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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01월01일 19시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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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일을 창조하시는 야훼
새 일을 창조하시는 야훼    사 66: 22-24 

1969년, 문명의 오지 소백산 끝자락 깊은 산골에 위치한 충복 단양군 가곡면 가대리 시골교회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젊은 전도사가 주일예배를 인도하는 도중에 찬송을 부르던 성도들, 기도를 하던 성도들, 설교를 듣던 성도들이 자리에서 하나씩 둘씩 맥없이 쓰러지더니 나중에는 설교하는 전도사만 남고 132명의 교인들이 모두 성령에 붙잡혀 입신을 하는 진기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설교하던 전도사는 생애 처음으로 더 이상 예배를 진행할 수 없는 특수상황을 만났지만 그 날 예배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은혜 충만한 예배였다. 마치 솔로몬 성전 지성소에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들여 놓을 때 성전 안에 구름 같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해 더 이상 제사장들이 서서 섬기지 못하는 상황을 만났던 것처럼(왕상 8; 11) 전도사의 그 날 예배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했던 예배였다.

그날 전에도 예배시간에 입신하는 성도들이 간혹 있었고 입신 중에 다양하고 많은 계시들을 받았지만 그날 설교도 끝내지 못한 예배에서 성도들이 입신 중에 받은 계시의 많은 내용이 하나님이 전도사를 장차 어떻게 쓰시겠다는 내용들이었는데 그중에는 전도사가 시골목회 7년이 지나면 미국에 보내겠다는 계시, 전도사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학위를 받을 계시, 그리고 전도사가 마지막 날에 수많은 한국 사람들과 외국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라는 계시였다. 그런데 그중에 몇 사람은 4시간, 5시간, 7시간을 입신하여 천국을 보는 축복을 받았는데 어떤 성도는 천국에서 전도사가 살게 될 집과 그가 받을 상급까지 보고오기도 했다. 그날 이후에도 2-3년 간 그러한 입신의 은혜들이 교회에서 계속됐는데 어쩌면 그날의 은혜와 축복들이 전도사로 말씀과 기도에 붙잡혀 양쪽 폐가 구멍이 뚫려 피를 토하는 극단적인 육체의 고난과 먹을 것이 없어 당했던 배고픔, 뼛속까지 아픔을 느끼는 젊은 날의 고독과 절망의 7년 세월을 견딜 수 있게 했는지 모른다. 물론 7년 고난이 힘들어 일곱 번이나 보따리를 싸 도망을 간 적(대부분 기도원으로 도망감)도 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은 전도사에게 너무나 엄청난 계시들을 주시면서 위로와 격려를 하셔서 그 고난들을 이겨낼 수 있게 하셨다.

그로부터 43년이 지난 2012년 1월 16일(월) 새벽2시, 뉴욕과 워싱턴을 잇는 95번 고속도로에 총알처럼 달리는 자동차 물결 속에 시속 70-75마일을 유지하며 CD에서 흘러나오는 찬양을 들으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해 눈물을 흘리며 운전하는 60대 중반 초로의 목사가 있었다. 그는 지난 이틀 동안 28명의 성도들이 ‘21일 금식기도’ 중 15일째 금식을 하고 있는 뉴저지에 있는 베데스 기도원 부흥회를 인도하고 워싱턴으로 돌아가는 목사이다. 부흥회 기간에 주님의 축복으로 많은 성도들이 말씀의 은혜를 받았고 그 중에 어떤 성도들은 입신의 은혜를 받아 천국을 다녀오기도 했는데 천국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한 자매의 간증을 소개한다. 예수님이 그에게 기도원과 성도들에 관한 여러 가지 계시를 보여주신 후 그의 손을 이끌고 ‘네게 꼭 보여줄 것이 있다’며 어느 다이아몬드로 지어진 으리으리하고 멋있고 찬란한 집으로 데리고 가셨는데 그 집 문패에 ‘김 엘리야’라고 쓰여 있어서 예수님께 ‘이 집이 엘리야목사님 집이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하시며 그녀를 데리고 들어가 집 내부를 보여주시는데 수정처럼 투명한 다이아몬드로 지은 집의 집안 좌우벽면에 성경구절이 가득 기록돼 있어서(얼마 전 입신 중에 다른 목사님 집을 보여주실 땐 유리처럼 투명한 정금으로 지은 집에 벽에는 수많은 사람들 사진이 걸려 있어서 그 뜻을 물으니, 천국은 집 재료가 집주인의 공력 따라 다르고 집의 크기나 내용도 다르다며 벽에 가득 채운 많은 사람들의 사진은 그 목사가 전도한 사람, 그가 세워 일으킨 주의 종들의 사진이라고 하셨다) 궁금해 엘리야목사님 집 안 벽에 저 많은 성경구절은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나의 종이 성경을 사랑하고 많이 읽고 순종하기 때문에 그의 집이 그렇게 말씀으로 장식됐다’고 하셨다. 그리고 내실 중앙 벽에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으로 된 검(劒)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금검(金劒)에 대하여 묻자 ‘그것은 내가 내 종에게 준 것이다’고 하셨다(나는 그의 간증을 들으면서 직감으로 황금 검은 1969년과 70년에 세 번에 걸쳐 “이 검은 한국교회에 열 번째로 주는 검으로 마지막 검이다”라며 하나님께서 내게 주셨던 황금 검으로 생각했다)

