지른다. 기드온이 첫 번째로 저지른 일은 아버지가 관리하고 있던 아비에셀 성 사람들의 공동소유인 바알 제단을 훼파한 일과 아세라 우상을 찍어 불에 태운 일이다. 당시 기드온이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없앤 것은 성민들에게 몰매 맞을 큰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저주원인인 바알과 아세라를 파괴했다.

그다음 기드온이 두 번째로 저지른 일은 전쟁을 위한 군사모집이었다.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인들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자 겁쟁이였던 기드온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강하고 담대하게 나팔을 불고 전투군사를 모집했는데 기드온의 통보를 받은 므낫세, 아셀, 스불론, 납달리 지파의 청년들이 32,000명이나 모였다. 바닷가에 모래 같은 세 나라 동맹군보다는 작지만 32,000명이면 해볼만하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너의 군인들이 전쟁을 이기면 우리 숫자가 많아서 이겼다고 자긍할 것 이니 내가 원수들을 너의 군사들에게 붙이지 않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기드온에게 “누구든지 두렵거나 겁이 나는 자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선포하게 하시므로 그렇게 하자 그날 집으로 돌아간 자들이 무려 22,000명이나 됐다.

10,000명만 남게 돼 이 숫자로는 힘들다고 생각하며 불안해하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아직도 군사가 많다고 하시며 정예군사 300명만 남기고 모두 돌아가게 하셨다. 32,000에서 300명이다. 그렇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쟁방법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겁 많고 두려워하며 불안에 떠는 오합지졸 32,000명보다 겸손하게 하나님만 의뢰하는 용맹한 정예군 300명을 사용한다.

망망대해 홍해가 갈라지고 바다 속의 대로로 이스라엘을 건너게 하신 것은 겁먹은 60만 장정 때문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 모세 한 사람 때문이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지만 전설의 거인장수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들이 거주하고 있어 손만 펴면 취할 수 있는 약속의 땅 가나안이 그림의 떡(화중지병)으로만 느껴져 10명의 정탐과 60만 군중이 바란 광야에서 하나같이 두려워 떨며 통곡하고 있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의 강하고 담대한 믿음 때문에 가나안 정복이 가능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은 열두 살 소녀 살리는 기적을 행하실 때, 믿음의 분위기를 깨뜨리고 소란케 하는 울음꾼들과 피리 부는 자들과 훤화하는 자들을 쫓아내시고 심지어 아홉 제자들까지 밖에 있게 하신 후 야이로 부부와 베드로 요한 야고보만 데리고 들어가 죽은 아이를 살리셨다.(마 9: 23-25, 막 5: 35-41)

물론 하나님은 32,000명으로 미디안 동맹군을 이기게 하실 수 있다. 10,000명으로도 가능했다. 그러나 300명을 고집하신 이유는 기드온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고 그 일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였다. 그렇다. 하나님은 당신의 많고 넉넉한 사업자금으로 사업을 성공하게 하실 수도 있다. 당신이 젊고 패기만만할 때, 성공하게 하실 수도 있다. 그런데 당신으로 자금이 부족해 힘든 상황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하시는 이유는 모든 두려움을 물리치고 살아계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며, 당신이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 끝에 나이가 들어서 일으켜 주심도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하시기 위함이다.

풀러 신학교에서 발표한 ‘한국교회 선교의 성공 비결’이 흥미롭다. 한국선교사들은 ① 무식할 정도로 무원칙 선교를 한다. ② 돈이 없어도 선교한다. ③ 기도(“사명 받으면 믿습니다. 아멘”으로 선교 떠남)로 선교한다. ④ 선교지에 가면 죽기 살기로 불퇴전의 각오로 선교한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호주, 독일, 영국은 선교 100년이 넘어 철저하게 과학적 선교전략을 세우고, 선교사훈련도 완벽하게 잘하며, 선교자금도 넉넉해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했는데 6-7년을 노력해도 선교에 실패하여 보따리 싸들고 선교지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이 떠난 자리에 맨손으로 들어간 한국선교사들은 2-3년이면 교회를 세우고 신학교를 세우며 중고등학교까지 세운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어느 선교사는 언어가 없는 종족들에게 한국말을 모국어로 가르치는 선교사도 있을 정도다.

