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김엘리야]사탄의 말씀 훼방 5대 전략 - 기독뉴스
모바일보기
기독뉴스 개편사이트 안...
2024년 05월 06일
 
뉴스 오피니언 방송사진 커뮤니티 2세뉴스
기사등록 I 독자마당 I 광고후원 로그인 회원가입
뉴스홈 > 오피니언 > 칼럼 > 김엘리야칼럼
2011년12월29일 05시07분
글자크기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칼럼/김엘리야]사탄의 말씀 훼방 5대 전략
 

사탄의 말씀 훼방 5대 전략 (눅 8: 9-15)

 

평생을 보물만 찾아오던 이억만이 우연히 요술램프를 주웠다. 너무 기쁜 마음에 이억만이 요정에게 소원을 말하려는데, 요정은 ‘단 한 가지 소원만 말하라’고 한다. 하지만 이억만은 돈과 여자와 결혼에 모두 욕심이 났다. 이것을 고심하던 이억만은 세 가지 모두를 가질 욕심으로 한꺼번에 재빠르게 말했다. “돈, 여자, 결혼!” 결국 그의 소원은 이뤄졌다. 이억만은 ‘돈 여자와 결혼’한 것이다. 성경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약 1: 15)고 경고했다. 욕심의 아들은 죄고 죄의 아들은 사망이다. 욕심 때문에 망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축원한다.

 

어둠이 빛을 싫어하듯 사탄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오하고 싫어한다. 그래서 마귀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읽거나 듣고 배우는 것을 막으려 하며 주의 종들이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을 수단방법 다해 막고 훼방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마귀는 성도들이 주일날 설교 듣지 못하게 하려고 재미있는 프로로 토요일 밤 늦게까지 TV 앞에 앉아 있게 하고, 친구들과 놀게 하며, 인터넷에 붙잡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고, 토요일 밤에 친구들이 찾아오게 한다. 그래야만 교인들이 주일예배 설교를 자장가 삼아 단잠을 잘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토요일까지만 해도 아무 일 없었으나 주일 아침만 되면 바쁜 일이 생기게 하거나 갑자기 몸이 아프거나 부부 싸움을 하게 해서 교회를 가지 못하게 하든지 교회에 가더라도 설교시간에 잡념 때문에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한다.

 

사탄의 말씀 훼방 5대전략

 

사탄마귀는 다섯 가지 전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훼방한다. 마귀가 교인들과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하고 듣지 못하게 하는 고등전술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내가 말씀의 열매 맺는 것에서 실패했던 것, 마귀에게 속았던 사탄의 전술전략은 무엇인가?

 

1. 우맹전술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눅 8: 12)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에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마 13: 19)

마오쩌둥이 문화혁명으로 중국대륙을 통일할 때, 배우고 똑똑한 지식인들을 죽이고 종교를 말살하는 우민정책으로 사회주의 공산혁명을 성공했고, 아프리카와 중남미 여러 나라 지도자들이 우맹정책으로 정복정략을 성공했듯 마귀의 첫 번째 전략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우맹전술이다. 이 마귀 전술전략에 걸려든 사람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

 

우맹전술에서 마귀는 사람의 무관심을 이용한다. ‘저 설교는 나와 아무 상관도 없다. 저 말은 앞에 앉아 있는 김 장로가 들어야 할 말이다. 저 말씀은 저 뒤에 우리 시어머니가 들어야 할 말이다. 그것은 우리 남편이 듣고 회개해야 할 말씀...저것은 박집사 며느리가 들어야 할 설교...’ 이러한 무관심은 마귀의 우맹전술이다.

 

그리고 마귀의 우맹전술은 사람의 나쁜 선입관을 이용한다.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그 말씀을 진실로 받아드리지 않고 색안경으로 보게 하고, 귀한 말씀이라도 항아리 뚜껑 닫아 놓듯 마음을 닫아 듣지 못하게 한다. 예수님은 이런 것을 ‘길가에 뿌린 씨’,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는 씨’라고 했다. 그렇다. 무관심과 나쁜 선입관으로 듣는 말씀은 예배가 끝남과 동시에 설교 말씀이 내 영혼의 양식으로 마음에 남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밥이 돼버리는 말씀이다. 그래서 예배 끝나면 다 잊어버린다. 목사님이 무슨 설교를 했는지도 모른다.

