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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9일 07시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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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주진경] 몽당비와 몽당연필
 

몽당비와 몽당연필.

 

나이 든 나에게는 가마득한 소년기의 두 가지 기억이 간직되어 오고 있다. 그 하나는 장남이라는 이유에서인지 늘, 학교에서 돌아오면 해지기전에 마당을 쓰는 일이 나에게 책임지어져 있었다.

비는 싸리비나 대나무 비였는데 집 마당을 다 쓸은 다음에는 어머님께서 물 길러 다니시던 동내 우물까지 가는 길도 쓸었다. 매일 마당과 길을 쓸으므로 비는 잘도 닳어져 몽당비가 되곤 했다. 비가 다 닳아져서 몽당비가 되면 마당과 길은 쓸어도 쓸어 지지 않고 땅만 파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손재비가 많이 남아있어도 그 몽당비는 아궁이에 땔감으로 버리워 지곤 했다.

 

또 한 가지는 일제 강점기에 초등학교 (당시 국민학교)에 다니던 나의 필갑( 필통)에는 언제나 몽당연필로 가득 차 있었다. 가난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는 몽당연필이라도 손에 더 이상 잡히지 않을 때까지 깎고 깎아서 사용하곤 했다.

월말고사나 중간고사, 또는 기말 고사 때는 다른 학생들은 새 연필을 몇 자루씩 날카롭게 깎아서 책상위에 내놓고 시험을 치르곤 했는데, 나는 필갑에 가득히 있는 몽당연필들을 뾰족하게 깎아서 시험답안지를 쓰곤 했다. 시험 감독을 하는 선생이 내 곁에 와서 보고는 “호까노 엔삐쓰와 나인다까 ? ( 다른 연필은 없느냐 ?) 라고 묻고, 다음 시간에는 자기가 쓰던 연필을 갖다 주던 기억도 생생하다. 몽당연필로 필기도 하고 모든 시험도 치렀지만 나는 늘 자랑스러운 우등생이었다.

구약성서가 말하는 강건한 나이인 80을 바라보는 인생의 해질 무렵을 사는 나는 버려지지 않는 몽당연필로 여생을 보내기를 염원하고 있다. 주제 넘게 과분한 일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서툴게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절실한 기회에 씌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 때를 기다리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있다. 손에 안잡힐 만큼 까지 닳어져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몽당연필이 다된 나는, 신약성서 (마태복음 20 장) 에 기록된, 해질 무렵에도 포도원 문밖에서 기다리는 무용 인부와 같이 부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이런 목마른 자를 부르지 않고, 그다지 일자리가 간절하지도 않은, 젊고 힘좋은 일꾼을 불러간다면 이 몽당연필 지각 일꾼은 그 버려짐에 얼마나 외롭고 비애가 지극할까....? 그 주인은 아무리 인정이 많고 친절하고 다른 모든 것이 좋다할지라도 그는 농장주인은 될 지언정 포도원 주인은 아닐 것이다.

해가 뜨는 이른 아침부터 해지는 마감시간까지 다섯 번에 걸쳐 품꾼들을 불러온 포도원 주인은 일을 많이 한 사람이나 거의 일하지 않은v것 같이 적게 일한 사람이나 모두 똑 같이 그 날의 품삯을 주었다. 이것은 품꾼에 대한 배려의 차원이 아니라 구원 차원의 주인의 마음이다. 교회는 농장이 아니라 포도원이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난하고 간절한 몽당연필과 같은 무용한 지각품꾼을 불러 주시는 포도원 주인이 있기에 세상은 구원받고 위로를 받는 것이다.

 



주진경 목사

www.czoneu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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