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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23시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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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참빛칼럼]치유사역
 

치유 사역은 가르침의 사역과 복음전파 사역과 함께 예수님이 행하신 중요한 근간적 사역이다.  목회사역에는 이 세가지 기본 사역을 다 아우르게 되는데도 특별히 말씀사역자나 기도사역자, 전도사역자나 티칭사역자 혹은 치유사역자나 찬양사역자라고 구분하듯이 일컫는 이유는 이분들이 받은 특별한 콜링과 함께 현저한 은사로 독특하게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강한 사명감 때문일 것이다.

새삼 사역(使役)의 뜻을 되새긴다면 사역(使役)은 한 마디로 소명(召命, calling)이 있어서 하게 되는 사명(使命)이라 할수있는데, 주인에게 목숨을 건 부르심을 받고 주인에게 부림받는 일을 의미한다(고전3:5). 이와같이 사역자는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걸고 주께 순종하며 세상의 사람을 섬기는 자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사역의 본질적인 의미에 있어서 어떤 기득권이나 차별이나 형식이나 편견이나 텃세가 자리잡아서는 아니될 것이다.  

요즈음 사역의 성격에 따라 사역의 종류도 각양각색 다양한 것을 보게된다.  가정 사역, 중보기도 사역, 쎌 사역, 바나바 사역, 노인 사역, 홈 레스 사역, 평신도 사역, 문화사역, 호스피스 사역, 팀 사역, 탈북자 사역등… 심지어 성경사역과 예배 사역도 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중보기도’ 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유인즉 중보기도자는 예수님 단 한분 외에는 있을수 없다라는 이유에서 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중보기도는 예수님이 행하신 일에 동참하는 자세로 임하는 것으로서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하늘과 땅의 권세를 위임 받은 크리스찬들이기에 주님께서 하신 일에 당당히 동참할수 있는 것이다. 

앞서 열거한 다양한 사역의 본질적 주체는 당연 성령 하나님이시며 또 그렇게 되도록 해드려야 마땅하다.  말씀을 대언하는 사역도 굳이 바르트적인 표현을 빌리지 않아도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것 보다는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서 말씀하시도록 하는 것이 엄밀한 의미에서 바른 것이다.  즉 영의 귀를 열어 말씀을 경청하고 이를 전달하는 것이 신실한 일꾼의 자세다. 치유사역이나 찬양사역,
도사역도 결국 같은 내용인 것이다.

이렇게 사역에 있어서 나의 시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각으로의 관점의 변화를 위해서 그리고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능력을 받도록 노력하는 것은 모든 사역에 필수적인 것인데, 치유사역 또한 더욱 그러하다. 치유사역은 특별히 믿음과 말씀과 기적이 포함된 기도사역 이기도 하다.

치유는 예배중에도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말씀을 통해서 찬양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언제든지 일어날수 있지만 치유사역은 치유를 목적으로 특별히 기도에 집중하는 시간을 요한다.   

치유사역의 핵심에는 전적인 자기 비움-겸손에서 나오는 오직 회개와 오직 용서와 오직 축복의 영성이 자리잡고 있다. 치유사역을 통해 자신의 죄만에 국한된 것이 아닌 타자의 죄를 위해서 – 이전의 선조들이나 남들의 죄를 대신해서도 - 회개하고 용서하고 축복하는 깊고 순수하고 확장된 영성의 은혜를 충만히 체험할수있다.   

한 예로, 전인 치유 사역의 다단계중 세대치유는 세대적 대물림의 상처()에 대한 치유를 다루고 있다.  세대치유의 원리는 우리의 죄는 주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이미 담당하셨지만 아직도 후손에게 나타나는 뿌리깊은 죄의 영향력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끊을때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치유를 체험하는 것이다. 

전인치유 사역은 보통 우리가 알고있는 유전인자나 가정환경의 영향 외에도 대물림되는 죄와 질병, 성격이나 습관 그리고 상처를 다룬다( 20:5; 28:58-59).  특히 불교와 유교, 신사참배, 샤머니즘과 토속신앙, 역술등의 문화유산을 조상으로부터 이어받은 우리 민족은 기독교적 문화유산을 이어받은 민족들보다 더욱 철저한 치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세대를 통해 대물림되는 상처에는 나라와 민족의 상처도 의당 들어있다.  반만년의 역사동안 930여차례 외침을 받아왔던 파란만장한 한민족의 역사로 인해 우리의 국민성 안에는 지나친 생존욕이 있는데 이로인해 기본에 충실치 못하는 부실함과  투쟁적이고 경쟁적인 기질이 다분히 깃들어있다고 한다. 