 

3년 반 공생애에서 예수님은 많은 설교를 하셨는데 그 중 32번의 비유설교는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과 감명을 준다. 32번의 비유 중에서 본문의 씨 뿌리는 비유(마 13: 3-8, 막 4: 3-8, 눅 8: 5-8)와 사악한 농부 비유(마 21; 33-46, 막 12; 1-12, 눅 20: 9-19)는 공관복음인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모두 기록된 비유설교이니 두 비유는 그만큼 중요한 설교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은 마귀의 우맹전술이 성공하는 것은 사람들 마음이 길가와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길이 무엇인가? 그렇다. 길과 도로는 사람과 짐승, 우마차와 자동차가 밟고 지나간 단단한 땅이다. 길은 짐승들이 지나가면서 똥오줌 싸놓는 더러운 땅이고 적군과 아군, 친구와 원수, 무식한 자와 유식한 자, 있는 자와 없는 자,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굳은 땅이다. 그래서 길은 단단하고 씨가 떨어져도 싹이 날 수 없고 사람과 짐승, 우마차에 밟혀 씨가 으스러지거나 새의 밥이 된다.

 

나는 자살 직전에 유명한 점술가를 찾아갔다가 “당신은 예수 믿을 사람”이라고 해서 교회에 나온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고, 어떤 외동딸을 잃은 어머니가 고민하다가 정신이 나간 반미치광이가 돼 마지막으로 절을 찾아가 고승과 상담을 했는데 뜻밖에도 “당신은 예수 믿어야 산다”고 해서 예수 믿은 사람을 만나본 적도 있다. 이렇게 좋은 사람이 밟고 지나간 마음 밭도 있지만 나쁜 사람이 밟고 지나간 단단한 마음 밭은 복음의 씨가 열매 맺기가 어렵다.

 

역사적으로 지구촌의 근대사를 밟고 지나간 대표적인 무신론의 발자국들을 보자. 먼저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순수이성비판이다. 칸트는 “A가 진리이면 A가 아닌 것은 진리가 될 수 없다. 개인의 자유는 하나님(신)을 찾을 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내부에서 말하는 도덕적 법에 순종하는데 있다”고 선언했다. 아담의 타락으로 범죄(犯罪)한 인간 내부의 어떤 소리도 사람에게 참 자유를 줄 수 없다. 그다음, 공산주의 정치의 원리기초가 된 헤겔(Hegel, 1770-1831)의 변증론과 상대성 원리이다. 19세기 덴마크의 종교철학자 소렌 킬케골(Kierkegaard)의 기독교 믿음의 기본적 교리를 부정한 실존주의 철학, 그리고 계급 없는 사회 ‘유토피아 공산주의’를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라 주장한 독일의 사회주의자 칼 맑스(Karl Marx, 1818-1883), 그다음 19세기 영국의 박물학자 챨스 다윈(Darwin Charles, 1809-1882)의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물은 낮은 형태에서 진화됐다’고 주장한 진화론, 그리고 그 진화론에 심취해 하나님 없이도 인간의 즐거움으로 인간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외친 무신론자 (Siegmund Freud, 1856-1939)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등이다.

 

프로이드는 ‘인간은 육체의 즐거움인 성을 만족시킬 때 모든 목적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성적 즐거움을 만족시키려는 무의식적인 욕구가 사회에 의해 압박을 받게 한다. 이 억제가 사람을 불쾌하게 한다. 그래서 즐거움을 찾는 인간본능과 그것을 억제하는 갈등의 대립에서 사람은 노이로제에 걸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억제 받지 않고 마음껏 성적인 기쁨을 누릴 때 인간은 목적을 이루게 되는 것’이라는 도덕 파괴의 궤변을 설파했다.