의도적으로 그를 이끌어 김목사의 다이아몬드 집을 보여주신 후, 예수님은 그에게 안타까운 기색으로, 너는 돌아가서 내 종에게 이렇게 알려라. “김목사가 40년 이상을 준비하고 기다려서 너무 지쳐있고 낙심되어 마음이 약해져 있으니 너는 내 종에게 ‘강하고 담대하라. 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조금만 더 참고 견뎌내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알려주고, 지금 네가 성경을 많이 읽고 있는 것을 내가 안다(작년엔 하루 100페이지를 읽었는데 금년부터 130페이지를 읽고 있음) 그러나 무엇보다 계시록을 다시 더 열심히 정독하라. 네가 이전에 깨닫지 못했던 그 이상의 계시들을 알려주겠다. 그 일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을 마치신 후 예수님은 그를 이끌고 천국에서 나오셨다.

나는 이틀 동안 잠을 못자며 강행군해 졸음이 쏟아지려할 때, 갑자기 세 시간 전에 들었던 그녀의 간증이 생각나고 마침 자동차 CD에서 흘러나오는 찬송까지 은혜가 되자 바람에 안개가 밀려 사라지듯 몰려오던 졸음이 사라지고 감사가 솟아나기 시작하면서 주체할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사 지금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은혜, 43년 전에 계시로 주셨던 황금검과 천국에 있는 내가 살 집에 대한 계시...아직도 유효한 하나님의 약속들...”이 은혜로 나를 사로잡아 새벽에 95번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 마음은 하늘에 닿은 채 집으로 날아오듯 달려왔다.

그날부터 메릴랜드 변두리 오두막 교회에서 아주 작은 목회를 하고 있는 김목사는 130페이지 매일의 분량에서 계시록을 하루에 한번 읽는 은혜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그리고 이 간증은 결코 김목사의 자랑도 아니고 Humble Brag(겸손한 체 하면서 자랑하는 것)도 아니며 주마가편(走馬加鞭)으로 나를 채찍질하고 격려하는 간증임을 밝혀 둔다.

                        새 일을 창조하시는 야훼

1886년 8월 31일, 주일 저녁의 일이다. J. H. Sullivan(설리반)목사는 Pien Log(피엔 록) 감리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었는데, 몇 주 전부터 준비해 온 말씀을 가지고 강단에 서서 열성과 온 힘을 다해 설교했지만 교인들은 냉랭했고 아무 반응이 없었다. 설리반 목사는 ‘이러니 부흥회가 필요했겠고 그러니 나를 초빙해 말씀을 전하게 했겠지’라 생각해 주의 말씀을 더 열심히 전했다. 그러나 아무리 목이 쉬고 땀이 나도록 성심성의껏 설교해도 교인들은 도대체가 ‘소귀에 경 읽기’였다.

힘들게 설교를 마친 목사는 “주님, 이 냉랭한 회중들을 성령으로 감동시켜 주옵소서. 만약 이들을 감동시키는데 땅이라도 흔들어야 하시겠거든 이 낡은 예배당이 서 있는 바로 이곳을 흔들어 주시옵소서”라고 소리 높여 기도했다. 바로 그때, 설리반 목사가 “아멘”이라고 기도를 맺음과 동시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목사의 기도대로 교회가 서 있는 그 자리가 몹시 흔들렸던 것이다. 그렇다. 설리반 목사가 기도한대로 지진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1886년 8월 31일 주일 저녁의 ‘죠지아 지진’인 것이다.

