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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9일 03시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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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김엘리야]베냐민의 남은 자, 600명
 

베냐민의 남은 자, 600명

어느 마을에 교회와 사찰이 이웃해 있었는데, 교회에서 밤낮으로 큰 소리로 찬양하고 기도하자 너무 시끄러워 주지승이 염불이 안 될 정도였다. 여러 날을 고민하던 주지(住持)가 사찰회의를 열어 누가 교회에 가서 조용히 해달라고 할 거냐고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선뜻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기를 한참 뒤에 맨 뒤에 앉아 있던 젊은 중이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주지님, 제가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한 여름에 땀을 흘리며 길을 걷던 길동무 씨가 지나가는 차를 세워 물었다. “기사 아저씨, 여기서 대구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그러자 운전사가 “예, 한 시간 반쯤 가면 됩니다.” “미안하지만 함께 타고 가면 안 될까요?” “예, 타십시오.” 차를 얻어 탄 길 씨는 처음엔 기분이 좋았지만 그로부터 2시간이 지나도 대구가 나타나지 않자 당황하여 물었다. “기사 양반, 언제쯤 도착할 것 같습니까?” “예, 한 시간 반은 더 달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일이 잘못 된 것을 느낀 길 씨가 운전사에게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직도 1시간 반이나 걸리다니요?” 그러자 운전사가 “예, 서울까지 그 정도는 걸립니다.”라고 말한다. 마침내 화가 난 길 씨가 말했다. “운전사 양반, 내가 언제 서울 가지고 했소?”. 그러자 운전사가 말했다. “그럼 내가 언제 대구 간다고 했습니까?” 가는 방향을 정확하게 묻지 않았던 두 사람의 실수담이다.

 

성경에는 여러 차례 “네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Where have you come from and where are you going?; 창 16; 8, Where do you come from? and where are you going?; 삿 19: 17)는 질문이 있다. 물론 이것은 사람이 떠나온 출발장소와 가는 목적지를 물은 말이지만 오늘 우리 인생 모두에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의 삶의 방향과 목적을 묻는 철학적이고 영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지금 당신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 인생의 최종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는가? 내 영혼이 하나님께로 와서 하나님께로 가고 있음을 밝히 알고 인생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한다.

 

싸움 중에 형제끼리의 싸움만큼 백해무익한 싸움은 없다. 골육상쟁은 누워서 침 뱉기며 서로가 망하는 아무 이익이 없는 싸움이다. 그런데 세상엔 의외로 아버지의 피를 함께 나눠 받고 어머니의 젖을 함께 나눠 먹은 형제의 진흙탕 싸움이 많이 있다. 작게는 형제자매 싸움에서 골육친척의 싸움까지와 크게는 한 혈통의 부족의 싸움에서 민족상잔까지 죽고 죽이며 먹고 먹히는 서로 망하는 싸움과 전쟁은 지구촌을 피로 물들이고 있다.

 

지난 7월 9일(토), 남부 수단이 22년간의 내전을 종식하고 남수단공화국으로 독립을 선포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넓은 나라(250만Km²)였던 수단은 전체면적의 ⅓을 차지하고 북수단과 분리해 인구 830만의 독립국가가 된 것이다. 수단은 1955년 영국과 이집트의 공동통치에서 독립하면서부터 아랍계 무슬림이 다수인 북쪽과 기독교와 가톨릭이 다수인 남쪽이 대립하다가 1983년부터 2005년 1월 평화협정을 맺기까지 22년 동안 민족상잔의 치열한 전쟁으로 200만 명 이상이 죽었다. 남수단은 지난 6년 동안 평화협정에 따라 자치정부로 지내다가 금년 1월 국민투표에서 분리 독립에 찬성하면서 지난 7월 9일(2011년) 마침내 독립국가가 됐지만 현재 남수단은 전체인구의 90%가 하루 50쎈트(500원) 이하의 돈으로 생활하는 지구촌 최악의 극빈층 나라 중 하나이다. 그들은 독립의 기쁨은 잠시 당장 먹고 살아야 할 문제가 심각한 상황인 것이다.

