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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23시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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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박효숙](분노연구1)수동공격형 분노

분노연구(1) 수동공격형 분노

자녀의 수동공격형 분노, 어디서 오나

운전을 하다보면, 하얀 구름 아래 초록이 너무 눈이 부셔서 자주 길을 잃기도 하고, 길가의 이름 모를 꽃에 한눈을 팔다 길을 놓치기도 합니다. 게다가 뉴저지는 아직도 익숙하지 않아 도로도 잘 모르고 로컬길이 많아 혼란스럽습니다. 그래서 GPS를 하나 구입했습니다. GPS는 신통하게도 어렵고 힘든 길을 척척 찾아 주고, 잘못 가면 몇 번이고 잘못 계산했으니 돌아가라고 운전자가 바른 길을 갈 때까지 계속 반복해서 시끄럽게 소리칩니다. 속도를 조정해주고 바른 길을 알려줍니다. 요즘 새로이 개발된 GPS는 시키는 대로 길을 잘 찾아가면 잘했다고 칭찬도 해 줍니다. 그러나 운전자가 길을 알고 있는 경우에는 GPS는 소용이 없어집니다. 칭찬도 그리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그저 시끄러운 기계음일 뿐입니다.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인간발달의 측면에서 볼 때 아이들이 자라 독립하는 과정을 가만히 보면 부모의 역할과 GPS의 역할에 공통점이 많이 있습니다. 자녀들이 어려 아직 힘이 없을 때는 아무리 부모가 심한 잔소리를 하고, 부모 맘대로 일을 추진해도 자녀들은 부모가 시키는 대로 복종하고 따릅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부모나 자녀 모두 그것이 사랑인줄 잘못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녀가 힘(force)이 생겨서 자기 스스로 무엇인가 해 나갈 수 있어지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부모의 조언은 그저 시끄러운 잔소리로만 들릴 뿐입니다. 인간의 발달에서 중요한 것은 자녀들이 힘(power)이 생기기 전,  즉  인간의 결정적인 시기(태어나서 60개월까지)에 인생의 로드맵인 정서를 얼마나 건강하게 형성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분노 감정은 24개월 전에 생겨나서 서서히 마음에 자리를 잡기 시작합니다. 분노의 감정은 인간의 본성 중의 하나이므로 분노 감정의 좋고 나쁨을 논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고, 표출 되어지는 행동과 반응에 대한 고찰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흔히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과 표출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중요한 것은 분노를 어떻게 표출하느냐가 관건입니다. 건강한 분노를 가지고 행복하게 살 것인가, 병든 수동공격형 분노를 가지고 불행하게 살 것인가는 어린 시절 부모를 비롯한 양육환경에 달려있습니다.

젖먹이 아이가 사납게 젖을 자주 깨물어 고통을 호소하며 상담하러 온 내담자가 있었습니다. 엄마는 자신의 아이의 산만한 성격을 탓하고 아이를 고쳐야 한다고 했지만 사실 이런 경우 문제의 원인 제공자는 젖먹이 엄마에게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젖먹는 아기에게 젖은 세상이고 우주입니다. 아무리 어린 갓난아이라고 하더라도 자기의 우주를 지킬 힘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젖을 무는 행위는 자신의 우주를 어지럽히는 적에게 대항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젖꼭지를 무는 아이의 경우, 젖먹이 입장에서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런 경우 양육자가 양육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다거나 바쁜 엄마인 경우 젖을 먹일 때에 아이에게 집중하지 못한다거나 또는 다른 일을 병행하느라 산만하여 젖가슴을 흔들게 된다면, 젖먹이는 위대한 행위인 젖 빠는 행위를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젖을 먹이면서도 엄마가 다른 생각에 빠져 있거나 젖먹이에게 몰두할 수 없는 부적절한 환경, 즉 아기는 불편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젖꼭지를 물게 되는 것입니다.

젖꼭지가 물린 엄마는 젖먹이 아기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화풀이를 하게 되고, 젖먹이는 자신의 유일한 무기인 입을 통해 자신의 우주를 지키기 위한 피나는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은 안타깝게도 삶 속에서 계속 반복을 거듭하게 됩니다. 이렇듯 억울하게 당한 분노를 삼킨 어린 시절을 보내고 감정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면 건강하지 않은 수동공격적인 분노의 표출이 생활화되어 괴로움을 숨기거나 억압하고 일부러 어긋나게 행동하게 됩니다.

수동공격형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어린 시절 부모의 습관적인 수동공격적인 언행으로 인해 수동공격형 인간으로 학습된 경우입니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됐어. 그만해라“라고 감정을 무시하는 경우에 해당됩니다. "엄마는 아무데도 안가니까 걱정하지 말고 놀아” 라고 거짓으로 안심시켜놓고는 자녀가 안보는 사이에 살짝 나가 시장을 다녀온다거나 “화내지마, 울면 안돼” 등으로 감정을 부정하도록 습관적으로 강요한 경우도 해당됩니다, 또는 “저리 가서 놀아, 엄마는 바빠” 등의 무관심한 행동을 생활화 한 경우, “너 그걸 말이라고 하니” 등의 멸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를 예로 들을 수 있습니다.