 

그 외에도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성공시킨 Nikolai Lenin(니콜라이 레닌, 1870- 1924)이 ‘우리는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다. 그리고 그 폐허 위에 우리의 성을 지을 것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한 성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모든 부르주아를 파괴하고 갈아서 가루를 만들 것이며 나는 이 일을 반대하는 반혁명분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겠다. 인간은 하나의 물질이다. 영혼은 없다. 그리고 지상에 하나님(신)은 없다. 그러기에 이 혁명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이다’를 외친 적자생존의 공산주의가 있다. 1991년 8월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가 붕괴되기까지 이 공산주의혁명의 외침은 소련에서 헝가리, 체코, 발칸반도, 쿠바, 중국, 이북, 아프리카까지 지구촌을 붉게 물들이며 뻗어나갔고 수억의 사람들을 죽이면서 지구를 정복했었다.

 

이렇게 수많은 지구촌의 사람들 마음은 무신론적 사상과 철학들이 밟고 지나가므로 길과 도로 같은 단단한 마음들이 돼 버렸다. 그래서 그들에게 뿌려지는 복음의 씨앗은 싹도 나기 전에 마귀들이 먹어버린다. 이렇게 역사의 길을 밟고 지나간 하나님 없는 무신론 사상과 쾌락주의 철학, 인간이 만든 각종 종교 그리고 하나님을 모르는 부모 형제 친구 친척들의 발자국 때문에 마음이 굳어져 하나님 말씀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 마귀의 우맹전술이다. 그런 중에서 당신과 내가 계시와 지혜의 정신으로(엡 2: 17) 하나님의 말씀을 빛으로 영접해(고후 4: 6)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축복이요 은혜인 것이다. 우리 마음을 옥토로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는 ‘아멘’으로 영광을 돌리자.

 

2. 환난과 핍박

 

“돌밭(바위)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잠간 믿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시험을 받을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배반하는 자)요”(마 13: 20-21, 눅 8: 13)

 

마귀의 두 번째 말씀 훼방전략은 환난과 핍박이다. 환난(Tribulation, 들리브)이란 “여러 가지 조건들을 통해 삶의 환경이 답답하게 되는 것”이고 핍박(Persecution, 디오그모스)이란 “도망가는 노예를 잡기 위해 개를 보내 추격(追擊)한다”는 뜻으로 신앙 때문에 당하는 극심한 박해를 가리킨다. 환난이 위에서 아래로 짓누르는 압박이라면 핍박은 뒤에서 바짝 추격하는 위협을 의미한다. 마귀는 당신이 목사님의 설교를 ‘아멘’으로 받아 기뻐하고 즐거워 할 때, 당신이 그 말씀의 열매를 맺기 전에 반드시 환난과 핍박이라는 환경적인 어려움의 시험으로 열매 맺는 것을 훼방한다.

 

삶의 환경이 잘 풀리는 것이 아니라 더 나빠지게도 하고 간수들이 탈옥한 죄수를 잡기 위해 잘 훈련된 개를 데리고 추격하듯 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생기게 한다. 그래서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더니 오히려 재수가 없다, 기도하면 병이 낫는다고 하더니 기도한 후 오히려 병이 더 심해졌다, 십일조 드리면 사업이 잘 된다더니 더 어렵기만 하다’라고 시험 들어 불평하게 만든다. 그리고 예수를 믿다가 보니 가까웠던 친구가 멀어진다. 신앙생활 잘 하려다 보니 형제도 멀리하고 부모도 핍박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환난과 핍박을 못 이기고 신앙을 포기했다. 이것이 마귀의 전술전략인 것이다. 그러나 환난과 핍박의 마귀 전략에 넘어진 사람보다 신앙을 지킨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불을 끄기 위해 소나무가지로 불을 때리면 불꽃이 사방으로 튀어 더 많이 번져나가듯, 바람이 사나울수록 독수리는 더 높은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듯 기독교는 환난과 핍박의 시험을 통해 여기까지 부흥발전 해왔다. 1세기에서 4세기까지의 초대교회가 그랬다. 주후 64년 네로의 박해에서 313년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기까지 250년 동안 로마제국에서 신앙 때문에 칼과 창에 찔려 죽고 활에 쏘이고 몽둥이로 맞아 죽으며 불에 태워 죽임을 당하고 사자와 호랑이 맹수의 밥으로 순교당한 성도들이 500만이 넘는다. 그러나 환난과 핍박이 심할수록 기독교는 더 강하게 뻗어갔다.

