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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9일 09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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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김연규]뉴욕교협 총회를 지켜 본 소고

뉴욕교협 총회를 지켜 본 소고

<뉴욕교협의 고진감래(苦盡甘來)를 기대한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아 2:10-12, 15)

1. 총회 전 분위기

총회가 시끄러웠다. 충분히 예측했던 일이었고 사전 선거인등록을 통해 본 결과로 수 백 여명의 총대들이 참석할 것을 예견했기에 누구라도 한 번은 생각했을 것이다.

이** 후보 탈락에 대한 선관위 보고 건, 회칙을 헌법으로 개정하는 헌법개정위원회 안건, 불법감사 광고에 대한 보고 및 치리 건, 윤리위원회의 보고 및 치리 건, 여기에 2명의 부회장 후보와 2명의 회장 후보의 과열된 선거양상으로 인한 인원 동원으로 마찰의 불가피성 등 현안의 복잡성과 중대성 때문에 시끄러운 일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예측했었다.

그동안 총대들은 감사들의 기자회견, 감사의 언론 성명서, 교협측의 정당성 주장 성명서, 그에 대한 무자비한 인터넷 댓글 등으로 시달린 것이 사실이다. 항간에서는 “총회 자체를 무산시킨다.” “회장을 탄핵하고 퇴장시킨다.”“선거인 사전등록을 전면 보이콧(boycott)시킨다.”“최악의 경우에는 교협을 분립시킨다.” 는 소문이 난무했고 이러한 분위기는 단순한 소문이 아니었음이 증명되었다.

언론 등을 통해서 대다수 총대들이 위의 상황을 감지했었고 급기야 터질듯한 폭탄을 안고 시작된 총회는 웃음이 사라진 험악한(?) 안타깝기 그지없는 총회 전 분위기였다.


2. 총회에 경찰동원

경찰동원이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덕스럽지 못했고, 또한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필자의 생각에도 경찰은 밖에서 기다리는 것으로 끝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단, 결과로 볼 때에 유감스런 일과 잘못한 일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만약 경찰동원이 없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경찰들이 지켜보고 있던 상황에도 고성이 오가고 감사보고를 하다 자리를 이동해서 의장의 단상에 까지 오르고, 물리적인 충돌 직전까지 가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던 것은 이를 지켜본 총대들로 하여 불안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몇 년 전 뉴욕 목사회 총회 후 기자와 목사의 물리적인 충돌 같은 돌발사건이라도 나면 어떻게 했을까? 그 때는 이미 일이 터진 후에 경찰이 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느라 애썼다. 지금도 그때의 기자폭행사건으로 인해 불명예스럽게 이름이 오르내리는 오점을 남겼다.

경찰은 국민의 세금으로 고용된 직원이다. 아무리 사소한 일에도 시민이 요청만 하면 달려오는 게 경찰의 의무다. 지난 해 할렐루야 대회 기간 중에도 경찰들이 와서 도와주었다. 애들 싸움에서 개들 싸움까지 싸움이 나거나 위협을 감지하여 신변요청을 위해 신고만 하면 달려오는 게 경찰이다.

300여명의 교협총대들이 참여한 총회였다. 사전에 살벌한 분위기도 있고 하여 불상사가 없도록 경찰이 와서 도와달라는 것은 미국에서는 오히려 지혜로운 처사다. 만일에 불상사라도 생기면 300여 총대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세금을 낸 총대들은 필요하면 경찰의 도움을 받고,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다만 교회라는 것 때문에 덕스럽지 못했다고 필자는 생각하는 것이다.

경찰이 있는데도 논쟁이나 일탈행위를 본 총대들은 경찰의 필요성을 인식했을 것이다. 오히려 경찰이 옆에 있었던 것에 감사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경찰은 왔다가도 별일 없으면 그냥 가면 된다. 필요시에는 도움이든 경고든 연행이든 경찰이 판단해서 할 일이다.

당사자들이 말을 듣지 않을 경우 말로 질타도 한다. 다만 구타는 안 된다. 무력(총격사용 포함)사용은 당사자들이나 경찰의 신변에 위협을 받을 때만 가능하다. 총회에 경찰이 동원된 것이 사실이다. 이로써 분위기가 예사롭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단, 한 후보의 소견서 발표대로 ‘일제시대 순사들’이 행사한 경찰력과 비교하는 것은 좀 심한 표현이고 오버센스(over sense)다.

