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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10시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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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17.청소년 시절
 

펄펄 끓는 쇠죽솥에 빠졌어도 건져주셔서 살려주셨고 감사하게도 비록 키는 작았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자라서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6년 동안 학교를 다녔다.

역시 60년대가 되었어도 경제적으로 힘든 것은 매 한가지였다. 부모님께서는 형님들이 상급학교에 진학을 못했으니까 막내아들이라도 중학교에 진학시키려고 계획은 세우셨는지 6학년 때에는 중학교 진학을 위한 특별반에 들어가서 별도의 공부를 하였다. 비록 뛰어나지는 못했지만 상위그룹에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희망을 가지고 진학 공부를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교통수단이 여의치를 아니해서 중학교를 다니려면 시내에 하숙을 해야만 했다. 그 당시 시내까지 운행하는 시내버스가 없었고, 시외버스가 있는데 그것도 자주 없는 관계로 통학을 할 수 없어서 모든 학생들은 시내에 하숙을 했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등록금도 문제이지만 가난한 학생들은 공부를 어느 정도 한다고 해도 하숙비 때문에 진학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당장 식구들이 먹을 것도 해결이 안 되는 형편인데 어떻게 한 달에 쌀을 일곱 말씩 하숙비로 댈 수가 있었겠는가? 그 정도의 식량이면 모든 식구들이 족히 한 달을 먹고 살 수 있는 식량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중학교 진학 시험에 응시하여 다행히 합격을 하였다.

1965년 12월 합격 통지서를 받았지만 그 당시 등록금 3.000원과 하숙비(한 달에 쌀 7두(말))가 없어서 진학을 포기 할 수밖에 없었다. 진학을 포기한 것이 너무나 아쉬워 지금까지 합격통지서를 간직하고 있다. 우리 마을에 동급생이 8명이었는데 부잣집 친구 한 명만이 시내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을 했으니 그 당시 얼마나 시대적으로, 지역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진학을 포기 했는데 그때 같은 동급생들이 시내에 있는 중학교를 다니는 것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가난이 뭐 길래 그렇게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 못하고 포기해야 하는 어린 소년의 마음은 슬프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농촌의 열악한 현실을 깨닫게 된 몇 분의 수고로 면소재지에 중학원이 세워져있었다. 시내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그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집에서 학원까지 거리가 족히 이 십리(8Km)가 되었다. 그 거리를 차가 없으니까 걸어서 통학을 하는 것이었다. 말이 이 십리의 거리이지 작은 소년의 걸음으로 급히 걸어서 가도 한 시간이 넘게 소요가 되었다.

봄, 가을은 그래도 괜찮은데 여름에는 더위로, 겨울은 추위로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지금도 그 때의 고생이 생생하게 기억이 된다. 여름에는 학원을 다녀오면 땀으로 목욕을 할 정도로 옷이 모두 젖었고, 겨울에는 눈보라에 살을 에이는 찬바람에 집에 도착하면 추워서 이불속에 들어가 있으면 얼었던 손과 발, 귀와 코가 녹을 때는 얼마나 견디기 힘이 드는지 울음이 자동으로 나올 정도였으니 참으로 아련한 추억의 시간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학원의 선생님들은 대부분 대학생이었고, 어렵게 운영을 하던 중학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학원을 다니면 인가를 받지 아니한 학원이기 때문에 졸업을 하려면 검정고시 9과목을 모두 합격해야 중학교 졸업자격이 주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드는 과정인가? 그런데 그나마 2학년 과정을 마치고 3학년이 될 즈음에는 학원이 재정적으로 어려워서 그만 문을 닫아 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어찌 공부를 더 할 수 있었겠는가? 결국 그것으로 공부와는 인연이 끝나고 말았다.

중학교 3학년 나이에 그나마 공부를 중단하고 시골집에서 집안일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당시는 어찌나 공부를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가난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고 집안일을 해야 했으니 마음이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공부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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