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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9일 03시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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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참빛칼럼]어떤 목자들에게

에스겔 34:1-10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있을진저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리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4)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며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5)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내 양의 무리가 노략거리가 되고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된것은 목자가 없음이라(8a)…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의 무리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를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식물이 되지 않게 하리라(10)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신정 왕국 체제인 이스라엘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과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비유하여 지도자들의 부패와 타락을 고발하고 경고하고 계시다.  참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백성들을 인도하도록 목자의 사명을 위임하신 것을 뜻하는 말씀으로 오늘날 목회자들에게 더욱 적합한 말씀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지도자들에게 원하시는 내용은 무엇인가?  연약한 자를 강하게 하고 병든자를 고치며 상한자를 싸매어 주고 쫓긴 자를 돌아오게 하고 잃어버린 자를 찾는 일이라고 하신다. 

그러면 이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좋은 신학교와 유창한 설교와 탁월한 대인관계 스킬인가?  그렇지 않다. 이보다 앞서는 것은 양의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고 영적 부모의 심정으로 도우고 싶어하는 애타는 가슴과 실제적으로 도울수 있는 능력일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을 보면 너무도 목자의 본질과 동떨어진 경우가 있는것을 위의 말씀은 지적하고 있다.  양을 먹이는 대신 오히려 양의 것을 취해 자기만 먹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자기만 먹이고 있는의 시제엔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상습적인 행동을 말한다.  이들은 연약한 자의 약점을 간파하되 그것을 도리어 자신의 이익의 재료로 삼아 양의 생명을 위협하고 불안하게 하고 죄의 길로 유인하거나 절망이나 상처를 주는 비상식적인 목자들에 해당된다  

이와 같은 악한 목자들이 저지르는 방법을 하나님은 “강포”로 표현하고 계시다.  강포는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자를 누르고 수탈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단순히 강하게 하지않고 단순히 고쳐주지 않고 싸매지 않고 단순히 되돌이키지 않고  찾지 않은 것이 아니라고만 말씀하지 않으시고 목자가 강포로 행하였다고 하신다. 이 뜻은 무엇인가?  영육간의 착취를 말한다.  “…너희는 강포와 겁탈을 제하여 버리고 토색함을 그칠지니라(45:9)…”

요컨데 지도자가 자기 임무와 책임을 충실히 수행치 않을때에 결과로서만 양들을 다른 마귀의 밥이나 노략거리로 내어준다는 뜻이 아니라 지도자 스스로가 이미 양들을 식물로 삼는 들짐승 즉 주범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양들을 목자들의 입에서 건져내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니 이 얼마나 무섭고도 예리한 말씀인가? 

기득권을 가진 지도자가 강포를 행할때에 그 피해는 직접적인 대상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자가 속한 환경 전체에까지 깊숙히 두고두고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기에 주님은 이런 명목상의 목자요 거짓목자를 양들을 사단에게 내어주는 도적이요 강도요 삯군 목자라고 명명하셨다(10:8-13). 

삯군 목자들은 바탕에 있어서 이기적이고 계산적이고 정치적이고 명예욕에 눈이 먼 자들로서 양심에 찔림이 없는 자들인 것이다. 목자로서의 자질과 성품은 눈에 보이는 외적인 자격이나 조건과는 상관없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자격과  내면의 영적상태와 직결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삯군 목자들은 밖으로 나타나지도 않고 쉽게 알아주지도 않는 비효율적인 수고로운 노력은 피하고 싶어한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전에 백성을 위하여 이스라엘 족속으로 죄악에 거치게 하였으므로 내가 내 손을 들어 쳐서 그들로 그 죄악을 담당하여 내게 가까이 나아와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며 또 내 성물 곧 지성물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이 자기의 수욕과 그 행한바 가증한 일을 담당하리라 그러나 내가 그들을 세워 전을 수직하게 하고 전에 모든 수종드는 일과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일을 맡기리라(44:12-14)”

위의 말씀은 범죄한 주의 종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징계를 내리시고 이후 용서와 한없는 자비로 직무를 회복시켜 주시되 제한적인 직무와 더 작은 직분을 맡기실수 밖에 없다는 뜻을 담고있다. 

그러나 요즘은 죄에 대한 고백도 솔직히 행해지지 않을 뿐더러 주변의 가까운 지인 목회자들의 역할이 더욱 더 그러한 죄의 은폐와 정당화와 눈속임을 가속화 시켜가는 추세이다. 



삯군 목자들은 사역의 브랜드를 개발하여 효율적으로 끼리끼리 집단을 만들어 끊임없이 맨파워를 키워나가고 자신들의 위상을 높이고 과시함으로 외부적으로 그럴싸한 인정을 받기 원하고 그것으로 목자되는 것의 비빌 언덕을 삼고자 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기준치에 편승하기 보다는 사람들의 기준치에 편승하는 방법을 선호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전혀 자질적으로 위험한 자들이 목자의 위치에 당당히 자리를 보전하고 앉아 상황에 따라 노련하게 고개를 내밀다 숨기며 세상의 어리숙함을 조롱하듯 세태의 흐름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이는 한 마디로 말씀의 기근이 가져온 소경된 목자들의 회가 믿음 사회의 한 중심축에 서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기에 충분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말씀의 기근은 질적인 의미에서의 기근뿐만 아니라 양적인 의미에서의 기근도 다분히 포함하고 있다.  생명나무인 말씀이 선악과의 즙으로 가미되어 화학적 변화를 거쳐 보기좋고 세련되게 포장되어 마치 교회 사회내 조직의 근육강화제 마냥 크게 선전효과에 힘입어 시중에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경우 말씀의 원액에 녹아있는 생명나무 과실즙의 맛을 본 자들이 희소한지라 분간할 재간이나 틈도없이 너도나도 유행병처럼 좇아가고 있는 듯하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고 하신다.  목자가 없어서 양들이 노략거리가 되고 원수의 밥이 되었다고 하신다.  그리하여 몸소 목자들을 대적하시겠다고 하신다. 

양들을 이용감으로 삼는 삯군들에게서 양들을 빼앗겠다고 하신다.  소유로 삼는 삯군의 손에서 먹이로 삼는 삯군의 입에서 양들을 빼앗아 사역이나 생계의 이용거리로 삼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무엇이 삯군 목자를 만드는가?  겉으론 번드르르해도 말씀이 들어있지 않아 내적 공허와 불안감에 휩싸여 말씀을 먹여야할 양들에게 갖가지 모양으로 기대고 이용하여 세속적인 이득과 재미를 보는데만 관심이 쏠린 음흉하고 오염된 목자 – 즉, 말씀의 핍절이 가져온 양심의 오염이 삯군 목자를 만든다. 

그러기에 말씀과 양심이 없어서 오히려 없는 것만도 못한 목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존재하지 않는 목자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목자가 없다고 단언하신다.

이제는 이런 목자들이 조직이나 단체의 갖가지 화려한 포장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과 사람앞에 정직히 회개하고 빈손 들고 말씀과 사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더 이상 유능한 정치인처럼 뒷 공작이나 기브앤테이크를 주고 받으며 단체나 조직의 갑옷을 입고 단체나 조직의 코드로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하려 하지말고 진솔하게 일대 일로 말씀만을 붙들고 일대 일로 사람과 교회앞에 참회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이 양심과 말씀을 최대 밑천으로 최 우선으로 최 전방으로 삼아 양심과 말씀으로 최대한 무장한 목자와 그런 목자들의 회가 시급히 임해야 하는 절박한 현실이다.


박현숙 목사(프린스톤참빛교회 담임)

www.czoneu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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