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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12월28일 07시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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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루터킹 목사와 북한인권

금년 1월15일은 킹목사의 82회생일이다. 롱아일랜드지역 흑인교회 목사들은 16일 주일저녁 연합으로 26회째 그의 탄생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17일에는 메리오트호탤에서 표창식과 장학금수여식을 대대적으로 하면서 그의업적을 기념했다,

본인은 작년부터 한인동포를 대표하여 참석하며 5분간의 연설도 하였다, 매년 이자리에는 나쏘카운티장, 검사장, 지역시장, 각국마이노리티 대표들이 참석하여, 킹목사의 높은 뜻을 기념하고 있다. 5분간의 연설을 준비하기 위해 킹 목사의 지난생애를 찾아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그는 1929년 조지아주, 아틀란타에서 목사의 가문에서 태어났다, 부전자전이란 말이 있듯이, 그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버지는 유롭여행시 종교개혁자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기회를 가졌다. 개혁자 마틴루터에 크게 감동받고 귀국후 아들의 이름을 마틴 루터를 닮으라는 뜻으로 마틴루터로 개명해 주었다, 아버지가 개혁의 정신을 어릴때부터 심어준것이다.

킹목사는 명석하여 두번이나 월반했고, 25세에 알라바마주의 한침례교회 담임목사가 되었다.  보스톤 신학대학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은 학문에도 뛰어난 학자였다.

그의 설교와 연설문을 분석해보면 그는 뛰어난 문장력과 어휘력을 가진 특별한 문필가였다.  또 그 당시에 만연한 사회악과 구조악을 과감히 철폐하기위해 노력한, 성경의 말씀을 실천한 실천 신학자였다. 오늘날 말만하는 목사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흑인여성이 백인 남성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경찰에 체포된 사건을 자신의 것으로 받으며 버스 타지않는 운동을 11개월 동안 비폭력으로 전개했으며,  마침내 연방법원으로부터 인종분리법이 위헌이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그 당시에 미국사회에 만연했던 인종차별주의, 인권무시행위를 과감히 개혁하며, 가난을 퇴치하기위해 혼신의 힘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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