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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9일 07시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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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김엘리야]성공적 삶의 사대 비밀
 

성공적 삶의 사대 비밀 (잠 24: 27-34)

 

어느 부부가 동전을 던지고 자기 소원을 비는 우물가에 서 있었다. 먼저 부인이 몸을 굽혀 소원을 빌면서 동전을 우물에 던졌다. 잠시 후 남편도 소원을 빌기 위해 몸을 굽혔다. 그런데 몸을 너무 많이 굽히는 바람에 우물 속으로 떨어져 빠져 죽고 말았다. 순간 부인이 깜짝 놀라 말했다. “와, 정말 소원이 이뤄지는구나!”

 

90세 넘은 노부부가 이혼상담을 하기 위해 변호사 사무실에 찾아왔다. 남편은 96세이고 아내는 93세였다. 변호사는 의아해서 물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왜 이런 늦은 나이에 이혼을 하세요?” 그러자 서로 질세라 목청을 높여 말했다. “성격차이죠” “그럼 어떻게 지금껏 견디셨어요?” 그러자 노부부는 자녀들 때문에 참고 살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변호사가 되물었다. “그럼 이제 자녀들 걱정은 안하세요?” 그러자 노부부는 말했다. “모두 죽었거든”

 

한 솥 밥을 먹고 한 이불 덮고 살면서 아들딸 낳아 행복하게 사는 부부 같지만 동상이몽으로 사는 부부와 요즘 유행하고 있는 황혼이혼을 해학으로 꼬집은 유머다.

 

삶을 성공하는 네 가지 지름길

 

어느 주일 예배 후, 죠지 트루엣트 목사는 예배 때마다 하는 대로 예배당 현관문 앞에서 성도들과 인사하며 배웅하고 있었다. 그때 택사스 주의 큰 부자인 이블린 왈슨씨가 인사를 하며 “목사님, 다음 주 중에 저희 집에서 저녁식사를 한번 하시면 어떻겠습니까?”며 초대를 한다. 죠지 트루엣트 목사는 일 년 가량 늘 사업 핑계만 대고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던 그였기에 선약이 돼 있지 않은 날을 택해 양해를 구하고 그의 초청을 승낙했다. 그리고 며칠 후, 죠지 트루엣트 목사 부부는 약속시간에 그 집에 도착했다. 듣던 대로 그의 집은 으리으리했고 호화롭고 정교해 마치 거대한 궁전을 보는 듯했다. 목사님 부부는 하인이 안내를 받아 오찬장에 도착했고 왈슨 부부와 즐거운 만찬을 가졌다.

 

식사를 마친 후, 이블린 왈슨은 동서남북 주위 환경이 잘 보이는 이층으로 트루엣트 목사 부부를 모시고 갔다. 그리고 그는 먼저 메뚜기 방아질 하듯 쉴 새 없이 검은 기름을 뽑아 올리고 있는 많은 유전들이 흩어져 있는 주위 경치를 보며 말했다. “25년 전에는 제게 일전 한 푼도 없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끝없이 보이는 저것들이 다 제 것입니다” 왈슨은 깊은 감회에 젖은 듯, 한 동안 그곳을 응시하다가 자리를 옮겨 동쪽 창문 앞으로 트루엣트 목사 부부를 모시고 가 끝없이 펼쳐진 목장 위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수많은 가축들을 가리키면서 “저 것도, 저 수천 마리의 가축들도 다 제 것입니다”며 자랑하듯이 거만하게 말했다. 그런 다음, 그는 다시 목사 부부를 서쪽 창문 쪽으로 모시고 가 창문 밖으로 보이는 수많은 이름 모를 꽃들과 나무로 만들어진 자연동산과 멀리 보이는 아름다운 숲을 가리키며 “저것도 역시 모두 제 것입니다”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투루엣트 목사님이 자기의 이 모든 성공에 대해 칭찬해 주리라 기대하며 잠깐 숨을 돌렸다.

