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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9일 04시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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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김엘리야]새벽을 깨운 자의 축복
 

새벽을 깨운 자의 축복 (시 108: 1-13)

 

요즘 젊은 부부들 사이에 유행하는 깜짝 이벤트 하나를 소개한다. 그것은 대부분 첫째 아이를 임신한 중상층부인들이 즐기는 행사로 의사가 태아성별이 가능할 즈음 태아사진을 촬영한 후 임산부 본인에게 직접 성별을 알려주지 않고 임신부부가 가까운 양가부모나 친척친구들을 초청해 즐거운 파티를 하면서 파티 마지막 이벤트로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태아사진을 보여주고 그 자리에서 의사가 태아성별을 알려주는 행사이다. 두 주전 New Jersey에서 이 이벤트로 첫째 딸이 앞으로 태어날 외손녀 소식을 알고 전해주어서 우리 부부를 기쁘게 했는데 태아성별구분은 벌써부터 있던 일이지만 이것이 깜짝 파티 이벤트 문화로까지 자리 잡아가는 것을 보면서 급변하는 오늘 시대와 젊은 세대의 단면을 느낄 수 있었다.

 

뱃속 태아의 남자 여자를 구별하는 것이 신세대이벤트가 됐듯 요즘 사람들이 좋은 아내와 나쁜 아내를 구별하는 해학유머 몇 가지를 소개한다. ① 좋은 아내: 남편이 죽으면 그 이상 슬픈 일이 없다. 나쁜 아내: 남편이 죽으면 기왕 죽을 거 일찍 죽지 않고 재혼도 못하게 늦게 죽었다고 화를 낸다. ② 좋은 아내: 친구들이 자기 남편들 흉을 볼 때 끼지 않는다. 나쁜 아내: 자기 남편을 제일 먼저 도마에 올려놓아 난도질 한다. ③ 좋은 아내: 가끔 남편을 실망시키거나 나쁜 아내가 될 수 있다. 사람이니까. 나쁜 아내: 가끔 좋은 아내가 된다는 건 불가능하다. 사람이 아니니까. ④ 좋은 아내: 작은 선물에도 기뻐한다. 나쁜 아내: 뭘 사줘도 잘못 샀다고 구박한다. ⑤ 좋은 아내: 남편의 칭찬이나 위로 한 마디에 결혼을 잘한 행복한 여자라고 생각하며 기뻐한다. 나쁜 아내: 남편의 칭찬이나 위로를 자기를 속이는 생 쇼(Live show) 연극으로 생각한다. 지금 당신은 좋은 아내인가 나쁜 아내인가? 남편들은 행복한 남편인가 불행한 남편인가? 좋은 아내 나쁜 아내, 행복한 남편 불행한 남편은 상대편이 아니라 자신이 변할 때만 가능한 것이니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바꾸려 하지 말고 자신을 바꾸고 변화시켜 좋은 부부, 행복한 부부가 되기를 축원한다.

 

새벽을 깨운 자의 축복

 

바벨론 포로생활 이후에 이름을 알 수 없는 무명의 사가(史家)가 다윗의 초기 저작들을 합쳐서 한 편의 시로 구성하여 “승리에 대한 확신”을 노래한 본문, 시편 108편은 13절로 된 비교적 짧은 시이지만 ① 1-3절은 하나님에 대한 찬양 ② 4-6절은 하나님의 위엄 ③ 7-11절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 ④ 12-13절은 하나님의 자비를 찬양한 노래 시(詩)이다.

 

시편 108편의 배경은 70년 만에 바벨론 포로에서 언약의 땅으로 돌아왔지만 이스라엘의 현실은 이방인의 영향력에 의해 조정되고 있는 사면초가와 백척간두의 위기와 극난의 상황이었다. 그러한 위태하고 힘든 현실상황에서 사가는 옛날 다윗의 시를 통하여 새로운 희망을 소유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본시를 노래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본시의 1-5절은 시 57: 7-11절의 내용과 같고 6-13절은 시 60: 5-12절의 내용과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 108편은 시 57: 7-11과 60: 5-12절을 발췌하여 합쳐서 만든 혼합 시(混合 詩)이다.

