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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14시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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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박철수]모내기의 추억
“모내기의 추억”

요즘 모내기가 한창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번 주간 안에 모내기가 거의 끝나게 될 것 같습니다. 불과 한 두어 주간 만에 모내기가 모두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 같으면 한 달여의 긴 시간 동안 진행되는 모내기 과정인데 요즘은 기계화가 되어 모든 일이 쉽게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모내기 하는 것을 보면서 옛날 모내기 하던 추억이 생각납니다. 옛날에는 요즘처럼 기계화가 안 되었던 시절이라 모내기는 모두 사람들의 손으로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이니 모내기철에는 초등학교는 물론 중고등학교 까지 농번기 방학이 있었고, 그래도 모내기가 안 된 가정은 초등학교에 부탁하여 4, 5, 6학년 어린 학생들이 모내기에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보리 베기까지 동원이 되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모내기철은 농번기 방학이 있어서 학교에 등교하지 않고 부모님들을 도와서 보리 베는 일, 모내기를 돕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는 수리시설이 잘 안되어 있어서 모내기철에 물 때문에 힘들게 모내기를 했습니다. 모내기는 해야 하는데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심하여 물이 없어서 물을 확보하는 일이 관건이었습니다. 모든 마을 분 들이 개울을 보수하기도 하고, 우물을 파기도 하고, 때로는 마을 주변에 있는 높은 산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힘들게 모내기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해마다 모내기철이 되면 마을 청년들이 모내기 작업단을 구성하였습니다. 20여명의 남녀 청년들이 모임을 만들어 순번을 정하고 모내기를 하는 것입니다. 거의 모내기가 끝날 때까지 날마다 계속해서 손으로 모를 심으니 힘든 과정들이었습니다.

잘 마무리를 해 놓은 논에 20여 명의 모내기꾼들이 들어서서 논 양쪽에서 줄잡이의 호르라기 신호에 맞추어서 모내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면서 모내기를 하게 되니 허리가 얼마나 아픈지 모릅니다. 그래도 쉴 수가 없이 계속해서 모를 심어야 만이 일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하루 이틀 모내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한 달여 계속해서 모내기를 해야 했으니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아픈 허리의 통증을 잊기 위하여 다같이 노래를 부르면서 즐겁게 모내기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늦게 심는 옆 사람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 줄을 들었다 놓으면 얼굴에 줄이 튕겨서 얼굴이 볼만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보고 웃어가면서 모내기를 했습니다. 때로는 시원한 막걸리를 한 잔 씩 마시고 막걸리 기운에 허리 아픈 줄도 모르고 하루하루 모내기를 계속했던 것입니다.

모를 심는 집에서 새참으로 내놓는 맛있는 감자, 국수 한 그릇에 허기진 시장기를 달래는 일도 모내기의 재미있는 소재 거리였습니다. 하루 종일 모내기를 하고 나면 반 초죽음이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곤히 하루 밤을 자고 이른 아침부터 또다시 모내기를 하러 들녘으로 나가야 했으니 그야말로 젊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모내기를 끝내고 작업단들이 뒤풀이로 유원지에 놀러가서 오래간만에 모내기로 지친 심신을 즐겁게 하던 일도 모내기의 아련한 추억거리인 것입니다.

이제 농촌에서 이 논, 저 논에서 호르라기 소리에 맞춰 사람들이 한 줄로 서서 모내기를 하는 정겨운 모습은 옛날 추억거리의 소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는 힘들었어도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때가 사람 사는 냄새가 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훨씬 편하게, 쉽게 모내기를 하지만 정겨운 농촌 시골 풍경의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정서가 메말라 가는 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그 당시 작업단으로 모내기를 했던 청년들이 이제 반백의 나이들이 되어 어떤 친구는 손자 손녀들을 거느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되었고, 벌써 유명을 달리한 친구들도 있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깨닫습니다. 옛날 농촌에는 젊은 청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 사는 재미가 있었는데 요즘 농촌에는 젊은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모두다 도시로 직장을 따라, 또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농촌을 떠났기 때문에 젊은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40대 가 제일 젊은 층이 되었고, 대부분은 6, 70대의 노년층으로 농촌 인구가 구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옛날 젊은 청년들이 북적거렸던 시골, 고향마을이 그리운 시절이 되었습니다. 비록 힘들었지만 죽마고우 고향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못줄을 서로에게 튕겨가며 모를 심던 옛날이 그립습니다.


박철수목사(익산봉곡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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