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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7일 17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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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로크라시에서 애드호크라시로


작년 연말부터 계속 떠나지않고 필자의 머릿속에 머무르는 사고의 단초는 다름아닌 ‘뷰로크라시의 영(
)의 포로’에 관한 것이었다.
현대 사회는 뷰로크라시(bureaucracy)의 유전적 사회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찌기 베버는 근대사회의 효율적인 조직 구조를 위해서는 합법적 지배에 입각한 뷰로크라시적 지배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뷰로크라시는 주지하는 바, 법과 규정에 의해 동의된 합법적인 권한에 의한 지배체제이다. (모두가 아는 분업화와 공/사구별 외에도, 베버가 생각한 이상적 뷰로크라시(bureaucracy)의 특성중엔 권한의 계층화와 비 인격성 특징등이 들어있다.)
 
뷰로크라시에 의해 운영되는 조직사회는 물론 여러 형태가 있는데 각각의 조직은 과제와 역할에 따른 특징이 있게 마련이다. 조직사회는 집단 사회이기도하며 자연 집단의 목적에 따라 집단의 성격이 규정되어진다. 정당이면 정권을 잡는 것이, 생산단체는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신앙단체는 신앙을 배양하고 실천하는 것이 목적이 된다. 그중에서도 기도 모임이면 기도를 드리는 것이 목적이 된다고 하겠다.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정당의 멤버들이 리더십 아래서 결속되어야 하고,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기도자들이 한 영(靈) 안에서 한 뜻이 되어야 한다.
 