 

중국의 지하교회도 그랬다. 중국이 공산화된 1949년에서 9년 동안 중국 기독교는 말할 수 없는 환난과 박해의 시련이 있었다. 그래서 1958년에는 공산주의를 인정하고 그 조직을 찬양하는 친정부파의 삼자교회와 순수한 신앙만을 따르는 지하교회로 나눠진다. 삼자교회는 공산주의를 반대하지 않으므로 살아남았지만 지하교회는 무신론의 공산주의를 반대하므로 박해를 당했는데 어떤 성도는 지하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잡혀 반동분자로 처형되기도 했고, 어떤 성도는 10년 15년 20년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66년 마오쩌둥이 문화혁명을 선언한 후 1976년 그가 사망할 때, 중국에는 사실상 모든 교회가 없어졌다. 삼자교회도 지하교회도 거의 다 멸절됐다. 문화혁명으로 1억의 사람들이 죽어갈 때, 당시 100만 정도 있었던 기독교인도 모두 없어졌다. 문화혁명은 지식인 숙청이었고 종교 대청소 혁명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모진 환난과 박해와 핍박의 시험 중에서도 댐을 만들어 흐르는 강물을 막자 그 물이 물줄기를 따라 지하 깊은 곳으로 도도히 흐르듯 하나님의 말씀은 중국 대륙 지하로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기독교인이 한 명도 없을 것이라 염려했던 중국에 마오쩌둥이 죽은 후 30여년이 지난 오늘날 1억에서 1억 5천만의 기독교인이 있다고 한다. 마귀사탄은 중국 대륙에서 환난과 핍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막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말씀이 열매를 맺게 하셨다. 당신에게 오는 환난과 핍박이 더 많은 열매를 맺는 말씀으로 역사되기를 축원한다.

 

3. 이생의 염려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마 13: 22)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심치 못하는 자요”(눅 8: 14)

 

농부가 뿌린 씨가 바람에 날려 가시덩굴 속에 떨어졌다. 가시덩굴 속에 떨어진 씨는 새들도 보지 못해 주워 먹지도 못했고 그늘이지만 습기가 있어서 얼마 후에 씨에서 싹이 났다. 그러나 싹은 났지만 햇빛을 보지 못해 제대로 자라질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가시덩굴이 영양을 다 빼앗아 먹어버려 영양실조가 돼 결국 얼마정도 자라다가 성장이 멈추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렸다.

마태는 가시덩굴과 가시떨기(The thorns)를 세상의 염려(The care of this world)와 재리의 유혹(The deceitfulness of riches)이라고 했고 누가는 이생의 염려(Cares of this life)와 재리(Riches of this life)와 일락(Pleasures of this life)이라고 했다.

 

마음 밭이 가시덩굴과 가시떨기로 엉켜있다는 것은 마음에 '세상의 염려‘와 ’이생의 염려‘(Cares of this world)같은 걱정들이 마음을 채우고 있다는 말이다. 이생의 염려, 세상 염려와 걱정이란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하는 현세 위주의 생각으로 내세와 영원한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가질만한 여유와 용기가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염려(Care, 메림나)는 “마음이 나뉜다, 분열하다”라는 뜻이다. 사람이 감정과 생각과 판단이 세상을 향한 욕구로 혼탁해지고 나누어지면 아무리 설교를 듣고 말씀을 배워도 말씀이 마음에서 자랄 수가 없고 열매를 맺을 수도 없다는 말씀이다.