그렇다. 전쟁경험이 전무했던 겁쟁이 기드온은 하나님의 사자(The Angel of the Lord)인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담대한 사람이 됐다. 그리고 적군이 침공해오자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군사를 모집하는 무모한 일을 저질렀다. 그런데 하나님은 믿음으로 일을 저지른 기드온을 통해 나라를 구원하는 기적을 만드신 것이다. 믿음으로 일을 저지르는 당신에게 하나님이 도우시는 기적들이 삶의 현장마다 나타나기를 축원한다.

   3. 웨이 샹주, 웨이 지디안

기드온은 300명을 한 부대 100명씩 세 편대를 짠 후, 나팔과 빈항아리를 군인들 좌우 손에 하나씩 들게 하고, 항아리 안에 횃불을 감추게 한 다음,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되 내가 적진 가까이서 하는 신호대로 나를 따라하라(Do as I do; 삿 7: 17)) 나와 나를 좇는 부대장들이 동시에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적진 사면에서 동시에 나팔을 불며 외치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For the Lord and for Gideon; 웨이 샹주, 웨이 지디안)고 외치라” ‘횃불 작전’을 지시한다.

그리고 기드온은 선발대 100명을 데리고 적진에 잠입한 후 기다려서, 이경초인 밤 10-11시, 적군보초들이 교대하는 시간을 깃 점으로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순 후 왼손엔 횃불을 오른손엔 나팔을 들고 불며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The sword of the Lord and of Gideon; 위상주살적(爲上主殺敵; 웨이 샹주 솨이디-“야훼를 위해 적을 죽이라”) 위기전살적(爲基甸殺敵: 웨이 지디안 솨이디-“기드온을 위하여 적을 죽이라”) 야훼를 위하여, 기드온을 위하여!(웨이 샹주, 웨이 지디안)”를 외쳤다. 동시에 다른 두 편대 200명 군사들도 횃불을 들고 나팔을 불며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를 목이 터져라 외쳤는데, 적군을 포위한 기드온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하나님께서 세 나라 적군들에게 자중지란이 일어나게 하여 서로 죽이고 죽여 전멸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렇게 기드온의 횃불작전은 성공했고 미디안, 아말렉, 동방의 세 나라 동맹군은 패멸하여 이스라엘에 40년 태평성대가 시작된다.

그렇다면, 왜 기드온은 “여호와를 위하여!, 여호와의 칼이여!”(웨이 샹주, 웨이 샹주 솨이디)만 외치라고 하지 않고 “웨이 샹주, 웨이 지디안! 웨이 샹주 솨이디, 웨이 지디안 솨이디!”를 외치라고 했는가? 그렇다. 성도의 신앙생활, 교회생활인 영적생활과 가정과 직장과 사업의 현장인 사회생활에서 모든 축복과 승리의 비결은 절대적이리만치 주의 종 신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만큼 주의 종을 믿고 신뢰할 때 영적승리와 생활승리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주의 종들과 관계개선이 안 된 상황에서 신령한 축복이나 가정의 축복, 사업의 축복을 구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반대로 주의 종들과 좋은 관계에 있는 사람이 복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성도들의 ‘축복의 바로미터(Barometer; 지표)’는 주의 종과 좋은 관계에 달려있다. 내 영혼을 맡긴 주의 종과의 관계가 은혜로우면 좋은 축복들이 있고, 주의 종들과 불화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막힌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를 영접하는 것은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셨고, 바울은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 6; 6),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히 13: 17)고 했으며 성군 여호사밧도 이기기 힘든 어려운 전쟁에 나가면서 불안해하는 군사들에게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Believe in the Lord your God, so you shall be established)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Believe His prophet, so you shall prosper)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대하 20: 20)고 격려했고 그 고백대로 하나님과 선지자를 신뢰하므로 전쟁을 이기는 축복을 받았던 것이다.

성도들이 본인과 자녀와 가정과 사업이 복을 받으려면 먼저 목사님과 인간관계가 좋아야하고 그다음, 최소한 목사님의 생일이 언제며, 목사님이 좋아하는 음식 다섯 가지 정도는 알아서 한 달에 한번은 음식 대접을 할 것이고(몇 달이 지나도 목사님과 밥 한 끼 나누지 못하면 문제 있는 신앙이다), 일 년에 춘하추동 사계절에 와이셔츠 몇 장과 넥타이, 양복 한 벌은 사 드릴 수 있어야 한다....(솔직히 나는 부족한 것이 없도록 가진 것이 넉넉해 선물이 필요 없고 성도들의 신앙만 잘 지키면 족한데 당신들이 김 목사를 제일 잘 섬기는 방법은 예배에 잘 참석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 목사를 예수님이 오른손으로 붙잡고 계신 별(계 1; 16)로 인정하고 교회의 총감독으로(계 2: 1, 8, 12, 18, 3: 1, 7, 14) 세우심을 인정해 받들어 섬기며 하나님처럼 신뢰하므로 주기도문교회에서 주의 날에 주의 종(김 엘리야목사)과 함께 김 목사가 받을 선지자의 상, 의인의 상, 제자의 상(마 10: 40-42)을 함께 받는 성도들이 많이 나오기를 축원한다.