그날 설리반 목사가 기도한대로 지진이 일어나자 당황하고 놀란 성도들이 흔들리는 교회마루바닥에 모두 무릎을 꿇고 자신들의 메마른 심령과 잘못된 행동을 하나님께 회개하며 용서와 자비를 구했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약속했다. 그리고 설리반 목사는 자기 기도를 들어주시고 이러한 초자연적 역사를 베풀어 성도들의 회개를 주관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감격하여 두 손을 높이 들고 감사기도를 드렸고 회개하는 성도들을 위하여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이 행하신 새 일(New thing)이었다. 이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새 일을 알아본다.

   1. 당대의 새 일(민 16: 25-35절)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일에는 ① 당시적인 ‘당대(當代) 새 일’이 있고 ②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후에 있을 ‘중장기(中長期)의 새 일’이 있으며 ③ 많은 세월과 시간이 흐른 후에 일어날 ‘먼 미래의 새 일, 종말적인 새 일’이 있다. ‘당대의 새 일’은 시간이나 세월이 많이 흐르지 않은 때, 사건 당시에 일어난 새 일을 가리킨다.

레위 지파로 성막에서 봉사하는 영광을 얻었음에도 그것을 ‘작은 일’로 여기고 지도자 자리를 넘보던 고라는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 지파 출신으로서 평소 모세의 지도자 권한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불평하던 다단, 아비람, 온과 250명의 족장들과 결탁하여 반역을 시도한다. 그러자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모세는 반역의 주도자 고라를 책망하고(8-11절) 다단과 아비람을 호출했으나 오히려 불응하면서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애굽 땅에서 이끌어내 광야에서 죽이려 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군림하여 왕이 되려하느냐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 들이지도 않고 밭도 포도원도 기업으로 주지 않으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하느냐 우리는 당신에게 가지 않겠다”고 거절한다. 그러자 격분한 모세는 이 일을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런 다음 반역의 주동자 고라에게 “내일 너희 250명은 향로를 하나씩 가져오고 아론도 향로를 가져와 향불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명령했는데 다음날 그들이 향로에 불을 피워 하나님께 드리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고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겠다”고 하셨다.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멸망시켜 없애겠다고 하신 세 번째 말씀이다(출 32; 10, 민 14; 12, 16: 21) 그러자 모세는 ‘죄를 지은 것은 한 사람인데 이스라엘을 다 멸하시면 안 됩니다’라며 중보기도를 하자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들로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면에서 떠나라’고 지시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지시대로 반역자들의 장막 사면을 떠나고 고라와 온과 다단과 아비람이 그 처자와 유아들 수백 명과 함께 자기들의 장막 문에 섰을 때, 모세가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 사 이 사람들을 저주받아 죽게 하는데 그들이 죽는 것이 일반적인 죽음이거나 그들이 당하는 벌이 모든 사람이 당하는 벌과 같으면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요.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 사(But if the Lord make a new thing, and the earth open her mouth, and swallow them up) 땅으로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 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라”고 외치는 동시에 그들이 서 있는 밑의 땅이 갈라지고 땅이 그 입을 열어 바다가 침몰하는 배를 삼키고 거대한 괴물이 사람을 통째로 삼키듯 반역자들과 그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키매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 채로 음부에 빠지고 땅이 그 위에 합하므로 반역자들이 총회 중에서 망하였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과 지위에 만족치 않고 ‘분수에 걸맞지 않게’ 지도자 자리를 탐내고 넘보며 하나님이 세우신 종들을 대적하며 여호와를 멸시했던 고라와 반역 동조자 250명과 그들의 처자 수천 명은 하나님이 행하신 새 일, 땅이 통째로 그들을 삼켜버리는 새 일에 희생자들이 됐다.
모세 시대에 레위 자손들이 했던 성막 관리와 각종 봉사 사역과 백성들에게 율법을 깨우치는 일은 백성의 죄를 대속하는 제사장 직분 못지않게 귀한 것이었다. 그런데 고라 일당은 모세와 아론이 하는 것처럼 제사장 직임만을 욕심내고 반역을 작당해 모세를 대적하다가 멸망을 당한 것이다. 하나님의 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시는 일에는 큰 것 작은 것이 없고 천하고 귀한 것의 구별이 없다.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맡기신 그 일 하나하나가 귀하고 그 모두를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것이기에 모두 소중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에겐 최선과 충성만 요구된다.