 

그러나 죠지 트루엣트 목사는 이블린 왈슨의 어깨에 한 손을 올려놓고 다른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왈슨씨, 당신은 하나님 나라에 재물을 얼마나 저축해 놓으셨습니까?”고 진지하게 물었다. 목사님의 칭찬을 기대했고 칭찬 따라 더 많은 자랑을 계획했던 왈슨은 목사의 진지한 물음에 당황하고 맥이 풀려 “그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힘없이 대답했다. 그는 택사스주에서 큰 부자가 되는 데에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영원한 생명을 위한 준비에는 실패했던 것이다. 오늘 우리 성공의 Focus는 어디인가? 보이는 이 세상인가 저 영원한 내세 천국인가?

 

1. 가정을 든든히 세우라(27절)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다. 가정이 화목하고 평화해야 만사형통이다. 어떤 성공보다 가정을 든든히 세우는 성공이 첫 번째다. 건강한 가정, 행복한 가정, 튼튼하고 건전한 가정은 모든 성공의 기초이다. 가정이 튼튼하지 않으면 은행에 쌓아놓은 많은 돈이 아무 것도 아니고 천하를 한 손에 쥐고 호령할 막강권세는 구름 위에 떠있는 공중누각이며 세상이 부러워하는 성공도 참 성공이 아니다. 얼마 전, 15년 미국생활에 많은 돈을 벌어 좋은 집에 방마다 멋있는 최고급 가구를 들여 놓고 자랑하며 벤즈와 캐딜락을 타고 행복을 만끽하던 부부가 성격차이로 급하게 이혼하면서 집과 가구와 차들을 급매하고 가방 하나만 들고 한 사람은 한국으로, 한 사람은 LA로 떠나는 것을 보면서 아무리 돈과 명예로 성공을 했어도 가정이 무너진다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렇다. 가정이 건강하지 않으면 많은 돈 들여 사놓은 비싼 가구, 좋은 차, 값비싼 옷들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서 가정에 성공하지 못하면 삶의 그 어떤 성공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오늘 미국가정은 60% 이상이 부부가 이혼을 했고 미국에 사는 한국 사람들도 40-50%가 이혼가정이 됐으며 G9 선진대국과 세계최고의 부자 나라인 유럽의 경제대국 스웨덴, 덴마크, 프랑스도 70%나 가정이 깨졌다. 그래서 부모는 이 집과 저 집에서 따로 살고, 이 남자 저 여자가 눈 맞고 입 맞는 대로 기약 없이 살며, 자녀들은 탁구공 신세로 엄마와 아빠 사이를 오고가며, 오늘은 낮 설고 생소한 남자를 아버지라 부르고 내일은 낮선 여자를 새 엄마라고 부르며 산다. 심지어 낮선 여자를 아버지라 불러야 하고 처음 보는 남자를 엄마라고 불러야 하는 비극 속에서 살기도 한다. 이러한 불안한 정서와 흔들리는 가치관 속에서 결손가정의 아이들은 독버섯처럼 반항아와 문제아로 자란다. 그들은 엄마와 아빠, 부모를 믿지 않고 사회도 믿지 않으며 집을 뛰쳐나가 나쁜 친구들을 사귀고 갱단에 가입하거나 마약에 손을 대며 Drug에 취미를 붙여 ‘될 대로 돼라’로 살아간다. 심지어 사람을 죽여야 정식 회원이 되는 사탄교회의 Member가 되기도 한다. 21세기 지구촌은 이러한 가정문제, 부부문제, 자녀문제로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

 

오늘 잠언서 저자는 본문 27에서“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 밭에서 예비하고 그 후에 네 집을 세우라”고 했다. 원문의 의미는 “밖에서 너의 일을 잘 계획하고, 봄에 밭일을 잘 할 수 있도록 겨울에 장비들을 잘 수리해 준비해 놓고, 그 후에 너의 집을 계속해서 든든히 세우라”는 의미인데 이것은 집을 건축하기 전에 밭을 질서정연하게 갈아 놓는 등 먼저 해야 할 일을 먼저 완수하라는 뜻으로 ⑴ 결혼을 신중하게 잘 하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엔 남자가 아내를 맞이하기 위해서 여자의 부모나 보호자에게 상당량의 빙폐를 사례금으로 지불하는 구매결혼(購買結婚)풍습이 있었다. 돈 주고 아내를 사는 결혼이다. 오늘도 인격이나 신앙보다는 돈과 결혼했다가 얼마 못가 헤어지는 일이 많은데 그래서 신중하게 결혼하라고 권고한 것이다. ⑵ 어떤 목적에 이르기 위해서는 먼저 해야 할일과 나중 할일을 구별하여 우선순위 따라 일을 하라는 말씀이고, ⑶ 무엇보다 가정을 든든하게 세우라는 충고와 권면이다.