 

우리나라도 6. 25 동족상쟁으로 그 고통을 겪었고 지금도 1,000만 이산가족의 쓰라린 아픔을 가진 채 155마일 휴전선을 피를 나눈 형제끼리 총을 겨누고 살아야 하는 비극 중에도 남한이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과 축복으로 세계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21세기의 기적을 만든 나라가 된 것에 감사하지만 나라뿐 아니라 대기업의 ‘형제 싸움’은 거대기업을 뿌리 채 흔들어 놓고, 조그만 중소기업도 혈육의 싸움, 동업자의 싸움은 공중분해의 파멸사업으로 만들어 놓으며 가족도 ‘형제 싸움’은 돌이킬 수 없는 파멸과 불신과 저주의 콩가루 가족을 만든다. 이렇게 전쟁은 어떤 전쟁이든 인간을 죽음과 빈곤과 질병과 저주로 핍절케 하고 파멸시킨다. 우리 중에 가족과 형제 사이에서, 교회와 예수 공동체 안에서 마귀와 귀신들이 좋아하는 어떤 싸움이든, 어떤 분쟁이나 다툼이든 일어나지 않게 되기를 축원한다.

 

베냐민의 남은 자, 600명의 교훈

 

1. 레위 사람의 부정과 탈선(삿 19: 1-2)

 

지구촌 6,000년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기간은 대략 292년 정도라고 한다. 한 대륙의 나라들이 평화를 유지하며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을 때 다른 대륙에서는 전쟁의 말발굽소리와 죽고 죽이는 군사들의 함성이 있었고, 한 대륙의 나라들이 평안할 때 또 다른 대륙에서는 죽느냐 사느냐, 먹느냐 먹히느냐 혈전의 비행기 굉음과 지축을 뒤흔드는 탱크소리와 바다를 요동하는 함포소리가 세상을 흔들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역사는 전쟁역사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도 나라와 나라가 싸운 전쟁(戰爭, War, Wars)이란 단어가 238회 언급됐고 싸움, 전투(戰鬪, Battle)라는 단어가 181회나 언급됐는데 그 중에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긴 승전기록이 78번이 있고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패전한 기록은 34번이나 있다(78 victories and 34 defeats of Israel). 특히 이스라엘 12지파가 남과 북, 동과 서로 나뉘어 지파끼리 서로 싸운 내전(內戰, Civil War) 기록은 무려 13번이나 되는데 그것은 ① 길르앗 사람들과 에브라임의 싸움(Gileadites and Ephraimites; 삿 12장) ② 11지파와 베냐민 지파(11 tribes and Benjamin; 삿 20장) ③ 첫 번째 왕국분열 전쟁인 11지파와 유다 지파(11 tribes and Judah; 삼하 2: 1-11)의 전쟁 ④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의 전쟁(Between the hoyse of David and the house of saul; 삼하 2; 12-3;1) ⑤ 압살롬의 반역(Absalom's rebellion; 삼하 2: 15-18) ⑥ 세바의 난(Sheba's rebellion; 삼하 20장) ⑦ 남과 북으로 나라가 분열된 두 번째 왕국 분열 전쟁인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의 전쟁(Rehoboam and Jeroboam; 왕상 12장, 14: 30) ⑧ 유다 왕 아비얌과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의 전쟁(왕상 15: 7) ⑨ 유다 왕 아사와 이스라엘 왕 바아사의 전쟁(Asa and Baa놈; 왕상 15; 16-22: 32) ⑩ 이스라엘의 시므리와 오므리의 전쟁(Zimri and Omri; 왕상 16: 3-20) ⑪ 이스라엘의 두 장군 디브니와 오므리(Tibni and Omri; 왕상 16: 21-23)의 정권탈취 내전 ⑫ 예후의 반역(Rebellion of Jehu; 왕하 9: 14-10: 31) ⑬ 유다 왕 아마사와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전쟁(Amaziah and Jehoash; 왕하 14; 8-14) 등이다.