우리 몸에서 모든 지체가 다 예쁜 얼굴이 될 수 없다. 다 손이 될 수도, 발이 될 수도 없다. 얼굴에서도 눈 코 귀 입이 하는 일도 각각 다르다. 만일 눈이 입더러 ‘너만 맛있는 것 먹지 말고 나도 너처럼 맛있는 것 좀 먹겠다’고 해보라. 음식을 먹은 눈은 한 끼도 먹지 못하고 소경이 될 것이다. 만일 내장이 눈더러 ‘나는 아무것도 안보여 답답하니 너처럼 얼굴에 붙어 있겠다’ 하고 얼굴에 달려 보라. 눈에 빨래처럼 매달린 내장은 아무짝에도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 김목사처럼 말씀과 기도를 전무해 신령한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도 세우셨고, 주의 종을 보필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장로 권사 집사도 세우셨다. 목사가 평신도처럼 세상에 나가 Full Time으로 일해 돈 버는 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평신도가 일 안하고 목사처럼 24시간 기도나 하고 성경만 붙잡고 있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축복의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2. 중장기적인 미래의 새 일

모세시대 광야교회에서 실제로 있었던 고라 반역에 동참한 250명 족장과 그들의 처자식까지 땅이 입을 벌려 삼켜버린 사건이 당대 새 일이라면 주전(BC) 690년 경, 선지자 이사야가 700년 후에 지구촌에 일어나게 될 사건, 하나님이 만드시고 행하실 새 일의 예언들인 사 42; 9의 메시야 초림과 사 43: 19에서 예언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역사 그리고 사 48: 6에서 예언한 예수를 통한 인류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의 중장기적인 미래의 새 일이다. 중장기적인 미래 새 일을 알아본다.

   1) 메시야 구원사역을 통한 영적 해방(사 42장)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사 42; 9)

이사야 42장은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장차 하나님이 하실 새 일로 세상에 와서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는 성부하나님이 붙잡고 계시는 야훼의 종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택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신, 성령을 부은 종(I have put My Spirit upon Him)으로 삼위일체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분이란 말씀이다.

본문에서 메시야는 지구촌의 구원사역을 감당할 때, 그 몸에 인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임당할 고통의 종이지만 고통 중에서도 과격한 말과 행동을 나타내지 않을 만큼 신중하고 온유한 존재며(2, 52: 13-53; 12, 마 8: 4)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 쪼개져서 반쯤 부러진 상태의 갈대같이 더 이상 소생할 소망이 없는 자도 꺾지 않을 뿐 아니라, 기름이 다해 약하게 타고 있어 꺼질듯 한 등불 같은 나약하고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까지도 꺼버려 없애지 않고 그런 영혼을 치료하는 희생적인 존재며(3절, 눅 22: 56-62, 23; 43, 요 4; 5-42) 메시야는 인류구원 사역을 성취하시기까지 결코 쇠하거나 낙담하지 않는 존재라고 했다(4절)

그렇게 메시야가 야훼의 종으로서 인류구원의 역사를 이루면 하나님은 예수를 붙잡아 보호하고 그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신다(6절). 이렇게 세상에 오시는 초림 예수, 고난의 종 예수는 여호와의 종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을 비롯해 족장들에게 약속하신 구원의 언약을 성취하신다(마 26: 28) 그리고 그 구속의 역사를 통해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됐던 이방인인 우리까지 새로운 언약을 약속받고 구원에 반열에 들어서게 되며, 참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죄의 노예 상태에 있던 우리를 해방시켜 자유를 주셨다.(7절) 이것이 하나님의 새 일이다. 야훼의 종 메시야, 예수를 통해 성취하신 하나님의 새 일을 통해 우리로 참 빛을 갖게 하신 하나님, 죄와 저주와 절망의 쇠사슬에 얽매였던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세세토록 영광을 돌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2) 십자가 구원과 천년왕국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첩경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서 그들로 일시에 엎드려져
일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의 길과 사막에 길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 15-21)