 

잘 아는 대로 시 57편은 다윗이 사울의 추격을 피해 다니던 긴박한 위험상황에서 지은 시(詩)다. 다윗이 엔게디에 숨어 있다는 정탐꾼의 밀고를 받은 사울은 삼천의 정예군을 데리고 다윗을 추격한다. 다윗은 경황 중에 엔게디에 있는 많은 동굴 중 에 하나로 숨어 들어갔는데 불행하게도 사울과 군사들이 그 많은 동굴 중에서 하필 다윗이 숨은 동굴로 들어왔다. 동굴 밖에서 안은 볼 수 없지만 안에서 밖은 볼 수 있었는데 동굴 속 바위 뒤에 숨어있던 그때의 다윗은 일촉즉발의 아슬아슬한 위기였고 우물 안 개구리, 독 안에 든 쥐의 신세였다, 이제 다윗이 잡히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죽음의 사자가 다가오던 그때 다윗의 초조와 불안, 극한 공포는 상상불가의 일이었다. 만일 거기서 다윗이 발각돼 잡히면, 즉시 처형되거나 아니면 수도 기브아로 압송돼 백성들 앞에서 수모를 당한 뒤 공개처형을 당하게 되는 절체절명의 극한상황이었다. 그런 위기에서 부르짖어 기도한 것이 시 57: 1-5절의 기도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던 다윗의 기도는 응답됐다. 시원한 동굴에 들어온 사울과 그의 군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몰려오는 피곤과 폭설처럼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둘씩 쓰러져 코를 골며 잠을 자기 시작한다. 잠시 후 동굴 안은 지상최대의 코고는 소리 교향악 Symphony로 진동한다. 수백 마리 개구리 소리도 요란하고 수천 마리 매미소리도 요란한데 3,000명이 동시에 코를 고는 장면은 가관이었을 것이다. 다윗은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통나무처럼 쓰러진 채 깊은 잠에 취해 ‘코골이 교향악’(Symphony)을 지휘하고 있는 사울을 피해 나오면서 사울의 옷자락을 잘라 가지고 그곳을 떠난다.

 

그리고 구사일생으로 죽음의 계곡을 탈출한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후에도 자기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라는 확신에 근거해 온전한 감사와 찬송의 삶을 살겠다는 결심을 한다. 물론 아직까지 사울의 추격이 끝난 것은 아니고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듭되는 시련과 그때마다 반복되는 하나님의 특별보호로 자신을 강하게 만드시고, 더 큰 그릇으로 연단하시는 오묘한 섭리를 보면서 다윗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찬송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윗의 찬양은 의식적이거나 가식적으로 부르는 찬송과는 전혀 다른 마음에서 준비된 찬양이었고 열린 마음으로 부르는 찬양이었다. 그날 하나님을 찬양하려는 다윗의 열정은 대단했다.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은 간절함 때문에, 해가 뜰 때까지 잠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아직도 만물이 미쳐 깨어나지 않은 미명, 세상이 아직도 잠들고 있는 고요한 새벽에 “내가 새벽을 깨우리라”를 외치며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수금과 비파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리고 다윗은 자기의 찬양과 감사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이스라엘에게 뿐 아니라 세상 만민에게까지 전하고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가 온 천하에 증거가 되며 하나님의 영광이 저 광활하게 펼쳐진 우주까지 밝히 드러나기를 소원했던 것이다. 이것이 시 57: 6-11의 내용이다. 그렇다면 오늘 당신과 나의 새벽은 어떠하며 우리의 찬양은 어떤가? 과연 마음에 작정된 찬양, 열린 마음에서 부르는 찬양, 새벽을 깨우는 찬양인가?

 

탈무드엔 “내가 새벽을 깨우리라”란 말씀 해석을 다윗이 밤에 불어오는 북풍에 의해서 침상 위에 걸어놓은 수금이 저절로 음률소리를 낼 때, 잠에서 일어나 새벽이 되기까지 큰 소리로 율법을 낭독한 것이라 해석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내가 새벽을 깨우리라”(I myself will awake early! ; I will awaken the dawn!)의 8절 말씀 그대로 매일 새벽, 만물이 고요히 잠든 매일새벽에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다윗의 결단고백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 다윗은 확정되고 준비된 마음에서 하나님을 찬양했다. 다윗은 해가 뜨는 아침까지, 사람 소리와 만물의 소음들로 시끄러워지는 아침이 되기까지 잠자리에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새벽을 놓칠 수도, 새벽이 자기 곁을 지나가는 것도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다윗처럼 새벽을 깨우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1. 새벽을 깨우는 자의 축복

 

시 60: 5-12절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발췌한 본문 시 108: 6-13절 말씀은 ‘새벽을 깨우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약속하신 말씀이다.