 

가정을 든든하게 세우기 위해서는 ① 밖의 일을 철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며 ② 밭의 일, 봄에 할 일을 겨울에 미리미리 준비해 놓으며 ③ 그 후에 집을 든든히 세우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밖의 일을 집 안까지 가져오지 말라는 말이다. 그렇다. 가정이 행복하고 부부가 행복한 든든하고 튼실한 가정은 밖의 일을 집안, 온가족이 행복을 나누는 즐거운 식탁, 부부가 사랑의 비밀을 나누는 침실가지 가져오지 않는 것이다.

 

아내가 하루 종일 남편 생각하고 맛있는 음식 준비해놓고 자녀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이 직장에서 당한 기분 나쁜 일을 집에까지 가져와 얼굴에 담고 있으면 그 식탁은 즐거움의 식탁이 아니라 초상집 식탁이 된다. 집안 분위기는 순식간에 침묵의 공간이 돼버리고 아이들은 굳어진 아빠 눈치만 보다가 슬그머니 저희들 방으로 가버리며 기대와 희망에 부풀었던 아내도 한 순간에 낙심돼 한숨과 후회로 그 밤을 맞게 된다. 이런 일이 자주 있으면 든든한 가정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전 9: 9에서 솔로몬은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Live joyfully with the wife; Enjoy life with the wife)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라”고 했다. 저 태양 밑에서 하나님이 주셔서 누리게 하신 분복을 당신의 모든 헛된 날에(All the days of the life of your vanity)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죄만 빼놓고 사랑하는 당신 아내, 당신 남편, 당신 자녀들과 함께 인생을 후회 없이 즐길 수 있기를 축원한다.

 

나는 한 때, 밖의 일을 집 안까지 끌어와 가정을 어둡고 우울하게 만들었던 불행한 가장이었던 때가 있었다. 20여 년 전, 내가 한창 혈기방장(血氣方壯)한 젊은 40대의 목사였을 때이다. 하나님의 의 보다는 나의 의와 나의 열심이 앞섰던 당시의 나는 주일날 교회에 나와야 할 집사 권사가 교회를 빠지거나 제직회에서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집에 돌아와 죄 없는 마누라에게 화풀이를 하고 애꿎은 아이들에게 아무 것도 아닌 일에도 화를 내 소리를 질렀다(내 목소리가 얼마나 큰가?) 그러면 그날 집안 분위기는 살벌하고 침울하고 저기압이다. 아내는 아내대로 내 눈치 보느라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슬금슬금 나를 피해 이층으로 도망가거나 밖으로 나가버린다. 그래도 끓어오르는 분노가 수그러들지 않는다. 그리고 나면 밥맛을 잃게 되고 잠도 제대로 못자며 얼굴은 며칠 동안 우거지상으로 굳어있다. 그러는 동안 집안 분위기는 살얼음판이다. 사소한 일만 생겨도 내 감정이 활화산처럼 폭발한다. 결국 아내는 속으로 모든 것을 삭이려다가 위궤양에 걸려 고생을 했고 내출혈로 몇 번을 죽음 직전까지 가기도 했었다. 내가 완전하니 교인들도 아내도 아이들도 완전해야 된다고 고집하던 교만과 외고집이 낳은 불행이었다. 내 성공과 야심을 이루려는 무서운 집념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 에녹이가 자기 엄마에게 농담 섞인 말로 “나는 먹기는 잘 먹고 많이 먹는데 살만 찌고 키가 자라지 않는데 그것은 아빠가 야단을 많이 치셔서 기가 죽어 그렇다”고 하는 소리에 충격을 받았다. 아내가 몇 번을 병원에 입원을 하고 치료를 받았을 때도 후회는 하면서도 완고했던 내 마음이 그 말에 와르르 무너지고 깨졌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너무 엄격하고 강하며 부드러움이 없었던 것을 가슴을 치며 회개했다. 그리고 많이 자상하고 부드러워져 오늘에 이르렀다.

