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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9일 05시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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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김연규]토마토(Tomato)와 크리스천
1614년(조선시대 광해군 6년)에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이 편찬한 한국 최초의 백과사전 지봉유설(芝峰類說)은 우리나라의 역사 기록 중에 외국 문물에 대해서 언급하는 최초의 서적이다. 여기에서는 조선의 일은 물론 중국, 일본, 안남(安南;베트남), 유구(流球;오키나와), 섬라(暹羅;타이), 자바(爪哇), 말라카(滿刺加) 등 남양제국과 멀리 프랑크(佛狼機), 잉글리시(永結利) 같은 유럽의 일까지도 소개하여 한민족의 인생관(人生觀)과 세계관(世界觀)을 새롭게 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이렇게 지봉유설에 기록된 것 중에 16세기에 이탈리아에서부터 전파되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등장하는 과일이 있었으니 ‘남만시(南蠻枾)’였다. 이 과일은 귀화식물로 1614년 지봉유설이 기록되기 전에 이미 우리나라에 들어와 재배되고 있었다고 실록(實錄)들은 전한다.

남만시(南蠻枾)는 과연 어떠한 식물일까? 바로 우리가 애호하는 과일‘토마토(Tomato)’다. 일년감이라고 하며 남아메리카 서부 고원지대가 원산지다. 식물이지만 열매를 식용하고 민간에서는 고혈압이나 야맹증, 또는 당뇨병에 약으로 쓰기도 한다.

요즈음은 토마토에 들어있는 천연색소 피토케미칼(Phytochemical)의 리코펜(Lycopene)이라는 붉은색을 띄게 만드는 성분이 항암 작용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하여 일반인들도 선호하고 있다. 특히 병원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항암제의 성분보다도 더 많은 작용을 한다고 밝혀졌고, 토마토에 들어있는 리코펜 성분과 여기에 항암의 도움을 주고 있는 비타민C와 비타민A가 풍부하기 때문에 암치료를 하는 환자들에게 큰 호응을 받고 있으며, 남자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전립선암의 예방과 함께 항암효과 또한 아주 뛰어나다고 한다.

또한 토마토는 수박처럼 수분이 많은 과일로 우리 몸의 수분을 조절해주고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방광염에도 큰 효과를 보게 하는 과일이다. 토마토에는 리코펜(Lycopene)과 함께 루틴(rutin)이라는 성분도 같이 포함하고 있어서 사람의 모세혈관을 강화시켜주고 높은 혈압을 낮춰주는 역할을 하여 토마토를 하루에 1개 이상 먹는 것만으로도 혈압이 높은 사람은 혈압을 낮출 수 있고, 암을 예방 한다고 한다.(자료출처; 백과사전)

어렸을 적 기억에 토마토는 맛이 없는 과일이라 잘 먹지 않았었다. 다만 기억하기는 앞으로 해도 토마토, 뒤로 해도 토마토, 글자가 변하지 않는 다는 것만 생각이 난다. 성인이 되어서도 토마토가 맛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 토마토가 사람에게 좋다는 말이 없었다면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는 과일로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재배가 쉽고 일년 감이라고 하듯이 짧은 기간 동안에 다량의 수확을 할 수 있고, 쉽게 아무나 먹을 수 있는 과일이기에 사람에게 각광받고 있는 것이 토마토다.

위에 서술한 것과 같이 토마토는 사람에게 유익을 준다. 그리고 겉과 속이 같은 색깔이다. 물론 이 색깔이 사람에게 꼭 필요한 식물성 성분으로 색을 붉게 하는 리코펜(Lycopene)이다. 이렇게 사람이 살아가다가 병이 들었을 때 가까운 곳에 있는 식물성 성분으로 치료할 수 있고, 병이 생기기 전에 예방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사람은 하루에 수백, 수천, 때에 따라서는 수 만개의 단어를 사용하여 말을 한다. 그 말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말만 하면 사람을 죽인다. 어떤 사람은 말만하면 사람을 살린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오직 한 가지 일 것이다. 마음의 생각이다. 사람을 살리기 위한 말을 하는가? 아니면 사람을 죽이기 위한 말을 하는가? 이미 말을 하기 전에 마음속에 있는 것이 상대방을 죽이기로 작정했다면 죽이는 말을 할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을 살리기 위한 말을 하기로 작정했다면 살리는 말을 할 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이미 죽이고, 살리고자 하는 대로 말은 따라 나간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만 허락하신 말, 즉 하늘의 언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소중한 말을 농담으로 흘려보낸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한국 속담이 있다.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분명 살리기 위한 좋은 말은 천사가 듣고, 죽이기 위한 나쁜 말은 사탄이 듣는다고 단언(斷言)할 수 있다.

이미 우리의 마음속에 결정한 그 순간, 말을 하기 전에 벌써 사탄이 좋아하는 말을 하거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별종(別種)을 보게 된다. 겉과 속이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마음속에 미움이 있으면서 사랑한다고 할 수 없다. 마음속에 사랑이 있으면서 미워한다고 할 수 없다.

사탄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만이 겉과 속이 다른 말을 한다. 속으로는 죽이려고 하며 말로는 살리겠다고 한다. 속으로는 살리려고 하며 말로는 죽이겠다고 한다. 이러한 사람은 분명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요. 사탄이 좋아하는 사람이다.

상대방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긍정을 먼저 보는 사람이 있고, 부정을 먼저 보는 사람이 있다. 날 때부터 타고난 사람처럼 부정적인 면만을 보려 한다. 절대로 긍정적인 면을 보려 하지 않는다. 그들 또한 사탄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다면 모든 것을 사랑하고 용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예수님께서…….

토마토는 속에 있는 붉은 색이 겉까지 나와 표면을 감싸고 있다. 이 붉은 색을 띄게 하는 식물성 성분이 사람에게 유익을 준다는 것이다. 토마토는 분명 겉과 속이 같다. 분명 사람도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준다.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사람에게 도전을 주고, 사람에게 꿈을 준다. 이런 사람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다.

자신을 속이는 일은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다. 마음속에 거짓이 있으면 말로써 사랑을 말할 자격이 없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 성령의 사람이라면 속사람부터 거듭나야 한다. 겉으로만 거듭났다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먹보다도 검은 죄, 주홍같이 붉은 죄를 십자가의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 받아 흰 눈보다도 더 흰 정결(淨潔)하고 성결(聖潔)하게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정결하고 성결한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가 모두 나타나야 한다. 아홉 가지 중에 어느 것 한 가지라도 나타나지 않으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아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언제나 사람을 살리려 한다. 절대로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다. 언제나 사람을 세우는 말을 한다.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느 누가 하나님 앞에서 죄 없이, 실수 없이, 흠 없이, 깨끗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지만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 주셔서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그로 인해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특권(特權)을 부여받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고, 백 데나리온의 빚 진자를 용서하지 못하는가?

이유는 하나다. 속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속사람이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혹 자신이 성령으로 거듭난 확신이 있다고 한다면 지금 현재 자신의 마음을 사탄에게 빼앗겨 사탄이 지배하고 있다고 본다. 자신의 자의지(스스로의 선택)로 회개하고 사탄을 마음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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