 

먼저 “주의 사랑하시는 자를 위하여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의 6절은 에돔 원정에서 적군들에게 예상치 못한 일격을 받아 군사기능이 마비 될 정도로 많은 군사를 잃고 패배하므로(왕상 11; 15-16, 삼하 5: 20) 지리멸렬한 군사들이 갈팡질팡하고 사방으로 흩어져버린 혼잡한 상태에서 다윗이 패전(敗戰)을 죄의 결과로 인정하고 회개하며, 마음을 정한 후 찬양으로 새벽을 깨우면서 에돔 군대를 이길 수 있도록 도움을 간구한, 하나님의 도움을 확신하며 부르짖은 다윗의 기도였다.

 

“오른손으로 구원(救援)하소서”

(Save with Thy right hand!: “당신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

 

성경에 30번 기록된 ‘하나님의 오른손’, ‘주의 오른 손’은 ① 이집트의 바로 군대를 홍해에 수장(水葬)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손, 모든 원수를 부수고 파멸하여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손(출 15: 6, 12) ② 어느 누구의 도움과 간섭을 받지 않고 홀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권능의 손(시 110: 1, 5, 마 26: 64, 막 14: 62, 16: 19, 눅 20: 42-43, 22: 69, 행 7: 55-56, 히 10:12, 12; 2) ③ 예수를 높여 죽음에서 부활케 하시고 하늘로 올리셔서 그에게 성령을 주어 성도들에게 부어주게 하신 손(행 2: 33-34, 엡 1: 20, 골 3; 1)) ④ 예수를 임금과 구주로 삼으신 손(행 5: 31) ⑤ 의인의 장막에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게 하는 권능의 손(시 118: 15-16) ⑥ 성도들에게 생명의 길을 보이는,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이 있는 손(시 16: 11) ⑥ 어떤 피조물의 영향력도 미칠 수 없는 지고지순의 가장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손(The right hand the Majesty on high;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대주권자의 손; 히 1; 3, 8: 1) ⑦ 전지전능, 무소부재의 권능으로 언제 어디서라도 성도를 붙잡아 주시는 능력의 손(시 139: 10) ⑧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굴복하고 순복하는 권능의 손(벧전 3; 22) ⑨ 성도를 모든 원수에게서 보호해 손해당하지 않게 해주시는 능력의 팔(사 62: 8)이다.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의 오른손으로 새벽을 깨우는 성도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했다. 그다음, 7-9절까지는 새벽을 깨우며 부르짖어 기도하고 찬양한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이 그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내가 뛰놀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척량하리라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보호자요 유다는 나의 홀이며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내 신을 던질 지며 블레셋 위에서 내가 외치리라 하셨도다”

 

“하나님이 그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God has spoken in His holiness)에서 ‘그 거룩하심으로’(In His holiness, 베카드쇼)는 “그분의 거룩하심 안에서”란 뜻이니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성품을 담보로 하여 다윗에게 당신의 백성,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셨다”는 말씀이다. 그렇다. 새벽을 깨운 다윗, 새벽부터 비파와 수금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다윗에게 하나님이 당신의 거룩함을 담보하여 승리의 축복을 약속하셨다. 오늘도 새벽을 깨우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함을 담보하여 기도응답과 축복을 약속하신다.

 

하나님이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셨다!(God has spoken in His holiness) 하나님이 영원한 거룩하심으로 선포하셨다. 그러므로 죄용서가 나의 것이고 하늘 평안이 나의 것이며 은혜가 나의 것이며 그리스도가 나의 것이며 천국이 나의 것이고 하나님 자신까지도 나의 것이다! 할렐루야. 새벽을 깨우므로 이러한 승리와 이김의 선포와 축복과 질병 치료의 응답이 있기를 축원한다.