경찰력이 발동되어 물리적인 행사 또는 구인되거나 연행되는 일도 없어서 다행이다. 한인 2세 경찰관이 사전에 서툰 한국말로 자제를 요청해 달라고 후보들에게 의사소통하는 과정에서 무례함이나 불쾌감이 초래됐다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경찰이 와서 협조를 부탁하는 것을 위협으로 받아들였다면 이는 피해의식이거나 선입견 때문이었을 것이다.

경찰동원은 덕스럽지는 못했어도 합법적인 시민의 권리를 사용한 것이다. 다음 총회에서는 경찰동원이 필요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을 묻는다면 총회 때는 모든 안전(교통정리 포함)을 위해 반드시 경찰이 동원되어 총회장소 밖에서 대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3. 총회 중 감사보고에 관련한 일

총회 의사진행 중 혼란이 있었다. 감사보고 진행 중에 그랬다. 증경회장단이 감사의 ‘불법감사보고 광고’건과 관련하여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는 미리 준비하여 온 것이다. 순서지에는 없었다. 즉석에서 나누어 주었다. 증경회장단이 무리수를 두었다. 회장과 총대들에게 묻고 나누어 주었어야 했다. 증경회장단이 성명서를 발표하려면 총회 전에 미리 했더라면 더 바람직했을 것이고, 조금만 더 생각했더라면 사전 협의를 통해 회순에 미리 넣었으면 좋았을 뻔 했다. 그러나 어른(증경회장)들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리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필자의 기우로 접는다.

증경회장 회원 목사의 회순 진행 변경요청 발언이 있었다. 성명서 발표 후 갑자기  증경회장단과 ‘짜고 치는 식’으로 보여지는 회순 변경이었다. 감사보고를 다 마치기 전에 강제적인 임원선거에 들어가자는 요청이었다. 긴급동의에 해당한다. 긴급동의는 재석수의 동의와 결의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긴급동의는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발언한 증경회장 박** 목사는 긴급동의라고 하지 않았고, 회(의)장은 미리 알고 있었던 듯 총대의 의견을 물었다. 무슨 뜻인지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한 회원은 외쳤다. “예(임원선거로 갑시다.)”가 나왔다. “아니오(임원선거 전에 감사 진행 계속하시오.)”도 많았다. 회(의)장이 일방적으로 “예”쪽의 손을 들어 주었다. 회(의)장이 무리수를 둔 것이다.

이 시점에서 대혼란이 왔다. 원로급 목사의 긴급발언으로 회의장은 조용 해 졌고, 의장의 부당함을 질책했다. 옥신각신, 우여곡절 끝에 표결로 결론이 내려졌다. 이 때 이미 뉴욕교협은 분열의 양상이 나타났다. 감사보고를 먼저 할 것이냐? 아니면 임원선거를 먼저 할 것이냐? 가 중요하지 않다.

다만 감사보고를 먼저 하든, 임원선거를 먼저하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감사보고를 통해 임원선거를 무산시킬 것인가? 임원선거를 먼저하고 감사보고의 부당함을 완전히 묻어 버릴 것인가? 가 중요하기에 이는 표 대결로 붙여졌다. 분명 총회에 참석하기 전 이미 양 갈래로 나누어진 여론이 형성되어 있었다.

사전에 언론을 통해 광고된 ‘불법감사보고’라고 결론을 내린 교협 측과 ‘불법감사보고’가 아니라 정당한 방법이었다고 주장하는 한 후보 측과의 대결양상으로 치달았기 때문에 예견된 분열은 이미 이때 일어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투표는 중요했다. 의장이 이러한 모든 것이 예견된 상황이기에 경찰을 동원시켰고, 짜고 나온 것처럼 느낄 수 있는 무조건적 감사의 편 들어주기 고성과 야유가 오고갔다. 목사나 평신도 대표들이 하는 행동이라고는 볼 수 없는 낯 뜨거운 일이 있어났다.