 

오늘 본문과 연결된 사사기 19-21장은 그 중에 두 번째 내전인 이스라엘의 11지파와 베냐민 지파와의 내전 기록인데 이스라엘의 열한 지파와 베냐민 지파와의 동족상잔은 놀랍게도 한 사람 레위 사람의 부정과 탈선에서 출발한다. 손가락 굵기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점점 커져 마침내 댐을 무너뜨리는 대형사고가 되고 옷깃을 스치는 산들바람이 탄력을 받아 바다와 육지를 뒤흔드는 초대형 태풍이 되듯 한 사람의 실수와 범죄가 6만 6,700명이 전사하는 민족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됐다.

 

하나님께 선택된 사람 중에서 다시 선별된 레위 사람, 이스라엘의 영적문제를 책임지는 에브라임의 레위 사람이 축첩을 했다. 그런데 그 첩이 다른 남자와 간음을 하고 레위 사람 남편을 떠나서 친정으로 돌아가 넉 달을 보낸다. 레위 사람이 베들레헴으로 첩을 찾아가 설득하고 자기 집으로 함께 떠나려는데 첩장인이 딸을 부탁하느라 5일 동안을 붙잡고 사위를 대접하며 놔주질 않는다. 그러나 안식일 문제도 있고 해서 다섯째 날 밤에 레위인이 베들레헴을 떠나는데 한 시간 반 거리의 예루살렘 근처에 왔을 땐 이미 날이 어두워졌다. 당시 예루살렘은 이방 원주민 여부스 족의 성읍이라 레위인은 기왕이면 그곳보다는 하나님의 백성이 사는 베냐민 땅 기브아에서 숙박하려고 야행 길을 강행군한다.

 

그런데 그가 기브아에 도착해 유숙장소를 찾았으나 나그네 접대의 민심이 사라진 그곳에서 찾지 못하고 고생을 하는데 마침 밭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노인을 만나 그 집에서 하룻밤을 쉬게 됐다. 그러나 밤중에 그 집을 찾아온 불량아 깡패들이 레위 사람을 남색(男色)하겠다고 난리를 치자 레위인이 자기 대신 첩을 내주자 기브아 난류깡패들이 밤새도록 그녀를 윤간하므로 첩이 죽는다.

 

첩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에브라임으로 돌아온 레위 사람은 첩의 시체를 열두 토막으로 잘라 이스라엘 열두지파에 보내므로 베냐민 사람들에 대한 거국적 차원의 대처 방안을 강구한다. 엽기적인 토막시체 사건은 마침내 열한 지파를 하나가 되게 하고 베냐민 지파를 응징하는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이 Civil War, 내전으로 열한 지파는 40만의 군인 중에서 4만 명이 전사하고 베냐민은 26,700명에서 26,100명이 죽는 골육상쟁의 비극을 겪는다.

 

이 전쟁은 당시 이스라엘의 신앙을 책임지고 거룩하게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 레위인의 부정하고 음란한 사생활이 내전의 시발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인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 사람들까지도 짐승보다 못한 음란한 동성연애와 도덕적 타락이 만연했다. 이스라엘의 총체적 타락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주의 종들과 교회 직분 자들과 교인들은 그리고 현대인들은 그들보다 거룩하고 경건하며 성결한가? 하나님 앞에 자신 있게 내 놓을 만큼 거룩하고 경건하며 성결한가?

 

오늘 지구촌에 동성연애자들이 모이는 교회가 늘어나고 있고 심지어 동성애자가 성직을 받는 해괴한 일이 생기고 있다. 역사상 어느 시대에도 없던 해괴망측한 일들이다. 바울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않으며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해지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 하나님을 반역하여 육체를 더럽힌 죄의 결과로 성적부정과 성도착이 생겼다고 했고(롬 1; 21-24) 사람들이 하나님을 반역하여 정신과 혼을 더럽힌 결과로 동성연애와 레즈비언이 생겼다고 했으며(롬 1; 25-27) 사람들이 마음에서 하나님을 쫓아내고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며 하나님을 반역하여 자기의 신성한 영혼을 더럽힌 결과로 21가지의 죄악과 각종 부패인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 교만한 자, 자랑하는 자, 악을 도모하는 자, 부모를 거역하는 자, 우매한 자, 배약(背約)하는 자, 무정한 자, 무자비한 인간으로 버림받았다(롬 1; 28-31)고 기록했다.