 

현재 중국이나 제 3국에 머물고 있는 탈북자는 대략 20만에서 많게는 30만 정도로 보고 있다. 그 중에 한국으로 들어와 정착해 살고 있는 탈북자는 2만 명이 넘었는데 탈북자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가족이 탈북했거나 한 사람이 탈북했더라도 그들이 탈북수기를 글로 쓰거나 영화로 만든다면 하나하나는 모두 지구촌 최대비극의 대서사문과 대서사극이 될 것이다.

 

제가 며칠 전에 읽은 탈북자 이야기 ‘장마당 순대 집 부부’란 글엔 장마당에서 순대 장사를 하며 살던 부부가 돼지 순대를 구하다가 돼지도 구하기 힘들고 돈도 없어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자 장마당에서 빌어먹는 아이 13명을 죽여서 그 아이들의 내장으로 순대를 만들어 팔다가 적발돼 처형당하는 것을 직접 본 탈북자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도 안 되는 이야기 중 하나이지만 이북의 경제형편은 지상최악의 고통, 지상지옥의 고통일 것이다.

 

놀라운 것은 탈북하기 전 모든 사람들의 생각은 탈북을 성공해 살기 좋은 대한민국에 가면 염려 걱정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수많은 사선을 넘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대한민국에 들어와 정부의 도움으로 학교도 들어가고 직장도 구하고 돈도 벌고 잘 살아 이북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생활이 좋아졌는데도 내일에 대한 또 다른 걱정과 염려는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미국 영주권까지 받아 좋은 환경이 됐는데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렇다. 인간의 염려와 걱정은 환경이 좋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 평안만이 염려와 걱정을 이길 수 있다.

 

당신이 염려하고 걱정한다고 인생문제가 해결 되는가? 아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애인이나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면 어쩌나 걱정하고 염려하며, 남편이 일하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나 염려하고, 실직하거나 암이라도 덜컥 걸리면 어쩌나... 미래를 걱정한다. 또는 그때 그 돈을 아꼈더라면 지금 이 어려움을 견딜 텐데 후회하고 직장과 일터에서의 실수나 옛 사랑의 부스러기 같은 과거를 염려 걱정한다. 오늘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심지어 점심을 무얼 먹고 저녁은 무얼 먹을까를 고민한다. 어니 J. 첼린스키는 ‘느리게 사는 즐거움’이란 책에서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사건들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이며, 22%는 사소한 사건들이고, 4%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우리가 두통과 스트레스를 견뎌가며 잠 못 자면서 하는 염려 근심 걱정의 96%가 쓸데없는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요, 4%는 어차피 우리가 고민해봤자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이라는 이야기다.

 

지금 당신에게 염려거리 걱정거리가 있다면 해답은 이미 당신에게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걱정을 멈추고 염려를 끝내라. 그리고 당신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지금 당장 실천하면 되는 것이니 그 또한 염려 걱정을 멈추라.

 

그래서 성경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 6-7)고 하셨고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시 37: 5-6)고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훼방하는 마귀의 염려 걱정 전술에 속지 말고 염려와 걱정을 하나님께 맡기므로 말씀의 열매를 30배 60배 100배로 맺을 수 있기를 축원한다.

 

4. 재리의 유혹

 

마귀사탄의 말씀 훼방 네 번째 고등전략은 성도들 마음속에 재리(The riches of this world)와 재리의 유혹(The deceitfulness of riches)이 있게 하는 것이다. 재리(Riches, 플루토스)란 “풍성한 재물”, “부요함”이란 뜻이다. 재리와 재리의 유혹이란 재물에 대한 필요한 욕구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 필요이상의 재물을 쌓으려는 욕심과 욕망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가시덩굴과 가시떨기가 얽혀있는 밭에 떨어진 씨가 싹은 돋아나지만 햇빛이 모자라고 양분을 가시덩굴에 빼앗기므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열매를 맺지 못하듯 지나친 재물의 유혹과 돈 욕심에 마음을 뺏긴 사람은 그 욕심에 눌려 하나님 말씀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어리석은 부자’(눅 12; 16-21)와 ‘부자 관원’(눅 18: 18-23)처럼 돈과 재물의 욕심 때문에 진리를 따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말씀이 막혀’(Choke the word: 마 13: 22), ‘기운이 막혀’(Are choked: 눅 8: 14)에서 ‘막혀’, 쉼프니게이는 “질식시키다. 숨 막히게 하다”란 뜻이다. 필요이상의 돈 욕심, 재물의 욕심, 부해지려는 욕망이 영혼의 양식과 청결한 공기와 거룩한 햇빛을 공급받아야 하는 우리의 영적 숨통을 졸라 질식시킨다는 말이다.