투표는 일어서서가 아니라 무기명으로 해야 했다.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무리한 투표방법이었다. 여기에서 일부 후보들은 가슴을 졸여야만 했을 것이다. 의장의 무분별한 판단으로 일대 혼란으로 갈 수 있는 일이 일어날 뻔 했다. 그러나 별 무리 없이 투표로 결정되었다.    
  
감사보고를 먼저 받고, 임원선거를 하자는 것이었다. 투표로 결정한 것은 바람직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감사보고 진행 중 감사가 준비해온 또 한 건의 준비된 유인물이 배포되었다. 총회석상에서의 배포되는 유인물은 미리 회(의)장단에게 허락을 받았어야 했다. 증경회장단이 앞서 배포한 성명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배포되었으니 ‘너도 한 건, 나도 한 건’의 식으로 그냥 넘어갔다.

여기에 아무도 이의를 제의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삭막해서 그랬으리라. 생각은 하지만 행동으로 옮겨 부당함을 제기한 이가 없었다는 것이 안타깝다. 각 교회에서 크고 작은 회의를 진행하는 목사들이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했다. 원칙이 무시된 행동들이었다. 증경회장들도, 감사도,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회원 즉, 총대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감사보고와 그 결과는 어떠했나? 이미 언론에 나간 ‘감사보고 광고’ 내용과 별로 큰 차이 없었다. 오히려 언론에 광고한 내용이 불법이었고, 자신들(두 명의 감사)의 이름을 도용해서 어느 누가 불법으로 광고했다는 사실만 증명해 주는 꼴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그 실체가 밝혀져야 한다. 누군가 자신이 한 일이라고 양심선언을 하고 교계를 혼란시킨 책임을 져야 한다.

뉴욕교협의 감사는 재정감사만 해야 하느냐? 행정감사도 해야 하느냐? 를 놓고 첨예한 대립을 했다. 당시 감사보고를 하는 목사감사와 평신도 감사는 재정과 행정을 감사해야 하는 쪽이고, 교협의 임원과 회장은 재정감사만 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이 때 법규위원장의 유권해석으로 회칙에 분명하게 명시하였으니 감사는 재정감사만 해야 한다고 말했고 여기에서 감사들의 보고가 한 마디로 싱겁게 끝났다. 무엇 때문에 열들을 냈는지 아직도 의문이 갈 정도다. 그러나 소문으로 들었을 때는 감사보고를 통해 감사는 행정감사도 해야 한다는 총대들의 결정을 받아내고, 그 결정을 토대로 선관위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그 결과로 일부 후보들의 자격을 박탈한다는 시나리오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총대들의 무반응과 법규위원장의 유권해석과 증경회장단의 사전감사보고의 언론광고가 불법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 결과로 감사보고가 재정보고만 하고 끝내야만 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이 불발이 작금의 또 다른 연합체 구성으로 연결된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불법감사 보고를 위한 광고’건에 대해서는 감사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광고가 나갔다고 스스로 밝혔다. 사과하라면 백 번이라도 사과하겠다고 했다. 바로 이 대목이 중요한 사실이다. 이것 때문에 현재의 뉴욕교협이 분열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과하라면 사과하겠다는 것은 진정한 사과가 아니다. 그렇게 말 한 마디로 끝날 사안이 아니다. 언론에 광고한 것은 본인의 사실과 다르다는 재 광고를 내고,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불법광고’에 실명이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실명이 거론된 사람들의 명예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섬기는 교회와 교인들의 명예도 달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대처가 전혀 없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명예회복을 위해서 법적인 힘을 빌려서라도 명예회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본인의 이름으로 감사보고 광고가 언론에 나갔다면 그 실체가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중이라든가 알아냈다든가의 과정을 보고해야 했다.

해당 피해자들은 이 사실을 총회 앞에 공식적으로 물을 기회가 있어야 했다. 물론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이름이 거론된 총무는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다. 의장이 발언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진행이 아니라 확실하게 사과 할 것은 사과하고, 용서할 것은 용서하는 시간이 있었어야 했다. 의장과 증경회장단은 이 일을 중재했어야 했다.

감사는 이에 합당한 진정성이 묻어나는 대답이 있어야 했다. 배후에 실체가 있고, 두 명의 감사이름이 도용되었다면 두 명의 감사도 분명한 피해자다. 그런데 왜? 두 명의 감사들은 피해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이는 스스로 묵인했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광고를 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고 덮어주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누가 광고를 내고 돈을 지불했는지 안다. 그렇기에 두 명의 감사도 아는 것은 당연하다.