 

그렇다. 동성애자와 레즈비언은 그들 속에 특수유전자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을 반역하여 정신과 혼을 더럽힌 죄와 재앙의 결과다. 그런 자들이 사람의 영혼을 책임지는 성직자가 된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종말시대 성도는 시대를 잘 분별해야 한다. 사사시대 레위인의 타락이 민족상쟁의 비극을 가져왔듯 하나님의 종들의 타락과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목사, 선교사, 기도원 원장, 신학교수, 장로 권사 집사가 타락하면 교회와 성도들의 가정과 국가에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옴을 깨달아 근신하고 깨어있어 교회와 주의 종들을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2. 동족상잔의 결과

 

피 묻은 살과 뼈의 시체토막을 받고 대경실색한 열한 지파 대표들은 파발마를 급파하여 국가위난을 알리고 가나안 최북단의 성읍 단에서 최남단 성읍 브엘세바까지의 열한 지파 군사들 사십만을 동원하여 민족의 성지 미스바(Mizpah)에 모이게 했다. 미스바는 사무엘 시대(삼상 7: 5-12)와 왕조시대 말기인 그달리야 총독 때(왕하 25: 23)에 그리고 마카비 시대에 회중총회가 열렸던 곳으로 국가적인 총회장소로 유명한 성지이다.

 

미스바 대회에 모인 족장들은 토막시체를 보낸 레위인에게 사건정황을 들은 후 40만 연맹군으로 베냐민 지파를 응징하기로 결의한다. 그리고 얼마 후 뒤늦게 시체토막을 받은 베냐민 지파도 열한 지파 연맹 소식을 듣고 반발하여 26,700명의 군사로 결사항전을 외치며 전쟁준비를 한다. 이렇게 이스라엘 열두 지파, 열한 지파의 연맹군이나 한 지파 베냐민은 먼저 자기들 속에서 제거해야할 죄는 덮어둔 채 혈기로 문제해결을 하려했다.

 

그 결과 11대 1의 전쟁, 열한 지파 대 베냐민 지파의 첫 번째 싸움은 놀랍게도 연맹군 22,000명이 전사를 당하고 베냐민이 대승한다. 그리고 두 번째 전투에서도 어이없게 또 18,000명이 전사당한다. 이렇게 두 번의 격돌에서 40,000명이 전사했으니 40만에서 십일조인 4만의 군사가 죽은 것이다. 그래서 열한 지파는 두 번의 패전을 통해 ① 자기들 속에 제거해야할 죄를 회개하고(삿 19: 1-21:15) ② 수효만 믿고 방심한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며 금식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승전응답 약속을 받고 세 번째 전투를 벌여 26,100명의 베냐민 군사를 괴멸시킨다. 베냐민은 26,700명에서 26,100명이 죽고 600명만 남는 멸족위기를 만났다. 그렇다. 이것이 열한 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싸웠던 동족상잔의 결과이다. 그리고 오늘 나와 여러분이 피를 나눈 골육형제와 불목하고 싸우며 예수사랑을 나눠야 할 내 Christian 형제자매와 싸우는 결과이다.

 

나는 한때, 4년 반이나 ‘내 땅 찾기’를 위한 어리석은 법정싸움을 했던 적이 있다. 당시 나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며 합법적이라고 생각하여 이기기를 전력하다가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4년 반 만에 모든 것을 양보하면서 극적합의를 보긴 했지만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4년 반 동안에 변호사비만 6만 불이 넘는 경제적 손실은 개척교회로썬 큰 부담이지만 무엇보다 이웃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의 살인죄(정말 죽이고 싶은 마음도 생겼었다)는 얼마나 컸으며 내가 당한 육체적 고통(정신적 고뇌로 Stroke를 맞아 얼굴이 마비되고 입이 돌아가고 심장이 조여지는 압박에서...당뇨, 고혈압 등)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건강을 괴롭히고 있으니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죄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마 이것은 나와 우리 교회만 겪은 고통이 아니었을 것이다. 상대편도 같은 아픔과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입으로는 예수 사랑을 말하면서 작은 이익 앞에 양보하지 못하고 인간 고집만 내세웠으니 주님 앞에 부끄러울 뿐이다. 이미 오래 전에 끝났고 잊어버린 일이었지만 얼마 전에 그 일이 생각나 자신의 부족을 다시 뉘우치며 회개하다가 내 맘을 아프게 한 목사를 위해 기도하라고 해서 두 달 동안 축복기도를 했지만...그래도 ‘나 답지 않았던 일’이 흉터처럼 남아 있음이 부끄럽다.

