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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10시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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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23. 대형 교통사고 중에서
 

고향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농사를 지으면서 야간으로 신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낮에는 논 밭에서 일을 하고 늦은 오후에 시내로 시내버스를 타고 통학을 하면서 신학공부를 하게 되었다. 육신적으로 피곤하였지만 신학공부를 하는 것이 여간 보람이 아니었다. 2년 과정의 신학공부를 하게 되었다. 물론 고등학교 졸업장이 있었기에 기능했다.

한 번은 신학교 공부를 마치고 시내버스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79년도 이니까 아직도 국도는 포장이 안 되어 있었고, 도로가 좁기 때문에 확장공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한 지역이 산자락을 지나는 도로인데 한 쪽은 절벽으로 되어있고 반대쪽은 시냇물이 흐르기 때문에 절벽 쪽을 확장할 수밖에 없는 지역이라 절벽 쪽에 있는 큰 바위를 제거하기 위해 발파 작업을 하고, 미처 그 잔해를 모두 치우지 아니하고 임시로 도로를 개통하였는데 그만 그 지역을 시내버스가 지나는 순간 쌓여있던 바위잔해들이 달리는 시내버스 위로 쏟아져 내린 것이다.

한순간에 버스는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깜깜한 밤에 큰 바위들이 버스를 덮치므로 버스천장이 버스 바닥에 닿을 정도가 되었으니 그야말로 버스 안은 아비규환의 현장이 되고 말았다. 그 버스에는 면소재지에 있는 중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꽤나 많이 타고 있었는데 여기저기서 사람 살리라는 소리들이 들렸다. 다행이 버스 앞부분으로 바위들이 쏟아졌고, 나는 사고 지점 불과 50여 미터 전방에서 사람들이 하차한 관계로 운전수 바로 뒤쪽에 서 있다가 중간 지점에 자리가 나서 그리 옮겨 앉자마자 그러한 사고가 발생한 것이었다.

버스 문 까지 부서져서 밖으로 나올 수 없어서 유리창을 깨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는데 버스 안에서 사람 살려달라는 소리가 들리니 어쩔 수 없이 깨진 창문으로 다시 들어가 바위에 깔려 있는 다친 사람들을 버스 밖으로 끌어내는 일을 다치지 않은 남학생들과 함께 했다.

사고결과 그 자리에서 연세 드신 여자 분은 유명을 달리하셨고, 여중생들 두 명이 중상, 그 외 다수가 경상을 입는 큰 교통사고를 겪게 되었다.

그 날 저녁 병원으로 환자들을 이송하고 병원에서 밤을 지낸 후 다음날 아침 건강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왔는데 사지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아침에 피 범벅이 된 옷을 입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눈물이 울컥하고 쏟아짐을 느꼈다. 중상을 입은 여학생들은 같은 교회를 다니는 학생들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한 여학생은 오랜 동안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서 온 교회가 얼마나 기도를 했는지 모른다. 감사하게도 의식이 돌아왔지만 온전한 모습이 되지 못하여 안타까웠는데 그래도 지금은 결혼까지 하고 가정을 이루고 잘 살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그 때 사고지점 50여 미터 전에서 뒤쪽에 자리가 나지 아니했다면 바위 잔해가 가장 심하게 쏟아진 자리에 계속해서 있어야 했는데 불과 몇 십초 전에 자리를 이동하여 생명을 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큰 교통사고를 겪으면서 사람의 생명은 불과 몇 십초에 왔다 갔다 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사고 지점은 큰 바위가 섬처럼 솟아 있어서 섬 바위라고 불리 울 정도로 그 지점을 지나가기가 항상 두려운 곳이었다. 그래서 옛날에 미군들이 그 지역을 차로 지나가다가 그 바위를 보고 그 바위가 무너져 내릴까 무서워서 그 길을 지나가지 못하고 오던 길로 돌아갔다는 일화가 있던 지역이었다. 지금은 그 옆으로 4차선 도로가 생겨서 그러한 위험은 없어졌고 그 곳을 지날 때마다 하나님의 보호해 주심의 은혜를 다시 한 번 깨닫곤 한다.

농사를 지으면서 2년 정도 신학교를 다니며 방송통신 대학 공부를 하느라 힘들었지만 열심히 공부하며 농사일을 하면서 방송통신대학도, 신학교도 무사히 졸업을 하게 되었다. 고진감래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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