   4.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자들이여!

꿈으로 대여섯(5-6)번, 입신 중에 너 댓(4-5)번 천국을 보았던 김 목사는 영적은혜가 부족해 다른 신령한 성도들처럼 천국에서 많은 것을 보지 못해 간증이나 증언할 것이 없지만 천국을 다녀온 많은 분들이 ‘천국 어디에도 성경시대에 예수님께 책망을 들었던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들은 볼 수가 없었다’는 간증은 의미가 깊다고 생각된다. 예수님은 자기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려는 외식하는 서기관 율법사들과 바리새인을 향해 일곱 번이나 화 있을 진저(Woe to you!, “너희에게 재앙이 있을 진저”)라고 하셨는데 화 있을 진저의 헬라어 우아이는 ”오, 슬프다“라는 탄식어로 사용되기도 하고 ”저주가 있을지어다“라는 저주선언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당대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서기관 율법사들에게 일곱 번이나 Woe to you!(“너희에게 저주가 있을 것이다”)고 저주를 선언했는데 그 이유는 ① 자신들의 외식(외식(外飾), 휘포크리타이는 “가면을 쓰고 무대에 나와 연극하는 자”안 뜻이다)으로 천국의 문을 닫아 자기도 안 들어가고 타인들까지 들어가지 못하게 했기 때문(Antagonism to God: “하나님께 대한 반대”; 마 23: 13, 눅 11: 52) ② 힘들게 얻은 교인(프로세뤼토스: “개종자”)을 자기보다 배나 더 지옥자식 되게 하기 때문(Damnation of souls: 15절)이며 ③ 소경된 인도자로 잘못 인도하여 거짓되고 헛된 맹세를 하게하므로(False vows; 16-22절) ④ 본질보다 비본질에 착념하며 겉으로만 생색내고 나타내 보이기 때문(Outward show; 23-24절)이었고 ⑤ False cleansing(윤리적 측면의 범죄로 겉으론 착하면서 속으론 남의 것을 욕심내는 탐욕으로 가득했기에: 25-26절) ⑥ 허영적이고 위선적인 신앙을 책망하심-자기 스스로 의로운 척 하면서 속에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기에(Self-righteousness; 27-28절) ⑦ Boasting and self-conceit(자기 자랑과 자기 과대평가에 도취해 있으므로; 29-36절) 그들을 저주하셨다.

김 엘리야목사도 포함될 수 있어서 민감하고 조심스럽지만(만일 김 목사도 해당된다면 철저하게 회개할 일이다) ‘예수님의 7대화’ 외에 성경이 말하는 잘못된 선지자, 성도들이 신뢰해선 안 될 종들(솔직하게 말하자면, 성도는 자신과 가족의 구원을 위하여 나를 포함해서 그런 목회자와 교회를 떠나야 한다)을 열거해 본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내지 않았는데 선지자가 주의 이름으로 잘못된 것을 예언하면 그 선지자와 그들의 예언을 받은 성도들까지 함께 저주를 받기 때문이다(렘 14: 15-16) 주의 종들이 맹목적으로 “웨이 샹주, 웨이 지디안”(여호와를 위하여, 기드온을 위하여), “여호와를 신뢰하라, 선지자를 신뢰하라”를 강요하며 성도들의 맹종과 복종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요구이고, 성도들이 영적인 분별이 없이 그렇게 따르며 섬기는 것도 하나님 말씀을 모르는 잘못된 신앙이다. 성경이 지적한 잘못된 종과 교회들은 1) 이단(異端)들이다. 베드로는 이단의 특색을 “자기들을 피 값으로 사신 주님을 부인하고 멸망을 자초하는 자들, 부도덕한 음란과 호색하는 일로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게 하는 자들, 불의한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 발람의 길을 좇는 자들,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된 멸망의 종들”이라고 말했고(벧후 2: 1-22) 사도 요한은 “예수의 성육신으로 마귀가 파멸됨을 부인하는 자들”(히 2: 14-16, 요일 4: 1-3),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여 우리에게서 나간 자들”(요일 2: 19, 22)이라고 했으며, 바울은 “그리스도의 피를 평범한 것으로 여기고 다원주의를 인정하는 것”(히 10: 29)이라고 했다. 예수 없이도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이 가능한 것을 주장하는 자들이란 말이다. 이런 목사, 이런 교회는 떠나야 한다.