7중-9절까지를 통해 다윗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응답은 10가지였다(God's 10fold

vows) ① “내가 뛰놀리라!”(I will rejoice; “내가 기뻐하리라”) ‘뛰놀리라’의 엘로자는 “승리에 따른 기쁨의 행동”을 표현하는 말이다. 메릴랜드의 목사들이 매주월요일마다 편을 나누어 배구를 하는데 게임 기록에 상관없이 그날의 맨 마지막 경기가 승패를 결정하는 것이 14-5년 메릴랜드 목사들의 배구 전통 경기규칙이다. 그래서 대부분 마지막 경기는 아슬아슬하게 승패가 결정 나는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마지막경기에서 점수를 올릴 때마다 동심으로 돌아가 두 손바닥을 마주치며 High Five를 외치는데 그때 모든 스트레스도 날아가 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땀 흘리며 운동을 하고 이겼을 때에 순간적 기쁨은 짜릿한데 그 이유는 마지막 게임의 패자가 밥상을 펴기 때문이다. “내가 뛰놀리라”는 “내가 전쟁을 이기므로 기뻐 뛰놀게 된다”, “내가 전쟁을 이기므로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으리라”는 뜻이다. ② “내가 세겜을 나누며”(I will devide Shechem; 7, 60: 6)에서 ‘나눈다’, 할라크는 “기업을 분배(分配)한다”란 뜻이니 이것은 다윗이 예루살렘 북쪽 64km, 요단강에서 25km 떨어진 요단 골짜기의 서쪽 정상인 세겜 지역까지 차지하게 된다는 말이다. ③ 숙곳 골짜기를 척량하리라“(I will mete out the valley of Succoth; 7, 60:6) 숙곳 골짜기는 요단강 동쪽 5.5km 지점의 골짜기를 가리키는데 ‘척량한다’(Mete out, 마다드)란 “분배한다”, “재다”, “계량한다”는 말로 ‘나눈다’와 같이 그 지역을 차지하게 된다는 말이다.

 

④ “길르앗이 내 것이요”(Gilead is mine; 8, 60: 7) 길르앗은 숙곳 골짜기까지 포함된 요단 동편의 풀이 많고 숲이 울창한 산악지대로 많은 유실수와 좋은 목초로 유명한 지역이다. 이렇게 비옥한 요단 동쪽과 요단 서쪽 목축지와 산과 들과 골짜기까지 모두 새벽을 깨운 다윗의 소유가 된다는 말씀이다. ⑤ “므낫세도 내 것이며”(Manasseh is mine; 8, 60: 7) 갈릴리 호수 북동쪽과 남서쪽의 넓은 땅인 요단 동쪽의 비옥한 땅을 가리킨다. ⑥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보호자며”(Ephraim also is the strength of My head; 8, 60: 7)란 당시 대단히 많은 인구를 가지므로 다윗 왕국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는 에브라임이 다윗의 생명을 수호하는 병사들과 상비군을 마련해 줄 것이란 뜻이다. ⑦ “유다는 나의 홀이며”(Judah is My lawgiver; 8, 60: 7)란 “유다 지파가 다윗의 법정을 위해 유능한 재판장들을 보내주므로 다윗의 통치를 가능케 할 족속이 된다”는 말씀이다. 그 응답대로 다윗은 유다 지파의 도움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었다(삼하 2; 1-4)

 

7-8절에서 팔레스타인 땅이 자신에 의해 평정될 것을 응답받은 다윗은 9절에서 팔레스타인 주변의 이웃 나라들까지 정복할 것이라는 응답을 받고 그것을 예언하는데 ⑧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Moab is Mi wash-pot; 9, 60; 8) 목욕통은 발 씻는데 사용되는 그릇이고 발을 씻기는 일은 종이 하는 것이니 모압이 다윗에게 정복돼 종이 된다는 말씀이다. ⑨ “에돔에는 내 신을 던질 지며”(Over Edom will I cast out My shoe; 9, 60: 8) ‘신발을 던지는 것’은 상대에 대해 지배의 의지표시이니 에돔도 모압처럼 다윗에게 정복돼 이스라엘의 종이 될 것이란 말이다. ⑩ “블레셋아, 나를 인하여 외치라 하셨도다”(I will triumph over Philistia; 9, 60: 8)란 블레셋이 다윗의 공격을 받아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르짖으며(삼상 5; 12, 사 15; 4) 탄식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 응답대로 다윗은 왕이 되자마자 블레셋을 패퇴시켰고 나중에는 그들을 완전히 항복시켰다(삼하 8: 1) 이렇게 새벽을 깨운 다윗에게 하나님이 주신 응답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대대로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대적국가까지도 정복하게 하겠다는 응답이었다.

