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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9일 04시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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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참빛칼럼]하나님의 사정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9-12)”

근자에 한 선교단체의 대표가 쓴 책 내용중에 이슈가 된 하나님의 사정이란 문구가 계속 눈에 띄어 머리에 남게되었다.  하나님의 사정(the thoughts of God)”이란  문구는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말씀으로 평소 나 자신 귀하게 여기며 애독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사정(私情)’이란 어떤 개인적인 내밀한 형편을 뜻하기에 이 단어가 나오는 위의 성경귀절을 읽을때마다 무언가를 곰곰 생각하게 되곤 하였다.  본문의 말씀을 종합해보면, ‘하나님의 사정을 가장 잘 이해하는 존재는 성령 하나님 한분 밖에 없는데, 하나님은 자녀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성령의 가르치심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신령한 것을 분별하게 하신다는 의미이다.   또 신령한 자의 영혼을 주장하시는 하나님만이 판단의 주권자가 되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인간과 사랑의 교제를 하시기 위해서였다.  지으신 인간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하나님과 영원한 아름다운 천국의 교제를 누리는 것을 보시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요 찬송자체가 될 터였다.

그런데 사탄의 개입으로 완전한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자발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게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게 되었다.  하나님께 이처럼 엄청난 비극은 없는 것이다!  깨닫지 못하는 인간보다 모든것을 아시는 하나님 자신이셨기에 누구보다도…!  이것이 하나님의 사정이 아니겠는가?

(세상에서도 식자우환(識字憂患)이란 말이 있듯이 많이 알수록 번민과 슬픔이 더하는 법인데 온전히 사랑하시고 다 아시고 미리 보시는 하나님으로서는 절대적인 고통을 맛보실수 밖에 없으셨을것이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관심은 인간구원으로 향하게 되시는데 이를 위해선 죄 곧 타락의 원인인 사탄마귀의 존재에 대해 더욱 비상한 관심으로 주목하시지 않을수 없게된 것이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인간과 사탄과의 관계에 전격 신적의지로 개입하시게 된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3:15)”

사랑하는 자녀를 구원키위해 사탄마귀의 영향권으로부터 인간을 자유케해야하는 특수임무가 필요해지신 것이다.  이제는 당신의 자녀를 하나님과 밀어를 나누는 아늑한 침실에서 이끌어내어 전쟁터로 보내시기로 작정하신것이다(침실은 아직도 우리에게 여전히 필요하다).

이윽고 하나님이 예정하신 역사의 한 정점에서 하나님께서 성자의 몸으로 인류를 구원키위해 이 세상으로 오셔서 희생적인 사랑으로 구원사역을 이루셨다. 주님이 오신일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인데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요일 3:8) 말씀하고 있으며, 이는 사실 인간의 범죄 직후부터 구원을 계획하신 창조주에 의해 벌써 예언된 사실이기도하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것이요(He will crush your head)(3:15)”

주님의 부활로 인해 사탄의 머리는 이미 으깨어졌으며 사탄마귀는 거의 잘려나간 머리를 부여잡고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는 때에 우리가 살고있다. 세상의 전쟁에서도 승리로 이끈D-day와 실제적인 승리를 획득한 V-day사이의 희생자 수가 더 오랜기간인 앞의 전투기간보다 오히려 더 많은것처럼 사탄마귀가 패잔병으로서 최후의 기승을 부리고 있는 때에 살고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 구원받은 순간부터 우리는 사탄과 세상과 육신의 적이 되어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적 차원에서의 영적전쟁이 불가피한데 문제는 이것을 의식하지 못하게하는 사탄의 최대의 전략에 말려드는 일이다.

사탄은 합리적인 지성주의와 경험주의의 사조로 우리의 생각의 영역에 침투하여 교회사회와 신학의 영역에 두루 파고들며 기만전술을 능숙하게 구사하므로 신자는 진리대결(truth encounter)로 맞서야한다.  주님께서 광야 40일 금식중 말씀으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신 방법이다.

한편 출애굽이나 사도행전적 복음전파의 예에서 보듯이 세상 영으로 응집된 개인이나 집단의  단위에서는 진리대결이외에도 능력대결(power encounter)이 요구되어진다.  특히 복음전파를 행하는 현장에서는 사탄마귀의 교활한 공격의 강도가 그리 만만치 않기때문에 능력선교인 축사사역이 꼭 병행되어야 한다.  주님도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하실때 능력선교인 치유와 축사사역을 병행하셨다. 

이와같이 사람들을 죄의 유혹으로부터 건지고 죄인들을 어둠에서 구원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고 양육하는 일과 사탄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이 서로 선후를 따질만한 별개의 일이 아니라 실상은 하나의 일인것이다. 

진리와 경험이 서로 상존하는 영적세계에서 우리가 영적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바른 신학과 아울러 사랑과 영분별이 합해져야 될것이다. 이것에 흠이 생기면 아군끼리 싸우게되는 가장 어리석은 패배의 잔을 마시기 쉽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셔서 인류를 구원하신 여정은 사탄마귀를 멸하기 위한 목적이 있으셨지만 방법은 섬기는 사랑의 희생을 통해 이루셨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시는 분이시기에 사랑하는 아들마저 아까워하지 않으신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와 문화권에서 성장한 우리들에게는 아버지의 사랑의 결핍으로 인한 고아의식이 있다고 미국의 목사님들이 가슴아파하시며 말씀하시는 것을 여러번 들은적이있다.  그러기에 창세기를 해석할때 창조주 앞에 사람()을 선듯 주인공으로 쎈터에 놓지못하고 성자나 사탄등 다른 이유를 쎈터에 두고는 사람()을 부차적이거나 주변적 존재로 슬그머니 밀어놓는 해석들이 나오는지도 모른다.     

이에 어쩌면 개인에 따라서는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이유가 별로 실감안나는 추상적인 무조건적인 사랑에 기반한것보다는 모종의 조건적이고 거래적인 내용에 기반을 두신것이 더 설득력있고 또 신앙인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강한 추진력이 되는 원천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이런 타입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정서적인 면보다는 의지적인 면이 강하게 작용하기에 자기관리에 강하고 목적지향적이며 책임완수에 큰 비중을 두는 결과로 나타날것이다.  또한 독립적이며 현실적이고 보통사람들이 못하는 일을 할수있는 능력이 있으며 자존심이 강한 성격의 소유자일 가능성도 많이있다.

한편 모태신앙인 일부 신앙리더들에게서 오히려 영적전쟁에대한 개념이 없이 기회주의적이고 해이한 태도로 바람직하지못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경우도 발견하게 된다.  이 또한 드러나지않게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성을 안고있다.

기실 실제 영적 전쟁터인 선교현장에서는 투철한 사명과 동기로 무장한 신앙리더들의 수고와 공헌이 무척 클것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어떤 리더들에겐 감정을 자극하는 비난보다는 저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면서 이해와 사랑과 긴장완화의 여건제공이 필요하다고본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수있는 일은 남들의 은사와 사명감을 존중하면서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서로를 배우며 보완하며 함께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나가는 지혜일것이다.     

           


박현숙 목사(프린스톤참빛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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