2) 영적인 소경과 귀머거리들이다.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치 않고 귀가 밝음에도 듣지 않으므로 성도들에게 존귀한 축복을 받도록 인도하지 못하는 자(사 42; 18-22) 영적 무지와 잠자기를 좋아하는 게으름에 빠져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자(사 56: 10-12, 겔 22: 25) 말씀은 가르치면서 자기는 지키지 않는 자(롬 2: 17-24)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의 열매가 없는 자(벧후 1: 4-9)들이 영적인 소경이다. 3) 자기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거짓을 예언하여 성도들의 영혼을 사냥하는 자(렘 23: 16, 겔 13; 1-9, 18-19, 22: 25)들이며. 4)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자기를 추종하는 성도를 다른 길로 인도하는 자(신 13; 1-3)들이다. 

5) 악령의 유혹을 받아 거짓을 예언하는 자(겔 14: 9-10)들, 6) 하나님이 명령하지 않은 말을 예언하므로 자기가 선포한 예언이 맞지 않는 자(신 18: 20-22)들, 7) 경제적 이권에 따라 축복과 저주의 메시지를 자의로 전하는 자, 이권(돈)에 눈이 어두워 먹을 것이나 물질을 풍족히 얻으면 평강을 예언하는 자들(미 3: 5-6)이다.

한 때, 나는 기도를 많이 하는 거짓 예언자에게 속아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었다. 강원도 원주에서 내가 인도하는 부흥회에 참석했던 여 집사는 은혜 받은 사람처럼 겸손하게 보였고 헌금도 잘했으며 목사 섬기기를 뛰어나게 잘했는데 무엇보다도 하루 7시간에서 10시간을 기도한다고 부흥집회 본교회 목사와 여러 성도들이 칭찬을 해서 아무 의심을 하지 않았다.

어느 주일 예배 후, 목양실에서 집사 한 사람과 신앙상담을 할 때였다. 내게 전화가 걸려왔는데 발신지가 강원도 원주의 기도하는 여집사였다. 전화에서 여집사는 “목사님, 지금 목사님과 신앙상담을 하고 있는 집사는 밤낮 술독에 빠져 사는 사람인데 가끔씩 헌금하려고 십일조를 가져왔다가 헌금하지 않고 그 돈으로 술을 마신다”고 하는 것이다. 황당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해서 내담자 집사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집사는 얼굴이 파랗게 질리면서 그것이 사실이라고 고백을 한다. 300리 먼 거리 원주에서 서울에 있는 내가 상담하고 있는 것과 내담자의 비밀을 알고 전해주는 일은 당시 은혜체험을 많이 했다는 내게 충격이었다.

당시 교회에서는 성도들이 철야기도를 많이 했는데 그날 이후, 밤 11시쯤 되면 원주 집사가 전화를 해, 지금 교회 안에 몇 사람이 철야기도를 하는데 그들이 앉아 기도하는 자리는 어디어디고 누구는 무슨 기도를 하고, 누구는 어떤 기도를 한다고  전해준다. 그래서 기도가 끝난 성도들에게 기도내용을 물었더니 여집사가 전해준 전화내용과 같다. 그리고 성도들의 가정 사정과 기도제목까지 그리고 앞으로 교회에 문제를 일으킬 사람과 사건들까지 일일이 전해주는데 다 맞는다. 아람 왕이 침실에서 한 말들을 미리 다 알아 이스라엘 왕에게 전하므로 나라를 방비하게 한 엘리사처럼(왕하 6: 8-13) 여집사 말은 정확하게 맞는다.

그래서 그가 받은 은혜를 성도들과 나누게 하기 위해 ‘간증집회 강사’로 교회에 초청했다. 간증집회가 은혜롭게 잘 끝났다. 알콜 중독 교인이 놀라운 은혜를 받아 새 사람이 되고, 사명에 게을렀던 성도가 다시 사명에 불이 붙어 열심을 내는 성도가 됐으며, 문제 있는 성도들의 문제들을 족집게처럼 집어내고 문제해결을 위한 예언기도도 해주니 부흥회는 모두에게 은혜가 넘치고 만족한 집회였다.