만일, ‘불법감사보고 광고’ 아니고 ‘합법감사보고 광고’였다면 감사는 더 이상 총회석상에서 보고할 명분이 없다. “이미 언론을 통해서 보고한 대로다.” 라고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랬어도 필자의 또 다른 칼럼에서 밝힌대로 총회석상에서 총대들에게 보고하지 않고 임의로 언론에 공개하고 광고한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그러나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감사보고 광고가 실명이 거론되어 나간 것이 사실이라면, 그 광고 자체가 불법이고, 잘못된 것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감사는 이에 대한 유감을 표하고, 사과하고,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어야 한다. 본인의 책임에 대해서는 총회차원의 처우를 잠잠히 기다려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감사가 오히려 고함을 지르고 펄펄 뛸 일이 아니었다. 이것은 300여 총대와 참석자들을 예의 있게 대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고함지를 사람들은 오히려 ‘불법감사보고’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이고 총대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잠잠하지 않았던가?

감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고함을 지르고, 의장단까지 걸어 나가고, 뒤에서는 여럿이 짜고 하듯 야유를 퍼붓고, 의장을 말로 손짓으로 윽박지르고, 한 사람이 여러 차례 발언 마이크를 점거함으로써 진행팀의 마이크 회수와 발언권 제한으로 인해 다른 총대들의 발언권을 박탈하는 우를 범했다. 정작 선거를 하러 온 총대들은 엉뚱한 사안에 휘말려 짜증스러워했다.

감사보고와 관련해서 총회 과정에서 일어난 실수, 불찰, 무례, 미숙 어느 하나라도 저촉이 되는 일에 대해서는 회장, 증경회장단의 대표, 감사, 지명 받지 않고 무례하게 고함을 지르면서 발언한 회원들은 모든 총대들에게 공식적으로 그리고 정중히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총회에서 이러한 일이 없도록 노력하고 개선해야 한다. 좋은 교훈을 얻기 위해 수업료를 낸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4. 임원선거와 기타 회의진행

시간은 걸렸어도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선거를 위한 철저한 준비 덕분이라고 본다. 임원선거의 방법과 절차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격려하고 칭찬까지 했다. 필자는 선거관리 투개표위원으로 참가했기에 총회석상에서 아무 발언도 하지 않았다. 다만 발언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본분을 망각하지 않고 자신을 지켜나가고 이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음을 이 칼럼을 통해 밝히고 싶다.

후보자들의 정견발표도 총대들의 한 표 한 표 행사하는 모습도 진지했다. 임원선거 후 '패배한 후보'가 '승리한 후보'를 찾아가 안아 준 일이 있었다. 이 점은 남자답고, 멋있고, 용기 있고, 진정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보기에도 좋았고,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 박수를 보냈다. 이는 결과에 승복한 것으로 간주된다. 패배한 후보자가 패배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yield speech’ 가 단 1분이라도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시간이 걸리고, 번거롭고 짜증도 낼만한데 많은 총대들은 진지한 투표를 했고 그동안 투표방식과는 판이한 광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진행에 순리적으로 따랐다. 분명 업그레이드된 투표방식이었고 많은 분들이 이 방식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이렇게 공정한 투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모두 수긍하며 당선자를 결정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당선자의 당선소감 발표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패배자도 10표의 차이로 패배한 이상 분명 패배했지만 그도 승리자다. 수에 패했지만 과반수 가까이 그를 지지한 이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도 분명한 승리자인 것이다. 하고 싶은 말도 있었을 것이다. 그 말을 들었어야 했다. 그래야 작금의 통탄할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5. 헌법개정에 대한 투표