 

물론 20년을 단숨에 뛰어넘어 하루아침에 오늘 같이 많이 부드럽고 유순한 목사가 된 것은 아니고 아직도 부족하지만 그동안 많은 실수와 고난을 통해 바울이 말한 ‘신령한 사랑의 아홉 가지 요소’ 인격 가까이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부끄럽지만 그러면서 감사하게도 불과 몇 년부터 비로써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나를 목사라고 인정하고 알아보게 된 것이 감사하다)

 

성도들이 맺어야 할 성령의 열매인 사랑 “자연발생적이며 신령한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의 아홉 가지 요소”(9 ingredients of divine love; Spontaneous and divine love; 고전 13: 4-7)는 ① 그 사랑이 소극적일 때(Patience-Love passive)는 ‘참고 견디는 것’으로 나타난다. 어떤 일에도 서두르지 않고(no hurry), 손해를 당해도 오래 참고 견디며(suffer long and bears), 모든 것을 믿고 소망하며 견딘다(believes, hopes and endures all things;4, 7절) ② 사랑이 행동으로 옮겨질 때는 친절함으로 나타난다(Kindness-Love in action) 성급하거나 경솔하고 무모하게 행동하지 않으고 무례하거나 뻔뻔하지 않으며(never act rashly or insolently), 앞뒤가 맞지 않거나 으스대거나 부풀리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는다(not inconsistent, puffed up, or proud: 4절) ③ 이웃과 경쟁관계에 처할 때는 넓은 도량과 관용을 베풀며 관대하게 대한다Generosity-Love in competition) 남을 부러워 해 시기나 질투하지 않는다(not envious or jealous: 4절) ④ 사랑이 숨겨져 있을 때는 겸손과 겸허의 행동으로 나타난다(Humility-Love is hiding) 자기를 자랑해 보이거나 과시하지 않으며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조용히 숨어서 일을 한다(no parade, no airs, works then retires: 4절)

 

⑤ 대인관계나 이웃과의 교제관계로 사랑이 나타날 때는 정중함과 공손함으로 나타난다(Courtesy-Love in society) 꼴사납거나 보기 흉하도록 저속하게 행동하지 않으며 항상 정중하고 품위와 교양이 있게 행동하며 모든 계층의 사람과 평안하게 어울리며 예모(禮貌)없거나 거칠지 않으며 버릇없거나 무례한 언행을 삼가한다(does not behave unseemly; always polite; at home with all classes; never rude or discourteous: 5절) ⑥ 본질적으로 사랑은 욕심이 없고 자기 본위가 아니며 이기적이 아니다(Unselfishness-Love in essence) 참 사랑은 결코 제멋대로의 이기적이지 않고 심술궂지 않으며 신랄(辛辣)하거나 매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고 (남의 공격이나 악의 따위에) 보복이나 앙갚음을 하지 않는다(never selfish, sour, or bitter; seeks only good of others; does not retaliate or seek revenge: 5절) ⑦ 어떤 일처리에서 사랑이 나나날 때는 침착과 평온의 좋은 기질로 나타난다(Good temper-Love in disposition) 초조하거나 안달하지 않고 분개나 원망하지 않는다(never irritated; never resentful: 5절)

 