 

톨스토이가 쓴 ‘사람에게 얼마의 땅이 필요한가?’란 단편소설이 있다. 주인공 빠흠은 굉장한 욕심쟁이로 그는 탐욕 때문에 자신을 망쳤다. 어떤 부자가 땅을 몹시 탐내는 빠욤의 욕심을 보고 “여기에 말뚝을 박아 두겠다. 내일 해가 뜰 때, 네가 이 지점을 떠나서 해가 질 때까지 이곳에 돌아오면 네가 밟고 돌아 온 땅 모두를 네게 주겠다‘고 제안했다.

 

빠흠은 신이 나서 밤잠도 설치고 새벽 일찍이 나가 말뚝 옆에 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해가 뜨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땅이 좋아 보여 욕심이 생긴 빠욤은 점심도 굶은 채 달리고 또 달렸다. 시간이 다 돼서 그만 돌아가야 하는데도 돌아갈 생각을 않는다. 이제 해가 질 무렵이 됐다. 그제야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겨우 해가 지기 전에 출발지점인 말뚝 있는 곳까지 돌아왔으나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피를 토하고 죽고 말았다.

 

빠욤은 그 넓은 땅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너무 욕심을 부리다 그 탐심 때문에 쓰러지고 끝내는 자기가 누울 자리만 얻어 거기에 묻히고 말았다. ‘사람에게 얼마의 땅이 필요한가?’ 빠흠이 그 넓은 땅을 분수에 넘치게 더 많이 가지려고 욕심을 내다가 결국은 자기 누울 땅밖에 얻지 못한 이야기는 오늘 내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부(富)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 9-10)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자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 5) 가시떨기 속의 씨앗이 열매를 맺지 못하듯 재리와 재리의 욕심에서는 말씀이 열매 맺지 못함을 깨닫고 마귀의 전술전략을 물리치고 말씀이 30배 60배 100배로 열매 맺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5. 일락

 

마귀 전략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들 마음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서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가시떨기와 가시덩굴은 일락(一樂, Pleasures of this world; “이 세상의 향락과 쾌락과 즐거움”)이다. 이러한 일시적이고 표면적이며 충동적인 육체의 쾌락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서 자라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를 잘 드리고, 성경공부나 부흥회에 참석해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 해도 그 자체가 죄악이 되는 술 취하는 것이나 음란한 행위나 폭력에 이끌린다면 그것들은 우리 영혼을 침식하여 우리가 은혜로 받은 말씀이 자라서 열매를 맺을 수 없게 하고, 그 자체는 죄악이 아니더라도 심하게 빠져들면 죄가 될 수 있는 유흥이나 노름이나 스포츠도 하나님 말씀이 내 안에서 열매 맺는 것을 훼방한다.

 