 

바울은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If youbite and devour one another, take care lest you be consumed by one another; 갈 5; 15)고 말했다. 그렇다. 피차 서로 물고 먹으면 둘 다 망한다. 물새와 조개가 서로 물고 싸우면 어부만 유익을 얻는다. 원수 마귀에게 어부지리를 얻게 하는 부끄러운 일은 내겐 없는지 자신을 살필 수 있기를 축원한다. 우리가 6. 25로 민족상쟁을 하고 60년이 넘는 지금까지 총칼 맞대고 싸우고 있는 동안 일본은 세계 경제대국으로 일어섰고 중국은 세계 군사최강국으로 일어나 거대한 몸집을 움직이고 있음을 보라.

 

백성은 굶어죽는데 남침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선군정치를 앞세워 땅굴이나 파고 미사일이나 핵무기 개발에 혈안이 돼 있으면 북한의 파멸은 자명하다. 이젠 평양마저도 배급할 식량이 모자라고 군인 중에서 장교들만 배급을 받고 사병들까지 인신매매와 마약밀수로 배를 채우는 극단상황에서 전쟁을 준비하는 무모한 일은 버려야 한다.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한다.

 

한국의 군인들도 육해공군이 밥그릇 때문에 서로 싸우지 말아야 하고 상관과 졸병, 동료와 동료가 싸우지 말아야 하며, 기업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도와야 산다. 대기업이 골목길 구멍가게까지 다 차지하면 안 된다. 허리가 없는 머리는 죽은 시체다. 중소기업이 살고 중산층이 살아야 대기업도 살고 나라가 건강해진다.

 

한국교회 각 교단 총회장과 감독, 각 기관장들도 서로 싸우면 피차 망함을 명심하자. 북미주 5,000여 교회를 이끄는 Great New York, Metropolitan Washington... Chicago, Atlanta 교회협의회와 교역자회 그리고 메릴랜드와 워싱턴 교회 협의회와 목사 교역자회도 마귀가 좋아하는 싸우는 일을 멀리하자. 그리고 워싱턴의 500여 모든 교회들이 주의 종과 성도들, 성도와 성도가 다투고 싸우는 일을 멀리하고 서로 돕고 사랑하자. 서로 물고 먹는 싸우는 것은 마귀가 좋아하는 일이요 마귀의 도구로 쓰임 받는 일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종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 종들로 선택된 우리가 마귀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사람들답게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보고 또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예수님의 기쁨을 충만케 하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3.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

 

이스라엘 열한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내전으로 6만 6,100명이 죽은 것은 당시로썬 큰 전쟁이었는데 역사상 지구촌에서 동족상쟁으로 많은 사상자를 낸 내전은 얼마든지 있다. 1950년 6월 25일부터 53년 7월 27일까지 3년 1개월 동안 있었던 남북한의 동족상쟁은 남한의 사상자 150만, 37만 3,599명의 사망자와 22만 9,625명의 부상자, 8만 4,532명의 납치, 10만 명이 넘는 전쟁고아와 20만 명의 전쟁미망인이 생기게 했고 45%가 넘는 공장시설 파괴와 23억 달러가 넘는 피해액을 남기면서 끝났지만 지금 언제라도 다시 터질 수 있는 휴화산 상태다.

