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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01월01일 18시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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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산의 지경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벡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 하며 그들로 옷을 빨고  예비하여 제 삼일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제 삼일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 시내 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너는 백성을 위하여 사면으로 지경을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지경을 범하지  말지니 산을 범하는 자는 정녕 죽임을 당할 것이라  손을 그에게 댐이 없이 그런 자는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거나 살에 쐬어 죽임을 당하리니 짐승이나 사람을 무론하고 살지 못하리라  나팔을 길게 불거든 산 앞에 이를 것이니라 하라(19:10-13)”

우리가 다 아는대로 거룩 혹은 성결은 하나님의 속성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적극 요구하시는 주제이기도하다.  하나님의 거룩성은 모든 피조물과 분리된 유일성(uniqueness)을 말한다(출 15:11; 사6:1-4).  히브리어 ‘holy’의 뜻은 ‘범상함으로 부터 분리됨’을 말한다.  또  거룩성은 세상의 악이 범접하거나 오염할 수 없는 절대 순결이나 절대 선을 말한다(합1:13; 약1:13). 

신자의 거룩(성결)성은 도덕적, 영적 순결과 더불어 죽는 날까지 완성되는 성격을 띄고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가 몸과 마음을 거룩하고 깨끗이 하길 원하실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의 거룩한 영역을 침범하지 말것을 요구하신다.  이에, 하나님은 지경을 정하시고 지경을 범하지 말라고 하신다.  지경을 범하는 길은 곧 죽음의 길이 되는 것이다.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성전의 지성소와 연결되어 십자가를 통한 새롭고 산 길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한 온전한 믿음과 경배 그리고 순종을 주문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인간의 거룩함에는 자신의 성결함과 더불어 하나님의 거룩함을 침범하지 않는 자세도 요구됨을 알수있다.  이는 도덕적인 성결뿐만 아니라 영적인 성결의 범위를 생각하게 하는 말씀이라 여겨진다.

그러면 오늘 날 우리가 지키고 침범하지 말아야 할 하나님의 지경은 무엇인가?  인간이 발을 들여놓지 말아야 할, 넘보지 말아야 할 하나님의 지경은 과연 무엇일까? 

우선 콜링과 사명이 일차적으로 생각난다…성령의 자유로운 역사에 대한 조심스런 태도도…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와 섭리도… 그리고 생명과 창조의 영역도…  

사실 교회사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불협화음은 이와같은 지경의 문제에서 연유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님의 산을 오르거나 범하지 말아야 하는 경계선에 있어서 이해와 견해가 상충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이다.

은사가 분명히 나뉘어있지 않은 신앙 리더들의 동역이 어렵고, 때로는 현저히 구분이 되는데도 분수를 넘어서거나 사욕이 앞서서 조화를 깨뜨리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  대개의 경우 혼적으로나 영적으로 분별력이 약한 연유도 한 몫을 한다.
한편  본문을 보니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세우신 지도자 모세에게 지경을 정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세우신 리더에게 지경 정함의 권한을 주신 것이다.  그러면 새롭고 산길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로서 저마다 왕같은 제사장이 된 우리들이 분별해야 할 지경 정함의 기준은 무엇인가?

우선 각양 받은 은사의 성격과 사역의 솔선과 일관성있는 성실한 열정 그리고 열매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경 정함의 권한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리신 것 같은 수직적인 하향식 단순 명령 통로보다 이제는 내주하신 성령의 통치안에서 구성원의 개별적인 영적 예민성과 분별력과 상호 신뢰성과 상식과 동의에 더 의존도를 두게 된것이다.

물론 불완전한 우리는 늘 자신을 살펴야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우리기에 합당하고 의롭고 균형을 잃지않는 인격적 관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조직사회에서 대소그룹을 막론하고 리더들의 역할은 있게 마련인데, 신앙 사회는 세상의 조직사회와는 달리 곳곳에 숨어있는 거룩한 산의 지경을 잘 분별할 숙제를 안고 있다고 본다.  필자의 먼저 칼럼은 바로 이에 관한 이슈를 구체적인 예를 들어 진지하게 다룬 내용이기도하다.

이외에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신학적인 쟁점들도 대개가 거룩한 산의 지경에 관한 문제이다.  제목만 보아도 하나님의 산의 지경을 오르거나 범하는 불경하고 조악한 내용들이 심심치않게 등장하고 있다.  하나님의 내재성(immanence)은 자연법칙과 이성의 법에 매우 상응하지만 한편 하나님의 초월성(transcendence)은 초자연적이고 초이성적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거부시되는 신학이론에는 여지없이 하나님의 산의 지경을 넘나드는 이론이 등장하기 때문인데 대개 신앙생활에도 유익이 안되는 내용들이 많은편이다.  한편, 이에 대한 비판에도 유의가 필요한 것은 정도를 벗어나 과격하다 보면 끊임없는 이론을 양산하여 그만 또 다른 지경을 범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또 이론이 아닌 초자연적인 역사에 대해서도 너무 경도되거나 몰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한계를 지닌 인간인 우리가 너무 초한계적인 역사에 치중하다보면 비인격화 내지 탈인격화 될수 있는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에 대한 지나친 분석과 신랄한 비판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이 또한 과도한 집착의 다른 양상으로 산을 허무는 일이 될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본다…이미 창세기 인류의 조상으로부터 시작된 금지된 호기심……문득 화염검으로 지켜져 있는 에덴의 생명나무의 길이 생각난다……새롭고 산 길인 생명의 길을 열어놓으신 예수님……그러나 그 생명나무의 과실은 ‘이미’ 그러나 ’아직’ 이 되는 새 예루살렘 성에서의 열매요,  하나님의 거룩한 산의 기슭에서 우리가 옷을 빨고 나팔소리를 기다릴때, 이미 익었으나 또한 아직 우리속에서 익어가는 열매가 아닌가…?  그 생명수의 강 좌우, 생명 나무가 서 있는 곳은 다름아닌 바로 시온산- 하나님의 산 일 것이라는 생각을 조용히 해본다.

지금 내가, 우리가 서 있는 곳은 과연 어디인가?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계22: 14)”



박현숙 목사(프린스턴참빛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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