장차 메시야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새 일, 새 구원은 과거 출애굽 시대에 홍해를 가르고 이집트 파라오 군대를 홍해에 수장시켜버리고 이스라엘을 구원한 구원의 역사와는 비교도 될 수 없는 새로운 일로서(15-21) 과거의 출애굽 구원이 이집트 종살이에서 자유케 한 육신과 환경의 구원이라면 장차 이루실 여호와의 새 일, 메시야의 새 구원은 지구촌 모든 인류가 죄에서 용서받아 영원한 천국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영적구원이다(22-28) 그렇다. 하나님의 새 일, 메시야를 통해 지구촌에 이루실 하나님의 새 일은 인간의 모든 죄, 원죄와 자범죄, 죄와 허물을 완전히 도말(塗抹)해주는 영적구원이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수백 년 동안 혹독하게 탈취당하고 억압당하던 종살이에서 몸만 탈출하는 몸의 자유였고 환경의 자유였다. 죄가 용서받고 영혼이 죄에서 자유를 얻는 영혼의 자유, 진정한 참 자유는 아니었다. 그러나 야훼의 종, 메시야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이루신 구원역사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짊어지고 나오는 태생적인 원죄가 도말되고 60-70년, 80-90년 살아가면서 짓는 온갖 죄들까지 용서받는 완전한 자유와 온전한 구원이다. 그래서 메시야를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새 일은 지구촌에 단번에 이루어 놓으신 영원하고 완전한 구원이다. 이 길 외에 인간 구원(救援)의 길은 없다. 죄 사함과 영생(永生)은 하나님이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Behold, I will do a new thing) “이제 나타낼 것이라”(Now It shall spring forth) 말씀하시고 메시야를 통해서 이루신 하나님의 새 일뿐이다. 하나님의 새 일로 죄와 허물이 도말되고 영생의 축복을 받게 하신 하나님을 송축하기를 축원한다.

이사야는 ‘새 구원은 광야의 길이 생기고 사막에 강이 생긴 것 같은 구원이라’고 노래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새 구원을 통해 들짐승인 시랑과 타조까지도 하나님을 존경하게 되고 구원받은 백성들은 사막에 생긴 생명수 강물을 마실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장차 예수님의 지상 재림으로 천년왕국이 이뤄질 때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을 경배할 것의 예언이다. 그래서 예수님 십자가 구원역사는 천년왕국의 출발이다. 십자가 죽음과 부활, 승천과 재림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모두 성취되기 때문이다. 2000년 전 갈보리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새 일을 이루시므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신 예수님을 세세토록 찬양하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3) 바벨론포로 귀환과 예수 재림의 구원완성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한 일을 네게 보이노니
I have showed you new things from this time.
이 일들은 이제 창조된 것이요 옛적 것이 아니라
They are created now, and not from the beginning.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느니라. 그렇지 않았다면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였으리라“(사 48: 6중-7)

이사야 47장에서 우상숭배로 바벨론이 멸망하는 것을 진술한 이사야는 48장에서 동일하게 우상숭배 죄를 짓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서술함으로써 택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중점적으로 강조한다. 똑같은 우상숭배와 도적질의 죄를 범했어도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받을 형벌과 성도가 당할 징계가 같지 않다는 말씀이다. 그렇다고 성도들에겐 특별한 빽이 있으니 맘대로 죄를 저질러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성도가 같지 않다는 말이며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이 각별하고 사랑이 다르다는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의 책임이 크고 하나님 영광 가리지 않기 위해서 더 조심하고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본장은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반역과 완고함에 관계없이 무조건적으로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구원을 강조한 말씀이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족장시대를 거쳐 출애굽 후 광야시대를 지나 왕국시대를 맞으면서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인 것이 확인됐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선민답게 하나님을 의뢰하고 탁월한 공동체적 윤리를 실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반복되는 구원역사를 경험하는 상태에서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이방을 답습해 우상숭배를 하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했다(1-5절)

이미 물 건너간 이스라엘의 회개를 무작정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으신 하나님은 마침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창 12: 1-3)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위하고, 자신의 영예를 위해서(For the sake of My name and For My praise; 9절) 그리고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For My own sake; 11절) 무조건적으로, 아무 조건 없이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시행할 것을 선포하신다. 그렇다. 구원은 이렇게 오직 하나님 은혜로만 가능하다. 엊그제 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아 고생하고 있는 한국의 중견작가(中堅作家), 최인호씨가 그의 아픔을 안타까워하는 지인들에게 ‘내 생명은 엿장수이신 하나님께 달려있으니 그분 맘대로 되길 바란다’는 말을 했듯 그렇다, 인간구원은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필연적인 심판으로 영원히 버림받고 저주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새 일을 보여주시며 “이 일들은 이제 창조된 것이요 옛적 것이 아니라”(They are created now, and not from the beginning: 7절)고 선포했다. 그리고 이것은 이스라엘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일이며 들어보지도 못했던 은비(隱秘)한 일(Hidden things: 6절)이라고 했다. 이사야 48장에서 선포한 이스라엘 구원계획은 이사야가 이 예언을 할 그때, 하나님이 창조하신 ‘새 일 계획’(The Plan of the new thing)이란 말씀이다.