임원선거에 힘을 쏟아서였는지 회칙을 헌법으로 개정하는 안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일년 동안 헌법개정을 위해 수고한 개정위원들의 마음만 타들어갔다. 헌법개정을 위해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필자도 이를 위해 몇 십 번은 만난 것 같다. 애정을 쏟았다. 진심으로 교협을 사랑해서 미래를 위해 아낌없이 시간과 머리와 생각을 투자했다. 회칙과 헌법을 비교하다보니 꿈에서도 나타났고 한 글자 한 글자 타이핑하면서 수고와 노력을 하나님께서 기억 해 주시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이렇게 헌법개정안을 팽개쳐 버릴 일이 아니다. 당장 현 회칙으로는 상충되는 일이 일어나 여러 분쟁에 휩쓸릴 것이다. 과거 회칙 제정과 개정을 위해 헌신했던 분들의 수고와 노력이 별것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 그분들의 수고와 노력을 바탕으로 현 회칙이 존재한다. 그러나 현 회칙으로 수백여 명의 총대들과 수백 개의 회원 교회를 연합하거나 유지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조항들이 삽입되어야 하고, 수정되어야 한다.

회칙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하는 이유가 충분이 있음을 이미 다른 칼럼을 통해 알렸고, 많은 언론과 회칙을 관심갖고 살펴본 이들은 개정안에 힘을 실어 한 표를 던질 것이다. 이러한 중대차한 일을 의장은 성의 없이 넘겨버렸다. 과연 무엇이 교협을 위하는 일이고 무엇이 교협의 미래를 추구하는 일인지 의심스러운 순간이었다.

혹 다음회기에 알아서 하라고 대충 넘긴 것이라면 이는 업무상 배임에 해당된다. 새로운 38회기에서 회칙을 수정하려면 임시총회를 열어야 하는 시간상 물질상 많은 소모전이 필요하다. 모였을 때에 회칙수정에 대한 중요함을 알리고 일괄 통과를 하기보다는 축조해서 한 조항 한 조항 통과를 시켜 명실공이 전 회원을 위한 회칙이 개정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하루 종일 회의를 진행하여 피곤에 지쳐 행했다면 인간적으로 이해는 한다. 그러나 경솔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하고 싶다.

필자가 헌법개정위원이라서 이러한 아쉬움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38회기 총회를 위해서는 어차피 선관위 세칙도 회칙에 맞추어 실행위원회에서 개정해야 한다. 만약 회칙(헌법)개정안이 통과되었더라면 최소한 37회기 총회에서의 분쟁은 38회기 총회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통과되지 않은 회칙으로 인해 38회기에도 37회기와 같은 첨예한 대립이 나타날 수 있음을 예고한다.


6. 총회 다음 날

총회는 10월 24일(월요일) 오후 4시가 넘어서 끝났다. 그러나 다음날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다. 가칭“뉴욕지구한인교회연합회 설립추진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언론에 공개된 것은 앞서 제기한 감사보고의 불만과 예견된 결정으로 다음날인 10월 25일(화요일) 낮에 지난 번 ‘불법감사보고’와 같이 언론에 미리 발표되었다.

피곤한 총대들과 모든 사람들이 앞으로 잘 되어 가기를 바라고 염려할 틈도 없었다. 아직 38회기 임원도 구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 핵폭탄과 같은 성명서가 나왔다. 잔치집에 잔치를 위해 멍석도 깔기 전에 오물을 던진 격이 되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두 명의 감사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가득하다.

37회기에 감사였던 김** 목사 외 101명이다. 총 102명이라는 말이다. 하루 저녁에 102명의 동의를 어떻게 받았을까? 궁금함이 앞서며 지난 ‘불법감사보고’의 언론 광고에 또 다른 광고주가 밝혀진 것과 같이 동일인이 행한 분명 소수의 ‘몸통’이 행한 졸렬한 행위일까? 아니면 실제로 102명이 동의한 일일까?

회장 선거가 140:130으로 당락이 결정되었는데, 130명 중에서 102명이 이탈행위를 한 것일까? 김** 목사는 무슨 명분으로 설립추진위원회 ‘대표자’로 나왔을까? 총회에서 다 삭히지 못한 울분 때문에 또 다른 무리수를 두는 것일까? 교협은 목사회와 달라서 교회가 회원이므로 교회의 동의를 얻어야 가입과 탈퇴가 결정되는 것인데 총회 하루 만에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의 평신도 대표들의 동의를 얻거나 교회의 긴급 당회를 열어 목사와 평신도대표가 합의로 결정한 후에 결정한 것일까? 그렇다면 이러한 성명서가 나온 저의는 무엇인가?