⑧ 사랑이 행실이나 품행으로 나타날 때는 정의로움, 청렴강직, 정직함으로 나타난다(Righteousness-Love in conduct) 죄를 미워해 멀리하고 이웃이 잘못될 때 결코 기뻐하지 않으며, 이웃의 잘됨을 기뻐하며, 언제나 남의 약점 드러내고 폭로하는 것을 더디 하며, 항상 최선의 것을 믿으며, 항상 믿고 모든 것을 견딘다(hates sin; never glad when others go wrong; always gladdened by goodness to others; always slow to expose; always eager to believe the best; always hopeful; always enduring: 6-7절) ⑨ 직업이나 신앙고백에서의 사랑은 신실함과 표리가 없는 것과 진실로 나타난다(Sincerity-Love in profession) 결코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자기 자랑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며, 위선적이지 않고 정직하며, 엄격하고 철저하게 참된 것과 진실 외에는 어떤 감명이나 인상도 남기지 않으며, 결코 독단적이지 않고, 격정과 격노의 분한 감정을 발끈하지 않으며, 나쁜 생각과 악한 것을 (새가 알을 품듯: brood) 마음에 품지 않고, 항상 올바르고 언제나 기뻐하며 참되며, 침묵할 줄 알고 이웃을 신뢰하고 믿으며, 언제라도 항상 사랑을 나타내 보인다(never boastful and conceited; not a hypocrite; always honest; leaves no impression but what is strictly true; never self-assertive; does not blaze out in passionate anger, nor brood over wrong; always just, joyful and truthful; know show to be silent; full of trust; always present) 이것이 성도들이 평생에 맺어야 할 사랑의 열매이며 예수 믿는 우리가 도달해야 할 사랑의 정상이다.

 

One-Way-Life,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한번뿐인 외길인생 에서 아내에게 부드러운 남편, 남편에게 상냥하고 지혜로운 아내가 되고 이웃에게 사랑을 나타내고 보여주는 성도가 되므로 가정의 행복, 이웃과의 화평함을 이루는 성공적 인생을 살 수 있기를 축원한다.

 

2. 이웃과의 관계를 원만(圓滿)하게 하라(28절)

 

아무도 살지 않는 외로운 사막에 대궐 같은 초현대판 집을 짓고 자기 가족끼리 날마다 주지육림의 고급 음식을 먹고 살지만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면 그 황실 같은 거대한 집과 맛있는 음식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 집은 유령의 집일뿐이고 그 행복은 허무하고 공허한 행복일 것이다. 그렇다. 사람의 성공적 삶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이뤄진다. 이웃이 없고 친구가 없는 ‘나 홀로의 성공’은 성공이 아니다. 어둠이 있기에 빛의 존재가치를 알게 되고, 배고픈 사람이 있기에 배부름의 가치를 알며, 불행한 사람이 있기에 행복한 자신을 볼 수 있듯이 내 이웃이 있기에 내 존재가치와 성공기준이 있다. 그래서 인간은 나 혼자 살 수 없는, 이웃이 있어야 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런데 성경은 그러한 이웃들과 원만한 관계를 갖는 것이 성공적 삶이라고 했고, 이웃과 원만한 관계를 갖고 살려면 “너는 아무 이유 없이, 정당한 근거 없이, 그리고 까닭 없이 이웃을 쳐서 증인이 되지 말며 네 입술로 속이지 말라”고 했다. 이웃을 향해 근거 없는 비판이나 비난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며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말씀이다.

 

“너는 까닭 없이 네 이웃을 쳐서 증인이 되지 말며

Be not a witness against your neighbour without cause

네 입술로 속이지 말라” Do not deceive with your lips.

 

그렇다. 아무리 형제보다 가까운 이웃사촌과 절친한 친구라 할지라도 그 이웃을 헐뜯고 그를 속이면 그와 가까워질 수가 없다. 김 집사가 이 장로와 가까운 친구가 되고 싶은데 이 장로가 사람들에게 “김 집사는 거짓말쟁이고 사기꾼이며 욕심이 많은 친구라”고 말하고 다닌다면 두 사람은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없다. 그리고 김 집사가 이 장로를 속이거나 이 장로가 김 집사에게 거짓말을 자주하면 그들은 가까운 친구도 될 수 없고 원만한 관계도 가질 수가 없다. 그래서 성경은 ‘너는 아무 이유 없이 네 이웃을 쳐서 증인이 되지 말고 네 입술로 속이지 말라’고 한 것이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한다’(잠 27; 17)는 잠언의 말씀처럼 내 이웃의 얼굴을 빛나게 해주는 사람,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유익을 주며 이웃을 속이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 원만한 대인관계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축원한다.