 

1966년부터 76년까지 10년 동안 중국공산당 내부 반대자를 제거하는 권력투쟁에서 마오쩌둥은 문화혁명이란 이름의 동족상잔으로 8천만에서 1억 정도의 동족을 살해했고, 1975년부터 79년까지 4년 동안 독립운동가요 군인이며 정치인이던 폴 포트는 캄보디아 좌파정권, 크메르루즈를 등에 업고 사회주의 공산국가를 세우기 위해 2-300만의 동족을 살해했으며, 종교와 사상 때문에 남과 북으로 나뉘어 22년 동안 동족상쟁을 하던 아프리카의 수단도 200만 이상의 동족을 죽이고 각자의 길을 가기로 선택했다.

 

이렇게 한 피를 받은 동족끼리 창검을 맞댄 상쟁, 민족과 민족 부족과 부족 간의 전쟁인 형제끼리의 Civil War(내전)은 눈에 보이는 전쟁이지만 우리 속에서 영과 육, 영과 정신이 서로 싸워 사람의 인격을 송두리째 파멸시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도 있다. 바울은 갈 5: 16-24에서 그것을 거듭난 성도들이 날마다 겪어야 하는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의 전쟁이라고 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육체의 사람이기 때문에 육체의 소욕대로 산다. 그러나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성령이 충만할 때는 성령의 소욕대로 살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육체의 소욕이 유혹하므로 두 가지 욕망이 마음속에서 대립하며 투쟁한다. 바울은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인격 속에서 동족상쟁하는 신앙에서는 우리 소원들이 이뤄질 수 없다고 했다(17절) 그래서 참 성도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령의 능력으로 육체의 소욕들을 쳐서 죽이고 정복하는 성도들이다. 그들이 인생 승리자요 신앙의 성공자이다.

 

우리를 유혹하여 믿음과 신앙을 넘어뜨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막는 육체의 소욕은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며,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이며,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 방탕(放蕩)함이고 나를 믿음에 든든하게 세워주는 성령의 열매, 내 신앙을 든든한 반석 위에 세워주는 성령의 소욕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다(갈 5: 19-23). 성령의 열매로 육체의 욕망을 정복하므로 모든 소원이 주 안에서 성취되는 승리의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4. 베냐민의 남은 자, 600명의 교훈

 

이스라엘 열한 지파의 연맹군 40만과 베냐민 지파 26,700과의 전쟁은 연맹군 4만과 베냐민의 26,100명, 총 66,100명이 죽는 전쟁으로 끝났다. 그러나 이스라엘 내전의 전쟁결과는 비참했다. 연맹군은 36만의 군인이 살아남았지만 베냐민 지파는 겨우 600명만 살아남게 된 것이다.

 

열한 지파는 베냐민 지파와 전쟁을 시작하기 전 미스바 대회에서 “우리 중에 누구든지 베냐민 사람을 사위로 삼지 않겠다”고 맹세했었는데 전쟁이 종결되고 베냐민 지파에 600명의 남자만 남게 된 것을 알게 되자 하나님의 언약궤와 대제사장 비느하스가 있는 벧엘에 모인 이스라엘 장로들은 자기들의 조급했던 맹세를 생각하고 통곡을 한다. 그래서 베냐민 지파를 다시 살려 열두 지파를 만들기 위해 미스바 총회에 참여치 않고 발뺌한 갓 지파의 야베스 길르앗을 쳐서 그 성의 처녀 400명을 베냐민 청년들의 아내로 삼게 해준다. 그러나 아직도 200명의 베냐민 청년이 남아 있게 되자 두 번째로 해마다 장막절에 실로에서 이스라엘 처녀들이 절기축제에서 춤을 추는데 베냐민 청년들에게 포도원에 숨어 있다가 춤추는 무녀 중에서 200명의 처녀를 붙잡아 데려가 아내를 삼게 해준다. 이렇게 해서 멸족위기의 베냐민 지파는 다시 이스라엘의 한 지파가 된다.