 

시편 60편은 다윗이 에돔 원정에서 참담한 패전으로 군사들이 뿔뿔이 흩어져 도망갔을 때,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부르짖어 기도한 내용의 시이다. 이제까지 승승장구, 실패를 모르던 다윗에겐 가히 믿기 어려운 충격적사건이었다. 그런데 새벽을 깨웠던 다윗에게 그 에돔을 격파하고 정복하므로 그들이 다윗과 이스라엘에게 종이 될 것이란 약속을 하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에돔과 함께 수백 년 동안 눈에 가시처럼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모압과 블레셋까지 다윗이 파멸시키고 정복하여 그들을 다스리게 할 것이란 약속을 주신 것이다.

 

그렇다. 새벽을 깨우는 사람에겐 다윗이 받은 축복을 그도 받는다. 축복의 시작은 작은 지역인 세겜과 숙곳 골짜기와 길르앗처럼 작은 일에서부터, 나중에는 넓은 지역인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유다까지의 많고 크고 광대한 일까지 그리고 수십, 수백 년을 대를 이어 이스라엘을 괴롭힌 모압과 에돔과 블레셋 원수들처럼 조상대대로 300년 200년 100년 50년 동안 당신과 처가, 당신과 시댁의 가문과 가정을 괴롭히던 모든 저주의 쇠사슬까지 깨뜨려버리는 축복을 받는 것이다. 이것이 새벽을 깨운 자들이 받을 축복의 비밀이다. 그래서 새벽기도가 귀하고 힘이 든다. 그래서 새벽기도는 아무나 못한다. 그래서 새벽기도 성도는 그 교회의 십일조 성도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벽기도는 죽느냐 사느냐의 영적전쟁이다. 거기서 살아남는 사람이 축복의 땅을 정복한다.

 

아브라함의 새벽이 그랬고 모세의 새벽이 그랬으며 여호수아, 사무엘, 다윗의 새벽이 그랬고 엘리야의 새벽,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의 새벽이 그랬으며 예수님의 새벽과 사도들의 새벽이 그랬고 오늘 한국교회의 새벽이 그랬다. 시내 산에서 모세가 십계명과 율법을 받은 사건에서 광야 40년, 이스라엘이 14,610번의 하늘만나를 받은 기적과 홍해가 갈라진 사건, 여리고 성이 무너진 사건, 요단강이 갈라진 사건, 그리고 이스라엘의 수많은 전쟁승리의 사건과 예수님의 부활 사건, 세계역사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전무후무한 한국교회 부흥의 기적까지...모두가 새벽의 사건, 새벽을 깨운 사람들을 통해 이뤄진 기적들이다. 그리고 그 기적의 사건은 지금도 현재진행중이다. 새벽을 깨우므로 기적의 사람, 축복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2. 새벽을 깨우는 것의 성경적 의미

 

새벽을 깨우는 것이 무엇인가? 새벽을 깨운다는 의미는 어떤 것인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새벽에 일어나 교회에 가서 새벽예배 드리고 집이나 직장으로 가는 것인가? 물론 그렇게 시간적으로 새벽과 아침을 깨워 교회를 찾아가 하나님과 목사께 눈도장 찍는 것이 아예 침대 둘러메고 이불에 눌려서 잠이나 자므로 새벽이 없는 사람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이 성경에서 ‘새벽을 깨우겠다’고 한 말은 시간의 새벽에서 공간의 새벽까지를 모두 깨우겠다는 의미이다. 그렇다. 새벽을 깨우는 것은 시공간의 새벽을 모두 다 깨우는 것이다.

 

성경엔 깨운다, Awake(“잠에서 깨다”, “각성시키다”, “불러일으키다”, “잠을 깨다”)란 단어가 50회 언급됐는데, Awake란 단어가 사용된 것은 ①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는 부활(Resurrection)을 가리킬 때(욥 14; 12, 시 17: 15, 단 12; 2, 요 11: 11) ② 사람의 Prayer(기도)에 하나님의 반응을 요구할 때(시 7: 6, 35; 23, 44; 23, 59: 4) ③ Exhortation(권고, 충고, 훈계)을 받아드릴 것을 강력하게 요구할 때(롬 13: 11, 엡 5: 14) ④ In soliloquy(혼잣말, 독백, 혼자 떠들기)에서(시 57; 8, 108: 2) ⑤ Of rousing from the sleep(잠을 몰아내거나 잠에서 뛰쳐나올 때 또는 잠이나 혼수상태에서 자극을 주어 깨울 때; 시 139: 17-18, 아 2; 7, 3; 5, 8: 4, 막 4; 38, 눅 9: 32) ⑥ In connection with indifference(무관심, 개의치 않음, 냉담과 관련해; 욜 1: 5, 롬 13: 11, 엡 5; 14) 관심 갖기를 촉구할 때 Awake를 사용했다.

