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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9일 03시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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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참빛칼럼]밀양을 생각하며

1990년도 일월에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꿈속의 고향의 감미로운 선율을 읊조리며 미국에 오게 되었다.  내리자마자 맨하탄 지하도에서 나오는 악취와 홈레스들을 보고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 앞의 에이앤씨 백화점에서 거리로 풍겨나오는 향수향기는 미국에 대한 석연찮은 의혹을 부드럽게 가라앉혀 주곤하였다. 

오자마자 흑인들이 위험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곤했지만 나는 몸소 체험하지 않은 것은 별로 믿지않는 장점이자 단점을 지니고 있다.  당시 나의 이런 성격을 옹호라도 하는 듯한 한가지 일을 오자마자 겪었는데 어느 날 34가 맨하탄 지하도를 올라오다가 지갑을 떨어뜨렸던 모양이다. 

지하도에서 나와 바삐 걸어가고 있는데 어떤 흑인 남자 한 사람이 뛰어오면서 나의 어깨를 건드리더니 나에게 지갑을 전해주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고마웠는지그때부터 나에겐 흑인들의 눈빛이 정답고 순박한 검은 천사들로만 보여져서 이후 흑인들이 주로 앉아있는 늦은 시간에도 편안하게 지하철을 타곤했던 것이다.

나의 부친을 닮아서인지 난 천성적으로 사람을 잘 믿고 처음에 사람에게 감동을 잘 받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누가 날 불순하게 이용하거나 해하려하더라도 그 의중을 도대체 파악하기 어려운 것은 내 안의 기준으로 생각할때 도무지 그럴 필요가 하등 없는 일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다소 미심쩍어 보여도 마음으로 믿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는것 같다.

어쩌면 이런 성향을40대 초반까지 계속 가질수 있었던 것은 내 삶의 영역이 비교적 단조로웠고 이성에 대해서도 하등 경계심을 가질만한 상황이 주어진적이 없기 때문이라 할수있다.  대학때에  학회활동에서 만난 남학생 친구들과 결혼전까지 스스럼 없이 건전한 대화를 나누었고 당시 남학생 친구들은 기사도 정신이 깍듯해서 교대로 늦은시간 나를 집에까지 바래다 주곤했어도 깔끔한 매너들이어서 어색하거나 이상야릇한 감정을 느낀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미국에 와서 남편의 공부로 호보캔에서 기숙사 생활을 할때 교회와 나약 신학교를 다니는 동안 여러번 목사님들이 나를 늦은 시간에 바래다 주신적도 계셨지만 찬송가를 부르시며 오라버니 같이 바래다 주시곤 하셨다.  그러니 하등 이상할것 없이 자연스럽고 감사한 느낌만 들었다. 

뉴저지에서 몇년을 보내다 캔터키로 내려가 또 몇년을 행복하고 보람있게 지내다가 다시 뉴저지로 올라와서 프린스턴에 내려오고 나서부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의 삶이 무척 적적하고 외로와지게 되었다.  당시는 아이들을 바래다주는 인근 동네 외엔 다른 지역에 운전할 엄두도 나지않았고 포트리까지 진출하는 것은 감히 생각도 못하고 있었던 때였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좋은 교회와 목사님을 만나서 남편의 신앙을 돕고 다른 전도사님들과 목사님의 사역을 도우며 자신의 은사를 보람있게 사용하면서 성경공부나 수련회등에 참석하면서 최소한의 신앙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싶은 바램이 생기게 되었다.

미국은 한국과 다르고 또 한인들이 많지않은 지역에는 여성 신자들이 교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게 마련이다.  기러기 엄마들이나 싱글맘들, 남편을 잃은 부인들이 아이들을 공부시키는 경우도 많기에 더 그러하다.  또 부부가 같이 살아도 갈등이 있거나 출장이 잦은 경우도 있게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서 담임 목사가 남편도 아닌데 새벽이나 늦은 밤에 홀로 있는 여성 교인들에게 불쑥 별 내용도 없는 전화를 걸거나 대낮에 연락도 없이 불쑥 가정을 방문하는 행위는 절대 삼가야 한다고 본다.  세상적인 마음에서 일상의 파격쯤으로 치부한다하더라도 너무도 위치와 관계에 있어서 안맞는 비상식적인 행동이고 이런 리더의 엉뚱한 행동은 양들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도적질하는 행위가 되고도 남기 때문이다. 

또 담임목사가 사모도 없이 혼자있는 자택을 상황도 모르는 여성에게 방문토록 초청하여 몹시 당황하게 하거나, 성경공부를 명목으로 혼자 젊은 여성 교인들 집을 순회하며 방문해오다가 새로 와서 명분도 못느끼는 여성 전도사에게 동행을 강요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한 처사라고 본다.  교회에서 하면 될것이 아니겠는가

이뿐 아니라 담임 목사가 당회원들과 오랜세월 크게 불화가 쌓여온 상황에서 교회사정을 모르고 처음 들어와 당회원들의 사랑과 신임을 막 받기시작하는 새내기 부교역자로 하여금 담임목사 대신에 재직회의에 참석하여 본인을 옹호해 달라고 번번이 등을 떠밀거나 하는 행위는 적어도 이끌어주길 원하는 부교역자를 대하는 리더의 태도로서는 매우 온당치 않은 처사이다. 

더구나 교회 사무실에서 신입 전도사를 앞에두고 담임목사가 자신의 연봉을 푸념하며 도저히 못해먹겠다고 교회를 그만 둘거라며 불안감과 동정심을 유발하는 과잉행동을 하는것보다는 차라리 무보수로 순수히 교회를 섬기고자 하는 부 교역자를 위해 소액의 개스 값이라도 교회에서 마련해 주도록 배려하는 목회자가 더 인간미있고 진실된 리더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신학교나 안수등 사역에 관한 성역을 미끼나 이용거리로 삼아서는 안될일일 것이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힘의 불균형은 결코 교회사회에서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다.  

겉과 안이 판이하게 상치되고 또 무엇보다도 진실됨과 진지함이 없는 사역자는 일종의 공해와 같다고 느낀다.  그러나 바쁘고 기계적인 관계로 물들여진 요새 세상은 교회사회에서도 편하고 쉽고 그럴듯하고 재미있고 부담없는 성격을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추세이고 거기다 간판까지 있으면 앞뒤 볼필요도 없이 무사통과이다. 

신앙 사회도 바쁜데 피곤하게 각론까지 갈 필요없이 총론만 있으면 오케이인것이다.  하나님 앞의 용서만 생각하지 사람 앞의 용서는 골치아프고 모양새 구기니 생략하고 싶어한다.  이런 추세이다보니 영화 밀양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켜 대상을 받게된 것이 아닐까?

요새와서 생각해보면 어떤 학교를 나오고 얼마나 가방끈이 긴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장과정과 소시적의 가정교육이 그 사람의 인격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인자가 되는것 같다.  과거 끊임없이 문제를 만들어내었던 어떤 목사는 마지막 설교시간에 이제 가릴것이 무엇이냐는 투로 본인이 쪽방에서 자랐으며 방을 나오면 술집들이 즐비한 동네에서 컸노라고 분노스런 독백을 뱉는 것을 들은적이 있다.     

그러니 따지고보면 그 사역자가 자란 환경이 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크리스찬이라면 그리고 양무리를 먹이는 목자라면 자신의 자유의지에 대한 책임의 소재에 대해선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박현숙 목사(프린스턴참빛교회 담임)  

www.czoneus.net
info@czoneu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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