그러나 아쉽게도 130표의 득표를 하고도 안타깝게 10표의 차이로 패하고 스스로 인정 해 당선된 후보를 안아준 한 후보의 이름도 102명에 들어있고, 37회기 선관위의 결정으로 회장 후보에서 탈락한 이** 목사의 이름도 102명에 들어있고, 현 뉴욕목사회의 임원 이름도 102명에 들어있다고 모 언론의 기사에서 나타났다.

안타깝다. 어떻게 하루도 지나지 않아 패배를 인정한 후보가 또 다른 연합체를 구성한다는 생각을 했을까?

총회 이전의 정황은 이랬다. 이** 목사가 회장 후보 탈락 즈음부터 나돌던 소문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목사 구명, 명예회복을 위해 100여명 이상의 싸인을 받았기에 그를 총회에서 구명할 수 있다는 말이다. 혹시 그 명단을 가지고 이러한 일에 사용한 것은 아닐까? 궁금증을 갖고 피곤한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102명의 명단이 공개되어야만 신뢰성이 있는 성명서라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이는 소수의 ‘날조(捏造, fabrication) 행위’로 밖에 볼 수 없다. 날조란 사실이 아닌 가짜 스토리를 임의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말한다. 102명의 실체가 없다면 날조다. 허위문서조작과 같은 행위다.

만약 37회기 감사였던 김** 목사가 연합단체를 구성하겠다면 자신의 이름만 당당히 밝히고 참여할 사람을 모집하는 광고를 냈어야 했다. 그래야 당위성에 맞다. 그러나 있지도 않고, 전화로만 동의를 구했다고는 하지만 급조된 자신을 제외한 101명의 명단을 공개하거나 공개하지 못한다면 101명이라는 말은 기록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미 이** 목사의 구명운동을 위한 ‘100여명 싸인’이 돌아 다녔다. 이번에 가칭‘뉴교연 설립추진위원회 102명 연대’가 또 나왔다. 만일 이 모든 일이 배후에서 이** 목사와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자행되는 일이라면 이** 목사의 후보탈퇴 인정과 그에 따른 공식사과는 없던 일로 하자는 것인가?

필자는 이미 다른 칼럼에서 밝힌 대로 회장 후보에서 탈락한 이** 목사의 구명을 위해 앞장서겠다고 했다. 물론 싸인을 한 적은 없다. 말로만 구명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 목사의 요청이 있고, 필자가 공개적으로 요구한 서류의 원본만 손에 쥐어 준다면 반드시 나서서 구명에 앞장서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목사도 102명의 명단에 들어있는 한 이제는 그 생각을 거둬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교협총대들은 실체가 없는 ‘100여명 연대’등의 언급에 이미 식상해 있음을 알아야 한다. 회의 과정에서 아무리 피가 터지도록 논쟁을 하더라도 회의나 선거 결과에는 순순히 승복하는 것이 민주주의 시민정신이다.

우리는 미국에 살고 있다. 순순히 승복하는 것이 win win 하는 것이고, 아름다운 것으로 보아왔다. 지금은 한국사회에서도 선거가 있었다. 피터지게 경쟁하던 서울시장 선거도 그렇게 끝났다. 패자가 승자의 손을 들어 주었다. 유감스럽게도 유독 교계의 총회장, 감독회장, 회장 선거결과에 불복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번 ‘분립’을 위한 행보가 선거결과에 불복하는 행위가 아니기를 바란다. 깨끗하게 승복한 후보라면 어떠한 이유에서도 분립을 방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이름이 모 언론에 거론된 것으로 분개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버젓이 이름이 올라가 있으니 분명 낙선한 한 후보도 관련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렇다면 만약에 낙선한 후보가 당선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는 다음에 생각 해 보자. 이번 설립추진위원회의 행보는 37년 동안 교협의 정통성을 깨는 역사에 남을 오류가 아닐까? 여기에 동조하는 증경회장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대화는 있어야 한다. 분립은 안 된다. “서로 사랑하라.”“서로 용서하라.”“서로 화해하라.”라고 말씀가운데 선포하고 있는 목사들이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화해하지 못하는 것은 언행일치에 어긋나는 일이요.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반하는 반역이다.  