 

그렇다면 “새벽을 깨우는 것(Awake)”은 어떤 것인가? 김 목사, 동 장로, 서 권사, 박 집사가 새벽을 깨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새벽을 깨우는 성경적인 의미는 ①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는 것(창 28: 16-17) 야곱이 벧엘에서 사닥다리 꿈을 꾼 후 잠에서 깨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를 외쳤듯 우리의 새벽기도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다. 새벽기도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새벽을 깨우는 것이다. ② 묶인 것을 푸는 것(삿 16: 14) 삼손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직조 틀로 삼베옷 짜듯 자기 머리카락이 짜여버린 직조(織造)틀의 바디와 위선을 다 풀어 빼냈듯 새벽기도에서 나를 묶고 있는 흑암세력의 줄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꾸짖고 쫓아내서 풀어 놓는 것이다.

 

흔들어 깨우는 것(아 2: 7, 8: 4) 잠자는 사람 깨우는 방법 중에 가장 쉬운 방법은 흔들어 깨우는 것이다. 대구에 어느 장로는 기도하다가 졸면 줄에 묶인 머리칼이 잡아 댕겨 잠을 깨우도록 대들보와 자기 머리에 줄을 붙잡아 매고 기도했다고 한다. ④ 영적 출생지인 처음 사랑, 처음 믿음을 만나는 것(아 8: 5) 솔로몬은 술람미에게 ‘네 어미가 너를 신고(辛苦: 해산고통을 한)한,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곳, 사과나무 아래에서 너를 깨웠다’고 했다. 솔로몬이 해산고통으로 태어난 사과나무 아래에서 사랑하는 여인 술람미를 깨웠듯, 우리가 영적으로 태어난 처음 믿음, 처음 사랑을 만나는 것이 새벽을 깨우는 것이다. 새벽마다 처음 사랑, 처음 믿음이 회복되는 은혜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⑤ 힘을 입는 것,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사 52: 1)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입을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새벽마다 영적인 힘을 얻고 영적으로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이 새벽을 깨우는 것이다.

 

천사의 깨움을 경험하는 것(슥 4: 1, 행 12: 7) 천사의 깨움을 받은 스가랴는 그가 받은 일곱 번째 환상인 두 감람나무 환상의 해석을 깨닫는 신비한 축복을 받았고, 천사가 태껸(당수, 唐手)수도로 옆구리를 내리치는 바람에(He smote Peter, 파타쏘: “친다”, “때린다”, “때려 눕힌다”란 의미로 야곱은 천사가 내려친 손길에 환도 뼈가 부러지기도 했다: 창 32: 25) 잠에서 깬 베드로는 닫혔던 감옥 문이 저절로 열리는 신비기적을 체험했다. 그렇다. 새벽을 깨우는 것은 새벽에 하나님의 비밀 말씀과 신령한 계시를 깨닫는 것이며 환경 속에서 나를 가두고 있는 감옥들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하는 것이다. 당신의 새벽기도에서 이런 기적들이 있어야 한다.

 

위기의식으로 긴박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마 8: 25, 막 4; 38, 눅 8: 24) 사나운 풍랑과 거센 파도로 죽음의 위기를 느낀 제자들은 뱃사람의 노련한 경험과 실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을 깨닫고 배에서 주무시는 예수님을 다급하게 깨우며 Save us, Lord, we are perishing!(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를 소리쳤다. 그렇다. 새벽을 깨우는 것은 새벽에 시간 맞춰 교회에 나와 예배만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거나, 예배 후 잠간 몇 마디 기도를 하거나 아예 조용히 묵상만 하다가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진 사람이 죽기 살기로 구원을 간청하듯 하나님의 도움과 예수님의 구원을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것이다. 여러분, 물속에 빠진 사람이 조용히 있으면 죽는다. 당신 새벽이 조용하면 영이 죽고 육체가 죽으며 생활까지 죽는다. 새벽은 깨우라고 있는 것이고 새벽은 당신을 살리려고 주신 하나님의 기회다. 새벽을 깨우므로 가정문제가 해결되고 질병에서 치료를 받으며 영적인 문제, 사업문제, 학교 직장 자녀 남편 문제들이 해결되는 기적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죽은 것을 살리는 것(요 11: 11)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러 가면서 “내가 그를 잠에서 깨우러 간다”(I go, that I may awake him out of sleep)고 했다. 그렇다. 새벽을 깨우는 것은 ‘죽은 것을 살리는 것’, ‘죽은 새벽을 살려 놓는 것’이다. 죽은 것을 살리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것은 첨단과학이나 세계최고 실력을 자랑하는 의사도 손 댈 수 없는 불감생의(不敢生意: 힘에 부쳐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함)한 영역이고 불가침의 영역이며 불감앙시(不敢仰視: 감히 쳐다보지 못함)의 영역이다. 살리는 것은 모든 육체와 영혼의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고유영역이다.