여느 모임과 마찬가지로 기도 모임도 조직과 연계될 수 있다. 그런데 여타의 모임과 다르게 기도(예배) 모임엔 자발적이고 고유한 생명력이 깃들어있다.  문제는 신앙조직에 뷰로크라시의 구조가 일률적으로 적용되면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현격하게 양산된다는데 있다.
예를들면 어떤 기도모임이 시작되었다 하자. 그 기도 모임엔 간소하게나마 예배 형식을 갖추고자 찬양과 기도와 말씀후 기도 인도의 시간이 주어졌다. 앞부분은 참여자들이 돌아가면서 순서를 맡고 뒤의 기도 인도는 어느 한 사람이 참여자들의 은사 인정과 권유에 의해 계속 인도를 하게 되었다하자.
그렇게 십여개월을 기도 모임이 성령충만하게 잘 진행이 되어오다가 어느 날 상부 조직의 직임을 맡은 자가 위로부터 받은 지시라며 기도 인도자에게 기도 인도 순서를 돌아가면서 하라고 종용을 하기 시작했다고 하자.
한편 기도 인도자는 처음부터 자발적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참여자들의 기도 제목을 받아 수시로 발송하는 일과 기도 모임의 예배 순서와 여러 기도내용을 첨부하는 일을 줄곳 맡아오면서 기도 인도 순서 만큼은 얼마간 하던대로 하는 것이 기도회가 자리를 잡는 데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판단을 해오던 터였다 . 
그러나 상부 직임자는 본인의 위치에 걸맞는 역할을 담당하고자 기도 인도자에게 의논 없이 일방적으로 하향식 압력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그간 잘 진행되어 왔던 기도회의 분위기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였고 참여자들은 왜 기도 모임 밖의 인사들이 본인들의 기도회를 좌지우지하려는가 이해할 수 없어 점점 불쾌감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이런 경우 갈등과 불화를 낳는 주된 원인과 출처는 무엇인가? 왜 기도 인도자를 비롯한 참여자들은 답답함을 느끼는 것이며, 상부 직임자들 또한 놓치고 미처 깨닫지 못하는 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여기서 뷰로크라시의 순기능이 규정과 수직적 위계질서임에 반해, 역기능으로 목표와 수단의 전도, 관료제 병리적 행동, 규칙과 규정 적용의 오류와 구성원의 소외등이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기도회의 목표는 참여자들이 한 마음과 한 뜻으로 한 성령 안에서 밀도있는 성령의 충만함과 자유로운 역사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십여개월을 기도모임을 진행해 오게 되면 기도회 가운데 자연 서로 교통하고 공감하는 긴밀한 영적인 유대감이 형성되어진다. 또 시간이 감에 따라 더 비젼이 증폭되고 응답이 더해가며 신비롭게도 절실한 환경에 처한 기도 대상자들이 외부로부터 하나 둘 생겨나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 기도회에 참석하지 않는 상부 인사들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하달하는 방법은 위계질서라는 피상적인 수단을 추구하려다 본질적인 기도회의 특성과 목표를 저해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도회의 결속을 해치는 병리적 행동이며, 기도회라는 개조직의 고유한 자율성과 유기적 생명력을 훼손하는 잘못된 관료제의 적용인 것이며, 이에 따라 자연 구성원의 소외를 가져오고도 남는 처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조직안에는 중앙 집권적이고 관료적인 체제보다는 지체의식에 입각해서 개 조직의 개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융통성있는 미네랄적 구조적용이 더 알맞다고 생각한다.   
기계적이고 폐쇄적인 뷰로크라시와 대조되는 것으로 형식주의나 공식에 얽매이지 않는 유기체적이고 개방적인 조직 형태인 애드호크라시(adhocracy)가 있다.  전자가 개념적 목적적 적용이라면 후자는 현실적 환경적인 적응이라 할수 있다.
즉, 급변하는 현대 사회의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직무와 권한및 책임관계의 탄력성, 분권적 의사결정, 수평적 상호작용등의 형태를 갖춘 조직이 바로 애드호크라시(adhocracy)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기도회의 직무와 권한 그리고 책임은 일차적으로 기도부장을 비롯한 기도회의 참여자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기도회에 관한 의사 결정 또한 기도회 밖의 직임자가 아닌 직접적인 기도회 참가자들에 의해 결정되어져야 한다. 기도회와 외부 조직과의 연계 또한 수직적 위계질서가 아닌 수평적 동반자적 상호협력에 의해 맺어져야 한다.
결과적으로 신앙사회는 표준화된 고정적이고 계층적 구조보다는 신축성있고 적응력이 있으며 혁신적인 애드호크라시가 더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작은 기도 그룹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고유한 특성적인 생명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베버가 이상적 뷰로크라시의 특성으로 꼽은 ‘비 인격적 특성’이 제제조치를 할 경우 인신공격이나 감정개입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신앙 사회에서의 이의 부적절한 적용은 외려 권력의 오용을 낳고 무엇보다 신앙의 본질과 대립될 뿐 아니라 실제적으로 더 많은 상호적 인신공격과 감정개입이 증대되는 결과만을 초래할 뿐이다.
그러므로 한 조직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본래의 설립 정신과 목적이 분명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허울좋은 명목상의 가치만을 추구할때는 각자 자기 이익의 재료만을 생각하는 편협성만을 부추기거나 비교의식이 가져오는 사고의 빈곤 속에서 앞을 다퉈 외견적 신분 상승(?)의 통로로만 전락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회적 용어가 아닌 신앙적 용어를 적용할때 상기한 류의 부적절한 적용 사례등을 “세상 제도 혹은 세상 영의 개입”이나 “악령의 역사”등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 속에 자리잡고 있는 무의식적이고 전근대적인 고정관념이나 둔감한 영적 감각이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력을 고려해 볼 때에, 우리가 사는 동안 부단히 자신을 쇄신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도록 소중함을 새삼 절감한다
역사적으로 피 압박자의 패다고지(교육)는 오랜 세월 그들속에 내재화된 압박자의 이미지와 삶속에서 적용된 지침을 따라온 것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는 일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시키는 일이요, 자유란 이런 압박자의 이미지와 그간 길들여져온 습성에서 벗어나 자율성과 책임의식을 회복함으로만 구현된다는 사실을 알게하는 일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성 차별이든 계층간의 차별이든 기존의 인식을 개혁하려는 의지로 설립된 단체가 있다면 근본 설립 취지에 포괄적이고도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통찰력과 이에 대한 바른 방향과 실천의지가 근간이 되어야 하며 그러하지 못할때 모양은 있으나 열매나 비전이 없는 친목조직으로 낙후되어 갈 것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정신이란 잠재적인 구습에서 벗어나 우리를 사로잡는 어떤 생각의 정체를 간파하고 대항하여 통시대적이고 초시대적인 복음의 진리로 착곡차곡 내재화하고 삶속에서 실천적으로 적용하는 일임을 다시 한번 깨우치는 한 해가 되길 기도한다.  
그렇다. 세상 속에서 이모저모로 세상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위치란 그 얼마나 위태롭고도 피차 연민스러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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