그래서 마귀는 현대 기독교인들을 각종 Sports와 굉장한 볼거리, 구경거리의 영화인 Screen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Sex로 유혹해 하나님 말씀이 열매를 맺지 못하게 훼방하는 것이다. 건전한 Sports, 건전한 영화, 부부 사이의 건전한 Sex는 우리가 누리고 즐길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막고 멀리할 정도로 지나치다면 그것은 유혹이며 죄며 마귀사탄의 가시넝쿨이다. 가시넝쿨을 걷어내고 마음 밭을 옥토로 만들어 30배 60배 100배 열매를 맺는 은혜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어느 날 대장 마귀가 고위급 부하들을 모아놓고 전략회의를 했다. 마귀는 개회사와 함께 목에 핏대를 세워 화를 내며 “어째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가? 너희들이 어떻게 했기에 예수쟁이가 점점 더 많아지고 교회들이 부흥하는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교회 가는 사람들이 적어지게 되겠는가?”며 부하들을 야단 쳤다. 그날의 회의 주제는 교회부흥을 막는 방법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장관급 권세자 마귀두목 하나가 말한다. “대장님, 이제보다 더 무서운 방법으로 예수 믿는 놈들을 박해하면 어떨까요? 놈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감옥에 가두고 고통을 가하면 그들이 믿음을 포기할 것입니다” 그러자 대장 마귀는 “2천 년 동안 그 방법을 썼지 않았느냐? 정신병자 네로를 써 보았고 아돌프 히틀러, 마오쩌둥, 김일성이도 써 봤지만 그 전술은 실패했다. 그 놈들은 핍박을 받으면 더 믿음이 강해졌고 교회는 오히려 부흥됐으니 그 방법은 최선의 전략이 아니다”

 

두 번째 마귀두목이 건의 한다. “대장 각하, 무신론 사상을 마약처럼 투입하면 어떨까요? 대학교수들과 지성인, 과학자, 학교 선생들을 총동원해 모든 학교에서 무신론을 가르치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대장마귀가 대답한다. “그 전략도 실패한 것을 모르느냐? 우리가 수많은 천재들을 내보내 무신론을 발표해 처음엔 성공하는 것 같았지만 그 병신 같은 놈들이 자살해 죽고 미쳐 죽고 병들어 죽으면서 ‘무신론이 잘못된 것이라’ 떠들고 죽는 바람에 우리 전략이 실패해 버렸다”

 

그러자 세 번째 마귀두목이 “대장, 그러지 말고, 뭐니 뭐니 해도 Money가 최고 아닙니까? 돈이 최고니까 예수 믿는 놈들 사업을 모두 망하게 해 주일날도 일해서 돈 벌게 하면 어떨까요? 그러다가 일에 지쳐서 병이 들면 믿음을 버릴 것입니다” 그러자 대장마귀가 “There is something in it(그 말에 일리가 있다) 그러나 저 옛날 욥이란 놈이 그 시험을 이긴 다음 이젠 예수쟁이들도 약아져서 사업이 망하면 망할수록, 병이 들면 들수록 ‘자기들 신앙이 떨어져서 그렇다고 철야기도를 하고, 말씀대로 살지 않아 징계 받은 것이라고 회개하며 작정기도에 금식기도까지 하면서 매달리니’ 이젠 그 전략도 성공할 수 없다”며 한숨을 쉰다.

 

그러자 이제까지 듣고만 있던 네 번째 마귀두목이, “대장각하, 가짜 물건을 진짜보다 더 잘 만들면 진짜 물건을 이길 수 있듯이 기독교 안에 가짜들을 많이 투입시키면 어떨까요? 그럴듯한 이단들을 넣어서 미혹하면 우리 전략이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대장마귀가 “그 전략은 아직도 많은 성공을 거두고 있으니 더 발전시켜라. 될 수 있는 대로 신학교를 많이 가게 해서 가짜가 많이 나오게 하고, 가짜신비체험을 하게 해 신비주의자가 나오게 하며, 되도록이면 엉터리 신학교 많이 세워서 성경 모르는 목사 많이 나오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런 다음, 대장마귀는 “너희들의 우맹전략, 핍박전략, 무신론 전략, 사업실패와 질병전략, 이단전략을 적시적지(適時適地)에 아량 것 사용하되 이제 내가 지시하는 특별 전략은 언제 어디서라도 모두 사용하라. 그것은 Screen, Sport, Sex의 Triple S 전략으로 이것만이 기독교를 박멸하고 이길 수 있는 길이다.