무시하는 태도는 종종 얼굴 표정만으로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답 대신 눈을 아래로 내려 깐다거나 눈을 위로 치켜뜬다든지, 입 꼬리를 내리고 눈을 찡그린다든지 하는 비언어적 행위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부모 형제나 이웃이 이런 표정을 지으면 이것은 바로 가슴에 꽂히게 되고 대개의 경우 폭력적인 방법이 동원됩니다. 질문을 했는데도 대답 없이 못들은 척 그냥 밥을 먹는다거나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이야기한다거나 하는 부모를 둔 자녀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동 공격성을 내재화하게 됩니다.

가족사에 화병이나 중독, 특정한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면 수동공격성은 한층 더 증가합니다. 수동 공격성은 유전되거나 학습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빠를 위해 자동차를 세차하다가 새로 산 차를 흠집이 나게 했다거나, 엄마를 위해 집안청소를 하다가 꽃병을 깨뜨렸을 때, 착한 일로 칭찬을 받으려 했던 선한 의도는 무시당한 채 결과만을 가지고 심한 꾸지람을 듣게 되면 아이는 좌절감을 느끼고 억울한 마음을 품게 됩니다. 또는 오빠나 남동생은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리고 사는데 딸인 자신은 교육 혜택조차 받지 못했다거나, 새엄마나 할머니에게 차별 대우를 받았을 때에도 수동 공격성은 더욱 깊이 내재됩니다. 이렇듯 육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희생당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경우 어린 시절의 외상이 아직 아물지 않은 채 곪아 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상처가 덧나 세월을 지내면서 자신이 가진 마음의 짐인 분노를 신체화 증상을 통해 자신을 괴롭히거나 배우자나 부모 형제 또는 다른 이웃에게 쏟아 내게 됩니다.

특히 결정적인 시기인 유년기에 자기 내부에 있는 불만이나 의심을 적극적인 방법으로 분명히 반대하거나 싫다는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유보하거나 은근한 방법, 교묘한 방법으로 반대하는 태도를 학습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간혹 저항의 표현을 “아, 피곤하다 그만하자” 등으로 얼버무리는 부모에게 자라난 경우 부모의 성향을 그대로 학습하게 됩니다. 겉으로 보기에 수동공격형의 사람은 순해 보이고 착하고, 정에 잘 끌리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수동공격형 분노의 특성상 대놓고 반발하거나 저항하지 못하기 때문에 약자들이 강자 앞에서 행하는 행동이 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유부단이나 일의 지체도 수동공격형 분노의 일종입니다. 일을 해결할 충분한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핑계로 작업을 지연시킨다거나 가정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잠자리를 거부한다거나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왔는데도 전업주부인 아내가 식사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거나 하는 방법으로 교묘하게 상대를 분노하게 하고 속을 상하게 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됩니다.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랐다면, 부모는 아이에게 수동공격적인 자녀가 되도록 교육한 것과 같습니다. “아이들은 배우고 들은 대로 하지 않고, 본대로 한다.”는 옛말이 그대로 들어맞습니다.

유년기의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느끼면, 세상이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한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어릴 때 부모로부터 충분한 인정과 사랑을 받아야 그것을 바탕으로 건강한 자아를 형성합니다. 부모에게 받은 충분한 사랑은 자녀들의 눈을 빛나게 하고, 삶의 동기를 부여합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을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괴로워지고 몸이 긴장된다면 수동 공격성이 내재된 슬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억은 쌍방관계라서 행복한 사람은 기분 좋은 추억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 기억이 부정적인 추억보다 더 영향력이 있어서 긍정적인 안목을 가지게 됩니다. 반면에 불행한 사람은 부정적인 경험을 더 중요시합니다. 무슨 일이든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하며 경험되어지는 모든 일에 부정적인 그림자를 드리우며 부정적인 안목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인간의 고뇌는 18세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서 평생을 두고 자신의 사고 속에서 크게 영향을 미칩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과 투쟁하면서, 계속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는 자라 어른이 됩니다. 부모인 우리는 또한 자녀였고, 자녀들은 또 언젠가  부모가 됩니다. 문제의 키는 부모에게 있습니다. 모르고 저지른 실수가 있다면, 그래서 자녀가 상처를 받았다면, 자녀에게 한걸음 다가가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용서 받을 일이 있으면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부모의 부모가 하지 못한 일을, 자녀인 부모, 즉 우리들은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박효숙(청암아카데미 부설 분노치료연구소장)
상담예약: hyosook05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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