그런데 집회를 마친 후 며칠이 지나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강사가 집회기간 중에 여전도사를 앞세워 교인가정에 심방을 하고 예언기도를 해주면서 “남편의 사업문제해결을 위해서 1,500만원을 내게 헌금하라. 병 고침을 위해서 300만원을 헌금하라. 사업이 잘 되기 위해 헌금을 하라. 헌금은 절대로 목사님께 알리지 말고 비밀로 하라” 등등으로 여러 성도들에게 돈을 요구해서 일부는 받아가고 일부는 강사  은행구좌로 송금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몰랐던 남편들이 알고 가정들이 벌집 쑤시듯 문제가 일어나고 나중엔 교회까지 심각한 문제가 됐다.

선지자 미가는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準備)하는도다. 이런 선지자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너희가 밤을 만나리니(Therefore night shall be unto you) 이상을 보지 못할 것이요 흑암을 만나리니(It shall be dark unto you) 점치지 못하리라 하셨나니 이 선지자 위에는 해가 져서(The sun shall go down over the prophet) 낮이 캄캄할 것이라”(The day shall be dark over them; 미 3: 5-6)고 선언했다. 그렇다. 안수기도해주고 돈 받고, 예언기도해주고 돈을 요구하며, 병 고침을 위해 치유기도해주면서 돈을 바라는 물질과 돈에 눈이 어두운 선지자, 이권에 눈이 어둔 선지자는 영적인 밤을 만날 것이고, 칠흑의 흑암을 만나며 그들 위에 태양은 빛을 잃을 것이다. 그런 목사와 교회에서는 자기와 자기 가족의 영혼을 위해 떠나는 것이 성경적이다.

마지막(8)으로 영적으로 깊이 잠들게 하는 귀신에게 붙잡힌 목사와 그들이 섬기는 교회들이다(사 29: 10-12) 이사야는 이런 영적지도자들을 “모든 묵시(黙示)가 그들에게는 봉한 책의 말이라”(The vision of all(the entire vision; 하주트 하콜: “하나님께서 참된 예언자들을 통해 계시해주신 거룩한 진리의 말씀”이란 뜻으로 역사서나 교훈서보다는 대소선지자들의 계시와 요한 계시록의 책들을 의미한다) shall be to you like the words of a sealed book)고 했고 그들 중 지도층 인사인 유식한 자(Who is learned; 요데아 하세페르: “글을 쓰고 읽을 줄 아는 사람”) 에게 이 묵시를 읽어 달라(Please read this) 부탁하면 ‘책이 인봉됐기에 읽지 못하겠다’고 할 것이고, 무식한 자(로-야다 세페르: “쓰는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 ‘읽어 달라’고 부탁하면 ‘나는 무식해서 읽지 못한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 말씀의 영적비밀을 모르고 말씀을 교훈적으로만 해석하는 종들이나 계시록이나 다니엘서 같은 비밀의 말씀을 멀리하거나 손대지 않는 종들을 지적한 말씀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평행구절인 마 15: 7-8에서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한다”고 했다.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무익함에도(요 6: 63) 많은 종들이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영적인 말씀보다는 인간적인 도덕과 교훈의 말씀으로만 말씀을 가르치므로 그것을 배운 성도들이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고 있다는 질책이다.

오늘 교회와 강단은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영의 말씀이 전해져야 한다. 목사들의 수준 높은 지식 전달이나 심리적이며 혼적인 말씀으로는 영혼을 살릴 수 없다. 그리고 종말교회의 강단은 “이 책의 예언의 말씀, 계시록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Seal not the saying of the prophecy of this book, for the time is near!: 계 22: 10)고 경고하신 예수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해야 한다. 이 준엄하신 예수님의 절대명령 앞에 “존 칼빈이나 마르틴 루터 같은 대신학자도 계시록은 손대지 않았다. 계시록은 어렵다. 계시록 강해는 위험하다”는 핑계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모르면 알도록 기도하고 노력하고 연구해서 나에게 맡긴 영혼들을 주께로 바로 인도하는 종들이 돼야 한다. 그래서 그 날, 주님께 “잘했다. 충성된 종아” 칭찬 듣는 종들이 되고 당신이 인도한 성도들이 천국에서 당신 때문에 거룩한 상급과 축복을 받는 기쁨의 모습을 보며 그들과 함께 주님께 세세토록 영광을 돌리는 은혜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김엘리야 목사(워싱톤주기도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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