 

26,700명에서 26,100명이 죽고 600명 만 남은 베냐민 지파는 거의 멸족 위기, 멸파(滅派) 위기였었다. 만일 그때 나머지 600명까지 다 죽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창 49: 27의 야곱의 축복유언과 신 33: 12의 모세의 축복선언에서 베냐민에 관한 예언이 무효가 될 것이니 성경을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베냐민은 600명만이라도 살아남았어야 했다. 그렇다면 베냐민 멸파 위기가 주는 교훈, 베냐민의 살아남은 자 600명 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못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는 분(사 44; 26)이시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가는 말은 헛되이 다시 돌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사 55: 11)이시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도 베냐민 지파는 살아남아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은 세상에서 미련한 것, 약한 것, 천한 것, 멸시받는 것, 없는 것들을 택하여 강한 것과 지혜 있는 것과 있는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신 것이다(고전 1; 27-29) 만일 그때 베냐민 청년 600명을 남겨두지 않고 다 죽여 없앴다면 훗날 사도 바울은 어떻게 나왔겠는가?

 

셋째로, 무엇보다 베냐민의 남은 자 600명의 비밀은 지구 종말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의 대 환난을 이기고 마지막까지 살아남게 하실 Remnant, 남은 자의 표상이다.

남은 자, Remnant 사상은 성경 전체의 거대한 핵심사상이다. 하나님은 베냐민의 멸족위기에서 600명을 남기셨고 그 후손에서 문외사도 바울이 나오게 하셨으며 엘리야시대에 7,000명을 남기셨고 남긴 사람 중에서 문외제자 엘리사(엘리사는 길갈, 벧엘, 여리고, 요단에 있는 엘리야 신학교 학생이 아니었다)가 나오게 하셨듯이 하나님은 적그리스도의 7년 대 환난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천년왕국에 들어가서 그리스도의 나라를 건설할 자들과 천년왕국에서 태어나는 수천억, 수조 억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도하여 구원할 특별 사명의 종들을 남겨두실 것이다.

 

대 환난에서 살아남는 사람들은 먼저, 지금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의 ⅓이다(슥 13: 8-9) 그날에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2,100-2,300만 유태인 디아스포라 중에서 교만하고 자랑하는 자 ⅔는 Holocaust(대학살)로 죽고(습 3: 11)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며 곤고하고 가난한 중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자 ⅓만 살아남게 되는데(습 3: 12, 욜 2: 32, 롬 11: 26, 슥 12; 10-14) 환난에서 살아남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스라엘로 돌아와 천년왕국에 들어간다.

 

그다음, 세계 열국에서 적그리스도에게 우상숭배를 하지 않고 666표를 받지 않은 신(信), 불신(不信)을 초월한 모든 사람들과 예수 믿는 신앙을 끝까지 지키고 적그리스도를 대적한 성도들이다(계 14: 6-12). 이사야는 열방과 열국에서 살아남는 자가 많이 있을 것(사 45: 20-22, 60: 6-7)이라고 했고 예레미야는 이스라엘과 함께 종말에 회복될 나라들을 이집트와 모압과 암몬과 엘람(렘 46:26, 48: 6, 47, 49: 6, 39)등 여러 나라가 될 것이라 했으며 스가랴는 열국의 많은 나라 심지어 아마겟돈 전쟁에 참전해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전쟁을 했던 나라 군인들까지(슥 2; 11, 9: 5-7, 14: 16)도 천년왕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로 종말시대에 성도들과 주의 종들에게 때를 따라 영의 양식을 나눠주는 청지기 종(마 24: 45-47, 눅 12; 42-48)들과 오직 의롭게 행하고 정직히 말하며 토색한 재물을 가증(可憎)히 여기며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않고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않으며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않는 주의 종들(사 33: 15)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거짓과 아첨을 버리고 박해 중에서 가련함과 궁핍으로 눌림과 탄식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말씀으로 시련을 이기는 주의 종들(시 12편)은 대 환난에서 피하게 하는 축복과 천년왕국에서 말씀을 전하는 특별 사명자로 축복하신다(욜 2: 32). 베냐민의 남은 자 600명처럼 대 환난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주님과 함께 천년지복을 누리며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축복의 성도들이 많이 나올 수 있기를 축원한다.

 

 

 

 

 

 

 

 


김엘리야목사(워싱턴주기도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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