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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9일 00시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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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조은칼럼]양아치이즘
마산에서 학교를 다닐 때 우리는 넝마주의 곧 폐품을 모아서 파는 사람들을 양아치라고 불렀습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때는 대나무로 엮어 만든 큰 바구니를 어깨에 짊어지고 집게 같은 지팡이를 들고 삼삼오오 무리지어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시비가 붙거나 괜한 다툼이 싫어 모두들 피해 다녔습니다. 뒤에 메고 다니는 바구니에는 폐품만 넣었던 것이 아니고 지나가다가 값나가는 옷이나 물건들이 있으면 여지없이 몰래 챙겼고 그러다가 들키면 오리발을 내밀거나 협박을 하기 때문에 그냥 다들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특징 때문에 학교에서 예의를 모르는 학생들이 있으면 모두가 “니가 양아치가?”라고 불렀습니다.

양아치를 사전적인 의미만 살펴보면 그냥 넝마주의나 깡패지만, 잘 살펴보면 남의 것을 좋아하고 아래위가 없고 무리지어 다니고 누구나 싫어하지만 그 앞에서는 말을 못한다는 특징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많은 비난을 받았기에 웬만한 비난에는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싶게 다른 사람을 비난할 수 있었고 장난삼아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다는 것을 즐깁니다. 오늘날 저는 이렇게 비난하는 사람들을 양아치라고 부르고 그 문화나 집단형성을 양아치이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양아치들의 모습은 이민사회를 비롯해서 한국의 10년 전부터 시골 교실에서 도시의 교실까지 퍼졌고, 지하철이건, 공공장소이건 어디나 보이고 있습니다. 그나마 희망을 가져야 되는 곳이 교회입니다만 오히려 더 할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쓰러뜨리기를 원하는 악령의 역사가 교회 안에서 샤머니즘과 함께 양아치이즘도 한몫을 거들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공권력이 무서워서인지는 몰라도 주먹이나 폭력보다는 말로써 혼란을 야기 시킵니다. 양아치의 말은 보통사람들의 말과 다릅니다. 살리는 말보다는 죽이는 말을 하여 더 큰 환멸, 더 깊은 불만, 끝없는 불안, 혼란과 분노를 퍼뜨립니다. 그 씨앗은 또 다른 양아치 집단을 생성하고 우리 크리스천의 의미 있는 삶을 부정적으로 위협합니다. 아니면 말고 식의 루머, ‘~카더라’, 글로도 진화된 악성 댓글 등이 대표적입니다. 세상은 이런 곳입니다.

크리스천은 말을 하는 것도 잘해야 하지만 말을 듣는 것은 더욱 잘해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보면 대부분의 중요한 사건, 특별히 불행한 사건들을 보면 배후에 악한 말, 양아치의 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말들을 잘못 듣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왜 타락했습니까? 사탄의 말을 듣고 타락해서 일어난 사건 아닙니까? 그들만 고생합니까? 그 후손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죽음과 병의 고통에 시달립니까?

모세가 12지파에서 한명씩을 뽑아 온 가나안땅을 정탐하라고 보내었습니다. 그 12명이 가나안땅에 들어가 보니깐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10명의 정탐꾼은 단점만 보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선동합니다. 가나안땅에 가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요 말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넘어갑니다. 신명기 14장을 보면 선동했던 10명은 그 사건 직후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에 선동 당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날 이후 39년 동안 험한 들판, 그 더운 사막에서 별별 고생을 다하다가 가나안땅을 밟아 보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우리는 양아치들의 비난과 부정의 말에 넘어가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틀림없는 방법은 긍정적이고 위하는 말이면 들으세요. 그런데 남을 살살 깎아내리고 자기가 속한 단체나 교회를 어렵게 만드는 말은 듣지 마세요.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은 살려주는 영이고 도와주는 영이고 이루어가는 영이지 파괴하고 죽이고 흠담하는 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살리는 말이 우리교회와 가정에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민 14:36-38) 『[36]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으로 모세를 원망케 한 사람 [37]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38] 그 땅을 탐지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



장용선 목사(조은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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