 

3. 복수와 보복 심리를 버리라(29절)

 

“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 행한 대로 갚겠다 말하지 말라”

 

개인생활이나 가정생활 그리고 신앙생활에서 ‘네가 그랬으니 나도 언젠가 너에게 복수(復讐)하겠다’는 보복감정을 갖고 있으면 그 삶은 성공적 삶이 아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을 때, “나도 내가 아픔을 당한 것만큼 당신에게 갚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사사건건 다투며 싸운다면 그 가정은 전쟁터요 미움과 증오가 떠나지 않는 불행한 가정이며 마지막은 파멸을 맞게될 비극의 가정이 된다. 남편이나 아내나 형제가 나에게 상처나 아픔을 주고 손해를 끼쳤을 때, “언젠가 너도 내게 당할 것이라”는 복수감정을 품고 있으면 그 사람은 실패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져 잘 살게 됐고 자식들까지 성공했다하더라도 그 마음 밑바닥에 보복과 복수의 증오감정이 깔려 있다면 그는 인생실패 신앙실패의 사람이다.

 

중국의 5천년 역사와 한국의 반만년 역사를 보자. 대부분이 피와 보복의 역사이야기이다. 요즘 MBC와 SBS에서 인기리에 방영돼 여러분이 즐겨 시청하는 무사 백동수와 계백 장군 사극도 복수와 보복의 이야기이다. 심지어 일반 연속극들도 삼각관계에서 서로 미워하고 복수하는 그런 내용들이다. 어쩌면 하나님 없는 세상역사가 모두 보복과 복수로 점철된 역사일 것이다. 그래서 밥을 먹을 때마다 억울함을 되 뇌이기 위해 쓸개를 맛보며 보복의 기회를 기다려 복수했다는 와신상담(臥薪嘗膽)과 수십 년 동안 장작더미 위에서 잠을 자며 이를 갈면서 복수의 날을 기다려 마침내 복수했다는 절치부심(切齒腐心)의 고사성어가 생겼지만 그들이 복수함으로 모든 것이 끝났는가? 아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았고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낳았을 뿐이다.

 

그래서 중국의 5천년 역사와 한국의 반만 년 역사는 복수의 역사, 피의 역사, 죽음의 역사이다. 그리고 세계역사가 바로 그 역사의 연속이다. 피는 피를 불러왔고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불러왔으며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낳고 있다. 이 복수감정, 보복심리가 사람 마음에서 없어지지 않는 한 눈부신 과학발전과 경제부흥, 흑자무역, 첨단기술 발명도 국가의 평안과 개인의 행복을 가져오지 못한다. 그러므로 국가의 참 행복과 가정의 진정한 행복과 성공, 교회의 평안과 개인 삶의 성공은 복수감정과 보복 심리를 십자가 앞에 내려 놓는데서만 가능하다.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Father, forgive them)라고 기도하신 용서감정, 용서심리에서만 가능하다.

 

미국의 재판 판결문 기록 하나를 소개한다. 이 일은 켄터키 주, 후랭크 퍼튼 지방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사무엘 휴즈라는 사람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람을 죽인 살인범으로 종신형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학교 친구 루스안 영이란 젊은이가 용맹을 떨치며 큰일을 많이 해 냈다. 그때 켄터키 주지사 Black Burn이 루스안 영에게 “자네가 세운 공력에 상급을 주고 싶으니 너의 소원을 말하라”고 했다. 루스안 영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살고 있는 친구 Samuel의 특별사면을 요청했다.