또 사회계급과 유교 문화의 폐단으로 인한 상민과 적자와 서자, 소작농들의 깊은 갈등의 골, 남존여비로 인한 여성들의 한(), 당파싸움과 세도가들의 횡포로 인해 희생된 가문들, 일제의 억압과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로 인한 희생자들, 6.25동란으로 인한 피해자들과 이산가족의 한, 우익과 좌익의 정치적 혼돈으로 인한 학생들과 전경, 군인들과 정치인들의 한, 급격한 경제성장과 자본주의 도입으로 인한 가난한 자들의 한, 지역간의 반목으로 희생양이 된 가문들의 아픔. IMF 여파로 인한 기업관계자들의 아픔과 노숙자들의 한과 농민들의 한()(나라와 민족치유, 이 사라 선교사)거기다 이민온 한인 디아스포라들만이 가지는 특성적인 아픔들도 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적 영향력으로 우리 민족안에 형성된 두려움, 분노, 상실감, 긴장감, 불안감, 외로움, 배신감, 절망감, 미움, 억울함, 수모와 수치감, 불신감과 슬픔등이 치유되도록 기도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더우기 나라와 민족의 상처는 나와는 거리가 먼 문제가 아닌 가장 현재적이면서도 뿌리깊고 광범위하게 그 영향이 미치는 매우 실제적인 문제인 것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속의 죄성의 뿌리를 될수록 철저히 캐들어가는 작업을 통해 우리는 죄에 대해 더욱 진지해지고 단호해지고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깊은 상처가 치유된 후에야 누구나 진정한 용서와 화해의 단계로 옮겨갈수 있으므로 우리 모두는 개인과 사회와 민족의 안녕을 위해서 더욱 치유기도에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한국민들의 성품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악한 영이 분리, 분열의 영과 시기, 질투의 영 그리고 비판, 판단, 비방의 영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모국과 이민의 교회사회 안에서도 우리의 오랜 신앙적인 열심에 비해 얼마나 많은 비생산적이고 비상식적인 부끄럽고 어려운 일들이 여지껏 끊이지 않고 만성적으로 일어나는 특성적인 패턴을 형성해 오고 있지 않은가?

이 모든 개인과 사회, 민족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연대의식을 가지고 자신과 이 세대와 한인 동포들과 조국의 치유를 위하여 회개와 기도의 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로써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특권을 깨닫고 얽혀있는 죄의 관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물리침으로 치유를 도모해야 할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을 축복하셔서 열방을 치유하고 선교하는 국가로 쓰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다. 

치유사역이 선택이 아니라 의무인 것은 주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이 그리스도의 생명과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이미 믿음으로 성화의 과정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는 치유의 은총속에 들어선 것이지만 아직도 죄와 사망의 영향권에서 전격 자유로운 상태가 아니기에 더욱 죄성의 뿌리에 대한 종합적인 통찰과 이에 대한 효율적이고 철저한 지속적인 대응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대응은 오직 참된 기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죄의 고백은 자기자신을 뛰어넘어 그것에 대해 책임질 준비가 되어있다는 표현이기에 생명에 대한 긍정이며 자유의 행위요 인간사회, 국가 종 자연에 이르는 모든 생명계에 대한 책임의식이라 설파했던 판넨베르크의 지적은 (비록 그가 예수의 부활의 역사성을 종말론적인 신앙에만 연계함으로 인해 완성된 진리인 부활신앙과 그 능력을 축소하는 듯한 의심을 주지만) 매우 귀한 통찰이라 여겨진다.  

우리 크리스찬이 주 안에서 누리는 자유가 참된 자유가 되기 위해서는 역시 책임있는 자유가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우리의 책임있는 자유가 미치는 영역이 현재 뿐만 아니라 머언 과거와 머언 미래까지 미치는 자유가 될수있는 것은 분명히 크리스찬인 우리만이 누릴수 있는 은혜와 특권이다.

요건데 전인 치유사역은 개인치유뿐만 아니라 세대치유 또 나라와 민족의 치유를 포함하는 매우 중요하고도 귀한 기본사역이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디모데후서 1 8~9)



박현숙 목사(프린스톤참빛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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