공을 가지고 하는 구기종목 운동은 대부분 살아있는 공을 가지고 경기를 한다. 축구 배구 농구 야구 족구 수구 심지어 탁구도 살아있는 공을 발로 차거나 방망이나 라켓으로 치거나 손으로 던지고 때려서 점수를 만든다. 이렇게 살아있는 공을 다시 살려서 점수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래서 살아서 내게로 날아오는 공을 반탄력을 이용해 공격하면 야구에선 홈런이 되기도 하고 탁구에선 여러 가지 기술로 상대를 공략할 수 있으며 농구선수들은 갖가지 절묘한 묘기로 점수를 내며 사람들을 흥분시킨다. 그러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죽은 공을 살려야 하는 골프를 보라. 열여덟(18) 홀의 매 홀마다 죽어 있는 공을 Tee off해서 홀컵에 넣을 때까지, 클럽에 맞아 날아간 장소에서 움직이지 않고 죽어있는 공을 수십 번이나 계속 살려내면서 게임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금주 챔피언이 다음 주에 Cut off로 탈락하기도 하고, 이번 주 꼴찌가 다음 주엔 트로피 주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작년까지 세계를 석권해 만인지상 골프 황제로 군림했던 타이거 우즈의 끝없는 추락과 우즈 후계자로 떠오르는 골프신성 McLlroy를 보면서 죽은 공을 살리는 골프가 얼마나 어려운 스포츠인가를 배우게 된다.

 

새벽을 깨우는 것은 죽어있는 시간을 깨우는 것이고 멈춰있는 공간을 채우는 것이며 죽음에 묻혀있는 시간과 공간을 예수 생명으로 살리는 것이다. 그래서 새벽기도가 힘들고 어렵다. 죽은 것을 살려야 하는 치열한 영적전쟁이고 고되고 힘든 영적전투이다. 5시간 막노동보다 5시간 기도가 더 힘든 중노동이다. 그러나 어려운 연구와 힘든 고시일수록 보상받는 상이 큰 것처럼 그러기 때문에 새벽기도의 축복은 어떤 기도보다 크다.

 

예수를 통해 세 번(마 9: 25, 눅 7: 14, 요 11장)과 다른 사람을 통해 일곱 번(왕상 17: 21, 왕하 4: 34, 13; 20-21, 욘 2: 1-10과 마 12: 40, 행 9: 40, 20: 10)등 죽었다가 일시적으로 다시 살아난 열 번의 사건에서도 죽은 사람 살아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지만 예수 부활과 함께 다시 살아난 구약 성도(마 27: 52-53; 앙트 니센느 도서관 자료에 의하면 그때 부활한 구약성도가 12,000명이었다고 한다. 부활성도 중에 아리마대에 살던 시므온과 그의 두 아들도 포함됐는데 그들은 산헤드린 공회에 호출돼 동시에 각각 따로 조사를 받으면서 “예수가 지하음부에 오셔서 설교할 때 수많은 구약성도들이 부활했다”고 증언했다고 한다)와 장차 지구촌 무덤들에서 다시 살아날 영광스런 성도의 부활은 하나님이신 예수의 죽음이 담보된 것임을 알 때, 죽은 것을 다시 살리는 일, 죽은 새벽을 살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 성도의 부활은 예수의 죽음이 지불된 보상이다. 그러므로 죽은 새벽을 깨우는 일도 우리 죽음을 지불해야 한다. 죽음까지 지불하며 새벽을 깨우는 성도들에게 세겜과 숙곳과 길르앗의 작은 축복에서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유다의 큰 축복까지 그리고 대적 모압과 에돔과 블레셋까지 정복하므로 기뻐 뛰는 다윗의 축복들을 선물받기를 축원한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라!

김엘리야목사(워싱턴주기도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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