 

워낙 큰일을 해낸 사람의 요청이라 일급 살인범의 사면이 힘든 일이었지만 주지사는 루스안 영에게 사무엘 휴즈의 사면장을 흔쾌히 써 주었다. 그리하여 친구의 특별사면장을 받아 손에 쥔 루스안 영은 흥분한 마음으로 친구의 감옥으로 단숨에 달려갔다. 그리고 사면장을 주머니에서 꺼내기 전에 “샘, 네가 만일 사면으로 용서받아 자유자가 된다면 네가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고 물었다. 그러자 샘은 ”나는 랭캐스터로 달려가 내게 억울한 재판을 한 재판관 Owens Will을 죽여 버리고 위증했던 자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루스안 영은 감옥 창살을 붙잡고 한숨을 쉬며 울면서 그 사면장을 찢어버렸다. 그리고 얼마 후 샘은 사형을 받아 생을 마쳤다. 현재도 그 재판 기록은 위처드 리지스터에 그대로 남아 있다.

 

오늘 인생 70-80, 90년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기 원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먹물보다 더 검고 머리칼보다도 더 많으며 지옥보다 더 무서운 당신의 죄를 용서해 주셨듯이 당신 이웃의 죄를 용서하라. 남편은 아내의 부족함을, 아내는 남편의 실수를,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잘못을,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약점을, 형제는 형제의 잘못을, 친구는 친구의 실수와 나쁜 점을...용서하라. 용서해야 한다. 거기에 진정한 삶의 성공과 신앙성공이 있고 하나님 나라가 있다. 그것이 주께서 요구하는 참 신앙이요 그리스도를 닮은 참 인격이다.

 

4. 게으름을 정복하라(30-34절)

 

사람이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 부자가 되고 가난하게 되는 것은 게으름과 부지런함에서 판결이 난다. 학생의 공부에서, 장사꾼의 사업, 큰 사업에서 작은 사업, 구멍가게나 대형 마트까지 그리고 성도들의 신앙도 근면의 부지런함과 나태의 게으름으로 성공과 실패가 판가름 난다. 당신에게 아무리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약속하셨더라도 게으르면 축복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솔로몬은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않으리라”(잠 22: 29)고 했다. 자기 사업에 근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은 성공한다는 말이다.

 

게으름을 피우고 성공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어떻게 게으름 피우고 사업에 성공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6시에 가게 문 열어야 할 사람이 늦잠자고 10시에 가게 문 열어 돈 벌 수 있겠는가? 어떻게 게으르고, 잠잘 것 다 자고 기도하고 성경 보며 전도할 수 있겠으며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게으름과 나태함은 실패의 지름길이고 파멸과 가난의 첩경이다. 그래서 하나님도 게으른 사람에겐 축복을 주실 수가 없다.

 

잠언기자는 게으른 자의 삶의 현장을 이렇게 기술했다. “내가 증왕에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퍼졌으며 거친 풀이 지면에 덮였고 돌담이 무너져 있었다”(30-31) 채소와 곡식이 무성하고 포도열매들이 무성해야할 밭이 온통 무익한 잡초인 가시덤불과 거친 풀로 지면을 덮고 있다는 말이며 포도밭을 안전하게 지켜줄 돌담이 무너져 있어서 들짐승들이 포도밭을 다 해칠 지경이 됐다는 말이다. 그래서 잠언기자는 계속해서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다”(32)고 했다. 유명한 Spurgeon 목사는 “우리가 매사에 진지하고 깊게 생각하는 훈련이 돼 있으면 어느 곳에서든지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 땅에서 바다에서 공중에서, 책들을 읽고 설교를 들을 것이며, 모든 살아있는 짐승 새 물고기 곤충 그리고 땅에서 자라나는 유용무용의 모든 것들로부터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인생을 성공하는 사람은 바로 게으른 자의 삶을 통해서 삶을 성공하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는 말이다.

 

계속해서 잠언기자는 “네가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困乏)이 군사같이 이르리라”(33-34)고 말했다. 잠자기를 좋아하는 게으른 사람이 맞이할 운명을 그렇게 말한 것이다. 강도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작은 도적이라면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군사는 예상치 않은 때에 갑자기 들이닥치는 큰 도적이다. 강도는 한 개인이나 가정을 파괴하는 대적이고 군사는 한 나라를 파괴하는 대적이다. 그렇다. 잠자기를 좋아하는 게으른 사람에겐 가난의 빈궁(Your poverty; 너의 가난, 결핍, 빈곤, 부족함)이 강도처럼 찾아오고 곤핍(Your want; 결핍, 부족, 곤궁, 필요한 일)이 군사처럼 달려온다. 육신을 편하게 하고 잠자는데 시간을 많이 바치는 영적으로 게으른 교인도 영적인 빈궁과 곤핍을 피할 길이 없다. 그래서 육신적이든 영적이든 게으른 사람에겐 축복의 길이 없다.