그것은 먼저 100년 후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가 될 것이고(사 48: 20-21) 170년 후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할 것이란 예언이다.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와 포로귀환이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그 예언이 문자 그대로 성취되긴 했지만 본문이 그것만의 예언이라면 하나님의 구원계획, 하나님의 새 일이란 엄청난 예언은 빈약한 예언이다. 그래서 본문의 일차적인 의미는 바벨론 포로귀환이고, 이차적인 의미는 예수 초림의 십자가 사역으로 이뤄질 영적 바벨론에서 자유를 얻는 영혼구원이며, 마지막 궁극적인 의미는 지구 종말에 나타날 두 바벨론, 음녀종교 바벨론인 가톨릭교황청과 정치 경제 바벨론인 적그리스도에게 교회와 성도가 망하기 직전까지 짓밟히고 박해를 당하다가 두 바벨론의 멸망과 함께 구원받게 되는 대 구원역사를 가리킨다.

불원간 지구촌에 영적으로 준비된 성도들이 산채로 들림 받아 지구촌에서 사라지는 공중휴거가 있고 그 뒤를 이어 7년 대환난이 시작된다. 대환난 중반에 음녀 종교 가톨릭은 짐승인 적그리스도의 힘을 얻어(계 17: 1-6) 세계 종교를 통일하고 유일신을 믿는 유대교와 기독교를 박해하는 음녀는 2000년 기독교사에서 8,500만 성도를 죽였듯이 지구촌에서 유대인과 교회를 박멸하기 위해 핍박하고 죽이는 대학살(Holocaust)로서 독한 술과 마약에 취해 이성을 잃어 제 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다(The woman drunk with the blood of the saints, and with the blood of the witnesses of Jesus; 6) 그러다가 적그리스도에게 미움을 받고 멸망을 당한다(계 17: 16)

그다음 하늘에서 미가엘 천사와 전쟁을 벌였다가 패전해 지상으로 쫓겨 내려온 마귀에게 능력과 보좌와 권세를 받은 적그리스도는 경제바벨론과 정치바벨론으로 지구촌에 등장해 세계경제를 쥐고 철권통치로 나라들을 통치하며 자기와 자기우상을 신으로 경배하게 하고 666표를 받지 않는 자는 어떤 것도 사거나 팔 수 없게 하며 자기를 반대하는 자는 인종과 나이와 지위를 물론하고 닥치는 대로 죽인다. 특히 짐승의 표 666을 받지 않고 우상숭배를 거절하는 교회와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단 12: 7)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A time and times and the half a time: 단 7: 25, 계 13: 7)인 3년 반 동안 무차별로 학살을 당하는데 그때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에서 적그리스도에게 학살되고 죽임당할 성도들은 수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계 7: 9-14, 13: 15)
 
그러나 적그리스도의 폭력정치 3년 반을 다 채우도록 내버려 둔다면 지구촌에서 살아남아 구원받을 성도가 없을 것을 아신 예수님은 적그리스도의 날을 감하셨는데(He shortened the days; 막 13: 20) 그것이 단 8: 14의 ‘2,300주야의 비밀’이다. 원래 히브리인의 7년은 2,520(360X7=2,520)일인데 적그리스도의 날을 2,300일로 정하셨다는 말씀이니 이것은 후 삼년 반, 1,260일에서 220일(7개월 10일)을 삭감했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후 삼년반의 42달은 34달 20일, 2년 10개월 20일이 됐다.

적그리스도가 예루살렘 성전에 자기 우상을 세우고 전 세계에 우상숭배 법령을 선포하면서 ‘기독교 박멸운동 대학살’ 박해를 시작한지 대략 2년 10개월 20일 만에 적그리스도는 아마겟돈에서 지상에 재림하시는 예수님께 결박당해 산 채로 영원한 지옥, 유황불 지옥으로 던져진다. 이것이 정치바벨론, 경제바벨론 적그리스도의 최후운명이다. 이것이 2,700여 년 전에 이사야를 통해 예언한 하나님의 새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적그리스도의 파멸적인 운명을 기억하고 환난 날에 신앙을 끝까지 지켜서 예수님의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복된 성도들이 많이 나오기를 축원한다.