 

첫째, Screen 전략으로, 스릴 넘치고 가슴 조이며 현대인들의 마음을 시원케 할 폭력영화, 공포영화, 액션영화, 3D영화를 더 많이 만들게 하라. TV. 인터넷, 비디오, 오디오, 전자오락을 총동원하라. 그리고 간간이 텔레비전 예배도 방영하라. 그래서 텔레비전 예배와 재미있는 영화 때문에 교회 가는 자들이 적어지게 하라.

 

그다음, Sport를 21세기 마지막 우리의 전략무기로 만들어라. 가능한 한 재미있는 스포츠를 많이 개발해 주일 날 방영케 하고, 방송국마다 주일 날 축구 농구 야구 골프의 빅게임을 방영케 하며, TV를 켜기만 하면 스포츠가 쏟아져 나오게 하고, 라디오만 틀어도 스포츠 중계가 나오게 하며, 봄여름 가을겨울, 산과 들과 바다 어디서도 즐길 수 있는 운동을 개발하라. 스포츠로 교회부흥을 막아라.

마지막으로 Sex 전략을 성공시켜라. 벗는 영화를 많이 만들어 영화산업이 돈을 벌게 하여 서로 경쟁케 하라. 성 개방을 충동하고 도덕심을 무디게 하라. 온갖 불륜을 충동질하고 동성연애를 부채질하며 모든 근친상간까지도 미화시켜라. 신문도 소설도 인터넷도 외설적인 글로 가득 채워라. 온 세상을 Free Sex로 가득 차게 하고, 부정한 성의 물결로 출렁이게 하라. Screen과 Sport와 Sex로 기독교를 잡아라. 이 전략만이 성공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마귀들이 총동원해 주의 종들과 성도들을 미혹하는 Triple S 시대이다.

이제 우리는 사단의 말씀 훼방 5대전략을 알았다. 마귀는 어떻게 하든, 수단방법을 다 동원해서 설교 듣지 못하게 하고, 말씀 듣지 못하게, 배우지 못하게, 말씀의 열매 맺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을 듣고 30배 60배 100배로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 길 만이 우리가 영적으로 사는 길이고 이기는 길이며 영생하는 길이다.

 

한문에 쌀 미(米)자는 열 십(十)자에 여덟 팔(八)자가 아래와 위와 양옆으로 있는 글자로 볍씨 하나가 80개에서 160개의 열매를 맺는 것이란 뜻이다. 볍씨 하나가 그대로 있을 땐 보잘 것 없는 한 알의 벼지만 그것이 논에서 벼이삭이 돼 추수할 때는 80배에서 160배로 늘어난다.

 

그렇다. 성경이 성경으로 있을 땐 다른 책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책이다. 그러나 주의 종 목사님이 기도 중에 말씀을 하나님께 받아 성실하게 준비하여 설교할 때는 이미 그것은 세상의 책이 아니고 사람의 말도 아니다. 좌우에 날선 검보다 더 예리하여 사람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며 마음과 뜻까지 감찰하여 치료하고 수술하는 살아있고 운동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히 4: 12) 이 말씀으로 당신의 육체와 골수와 마음과 영혼이 수술 받고 고침을 받으며 치료받는 기적과 영혼이 잘 되고 생활범사가 잘 되며 건강한 축복의 역사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김엘리야 목사(워싱톤주기도문교회 담임)

www.czoneus.net
info@czoneus.net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트위터로 보내기페이스북으로 보내기미투데이로 보내기 뉴스스크랩하기
김엘리야칼럼섹션 목록으로
 

이름 비밀번호
 43369358  입력
댓글콘선택 : 댓글 작성시 댓글콘을 클릭하시면 내용에 추가됩니다.
[1]
뉴스홈 > 오피니언 > 칼럼 > 김엘리야칼럼
다음기사 : [칼럼/김엘리야]에스겔, 하나님의 파수꾼 (2011-12-29 06:00:09)
이전기사 : [칼럼/김엘리야]잠언을 읽으면 건강이 보인다 (2011-12-29 04:59:50)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회사소개 보도지침 저작권 규약 이용약관 사업제휴 직원채용 광고후원 기사제보 연락처 don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