 

당신의 사업성공은 게으름 정복에서 시작된다. 가게 성공도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를 내 쫓는데 달려있다. 당신의 인생성공과 신앙성공은 잠자기를 좋아하는 게으름을 끊고 부지런해야 한다. 게으른 사람은 새벽기도 한번 제대로 못한다. 그리고 게으른 사람은 새벽에 교회를 나왔어도 하나님과 목사님께 눈도장만 찍고 집으로 돌아갈 뿐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나 영적교통을 나눌 시간이 없다. 그래서 부지런한 사람은 새벽기도 후 직장을 가야한다면 새벽기도 전에 먼저 나와 기도할 시간을 충분히 갖는다. 이렇게 게으른 사람과 근면한 사람은 삶의 방식이 다르다.

 

그래서 성경엔 느리고 게으르고 나태한 Slothful을 열일곱 번(17회)이나 경계했고 게으름뱅이, 건달, 느린 사람의 Sluggard를 여섯(6회) 번이나 경계했으며 반대로 부지런함, 근면함을 무려 쉬운 두(52)번이나 칭찬했던 것이다. ‘근면한 사람은 재물을 얻고(잠 10: 4, 11: 16) 부지런한 사람은 부하게 되며(잠 13: 4) 부지런한 사람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다’(잠 21; 5) 그래서 부지런한 성도는 신앙도 성공하고 인생 삶도 성공하며 가정도 성공합니다. 그러나 게으른 사람의 집은 서까래가 퇴락하고 손이 풀어진 사람은 집이 샌다(전 10: 18)

 

평균적으로 미국사람들이 일 년 365일, 8,760시간을 사용하는 통계를 읽어보았다. 미국사람들은 일 년에 잠자는 시간을 2,200시간을 사용하고(그것은 무려 90일이 된다), 밥 먹는데 1,300시간, 차 운전하는데 1,000시간, TV시청하는데 1,460시간, 전화하는데 500시간, 잡담하는데 400시간,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 300시간, 세수하는데 200시간, 아이들 야단치는데 100시간, 담뱃불 붙이는데 80시간, 코 푸는데 40시간, 그리고 줄서서 기다리는데 500시간 등 8,080시간을 보내고 그 외에 700시간은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재미있는 통계다. 그렇다면 우리의 한 평생인 70-80년, 90년 동안 그 모든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보낼까?

 

이제 우리 삶을 육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성공하기 원하는 성도 여러분, 땅에 떨어진 씨앗이 땅속 깊은 곳에서 움이 트고 싹이 났어도 두꺼운 흙을 뚫고 밖으로 나와야 빛을 보고 꽃도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당신이 게으름의 두꺼운 갑옷을 벗고 나와야 성공의 사람이 될 수 있다. 게으름을 뚫지 못하면 낙오자로 남는다. 나보다 부지런한 사람에게 축복을 다 빼앗긴다. 오늘 자신의 삶을 성공하기 원하는 여러분, 무엇보다 건강하고 튼튼한 가정을 세우라. 부부가 원만하고 부모와 자식 사이에 막힌 담이 없는 가정이어야 한다. 그다음, 이웃과 원만한 관계를 가지라. 그러기 위해서는 까닭 없이 이웃을 쳐서 증인이 되지 말고 입술로 이웃을 속이거나 기만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복수감정과 보복 심리를 없애야 하고 마지막으로 게으름을 정복해야 한다. 이 말씀들이 당신과 당신의 가정을 성공케 하는 역사를 만들 수 있기를 축원한다.

 

 

 

 

 

김엘리야 목사(워싱톤주기도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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