   3. 먼 미래의 새일

먼 미래, 오랜 후에 있게 될 하나님의 새 일은 ① 여자가 남자를 안는 일(렘 31; 22)과 ②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일(사 65: 17, 66: 22)이다.

   1)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For the Lord has created a new thing in the earth.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렘 31: 22)
A woman shall compass a man.

본문은 해석하기가 어려운 난해구절 중 하나로 여러 가지 해석이 있는데 ① 처녀 이스라엘이 주께 돌아올 것을 가리킨다. ② 이제까지는 주께서 이스라엘(여인)을 사랑으로 안으셨으나, 새 날이 이르면 이스라엘이 적극적으로 여호와를 찾아 나설 것이다. ③ 이스라엘이 강력한 힘을 자랑했던 이방 열국들을 제압하게 된다. ④ 전쟁시에 여인들이 대적들을 무찔러버릴 수 있을 정도로, 이스라엘이 평화와 안정을 구가하게 된다. ⑤ 천년왕국 시작 때에 여러 여인들이 한 남자에게 구애(求愛)한다 등의 해석들인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가 힘든 말씀이다. 다만 본문 내용이 야훼하나님이 창조하신 믿기 어려울 정도의 놀라운 ‘새 일’이라는 말씀을 근거로 나는 ⑤번의 해석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안으리라”(Compass, 카밥)는 ① To revolve around(주위를 선회하다) ② Surround(둘러싸다, 에워싸다, 포위하다) ③ Be on every side(모든 방향에서 진치고 있다) ④ Beset(습격하다, 공격하다, 괴롭히다, 따라붙다) ⑤ Cause to come about(가까이 오는 원인이 되다, 가까이 다가오다) ⑥ Compass about or around(주위를 둘러싸다, 주위를 일주하다) ⑦ Beset round about(공격하거나 괴롭힐 정도로 가까이 있다) ⑧ Enclose(둘러싸고 에워싸다, 담을 두르다) ⑨ Turn back to(갔다가 다시 돌아오다) ⑩ Circuit(배회하다, 순회하다)라는 뜻이니 이 말은 남자들은 적고 여자들은 많은 상황에서 여자가 남자의 환심을 사고 남자를 내 사람으로 만들어 안기 위해 가까이 접근하는 상황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사 4; 1에서 선지자 이사야도 “그 날에(In that day, 바욤 하후: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으로 천년왕국이 시작되는 날”)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오직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칭하게 하여 우리로 수치를 면케 하라 하리라”고 했다. 7년 대환난 때에 전쟁에서 많은 남자들이 전사하고 희소해지므로 천년왕국이 시작될 때, 남편을 잃은 많은 과부들이 남자 하나를 남편으로 얻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들어 사랑을 구걸하며 절규하는 상황이 있을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날 지구촌에 여자가 남자를 안으려는 진기한 하나님의 새 일이 있을 것이다. 천년왕국은 그렇게 시작된다.

   2) 새 하늘 새 땅의 창조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사 65: 17)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사 66: 22)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 21: 1)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 그렇다. 7,000년 동안 인류가 살았던 지구, 6,000년 동안 대략 300억 이상이 살다가 죽어간 지구 그리고 1,000년 왕국에서 수천억의 사람들이 살고 간 지구, 7,000년 유구한 역사 속에 온갖 죄와 저주와 눈물, 죽음과 질병과 전쟁으로 원한과 통곡이 점철된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새로 생겨난 찬란한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The former things shall not be remembered nor come to mind) 우리를 기쁨과 흥분으로 설레게 하는 신천지 그리고 하나님 앞에 영원토록 있게 될 새 하늘 새 땅이다. 이것이 인류를 위해 창조하실 하나님의 마지막 새 일이다.

구원받은 성도들을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 영원토록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성자하나님 예수님을 영광스런 하늘을 떠나 세상에 보내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다. 그 일 때문에 하나님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전진하는 군인들처럼 구약 4,000년에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셨고 신약교회 2,000년에 수많은 하나님의 종들을 지구촌 세상 끝까지 보내 복음을 전하게 하셨으며, 그리고 마지막 천년왕국을 통해 구원받는 이들을 많게 하셨다.

