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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9일 04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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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김연규]낭중지추(囊中之錐)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BC403~BC221) 말엽 전국을 칠웅(한, 위, 조, 제, 연, 진, 초)이 호령하던 때에 삼진(三晋; 한, 위, 조)이라 하는 조(趙)나라는 서쪽에 위치한 진(秦)나라의 공격을 받게 된다. 이 때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동생이자 재상(宰相)인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을 남쪽의 거대 영토를 다스리는 강대국(强大國) 초(楚)나라에 사자(使者)로 보내 구원군(救援軍)을 청하기로 했다.

20명의 수행원이 필요한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은 자신의 식객(食客) 3천여 명 중에서 19명을 쉽게 뽑았으나 나머지 한 사람을 뽑지 못해 고심(苦心)하고 있었다. 이 때 고민하고 있는 평원군 조승(趙勝) 앞에 모수(毛遂)라는 식객이 나섰다.

“나리!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평원군 조승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내 집에 온지 얼마나 되었는가?”
“이제 3년이 됩니다.”

대답하는 모수에게 평원군 조승은
“그런가? 그런데 왜 내 집에 온지 3년이 지났는데 내가 당신을 몰랐단 말인가?”
“그건 나리께서 지금까지 저를 단 한 번도 찾아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답하는 모수에게 평원군은 다시금 이렇게 말을 한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있어도 마치 주머니 속의 송곳 끝과 같이 남의 눈에 쉽게 드러나기 마련인데…….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당신의 이름이 드러난 적이 없지 않소?”

모수는 다음과 같이 답을 한다.
“나리께서는 단 한 번도 저를 주머니 속에 넣어 주지 않았지 않습니까?”
“이번에 저를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시기만 한다면 송곳 끝뿐만 아니라 자루까지 드러내 보이겠습니다.”

모수(毛遂)의 재치 있는 답변에 만족한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은 그를 수행원으로 뽑았다.

이후 초나라에 도착한 평원군은 마지막으로 합류한 모수의 활약으로 국빈(國賓) 대접을 받으면서, 원하는 구원군도 쉽게 얻을 수 있었다고 사기(史記)의 평원군전(平原君傳)에서 전한다.

모수는 위기에 처한 평원군을 위해 자신이 직접 초나라 왕의 옷소매를 잡을 정도로 목숨을 걸고 행동했고, 모수로 인해 초나라 왕이 평원군의 악기 연주의 답례로 북을 쳤다는 기록을 현장에서 남기게 되고, 당시 모수의 목숨 걸고 행동한 서슬 퍼런 충정(忠情)에 감동한 초나라 왕은 기꺼이 구원군을 보내게 되고, 초나라에서 보내준 구원군과 함께 진나라를 물리치게 된다.

승전(勝戰)하고 돌아오는 길에 평원군 조승은 모수를 불러 “그대의 송곳이 주머니를 나와 하늘을 울렸구려!”라고 농을 하며 이때부터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당시의 뜻을 포함해 전해지게 되었다.

평원군과 모수의 대화가운데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은 언젠가 옷 밖으로 드러난다는 말을 뜻한 낭중지추(囊中之錐)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숨어있어도 저절로 알려진다는 말로 쓰이기도 하며, 숨겨진 재능(才能) 또는 습관(習慣)이나, 감추고 싶은 악습(惡習)과 악행(惡行)도 나중에는 저절로 드러난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예수그리스도로 인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는 마음속에 이미 그리스도가 좌정(坐定)하고 계신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렀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 마음속에 좌정하신 예수그리스도가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야 온전한 성도(聖徒)요 참된 크리스천이다. 이것이 행함 있는 믿음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다.

어둠을 보면 그리스도의 참빛이 저절로 발하여야 하고, 부패해 가는 것을 보면 그 자리에 그리스도로 인한 그리스도의 소금이 되어 부패를 방지해야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곳이라면 장소와 시간을 구분하지 않고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자신을 썩혀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부여 해 주신 사명이요.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유이며,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살겠노라 다짐하는 헌신자(獻身者)들의 최후인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땅속에서 썩어져야 하는 밀알이 되기보다는 나무위의 결과로 알 수 있는 열매가 되고 싶어 하고, 소금이 되어 녹아져서 짠맛을 내기 보다는 소금자체로 남아 존귀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하고, 누룩이 되어 자신을 산화시켜 술을 지어야 하는데도 스스로 없어지기 보다는 끝까지 남아 자신을 드러내기를 원하는 모습으로 빛이 되었던 어둠이 되었던 상관하지 않고 살아가는 자칭 성도라 하며 크리스천이라 하는 이들을 많이 보게 된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라도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망각(忘却)하지 말고 마음속에 있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여야 할 것이다.

인터넷이 보편화 되어있고, 미디어 매체가 늘 우리 곁에 있어 우리의 환경과 삶을 지배하는 이때에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과거의 구습이나 악성(惡性) 중 어느 것 하나라도 밖으로 표출된다면 인터넷에 필명을 사용하여 악성댓글로 선한 사람을 죽이거나 또는 삶을 함께 하는 옆에 있는 사람을 주머니 속의 송곳이 되어 찌르게 될 것이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따르면 회개하게 되고, 그로 인해 과거의 어느 것이라도 제하여 질 것이요. 스스로의 선택으로 인한 세상과 어둠과 사탄의 도움을 청한다면 과거에 없어졌던 악의 어떤 모양이라도 송곳이 되어 밖으로 드러날 것이다. 크리스천이라면 주머니 속의 송곳으로 비유되는 마음은 언제나 예수그리스도여야 할 것이다.

자칭 크리스천이라 하면서도 사탄의 사람이라면 악(惡)을 낼 것이요. 아무리 어려움이 있더라도 거듭난 성령의 사람이라면 고난가운데에서라도 성령의 열매를 낼 것이다. 그대는 주머니에 있는 송곳을 사용하여 누가 보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악을 낼 것인가? 스스로 성령의 열매를 낼 것인가?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19-22)


● 뉴욕비전교회 담임목사
http://TheVisionChurch.cyworld.com


www.czoneus.net
info@czoneu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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