7. 가칭 ‘뉴교연’이 주장하는 WCC에 관한 문제

한국 교회에서 수십 년 전에 이미 겪은 진통이다. 그래서 교단이 갈라지고 또 갈라졌다. 뉴욕교협은 장로교 합동교단, 장로교 통합교단, 한국 감리교, 미국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순복음, 합동정통 등 군소교단을 포함하여 여러 교단들이 들어와 협의회를 구성하고 있다.

한국에서 2013년 개최되는 WCC 부산총회의 문제는 입장이 다른 각 교단의 문제다. 교협이 여기에 관여할 일이 아니다. 소속한 교단이 들어가 있어도 개인적으로는 참여할 의무도 없다. WCC에 관한 한, 개인이 교단과 함께 하지 않는다고 해서 퇴출시킬 일도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2013 WCC 부산 총회를 열기로 되어 있다. 참석하고 싶은 교단, 참석하고 싶은 목회자도 있을 것이고, 이에 반대하는 이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총회에 참석한다고 해서 WCC 의 모든 신학입장과 동의한다고 보는 것은 오버다. 교협총회의 입장과 반대하는 사람이 총회에 참석할 수 있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50-60년 전의 구태의연한 논쟁을 다시 불러 일으켜 뉴욕의 교협을 교란, 분란, 또는 분리시키는 행위는 어불성설이다. WCC 가 교협의 분리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결론으로 37회기는 지나갔다. 38회기는 아직 출범도 하지 않았다. 총대들은 교협의 일련의 사태로 피곤하다. 피곤함을 지나 지쳤다. 새로 선출된 회장, 부회장, 감사에게 날개를 달아주지는 못해도 그냥 지켜봐 주는 일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신임 회장은 아직 교협 업무파악도 되지 않은 상태다. 이러한 시점에 총회 후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나온 ‘뉴교연’ 설립추진 성명서는 취소되어야 마땅하다.

만약에 취소할 수 없다면 102명의 명단이 발표되어 당당하고 명분을 갖고 분립추진을 해야 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이러한 일은 진행시키지도 말아야 하고, 진행해서도 안된다. 혹 진정으로 분립을 요구하거나 새로운 연합체를 구성한다면 그에 맞는 명분을 가져와야 한다.

새로운 회기가 출범하며 부당하다거나 아니면 반쪽으로 간다거나 신학적으로 분명한 노선을 달리한다거나 ‘아니면 말고’ 식으로 던져 놓고 협상하자는 행태는 삼팔선 북녘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이걸 놓고 협상하고 deal을 하자는 모습이 나온다면 이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총회는 이미 끝났다. 어려움 속에 선출된 새 회장이 있다. 신임회장은 130명의 목소리도 듣겠다고 말했다. 이제는 인내하고 지켜보자. 어떻게 첫 발을 내 딛는지 보면서 행동해도 늦지 않다. 이번 일로 인해 심히 유감을 표하는 이들이 많아질 것 같다.

이번일로 인해 사과할 사람들은 사과해야 한다. 회(의)장이 잘못했다면 잘못한 부분을 사과하고, 감사가 잘못했다면 잘못한 부분을 사과하고, 증경회장이 잘못했다면 잘못한 부분을 사과하고, 묵과한 총대들이 잘못했다면 잘못한 부분을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잊어버릴 것들은 잊어버려야 한다. 그리고 의결된 사항들은 존중해야 하며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

법적으로 처리되어야 할 일이 있다면 그 결과를 기다리면 된다. 이제는 모두가 각성하고 본연으로 돌아가서 흥분을 가라앉히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뉴욕교협을 바라고 계실 것이다. 37회기 뉴욕교협의 총회을 지켜보며 바라는 것이 있다면 분열되지 말자. 반목하지 말자.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자는 것이다. 이번 일로 인해 뉴욕교협의 고진감래(苦盡甘來; 고생 끝에 낙(樂)이 온다)를 기대한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아 2:10-12, 15)

<이 글로 인해 어떠한 피해자도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개인적인 감정이 들어 있지 않음을 정중하게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무례가 있다면 무지로 치부하고 용서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 필자 주 - >



● 뉴욕비전교회 담임목사
http://TheVisionChurch.cyworld.com

www.czoneus.net
info@czoneu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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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13 13:18:10)     1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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