사도 요한을 통해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And I saw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for the first heaven and the first earth were passed away(죽다, 스러지다, 없어지다: 파렐코마이(“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간다”; 현재의 천지가 없어지고 새로운 천지가 된다는 의미) and there was no more sea(바다까지 없는 새로운 신천신지다; 현재 지구는 3/4이 대양(바다)로 덮여있지만(75%가 물이다) 신천신지엔 바다가 없고 대신 강과 호수와 작은 함수호들이 있다; 시 72:8-17, 97: 1-6, 146: 6, 사 42: 10, 60: 5, 66: 19, 겔 47, 슥 14: 8, 렘 5: 22, 31: 35, 33: 22 등) ; 계 21: 1)고 하신 하나님은 베드로를 통해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 10, 12-13)라고 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땅과 저 하늘이 없어지는 과정을 묘사한 말씀이다. 1)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큰 소리로 떠나간다(The heavens shall pass away with a great noise; 10절). ‘큰 소리’(로이제돈)는 “강풍이나 강한 물살 또는 화살들이 날아가는 소리”로 저 하늘이 불에 타서 큰 소리로 파멸돼 없어져버린다는 말씀이다. 2)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녹아버린다. 체질(體質, The elements(구성요소, 분자), 스토이케이아: “세상을 구성하는 원물질인 흙, 공기, 불을 가리킨다”)이 하나님의 불에 풀어지고 녹아져 없어진다. 3) 모든 일이 드러난다. “드러나리라”, 휴레데세타이는 “태워버린다”는 뜻으로 인간들이 이뤄놓은 모든 것이 파괴되고 불살라 없어져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찬란했던 7천년 지구촌 인류문명은 그날에 하나님의 불에 하늘과 땅이 태워져 없어져버리면서 함께 영겁(永劫)의 망각세계로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새 일로 새롭게 창조하신 새 하늘 새 땅이 나타난다. 그 위로 네 면 길이가 6,000마일(한 면 길이 1,500마일; 2,400km)되는 정방형 도시, 미국 땅의 반 이상 면적에 높이가 40만 층이나 되는 거대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와 새 하늘 새 땅의 수도가 되고 영원한 천국이 시작된다. 이 새 하늘 새 땅 창조가 하나님의 마지막 새 일이다. 우리 모두, 오늘 나와 함께 예배를 드리는 주기도문 성도 모두, 그리고 세계 각처에서 나의 설교를 듣고 보는 모든 성도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새 하늘 새 땅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축복의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잘 아는 대로 1941년 12월 7일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 있던 날이다. 353대의 일본 비행기는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다. 하늘을 가득히 뒤덮은 일본군들은 불과 몇 시간의 치열한 공격으로 미국 함대를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미국 전함 8척이 박살나고 6개 비행장이 파괴됐으며 미국비행기들은 거의 모두 파괴되는 등 제대로 저항도 못해보고 삽시간에 2,400명의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일본군 기습공격은 아침 7시 50분에 시작됐다. 그런데 바로 이날 아침 7시에 레이더 실에 근무하던 두 명의 미군은 레이더망에 나타나는 검은 점들을 발견했다. 그 점의 숫자는 점점 많이 나타났고, 곧 레이더의 스크린을 까맣게 채웠다. 이때는 일본군 비행기들이 하와이 상공에 나타나기 50분 전이었으며, 일본 비행기들은 진주만에서 137마일 떨어진 곳을 날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주일이었기 때문에 레이더 실에 근무하는 두 군인의 상황보고를 젊은 중위 혼자 접수하게 됐다. 그 중위는 그 비행기들이 캘리포니아 본토에서 뜬 미국 비행기들이라고 생각하고 두 군인에게 말했다. “아무 걱정할 것 없다”

만약 레이더의 경고를 무시하지 않고 즉시 대처했더라면 미국함대는 초기응전으로 일본군을 물리칠 수 있는 비행기와 함대의 화력을 충분히 동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젊은 중위의 경솔함으로 인해 미국군에게는 수치요 대참사인 진주만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것은 인간적인 확신으로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가르쳐준 역사의 교훈이다.

오늘 나는 자신과 지구촌의 영원한 운명에 대하여 우주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레이더망의 점들’처럼 수시경고를 하시는데도 그것을 듣지 않고 무시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 김목사 설교가 나와 내 가정에 주시는 경고일 수도 있다. 내 환경 속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일들이 하나님의 경고일 수도 있다. 하나님의 경고를 잘 받아 하나님의 마지막 새 일에 참여하는 영원한 축복의 성도되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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